<양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

 

 

(누가복음 2장 6-12절)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로마황제 아구스도의 칙령에 따라 후손인 요셉과 마리아는 다윗의 원적지인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갔다가 거기에서 아기 예수님을 출산합니다. 혼인으로 인하여 지파들이 분배받은 땅이 뒤섞이지 않도록 하나님이 명하심에 따라 모세 때부터의 율법은 같은 지파 안에서만 결혼이 가능토록 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같은 유다지파요 같은 다윗의 후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따르든 어머니를 따르든 구약성경의 약속, 선지자들의 예언과 같이 틀림없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관(여관)이 손님들로 꽉 차서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태어나는 엄청난 사건에 쓰임 받고 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도우시고 천사라도 보내어 따뜻한 방이라도 얻게 하시고 거기에서 아들이 태어나게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두 사람은 들어갈 여관조차 없어서 가축들을 두는 외양간에서 아들을 낳았고 태어난 아들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세주의 탄생이라는 이 굉장한 사건을 양 치는 목자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알게 하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셨다고 말하는데, 아닙니다. 마굿간도 아니고 말구유도 아닙니다. 아마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아랍인들에게 처음 아파트를 지어주었더니 아파트에는 양들을 집어넣고 자기들은 마당에다 텐트를 치고 살더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 당시에도 비슷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이라고 불리던 이스라엘 땅에 살던 사람들은 가옥에 사람 사는 방과 가축(양) 두는 방을 함께 만들고 한 지붕 밑에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도 틀림없이 그런 양우리였고 거기 양구유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실 어린양으로, 그리고 화목제물로 오셨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시던 그 무서운 날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먹게 하셨으니 이것이 유월절 사건입니다. 또 하나님께 드린 화목제물은 제사장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과 화목하는 제물, 곧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양 우리에서 태어나신 것이며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화목제물로 양 구유, 곧 양의 밥그릇에 누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어 알리셨습니다. 양들에게 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목자라 하셨고 제자들에게 양을 치라 하셨고 양을 먹이시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양으로 예수님을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이 성탄절에 예수님의 탄생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좋아합니다만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때는 아무래도 겨울이 아니고 봄철, 유월절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들이 양을 치러 들판으로 나갔고 그래서 양우리가 비어있어서 요셉과 마리아가 거기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 곧 1년 된 숫염소로 오셨기 때문에 유월절 무렵에 태어나시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성탄절, 예수님의 탄생 때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그는 우리 양들에게 들판의 풀이 아니라, 광야의 만나가 아니라, 자신의 살과 피를 먹이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아들을 양우리, 양구유로 보내셨습니다.

 

 

아름다운 성탄절 소망의 새해, 복 된 주님의 양이 되신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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