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삼위일체,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완전무결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영원히 존재하신다.”
“There is one God, who is infinitely perfect, existing eternally in three persons: Father, Son, and Holy Spirit.”

미국의 정통기독교 교단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세 분으로 영원히 계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라는 모순된 표현,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들의 홈페이지에는 이 중요한 삼위일체 신앙고백이 좀체 안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그거야 말 안 해도 다 알지, 굳이 써놔야 하느냐는 것인지.......

인간의 머리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지 못 하여 이단들에게 이리 앞의 양처럼 노출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목회자나 신학자들 사이에도 삼위일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맞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시다. 그것도 맞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세 분이시다. 맞다.
세 분이시며 한 분이시다. 그것도 맞다.
아니, 이것도 맞다, 저것도 맞다, 말이 되는 소린가? 황희정승도 아니고.......
그렇다.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인간에게는 삼위일체를 알아듣게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나 방법이 없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고 말한다면 단일신론(單一神論)이 되고 세 분이라고 말한다면 삼신론(三神論)이 되지만,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인간의 이해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비밀이다.
함부로 지성소에 들어가면 죽임 당하였던 것처럼, 법궤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본 벧세메스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던 것처럼, 삼위일체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생각과 지식이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의 영역인 것이다.

만일 삼위일체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럴 듯하게 설명한다면 그 순간 그 설명은 틀리는 설명이 되어버린다.
클로버 잎으로 설명하거나, 삼각형을 그려놓고 설명하거나, 전기와 전구와 불빛으로 설명하거나, 그 속에 들어있고 또 그 속에 들어있다는 식으로, 혹은 계획자와 설계자와 시행자로 설명하는 것 등은 이해를 도울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삼위일체의 정확한 설명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성자 하나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다.
분명히 다른 분들, 세분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 분이시라는 말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세 분일 수가 없다. 이 세 분이 한 분이시다.
그렇다면 한 분이 세 분의 역할을 했다는 말인가?
아니다. 세 분이 따로 계신다. 그런데 이 세 분이 한 분이시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렇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끝없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질문과 답이 삼위일체의 정답이다.

이 신비의 삼위일체는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격렬한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이며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재차 확인된 기독교의 교리이다.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삼위일체가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삼위일체가 가능하지 않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만일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하나님도 우상이나 세상신의 한 종류일 뿐이다.
삼위일체 아닌 신은 아무 신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어떠한 다른 신도 따라 할 수 없고 흉내도 낼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삼위일체로 계실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일 수가 없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온 인류를 대신할 속죄제물의 자격이 없다.
하나님이 아닌 어떠한 존재도 인류의 모든 죄 값을 치를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시간이 멈추어 주기를 바란 적 없는가?
한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나, 두려운 순간이나 고통의 순간, 시간이 멈추어버리기를 바란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멈추어 그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혹은 그 시간이 영원히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 말이다.

만일 시간이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에는 시간이 멈추고 날아오던 핵미사일이 공중에서 멈추고 아우성하며 달리던 모든 인간들과 자동차들과 소란들이 일시에 정지한 가운데 주인공 혼자만 움직이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만일 시간이 멈춘다면, 그래서 모든 것이 정지한다면, 사람은 그 정지된 시간을 전혀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이 아무리 많은 세월을 흘러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다면 공간도 존재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아니 시간이 없으면 존재도 없어진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의 바탕조건인 것이다.  

그 시공(時空)이 모든 피조물의 존재영역이며 제한이다.
시공을 벗어나서는 어떠한 존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시공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시공의 제한을 받는 우리 인간에게 시공은 넘을 수 없는 무한의 세계이다.
백 수십억 년 전에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의 끝없는 시간과 끝 간 데 없는 공간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티끌 같이 작고 찰나에 생겨났다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한없이 미약하고 허망한 존재로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그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계신다.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신다.
과거에도 계시고 현재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신다.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현재형(I am, 에고 에이미)으로 계신다.

우리는 우주의 까마득한 시간 동안 우리 인간이 출현할 때까지 하나님은 얼마나 지루하셨을까 생각해보는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에 갇혀서 시간이 흐르기를 지루하게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다. 수십억 년이든 수백억 년이든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시간을 만들어 쓰시면 그만이다.

137억 년 전에 우주가 생겨나고, 100억 년 전에 태양이 생겨나고, 45억 년 전에 지구가 생겨나고, 수 억년 전에 고생대, 중생대가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 시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다.
아무리 긴 시간도 하나님이 지으시면 그만이요 시간이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지는 못 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짧은 순간도 하나님의 손과 눈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동시에 여러 곳의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대화하시고, 역사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정지시키실 수도 있고 흐르게 하실 수도 있으며, 수없이 나누실 수도 있으며, 아무리 짧은 시간이나 아무리 넓은 공간, 좁은 공간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으신다. 아무리 먼 곳도, 아무리 작은 공간도, 아무리 많은 숫자의 사람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장애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고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어디에나 언제나 현재형으로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이단 교리들은 하나님이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하여 생겨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죄인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 의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죄를 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의인은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인에게서는 죄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는 괴상한 논리다.

그들은 성경의 한 비슷한 말씀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우긴다. 하지만 그 성구는 그런 뜻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 전에도 죄인이었고 구원 받은 후에도 죄인이다. 우리가 의인으로 변화되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가려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간주되는 것이요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죽어주셨으므로 죽음을 면한 구원받은 죄인이다.

그들은 왜 이러한 ‘의인교리’를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회개하고 믿는 순간 그 때까지의 죄는 모두 사함 받는데, 그 이후에 짓는 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벽(壁) 때문에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현재까지만 미치고 앞으로는 미치지 못 한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어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른 바 ‘염소속죄교리’도 그런 비슷한 의문에서 시작된 교리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2,000 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때까지의 인류의 모든 죄는 해결되었는데 그 뒤의 죄악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그렇지, 그 뒤의 인류의 모든 죄는 바로 사단이 범인이다. 그래서 주님 오실 때 주님은 사단에게 그 죄를 다 얹어서 그 죄를 물으시고 처단하실 것이다.”라는 염소속죄교리를 창안해 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보혈의 죄사함과 죄씻음에 초점을 맞추었으므로 오해한 것이다. 시간의 틀 안에 갇힌 생각이 만들어낸 오해인 것이다. 물론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나 단순히 죄를 씻어서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속죄’하신 것이다, 대신 죽으신 것이다. 죄인이 죽을 자리에 미리 죽어주심으로 죽음의 값을 치르신 것이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구원해 놓아도 여전히 죄인인 죄인들, 건져놓아도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은 십자가의 보혈로 매일매일 순간순간 죄를 씻어서 자신을 온전히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평생을 깨끗이 씻다가도 죽기 직전 마음속으로 범죄 한다면 평생수고가 도루묵이 된다.
십자가의 보혈은 “죄 세척용 보혈”이 아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대신 피 흘려 죽으심의 보혈”이다. 대속의 피다. 주님은 우리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죽을 수 없게 된 죄인”으로 만드신 것이다.  

“의인교리”나 “염소속죄교리”는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치 못 한 것으로 만들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저능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이요 죄라고 생각한다.

시간이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손 안에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시간, 곧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사랑을 베푸셨다. 가인에게 표를 주셨다. ‘여자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전제로 한 용서와 죄사함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약속하시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약속하시는 순간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같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아니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모든 시간을 현재형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시기에 이루어진 것과 다름이 없다.

아니, 시간은 하나님께 절대적이지 않다. 우주공간, 하나님의 피조세계에서 시간은 절대적이 아니다. 실제로 우주공간의 시간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발견해낸 사실이다.  

얼마 전 130억 광년 거리에서 엄청난 빛과 에너지를 발하는 초신성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초신성은 사실 130억 년 전에 폭발한 것인데 이제야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함으로 관측된 것이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그 빛과 함께 130억 년 동안 달려서 지구로 왔다면 그에게는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의 속도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빛이 우리 지구에 도달하였을 때 그 빛의 입장에서의 시간이 진짜 시간인가, 아니면 우리 입장에서의 시간이 진짜 시간인가? 둘 다 진짜 시간이다.  

무슨 뜻인가? 이 우주공간의 시간이 뒤범벅인 셈이다. 그 초신성 뿐인가? 탄생시기가 서로 다른 수많은 빛이 우주공간에 함께 흐르고 있지 아니한가? 결국 절대적인 시간은 없는 셈이다.

블랙홀에 이끌려 들어가는 별들은 점점 빨라지면서 질량이 늘어나고 드디어 광속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게 된다. 결국 별들이 광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블랙홀로 끌려들어가면서 시간이 정지되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홀에서 주변의 별들이 빨려 들어가면서 시간이 정지되어 그 상태로 멈추어버린 것이 관측된다.
광속상태의 정지, 참 신기한 일이다. 같은 우주공간에 다른 시간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웜홀이론(Worm Hole Theory)이 있다. 서로 시간이 다른 우주공간을 벌레구멍 같은 웜홀(Worm Hole)로 연결하면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는 상상이나 해보는 이론일 뿐이다. 어쨌든 우주공간의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빛이시라 하셨다.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것은 그 분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튼 빛과 시간과 공간은 피조물로 피조세계에 거하는 우리 인간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한계요 그 너머는 불가사의한 영역이다.
물리학적으로 볼 때 빛에 다가가면, 아니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질량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따라서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다. 하나님은 빛으로 물질세계와 영적세계의 경계를 정하셨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주공간의 시간과 공간과 질량이 절대적이 아니라면, 시간과 공간과 질량이 달라질 수 있다면, 시공을 넘나드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시간과 공간과 질량은 어떤 것이 될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쪼개거나 겹치시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다면 삼위일체도 가능하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세 겹으로 겹치시면 말이다.
영원한 시간을 세 겹으로 겹치신다면 그 세 겹의 시간 속에 하나님은 세 분이면서 한 분으로 존재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시간을 세 겹으로 겹친다?
그렇게 해서 한 분이 세 분이 된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럴듯하긴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양태론이겠지?

삼위일체의 비밀,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비밀......,
나는 모른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시공의 신비와 함께 혼자 이리저리 상상해 보았을 뿐이다.
천국에 가면 알게 되겠지.

오늘도 괜한 헷소리 좀 장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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