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빛, 그 찬란하고 오묘한, 영원하신 신성과 능력 앞에서

빛!
빛에 대하여 글을 쓰려니 두려움이 앞선다.
이 미약한 죄인이 어찌 감히 빛을 논하랴.
빛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겸손히 엎드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빛이라 하시었고
그 분의 창조는 “빛이 있으라!”부터 시작되었다.
빛 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를 감찰하시고 우리의 죄를 다 아시며
진리로 인도하는 등불이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신다.

빛,
세상에 가득한 이 빛이 무엇인가?
우리는 빛 가운데 살며 빛을 보며 산다.
우리는 빛이란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빛이 우주에 충만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우리는 빛의 고마움조차 잊고 산다.
그러나 빛이 왜 있어야 하는가?
빛이 없으면 안 되는가?
천왕성과 해왕성이 자기들이 공전하는 길을 보면서 운행하는가?
목성과 토성이 빛 없는 깜깜한 공간을 돈다고 누가 뭐라 하는가?
태양은 왜 빛을 내는가?
태양 자신에게 빛이 무슨 필요인가?
별들은 왜 빛을 내어야 하는가?
왜 우주만유의 모든 존재는 빛으로 인하여 그 존재를 나타내며, 더러는 빛을 발하고 더러는 그 빛을 반사하며, 빛 가운데 함께 거하며, 빛으로 인하여 자신들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나타내어야 하는가?

만일 빛이 없다면.......
빛이 없다고 별들에게 무슨 상관인가?
우주공간을 채운 수많은 별들이 빛이 없다고 없어지는가?
태양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목성이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깜깜한 암흑 속에 눈을 꼭 감고 숨어있다 하여, 캄캄한 우주공간을 유령들처럼 돈다 하여, 그것들에게 무슨 상관,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빛이 없다고 그들의 존재가 영향을 받고 그들의 운행이 불가능한가?
도대체 빛은 왜 있으며 무엇 때문에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는 태양과 같은 항성들이 수소연료를 핵융합하면서 높은 온도와 빛을 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높은 열을 내는 것과 빛을 내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왜 빛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
빛은 보는 자를 위한 것이다.
보는 자가 없다면 빛은 필요가 없다.
존재는 그 존재를 보고 인식해 주는 존재에 의하여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가진다.
보아주고 인식해 주는 존재가 없다면, 만일 빛이 없고, 그래서 우주만유를 볼 수도 없고, 보아주는 존재, 그 존재들을 인식하는 지적존재가 없다면, 물질세계, 우주만유조차 무슨 존재가치와 의미를 가질 것인가?  

빛이 있다는 것은 만유를 보고 인식함으로써 만유의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질세계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자들에게 빛은 단지 우연의 산물이다.
그러나 창조주를 아는 자들에게 빛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다.
빛은 자신이 창조한 우주만유를 우리와 함께 바라보며 공유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빛부터 지으셨을 것이다.

빛,
빛은 물질세계의 모든 존재를 드러낸다.
빛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물질세계에서 없다.
빛은 빛의 속도로 직진한다.
빛은 반사하고 굴절하고 산란을 일으킨다.
빛은 분산되기도 하고 모아지기도 한다.
빛은 프리즘을 통하여 아름다운 무지갯빛으로 분광된다.

광학이라는 과학분야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지금도 현대과학은 빛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현대과학은 빛을 물리학적으로 정의하지 못 하고 있으며 빛의 정체를 규명하거나 파악하지 못 하고 있다.

빛을 파동(波動)이라고 정의한 시대가 있었다.
그래서 빛이 파동이라면 그 파동을 전달할 매개체(媒介體)가 있어야 하므로 우주공간은 진공이 아니라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었다.

빛을 광자(光子)의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시대도 있었다. 빛을 금속에 비추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光電效果) 때문이다. 그래서 광자를 뿜어내는 로켓을 만들면 광속 우주여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빛은 파동과 입자, 두 가지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빛은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만일 빛이 파동이라면 제각기 달리는 수많은 광선의 파동들이 뒤엉기고 부딪히고 간섭하여 빛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빛이 광자라는 알갱이라면 그 빛의 알갱이들의 수(數)는 한계가 있어 거리가 조금만 떨어지면 광자 알갱이들이 부족하여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아주 작은 한 점이라 할지라도 그 점은 사방 어느 위치에서나 보인다.
아무리 먼 거리의 희미한 빛이라 해도, 아무리 작고 미세하다 해도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크게 만들고 확대하면 다 볼 수 있다.
빛이 숫자의 한계를 가지는 광자 알갱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느 한 점은 무수히 많다.
그 모든 어느 한 점들이 모두 빛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 점들이 각기 내보내고 반사하는 빛이 서로 무한대로 엇갈린다 해도 그 빛들은 서로에게 방해도 되지 아니하고 간섭도 일으키지 않고 직진한다.

한 나무를 바라보라. 수많은 나뭇잎이 모두 빛으로 자신의 위치를 나타낸다. 각 나뭇잎들은 사방팔방으로 자신의 모양의 빛을 보낸다. 바로 옆의 나뭇잎도, 그 옆의 나뭇잎도, 모든 나뭇잎들이 다 자신을 빛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그 각자의 빛이 서로 부딪히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당신이 친구와 함께 나란히 앉아 둘이서 바라본다 해도 그 교차하는 시선들은 전혀 간섭을 일으키거나 빛을 독점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플래시라이트를 들고 한 곳을 향해 이 곳 저 곳에서 이리저리 비춘다 해도, 그 비추는 불빛들이 엇갈리든 부딪히든 불빛들은 전혀 충돌 없고 문제없이 직진한다.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이리저리 달리는 빛,
그 빛은 파동일 수가 없다.
빛은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빛,
입자도 파동도 아닌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는 것부터가 신비스러운 일이다.
빛이 입자도 파동도 아니라면 어떤 기운이나 힘이란 말인가?
그렇다. 빛은 기운이나 힘인 것 같기도 하다.
전기, 자기력이나 인력 같은 힘이나 기운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빛이 만일 그러한 기운이나 힘이라면 그 역시 서로를 밀치고 섞여서 직진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빛은 입자, 파동, 힘(기운), 모두의 성질을 다 가지나 모두 아니다.

현대물리학으로 빛은 전자기파(電磁氣波)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을 가시광선(可視光線)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공기의 떨림, 즉 공기의 파동이다.
소리의 파동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판자를 들고서 공기를 민다고 생각해보자.
다시 판자를 끌어당겨 공기를 끌어당긴다고 생각해보자.
공기가 판자에 밀릴 때는 압축되어 압력이 높아지고 반대로 판자에 의해 끌어당겨질 때는 약간의 진공이 생기는 것처럼 비게 될 것이다.
공기의 압축되고 팽창된 변화의 파동이 생길 것이다.
판자를 계속해서 밀고 당겨 보자. 빠르게 해보자.
그러면 공기가 압축되고 팽창된 변화가 앞으로 물결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더 빠르게 이 파동을 만들면 이것이 소리이다.
우리는 그 공기의 압축과 팽창의 변화를 귀로 인식함으로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섭씨 0도에서 1초에 약 340 미터를 진행한다(음속).

그런데 우리가 모든 주파수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초당 약 20번에서 1만 5천 번 진동하는 음파만을 들을 수 있다.
진동수가 낮으면 굵고 낮은 소리가 되고 진동수가 높으면 가늘고 높은 소리가 된다.
사람마다 귀가 다르고 듣는 능력이 다르다.
나이가 들면 고음영역이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젊은 사람들끼리 “삐- ” 높은 음역의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아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 그 소리는 전혀 안 들린다.
고막이 둔해지고 굳어져서 고진동수의 음파에는 반응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소리도 진동수가 높은 소리가 멀리 잘 나간다.
인간이 들을 수 없는 파장의 소리를 초음파(超音波, Ultra Sonic)라고 부른다.
동물들은 인간이 들을 없는 주파수의 초음파를 듣기도 하고, 박쥐는 초음파를 보내어 반사되어 오는 반향(反響, 메아리)으로 물체를 식별하기도 한다. 고래는 초음파를 이용하여 물체를 탐지하거나 서로 교신을 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초음파의 반향을 이용하여 환자의 몸 내부를 살피는 초음파검사를 하고, 산업현장에서는 초음파로 금속내부의 결함을 검사하기도 한다.

빛의 파장도 이런 점에서는 음파와 비슷하다.
빛은 파장에 따라 다르다.
인간은 파장이 400 나노미터에서 700 나노미터(10억분의 1 미터)인 빛만을 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 약간 차이가 있다.
벌과 같은 곤충이나 물고기는 인간과 다른 파장, 즉 자외선을 볼 수 있고, 양서류 동물이나 야간에 활동하는 동물들은 파장이 긴 적외선을 보기도 한다.
군인들의 야간투시경은 적외선을 이용하여 어둠 속의 적을 식별한다.

빛은 파장이 짧으면 투과력이 강해지고 파장이 길면 열이 많이 난다.
빛의 파장이 가시광선 보다 짧아지면 자외선이 된다.
자외선은 피부를 약간 통과하며 피부를 태운다.
해변이나 고지대에서, 그리고 눈이 덮인 고산지역에서 피부가 쉽게 타는 것은 자외선 때문이다.

자외선은 그 투과력 때문에 살균효과도 높다.
자외선이 살균효과를 가진다는 것은 자외선이 그 투과력 때문에 작은 생명체를 죽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구는 고공에 오존층이 있어서 태양으로부터 날아오는 자외선을 99%까지 차단한다.
오존층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자외선 때문에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곳은 이스라엘의 사해(死海)이다.
해발 마이너스 400 미터, 해수면보다 무려 400 미터나 더 낮다.
사해는 몸이 둥둥 뜨는 진한 소금물과 미용효과 높다는 진흙뻘로도 유명하지만 자외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해에서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필요가 없다.  
태양광선이 400 미터의 공기를 더 뚫고 내려오면서 나머지 1%의 자외선마저 차단되기 때문이다.

광선이 자외선 보다 파장이 더 짧아지면 엑스선(X-Ray)이 된다.
투과력이 좋기 때문에 인체내부를 엑스선으로 촬영하여 진단한다.

엑스선 보다 파장이 더 짧아지면 감마선이 된다.
감마선은 훨씬 강력한 투과성을 갖기 때문에 금속의 내부를 촬영하여 결함을 찾는데도 사용된다.
방사선(放射線)이란 엑스레이부터 시작하여 투과성을 가지는 광선을 총칭한다.
핵분열이나 핵융합에서는 방사선이 많이 나온다.
핵폭탄이나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알파선이나 베타선은 그리 큰 투과성을 가지지 않지만 감마선은 큰 투과력 때문에 위험하다.

가시광선 보다 파장이 길어지면 투과력이 줄어드는 대신 열을 발생한다. 이것이 적외선이다. 적외선은 그래서 온열치료에 이용되기도 한다.
적외선 보다 더욱 파장이 길어지면 마이크로웨이브가 되고 전파가 된다. 전파도 단파, 중파, 장파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다.
마이크로웨이브는 그 전자기파의 진동수로 전하(電荷)를 플러스, 마이너스로 바꾸면서 물 분자를 뱅글뱅글 돌려 그 마찰로 물의 온도를 높인다. 마이크로웨이브 전자오븐의 원리다.

전자기파(電磁氣波)란 무엇인가?
전기(電氣)와 자기(磁氣)가 만들어내는 파동이다.
소리와 비슷하게 말이다.
플레밍의 오른손, 왼손법칙에서 본 바와 같이 전기가 움직이면 자기가 발생하고 자기가 움직이면 전기가 발생한다.
이것이 발전기, 전동기의 원리이다.

전하를 가진 입자를 흔들면 그 직각방향으로 자기가 발생한다.
만일 이 대장쟁이가 전하를 띤 작은 입자 한 개를 들고서 앞뒤로 흔들면, 앞으로 밀 때 자기(磁氣)가 왼편 직각방향으로 생기고, 뒤로 당길 때 자기가 오른편 직각방향으로 발생한다.
전하를 띤 입자를 빠르게 앞뒤로 밀고 당기면 자기(磁氣)도 빠르게 좌우로 방향을 바꾸면서 발생하여 파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전기와 자기의 합친 파동이 전파(電波)이다.

만일 이 대장쟁이가 그것을 1초에 1백 660만 번 흔들면 1천 660 킬로헬츠(1,660 kHz)의 주파수를 가지는 전파가 발생하여 라디오 1660이 방해전파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를 계속 빠르게 하여 1초에 억(億), 조(兆), 경(京), 해(亥).... 무한히 올려 가면 단파전파, 마이크로웨이브, 적외선을 거쳐 빛으로, 방사선으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빛은 물리학적으로 명백히 한 부분의 전자기파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전자기파는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적외선, 그리고 전파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자기파는 빛이라면, 우리는 빛을 간단하게 일종의 전자기파의 범주에 넣어버리면 될 듯 하기도 하다.

그러나 빛은 그렇게 간단하게 특정주파수를 가지는 전자기파로 정의될 수 없다.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신비스러운 빛의 현상과 능력 때문이다.

다시 가시광선(可視光線)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이 볼 수 있는 파장은 약 380에서 770 나노미터까지이다.
좁다면 매우 좁은 파장범위이다.
그런데 이 파장범위 안에서 인간은 빛의 현란한 색깔을 본다.
빨주노초파남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깔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

파장 700~730 nm 근방에서는 빨강색이 된다.
파장 640 nm 근방에서는 주황색이 되고
파장 600 nm 근방에서는 노랑색이 된다.
파장 550 nm 근방에서는 녹색이 되고
파장 500 nm 근방에서는 하늘색, 푸른색이 된다.
파장이 440 nm 근방이 되면 남색이 되고
400 nm 근방에서는 보라색이 된다.

우리는 이 약간의 주파수 변화를 어째서 빨강, 노랑, 파랑......, 현란한 색깔의 변화로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물리학적으로는 약간의 파장의 변화일 뿐인데 그 빛들과 색깔들이 합쳐지고 나누어지며 만들어내는 무쌍한 변화는 우주만유 피조세계를 아름답고 현란하게 채색한다.

이것은 양성자 수, 전자의 수, 즉 원자번호의 변화에 의하여 모든 물질의 원소가 바뀌는 것처럼 신비한 일이다.
어째서 인간은 특정주파수의 전자기파를 누구나 똑같은 색깔로 인식한단 말인가?
인간들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전자기파의 주파수의 변화를 특정색깔들로 바꾸어 인식하기로 약속이라도 했단 말인가?

빛깔이 무엇인가?
색맹인 사람에게는 빨간색이 무엇이라고 설명해 줄 방법이 없다.
빛을 모르는 이에게 무지갯빛 아름다운 색깔의 변화가 주는 황홀함과 저녁노을이 주는 감동을 전해 줄 방법이 없다.
“빨강색이 뭔데? 파랑색이 어떤 색인데?”

빛의 놀라운 능력을 보라.
그 영원하신 신성과 영광을 보라.
이 찬란한 빛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하지 말라.
원시생명체가 빛을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빛을 사모하고 빛을 보기를 소원하였다고 말하지 말라.
삼엽충 같은 원시생명체가 전자기파의 존재를 감지하고 색깔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고 진화를 통하여 후대에 전했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들이 빛을 보려고 눈을 만들기 위하여 머리, 아니 두개골에다 두 개의 구멍을 내고 눈탱이가 밤탱이 같은 눈알을 박아 넣고 눈을 진화시키느라 수만년, 수억년 고생했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길랑 하지 말라.
그들이 빛의 주파수별로 특정색깔을 느끼도록 분류시스템을 고안해 내고 같은 파장에서 같은 색깔로 느끼기로 합의했다고 말하지 말라.
빨강색을 빨강색으로 느끼고 파란 색을 파란 색으로 느끼는 방법을 단세포 원생동물이, 벌레들이나, 원숭이나, 끄로마뇽인, 네안델타르인 같은 유원인들이 개발해 내었다고 말하지 말라.  

400~700 나노미터의 파장에 그 현란한 변화와 아름다운 색감을 부여하고 그 빛깔로 그 분의 광활한 피조세계를 눈부시게 채색하신 놀라우신 창조주 앞에서, 그 지으신 피조물들에게 빛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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