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따로 있냐?


<열왕기 16장>

지난 주 유다왕국 아비얌 이야기, 하나님께서 등불을 주시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튼튼히 하셨다는 이야기에 이어 이번 주는 다시 북이스라엘 왕조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번,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죽은 슬픈 이야기 기억하시겠지요? 그 일이 있고서도, 또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의 말씀에도 아랑곳없이 여로보암은 우상숭배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22년 동안 재위하고 죽은 다음 그 아들 나답이 왕이 되는데 이때부터 북이스라엘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 왕위찬탈, 쿠데타와 살육의 비극이 이어집니다. '너만 왕이냐, 나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질서와 위계, 권위가 무너지는, 광야에서 고라가 모세를 대적하였던 것처럼, 좀 나간다는 자들이 너도 나도 지팡이를 들고 일어나 서로 물고 뜯는 것 같은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겨우 2년을 재위한 다음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모반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나답왕을 죽입니다.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진멸해 버립니다. 아비야가 병들었을 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24년을 재위하고 죽고 그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엘라 역시 나답처럼 2년 만에 신하인 시므리에게 살해당합니다. 시므리 역시 바아사 집안의 모든 남자를 그 친구까지 죽여서 깡그리 씨를 말려버립니다.

그런데 그 시므리는 불과 7일 만에 끝납니다.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무리가 오므리를 왕으로 삼아 디르사를 에워싸고 공격하자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거기에서 타죽고 맙니다. 그렇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백성들이 반반으로 나누어져 절반은 디브니, 절반은 오므리를 옹위하고 싸움을 벌립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이긴 오므리가 대권을 잡아 12년을 군림하게 됩니다. 오므리는 그 12년 동안 사마리아를 건축하게 되고 죽으면서 아들 아합에게 왕의를 물려줍니다. 이세벨이라는 악한 왕비를 맞아들인 악한 왕 아합 말입니다.
(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
왕권이 죽이고 빼앗는 자들의 손에 이리저리 옮겨다닌 셈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 모든 비극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인간이 왕이 되고 자신이 주인이 됨으로써 죽이고 죽고 빼앗고 빼앗기는 피비린 내나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진정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참 된 왕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만물과 인간은 주를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골 1:16). 그 인간이 피조물의 위치를 벗어나 주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그리하여 스스로 주인 되고 임금 되려는 순간 사단 마귀의 쟁탈전은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은 권력의 싸움터요 나라들간의 전장(戰場)입니다. 피조물들이 서로 주인 되려고, 서로 왕권을 차지하고 재물을 가지려고 다투는 싸움터입니다. 세상은 돈과 생명을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터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이를 생존경쟁이라는 말로 합리화하고 글로벌 경쟁을 정당화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동물이란 말입니까? 오늘날 세계 인구는 70억을 넘어 폭발하고 있고 선진국과 후진국은 부와 가난의 양극화, 나눔과 사랑의 상실 속에 바야흐로 지옥도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습니다. 나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무엇 때문입니까? 나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 속에서 생명과 멸망의 다툼들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주님을 주로 모시지 못 하고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할 때가 아니던가요? 내가, 내 마음이 주님을 떠난다면 즉시 사단마귀의 쟁탈목표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모셨을 때 비로소 안연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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