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주시고 견고케 하신 것은

 

[왕상 15: 3-5]
3 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4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열왕기는 이제 북이스라엘에서 눈을 돌려 남쪽 유다왕국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솔로몬의 아들이면서 악한 친구들의 말을 듣고 독한 말로 나라가 갈라지게 한 르호보암 왕은 17년 동안 재위하였는데 예루살렘 주위에 산당과 우상을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세웠습니다. 애굽왕 시삭이 예루살렘으로 쳐 올라와 왕궁과 성전의 보물과 황금방패를 다 뺏어가는 바람에 놋방패를 만들었다는 부끄럽고 비참한 기록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그 못 난 르호보암의 어미가 이방 암몬사람 나아마라는 것이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여자의 역할, 어머니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르호보암이 죽자 그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어 3년을 치리합니다. 그리고 그 어미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비얌은 르호보암에 이어 불과 3년 동안 남유다왕국의 왕으로 재위합니다. 아비얌도 좋은 왕이 되지 못 하였습니다. 그는 죄를 행하였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비얌의 그 짧은 재위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아비얌에게 등불을 주시고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에는 전쟁이 있었다고만 간단히 기록되어 있지만 역대하 13장을 보면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의 큰 전쟁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 왕 아비얌은 40만 군대를 동원하고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두 배나 되는 80만 대군을 동원하여 앞뒤로 협공을 하여 아비얌 군대를 위기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군대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군대를 패하게 하여 무려 50만의 북이스라엘 군대가 엎드러지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온전치 못 한 아비얌을 도우셨습니다. 또한 아비얌은 무려 22명의 아들을 남겼고 그 중 아사가 아비얌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 41년 동안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행하며 우상을 없이 하고 나라를 든든히 세워가게 됩니다.

온전치 못 한 왕 아비얌에게 왜 하나님은 이토록 은혜를 베푸시고 많은 후손과 또 훌륭한 아들을 주셔서 예루살렘을 든든히 하셨을까요? 열왕기 저자는 다윗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조상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손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을까요?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것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 이방족속보다 나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우상숭배로 달려간 북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서도 우상숭배에 빠졌던 남왕국 유다나 다 마찬가지였고 이방족속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택하시고 그 계보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7절을 보면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로 우상숭배를 하고 온전치 못 하였던 왕들의 이름들이 황송하고 영광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등불을 주시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신 것은 아비얌이 비록 패역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 메시아의 계보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요 그 조상 다윗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패역하고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등불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공로가 있거나 세상사람들 보다 나은 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말씀 안에, 그 계보 안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 우리 위해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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