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로 인하여 사르밧 과부의 통과 병에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이 계속되고 덕분에 극심한 삼년동안의 가뭄 속에서 과부와 그 아들은 엘리야와 함께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때 사르밧 과부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습니까?”였습니다. “당신이 왜 내게 오셨단 말입니까? 당신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저 세상풍조 가운데, 죄 가운데 섞여 맘 편하게 흘러가고 있었을 텐데 당신이 오셔서 나의 죄를 깨우쳐 나를 괴롭게 하고 그 죄로 인하여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가루와 한 방울 기름을 먹고 죽으려고 하던 삼년 전 그 때를 잊어버린 듯이 엘리야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과부에게 생각난 죄는 무슨 죄였을까요? 과부가 무슨 간음죄 같은 죄를 저질렀던 것일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과부에게 생각난 죄는 하나님께 대한 죄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 하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대세에 이끌려가며 저지르는 우상숭배의 죄였을 것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하나님을 버린 죄였을 것입니다.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와 함께 삼년동안 지내면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고 계신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에게는 삼년동안 가루가 다 하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만 필요하였을 뿐, 그런 문제는 엘리야의 문제이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과부가 울부짖자 엘리야가 그 죽은 아들을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안고 올라가 자기 침상에 눕히고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아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제야 과부는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인 줄 아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과부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만일 삼년동안의 가뭄이 끝난 다음 아무 일 없이 엘리야가 과부의 집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목숨의 문제만 해결되면 하나님은 큰 필요 없습니다.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이 중요하지 죄와 영혼의 문제 따위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개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적 풍조로 인하여 “너는 너, 나는 나”, 목회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서로간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은 건드려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쓰디쓴 죄와 회개의 말씀은 덮어둔 채 가루가 다 하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축복의 말씀만 달콤하게 먹이다가 떠나기도 하고 성도들은 그렇게 삼년가뭄을 잘 지내고 떠나기도 합니다. 이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들의 죄를 건드려 생각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고백이 있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루와 기름이 다 하지 않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려고 내게 오셨습니까?” 엘리야의 모습과 과부의 고백을 통하여 진정한 목회자상을 생각해 봅니다. 이 어두운 시대일수록 더욱 절실히 필요한....


아멘넷/게시판

'이응한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뭇머뭇하느라  (0) 2013.06.04
매장지가 없어서.......  (2) 2013.05.30
왕이 따로 있냐?  (0) 2013.05.18
등불을 주시고 견고케 하신 것은  (0) 2013.05.12
슬픈 아들의 이름 "아비야"  (0) 2013.05.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