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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존 케빈 우드(John Kevin Wood)와 멜리사 우드(Melissa Wood)부부. 보도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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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매릴린드주의 라 플라다 고등학교(La Plata High School).보도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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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학교가 강제로 내 아이를 이슬람교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미국 매릴린드주의 라 플라다 고등학교(La Plata High School)가 학생들에게 이슬람 세뇌 교육을 허용해 학부모가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의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 공립학교는 세계사 수업 시간에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이고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가르쳤다. 또한 학생들에게 이슬람 신앙고백 샤하다(Shahada)를 쓰고 고백하도록 강요하고 이슬람의 5대 지주를 외우라고 명령했다.

샤하다(Shahada)는 “알라가 유일신이고 무하마드는 알라의 선지자다”라는 이슬람교의 사도신경이다. 이 샤하닷을 중인 앞에서 공언하면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도가 된다.

이슬람의 5대 지주는 샤하다(Shahada, 이슬람 신앙고백), 살라(Salah, 매일 5번 기도), 자카트(Zak?t, 자선, 구제), 사움(Sawm of Ramadan: 금식), 하즈(hajj, 성지 순례, 메카 순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해야)를 의미한다.

존 케빈 우드(John Kevin Wood)는 딸이 그 세계 역사 수업에서 샤하다 공언을 강요받고 이슬람교 세뇌교육을 받게 된 것을 알게 되고 격분했다.

그는 학교에 전화하여 딸이 이슬람 수업에서 탈퇴하고 다른 수업을 대체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부교장은 “이슬람 수업을 탈퇴하면 “F”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버지 우드가 계속해서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자 부교장은 법원을 통해 존우드가 학교에 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결국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존우드의 딸은 대학 진학 학점에 있어서 손해를 보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상실했다.

재학생들에 따르면 “평화적 종교 이슬람교는 사실이고 기독교와 유대교는 그냥 신념이라고 가르쳤다”며 “지하드는 이슬람 ‘거룩한 전쟁’으로서 종교적인 의무이고 영적 훈련을 포함한 이슬람에 헌신하기 위한 내적 투쟁이라고 배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911 테러와 보스턴 폭격등의 지하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드 부부는 결국 찰스 카운티 공립학교 교육위원회(Charles County Public Schools, the Board of Education)와 라 플라타 고등학교의 교장과 교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이 학교에서는 십계명이나 성경의 어떤 부분도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비하하는 발언은 물론 이슬람 교리에 다루고 있는 책은 집에 가지고 가지 못하고 학교에 놔두고 다녀야 했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소송을 맡은 법률센터의 리차드 톰슨 대표는 ‘기독교에 대해 차별하는 것은 특정 종교를 홍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에도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州) 오거스타 지역에 위치한 리버해드 고등학교에서는 “이슬람교의 신앙고백인 샤하다가 아랍어로 따라 쓰라”는 숙제 때문에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혀 마을 전체 학교가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었다.

최근 미국은 종교적 관점이 변화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는 공립학교가 자꾸 나타나고 있어 미국 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자!


우리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내가 받은 것이 없어서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우리가 쉬운데로 부모 자식 간의 예를 한번 살펴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것이 없어서 감사치 못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치 않는 것은 받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받은바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부부지간도 형제.자매도 이웃 간에도 꼭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기만 한다면, 설령 내가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그저 나와 함께 있어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는 같이 있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몸서리치는 외로움에 떨며 울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육신 적인 면도 그러하지만 영적인 면도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중에서 오늘까지 지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재앙 속에서 여지껏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역시,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놀랍고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십자가의 사랑…인간 편에서 보면, 값없이 그저 받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자신의 고귀한 목숨과 맞바꾸어야만 할 만큼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 사랑 하나만 제대로 깨닫게 되어도 너무나 크고 놀라워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감사 또 감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그럼에도, 그분도 인간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감사치 않고 등을 돌리는 사람을 향해 매우 섭섭해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이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 3- 4절 말씀) ."
 
이번 주는 우리나라 고유명절 구정입니다. 이 한 주간만이라도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해 보아야겠습니다. 내 교회, 내 이웃, 내 가족,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함을 깨닫고 따뜻하게 치하해주는 말, 감사함을 나타내는 표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특별운동이라도 벌려보는 한 주간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렇듯, 헤아려보면 감사할 조건이 많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조건이 없어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해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감사란….오직 깨닫는 자만 느낄 수가 있고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생각이 듭니다. 깨닫는 곳에 감사 있고, 감사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퍼온 글: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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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쏟는 주님


어둠에서 완전히 깨어
주님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철 없이 보내 버린 날들은
갈대 같은 몸짓으로 입맞춤을 바라는 입술이
무색 하도록 가여운 그런 밤이었습니다.
유난히도 달은 밝아 예전 보다 더 애틋하게
주님을 그립게 하던 그런 밤이었습니다.

나의 새 삶이여 나의 영원한 생명이여
나 주님을 사랑 합니다.
주님을 향한 나의 계절은 변함이 없습니다.
내게 사랑이 시드는 음지는 없습니다.
절망 마저 주님께 맡겨 놓은
내겐 정녕 두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떠나 가고 이 큰 세상에
덩그라니 홀로 남는다 하여도 주님이 내게 주신
진실한 사랑과 거룩한 희생을 가슴에 품고
나는 이 땅에 무너짐 없는 소망의 탑을 쌓으렵니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오고 아침이 밝을 때 까지도
알아 주는 이 없는 나의 삶을 바라 보며
눈물 쏟는 주님이여!
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을 사랑 합니다.
진정 내 생명보다 소중한 주님을 사랑 합니다.

이제 가을은 진한 커피향과 함께
하얀 눈꽃으로 피어 납니다.
머지 않아 봄도 올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 하는 영물화(詠物畵)속에서
나의 별이 금 초록 빛을 발할 때
주님 곁에서 영원토록 노래할 날 위해
인적 없는 땅에 나의 별을 파종 하러 가겠습니다.



<그대 채울 수 없는 빈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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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시 - 예수와 대화하는 히틀러
- 브레히트가 "색깔 논쟁하는 한국 정치-종교계"에 던지는 메시지
 


  





예수와 대화하는 히틀러



히틀러가 예수께 말하길
예수 그리스도, 내게 대답해 주세요
주님이 모든 유대인을 증오했는지
주님은 우수한 나치였던가요?

주님은 자유의 꿈을 증오했는지?
평화와 정의가 주님께 구역질나게 하는지?
우리가 경례하는 나치 깃발을 기억하시길!
거기 갈퀴가 달려있지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여, 내게 대답해 주세요
주님은 반유태주의자인지요, 아닌지요?
그리스도는 손가락으로 모래에다 쓰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간소하게 답하시길:

- 거기 순수혈통인 자가
첫 돌멩이를 던져라.






Gespräch

Hitler sagt zu Kristus
Antworte mir, Jesus Krist
Hassest du alle Juden
Bist du ein guter Nazist?

Hassest du die Träume von Freiheit?
Widert Friede und Recht dich an?
Auf der Flagge, die wir grüßen, erinnere dich!
Da ist ein Hacken dran!

Antworte mir, Sohn von Gottvater
Bist du Antisemit oder nicht?
Kristus zeichnet im Sand mit dem Finger
Und antwortet kindlich schlicht:

- Der da ist rasserein
Werde den ersten Stein.
 

(GBA 14, 280. 1934/35년) 


***********



    본 글에 소개하는 시는 브레히트가 덴마크 스벤보르에 망명 중이던 1934/35년 경에 지은 시로, 원래 제목은 "대화 Gespräch" (GBA 14, 280)이다. 브레히트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8장 1 - 11절)이란 잘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히틀러와 나치 정책의 허상을 비판하며 "순수 혈통 주장하는 히틀러 너, 니가 순수혈통이거던 너부터 돌을 던져라!"고 폭로하고 있는 시이다. 밋밋한 원래의 시 제목보다는 필자가 '약간은 길고 선정적인 제목'인 "예수와 대화하는 히틀러"라고 붙여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한다. 


    시대가 어수선하고 불안할 때마다 흔히들 헛된 꿈을 품은 나쁜 정치인들은 '메시아', '국부'나 '국모'의 이름을 달고 기꺼이 국민들을 현혹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했고 여전히 인도하고 있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은 물론 전 세계를 전쟁의 희생자로 전락시킨 것처럼, 세계 도처에 수많은 독재자들이 이렇게 선량한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에 희생물이 되게 한다.


  요한 복음에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께로 데리고 와서,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랍비는 이에 대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예수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다 무엇인가 쓰면서 말씀하시길, "너희 중에 죄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요 8, 7)고 한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물러가고 마침내 예수만 홀로 남게 되었다.


    바로 이 장면을 그대로 차용해서 브레히트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질문한 것처럼, 히틀러의 입에다 '나치의 정책과 정강"을 그대로 예수님께 질문하게 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 궁지에 몰리면 즐겨 등장시키는 "색깔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종북'이니 '친북'이니 색깔론을 즐겨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으로 '민주주의 수호'니 '나라 사랑'까지 입에 담는 사람은 요한복음 8장, 해당 구절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시인 브레히트가 히틀러의 입에다 재갈을 물리는 위의 시도 일독을 감히 권하고 싶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북한을 단 한번이라도 방문했고, 북한 정치인들과 대화하면서 입에 발린 '북한 찬양'을 단 한번이라도 한 사람들이 선량한 국민들 앞에서 과연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나 있는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먼저 '색깔론'의 첫 돌을 던져라!!

 


   


Breugel이 그린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예수 그리스도"




(2014년 겨울 - 이 시는 "브레히트 시, 777선 번역 프로젝트" 중에 하나임. )



배경 음악은 브레히트 작사, Ernst Busch의 노래 "Das Lied vom SA-Man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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