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행복입니다...    최송연 

햇살 고운 아침이나 바람 거센 밤이나 당신의 그 사랑, 나 느낄 수 있으니 행복입니다 비록 당신을 따르는 이 길 험하나 당신의 그 사랑, 별빛 되어 날 인도하시니 행복입니다 사랑 때문에 거룩한 몸 갈기갈기 찢기신 당신의 그 사랑, 내게 영원한 생명 되시니 행복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영롱한 새벽이슬 날이면 날마다, 내 영혼 소생시키시니 행복입니다

 

     사랑은 행복입니다...    최송연

    햇살 고운 아침이나 

    바람 거센 밤이나
    당신의 그 사랑, 나
    느낄 수 있으니 행복입니다

    비록 
    당신을 따르는 이 길 험하나
    당신의 그 사랑, 별빛 되어
    날 인도하시니 행복입니다

    사랑 때문에
    거룩한 몸 갈기갈기 찢기신
    당신의 그 사랑, 내게
    영원한 생명 되시니 행복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영롱한 새벽이슬
    날이면 날마다, 내 영혼
    소생시키시니 행복입니다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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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러내심, 그것이 복입니다.

    리브가가 집으로 달려가서 이야기를 하자 오라비 라반이 달려 나와 아브라함의 종에게 이릅니다. 라반이 누이 리브가가 찬 고리와 팔찌를 보고 리브가로부터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에게 한 말을 듣고 달려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반이 아브라함의 종을 집으로 영접해 들이고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짚과 보리를 약대에게 주고 아브라함의 종과 그 종자에게 발 씻을 물을 주고 음식을 차려 대접합니다. 라반은 굉장한 부자가 왔다고, 횡재가 굴러들었다고, 대박을 맞았다고 신이 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 아브라함의 종은 말씀드리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 하면서 자신은 아브라함의 종이라는 것과 아브라함이 어떻게 자기를 보내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말합니다. 또 우물가에 이르러 물 길러 나오는 처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면 그 처녀가 자기에게 물을 줄 뿐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준다면 그 처녀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이삭의 배필이라고 기도하였더니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나왔고 리브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였더니 리브가가 기도한 그대로 자기에게 물을 줄 뿐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 주었으며, 더구나 뉘집 딸이냐 물었더니 바로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인도하신 것이라 이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였노라고 진술합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들이 리브가를 나를 따라 이삭의 아내로 보내실 것인지 아니 보내실 것인지 대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자기들은 뭐라고 할 수 없다면서 리브가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뜻대로 이삭의 아내가 되게 하라고 대답합니다. 그제야 아브라함의 종은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낙타에 싣고 온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와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에게도 줍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의 주인에게 빨리 가야겠다고 바로 떠나겠다고 하고, 리브가의 가족들은 리브가를 열흘만이라도 머물며 이별하도록 하게 해 달라고 하는 작은 승강이가 벌어지고, 리브가가 바로 따라 나서겠다고 하는 작은 소동이 있은 다음 리브가는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찌어다.” 하는 가족의 축복 속에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이르러 이삭을 만나 이삭의 아내가 됩니다. 그리고 이삭이 모친의 상사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맺음으로써 이삭이 어머니 사라가 죽은 다음 3년 동안 슬픔에 잠겨 있다가 아내를 얻은 기쁨을 얻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4장은 무려 67절에 이르는 긴 이야기를 여기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나이 든 아들을 장가도 못 보내고 사라가 죽은 다음 아들 이삭의 혼처를 놓고 하는 아브라함의 맹세, 한 번 하나님을 따라 나선 자는 절대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단호한 결단이 들어있고, 주인을 목숨을 걸고 섬기는 종의 충성이 들어있고,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한 치도 틀림없는 인도하심, 그리고 불러내심을 받은 자의 결단들이 들어 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삶은 우리 인간적인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결코 복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또 한 사람,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가서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이삭이나 리브가나 그들 모두는 광야에서 떠돌다 광야에서 죽었으며, 나이 늙도록 아들을 낳지 못 했으며, 늦게 낳은 아들의 혼사도 보지 못 하고 죽었으며,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위험했고, 외로웠고, 슬펐으며, 많은 사람들이 세상살이 속에서 즐기는 소위 인생의 재미나 낙도 누리지 못 했습니다.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이룬 것 없고 아무것도 해놓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끌려 나와 일평생 광야에서 살다가 아들 하나 남겨놓고 죽은 것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복된 자, 복의 근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산 것이 복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한 것이 복입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것이 복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아무 공로, 아무 이루어 놓은 것, 아무 열매 없어도 그것이 복입니다.

    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So being affectionately desirous of you,
    we were willing to have imparted unto you,
    not the gospel of God only, but also our own souls,
    because ye were dear unto us.  데살로니가 전서 2:8]
    우리가 간절히 너희를 사모함은
    간절한 원하여 복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이 됨이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이는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영혼과 육체의 목숨까지도
    너희를 사랑하여 내 놓을 만큼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서로 사랑함으로 얻는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으로 말미암은 사랑,
    그 사랑의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으로
    서로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데살로니가 성도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기에
    ‘affectionately’ 로 표현했고
    KJV 에는 이곳에 단 한번만 나오는 특이한 단어로
    개정개혁은 ‘사모’ 라 표현하였지만 의미는 ‘깊고 깊은 사랑’을 뜻한다.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대답은 11절에 찾을 수 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As ye know how we exhorted and comforted and charged every one of you,
    as a father doth his children,]
    너희가 아는 것처럼 마치 아버지가 자녀에게 대하듯이
    어떻게 너희를 위로 하고 용기를 북돋고 힘을 주고 평안을 주기위하여
    너희 모두에게 그리 하니.

    ‘affectionately’ 는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던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과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영생을 있게 하신, 영생을 보여주신 소망의 사랑과
    이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이를 증명하실 뿐 만 아니라 이제부터 영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사랑,
    그 사랑으로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함이 되었고
    그 사랑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랑하는 자 들이 되었고
    이를 받아드린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서로 사랑함으로 바울과 그의 동역 자 들과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늘나라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다가올 하늘나라의 모형인 교회가 세워졌다.

    그래서 교회란
    천국, 하늘나라의 모형이고
    사랑이란
    그리스도 시며 주 이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Jesus said unto him,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This is the first and grea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unto it,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마태복음 22:37-40]
    마음을 다하고 영혼의 힘을 다하여
    목숨 같이
    끝임 없이 고동(鼓動)치는 심장과 같이,
    심장에 성령님께서 인치 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그 사랑을 본받아, 그 사랑을 닮아서
    그 사랑을 가슴에 인 침 받은,
    도장을 새기듯 가슴에 각인(刻印)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둘째도 그와 같으니
    And the second is like unto it,
    둘째도 같은 계명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똑 같은 계명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이 사랑을 증명하시며 힘주시며 인도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똑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며
    똑 같이 형제자매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하나님의 법을
    현대의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가?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한 다면 이것이 배도의 길이고
    지키려는 노력이 신앙생활이고
    지키려는 모양을 경건이라 한다.
    그러나 지키려는 노력과 모양도 없으면
    그런 종교인들에게 돌아서라는 말씀이라
    계명이며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한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Who by him do believe in God, that raised him up from the dead,
    and gave him glory; that your faith and hope might be in God.
    Seeing ye have purified your souls in obeying the truth through the Spirit unto unfeigned love of the brethren, see that ye love one another with a pure heart fervently:
    베드로 전서 1: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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