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구원을 받으셨나요?
구원을 받으셨다고요? 축하합니다.
그런데, 구원이 무슨 물건입니까?
구원이 주고받는 것이냐, 이 말입니다.

출장 다녀온 아빠가 가져오신 선물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빠를 잊어버리는 아이들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빠이지 선물이 아닙니다.
구원은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구원이 아니겠습니까?
구원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일어나고 나타나는 결과적인 일입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앞서 보내어 가나안 일곱 족속을 다 쫓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이 곧은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하셨다가는 순식간에 진멸하게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지금 모세가 간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곧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으시면 가나안 땅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빠가 떠나신다면 그까짓 선물꾸러미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구원,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직 붙잡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가 평생 가야 하는 길은 주님과의 동행이요 주님 계신 곳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까? 예, 들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그리 아니하시려거든 차라리 저의 이름을 책에서 지워달라고 목숨을 내어놓고 간구한 기도도 아니 들으셨던 하나님이 “하나님, 저와, 또 이 백성들과 동행해 주십시오.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하고 요청한 기도는 들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의 기도도 무엇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 주님의 동행하심을 구하는 기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선물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기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고 누구든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통함이나 성공이나 부귀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 함께 하심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보십시오.
다른 기도는 몰라도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는 반드시 들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모세의 이상한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냐, 내가 함께 가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하나님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고 표적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모세는 하나님께 표적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시고, 모세의 손이 품안에서 문둥병이 발하였다가 깨끗이 낫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양털뭉치에 이슬이 젖도록 해달라고 했다가 마르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믿음 약하고 걱정근심 염려가 많으며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들인지요?
예수님께서도 표적과 기사를 구하는 악한 세대, 도무지 표적과 기사가 없으면 믿지 못 하는 연약한 믿음을 꾸지람하셨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시고 곁에서 붙잡아 주셔야 비로소 안심하는 연약한 인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런 표적이나 기사가 없이 꿋꿋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은 없는가 봅니다.
인간이 그토록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를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도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셨습니다.
보지 아니하고 믿는 진실로 굳센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선한 형상들과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긍휼이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 아무것도 아니 보이고 우리 귀에 아무것도 아니 들려도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모세에게 반석에 서 있으라 명하셨습니다.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무사할 수 있는 죄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세를 반석 틈에 두시고 손으로 덮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영광, 곧 하나님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등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등만 보게 될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이었다고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의 틈, 곧 그 몸을 상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두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켜주실 것을 오늘 성경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반석의 틈, 곧 예수님 안에 두고서 말입니다.
그 반석 틈에서 우리에게 날마다 체험하는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와 인도하심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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