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님이 댓글에 대한 답글들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제게 질문을 하셨네요.
- 칼비니즘과 알미니즘
- 예수님에 대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다른 해석
- 창세기 1장 26, 27절에서 피조된 인간
- 심판과 정죄 (judgement &Condemn)  

부족한 제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부족하더라도 대답을 드려 보겠습니다.

1. 칼비니즘과 알미니즘에 대하여
칼비니즘과 알미니즘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대한 논쟁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미리 정하신 자들만 구원을 받게 될까요,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까요?

예정(Predestination)론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구원 받을 자들을 이미 정하셨다’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절대적 주권을 주장합니다.
반면에 자유의지(Free Will)론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알미니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칼비니즘은 "뭐? 인간이 구원을 받을 것인지, 아닐 것인지 하나님이 모르셨다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 않단 말이냐?"고 반박합니다.
이에 대하여 알미니즘은 다시 "아니, 당신들 주장대로라면 이미 다 정해져 있는데 뭣 하러 전도하라 하십니까? 모든 것이 창세전에 정해져 있었다면 그것은 톱니바퀴같이 돌아가는 운명론이 아니던가요?"라고 다시 반문합니다.
쳇바퀴처럼 질문과 반박이 이어지는 모순(창과 방패)과도 같은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논쟁은 1618년, 독일에서 열린 도트종교회의(Synod of Dort)에서 예정론을 신봉하는 칼빈주의자들이 자유의지론을 주장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을 정죄하고 Van Oldenbarnevelt에게 사형, Hugo Grotius에게는 종신형 판결을 내리고, 자유의지론을 주장하는 100여명의 교역자를 파직, 독일로부터 추방하고, 자유의지론을 주장하는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에게는 무거운 벌금을 부과함으로써 자유의지론은 이단으로 정죄하여 처단하는 극단적 조치를 야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도트종교회의에서 캘빈장로교파(Calvinist)에 의하여 “튤립-TULIP"이라고 알려진 예정론교리가 선언되는데, TULIP이라 함은 T: Total Depravity (인간의 전적타락), U: 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의 일방적 무조건적 선택), L: Limited Atonement (예정된 사람만을 위한 예수님의 속죄), I: Irresistible Grace (하나님의 전적인, 거부할 수 없는 은혜), P: 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들의 견인, 성도들을 이끌어 마침내 구원이 이루게 하고야 마시는 하나님), 다섯 개의 머리글자입니다.

특히 이 장로교의 TULIP 교리 중 “L", 곧 제한속죄론은 예수님이 구원받기로 정해진 사람들만을 위하여 피를 흘려주셨다는, 구원의 범위와 심지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 같이 보이는 극단적인 교리입니다.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논쟁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맞으면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진리를 해치는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거짓가르침이라면 목숨을 걸고 진리를 지키며 이단을 배격해야 하겠지만 사실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논쟁은 사실 구원과는 별 상관없는 논쟁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언제나 ‘나 같은 죄인의 괴수 바울이 창세전에 택하심을 입어 복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예정론과 ‘그러므로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자유의지론에 입각한 사명선언이 함께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만일 예정론이 극단적 예정론(Supra-Labsarian)으로 치닫는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창세전에 모든 것을 정해 놓으시고, 심지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 교통사고까지, 오늘 내가 무엇을 먹고 무슨 옷을 입고 누굴 만나 무슨 말을 할 것인가까지 다 아시고 예정해 놓으셨다, 어차피 구원받을 자는 구원 받을 것이고 구원 받지 못 할 자들은 아무리 전도해봐야 소용없다, 모세오경의 히브리어 글자들을 가로, 세로 또는 대각선으로 맞춰보면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도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등의 황당한 주장까지도 가능하게 되고,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전심으로 사랑할 수조차 없는, 이미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운명에 따라 수 천 년 인류역사의 드라마를 정교하게 펼쳐가는 조작된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세 분)가 진리인 것처럼 예정론도 옳고 자유의지론도 옳습니다.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논쟁은 인간의 좁은 머리로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구원의 역사를 놓고 서로 옳다고 다투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동시에 세 분이신 삼위일체의 신비를 우리 인간의 머리로 풀어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예정이냐, 자유의지냐를 어느 한 편으로 해석,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장로교에서 칼비니즘을 절대적인 진리로 놓고 알미니즘을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듯 한 행태를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정론이 옳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진노의 자식이던 우리를,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는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그리고 강권적으로 이끌지 아니하셨다면, 저나 여러분이나 제 발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구원에 이르렀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론도 옳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와 사랑이 이미 정해진 각본이나 프로그램된 운명에 의한 것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사랑이 미리 정해진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도 값진 참 사랑도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조작된 사랑을 받으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은 우리에게서 자발적으로 솟아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참된 믿음과 진실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한없는 사랑(예정)에 응답하여 울며(자유의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실 때 참 하나님,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듯,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 조화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진정한 구원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도 옮길 수 없는 돌을 만드실 수 있느냐?"라는 문제처럼, 예정이냐, 자유의지냐 하는 이 문제는 처음부터 정답과 정답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구원님께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대답이더라도 책망하지는 마세요옹.  ^^

어쿠,
1번 질문만으로도 이렇게 길어졌군요. 다음 질문은 다른 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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