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13-26]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왜 누구는 택하시고 왜 누구는 버리시느냐고요?
왜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지 않으시느냐고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요?

그럼, 산더미같이 많은 진흙을 몽땅 파서 지고 와야 옳다는 겁니까?
자기 죄악으로 죽은 자들을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모두 구원해 주어야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 되는 것입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택하신 대로 구원하신다 하여 나쁜 하나님이 되고, 저녁 다섯 시에 포도원에 들어와 겨우 한 시간만 일한 품군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다 하여 악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까?
토기장이가 자기 쓸만큼 진흙을 가져다 자기 맘대로 어떤 것은 귀한 그릇으로 만들고 어떤 것은 천히 쓰는 그릇으로 드는 게 잘못입니까?
또 가져왔다 해서 모든 진흙을 공평하게 모조리 고려청자로 만들어 주어야 진흙들이 불평을 않도록 공평하게 되는 겁니까?
토기장이가 진흙 일부를 가지고 도자기 구울 가마를 만든들 진흙이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사랑하셨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에서나 야곱이나 다를 바 전혀 없으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을 뿐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쓰셨을 뿐입니다.
야곱을 그렇게 택하시고 에서를 그렇게 사용하시고 성경에 기록케 하셔서 오늘날 성경을 읽는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려 한 것입니다.
먼 훗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렇게 그들을 각기 사용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 하고 애굽 백성이 되어 혼나고, 애굽군대가 되어 바다에 수장되고, 가나안 족속이 되어 진멸 당하였습니까?
또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다 구원 받았습니까?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고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바벨론에 침공당하여 죽고,
겨우 얼마, 남은 자만이 구원 받지 않았습니까?
인류역사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하’자, 예수님 ‘예’자도 못 들어보고 죽어갔습니까?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선택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선택으로 여러분의 공로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과 천국을 약속 받았습니까?
인류역사 수 천 년에 오늘날 자유세계에 태어나서 복음을 듣고 예수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여러분의 공로이며 여러분의 선택입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가 할 것이 아니라 그 엄청난 구원의 축복이 어떻게 내게 왔는가를 생각하십시오.
너도 나도 다 받는 축복이 아닙니다.
너도 나도 다 받는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값싼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흔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 엄청난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어찌 나 같은 것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기 되는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가? 생각할수록 그것이 귀하고, 그것이 감사하고, 그것이 말할 수 없이 큰 은혜가 아닙니까?

.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놓고 어느 한 편에 치우친 주장과 주의를 만드는 것은 옳지 못 하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그 구원의 신비를 알수록 우리는 입을 막을 뿐입니다. 3년 전 설교문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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