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28장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위하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칼빈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조도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무슨 보탬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있든 없든 이미 완전하시며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우리가 들어간다는 뜻일 겝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 영광의 존재가 된다는 뜻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기 위하여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순종이라고 말씀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 ‘사무엘상하’는 ‘사무엘상하’가 ‘다윗상하’라 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무엘상하에는 책이름 ‘사무엘’ 이야기보다 다윗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끝까지 죽지 않는데 사무엘상하를 보면 주인공 사무엘은 사무엘하가 시작되기도 전인 사무엘상 28장에 벌써 죽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다윗의 이야기뿐입니다.

‘사무엘상하’든 ‘다윗상하’든 이 책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다윗과 그 다윗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사무엘상하입니다.

사무엘상하를 다시 읽어보십시오.
사울은 악하고 다윗은 착헤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사랑하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악함과 선함으로 사울과 다윗을 비교한다면 다윗이 사울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울왕도 처음에는 행구 속에 숨을 정도로 수줍고 착한 청년이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질투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날뛰기는 했지만, 다윗은 밧세바와 간통하고 그 남편, 자신의 충성된 부하 우리야를 모살하였습니다. 죄질로 보자면 다윗이 사울보다 오히려 악하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의 편이 되어 주셨고 마침내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왕은 적이 쳐들어오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하고 자기 생각대로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드렸습니다.
살찐 소와 양이 아까워서 아말렉 왕과 가축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습니다.
다윗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왕을 자기의 손으로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와 간통하고 우리야를 죽인 죄를 지적하자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꼬꾸라져 회개하였고, 시므이가 저주를 퍼붓고 욕을 하며 흙을 던지는 것을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생각하고 감내하였습니다.
다윗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걸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임재의식과 순종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시게 하였다고 믿습니다.
사무엘상하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불순종하는 자는 버림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우주만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피조 되었고 주관 되고 있습니다.
피조세계는 곧 창조주에 대한 순종의 세계입니다.
순종은 존재를 가능케 합니다.
창조주에게 순종하지 않는 피조세계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피조세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불순종합니다. (또 있군요, 사단 마귀...)
창조주에 대한 불순종은 자기파괴와 타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피조세계란 창조주에게 순종하는 세계라는 사실입니다.
순종이 존재의 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조차도 피조세계 안으로 피조물의 위치로 낮아져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분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6)
하나님은 순종한 예수님을 살리시고 그 이름을 만물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무릎으로 그 앞에 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조차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은 피조세계에서는 오직 순종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또한 마지막 날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곧 순종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그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야만 죄인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불순종의 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순종하기는커녕 조롱하고 대적하고 밟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불순종의 결국은 버림받음 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상하는 불순종하는 사울왕과 순종하는 다윗의 대비인 셈입니다.

사무엘상 28장에는 불순종으로 인하여 끝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왕의 비참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대군이 쳐들어오자 사울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왕을 이미 버리셨기 때문에 아무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군급한 사울왕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죽은 사무엘의 혼을 땅속으로부터 불러올려 도움을 청합니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것 같은 처절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신접한 여인이 불러올린 사무엘의 신으로부터 사울왕이 들은 것은 엄중한 정죄와 파멸의 선고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사울왕은 길보아산에서 아들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오직 순종입니다.
순종만이 생명의 길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응한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 좀 가만히 못 계시겠어요?"  (0) 2012.08.10
하나님 안에서  (0) 2012.08.02
하나님은 불공평하신가?  (0) 2012.07.22
칼비니즘과 알미니즘  (1) 2012.07.19
왜 나를 위해 죽으셨다 하시는가?  (0) 2012.07.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