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1-11> 

오늘은 사무엘하로 들어가서 좀 건너뛰어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던 사건을 살펴봅시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왕 사울이 길보아산에서 세 아들과 함께 죽은 다음부터 다윗은 더 이상 사울왕에게 쫓길 필요는 없었지만, 사울왕의 군장 아브넬이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하고, 유대족속은 헤브론에서 다윗을 왕으로 세워 다시 수년간 사울과 다윗 집안간의 싸움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다윗으로 사울집안을 이기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또한 침략해온 블레셋을 패퇴시키셨으며, 다윗은 또한 여부스족속으로부터 시온산성을 빼앗아 다윗성이라 하고 예루살렘에서 다스리게 됩니다.

이 때 다윗의 나이가 38세 때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윗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20여 년간 모셔져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기로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뺀 삼만의 무리를 데리고 가서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그 앞에서 여러 가지 악기, 비파와 수금과 소고와 양금과 제금 등으로 주악을 울리며 모셔옵니다. 3만의 인파와 천지를 울리는 주악, 팡파레 속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행사는 그 규모가 대단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뜁니다.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잡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웃사를 치셔서 죽이십니다. 놀란 다윗은 법궤 모셔오기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가드의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놓고 철수합니다.

하나님은 왜 법궤를 붙잡은 웃사를 죽이시고 다윗의 ‘법궤 모셔가기’ 행사를 매몰차게 거부하셨을까요? 그것은 다윗의 ‘하나님 모셔가기’ 행사가 잘못 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4장을 보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 하나님은 법궤와 성막기구를 움직이는 상세한 법도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궤와 장막을 옮기는 일은 레위지파 자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대제사장들이 법궤를 장과 해달가죽, 그리고 순청색 푸른 보자기로 덮고 채를 뀁니다. 그리고 성소의 모든 거룩한 기구를 덮습니다. 그러면 레위지파 중 고핫자손들이 메고 갑니다. 이 때 고핫자손들도 함부로 법궤나 성물에 손을 대면 죽임을 당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덮개 같은 것을 메고 갑니다. 므라리 자손들은 장막의 널판들과 기둥들을 메고 갑니다. 하나님의 장막을 옮겨가는 것은 이렇게 엄숙하고 두려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렇게 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도 범람하던 요단강에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들어갔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레위인들로 하여금 메게 하지 않고 소가 끄는 수레에 실었습니다. 수레에 싣다니, 아니, 하나님이 무슨 물건이나 곡식입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수레에 실은 것은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갔던 블레셋이 재앙으로 혼이 난 다음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때 사용한 방법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야 모르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만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가 왜 날뛰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잘못을 깨닫지 못 하였고 웃사는 하나님의 법궤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가만히 좀 못 계시겠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함부로 취급하고 하나님의 음성, 의사표시까지 짓눌러버리는 웃사의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못 대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버릇없이 구는가 하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과 경고를 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버립니다. 심지어 성령하나님을 무슨 물건이나 기운처럼 “성령 받아랏!” 하고 뿌려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좋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하고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격의 없는 친구사이나, 사랑하는 부부사이나, 부모자식간이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예절은 있는 법입니다. 무시당하고서야 마음이 좋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한없이 좋으신 분이지만 동시에 한없이 거룩하시고 엄위하시며 두려운 분이십니다. 우리는 한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주시기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또한 엄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뒤늦게 다윗이 이를 깨닫고 다시금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올 때는 제대로 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물론 레위지파 제사장들이겠지요) 여섯 걸음을 행할 때 희생으로 제사를 드렸고 다윗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어린아이처럼 그 앞에서 춤을 춥니다.
"좋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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