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의 엉덩 자국 (Buttprints in the Sand)

One night I had a wondrous dream,
어느 날 밤 나는 한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One set of footprints there was seen,
그곳에 발자국 한 세트가 보였는데
The footprints of my precious Lord,
발자국은 나의 소중한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But mine were not along the shore.
그러나 나의 발자국은 해안을 따라 나 있지 않았습니다

But then some stranger prints appeared,
그런데 그때 몇 개의 이상한 자국들이 나타났습니다
And I asked the Lord, "What have we here?"
나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여기 있는 이것들이 무엇입니까?”라고

Those prints are large and round and neat,
그 자국들은 크고 둥글고 그리고 단정했습니다.
"But Lord they are too big for feet."
”하지만 주님 저것들은
발자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큽니다.”

"My child," He said in somber tones,
“내 아이야,”
그분은 침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For miles I carried you alone.
“수마일 동안을 내가 너를 업고 오면서
I challenged you to walk in faith,
나는 네가 믿음 안에서 걷기를 독려했었지
But you refused and made me wait."
그러나 너는 거절했고 나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You disobeyed, you would not grow,
너는 불순종 했고,
너는 성장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The walk of faith, you would not know.
믿음으로 걷는 길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어

So I got tired, I got fed up,
그래서 나는 피곤했고, 지쳤단다.
and there I dropped you on your butt."
하여 내가 너를 너의 엉덩이로 매어친 것이다.

"Because in life, there comes a time,
왜냐하면 삶이란, 어느 한 순간이 닥치는데,
when one must fight, and one must climb.
때로는 싸워야만 하고,
그리고 어떤 때는 기어 올라가야만 하고
When one must rise and take a stand,
때로는 서 있어야 하고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일어나야만 한단다.
or leave their butt prints in the sand."
그렇지 않으면 모래 사장에
그들의 엉덩 자국만 남길 뿐이지
 

외국 詩
번역:
별똥별/ 최송연



 

   
 
 

미북회담 결과에 관한 소고

 

중국처럼 북한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서 국제무대에 진출하려고 하나보지만...중국은 정은이처럼 그렇게 심한 독재체제도 아니고. 3대 세습왕조도 아니란 것이다. 이런 때 ICBM 폐기문제를 언급조차 하지않은 트럼프...우찌 해석해야 할지...대략난감이다.

 

지금으로서는 국가에 닥칠 위기, 좌경화를 막는 것은 우리 모두 투표에 참여하여 2번 찍는 방법 외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 분도 빠지지말고 일어나 모두 투표를 잘하기 바란다. 트럼프는 이전 지도자와 마찬가지, 정은이에게 시간만 벌어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바른 투표로 살려내는 길 외에는 희망이 없다.

나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둘이 모여 셋이된다.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됨을 앚지 말자.
우리가 힘쓸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 도우실 것이다. /최송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 1-6)."

2018년에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출처:최송연의 목양연가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을
    "사랑"이라 부르는 이유 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동산에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왜냐구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동물, 아니,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선택의지능력’을 인간에게만 부여하셨음을 알게 하여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요, 우리에게는 권리장전의 표식이요, 善과惡을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멋진 특권(awesome privilege)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무조건 순복하도록 창조되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짐승들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도 또 그분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선택의지능력도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인간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율권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악을 택할 수도 있고 선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율성의 능력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억지사랑보다 자신이 선택한 자율적인 사랑이 더 의미가 있고 더 가치가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인간들을 용서하시는 방법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벌벌 떨고 있는 죄인들을 향해 “너의 죄를 사하노라…”   어느 영화장면의 한 대사처럼 그렇게 말씀 한 마디만 해 주셔도 됩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택하셨습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요10:18절 참조) 그러길래 십자가의 사랑이 가장 고귀하고 가장 값진 사랑이라고 말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내 남편보다 훨씬 더 잘 생기고 유능한 남자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즐거이 내 남편을 사랑하며 내 가정을 지킵니다.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이요, 내가 선택한 내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여자들이 모두 다
    미쓰 코리아는 아니며 다 팔등신 미인들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의 남편들은 자기의 아내들을 사랑하며 가정을 지키려고  온갖 고생을 다하며 가진 애를씁니다. 내가 택한 나의 가정이요 내 아내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선택권을 남용해서 실낙원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우리가 보는 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대형교회 리더들 중
    유능한 목사님들이 대거제7계명을 범하고 추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들(특히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잠시잠간의 쾌락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오늘의 유혹과 싸워 이길 것이냐? 선택의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때가 주어진 것일 뿐 우리와 전혀 다른 별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선과 악을 택해야 하는 때, 자신의 정과 욕심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당당히 승리할 것을 택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요, 정욕을 택하고 무릎을 꿇는 것도 자신의 몫입니다. 만약, 그분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십자가의 길을 택했더라면, 가족의 행복은 물론, 그들의 목회여정은 지금보다 한결 더 빛이 났을 것이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라 하는 칭찬과 예비된 상급을 주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 보다는 보이는 육신의 쾌락을 택했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대로, 사랑스런 가정을 어둡게 했으며 에덴동산같이 사랑스럽고 축복된 교회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선을 선택할 수도 있는 자율권이 주어진 만물의 영장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멋진 피조물들입니다!  처음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이 권리를 남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낙원,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선택의 능력을 남용한 인간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주어진 이 멋진 선택의 권리를 남용하지만 않는다면 이 선택의 능력을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길을 찾을 수가 있고, 그 길을 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택하고 실낙원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내가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구원의 길을 미리 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구원받을 수를 정해 두신 분, 그 길을 마련해 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길을 내가 만들어서 가라고 하시면
    구원의 길을 찾기에 얼마나 더 어려울까
    늘 생각하게 됩니다. 고로, 나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에덴동산에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부종하라" (신 30:19)
    By: 별똥별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그대도 사랑할 수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사랑이라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이죠.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이 다시 또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눈물의 씨앗? 글쎄요. 

    느끼는 사람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죠,

    사랑의 감정이란 주관적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말도 느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네요.

    하지만, 대체로 사랑이란  아무래도 주는 것'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준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준다는 것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특권"을 내어놓는 것,

    그것이 무엇이건, 누구를 위해서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사랑'이란 생각입니.

     

    쉬운 예로,

    톡톡! 손으로 물을 털면서 자기 몸만 아끼던 아가씨가 결혼하게 되고

    아기를 낳게 되면 엄마가 됩니다아기를 사랑하는 그 사랑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꺼이 포기하게 되고...

    아가씨의 권리 포기는 곧 어머니란 위대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죠.  남자의 권리가 사랑 때문에 포기될 때  

    '아버지'란 위대한 이름을 창조주께로 하사받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가 되고서도 자유분방한 남자로서 살아야겠다 고집하고

    엄마가 되고서도 깔끔을 떠는 아가씨로만 남겠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렇게 사랑이란 주는 것,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권리라도 기꺼이 포기하게 하는 마법술이랍니다.^^

     

    우리 가 예수님을 사랑이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포기하셨고

    기꺼이 십자가를 택하셔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그 사랑이야말로 완전한 사랑이며,

    다시 더 없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가슴으로 고백하는 것입니!

     

    우리 현대인들의 비극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변질한 사랑' 때문이요, '사랑의 부재'문제, 

    손에 한 번 움켜쥔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여기에, 우리 인생의 슬픔과 아픔이 있다고 주창한다면

    너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나,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이름 아래 내가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마저도

    기꺼이 내어주고 포기할 수 있다면

    사랑이야말로 온전한 사랑이라고...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정과 교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회나 국가가 건강할 것이며,

    인간사의 많은 비극을 확실히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

     

    입으로 사랑한다 백 번 말하기보다 단 한 번이라도

    진실한 사랑을 해 보기 원하시죠?

    그렇다면 지금 당장 자신이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

    작은 것 하나라도, 사랑이란 이름을 위해서 내어주고

    그 사랑을 위해서 포기해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군요.

     

    오늘 당신의 그 결단이,

    지금부터 온전한 사랑’의 길로 그대를 초대해줄 것입니다!

    외로운 그대에게 사랑할 수 있는 초대장이 될 수 있었기를~

    그대도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절 말씀)"

     

    글: 별똥별/최송연

    출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My confession in the Cross

(십자가 안에서 내 고백)

                                     written by - The true _




 

I've been the first to point fingers,

to bring up someone else's fault to light,

and to argue for changes.

I was hoping and convinced this was how I would make
our faith better and do a service to our Lord.

This was my way of justice.

나는 처음에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끄집어 내어,
빛으로 들고 나오기도 했으며,
변화를 위해 다투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을 잘 섬기는 길이요
우리의 믿음을 보다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라
확신했고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내 방식대로 의로움이었습니다.

Then,

I came to realize that I was pointing

fingers to myself exposing my own faults.

I saw myself on the very person

who I was pointing fingers at.

다음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의 잘못들을 드러내며
지적하는 손가락들이 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손가락질하며 지적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Then,

I saw our Lord still weeping in the Cross

after all this time while I was claiming

being on the true side

I saw it was I keeping Him up there.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진리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하던 내내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여전히 눈물 흘리고 계셔야 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는 그것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 위에 계속 매달아 놓는 것임을.

Then,

I realized that the silent suffering of Him

in the Cross for someone else's sins was and

is His way of doing justice.

그리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를 위하여

그분께서 묵묵히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고,
그것이 의로움을 위한 그분의 방법이란 것을...
                     
  < 번역/ 최 송연 >



 




이 詩의 작가님이신 The True님의
깊은 신앙심을 다시금 배우길 원하면서...
                                      

                        

너는 특별하단다(You are special)


What they think doesn't matter.
All that matters is what I think
And I think you are pretty special.

Remember!
You are special because I made you.
And I don't make mistakes..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지.
그리고 난 네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단다.


 

기억하거라.
내가 너를 만들었기 때문에 넌 매우 특별하단다.
그리고 난 절대 실수는 하지 않는다.



옮긴 글

 

미소는 언제나 아름다워            


소나기라도 한 줄기 쏟아져 내려준다면 좋겠다.
오늘은 아침부터 착 가라앉은 하늘 때문인지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새들의 노랫소리마저 둔탁하게 들린다.

이른 아침,
집 앞에 딸린 손바닥만한 작은 공원은
월요일인데도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댄다.

개를 끌고 나와 볼일을 보게 하는 사람들,
몸이 불편한지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가는 할아버지,
마치 아기가 걷기 연습하듯 뒤뚱뒤뚱 넘어질 듯,
지팡이를 의지하고 걸어가시는 뚱뚱한 할머니,
날씨 탓일까, 한결같이 모두가 시무룩한 표정이다.

며칠째 숨 가쁘게 뛰어다니느라 운동을 하지 못한 탓에
몸도 마음도 찌뿌등하니 착 가라앉는 것 같다.

운동을 해야지~~….
기분 전환도 할 겸, 노란색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
새로 산 하얀 운동화를 졸라 신고 밖으로 나왔다.

하루에 적어도 30분은 걸어야 한다는데…
피곤한 마음을 다독거리며 걸어보려 하지만,
워낙에 손바닥만한 작은 공원이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뱅글거리자니 재미가 없다.

모처럼 나온 산책,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느긋이 즐겨 보려 하지만,
주위 분위기 탓인지, 날씨 탓인지, 내 마음 탓인지,
별로 상쾌한 기분이 들지 않고 자꾸만 가라앉으려 한다.

이런저런 떠오르는 어지러운 상념들을 떨쳐 내고
기도로 주께 마음을 모두려 애쓰며 빠르게 걸어 본다.

공원 한쪽에 두어 개 듬성듬성 놓여 있는 나무 벤치 옆을
막 지나치는 순간, 그곳에 팔순도 넘어 보이는
동양계 할머니 한 분이 운동을 마치셨는지 앉아 계셨다.

고개만 까닥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치려는 나를 향해,
“굿모닝!” 큰소리로 인사하며 함박같은 미소로 반기신다.

주름이 짜르르한 얼굴…할머님의 환한 미소….
어둡고 둔탁하게만 느껴지던 나의 작은 뜨락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다.

“굿모닝!”
마지못해 웃으며 답을 하던 나는 슬며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연세가 높으시고 몸도 불편하신 할머니께서
여지껏 저렇게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고 사시는
그 비결이 무엇일까?
무엇이 저 할머님을 저토록 행복하게 해 주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운동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신 듯,
처음부터 그곳에 그렇게 내내 벤치에 혼자 앉아 계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환한 미소를 보내어 주기도 하고...

어쩌면, 여지껏 살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할머니의 가슴속에 행복이 넘쳐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밝은 미소와 반가운 인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굳어 있던 얼굴 표정들이 스르르 풀리고,
한 발, 두 발 떼어놓는 발걸음마저 가볍고 경쾌해 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며 행복해야 하는 것인데....


후다닥 정신이 들며, 어디선가 내 몸 안에 숨어 있던
엔돌핀이 퐁퐁 샘물 솟아나듯 솟아 나더니

내 작은 등줄기를 타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음~~미소는 언제나 아름다워~~~~
사랑하는 님들, 모두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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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사는 인생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딱 두 부류라고 하겠습니다.
 
한 부류는
작은 은혜를 받고서도 그 은혜를 늘 기억하며
비록 갚지는 못해도 가슴 깊이 감사를 느끼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큰 은혜를 입고도
자기에게 불리할 때는
그 은혜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이솝 이야기 중
개미와 포수의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비둘기에게 은혜를 입은 개미가
포수의 손에서 비둘기를 구한다는...
 
한낱 미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 한다는 것을 예로,
우리에게 바른 삶,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려 한
어른들의 지혜로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조금 못나고 부족한 것은 용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라 자랑하여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은 한낱 미물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 부모 친척, 스승 그리고 내 이웃의 호의를
은혜로, 가슴 속에 늘 간직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은혜로 사는 인생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은혜의 선물로 받은 성도들입니다.
오늘을 사는 삶이 비록 버겁고 어려워도
주님의 크신 은혜만은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는 자가 복된 자일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심비(心碑)에 새기고,
날마다 십자가의 험한 길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고 멸망의 길로 간
가롯 유다의 어그러진 길을 걷지 않기를...
 
 


글/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요요현상" 없이 확실하게 뱃살 빼기

많은 사람들이 나잇살 때문에 고민한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장이 약해서
조금만 많이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안되고
아무리 맛난 음식,
또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하여도
만든 음식 이틀만 넘어가면 먹을 수 없다.

남의 집 가서 오래된 음식을 모르고 먹는날이면...
밤새도록 복통에다 심하면 토하기가 일쑤고
머리는 방망이로 두들겨 패듯 고통이 일주일씩 간다.
그러니 많이 먹지 못하고 조심조심....혼자 황녀다.
젊어서부터 그런 상태인 때문에 살이 많이 찔 새가 없다.

문제는,
남편이다.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고
심방이나 구역예배에 가면
맛난 음식들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으라 강권하는 곳은 많고

맛난 음식보면 절제가 안 되는 양반이라
밤이 늦어도 잘 먹고 소화도 잘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십이 넘어가면서부터 몸이 나기 시작,
몸만 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병도 이것저것 발병했다.

어느날 주치의가 경고했다.
"당신 이대로 가면 당뇨 합병증이 온다
운동도 더하고 살을 더 많이 빼야 산다."

그때부터
살빼기 노력을 피나게 이것저것 시도 했건만...
얼마 못가서 도로아미가 되고 말았다.
뺀 다음,
관리가 되지 않아 그런지 이전보다 더 찌고
그것을 가리켜 "요요현상"이라고 한다.

이제
나이는 점점 더 많아지는데...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이다.
우리 가정과 교회를 이끌어나갈 역군,
귀중한 내 남편의 건강을 지켜줄 방법이 없을까?
기도하며 연구하며 .....
찾았다! 나 혼자만의 비법을!!!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되 손 쉬워야 하고,
무엇보다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아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30파운드나 뺏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탈이라면, 이전 옷은 너무 커서 하나도 못입는 게 탈.^^)

우리 독자님들 중에서 살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까 하여
여기도 올려보니까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요현상 없이 살빼는 비법
1, 음식을 배불리 먹고자하는 느낌과 허기(배고픔) 증세를 잡아라.
그것은 인체에서 필요한 단백질 보충만이 길이다.
매일 저녁 식사는 계란 흰자 3개, 콩 두유(직접 껍질채 간 것)
한 잔이건 두 잔이건 큰 컵으로 양껏 마시면 된다.
매일 저녁 자기 전, 콩을 물에 담구어 두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나 일상화 되면 쉽다.

2. 아침 식사는 삶은 팥과 녹두를(이것도 저녁마다 담구어 둠)
한 그릇(배가 불룩해져도 좋다.)듬뿍 먹고, 고구마 한 개를 먹는다.
(양이 큰 사람은 고구마 한 개, 나 같은 경우에는 고구마 반 개.ㅎ)

3. 점심 식사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먹는다.
대신, 탄수화물은, 밥이나 국수 원하는 음식을 먹되
될 수 있는 대로 밥 한공기 이상 넘기지 않는 것이 좋고
각종 야채, 고기, 생선 등등 평소에 먹고 싶은 것을 양껏 먹는다

물론,
당뇨가 있는 사람은 단 것을 주려야 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죠.
이렇게 하면 1개월이면 표가 나기 시작한다.
콩과 계란 흰자는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주기에 여성이라면
다이어트 중에 얼굴이 못쓰게 되지 않고 머리결도 상하지 않는...
미용도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지니 일석이조다.
무엇보다도 충분한 단백질 보충으로
배가 고프지 않으니 식탐도 줄어드는 듯...

모든 독자님들, 새해에는
애물단지 살도 빼시고 건강도 좋아지셔서 더욱 행복하세요.^^

팁~
(단, 목회자 가정이라면,
심방 약속 등 먹을 약속이 있으면 모두 점심 시간으로 미루어야죠.)
저녁에 있는 잔치 집 같은 것은 가서 먹되 탄수화물은 피하고
단백질 함류된 고기와
야채 쪽을 찾아서 배불리 먹어라..
마켓에 가면 얼마든지 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고
쉬우니까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남자분들도
자기 전에 담구어 놓았다 끓이기만 하니 손쉽게 할 수 있다.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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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련한 추억 속에 최송연 아련한 추억 속에... 그리움만으로 남아 있는 내 친구야 우린 그때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보고도
        허릴 잡고 까르르 웃어댔었지... 봄이면 산나물을 캔답시고 바구니를 옆에 끼고 어른들 꽁무니를 졸졸 따라나섰다가 길가에 꽈리를 틀고 앉은 뱀을 보고는 들고 있던 바구니마저 팽개쳐버리고 자지러지듯 울면서 도망쳤었고... 여름이면 앞산의 산자락을 돌아 후미진 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며 내려가며 가재도 잡고 올챙이도 잡으며 깔깔대었네 가을이면 너와 함께 뒷산에 올라 도토리도 주웠었고 겨울이면 썰매를 탄답시고 송판때기 한 장에 냉큼 올라앉아 코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도록 앞뜰의 웅덩이를 따라 돌며 뱅글거렸지... 달 밝은 밤이면 동구 밖 빈 공터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술래잡기를 했고... 그때 넌 어쩌면 그렇게 꼭꼭 잘도 숨었든지... 난 너를 찾으려고 창수네 뒷간으로 갔다가 으스럼 달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보고 너무 무서워서 슬그머니 집으로 도망쳐 버린 기억들... 그리운 내 친구야, 내 기억 속에 너의 얼굴은 여전히 동그란 얼굴에 짧은 단발머리의 귀여운 소녀이건만... 나 어디로 가 버렸는가... 거울 속에는 눈가에 잔주름이 짜르르 낯설기만 한 어느 중년 부인이 여전히 큰 눈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네 내 그리운 친구야, 새해라고 별것이 있겠느냐 어찌 보면 육신이 나날이 후패해지는 아픔일 수도 있을 테지.. 그러나 흐르는 세월이야 내 어찌하리 세월의 끝자락을 잡고 계신 그분을 친구삼아 한 걸음 두 걸음 진실하게 걸어가노라면 언젠가는 하이얀 백발의 면류관을 쓰고 속 사람이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노년기를 맞을 수가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절 말씀)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깨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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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p‍‍‍>

시중에서 파는 값비싼 성탄 추리를 사지않고

화가이신 우리 교회 권사님을 선두로

몇 명이 둘러앉아서 직접 만들어 주일학교 방 벽을 꾸민

성탄 추리와 눈사람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있는데...

사진 기술이 영 엉망임다. ㅎㅎ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서 더욱 따스하고 정겹네요.

다음 성탄 절에 모두 한 번 시도해 보셔요.^^


재료는 주일학교에서 쓰다 남은 색종이,

솜 두 봉지, 그리고 장을 볼 때 담아주는 종이봉지 등입니다,

 

 


종이로 만든 추리

 

 

 

                                                                 솜 만든 눈사람.^^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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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장가를 가더니

 

자식을 낳으면

누구나 다 그렇게 기를테지만,

어릴 때 유난히 몸이 약한 아들,

불면 날아갈까, 옥이야금이야...

나는 먹지 못해도

좋은 것만 골라서 먹여 기르려 애썼고,

 

미국 남자들은 설겆이도 곧잘 한다는데

설겆이 한 번 시켜 본 적 없는 내 아들,

집에서는 왕자가 따로 없었는데...

 

대학을 타주로 보냈고, 자취 방엘

한 번 찾아갔더니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을 치워주고 화장실도 닦아주고

무엇을 먹고 사는가? 염려가 되어

아들이 잘 먹는 밑반찬을 잔뜩 만들어 두고 왔었다.

 

 

졸업과 동시에 장가를 가겠다며

과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

같은 교회서 봉사하다 만났다는

얌전하게 생긴 아가씨를 데리고 왔기에

장가를 보냈고 몇 년이 지난 후,

 

아이 둘을 낳아서 길러보더니

부모에 대한 마음을 배운 것인가?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자기가 모든 음식을

준비하겠단다.

 

?

네가 뭘 제대로 할 줄 안다고?

내심 믿기지 않았지만

기대 반 의심 반

 

이틀을 연달아 시장을 봐 오는데

가만히 보니까 며느리는 아이들과 놀고 있고

아들 혼자서 들락거리면서 장을 봐온다.

 

추수감사절 날이 되었다.

눈치를 보니까 새벽부터

아들은 터키를 굽는다며 부엌에서

왔다갔다하고 며느리는 감자도 까주고

조수처럼 조금 거들어주기만 하는 눈치다.

 

저녁이 다 준비되었다면서

식구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으기에 가보니

생각보다 근사한 밥상이 차려져 있다.

터키도 노릇노릇 냄새도 없이 잘도 구워놓았다.

능숙하기가 한 번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세상에나!

내 아들이 언제부터 저렇게 부엌에서?

음식이 맛난 만큼 내 마음이 좀 그렇다.

마냥 기뻐해야만 하는데 이 마음이 무엇일까?

확실히 세대차이인가 보다.

누가 부엌에서 일하면 어떤가?

저희들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는 것이지.

내가 내 마음을 달래어 본다.ㅎㅎ

 

 

 

 

 아들이 채려준 땡스기빙 디너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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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쉽지 않네...


"제가 아는 집사님인데 사모님이 꼭 한 번 만나보세요."

"왜요?"

"그 분이 건강에 좋은 내츄랄 약을 파는데 아주 좋데요.

사모님이 매일같이 콧물을 흘리시니 안타까워서요."

"글쎄요, 저는 부담스러운데..."


그렇게 말했건만

그 여집사가 예배 후에 찾아왔다.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찾아온 손님

박대할 수 없어서 커피 한 잔 끓여 주면서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듣다 보니까,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마침, 남편이 당뇨가 좀 있고

나는 심한 알레르기 증세로 고생하는데

그런 것은 당장 며칠이면 끝난단다.


당신 자신도 그동안에 콧물이 너무 심해서

매일처럼 코가 새빨갛기에 보는 이가 모두

"술 먹었냐?"

놀렸지만, 이 약을 며칠 먹고 딱 그쳤다며...

"보세요, 제 코, 지금 멀쩡하죠?"

눈마저 반짝거리며 아주 자신만만하다.


왕! 부럽다.

슬그머니....마음이 동한다.

"알레르기로 매일같이 줄줄 흐르는 콧물,

그래, 낫기만 한다면야 돈이 다 몬 필요가 있나?"


귀가 얇아 솔깃해진 오지랖 여사님,

거금(?)을 무시한 채 덜컹 일을 저질렀다...

싫다는 남편도 억지로 먹이고

일주일 동안 열심히 먹어 보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내 콧물은 멈출 생각을 않는다.


"집사님, 저는 콧물이 여전히 나네요?"

"평생을 쌓은 노폐물이니까 한 번에는 안되지요, 몇 번 더

약을 드시도록 하세요."

헉!

평생이라니?

젊어서는 이런 적 없었는데...

난 몇 년 전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콧물 재채기가 심하게 났고

병원에 갔더니 먼지에서 사는 '진드기'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했다.


글고,

당신 자신은 이익금을 소비자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에서 나오는 그대로를 전달하노라고...

그러면 나중에 회사에서 자기에게 주는 금액이 있노라고,.

"사모님도 회원이 되셔서 본인이 드시는 약은 싸게 드세요."

강권하지만...

에이~ 나는 사명이 다른데 사모가 누굴 상대로 장사하노?


암튼,

지금까지 먹은 약, 투자한 금액도 아깝고

면역성을 조절해준다는 약만이라도 좀 더 사서

계속 먹어보기로 하고

그 여집사에게 3병을 더 주문했다.

"약값은 권사님께 $140불만 드리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다음 며칠 후,

인터넷을 통해

그 회사 shop에 들어가 보니까 내가 산 약이

한 병에 $35(한화 약 3만 원 가량)이다.

가만 있자, 한 병에 $35불이고 3병이면?

계산이 팽그르르 돌아간다.

물론 Shipping & handling charge가 있다는 것은 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한 병에 $10불 씩이나 더 붙이면서 원가에 주는 것처럼...??

이건 아니다. 싶기도 하고 괘씸죄가 발동해서리...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보이는가?ㅎ

마음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래, 내가 어려운 사람에게 $30불 선교한 셈 치자."

 

그러나...

세상 사람도 아니고 교회의 집사라고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그런 삶을 살까?

한 번 정도는 조목조목(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따져주고 싶다.

따지기는 쉽지만, 그 후에 오는 후유증은?

우리 교회 권사님의 소개인데....

권장량의 약을 먹고도 계속 코를 훌쩍이는 나를

바라보는 울 권사님....마음이 힘드실 것 같고

순수하신 권사님, 진정 나를 걱정하시는 그 맘도 알고,

내가 코를 훌쩍일 때마다 나보다 더 안절부절~


그래, 그렇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사랑하자,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조목조목 따지고 싶으신 때가

얼마나 많으실까?

그럼에도 모두 다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지 않는가?


그런데 난 이 옹졸함이 뭔가?

사랑하기, 정말 쉽지 않네 ...

주님의 사랑 하심은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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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기도 제목

학생 신분으로, 선교사 신분으로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목회자 부부 동반 모임에 가면
우리가 제일 어려서 늘 한쪽에
조용히 앉았다 오곤 했다.

어느 날
목회자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갔는데
주요 자리에 내 남편이 서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어른 목사님들은 한 분 두 분
어디론가 떠나가시고...

회의가 끝나고 식사 시간,
"어른들이 먼저 잡수셔야 우리가 먹지요."
젊은 목사님들이 남편의 등 뒤로 선다.

엥? 우리가 어른 대접을?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이고....
열심히 살아나온 것밖에 없는데....
어느새 어른 대접을 받을 나이?

어릴 때는 어른 소리가 듣기 좋더니
이젠 그 소리가 낯설게 느껴진다.
왜일까?
내가 정말 나이 들었다는 증거?

그 뿐이랴,
또래 사모님이 암으로 고생하다가
엊그제 주님 나라에 들어가셨다.
어제는 또래 사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셨다고 한다.

에고~
젊은 때는 우리 모두 아프다고 해봤자 감기 몸살이더니...
이제는 너무도 큰 중병에 걸리는 동역자 님들...

이것이 현실인가...
기도 제목을 달리해야 할 듯....

주여~
당신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내 손으로 밥 해먹고
내 발로 걸어 다니고...
나보다 더 약한 사람, 병든 사람,
주님의 양 떼들을 섬기며
온 맘 다해 충성하다가 자는 잠에
주님 나라에 입성하는 축복을 베푸소서...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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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랖 여사님의 하루 교회 마당을 수리해야 하고 이곳에 이사를 온 후 이런저런 일들이 산재해 있다. 물론 내가 직접 삽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점심도 해 날라야 하고 이곳저곳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인지 아침에 눈을 뜨니까 전신이 다 쑤시고 아프다. 모든 세포가 화를 내며 살려달라고 일제히 일어나 아우성치며 데모하는 듯... 아야야....!! 몸살 기운이 도는 지 열도 나고 어깨가 내려앉는 듯 욱신거린다. 온종일 누워서 배겨볼까? 그 보다는 사우나에 가서 땀이라도 빼고 세신사에게 몸을 맡겨 조금은 주물러서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엄청 비싼 세신사 비용... 개척교회 사모로서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평생을 열심히 일만 했으니까 한번 쯤 나도 호강을 좀 해봐야징~ 결심을 하고 지난 번 놀러온 딸네미가 엄마 용돈하라며 아빠 몰래 손에 쥐어주고 간 용돈을 꺼내서 (아빠 손에 들어가는 날엔 모두 교회를 위해 사용하기 바쁘다.ㅎ) 주머니에 넣고 가까운 사우나에 갔다.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따뜻한 방을 왔다갔다 오랜만에 느긋함을 만끽해 보려는데... 헉! 우리의 전도 대상자인 옆집 아주머니가 언제 온 것인지 혼자서 때를 밀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한다? 그냥 모른척 해버릴까? 나도 힘이 들어서 세신사에게 몸을 맡겨야 할 형편이니... 모른척 해버리기에는 뭔가 찝찝~ 생각다 못해서 주춤주춤~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혼자 오셨어요?" 낯선 타향살이에 그럼 혼자 오지 누구랑 온단 말인가? "제가 등을 밀어 드릴께요." 괜찮다며 사양하시는 아주머니의 등에 붙어서 있는 힘을 다 해서 싹싹 ~! 그리고 나는 세신사에게 거금(?)을 내고... 옴마야! 이 오지랖은 뭘로 감당할까나?ㅎㅎ 그래도 전도대상자 아주머니를 어떻게 모른척 할 수 있을까? 몸이 힘이 들어도 그래야만 마음이 좀 편한 걸 어쩌랴.... -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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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없는 항해사 / 최송연

        새까만 청색 하늘이 서서히 열리는 시간 뜨여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니,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몰아치며 춥다. 아무래도 히터를 켜야겠다. 얼른 히터를 켜두고 커피 한 잔을 끓여 마신다. 음~ 따끈한 커피 향과 훈훈한 공기가 좋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참 간사하다 아니, 나만 그런가?ㅎㅎ 엊그제까지 더운 것이 괴로웠는데.. 언제 가을이 오냐고 이곳은 어찌 이리 더우냐고... 툴툴거렸는데... 그랬으면 이제 좀 시원해졌는데 즐겨야 하지 않는가? 조금 춥다고 히터에 손이 가다니...ㅎㅎ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여정도 늘 그런 것 같다. 조금 좋은 일이 생기면 금방 호호하하! 입이 찢어진다 그러다가 작은 어려움이라도 닥치면 안절부절~ 늘 마음이 평정할 순 없는걸까? 내 배의 선장이 계심을 믿는다면서... 그렇다면 힘없는 항해사인 내가 무엇 때문에 걱정이란 말인가? 주여~ 내 삶의 조각배를, 내가 섬기는 교회를,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심을 믿으며 풍랑이 닥치면 닥치는 대로 순풍이면 순풍인 대로 자고 하지도, 낙담하지도 않는... 그런 담대한 믿음으로 채우소서,.. 오늘도 힘든 하루겠지만 나는 힘없는 항해사임을 인식하고.... 강하고 지혜롭고 능력 많으신 우리의 선장, 내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며 아자, 아자 홧팅!!!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하모니카 이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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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인식에의 길 (The ways to self- knowledge) "네 자신을 알아라" 라는 말은 좋은 충고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안다는 말이 자신을 분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음대로 분해하고 다시 끼워 맞출 수 있는 기계인 것처럼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생애 중에 겪게 되는 어려운 시기에 우리를 위기에 처하게 한 사건들을 우리가 어느 정도 상세하게 분석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흔히들 고독, 침묵, 그리고 기도가 자기자신을 알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고독, 침묵, 기도가 우리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즉 우리의 지성소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성소는 분석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동경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마음의 소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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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화과야, 무화과야~

     

    새로 이사를 온 교회의 앞마당에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익어가는 무화과,

    올해는 유난한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흐드러졌다.

    토요일 날 한 광주리 따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오늘 주일 날 성도들과 나누어 먹고도 또 한 광주리가 남았다.

    잘 익은 무화과를 한 입 깨물면 향긋한 향과 함께 얼마나 달콤한지

     

    우리 주님께서는 시장하실 때 무화과나무에 가셔서 열매를 찾다가

    단 한 개의 열매도 얻지 못했다는데

     

    무화과야, 무화과야

    창조 주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이토록 달콤한 열매를 썩 내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어쩌다 한 개의 열매도 맺지 못하여

    영원토록 저주를 받고 말았단 말인가?"

    달콤한 무화과를 입에 넣을 때마다 무화과 한 개를 드시지 못한

    우리 주님 생각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 때 그 무화과나무는 제 철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치고,

    나는 우리 주님 찾으실 때 내어드릴 열매가 무엇이 있을까?

    달고 맛있는 무화과가 목으로 쉽게 넘어가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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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부활의 때가 아니다

         

        오늘은 괜스레 아침부터 마음이 울적하다.

        이런 때면, 나는 오래된 글을 찾아 읽어본다.

        좋은 글, 은혜의 글이란 읽을수록

        마음에 얼마나 위로가 되고 큰 힘을 주는지...

         

        우리가 잘 아는 한국 초대교회의 대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는 본래 유명한 깡패였다고 한다.
        이런 그가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된 후 부고장을 돌렸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모두 기뻐했다.

        “그놈 정말 잘 죽었다!”하는 심정으로
        장례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장례식을 치른다는 장소로 찾아가 의자에 앉아

        장례 집행식을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엔 슬픔이 아니라

        김익두가 죽었다는 사실이 참기름처럼 고소하여

        춤이라도 출 것같이 화기애애한 기쁨이 넘친다.

        그런데 잠시 후 죽었다던 김익두가 걸어 나오며

        ‘여러분 제 장례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게 아닌가?
        참석한 사람들 혼비백산해 하며 난리가 났다.

        이젠 정말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가 없다.
        모두가 사색이 되어 앉아 있는데

        김익두가 입을 열어 말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이제 저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난 김익두입니다.
        그동안 저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사색이 되어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후

        목사가 되었고, 이따금씩 옛 기질이

        불쑥불쑥 되살아나려 할 때가 있었지마는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야, 이 죽은 김익두야!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아직

        울려 퍼지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되살아나려고 하느냐.
        아직은 때가 아니다.
        더 죽어 있어라!”
        그러면서 끓어오르는 혈기를 삭혔다고 한다.

         

        예수님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성령 충만의 생활이란 어떤 모습인지,

        의구심이 들고 환멸이 올 때가 가끔씩 생긴다.

         

        아,

        다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게가 먼저라고 말해야 하겠지...

        다행히 나는 타고나기를 내성적인 성격이며

        다혈질이 아닌 탓에,

        혈기가 끌어오르는 것 때문에 고통받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내성적인 타잎은 또 다른 것들,

        죽여야할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있다.

        그러기에, 주께서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현대 신앙인들을 살펴보면 지도자가 없던

        고대 이스라엘 땅 '사사시대'를 연상하게 된다.

        각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마음내키는 대로

        내뱉고, 무법천지, 상식부재, 질서부재 시대가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각자가 나름대로, 모두가 다 의인이다.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고,

        자신의 체험이 최상이고,

        조용한 사람은 불같은 사람을

        불같은 사람은 조용한 사람을 비방한다.

        다른 이는 성령도 받지 못한 이들로 매도하는 태도,

        자신만이 가장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우리 모두 죽어야할 것들은 무엇일까?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실세를 넓히려는 욕심,

        자신의 사상을 밀어주지 않는다 하여

        섭한 감정을 넘어 상대를 원수시 하고

        더 심하면, 온갖 악한 말로 모함하기도 하는

        이런 유아적 표현의 악플들이 난무함을 보게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 모두가 다 본성을 죽이지 못한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죽자, 죽어야 열매가 맺히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닌가.

        아직은 주께서 일어나라 말씀하지 않으시는데,

         

        김익두 목사님처럼, 

        우리 모두 부활 때까지 죽어지날 수 없는 것일까....

         

         

         

        별똥별/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찬양하라 내 영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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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자!


      우리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내가 받은 것이 없어서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우리가 쉬운데로 부모 자식 간의 예를 한번 살펴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것이 없어서 감사치 못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치 않는 것은 받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받은바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부부지간도 형제.자매도 이웃 간에도 꼭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기만 한다면, 설령 내가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그저 나와 함께 있어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는 같이 있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몸서리치는 외로움에 떨며 울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육신 적인 면도 그러하지만 영적인 면도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중에서 오늘까지 지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재앙 속에서 여지껏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역시,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놀랍고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십자가의 사랑…인간 편에서 보면, 값없이 그저 받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자신의 고귀한 목숨과 맞바꾸어야만 할 만큼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 사랑 하나만 제대로 깨닫게 되어도 너무나 크고 놀라워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감사 또 감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그럼에도, 그분도 인간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감사치 않고 등을 돌리는 사람을 향해 매우 섭섭해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이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 3- 4절 말씀) ."
       
      이번 주는 우리나라 고유명절 구정입니다. 이 한 주간만이라도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해 보아야겠습니다. 내 교회, 내 이웃, 내 가족,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함을 깨닫고 따뜻하게 치하해주는 말, 감사함을 나타내는 표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특별운동이라도 벌려보는 한 주간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렇듯, 헤아려보면 감사할 조건이 많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조건이 없어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해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감사란….오직 깨닫는 자만 느낄 수가 있고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생각이 듭니다. 깨닫는 곳에 감사 있고, 감사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퍼온 글: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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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해에는 새 소망 지난 한 해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 감사드리면서... 모든 아픔과 슬픔일랑 사라지게 하시고 새 해에는 새 소망으로 채워주소서 사랑하는 식구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목양연가 섬기미/최송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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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정말 주님을 닮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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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비평하고 멸시하고 천대하여도
      겸손은 나를 평온케 합니다. ”  -앤드류 머레이-
       
      “겸손은 마음에 완전한 평온을 말합니다.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겸손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내게 일어난 일을 이상히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참된 겸손을 보여주는 모델은 예수그리스도시라고 
      그분의 모습에서 우리의 겸손을 다듬어나가야 한다고…
       
      예수님의 겸손은:
                                                      
       1. 하나님과 동등 됨을 버리셨다.
       2.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
       3.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복종하셨다.
      (빌립보서2:9절 말씀 참조)
       
      버리심, 종되심, 죽기까지 말씀에 복종하심....
      큰~울림이 되어서 다가오는 새벽 아침이다.
       
      나는 과연
      슬퍼함 없이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종의 형체란 엄청난 자리에까지 내려가서도
      실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신 것은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마음이 되어
      그 말씀에 복종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나는 적어도 교만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자주 슬퍼하고 자주 낙담하는 내 모습,
      포기해야 할 때면 늘~안달했던 내 모습
      억울한 말을 들을 때면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 못 이룬 밤이 또 얼마던가….
       
      그렇다,
      내 이면에 나도 알지 못하는 교만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겸손이란
      아름답게 포장된 겸손, 위장된 겸손일 뿐이다!
       
      지성으로 위장되고,
      믿음이란 이름으로 위장되고….
       
      성령님께서
      나의 위장된 겸손의 실체를
       밝히 보여주신 엄청난 새벽이였다.
       
      오, 나의 주님…
      사람에게 짓밟힌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교만이었습니다.
       
      내 자리가 너무나 힘들다고
      낙심한 그 자체가 교만이었습니다.
       
      내가 겸손한 삶을 살고 있노라고
      생각한 그 자체가 교만이었습니다.
       
      난, 정말 예수님을 닮고 싶은데...
      난, 정말 주님의 그 겸손함을 닮고 싶은데...
       
      너무도 쉽지가 않음을 깨닫고,
      부족한 영혼 탄식하며
       
      오늘도
      능력 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글: 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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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슬픈 것/최송연 성도가 지향해야 할 삶은 저버린 채 자신이 가장 거룩하다 착각하는 바리세적 비루함을 바라보는 것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함, 자신이 한 행동일지라도 불리해지면 맹세코 부인하는 완악함 남의 말만 듣고 자신이 겪어보기도 전, 상대를 비평하는 입술, 자신 보다 뛰어난 사람을 응원하지 못해 시기하는 옹졸함 그보다 더 슬픈 것, 가장 슬픈 것은 그들 속에 내가 보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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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이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는 백인이었던 펄 벅의 어머니가
          신을 분노하게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했고,
          어느 날 밤 사람들은 몽둥이, 곡괭이,
          도끼, 쇠스랑 등 무기가 될 만한 농기구를 가지고
          펄 벅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 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다.



          잠시 뒤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다.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펄 벅의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하며 정중히 차를 권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의 두려움을 들려주며
          만약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고 말했는데,
          그것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시작"이란 말이 생각난다.

          인간이 절망하는 것은 살아계신 주님을 믿지 못하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절망적 상황을 만났을 때, 당장 그곳에서 건져주시는 체험,

          이적과 기사, 기적만 추구하는 신앙은 병든신앙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에서 건져주실 주님을

          바랐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고백으로 승리했다.

           

          바른 신앙이란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

          당장 건져주시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고백하는 믿음일 것이다.

           

          내가 당한 나의 어려움 때문에 좌절하여 주저앉기보다

          나의 당한 모든 일에 주님의 섭리하심이 있음을 믿고

          잠잠히 순응하며 풀무불 속까지 뛰어들어갈 그때,

          결과는 주님께서 영광받으신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예수님께서 절망의 십자가를 피한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 뒤에 있을 영광을 바라고 잠잠히 참으심을 기억하고
          주님의 참된 용기를 본받는 자...
          그가 바로 절망에서 용기를 얻는 참 믿음의 사람일 것이다!

           

          바른 신앙생활이란 기쁜 일을 만나거나 어렵고 슬픈 일을 만나거나
          그 속에서 매일 매 순간을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믿음의 사람은 절망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담대함을
          주님께로 공급받게 되는 것임을 믿는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너와 나,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를..... 


           


           

          - 글: 최송연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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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로 사는 인생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딱 두 부류라고 하겠습니다.
       
      한 부류는
      작은 은혜를 받고서도 그 은혜를 늘 기억하며
      비록 갚지는 못해도 가슴 깊이 감사를 느끼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큰 은혜를 입고도
      자기에게 불리할 때는
      그 은혜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이솝 이야기 중
      개미와 포수의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비둘기에게 은혜를 입은 개미가
      포수의 손에서 비둘기를 구한다는...
       
      한낱 미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 한다는 것을 예로,
      우리에게 바른 삶,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려 한
      어른들의 지혜로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조금 못나고 부족한 것은 용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라 자랑하여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은 한낱 미물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 부모 친척, 스승 그리고 내 이웃의 호의를
      은혜로, 가슴 속에 늘 간직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은혜로 사는 인생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은혜의 선물로 받은 성도들입니다.
      오늘을 사는 삶이 비록 버겁고 어려워도
      주님의 크신 은혜만은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는 자가 복된 자일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심비(心碑)에 새기고,
      날마다 십자가의 험한 길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고 멸망의 길로 간
      가롯 유다의 어그러진 길을 걷지 않기를...
       
       


      글/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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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그러려니...하고 
                      최송연
      남편이나 아내가 
      나를 이해해 주지 않나요?
      그저 그러려니...하고 기다리세요 
      때가 되면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멋진 반려자로 세워질 테니까요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나를 어렵게 하나요? 그저 그러려니...하고 기다리세요 때가 되면 당신의 그 깊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따뜻한 부모님으로 바뀌실 테니까요

      며느리가 너무 철없고 미숙하나요? 그저 그러려니...하고 기다리세요 때가 되면 누구보다 든든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질 테니까요

      친구나 직장 상사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나요? 그저 그러려니...하고 기다리세요 때가 되면 당신의 그 충성 되고 진실함을 잘 알고 인정해 주는 멋진 동역 자들이 당신 주위로 많이 모여들 테니까요

      지금, 나의 삶이 먹구름 같이 어둡고 캄캄한 현실이라 해도 그것 때문에 죽으려고 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휘몰아치던 천둥번개는 사라지고 눈부신 햇살처럼 찬란한 아침이 당신 앞에 펼쳐짐을 보고 놀라게 될 테니까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성취하려고 하지도 마세요 지금 당장이라고 다구치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먼저 좌절과 실망의 벽에 부딪혀 깨어지고 만답니다

      우리의 구속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영광의 주로 만물 앞에 드러나시기 전
      아무에게도 인정받으신 적 없으시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으신 적 없으시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으신 적 없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오늘 당신이 구원받은 백성 되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무던히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당신의 조급함 때문에 
      오늘 어리석고 비겁한 선택을 한다면
      영원한 후회로 가슴을 치게 될 것입니다

      그저 그러려니...하고 기다리세요.세상만사는 다 때가 있는 법이랍니다
      "천하에 범사가 다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절 말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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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는 사모 수칙 10훈(訓)

      부제: 내가 눈물로 터득한 노하우/ 최송연 

       

               

      1. 기도를 게을리 마라.
      기도를 많이 하는 사모가 섬기는 교회는 언제나 부흥한다.
      그것은 어떤 역경이 와도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담대한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을 받기 때문이다.

       

      2. 말씀을 많이 읽어라.
      성도들은 목사님뿐만 아니라 사모도 성경 박사이기를 원한다.
      평소에 꾸준히 읽어두면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설명해 줄 수가 있다.

       

      3. 좋은 어머니가 되라.
      문제 부모가 문제아를 낳는다는 말은 목회자 가정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님을 알라.
      비뚤어진 자녀가 있는 목회자 가정은 모두는 아니지만
      대개 그 부모의 신앙인격이 이중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고 부모, 특히, 집에서 어머니가 올바른 신앙관점으로
      자녀를 훈계로 양육하면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
      설사 잠시 빗나간다 해도 다시 되돌아 온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4. 목사님을 잘 내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임을 명심하라.

       목사직은 영적인 일로서 우리의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책이다.
       따라서 사모가 그의 건강 관리도 잘 해주어야 하지만 때로는 그의 애인도 되어주고
       (사탄이 틈타지 못하게) 때로는 친구도 되어 주어야 하며 때로는 야당이 되어
       비뚤어진 길을 가지 못하게 따끔한 충고도 서슴지 않고 해 줄 수가 있어야 한다.

       

      5. 교회 일에 간섭하지 마라.
      헌신이란 이유로, 개척교회란 이유로 사모가 교회 안에서 동분서주하는데
      그것은 성도들을 길러내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
      재능이 많은가? (피아노 혹은 꽃꽂이) 내가 직접 하려 하지 말고
      조금 부족해도 성도들 중에서 그 일을 하게 하라. 그것도 안 되면
      가능성이 있는 성도를 택해서 무료 개인지도를 시켜서라도 그들이 하게 하라.
      일꾼이 없는가? 그래도 사모는 앉아 있으라 그러면 주께서
      적재적소에 적당한 일꾼을 보내심을 깨닫고 놀랄 것이다.

       

      6. 돈을 사랑하지 마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그 어떤 명분으로도 투기성 투자는 사모가 할 일이 아니다.

      7. 매력적인 사람이 되라.
      굳이 사모가 아니더라도 너무나 화장이 짙거나 사치스러우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하물며 사모이랴. 또 너무나 남루하게 하고 다녀도 궁상맞아 역시 보기에 좋지가 않다.
      외모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단정히 하고 무엇보다 속 사람( Inner person)을 강건히 하라.
      지식과 교양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눔으로 잘 다듬어지면
      반드시 ‘고운 우리 사모님’이란 칭호와 함께 여자 성도들의 사랑과 신망을 받게 된다.

       

      8. 지식과 정보에도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라.
      많은 교양서적 들을 읽고 가능하다면 적어도 한 가지 외국어 정도는 능통하도록 노력하라.
      특히 이민목회자의 가족이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면 성도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존경보다는 멸시가 뒤따르게 된다.

       

      9. 구제에 힘쓰라.
      구제를 많이 하되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리하면 주께서 후히 갚아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10.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라.
      여자 성도들의 매서운 입씨름에 말려들지 않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면 원수까지라도 용서해 줄 수가 있다.

       

       사모가 가장 참기 어려운 때가 바로 누명을 쓰거나
      억울한 말을 (대개 상처가 많은 사람이 사모에게 상처를 주려고 만들어 내는 말들로서
       신빙성이 없는 소리들이다.)들었을 때 자기의 결백함을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때가 바로 사탄에게 칼을 넘겨 주게 되는 때임을 깨닫고 결코 분노하거나
      또는 말질하는 사람들에게 하소연이란 명분으로라도 말을 쏟아 놓아서는 안 된다.


      잠잠히 주님만 바라고 참고 있노라면 반드시 주께서 일어나 도와주신다.
      그렇게 되면 시험의 물결은 곧 잠재워지게 되고 오히려 그런 사모가 신뢰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면 억울하고 분한 소리를 액면 그대로 받게 되고
      그때 자신이나 목사님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교회가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된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장10절 하반절 말씀)

                                                                                                                                                             
      글: 최송연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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