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산다는 것

                         최송연

이 세상에

사랑이 없노라

말하지 말게 하소서 

사랑은 내 안에 있는 것

 

그대를

사랑하노라

입으로 말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은 희생이 따르는 것

 

사랑은

말이 아닙니다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병든 이를 찾아가는 발걸음

소외된 자를 다독이는 손길

 

그리고,

내게 악을 행한 사람마저

용서로 품어 안는

넓고 큰 가슴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나를 사랑하셨듯...


 


 


 


 


 

                    

     

 

 

 

 

 사랑하며 산다는 것

                         최송연

이 세상에

사랑이 없노라

말하지 말게 하소서 

사랑은 내 안에 있는 것

 

그대를

사랑하노라

입으로 말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은 희생이 따르는 것

 

사랑은

말이 아닙니다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병든 이를 찾아가는 발걸음

소외된 자를 다독이는 손길

 

그리고,

내게 악을 행한 사람마저

용서로 품어 안는

넓고 큰 가슴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나를 사랑하셨듯...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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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주 로완 카운티의 법원서기 킴 데이비스
법원 "증명서 발급 약속하면 석방"…다른 서기들은 5일부터 발급키로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에도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미 켄터키 주(州)의 법원 서기가 결국 법정구속됐다.

켄터키 주 연방지법의 데이비드 버닝 판사는 3일(현지시간) "법원은 이번 사안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온 로완 카운티의 법원서기 킴 데이비스(49·여)에 대해 연방법 위반 및 법정 모독 등의 이유로 법정구속을 명령했다.

데이비스는 버닝 판사의 명령 직후 곧바로 교도소에 수감됐다.

다만 버닝 판사는 데이비스가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증명서를 발급하겠다고 약속하면 석방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데이비스의 변호인단은 법정구속 대신 벌금형을 내려야 한다고 맞섰으나, 버닝 판사는 벌금형으로는 데이비스의 의지를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해 구속한다고 설명했다.

데이비스는 그동안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며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왔고 이날 버닝 판사 앞에서도 "내 양심에 어긋나기 때문에 동성 커플에 결혼 증명서를 발급하라는 명령에 따를 수 없다"고 버텼다.


데이비스는 이날 20분간의 법정 진술에서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여러분은 당신의 가슴과 영혼에 있는 어떤 무엇과 자신을 분리할 수는 없다"며 결혼증명서 발급 거부가 자신의 '종교적 양심'에 따른 결정임을 강조했다.

이날 법정 밖에서는 동성결혼 찬반 양측에서 각각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데이비스는 지난 6월 말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이 나온 후에도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약 4년 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데이비스는 오랫동안 법원서기로 재직한 자신의 어머니 밑에서 부서기로 일해 오다 지난해 11월 선거에 출마해 법원서기에 당선됐다.

다만 데이비스와 같은 법원에서 일하는 다른 5명의 법원 서기는 4일부터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명서를 발급하겠다고 약속했다.

sims@yna.co.kr

 


朴 대통령, 도우미 아줌마가 전하는 퇴근 후 일상생활 

 


새벽 기상해 자료읽고 웹서핑

 삼성동서 가사 돕던 도우미가 관저 출퇴근하며 식사 준비,

 점심은 수석들과 본관서… 오후 6시 정시 퇴근후에도 업무

 

 

 

<동생 지만씨의 아들인 조카
세현(8)>

 

 

'오전 9~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박근혜 대통령은
자동차로 3~4분 걸리는 관저(숙소)와 본관(집무실)
사이의 도로를 하루 한 번 오가는 것 외에
다른 동선(動線)이 없을 때가 다반사다.


그는 '아침형' 인간이다.
지난 15년간 매일 새벽 4시30분쯤이면
눈을 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에 와서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참모들이 올린 각종 보고서와 자료를 읽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반대 진영의
독설(毒說)이 담긴 인터넷 댓글도 챙겨 읽는다.
그는 1974년부터 5년 넘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동안
아침식사를 주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단둘이 먹으며
'지도자 수업'을 받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독신인 박 대통령에겐 식탁에 마주 앉을 가족이 없다.
관저로 출퇴근하는 '삼성동 아줌마'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삼성동 아줌마'는
박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에서
수년간 일했던 가사 도우미다.

 

 

맵고 짠 음식을 싫어하고 채식을 즐기는

 

박 대통령의 식성과 생활 습관을 잘 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본관 도착 시간은 오전 9~10시인데,
관저에서 하던 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통 오전 7시 30분에 출근했던 것과 비교하면
청와대 시계가 2시간쯤 늦춰진 셈이다.
박 대통령 주재 수석회의도 대개 오전 10시에 잡힌다.

 

 

 

낮 일정은 빡빡하게 돌아간다.
접견실에서 외부 인사를 만나거나
수시로 수석들을 호출해 보고를 받는다.

 

이번 주부터는 매일 업무보고를 챙기기 시작했다.
외부 일정이 없으면 점심은 본관에서 해결한다.
 
본관에도 주방시설이 갖춰져 있고 요리사도 배치돼 있다.

 

점심을 함께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다르다.  

수석들과 먹을 때도 있고 외부 사람을 부를 때도 있다.
물론 비공개다.

지난 정부 때까진 VIP(대통령)가 식사를 하면
언제나 곁을 지키는 총무기획관실 소속 행정관이 있었다.
 
청와대에 오래 근무한 이들은
이 남자 행정관을 우스갯소리로
'감식관(鑑食官)'
또는 (왕이 먹는 음식에 독이 있는지를 살피는)
'기미상궁'이라 부르기도 했다.
 

 

19년간 청와대에 근무했다는 이 행정관은
최근 그만뒀고 따로 충원하진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오후 6시쯤 관저로 '칼 퇴근'한다.
관저의 총넓이는 6093㎡(1843평)이다.

 

도배와 인테리어를 바꾸고
삼성동 자택에서 쓰던 가구와 물건들도 옮겨 놓았다.

저녁식사는 혼자서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삼성동 아줌마'가 퇴근하면
경호원과 여직원이 대기하고 있지만
편하게 말 붙일 사람은 없다.

 

밤에도 올라오는 상황 보고를 챙기고
수석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대통령의 업무는 계속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다시 들어온 직후
"내부가 너무 달라졌다"고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스케이트를 타던 연못이 없어졌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피붙이는
동생 지만씨의 아들인 조카 세현(8)이다.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공식 회의를 중단하고 나갔던 게
2005년 세현이가 태어났을 때다.

 

아직 지만씨 부부와 조카를
청와대에 불렀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청와대 인사들은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박 대통령이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이 너무 바빠서
외로울 시간도 없을 것"이라는 참모도 있다.
박 대통령은 평소 개인적인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조카인 박세현 군에게는 따뜻한 고모다.
사진은 박 후보가 박세현군을 안고 있는 모습

◆또 다른 발전의 기회

우리는
익숙해진 생활에서 쫓겨나면 절망하지만,
실제는
거기서 새롭고 좋은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행복이 있다.

- 톨스토이 -

지금의 안위가 최고라 여겨지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상태로 유지되거나
아니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대부분의 마음일겁니다.
하지만
일상은 반복 속에서도 변화하고
때로는 전복되는 것이어서
불안은 가중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변화가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되고
또 다른 발전을 가져오는 기회라고
달리 생각하면
피할 일만은 아닙니다.
기회는
문을 여는 사람에게만 얼굴을 보여주니까요.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All script-x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성경대로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성경의 영감을 믿을 것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문자들을 써서 단어들로 기록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말로 영감(inspiration)은 ‘숨을 불어 내어 쉬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내어 쉬셨음’을 뜻합니다. 영어 ‘inspiration’에서 중간에 있는 ‘spir’는 영을 뜻하는 ‘spirit’에서 나왔습니다. 또 앞의 ‘in’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의 영이(숨이) 들어갔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에 숨을(혹은 영을) 불어 넣으셨을까요? 그분은 ‘모든 성경 기록’에 그리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완전한 성경 기록의 모든 단어에 자신의 숨을 불어 내심으로써 그 단어들이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이것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단어)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히4:12-13).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 과정이 과거에 몇 차례 있었느냐, 또 지금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감이 과거에 한 차례만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있었을까요?
 
즉,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아니면 사본의 단어들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떤가요? 그것들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이 영감 과정이 과거에만 있었을까요? 아니면 현재에도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여러 사람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딤후3:16에 나오는 영감이 자필원본의 단어들을 기록할 때에 사용된 영감이라는 점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히브리말(약간의 아람어)로, 신약성경은 그리스말로 나왔습니다. 그 단어들을 인간 기록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분명히 처음에 원본 성경 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로 단어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 차례 자필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기록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보존하십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완벽하게 보존되면 그 성경은 사본이든 역본이든 자필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않거나 잘 표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입에서 영어로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와서 인간 기록자가 완벽하게 기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필 원본: I am a boy.
 
자, 시간이 지나면서 ‘I am a boy.’가 담긴 자필 원본이 해어져서 어쩔 수 없이 사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어떤 사람이 이것을 정확하게 다른 사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본: I am a boy(필사자와 필체는 다르지만 네 단어는 정확하게 같음).
 
자필 원본의 ‘I am a boy.’는 딤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자필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놓은 사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보존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만 둘이 정확히 일치하므로 원본과 사본은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과거의 유대인들은 피땀흘려가며 구약의 히브리 성경을 처음의 원본과 동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 밀러(H. 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에는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습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줄에서 60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 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은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의 말씀이 아니고 필사본의 말씀이었지만 그것을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우리 주님은 사본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에 있는 필사본 두루마리가 곧 원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 안에 있는 구약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바’(it is written)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사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원본만 옳았다면 ‘it was written’으로 과거 시제로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의 현재형은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뜻하는 현재형입니다.
 
또한 ‘모든 말씀’(every word)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이(단어가) 보존되지 않은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 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음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자, 그러면 번역본은 어떨까요? 자필 원본을 그대로 동일하게 베껴 쓴 사본의 ‘I am a bo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번역본: 나는 소년입니다(참고로 우리말은 존칭이 있으므로 ‘나는 소년이다’, ‘저는 소년입니다’도 다 맞는 번역임).
 
하나님의 입에서는 분명히 처음에 ‘I am a boy.’가 나왔고 인간 기록자는 그것을 원본에 기록하였으며 이 네 단어는 사본에 그대로 정확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이 보존된 사본에서 정확하게 ‘나는 소년입니다.’라는 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역본도 최초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지닐까요? 물론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역본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100%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역본의 단어들 역시 사람을 살리며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성경이 완성된 뒤로 실제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다 역본이었습니다. 즉 AD 100년 이후에는 원본이나 사본의 시대가 아니라 역본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역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역본)에 하나님의 숨이 없다면 그것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역 성경의 단어들이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감은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이 기록될 때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이 정확하게 필사되었고 그 필사본에서 지금의 역본이 정확하게 나왔으면, 지금의 역본에도 하나님의 모든 단어가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봅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보존한 사본의 원어들에서 나왔습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이러한 사본에는 성경 기록 필사본, 성경 기록을 담고 있는 성구집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사본의 모든 단어를 가능하면 1 대 1 대응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원어의 문장의 구조까지도 영어로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당연히 언어의 차이로 인해 무언가를 첨가해야만 합니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다시 딤후3:16을 보도록 합시다.
 
All script-x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is]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자들이 번역을 위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is]가 없어도 말이 되지만, 영어에서는 [is]가 없으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역자들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자들은 정직하게 이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원래 원본에 없었으나 번역을 위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두 개의 [is]를 제외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사본)을 있는 그대로 영어의 구조 안에서 가능한 한 1 대 1 대응이 되게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식적 일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번역되었기에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해서 이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세상에 수많은 성경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거의 완벽한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611년 이래로 이 성경에 복을 주셔서 이 세상 모든 교회와 신학교의 교리, 신앙신조 등을 정리하며 5대양 6대주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수백 개 나라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표준 잣대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에서 향상된 계시’ 혹은 ‘원본보다 더 좋은 계시’ 혹은 ‘영감을 받은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원본보다 더 좋은 역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가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형식적 일치를 통해 정확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원본이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부를까요?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향상된 계시’의 한 예로 행12:4를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가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로 끌어내려 함이더라(행12:4).
 
And when he had apprehended him, he put [him] in prison, and delivered [him] to four quaternions of soldiers to keep him; intending after Easter to bring him forth to the people.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여기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번역하였습니다. 루터 성경 같이 바른 본문에서 나온 성경들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성경 중에 유일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이것을 ‘이스터’라고 바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므로 이 성경은 원본을 뛰어넘으며 그래서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거나 영어 성경의 단어들도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이중 영감설’을 펴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사람이 피터 럭크맨(Peter Ruckman)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거나 이중 영감을 받으려면, 원본에 없던 무언인가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있어야만 합니다.
 
자,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스터’라고 번역한 그리스말이 원어에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데 영어 성경이 그것을 번역해서 집어넣었다면 그것은 첨가이고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터’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파스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말 파스카는 명절의 경우 크게 둘을 뜻합니다. 하나는 유월절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터’(이교도들의 부활절 축제)입니다. 파스카는 Oxford English Dictionary에도 정확하게 이 두 개의 명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파스카는 이 둘 중 하나로 번역될 수 있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행12장의 때가 이미 무교절 기간이라 유월절은 지났으므로 무교절 다음에 오는 이교도들의 부활절인 ‘이스터’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나 딤후3:16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100% 보존된 바른 사본의 단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입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처음에 원본이 주어졌을 때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 중 원어들을 담은 사본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전도서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선포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킹제임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것이 헛되어 영을 괴롭게 한다.”(vexation of spirit)고 전도서에서 무려 10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것을 전적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바람을 잡는 것’(grasping of the wind)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 혹은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루아흐’입니다. 이 경우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대본이 된 원어 성경의 원어가 동일하므로 이 같은 차이가 생긴 데 대해 원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자가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전도서의 문맥상 어느 번역이 맞을까요? 우리는 전도서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한 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어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도서 기자는 마무리를 하면서 12장 13절에서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영의 문제지 결코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바람을 붙잡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번역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번역이라고 믿으며 이런 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결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본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서는 안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해서 하나님의 단어들을 이방인들의 공통 언어로 보존한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반드시 다음의 글을 읽고 진술을 수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편 진영에서 무식하다고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원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본이 최종 권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간에 우리가 원본의 모든 단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최종 권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루아흐’, ‘하데스’ 등의 원어들은 다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원어들만으로는 최종적인 표준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providence)라는 돌보심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인도하셔서 각각의 원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하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본의 모든 단어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번역되어야만 맞는다고 믿습니다.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를 택하셔서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은 원본의 원어들의 뜻을 이 세상 문학가나 철학자의 글을 통해 전달하려고 합니다. 원어 사전들의 저자들 가운데는 불신자가 많으며, 심지어 쎄이어(J. H. Thayer) 같은 이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금의 번역본 시대에 하나님의 원어 단어들을 100% 정확하게 옮긴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1 대 1 대응이 되게 형식적 일치를 유지하면서 정직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교리와 특징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당연히 주장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딤후3:17의 진리가 흠정역 성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한편 ‘I am a boy.’를 ‘나는 소년입니다.’로 하지 않고 ‘나는 아이입니다.’로 하면 반만 맞습니다. 아이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 대 1 대응을 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나는 한 소년입니다.’로 하면 우스운 번역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아무도 이런 말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창1:1)라는 말씀을 ‘그 시작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하고는 이 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입니다.
 
‘In the beginning’은 관용구로서 ‘처음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 처음(시작) 안에서’로 번역하는 것은 영어와 우리말을 망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머릿속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영감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정관사, 부정관사를 번역할 때 수용 언어(한국어)의 용례를 무시하고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가 아니며,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원본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형식적 일치를 취하면서 정확하게 번역하여 그대로 보존한 성경, 이것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처음에 원본이 주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100% 그대로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결코 100%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며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8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느니라. 오직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행하시느니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그 일들로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7-11).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빌립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비록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인격체이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행동,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100%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알지 않은 아버지 하나님은 다 거짓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우리는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혹은 원본이 우월하다고 하거나 그런 주장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을 통해 보거나 아는 아버지만이 참 하나님이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보는 원어의 뜻만이 옳은 뜻입니다. 이 외에는 다른 데서 옳은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버지보다 우월하지 못합니다. 요10:30에서 아들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온전히 전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원본의 원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완전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지난 400년간 수백 개의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바른 교리를 깨달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배도의 때에 마귀가 세상 무대에 등장해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변개된 성경의 등장이 필수 요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귀라 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의 변개일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이집트에서부터 이 사악한 일을 주도하였고 주후 200년을 넘기면서 그 일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역본들은 한결같이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만을 번역의 대본으로 쓰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바른 개념을 정립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비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바른 성경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성경 신자들을 많이 불러주시고 이들로 하여금 바른 교회를 세우게 하셔서 많은 혼들을 수확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DSJ

출처: Keep 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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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미주리(Missour)주,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미용실,
      그날따라 많은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마다 하나같이 삭발을 요구했습니다.
      손님들은 50여 명 정도가 출석하는
      작은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미용사는 이상한 광신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성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암으로 투병 중이었습니다.
      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마친 소녀가
      교회를 나오지 않자,
      목사와 몇몇 교인들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밀어버린 머리 때문에
      창피해 외출을 못 한다는 소녀.

      목사와 교인들은
      모두 머리를 깎기로 했습니다.

      이 사연을 듣고 감동한 미용사는
      방송국에 연락했습니다.

      여중생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주일날, 엄마는 소녀를 간곡히 설득하여
      모자를 씌워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교회 문을 연 순간,
      모든 교인의 빡빡머리를 본 소녀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 상황을 중계하던 리포터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백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 교회를 나가게 된다면
      이런 교회를 나가고 싶습니다.”

      방송을 보던 많은 사람들...
      역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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