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담은 이 글에
20, 30대 네티즌들은 <우리 세대의 가벼움>을 반성하게 됐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며 공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의 김충배 교장이
생도 교육에 사용해 그동안 ‘육사교장의 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작성자는 예비역 장성인 김유복(金遺腹·79)씨.
그가 로터리코리아(한국로터리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은
“60대를 수구 골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 보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1(65.3.24) 청와대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강당에 입장하시는 박대통령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광부들의 숙소 방문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행사도중 눈물을 닦으시는 육여사님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1964.12.9) 수상관저 (사진 가운데 분이 백영훈 통역관)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뤼브케 대통령(70세)과 박대통령(47세) 의장대 사열

                             (서독 본 도착)                             

                       

***박정희 대통령song***



**   겨레 의 영웅**

  송만기/작사,곡, 노래

   

오천년의 가난한 나라가 부자나라 되었다네


힘들게 살아왔던 우리조상이 너무도 안타까워

 

가발장사 하면서 외화를 벌었고 간호사 광부가 피땀흘렸네


세계에서 꼴찌하던 우리나라가 세계의 10대강국

 

*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국민은 잘사는 나라를 만들었네


 

울려퍼지는 새마을 노래 새벽종이 울렸네

 

1,박정희 박정희대통령 우리를 가난에서 구해준 은인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 겨레를 구원한 지도자

 

2,박정희 박정희 대통령 한강의기적을 일궈낸영웅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 우리는 그를 사랑해

 

오천년의 가난한 나라가 부자나라 되었다네


겨레의 영웅과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부자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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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날의 유래 (parents' DaY)  

190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란
소녀가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았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느날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다.
소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엄숙히 치르고
그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카네이션 꽃을 심었다.
그리고 항상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소녀는 어느 모임에 참석하면서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나갔었다.
보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소녀는 대답하기를
어머님이 그리워 어머니

산소에 있는 카네이션과 똑같은
꽃을 달고 나왔다.
라고 말하였다.

안나는 그후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을 벌여 1904년에 시애틀에서
어머니날 행사가 처음 개최되었다.

그리하여 이 날에는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은 자기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미국에서는
1913년 이래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고,
점차 전세계적으로 관습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버이 날로 정하였으며
그뒤 1972년에 명칭을 어버이날로 바꾸어
국가적인 행사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 기념해 오다가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공포되면서 1974년부터
'어버이날'로 변경되었다.





 카네이션 꽃말

카네이션 꽃말 - 열열한 사랑

빨간색(어버이 날) - 건강?비는 사랑
분홍색 - 당신을 열애합니다. 거절
노란색 - 당신을 경멸합니다.
흰 색 - 나의 애정은 살아있습니다.
흰색(어버이날) - 죽은 어버이를 슬퍼하다.
혼합색 - 사랑의 거절


출처: 서춘웅 목사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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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1905년 6월 21일 - 1980년 4월 15일),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였다.




생애



사르트르는 1905년 해군 장교의 아들로 파리에서 태어나다. 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사망하므로서 어머니와 함께 10살이 될 때까지 엄격한 외할아버지 샤를 슈바이쩌 (Charles Schweitzer) 집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다. 이 시절에 사르트르는 타고난 근시와 사팔 그리고 외가집의 낮설음으로 인하여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고 자서전에서 쓰고 있다. 1915년 파리의 명문교 제 4 앙리 리세 (Lycée Henri IV)에 입학한다. 2년 후 1917년 어머니가 재혼하자 사르트르는 낮선 외가집을 떠나 라 로세이의 의붓아버지 집에서 살면서 그 곳의 학교로 전학한다. 1922년에서 2년 동안 파리의 루이 드 그랑 학교에서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École Normale Supérieure, 인문 고등사범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반을 다닌 후,19254년 합격하여 에콜 노르말에 입학하여 심리학, 철학, 사회학을 전공한다. 여기에서 후에 사르트르의 반려자가 되는 시몬 드 보브와르 그리고 레몽 아롱메를로 퐁티를 사귀게 된다. 1929년 에콜 노르말을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며, 같은 해 11월 군에 입대하여 기상 관측병으로 18월간 복무한다.

제대한 후 파리와 파리 근교의 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한다. 1932년 베를린 프랑스 문화원의 강사로 있던 아롱으로부터 처음으로 후설현상학에 관해 듣게 되며 (1929년 후설이 파리의 소르본느대학에서 한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다음 해에 프랑스 문화원의 장학생으로 베를린으로 유학하여 현상학을 좀 더 깊이 연구 한다. 파리로 돌아와 다시 교편 생활을 하면서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936 소설 구토를 출판하므로서 문학계에 널리 알려진다. 제2차 세계대전1940년 독일군에 포로되어 지금까지 해명되지 않은 연유로 탈출하여 파리로 귀향한다. 1943년에 존재와 무를 내놓아 철학자로서의 지위를 굳히게 된다. 그리 활발하지 않는 레지스탕트 활동을 하면서 당시 레지스탕트에 적극적인 알베르 카뮈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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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고보
처음으로 우리가 만날 순교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이다.
그는 요한의 형제이며, 예수님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와 마리아는 종자매이다).
그의 순교는 스테판이 죽은 후 약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이는 헤롯 아그립파가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자마자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을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매서운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2. 빌립
그는 갈릴리 벳새다에서 태어났으며
최초로 "제자"로 불린 사람이다.
그는 북아시아에서 신실하게 주를 섬겼으며,
프리기아의 헤리오폴리스에서 순교당했다.
그는 채찍에 맞았으며, 감옥에 갇힌 후 A.D. 54년에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3. 마태
마태는 세리였으며, 나사렛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티아와 에디오피아에서 사역을 하였고,
에디오피아에서 박해받았으며 A.D. 60년 나다바에서
미늘창으로 살해당하였다.

4. 작은 야고보
작은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기도 하다.
94세 때 그는 유대인들에게 구타당하고 돌로 맞아,
결국 뇌에 손상을 입고 순교했다.

5. 맛디아
맛디아는 다른 대부분의 제자들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명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돌매질을 당하였으며
후에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했다.

6. 안드레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이며,
많은 아시아 국가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에데사에에서 붙들려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는데,
땅에서 십자가의 두 끝을 수직으로 못박혀 죽었다.

7. 마가
마가는 레위 족속의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의 우상인
세라피스를 기리는 웅장한 종교 의식을 할 때 순교당하였다.
그는 무자비한 처형 방법으로 몸이 찢기며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8. 베드로
다른 많은 성도들 가운데서 복받은 제자인 베드로는
죽음을 선고받아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제롬은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는 머리가 땅으로, 다리가 위를 향하는 자세로,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는 이렇게 주님과 같은 자세로 죽을 만큼
자신이 고귀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9. 바울
처음에는 사울이라 불렀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숭고한 희생과 말할 수 없는 수고를 치룬 후,
역시 네로의 박해 아래서 순교하였다.
압디아스는 진술하기를, 네로가 바울에게 처형을 선고하기 위하여
그의 병사 네레가와 파테미우스를 보냈다고 한다.
그 두 병사는 바울에게 오면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바울이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소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곧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의 무덤 가에서 침례받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에 그 병사들은 바울을
마을 밖 사형 집행장으로 끌고갔으며,
그곳에서 바울은 기도를 마치고 칼에 목이 베여 순교당했다.

10. 유다
야고보의 형제이며 다대오로 불렸다.
그는 A.D.72년 에데사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11. 바돌로매
바돌로매는 여러 나라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잔인하게 폭행당하였으며,
포악한 우상 숭배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12. 도마
도마는 디두모라고 불리며, 파티아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고, 이곳에서 이교도 제사장들을 격노케 하였다.
그래서 그는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죽었다.

13. 누가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이며 복음 전파자이다.
그는 바울과 함께 많은 나라에서 선교하였으며,
그리스의 우상 숭배 제사장들에 의하여
올리브 나무에 목이 매달려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4. 시몬
시몬의 다른 이름은 젤로이다.
그는 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영국에서도 선교하였다.
A.D. 74년에 그는 영국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15. 요한
이 "사랑받는 제자"는 큰 야고보의 형제이다.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명령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피해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도미티안은 그를 팟모 섬으로 추방하였고,
요한은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도미티안이 후계자인 네르바가 요한을 재송환하였다.
그는 사도들 중에 유일하게 참혹한 죽음을 피한 사람인 셈이다.

16. 바나바
바나바는 사이프러스 출신이며, 유대인 자손이다.
그는 약 A.D. 73년경에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모든 박해와 끔찍한 처형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매일 성장하였고, 사도들과 사도직분을 수행했던
형제들의 가르침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으며,
그 위에 성도들의 피가 풍성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무려 7명의 제자들이.. 그 끔찍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것은..
성령의 능력.. 주님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내가 죽어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죽으라 !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매..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한 영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 분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1. 야고보
처음으로 우리가 만날 순교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이다.
그는 요한의 형제이며, 예수님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와 마리아는 종자매이다).
그의 순교는 스테판이 죽은 후 약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이는 헤롯 아그립파가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자마자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을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매서운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2. 빌립
그는 갈릴리 벳새다에서 태어났으며
최초로 "제자"로 불린 사람이다.
그는 북아시아에서 신실하게 주를 섬겼으며,
프리기아의 헤리오폴리스에서 순교당했다.
그는 채찍에 맞았으며, 감옥에 갇힌 후 A.D. 54년에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3. 마태
마태는 세리였으며, 나사렛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티아와 에디오피아에서 사역을 하였고,
에디오피아에서 박해받았으며 A.D. 60년 나다바에서
미늘창으로 살해당하였다.

4. 작은 야고보
작은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기도 하다.
94세 때 그는 유대인들에게 구타당하고 돌로 맞아,
결국 뇌에 손상을 입고 순교했다.

5. 맛디아
맛디아는 다른 대부분의 제자들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명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돌매질을 당하였으며
후에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했다.

6. 안드레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이며,
많은 아시아 국가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에데사에에서 붙들려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는데,
땅에서 십자가의 두 끝을 수직으로 못박혀 죽었다.

7. 마가
마가는 레위 족속의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의 우상인
세라피스를 기리는 웅장한 종교 의식을 할 때 순교당하였다.
그는 무자비한 처형 방법으로 몸이 찢기며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8. 베드로
다른 많은 성도들 가운데서 복받은 제자인 베드로는
죽음을 선고받아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제롬은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는 머리가 땅으로, 다리가 위를 향하는 자세로,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는 이렇게 주님과 같은 자세로 죽을 만큼
자신이 고귀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9. 바울
처음에는 사울이라 불렀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숭고한 희생과 말할 수 없는 수고를 치룬 후,
역시 네로의 박해 아래서 순교하였다.
압디아스는 진술하기를, 네로가 바울에게 처형을 선고하기 위하여
그의 병사 네레가와 파테미우스를 보냈다고 한다.
그 두 병사는 바울에게 오면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바울이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소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곧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의 무덤 가에서 침례받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에 그 병사들은 바울을
마을 밖 사형 집행장으로 끌고갔으며,
그곳에서 바울은 기도를 마치고 칼에 목이 베여 순교당했다.

10. 유다
야고보의 형제이며 다대오로 불렸다.
그는 A.D.72년 에데사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11. 바돌로매
바돌로매는 여러 나라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잔인하게 폭행당하였으며,
포악한 우상 숭배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12. 도마
도마는 디두모라고 불리며, 파티아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고, 이곳에서 이교도 제사장들을 격노케 하였다.
그래서 그는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죽었다.

13. 누가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이며 복음 전파자이다.
그는 바울과 함께 많은 나라에서 선교하였으며,
그리스의 우상 숭배 제사장들에 의하여
올리브 나무에 목이 매달려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4. 시몬
시몬의 다른 이름은 젤로이다.
그는 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영국에서도 선교하였다.
A.D. 74년에 그는 영국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15. 요한
이 "사랑받는 제자"는 큰 야고보의 형제이다.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명령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피해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그 후 도미티안은 그를 팟모 섬으로 추방하였고,
요한은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도미티안이 후계자인 네르바가 요한을 재송환하였다.
그는 사도들 중에 유일하게 참혹한 죽음을 피한 사람인 셈이다.

16. 바나바
바나바는 사이프러스 출신이며, 유대인 자손이다.
그는 약 A.D. 73년경에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모든 박해와 끔찍한 처형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매일 성장하였고, 사도들과 사도직분을 수행했던
형제들의 가르침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으며,
그 위에 성도들의 피가 풍성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무려 7명의 제자들이.. 그 끔찍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것은..
성령의 능력.. 주님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내가 죽어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죽으라 !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매..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한 영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 분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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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책 욕심에서 시작된 "체험 후기" 작성 영역이, 본의 아니게 "황토 천일염"이나 "벤토나이트 스킨케어"와 같은 다양한 물품들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분야나 주제에서 비켜 선, 의무감에서 쓰는 글이기 때문에, 부담도 많이 되고 사실 고통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위 후기 글을 읽은 이웃 블로거, 레이먼님께서 농담을 던져놓고 가셨습니다. 물론 어림도 없습니다. 낯 부끄럽도록 분에 넘치는 과찬이십니다.

     " 초하님은 리뷰분야에서는 완전히 달인입니다. 존경합니다."

   또한 이번 "
나눔 마당(2)" 러시아 국립푸시킨 미술관을 초청한 "서양미술 거장전, 렘브란트 전시회"의 안내 책자(3권)를 제공해주셔서, 제게 용기도 불어 넣어주시고, 한층 더 풍부한 나눔으로 만들어주셨던 BlogIcon 2Proo님께서는 아예 이렇게 대놓고 놀리기도 하십니다.

    "
아니... 리뷰 조차도 박사학위 받으셔도 되겠네. 흐미~"

   물론 따듯한 이웃지기님들임을 감안해서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해도, 실제 제 글 실력에 비하면 낯 뜨겁도록 더없이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그 사소한 배려와 애정 속에, 물론 고래처럼 춤추게 만드는 마법이 숨어 있음을 실감하며, 그래서 또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있을가

   위 레이먼님이나 2Proo님처럼, 저 역시 제 "
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블로그에 글 하나하나 작성하여 올릴 때마다, 매번 같은 고민을 하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쉬운 글'을 쓸 수 있을가, 어떻게 하면 '짧게 정리된 글'을 쓸 수 있을가, 어떻게 해야 '읽기 편한 글'이 될 수 있을가, 그리고 디지털 화면으로 보는 글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편집해야 조금이라도 '눈에 부담이 덜한 글'이 될 수 있을가." 대부분의 블로거(blogger)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매 순간순간 하는 고민입니다.

   미국의 모 방송사가 하버드 대학의 우등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질문 내용은 “지금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
?”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질문에 응답한 많은 학생들이 “글을 잘 쓰면 좋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두뇌라고 불리는 하버드 대학 수재들의 소원이 "글쓰기 능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리포트 내용이 훌륭해도 그것을 정리하여 전달하는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본래의 내용을 알 수 없을 뿐더러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MIT에서는 글을 잘 썼던 학생들이 졸업한 뒤에도 성공한 사례가 많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제 "글쓰기"는 학문적인 의미를 넘어 성공의 기회를 넓혀주는 기술로서 부각되고 있습니다.

   저도 요즈음 "글쓰기"와 관련한 3권의 책을 주문하였는데, 조금 늦은 오늘 그 책들을 받았습니다. 그 제목만 정리하면, 바바라 에버크롬비(Barbara Abercrombie)의 "글 잘 쓰는 기술(2008, 브리즈)"과 장하늘"글 고치기 전략(2008, 다산초당)", 그리고 윌리엄 진서(William Zinsser)의 "글쓰기 생각쓰기(2008, 돌베개)"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숙제해야 할 책들도 물려놓은 채, 풋풋한 종이냄새와 함께 뒤적거리며 대충 훓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3권 가운데, 평생을 글쓰기(문장론) 연구에 헌신해 오신 장하늘 선생님의 책, "글 고치기 전략"에서 소개하고 있는 "문장력을 키우는 10가지 방법"을 중심으로 정리해, 글쓰는 우리들의 고민을 이웃지기님들과 함께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주제는 제가 이에 대한 전문가이거나 잘하고 있어서 쓰는 글이 절대 아니며, 한번 더 다짐하면서 저를 위해 정리하고자 하는 글임을 밝혀둡니다.

     글쓰기 능력(문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들

   장하늘이 이 "글 고치기 전략"에서 밝히는 글쓰기의 제1원칙은 "처음부터 잘 쓴 글은 없으며, 잘 고친 글"이 있을 뿐이라는 신념으로, 새로운 글쓰기 전략에 대해 고민한 좋은 책입니다. 심지어 2006년 3월에 초판이 간행되었는데, 불과 2년 조금 넘은 지난 2008년 10월에 초판 9쇄까지 발행한새 책을 지금 펼치고 있을 만큼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기초"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해 풍부한 예문과 친절한 해설로 간결하게 정리한 문장이 매우 돋보일 뿐만 아니라, 지은이의 글과 문장력이 곧 가장 좋은 본보기이자 모범이 되고 있는 책입니다. 마지막 9장, "알쏭달쏭 우리말"에서는주의해야할 표기법과 맞춤법, 띄어쓰기, 그리고 여러가지 문장부호까지 설명합니다. 분명 저처럼 글쓰기를 두려워 하는 많은 분들께 좋은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문장력을 키우는 10가지 방법"으로 들어갑니다. 첫 째, 어휘력이나 표현술(表現術)을 늘립니다. 그러려면 우선 글을 읽다가 눈이 번쩍 띄는 낱말이나 희한한 표현은 따로 적어두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또한 자신도 감동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아야 하며, 글을 쓰다가 막히면 꿈 속에서라도 물고 늘어질 만큼 갈구해야 합니다.

  둘 째, '메모'는 글솜씨를 향상시켜주는 보증수표입니다. 심지어 정보와 책의 홍수 속에서, 요즘 들어 맛깔나는 문장들을 발췌하여 이메일로 보내주거나 따로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또한 여러 번 소개했던 리드미님께서 "틈/메모"라는 목록을 따로 만들어 공개하는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명작의 뒤안길에는 반드시 '메모의 광주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메모'는 작문의 첫 관문인 글감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더불어 '메모'는 번득이는 순간적인 '영감'을 붙잡아 줍니다. 그러므로 메모의 대상은 우리 '생활의 주변' 모두가 해당되며, 무엇보다도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저와 같은 우리 이웃 블로거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 째, 애매한 말은 사전을 뒤지며 씁니다. '좋은 글'이나 '정확한 문장'은 정확한 언어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블로그의 오른 쪽 프로필 사진 밑, 사이드 바에 '표준국어대사전' 검색창을 달아 놓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사전'은 글 쓸 때의 절대적 필수품입니다. '사전'을 이용할 때 주의할 점은 낱말의 '사전적 의미'보다 '문맥적 의미'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써먹을 말이면, 붉은 줄을 치거나 노트로 만들어 메모해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리드미님처럼 하나의 메모 목록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넷 째, 모범이 될 만한 글이나 신문의 칼럼은 신중히 읽습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글'의 장점을 분석하고 그 글을 모방하며, 특히 '어휘'나 '표현술'에 유의하며 읽는 것입니다. 참신한 주제, 인상적인 화제, 변화 있는 구성, 운치 있는 표현은 글 쓰는 사람들의 영원한 꿈입니다.

  다섯 째, '글을 쓰고 고쳐보는 것'만이 작문의 왕도입니다. 자신이 쓴 글을 뜸을 들이고 되읽어 봅니다. 또는 장소를 달리해서 읽어 보거나 가능하면 제 3자에게 읽혀보는 것도 좋습니다.

   여섯 째, '설득의 기법'을 익혀둡니다.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구성하며, 쉽게 묻어갈 어휘나 표현을 쓰며, 튼실하고 구체적인 화제(소재)를 선택합니다. 더불어 재미있는 기교(수사법)을 활용하여 구사함으로써 쉽고 맛깔나는 문장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곱 째, 구체적인 실례를 머리에 그리면서 씁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임장감(臨場感)', 즉 녹음기나 라디오로 연주를 듣고 있는데도, 마치 현장에서 실제로 듣는 듯한 느낌처럼, 문장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구체적인 경험'이나 '실례'를 좋아합니다. 다시 말해서 독특한 경험이나 재미있는 화제는  독자들이 오래 기억합니다. 이론에 치우친 글은 어렵기만 하며, 전달의 효과도 없습니다.

   여덟 째, 소리내어 읽으면서 씁니다. 산문에도 가락과 흐름이 있으므로 부드럽게 읽힐 수 있도록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음독(音讀)을 하면 자기의 글을 독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게 되며, 여러 번 반복하여 음독하면 자기 글의 내용에서 편협되거나 자기 만족에 치우친 점을 반드시 발견하게 됩니다.

   아홉 째, 시간을 정해놓고 써봅니다. 모래시계처럼 잴 수 있는 기구를 이용하여 글 쓰는 시간을 정하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속도'는 가치있는 것이며, 이에 숙달하면 시간 제한이 있는 논술 시험이나 각종 시험에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또한 '후려쓰기(몰아붙여 쓰기)'에 숙달하면 글 쓰기의 순서, 요령이 몸에 베어 글 쓰기가 손쉬워집니다.

   열 째, 마지막으로 참고가 될 책세 권씩 삽니다. 필요하다고 여기는 쪽은 독서 카드나 메모 공책에 오려 붙이기 위한 것인데, 한 권은 짝수쪽 용으로, 한 권은 홀수쪽 용으로 활용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보관용으로 간직합니다. 복사비와 인건비, 소요 시간을 계산하면 사는 것이 쌀 수도 있습니다.


     글 쓰는 능력의 배양에 블로그를 활용하라

   이상으로 '문장력을 키우는 10가지 방법'에 대한 소개를 정리합니다. 사실 이 방법들은 잘 안되고 자꾸만 지연되기 일수인데, 개인적으로는 아홉 번째의 "'시간을 정해' 놓고 마라톤처럼 집중력을 발휘하여 쓰는 방법"을 꾸준히 집중적으로 활용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바로 열번 째에 소개한 글감 설명에 필요한 참고 서적으로, '같은 주제의 다른 책 3권을 가능하면 함께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주제에 필요한 비슷하지만 다양한 내용의 책을 최소한 3권은 들추어보고 참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주제를 다른 말로 풀어놓은 글들이 확실한 이해에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블로그를 새롭게 개설하여 글을 쓸 때에는, 동시에 검색을 통하여 무한대로 참고할 수 다는 긍정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블로그에 글을 써 올리는 것은 자신의 의사와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서로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자신의 글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며칠 전의 '초대권 공개 나눔마당'에서도 확인했던 것처럼, 블로그를 자신의 작가의 꿈을 위한 습작노트로 활용하고자 하는 분들이 예상보다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블로깅(blogging) 환경은 글 쓰는 능력을 배양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분명 도움이 됩니다. 성공의 밑거름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관련 글 : "블로그로 글 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을가 ?" - 초하(初夏)
                  "
[작문] 글을 쓰기 전엔 글감을 정리하라" - Steve Yang
                  "
효과적인 글쓰기를 위한 5가지 팁" - mun
                  "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 쓰기" - 지식과 상식 사이


출처: 쵸하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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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사도·선지자가 존재하는가?

                                             이승구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Wagner, Peter. et al. Pastors & Prophets (Colorado Springs, CO; Wagner Publications, 2000. 임종원 옮김. <목사와 예언자> 서울: 도서 출판 진흥, 2004. Pp. 141)


교회 성장학파의 대변자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피터 와그너(Perter Wagner)와 그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를 따르는 몇몇 저자들이 목사와 예언자의 건강한 관계를 규정하고 제시하려는 몇 편의 글을 담은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사도들과 선지자(예언자)들이 있다는 전제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런 전제 가운데서 이들 예언자들과 목회자들은 과연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답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와그너의 <사도들과 예언자들>1) 의 자매편으로 그 책과 성격을 같이 하며 와그너 교수의 그 동안의 관심과 노력의 방향을 잘 표현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 등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이 “예언자들과 예언 사역을 위한 영적인 규약(protocol)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집중하는 것”이며 “이 일을 멋지게 완수하여 예언을 믿는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 규약이 폭넓게 받아들여지도록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25). 그래서 와그너 등은 이 책에 ‘건강한 교회를 위한 규약’이라고 하였다. 와그너 교수와 이 일단의 저자들의 견해를 성경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주장 가운데서 그래도 성경적으로 지지할 만 하며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하고 후에 그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주장 가운데서 성경적으로 긍정적인 점들

와그너 등이 건강한 교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모든 이들과 함께 감사하게 생각한다(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건강한 교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 체계는 결국 성경적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9)는 와그너의 첫 말에는 모든 성경적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할 것이다(그러나 후에 드러나겠지만 와그너가 말하는 성경적 형태와 우리가 말하는 성경적 형태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더구나 에베소서 4장에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직분 체제와 운영 체제를 계획하시고 적절히 세워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9).

또한 교회가 오랫동안 이 “이상적인 직분 체제와는 훨씬 동떨어진 모습으로 운영되었다”(9)는 말에도 모든 개신교도들은 동의할 것이다(그러나 와그너는 1600년이라는 말에 종교 개혁시대와 우리 시대까지의 교회의 직분 체제를 다 넣어 말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가 의도하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또 하번 다른 것임을 유의하면서 그의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목사와 교사의 관계를 상호 밀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다(12). 그리고 사제(priest)라는 비성경적 직분을 대체한 목사는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로 제자리를 되찾았다”(13)는 점을 지적한 것도 옳은 것이다.

또한 스테판 만스필드(Stephen Mansfield)와 마이크 비클(Mike Bickle), 그리고 톰 하몬(Tom S. Hamon)이 교회 안의 여러 은사를 지닌 이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서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72~74, 82f., 98f., 136) 바르고 건전한 것이다. 또한 킹슬리 플레쳐(Kingsley A. Fletcher) 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포된 말씀이다. 이는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기 때문이다”(109)고 말하는 것도 매우 옳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말씀과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매우 옳다. 문제는 이 말을 하는 그를 비롯하여 이 저자들이 이 원리에 끝까지 충실한가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의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시작 부분에서 성경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그들의 주장에 전적인 동의를 표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그렇게 되는 원인을 그들의 주장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제시해 보기로 하자.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주장의 문제점

1. 일반적 문제점들

기본적으로 와그너는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의도에 맡도록 적절히 변경하면서 논의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신약 시대를 율법 시대와는 다른 ‘은혜의 시대’라고 언급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다(19).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두 종류의 대적자를 얻게 된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대적자들은 그의 세대주의적 해석에 반대하는 언약 신학적 대적자들이다. 또 하나는 그의 수정에 반대하는 세대주의적 대적자들이다.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좀더 심각한 일반적 문제는 “성경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이 말에 대해 부여하고 있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함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알 때까지는 선뜻 동의할 수 없게끔 하는 논술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 그 의미를 일일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상한 주장과 논의를 제시하는 이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들에 대해서 이단자들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때 느끼는 불안을 가지도록 생각하고 논술하는 것일까? 이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 그들의 성경 주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를 노출시켜 주는 것이다. 주해를 이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주해의 내용을 가지고 따지면 결국 성경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베소서 4:11 이하에 근거해서 교회의 직분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본문과 상관없는 것들을 때때로 삽입하는 것들에서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전도자’를 언급하면서 “약 150년 전에 챨스 피니(Charles Finney)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폭넓게 주목받지 못했었다”고 말한다(13). 와그너에게는 초대 교회의 전도자들이 관심이 아니라, 오늘날의 전도자들이 관심인 것이다. 더 심한 것은 그 본문이나 다른 성경 구절에 있지도 않은 ‘중보자’(intercessors)라는 직분을 그가 삽입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독특한 직분으로 이를 언급하면서 이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직분이다”고 말하고 있다(13).

그는 이런 것이 에베소서 4:11에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러나 중보자는 촉매제처럼, 예언자와 사도들의 길을 예비하는 지극히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는 주목할만한 직분이기 때문에 꼭 언급하고 싶다”(14)고 말하면서 이를 목사, 교사, 예언자, 사도와 함께 교회의 5대 직분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그너가 말하는 교회의 5대 직분이(10~14, 29, 37) 엄밀히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임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와그너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고한 다른 이들도 이와 같은 다섯 직분에 대한 같은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57~59, 73, 107, 126). 그들은 이런 이해를 와그너로부터 배워 같이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의는 이런 용어를 사용 할 때 그들이 성경의 본래적 의미보다는 오늘날 그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지도 않고, 교회사적 전통에 근거하지도 않은 개념들을 일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것인 양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라.

톰 해몬(Tom Hamon)은 오늘날 예언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면서 에베소서 1:17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123f.). 이 본문이 말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과연 소위 제한된 의미의 예언자들에게 있는 것이라는 의도로 바울이 말하는 것인가?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도록 해야 할 것을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본문을 주로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들에게 이를 제한하여 생각하는 것은(124, 136) 이들이 가진 성경 주해의 자의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근원적인 문제

이들의 근원적인 문제는 역시 오늘날에 예언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그너 등의 목소리는 오늘날 가장 세련된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직통 계시파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왔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특정한 구성원들에게 허락하시는 특별한 능력으로, 거룩하게 기름 부으신 선포를 통하여 그 분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2) 그리고 와그너에 의하면, “예언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것은 예언자가 받은 은사”라는 것이다(50). 와그너는 이런 예언이 오늘날에도 있다고 생각하며 1999년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2,500명의 소위 예언자들과 예비 예언자들을 모아 전국 예언자 학교(the National School of the Prophets)를 개최하기도 하였다고 한다(41).

그는 여러 형태의 계시가 더 더해질 것이라고 제시한다. 특히 현재로서는 자신이 전도자의 은사와 직분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까운 장래엡 전도자들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통찰을 계시하실 것이라는 잠재된 예감이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31). 그리고 그는 “교회에 예언자들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다”고 단언한다(49).

톰 해몬(Tom S. Hamon) 역시도 같은 견해를 표 한다: “…예언이 없다면 [교회가] 마땅히 드러나야 할 건강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132). 와그너는 또한 오늘날에도 있는 이 예언자들과 (후에 언급될)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라고 주장한다(49). 와그너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가 지속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스필드는 이렇게 까지도 말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예언자들만이 아니라, 예언하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지혜로운 목회자들의 사역은 진정한 예언적 교회가 이 세대에 일어나리라는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이유다”(74f.). 캔사스 시의 국제 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대표로 있는 마이크 비클(Mike Bickle)은 자신이 목회하는 메트로 교회(Metro Christian Fellowship)에는 예언적인 꿈, 이상, 그리고 환상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79). 한국 교회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유념해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성경 이외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계속된다는) 이런 생각은 그 동안 장로교 신학(개혁 신학)과 정통 신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해 온 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항 마지막에 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지되어 버렸다”는 진술과 6항 중에 진술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이든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는 말과 이런 주장들을 비교해 보라.3)

이와 같은 노선에서 성경적인 개혁신학자들은 아주 온건한 형태의 예언 인정의 논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하여 왔다.4) 이런 문제에 대한 좋은 개혁신학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레이몬드 교수의 강한 입장을 들어 보라: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예언자들과 방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으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오직 성경의 위대한 종교 개혁적 원리를 버려 버린 것이다.”5) 그는 다른 개혁 신학자들과 함께 “신약 선지자들의 영감은 그쳐졌으므로, 선지자직도 그쳐졌고,” “선지자적 직임은 가르치는 직임 속으로 편입되어졌다”고 한다.6)

한마디로 개혁파 신학에서는 오늘날에는 선지자(예언자)가 없고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온 것이다.7) 물론 오순절파에서는 오늘날도 예언이 있다는 식의 주장을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속 주장해 왔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장은 정통파 교회, 적어도 장로 교회의 가르침과는 대척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교 신학(개혁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 책의 주장을 비성경적이며 반성경적인 주장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다 어떤 계시의 내용을 더하려고 하는 이런 주장은 그런 식의 잘못을 범하는 다른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와그너 등은 그들이 말하는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시대에는 예언의 양상이 변했다는 점을 말한다(21).8) (구약의 참 선지자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 시대에는 참 선지자의 예언도 꼭 성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논의에 선뜻 동의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또한 와그너는 Y2K에 대한 예언자들의 예언이 전대미문의 가장 성공적인 예언이었다는 세속 학자인 테드 다니엘스(Ted Daniels)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론 내리기를 “예언은 조건적”이라고 주장한다(47). 이 말은 와그너가 테드 다니엘스의 비유적인 말을 과연 바르게 이해하고 하는 말인지를 묻게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예언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조의 말로 들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와그너가 다니엘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다니엘스가 하는 말인 “우리는 엄청나게 쏟아 부었는데 (즉, Y2K를 위해 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고 살아남았다는 겁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과연 Y2K에 예견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이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미리 잘 준비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와그너 자신이 잘 말하듯이 그들은 “핑계를 댄다”는 반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47). 또한 예언이 조건적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선포한 말씀을 바꾸신다고 표현하는 것(47)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하나님에게는 변함이 없으심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께서 구약에 선포하도록 하신 말씀 안에 회개하면 주께서 돌이키실 것이라고 신인동성론적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더 옳지 아니한가?9)

사실 이 저자들은 소위 예언을 하는 이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예수 믿기 이전에도 일종의 영적 감지력을 지닌 사람들일 경우가 많음을 스테판 만스필드(Stephen L. Mansfield)는 이 책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59f.). 또한 이들은 흑백논리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61). 더구나 이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자신들에게 떠오르는 모든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쏟아낼 수 있지만, 자기 삶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들을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63). 마이크 비클도 이런 이들의 많은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다(92). 그렇다면 모든 이들이 이런 이들에게 “너 자신이나 고치라”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또한 마이크 비클은 소위 예언하는 이들의 말에 거짓말이 많다는 것과 회중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이들에게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데 지쳐 있다는 것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잘 알고 있다(85). 그러므로 이들은 소위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과 부딪히는 많은 경험을 하였고 또 지금도 그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다(88). 사실 이 책이 쓰여진 이유가 바로 그런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 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 자체가 이런 직통 예언파의 내재적 문제를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마이크 비클의 다음 말을 생각해 보라: “…예언하는 사람들이 교회 사역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역도 마찬가지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90). 이외에도 이 저자들은 소위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이 나타내는 수많은 문제를 잘 알고 있다(111). 톰 해몬(Tom S. Hamon)도 소위 “(오늘날에 있다고 하는) 예언은 …동시에 교회에서 가장 커다란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121)고 하며, 또한 소위 예언된 것들 가운데서는 “거짓 말씀이나 해로운 말씀이 있었다고”(133)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12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저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잘 알면서도 이런 이들을 예언자라고 하면서 그들이 교회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집단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과 교회의 오랜 성경적 전통을 벗어나 이와 같이 나아가려고 하는 이들의 문제점은 조금이라도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에 민감한 이들은 다 잘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잘 읽으면 우리는 소위 예언한다는 이들을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잘 알게 된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계시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잘 증언하고 있듯이 소위 예언한다고 하는 이들은 문제가 많으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이런 헛된 추구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섬기도록 할 것인가 하는 목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예언 사역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목회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도록 하는 목회적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3. 좀더 심각한 문제

그러나 와그너 등의 주장은 이전의 직통 계시파보다 그런 입장의 전제에 좀더 철저한 면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1990년대 이후를 ‘신사도적 종교개혁(New Apostolic Re ation) 시대’라고 규정한다는 것이다(25).10) 바로 이런 입장에서 와그너는 “사도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교회에서 활동하는 공식 직분으로서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14, 17쪽도 보라). 또한 앞부분에서도 “우리가 수백 년 교회사에서 처음으로 교회의 성경적 직분 체제를 다시 한번 주목하고 있다”(10)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종교 개혁자들과 함께 의아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와그너 등이 말하는 ‘사도’라는 말은 좀더 새로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와그너 등의 주장의 좀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직통 계시파는 1세기의 사도들의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면서 예언 사역이 지속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비해, 이제 와그너 등은 그럴 뿐만 이 아니라, 그 예언 사역과 건강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오늘날의 사도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예언자들을 ‘실라’로 규정하고 그와 바울 같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자신에 대해 척 피어스(Chuck Pierce)가 예언자로 있고, 자신은 그와 바울-실라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33). 그리고 자신을 “사도이자 교사”라고 말한다(39).

또한 와그너는 자신의 이런 입장에 근거하여 1999년부터 최소한 일년에 두 번씩 “예언하는 장로들의 사도 협의회”(The Apostolic Council of Prophetic Elders) 모임을 개최하고, 자신이 이 집단의 사도로서 의장직을 감당한다고 말한다(33f.). 물론 와그너는 자신의 사도직이 수평적 사도직(horizontal apostolic)이며, 이 사람들의 모임을 제외하면 어떤 개별적인 예언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수직적’ 혹은 지속적인 사도 직분을 감당하지 않는다고 밝힌다(34). 그렇다면 구태여 사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와그너 등은 사도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려 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오늘날도 사도가 있다는 주장을 와그너 등은 하는 것이다.

결론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일단의 사람들이 ‘사도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에 대해 1세기의 사도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더 나아가 그 사도들을 불러서 위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게 느끼듯이 이런 식으로 지속하는 것은 결국 사도와 종교적 천재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나님 앞에 민감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여 우리 개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다. 그것에 반대할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좀더 유의해야 하고 기도에 힘써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근거를 주께서는 이미 성경의 가르침과 내주 하시는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1세기의 사도들이 죽은 이후에 또 다른 사도들이 주어질 것이라는 시사를 성경은 우리에게 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1세기의 사도와 선지자의 터 외의 다른 터를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강한 경고가 성경에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1세기의 사도들이 우리들의 사도들이며, 그 사도적 가르침에 근거해 교회와 성도들이 세워져 있음을 강조해야만 한다. 성경적 사도적 가르침에 다른 것을 더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선언하는 바울의 선포(갈 1장)가 두렵지 아니한가?

성경에 있는 사도들 외에 사도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식으로라도 자신을 사도인 것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현실이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도들과 선자지들의 사역이 그쳐진 후에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아니한 이들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 시대에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서 이렇게 현저하게 벗어난 가르침들이 난무하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영적인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이 쓰여진 이유 중의 하나도 소위 예언을 한다는 이들 사이의 혼란이 너무 심각하여 그들을 위한 일종의 영적 규약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25), 이런 예언이 지속적으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런 책 등이 그런 영적 혼란을 더 부추길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오늘날의 혼란을 막고 영적인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은 성경이 말하는 사도적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사도적 가르침에 의하면, 성경의 가르침에 무엇이라도 더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도적 가르침에 자신들을 겸손히 복속시키는 일이다. 와그너와 이 책의 저자들에게, 또한 이런 책의 영향을 받는 이들에게 이런 비성경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굳건히 서 있기를 강하게 요청한다. 그것이 성경을 영감하여 주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길이며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복속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부디 바라기는 한국 교회와 세게 교회가 성경과 성령님의 가르침에 참으로 순복하여 주께서 교회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것을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미주>
1. Peter C. Wagner, Apostles and Prophets: The Foundations of the Church (Ventura, CA: Regal Books, 2000).
2. Peter C. Wagner, Your Spiritual Gifts Can Help Your Church Grow (Ventura, CA: Regal Books, 1979, 1994), 229, cited in <목사와 예언자>, pp. 21f.
3.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 1, 1 & I. 1, 6.
4. Cf. Richard B. Gaffin, Jr., Perspectives on Pentecost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 ed, 1979), 65-67; R. Fowler White, "Richard Gaffin and Wayne Grudem on I Cor. 13:10: A Comparison of Cessationist and Nocessationist Argumentati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35, no. 2 (1992): 173-81; idem, "Gaffin and Grudem on Ephesians 2L20: In Defense of Gaffin's Cessationist Exegesis,"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54 (Fall 1993): 303-20; O. Palmer Robertson, The Final Word (Carlislie, Pa.: Banner of Truth, 1993), 85-126; Edmund P. Clowney, The Church (Downers Grove, Ill.: IVP, 1995), 257-68.
5.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ennessee: Thomas Nelson Publishers, 1998), 59.
6. Reymond, 84. Cf. David Clyde Jones, "The Gift of Prophecy Today," The Presbyterian Guardian (December 1974), 163-64.
7. John Murray, Collected Writings, 1:19-22.
8. 와그너는 Mike Bickle, Growing in the Prophetic (Orlando: FL: Creation House, 1996), 97을 인용하면서 이 논의를 하고 있다.
9.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런 입장에서의 논의로 Paul Helm, The Providence of God (Leicester: IVP, 1993), 이승구 옮김, <하나님의 섭리>(서울: IVP, 2004)를 보라.
10. 또한 다음 책도 보라. Peter C. Wagner, The New Apostolic Churches (Ventura, CA: Regal Press,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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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이었던 이 고난 주간에는 예루살렘 입성, 성전 숙청, 감람산 강화, 성만찬 제정,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체포와 심문, 십자가 처형과 장사 등의 대사건들이 숨 막히게 전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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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 본문성경 마 21 : 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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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절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절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절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7절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절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11절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막 11 : 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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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본문성경 마 21: 18 - 19
18절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절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막 11 : 12 - 14
성전 청결케 함 본문성경 마 21 : 12 - 13
12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막 11 : 15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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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마름 본문성경 마 21 : 19 - 22
19절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절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막 11 : 20 - 25
제사장 바리새인의 질문 본문성경 막 11 : 27 - 33
이미지 전체보기27절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절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2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절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31절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것이니
32절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33절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눅 20 :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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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밤마다 베다니에 나가시니 이 날은 거기서 기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경에 수요일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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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사 본문성경 마 26 : 31 - 35
31절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절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3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5절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막 14 : 12 - 26, 눅 22 : 31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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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고난 본문성경 마 27 : 32 - 56
32절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이미지 전체보기33절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절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
35절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절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절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절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절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절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절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절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절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45절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이미지 전체보기46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절 거기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절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49절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하더라
50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절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절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절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절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 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눅 23 : 26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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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파수군이 굳게 지킴 본문성경 마 27 : 62 - 66
62절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3절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기억하노니
64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하나이다 하니
65절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절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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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새벽 본문성경 마 28 : 1 - 10
이미지 전체보기1절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보려고 왔더니
2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절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절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절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줄을 내가 아노라
6절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절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절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9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보리라 하시니라

※ 본문과 함께 묵상할 성경 / 막 16 : 1 - 17

▼ 2007 고난주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출처: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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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춘추 전국 시대의 "서시"는 춘추 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었다.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 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한다.


◆ 왕소군(王昭君) - "낙안(落雁)"

『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한(漢)나라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와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발하여 선우와 결혼을 시킨다.
집을 떠나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 생각이 나서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덜어졌다.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 초선(貂嬋) - "폐월(閉月)"

『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 』



초선은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나라
대신 왕윤(王允)의 양녀인데,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어느 날 저녁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
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
이것을 본 왕윤이 말하기를
"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 고 하여 이 때부터
초선은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초선은 왕윤의 뜻을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키며
동탁을 죽게 만든 후에 의로운 목숨을 다한다.



◆ 양귀비(楊貴妃) - "수화(羞花)"

『 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황(唐明皇)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 나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면서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더니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황이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에 찬탄하여
그녀를 " 절대가인(絶對佳人)" 이라고 칭하였다.


◆ 조비연(趙飛燕) - "작장중무(作掌中舞)"

『 가볍기 그지 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



중국 한나라 황후 조비연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장 날씬한 여인으로 불렸다.
"날으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 이름 "조의주" 대신
조비연으로 불렸다.
뛰어난 몸매에 가무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녀는 한나라 성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다.

한번은 황제가 호수에서 선상연을 베풀었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자 춤을 추던 조비연이
휘청 물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가.

황제가 급히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는데
춤의 삼매경에 빠진 조비연은 그 상태에서도
춤추기를 그치지 않아서 조비연은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추었다.
이런 연휴로 "비연작장중무(飛燕作掌中舞)" 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임금의 총애를 받은 비연은 세상에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세월은 겨우 10년,황제가 죽자
조비연은 탄핵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평인으로 걸식을 하다가 자살로 그 생을 끝맺고 만다.


고대의 예언들

요즘, 뉴욕일원에서 이단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 지고 있는 점은 매우 염려스러운 사실입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순진한 교인들을 이들의 접근으로부터 보호하고, 사회를 상대로 해서는 이단과 정통 교회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하는 필요성이 더욱 절실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저 자신은 한인을 상대로 한 일선 목회는 하지 않지만 종종 지인들로부터 이단에 대한 질문을 받아 왔습니다. 그 때마다 그저 제가 아는 지식 안에서 대답을 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이번 할렐루야 대회에서 나누어준 행사 책자에 인쇄된 이단 신앙 판별 지침이 눈에 들어와 읽어보았습니다. 작년에도 같은 내용이 같은 행사 기간 동안에 같은 방법으로 배포된 것을 기억합니다. 처음 이 지침서를 읽었을 때에는 내용상으로는 매우 짧고 간결하면서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같은 내용을 다시 반복해서 읽으면서는 왠지 아쉬운 점들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나름대로의 상식만을 가지고 볼 때 어느 부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사소한 표현 차이적인 부분도 있지만, 읽고 또 읽다 보나 왠지 이단의 기준으로는 미흡하거나 내용상 멀쩡한 교회나 교단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내용에 대한 보완의 차원에서 보다 완벽한 내용을 만들기 위한 비판이 아닌 다음의 제안들을 적어 봅니다.  

--------------------------------------------------

행사책자에 난 이단신앙 판별지침

1. 하나님의 삼위일체되심, 곧 성부, 성자, 성령을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이단이다. (마태28:19, 고후13:13, 요일2:22-23)

2.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하신 하나님이요, 동시에 온전하신 사람이신데도 그 분을 하나님으로만 믿거나, 사람으로만 믿거나, 반신반인으로만 믿거나,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제3의 존재로 믿는 것은 이단이다. (요1:1-3, 14, 골1:16-23, 히1:3, 갈4:4, 히2:5-18, 요일4:2-3)

3.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무이한 구원의 길인데도 다른 종교, 곧 불교, 유교, 흰두교, 이슬람교 들이나 다른 사람 곧 공산주의, 기독교과학 등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단이다. 따라서 기독교 진리를 다른 종교의 것과 혼합시키는 것도 이단이다. (요14:6, 행4:12, 딤전2:5)

4. 인간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인간이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다른 조건들 (가령 세례나 침례, 성령세례, 방언, 헌금, 전도, 피갈음, 안식일준수 등)을 구원의 조건들로 삼는 것은 이단신앙이다. (요3:16, 롬1:17, 엡2:8, 골2:16, 딤3:5)

5. 자기의 교파나 교회에만 구원이 있을 뿐, 역사적 기독교회에는 구원이 없는 듯이 가르치거나 역사적 교회를 맹렬히 공격하고 따라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도하기보다는 역사적 교회신자들을 유인해 가려는 것은 이단 집단들이다. (마16:16-49, 24:4-5)

6. 신구약성경 66권만을 정경으로 믿지않고 그외 무엇을 덧붙이거나 제거하는 것은 이단이다. (계22:18-19)

7. 이상한 체험, 지도자의 가르침, 다른 책, 하나님의 직접 계시등을 성경과 동등시하거나 성경보다 우위에 두거나 그것들을 성경해석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이단신앙이다. (벧후1:20-21, 딤후3:16-17)

8. 성경에 없는 것을 주장하거나 혹은 한부분만을 절대화시키고 교리화시킴으로서 성경 전체에 일관된 교훈을 부정하는 것은 이단신앙이다. (요20:30-31, 히1:1-2)

9. 기적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도 혹은 기적만을 전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이단신앙이다. (막16:17-18, 마7:20-21, 24:24, 눅16:31)

10. 지도자가 마치 하나님처럼 신격화되었거나, 혹은 되려고 노력하는 집단은 이단이다. (행10:25-26, 12:20-23)

11. 시한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거나 예언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해석을 첨가하여 그 주장을 계속 정당화시키는 교인들은 이단이다. (마26:36, 눅12:40, 행1:7)

12. 교회를 부인하거나 사도신경을 신앙의 근간으로 삼지 않으며, 정치운동, 경제활동, 사상운동 등을 실제적 최고 목적으로 삼고서도 교회란 명칭을 사용하는 집단은 이단이다. (마7:19-23, 18:15-17, 계1:20. 2:1)

-----------------------------------------------

1.0 원전 소개에 대한 작은 문제

우선 출판물에는 원본의 출처가 빠져 있었습니다. 몇 해전에 이단 대책 위원회가 구성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뉴욕 한인 교협의 자체 작품인지 개인의 작품인지 아니면 한국 어디서 가지고 온 것인지가 빠져 있더군요. 대중에 대한 공신력이 있는 뉴욕 한인 교협 출판물에 게시하는 것인 만큼 원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것이 원 저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개인이다 소수 집단이 임의대로 만들어서 삽입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됩니다. 출처가 분명해야 내용의 신뢰성을 더해 줄 수도 있고, 대중을 상대로 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2.0 내용에 대한 문제들

2.1 좀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한 제 5항

“자기 교파나 교회에만 구원이 있을 뿐, 역사적 기독 교회에는 구원이 없는 듯이 가르치거나 역사적 교회를 맹렬히 공격하고 따라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도하기보다는 역사적 교회 신자들을 유인해 가려는 것은 이단 집단들이다.”

이 항목의 우선시 되는 문제는 역사적인 교회가 무엇인가? 혹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라는 것 질문 자체의 문제입니다. 본 지침서에는 “역사적 교회”에 대한 바른 정의가 빠져 있습니다. 인쇄물에도 별도의 단어 설명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목사인 저도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신 분들은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 설명이 반듯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누가 누구를 역사적 교회로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판단의 주체에 따라서 그 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카톨릭 교회를 이단으로 판정하는가 아니면 안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도 보수와 비 보수간에 따라서 다른 상태입니다. 물론 요즘 언론에서 교황이 자기들 교회에만 구원이 있고 개신 교회들을 통한 구원은 부인한다고 자신의 교서를 통해서 말했으니 카톨릭은 이단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늙은 교황의 개인 소견으로 축소 해석하면서 역사적인 기독교의 한 교파로 여기는 분들과 교단들도 존재합니다. 교황이 말한 이 부분은 분명히 우리를 화나게 말하는 것이지만 과연 캐톨릭은 정말로 이단인가 하는 문제의 답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아멘넷의 과거 칼럼과 토론에 대한 참여자들의 댓글 내용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고, 요즘 교계 신문들의 내용을 통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2.2 예상치 않은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제 12 항

2.2.1 시작 부분

12번째 마지막 항목의 경우에는 정말 이단을 잡으려다 멀쩡한 교회들과 교단을 잡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이 항목은 “교회를 부인하거나 사도신경을 신앙의 근간으로 삼지 않으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단이 교회를 부인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도신경 부분입니다. 사도 신경은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 그리고하이델 베르그 요리문답 등과 함께 현재 전 세계 기독교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앙 고백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신앙 고백들이 모든 기독교 교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신경도 마찬가지의 경우입니다.

사도신경은 장로교단이라면 거의 모든 교회가 예배시간에 주기도문과 같이 거의 모든 예배의 한 부분을 차지 할 정도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 중에는 사도신경을 안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교단적으로는 미국침례교단의 경우에는 사도신경을 교단적 신조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더라도 성경 어디에도 사도신경 안 하면 이단이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침례교 목사님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만나면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분들은 계시면서도, 공식적이거나 개인적인 입장 표명은 뉴욕 한인 교협 측에 안하고 계신데 이 점도 참 이상합니다. 별로 신경 안 쓴다는 의도인지 아니면, 말해서 좋을 것 없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저 같은 타 교단 목사님들이 나서서 해결해 주었으면 하시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 기본적인 생각은 본 이단 신앙 판별 지침 6항의 지적처럼 오직 우리의 모든 신앙의 판별 기준은 성경이어야 하며, 사도신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2.2 과연 이단일까 생각되는 12항의 마지막 부분  

이 부분은 “… 정치 운동, 경제 활동, 사상 운동 등을 실제적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도 교회란 명칭을 사용하는 집단은 이단이다.”이라고 끝을 맺습니다. 제가 아는 한 뉴욕 한인 목회자님들 가운데도 너무나 정치적인 분 들이 계십니다. 개중에는 아예 한국내의 정치판에서 바쁘게 뛰고 계시는 분도 있으십니다. 목사인지 아니면 사업가인지 헷갈리게 이권에 밝은 분 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정치꾼 목사 혹은 돈 밝히는 목사 혹은 사상 운동하는 목사 등등으로 이런 집단을 특정 이익 집단으로는 불릴 수는 있어도 이단이라고 칼로 무 베듯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로 “실제적인 최고의 목적”이란 표현에 밑 줄을 확 그었습니다. 누가 판단할 때 그렇다는 것인지요? 객관적 판단이 어렵고 따라서 개인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겨야 하는 현실적 상황에서 일반인들에게뿐만이 아니라 목회자들에게 조차 매우 애매하고, 오해를 살 만한 부분입니다. 조금은 빗나간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미국내의 다른 민족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매우 복음적인 흑인 교회들이나 스패니쉬 교회들의 경우에라도 사회 속에 만연한 부정의와 자신들이 받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대처하고 해결하기 위한 정치 운동과 사회 복음 운동에 적극적인 목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신학을 가졌다고 해서 이단으로 정죄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이 12번째 항목은 전체적으로 시작부분을 제외하고는 이단의 판단 기준을 너무 광범위하게 제시했다고 생각됩니다.

3.0 판별 지침에 깔린 보다 근본적인 문제 

지금 이단 신앙 판별 지침에 깔린 신학 사상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면서 배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침서를 작성한 분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12개 항목들의 내용 중에는 비 보수계 교회나 교단까지도 단지 보수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넘어서 이단으로까지 정죄할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그 만큼 원치 않는 이단 시비를 불러 올 수 있는 위험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단 판정 기준은 보수냐 보수가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장점은 절대 진리의 수호에 대한 초 강력 의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하자면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잘 화합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끝 없는 분열의 한국 교회 역사를 창출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사에서는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 되고, 자신의 교단이 가진 교리에 복종 안 한다고 해서 이단을 만들어 낸 경험들이 많습니다. 또한 이러한 분열의 역사 속에서 정치적인 인해관계로 인해서 이단으로 몰린 예가 없다고는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한 예로 조 용기 목사님도 한 동안은 장로 교단 목사님들로부터 이단으로 찍혔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한국 교회사의 한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인 교회의 보수적 편향 성향은 이단 판별에 대한 기준이 공정하지 못하게 정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4.0 현재의 이단 신앙 판별 지침 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제안

이단은 당연히 선별하고 골라내어 이 뉴욕 땅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단 판별은 매우 신중해야 하고 그 판별 기준과 과정은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멀쩡한 개인과 교회와 교단을 이단으로 판정해 버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직시 해야 합니다. 목사님들 간에는 교회가 급성장할 때는 목사와 교회가 항상 이단 시비에 휘말리는 일을 거쳐야 한다는 우수게 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실제로 겪게 되면, 당하는 당사자들은 목회 현장에서 일시적인 피해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피해와 함께 올 수 있습니다. 목회자 본인 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와 교인들까지도 고통을 주고 가정의 위기로 까지도 몰아갈 수 있는 큰 문제입니다.  

보다 완성도가 높은 이단 신앙 판별 지침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제시된 기준과 사용된 언어 표현의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시 이 지침을 만드신 분들의 교단 및 신학적 배경의 점검도 필요합니다. 혹시 특정한 부류에 속한 분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았었는지요? 발전적인 제안을 위해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특정 교단 계열의 소수나 혹은 보수파의 자기 신학을 기준으로 한 판별안의 제시보다는 다양한 신학을 가진 다수의 교단들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서 이단에 대해서 논의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서 이 과정 속에서는 한국 교회라는 문화적으로 너무 작고 제한된 환경 속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님의 교회에 대한 폭 넓은 이해 속에서 이단 판정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활발한 연구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서 앞으로는 지금 보다 완성도가 더욱 높은 이단 신앙 판별 지침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송흥용 목사(RCA교단)

ⓒ 아멘뉴스




FEMA COFFINS andamp; THEIR PLAN TO KILL 90% OF THE USA ...

8분 -

Video: VERY IMPORTANT INFORMATION!
www.disclose.tv/action/viewvideo/7537/FEMA_COFFINS__amp__THEIR_PLAN_TO_KILL_90__OF_THE_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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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인 사역자,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피살
신앙 부인 강요 거부 후 처형돼
 
통신이 두절되어 있다시피 한 오지에서 사역하던 에티오피아인 기독교 사역자가 지난 7월 19일에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에스티파노스 아바테(34)라는 기독교인 사역자가 최근 동부 에티오피아의 지지가 지역을 여행하던 중 그가 탄 버스가 이슬람 무장단체 소속 괴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들은 총을 들고 버스에 올라 45명의 승객들에게 각자의 종교를 말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정교회 신자 5명과 개신교인이 버스에 탑승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괴한들은 이들 9명을 다른 승객들과 분리시킨 후 이슬람의 신조를 반복해서 외우고 메카를 향해 3번 절하며 기도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9명 가운데 8명은 강요에 못이겨 시키는 대로 했으나 에스티파노스는 이를 거부하고 조용한 어조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이에 괴한들은 에스티파노스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버스에 태우고 출발을 허락했다. 그리고 버스가 떠난 후 처형되었고, 그의 시신은 도로 변에서 발견되었다. 이같은 폭력과 불의를 당하는 것은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의 일상이다. (출처: 매일선교소식)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주님. 주님의 이름은 능력입니다. 그 어떤 위협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에스티파노스 형제의 흘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고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열방을 회복시키실 것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폭력과 불의를 당하는 에티오피아 성도들의 산성과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그들의 믿음이 주님의 십자가 위에 더욱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기사제공 : 기도24365 (본부)  이미지 전체보기prayer@prayer24365.org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인 분이시다. 그분은 생각하고 느끼며 의지를 갖고 행동하신다. 그분은 지성적 존재로서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며 지시하는 독립적 존재이시다. 성경은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 슬퍼하시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은사들을 주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인격적 존재의 모든 속성들, 즉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진 분임을 알 수 있다.

성령님은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 그분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그 말씀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주신다. 또한 우리가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도록 도우신다.

그분은 삼위일체의 한 위(位)이시며,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하시다. 삼위의 사역은 구별되는데,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성취하시며 성령은 적용하신다. 세 분이 각각 자기의 사역을 감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신다.

예수님은 “그가(성령님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義)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난다는 말이다. 거듭난 사람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신다. 우리가 그분께 순종할 때 그분은 가르치고 지시하며 충만케 하신다.

성령님과 그리스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몸을 가지시지만, 성령님은 몸을 갖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성만을 가지신다. 우리는 그분을 만지거나 볼 수 없으며, 느낄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감(五感)을 통해 그분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분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령님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성경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롬 8:16)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 흥분이나 몸의 떨림을 성령님의 임재라고 믿지만, 이런 것들은 그분의 임재의 결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요한일서 4장 1절의 교훈에 따라 우리는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한다. 때때로, 성령님 임재의 결과가 아닌 것들이 그분 임재의 결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고 가르친다.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게 된다. 사람들은 술의 유혹에 넘어가 의지적으로 술을 마신다. 알코올이든 아니면 어떤 종류의 약물이든 간에 그것을 마시거나 먹으면 그것들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성령님께 넘겨드리면 우리는 그분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통제를 받게 된다.

누군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더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분이 우리를더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분의 한 부분을 소유할 수 없다.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작은 조각들로 나뉠 수 없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사용된 동사의 시제는 현재 시제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이다. 성령 충만은 한 번 충만해지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그분께 넘겨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 노만 가이슬러 -


 


Danny Richard Hahlbohm


Danny Hahlbohm은 1949년 6월,

뉴욕의 Mineola에서 태어나 1968년까지

뉴욕에서 동양인에 의해 성장되었다고 한다.

많은 기독교적 작품들을 통해 크리스찬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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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y Will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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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in Clo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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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For All (Span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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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and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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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ding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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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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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of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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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ing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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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of Prayer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조수아 클래식(Joshua’s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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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 이번 세계 선수권 세계 신기록 동영상 입니다.

KOREA  김연아..정말 너무 아름답고, 자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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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마무리 
    스코트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의 유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요망 사항을 기록해두기 위해 쓴다.
 
1. 마지막 죽을 병이 오면 나는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 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2.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없다.
 
3.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 주사, 심장 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4. 장례 절차와 부수적인 일들
 
-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 밖에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불러들여서는 안 되며,
어떤 식으로든 이들이 내 몸을 처리하는 데 관여해서는 안 된다.
-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내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스프루스 나무나 소나무 판자로 만든 보통의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내가 요금을 내고 회원이 된 메인 주 오번의 화장터로 보내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죽음과 재의 처분 사이에
언제, 어떤 식으로든 설교사나 목사, 그 밖에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 된다.
-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만약 헬렌이 나보다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스피릿 만을 바라보는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주기 바란다.
 
5. 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이러한 요청들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에 대한 헬렌 니어링의 회고
    
 
    스코트가 가기 한 달 반 전인,
    
    그이의 100세 생일 한 달 전 어느 날 테이블에 여러 사람과 앉아 있을 때 그이가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딱딱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이는 신중하게 목적을 갖고 떠날 시간과 방법을 선택했다.
    
    정연하고 의식이 있는 가운데 가기 위함이었다.
    
    그이는 단식으로 자기 몸을 벗고자 했다.
    
    단식에 의한 죽음은 자살과 같은 난폭한 형식이 아니다.
    
    그 죽음은 느리고 품위있는 에너지의 고갈이고,
    
    평화롭게 떠나는 방법이자, 스스로 원한 것이었다.
    
    안팎으로 그이는 준비를 했다.
    
    그이는 언제나 '기쁘게 살았고, 기쁘게 죽으리. 나는 내 의지로 나를 버리네.'라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을 좋아했다.
    
    이제 이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이는 스스로 육체가 그 생명을 포기하도록 하는 자신의 방법으로 죽음을 준비했다.
    
     
    
    나는(헬렌 니어링) 동물들이 흔히 택하는 죽음의 방식,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기어나와 스스로 먹이를 거부함으로써 죽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한 달 동안 그이가 뭔가 마실 것을 원할 때
    
    사과, 오렌지, 바나나, 포도 같이
    
    그이가 삼킬 수 있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쥬스를 만들어 먹여주었다.
    
    그러자 그이는 "이제 물만 마시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이는 병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정신이 말짱했고, 나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몸은 수분이 빠져나가 이제 시들어가고 있었고,
    
    평온하고 조용하게 삶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나는 그이의 침상에 같이 있으면서 조용히 그이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쯤 소리내어 나는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나는 그이에게 중얼거렸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구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천천히 천천히
    
    그이는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가 점점 약하게 숨을 쉬더니,
    
    나무의 마른잎이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이는 마치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시험하는 듯이 "좋-아"하며 숨을 쉬고서 갔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갔음을 느꼈다.
    
 
    헬렌 니어링 저, 이석태 역,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보리(1997), pp.221-229.
    
     
     
     
    사는 법
       

      Helen Nearing



    나는 엄격한 채식인이면서 아내를 구타하는 자보다는

    육식을 하지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낫다는 간디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 엄격한 채식인(이제 막 열광적인 채식인이 된 사람이다)을 알았는데,

    우리를 식사에 초대하면 아내와 딸을 심하게 무시해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지 못하게 하고 혼자서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이 고약한 강성론자는 먹는 법은 제대로 배웠는지 몰라도,

    사는 법은 아직 배울 게 많았다.


    - 헬렌 니어링, [소박한 밥상] 중에서






책과 독서에 관한 명언격언 1

집은 책으로 꽉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 앤드류 랑그


결국은 우리들 인간이 지상에서 이루어 놓은 것이나 만들어 낸 것 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고, 경이로우며 또한 가치 있는 것이 바로 책이라 불리워지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 칼라일


책은 항상 생활하고, 자기의 종자(種子)를 인간의 마음 속에 심으며,
후대의 새로운 시대에 끝없는 행위나 의견을 불러일으킨다. - 베이컨


나는 어떤 책이나 다 좋아한다. 다만 형태는 책이면서 책이 아닌 것,
예컨대 궁정 행사록, 법규집, 인명록 따위를 빼고는 무슨 책이든지 즐겁게 읽을 수 있다. - C. 램


세상에는 인간의 심리나 도의를 따진 책이 많다.
그러나 그 책 속에서 독자에게 드리는 말, 추천사, 서문, 목차따위를 제외하고 나면,
책의 내용이 될 만한 페이지는 얼마남지 않는다. - 라 브르예르


검은 구름을 열고 햇빛이 나타나면 만물은 그 모양을 감출 수가 없다.
서적을 펴 놓고서 고금을 생각하면 천지도 그 진상(眞相)을 감출 수가 없다. - 포박자(抱朴子)


가장 위대한 책이란 종이 테이프에 찍히는 전문처럼 두뇌에 새로운 지식이 박히는 것과 같은
책이 아니고, 생명이 넘치는 충격으로 다른 생을 눈뜨게 하고,
또 다른 생에서 생으로 여러 가지 정수(精髓)를 공급해 주는 것이다. - 로맹 롤랑


과학에서는 최신의 연구서를 읽으라. 문학에서는 최고(最古)의 책을 읽으라.
고전은 항상 새로운 것이다. - 리튼


당신은 책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당신은 분명히 생활 가운데 부질없는 야심과 쾌락의 추구에만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한데,
그 세계가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볼테르


선박 없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책 없이 사상전에서 이길 수는 없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신이 인간에게 책이라는 구원의 손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상의 모든 영광은 망각 속에 되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 리처드 베리


두뇌의 세탁에 독서보다 좋은 것은 없다. 건전한 오락 가운데 가장 권장해야 할 것은
자연과 벗하는 것과 독서하는 것.. 두 가지라 하겠다. - 도꾸도미 로까


고인(古人)의 책은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 - 데까르트


법률은 죽지만, 책은 죽지 않는다. - 리튼


책이 없다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지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 토마스 바트린


가장 도움이 되는 책이란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데오도르 파카


책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세계 전체가 결국은 책으로 지배되어 왔기 때문이다. - 볼테르


책은 책 스스로의 생명이 있다. - 디렌디아누스 마우르스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책이 있다. 어떤 책이든지 읽는 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신의 불꽃이 불 붙기까지는 그 책은 사물(死物)에 불과하다. - H. 밀러


무엇이거나 좋으니 책을 사라. 사서 방에 쌓아 두면 독서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외면적인 것이나 이것이 중요하다. - 베네트


책 속에 모든 과거의 마음이 잠잔다. 오늘의 참다운 대학은 책을 모집함에 있다. - 칼라일


집은 책으로 꽉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 앤드류 랑그


마음속의 아름다움이란 그대의 지갑에서 황금을 끄집어내는 것보다는
그대의 서재에 책을 채우는 일이다. - 존 릴리


어린이를 다루는 것과 같이 책을 취급하라. - 브레이즈


책이 없는 백만장자가 되는니보다 차라리 책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거지가 되는 것이 한결 낫다. -마콜리


내가 책을 모으는 것은 그저 깨끗한 오락을 즐기려는 것뿐 다른 뜻이 없다. - 에머슨


세상에서 가장 한적한 일은 배를 타고 유랑하는 것과 술 마시고 장기나 바둑두는 것 등인데,
이 일들은 모두가 짝을 찾아야 하고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직 글 읽는 한 가지 일만은 한 사람 만으로
하루도 보낼 수 있고 1년도 넘길 수가 있다. - 진선유


독서가 얼른 보기에는 창조와는 비슷하지 않은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어떤 깊은 의미에서 비슷한 것이다. - H. V. 밀러


독서는 단순히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고의 힘이다. - 존 로크


양서 목록에는 반드시 고전이 들어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필요한 양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자기의 독자성을 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현대에 출판된 책을 꼭 읽어야 함은
자기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세계를 알아야 할 중요성에서다.
독서란 사람이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밀러


독서의 습관은 인생의 여러가지 불행 가운데 상당 부분으로부터 당신의 몸을 보호하는
하나의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 S. 몸


타인의 저서를 보고서 자기를 개량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라.
그러면 타인의 행고(幸苦)를 거듭한 결과로 용이하게 개량될 것이다.
그리고 부를 버리고 지식을 취하라.
왜냐하면 부는 일시적이지만, 지식은 영구하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


사색에 기술(요령)이 있는 것같이 쓰는 데에도 기술이 있으며,
독서에도 기술이 있다. - 디즈레일리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3천년도 더 사는 것같이 생각된다. - 에머슨


독서의 참다운 기쁨은 몇 차례고 그것을 다시 읽는 것이다. - 로렌스


어느 정도의 인생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는 어느 만큼 깊이가 있는 내용의 책이고 보면 적어도 그 내용의 일부를 보거나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 E. L. 파운드


독서는 충실한 인간을 만들고 회의는 각오가 선 인간을 만들며,
필기는 정확한 인간을 만든다. - 베이컨


고전이란 누구나 이미 읽을 것으로 자부하려 들지만,
실은 누구나 읽고 싶지 않은 것이다. - 마크 트웨인


육체는 슬프다. 아아, 나는 만 권의 책을 읽지 못한다. - 말라르메


나는 1시간의 독서로 시들어지지 않는 그 어떤 슬픔도 경험하지 못했다. - 몽떼스끼외


책은 한 번 읽으면 그 구실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재독하고 애독하며, 다시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애착을 느끼는 데서
그지없는 가치를 발견할 것이다. - 러스킨


본능적으로만 치우치는 어리석은 무리의 미덕은 결코 영속되지 못한다.
독서를 경멸하고 과학을 경멸한다. 예술을 경멸한다. 자연을 경멸한다.
정신을 단돈 몇 푼으로 처리하는 그런 국민은
이미 존재를 유지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 러스킨


번역이 있는데 원문으로 책을 읽으려는 것은
보스턴으로 가는데 찰스 강을 헤엄쳐서 건너가려는 것과 같다. - 에머슨


사람의 품격은 그가 읽는 책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마치 그가 교제하는 벗으로 판단되는 것과 같다. - 스마일즈


얼굴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은 운명 탓이나,
독서나 독서의 힘은 노력으로 갖추어질 수가 있다. - 세익스피어


독서는 정신적으로 충실한 사람을 만든다. 사색은 사려깊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논술은 확실한 사람을 만든다. - 벤자민 플랑클린


책을 많이 읽을수록 독서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독서광이라 불리워지는 사람들은 한눈으로 여러 대목을 살피며 읽어낸다.
그리고 요점만을 골라 낸다. 그러므로 자기가 필요한 대목을
자력적인 방법으로 인용할 수가 있다. - E. A. 포우


서 습관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유일한 즐거움이다.
모든 쾌락은 시들어도 이것은 지속된다. - 패디먼
 



* 자료출처 : 나우누리 출판비평모임       서춘웅 목사님 방:  posted by esther
청년 정원사  
 





                 


- 꿈꾸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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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관리에 관한 명언 모음
                                            
■ 사람은 금전을 시간보다 중히 여기지만,  그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은 금전으로는 살 수 없다. - 유태인 격언

■ 오늘을 붙들어라. 되도록 내일에 의지하지 말라. 오늘이 일년 중에서 최선의 날이다. - 에머슨

■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시간은 묻지 않았는데도 말을 해주는 수다쟁이다. - 에우리피데스

■ 시간의 흐름이 빠른지 늦은지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는 시기에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 트루게네프

■ 내 인생이 성공한 것은 어느 때라도 반드시 15분전에 도착한 덕분이다. - 넬슨

■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 에디슨

■ 시간에의 충실, 그것이 행복이다. - 에머슨

■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활동이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일함이다. - 괴테/font>

■ 시간이 덜어주거나 부드럽게 해주지 않는 슬픔이란 하나도 없다.  - 키케로

■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 한층 더 짧아진다.  -S·존슨

■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이기 때문이다. - 톨스토이

■ 하나님은 지혜가 깊어도 미래의 일을 캄캄한 밤으로 덮어두셨다.

■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과거이다. - 바이런

■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산다. -  J. 하비스

■ 때가 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시간은 진리의 아버지이다. - 타블레

■ 제일 많이 바쁜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간을 가진다. - 비네

■ 젊을 때에 배움을 소홀히 하는 자는 과거를 상실하고 미래도 없다. - 에우리피데스

■ 아침잠은 시간의 지출이며, 이렇게 비싼 지출은 달리 없다. - 카네기

■ 과거는 모두 잊었다. 나는 미래만 보고 있다. -에디슨

■ 기회를 기다려라. 그러나 절대로 때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 F.M. 밀러

■ 시간은 모든 것을 데리고 가버린다. 뿐만 아니라 시간은 사람의 마음마저 가져가 버린다. - 베르길리우스

■ 세월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다. 이 자본을 잘 이용한 사람에겐 승리가 있다. - 아뷰난드

■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 세네카

■ 내일을 위한 최선의 준비는 오늘의 일을 모두 마치는 것이다.  - W. 오슬러


■ 오늘 하루 이 시간은 당신의 것이다. 하루를 착한 행위로 장식하라. - 루즈벨트

■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 있고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 - 소포클레스

■ 삼십 분이란 티끌과 같은 시간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 동안이라도 티끌과 같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 괴테

■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 러스킨

■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 F. 실러

■ 과거는 과거다.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 미래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현재보다 오늘이 더 중요하다. 오늘보다 지금이 더 중요하다.
    지금과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있다고 확신하자. - A. 모루아

■ 시간의 참된 가치를 알라. 그것을 붙잡아라. 억류하라.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즐겨라.
 게을리 하지 말며, 헤이해지지 말며, 우물거리지 말라.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 체스터필드


■  가장 큰 시간 손실은 뒤로 미루는 일과 기다리는 일이다.
    흔히 우리는 현재를 놓고 우연히 작용하는 미래를 기다린다.
    말하자면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있는 사람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에 마음을 쓴다.  - 쇼펜하우어

■ 우리는 일 년 후면 다 잊어버릴 슬픔을 간직하느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있습니다. 소심하게 굴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 카네기

■ 사람이 자기의 미래에 관하여 너무 알고 나면, 그의 일생은 항상 끝없는 기쁨과 공포가
  뒤얽히어 한순간도 평안할 때가 없을 것이다. - V. 위고

■ 우리는 흔히 내일 내일 하고들 있지만, 이 내일이라는 것은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므로
오늘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 카네기

■ 지금이야말로 일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싸울 때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때다. 오늘 못하면 내일은 할 수 있는가. - 토마스 아켐피스


■ 과거는 죽은 것이다. 과거는 지나간 버림받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미래는 호사가들이나 생각하는 꿈과 마찬 가지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지드

■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면 그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하루를 유익하게 보낸 사람은 하루의 보물을 파낸 것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냄은 내 몸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 천 명 중의 한 사람만이 현재를 진실하게 사는 길을 안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시간의 59분을 과거사 때문에 낭비한다.
혹은 미래의 꿈이나 공포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렇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시간을 잃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 한 번 이 세상에 있다가 간다.
이 순간에도 세상은 사람들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은 매우 중요하며 삶의 진정한 길은 순간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기적이고 그리고 이 날은 되풀이되지 않음을 명심해 살아야 한다. - S. 제임스




출처: 서춘웅 목사님 방, 작성: Esther
37. 성막뜰, 문, 울타리
    성막뜰과 문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너는 성막(聖幕)의 뜰을 만들찌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찌니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찌며 그 북편에도 광이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찌며 뜰의 옆 곧 서편에 광 오십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동을 향하여 뜰 동편의 광도 오십 규빗이 될찌며 문 이편을 위하여 포장이 십 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문 저편을 위하여도 포장이 십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찌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뜰 사면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뜰의 장은 백 규빗이요 광은 오십 규빗이요 세마포장의 고는 오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찌니라. (출27:9-19)

[계시의 말씀에 따른 제작]
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편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그 북편에도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서편에 포장은 오십 규빗이라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동으로 동편에도 오십 규빗이라 문 이편의 포장이 십 오 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문 저편도 그와 같으니 뜰문 이편, 저편의 포장이 십 오 규빗씩이요 그 기둥이 셋씩, 받침이 셋씩이라 뜰 사면의 포장은 세마포요 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뜰의 문장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짰으니 장은 이십 규빗이요 광 곧 고는 뜰의 포장과 같이 오 규빗이며 그 기둥은 넷인데 그 받침 넷은 놋이요 그 갈고리는 은이요 그 머리 싸개와 가름대도 은이며 성막 말뚝과 뜰의 사면 포장 말뚝은 다 놋이더라 (출38:9-20)

[용어풀이]
  • 세마포장(細麻布帳):가는 삼(아마)실로 짠, 썩 고운 흰색 삼베천
  • 갈고리:세마포장을 걸기 위해 기둥에 설치된 고리
  • 규빗(Cubit):옛적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로서 성인 남자의 팔꿈치에서 펼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대략 45.6Cm에 해당함. (사람마다 팔의 길이가 다를 수 있으므로 1규빗을 약 45Cm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음)
  • 가름대: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로 일정하게 연결하여 기둥을 튼튼히 하고 세마포장을 팽팽하게 하는 막대
  • 뜰의 문장(門帳):성소의 출입구 휘장이 아니라 뜰의 출입구 문에 치는 휘장(천)
  •     성막뜰, 울타리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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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막뜰, 울타리,문] [문]

        성막뜰(교회를 상징), 울타리와 문

    성막뜰은 동서 길이가 100규빗, 남북 너비가 50규빗의 직사각형으로서 우리나라 기준으로 약315평(坪) 넓이가 된다. 이곳에는 번제단과 물두멍,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막 본체가 있었다. 제사장들은 이 성막뜰 북편이나 남편에서 희생제물을 잡거나(레1:3)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먹기도 했다(레6:16). 즉, 이 성막뜰은 제물로 바쳐질 동물들이 죽임을 당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제사장들이 먹는 화목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 성막뜰을 이루는 울타리 높이는 약2.5m 정도가 되었고 울타리는 세모포장(細麻布帳)으로 둘러쳐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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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막뜰 평면도]

    그리고 동쪽에 약 9m정도 넓이의 유일한 문이 하나 있었다. 이 문은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은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요10:9,14:6). 실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문이나 통로는 전혀 없는 것이다. 성막의 동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죄인을 맞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듯 항상 넓게 열려 있었고, 성막의 뜰 안에는 제사장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민8:9-26,18:3-7), 일반 평민들까지도(레12:6-7,15:14,29)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으며 또한 전혀 차별이 없음을 보여 준다.



     
     [자료 출처] : 나그네(뉴욕온유한 교회, 안승백목사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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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새겨두고픈 명언들-♤ 1.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우리 문제를 덮어 버린다 -레바딘 2.기도는 인류가 가진 최고의 유용 가능한 에너지이다 -부버 3.하나님이 나의 친구인 한, 나는 비참해 질 수 없다 -오비드 4.겸손이란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식함으로 온다 -트랜쉬 5.제자란(disciples) 예수님을 좇는 사람이란 뜻일 뿐 아니라 삶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재생해 내는 사람들이다 -토니 에반스 6.온유란 분노와 무관심 사이에 존재하는 절제된 중용의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7.성경이 없는 가정은 나침반 없는 배이다 -스코트 8.연단이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정재시키려고 채택하신 그분만의 독특한 방법이다 -몰리노스 9.율법은 우리 죄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죄를 깨닫게 한다 -조지 다우네임 10.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가슴이다 -트로터 11.사랑이 없는 신앙은 한푼의 가치도 없다 -마틴 루터 12.생애 동안 공의의 혜택을 원한다면 순종은 그 보험료이다 -윌리엄 13.성령의 채움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비움이 선행되어야 한다 -토저 14.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되었지만. 죄인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분의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널드 블로쉬-
    재테크(財-tech), 시테크(時-tech) 등이 넘쳐도 애테크(愛-tech)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성경이라는 나침판이 없는 사랑이나 부부관계나 가정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와 같습니다. 어떤 인간 관계이든, 무슨 일이든지 예수님과 함께 시작하고 주님과 함께 마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정녕 복(福)있는 사람입니다.

    인도 교회 위협,″힌두교 신에게 경배하라″
    힌두교 무장 폭도들, 교회 대상으로 테러 급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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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부활절 주일, 맹갈로르의 발마타의 한 예배당에 성도들이 부활주일 예배를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이 시간에 맞춰 약 25명 가량의 힌두교인들이 무장을 하고 교회로 모여들어 집기를 닥치는대로 부수고 교인들을 위협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폭도들은 집기들 뿐 아니라 찬송가와 성경책 등을 닥치는대로 집어 던지고, 찢어 버리기까지 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교회측이 입은 피해는 약 15만 루피(미화 약 3800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같은 날, 망갈로르의 또 다른 곳에서는 약 15명 가량의 무장폭도들이 반타구리의 한 교회를 급습했다. 이들은 인도에서 가장 강경하고 폭력적인 힌두교 집단인 바즈랑달의 청년조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이 교회의 파울로우제 목사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팔목도 심하게 삐는 부상을 당했다. 파울로우제 목사의 부인도 구타를 당했으며, 목사 부부가 기거하는 집과 차량도 크게 파손되었다. 폭도들은 이 교회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예배를 계속한다면 추가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현장을 벗어났다고 한다.

    이에 앞서 4월 11일에는 역시 힌두교 강경단체인 비쉬와 힌두 파리샤드(VHP) 소속원 50명 가량이 한 기독교 모임 현장에 난입하여 한 시간 이상이나 머무르면서 현장을 비디오로 촬영했다. 당시에 현장에는 약 500 명 가량의 성도들이 예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이들 가운데 15명이 강대상 위에까지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한 목사를 지목하며 힌두교도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자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나서는 철제 체인과 막대로 죠셉 이라는 이름의 목사를 약 30분 가량이나 마구 구타했다. 그러나 이들은 무기와 흉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 무려 500 명이나 되는 교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이후 현장에 있던 목사 5명은 강제로 인근의 힌두교 사원으로 끌려갔고, 이들은 목사들에게 힌두교의 신들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목사들은 완강하게 저항했고, 심한 구타를 당해 2명은 큰 부상을 당했다.(출처:매일선교소식)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찌어다 (겔2:6)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붙이시리니 너는 그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필경은 그들을 진멸하리라(신7:24)


    하나님, 인도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불 같은 마음을 가진 주의 성도들을 일으켜 주십시오. 두려움 없이 주의 교회를 위협하며 주의 종을 끌고가 이방 신에게 절하게 하는 사단의 권세를 결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힌두교의 우상들아 너희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였으니 너를 당할 자가 없이 필경 인도 땅에서 진멸될 것을 선포하노라.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여호와께서 우리 손에 붙이심을 인하여 찬양합니다. 주의 손에 창조된 인도 영혼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옵소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기사제공 : 기도24365 (본부)  이미지 전체보기prayer@prayer24365.org 

    [영화] The Bridge
     -이곳을 클맄하세요

    MOST_The Brideg, 2003 체코의 단편 영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표현함



    애모랄디즘(Amyraldism) 혹은 애모랄디아니즘(Amyraldianism)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이 한국교회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먼저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럴 정도로 이 말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사이에 이미 파고들어와서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 버리고 있는 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서 이 게시판을 개설하면서, 이 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소위, 개혁주의나 칼빈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면서도 너무나 중요한 그 핵심을 갉아먹고 있는 이 애모랄디즘을 다른 용어로는 '가설적 보편주의"(hypothetical universalism) 혹은 "4요소칼빈주의"(4-point Calvinism)이라고도 한다. 특별히 "4요소칼빈주의"라는 말은, 칼빈주의의 핵심표현이기도 한 다섯 개의 교리 중의 하나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 원래의 형태는,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교리를 부인한 것인데, 현대에 와서는 다른 변형적 주장을 가미해서 여러 가지 변종들을 낳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곧 그 부정하는 요소들이 어떤 것이냐 따라서 그 주장하는 형태가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 약간씩 다르기도 해서, 분류하기에 헷갈리기도 하는데, 이 주장들에 대해서 대략이라도 애해 두어야, 참된 복음의 생명력이 왜곡, 변질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과 교회가 잘 보존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주장의 원래 형태는 17세기의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곧 Moses Amyraut(1596-1664, 혹은 Amyraldus라고도 함)라는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이 사람이 활동한 신학교가 Samur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을 "새머학파"(School of Samur)라고도 한다. 이 Amyraut의 주장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을 "가정하고" 죽으셨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택자들과 맺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조건적 언약이라고 하는 주장으로 확대되고, 결국은 성도의 견인을 부인하게 되고, 좀 더 진전되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견해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한 부분의 주장이 왜곡됨으로 인해서, 다른 부분의 주장에까지 일종의 누룩이 확대되는 과정을 이 신학적 경향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런 저의 글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되면, 지금 당신은 현대신학의 뜨거운 도가니 속에 들어와 있는 지도 모른다. 현대신학의 정체를, 혹은 보수신학이나 개혁신학으로 위장되어 있는 거짓된 신학의 정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싶다면, 바로 이 용어에 대해서 약간은 익숙해 져야 할 것이다.


    애모랄디즘 -


    조금은 낯선 용어이지만, 이 신학의 정체를 알고 또한 그 변종들의 실태를 나름대로 잘 이해한다면,


    그대는 참 복음의 실체를 또한 어루만질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게시판을 새롭게 열어본다


    양무리 카페지기 홀리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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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의 만종

    Jean Francois Millet(1814-1875) 장 프랑수아 밀레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 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됐다.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누가 이 그림 속에 어린아이의  시체가 먼저 그려졌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1904-1989)였다.

    가  9살 때부터 이 그림을 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불안감이

    그를 괴롭혔던지, 그는 그 까닭을 알아내려고 책까지 쓰기도 했다.

    달리는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두 부부 사이에 놓여진 감자자루를 어린아이의 관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수십 년 후(1963년),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서 그 감자 자루가

    초벌그림에서는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밀레는 이 그림을 통해 하루가 끝난 다음의 휴식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고  

    아이의 죽음을 통해 우리 인생의 끝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달리는 밀레의 그림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던 것이다

     

                                                               - 옮긴글 -




      

     출처: 서춘웅 목사님 방, 준비: Esther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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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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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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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화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3.6∼1564.2.18)

    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건축가·시인. 카프레세 출생.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나, 양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13세 때에 기를란다요(Ghirlandaio)에게 입문하였고, 이듬해 조각가 베르톨도(Bertoldo di Giovanni:1420?∼91)에게로 옮겨 도나텔로의 작품을 배우면서, 메디치가(家)의 고대 조각을 연구하였다. 그 때 로렌초 일 마니피코(Lorenzo il Magnifico:1449∼92)에게 인정받아, 그의 집에서 체류하게 되어, 인문 학자들과도 접촉, 고전문학이나 신구약 성서를 탐독함과 동시에, 조각을 위한 인체 해부에도 전념하였다. 블랑카치 성당 마사치오의 벽화 앞에서 토레지아니와 논쟁하다가 코뼈가 부러진 것도 그 때의 일이며, 이때의 작품으로는 피렌체의 카사 보나로티에 남아 있는 도나텔로풍의 [스칼라의 성모]와 고전적 격조를 보인 [켄타우르스족과 라피타이족의 싸움]의 부조(浮彫)가 있다. 1492년 메디치 가의 로렌초가 죽은 후, 프랑스군이 침입하자 볼로냐로 피난, 거기서 J.d.퀘르치아의 조각도 배웠다. 96년 로마로 나올 기회를 얻어 고전 예술에 접촉, 조상 [바쿠스](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 소장)를 제작,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Pieta]를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로 완성한 것은 99년경이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시청으로부터 [다비드]의 대리석상을 부탁 받아 1504년에 완성하였다.

    1506년 말 미켈란젤로는 다시 율리우스 2세에게 불려가, 볼로냐에서 화해하고, 1508년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天障畵)를 위촉받았다. 벽화에는 경험이 없다고 사퇴하였으나, 허용되지 않아 적대자 브라만테의 간계를 물리치면서 제작을 시작하였다. 일은 진척되지 않고, 보수도 지불되지 않고, 형제들로부터는 금전을 강요당하고, 교황과도 충돌하는 악조건 하에서 12년에 마침내 완성하였다. [천지 창조],[인간의 타락],[노아 이야기]의 3장 9화면을 구약 내용의 순서와는 반대로 그리기 시작, 그 화면 사이에 예언자나 천사(天使)나 역사(力士)를 배치하고, 복잡한 모습을 부여하여, 묘사된 대리석상 같은 인간군상을 부각하였다.

    새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안쪽 벽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다음 해부터 혼자 착수, 고생 끝에 6년 후인 41년에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을 완성하였다. 그리스도가 ‘성난 그리스도’로서 거인처럼 군림하여, 천국에 오르는 자와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가 좌우로 크게 회전하는 군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 구도(構圖)와 동적 표현은 르네상스의 고전 양식을 해체하여 격정적인 바로크 양식에의 추이(推移)를 보였다.

    47년에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조영 주임이 되어 57년 대원개(大圓蓋)의 목제 모델을 완성하였다. 그 사이에도 [피에타:Pieta]의 군상을 3체(體)(피렌체 대성당, 팔레스토리나, 론다니니)나 만들었고, 어느 것이나 미완성으로 끝나기는 하였지만, 힘없이 쓰러지는 그리스도를 성모들이 슬피 부축하는 군상의 생생한 끌 자국에는 끝없는 고뇌의 영혼이 영원의 휴식을 추구하는 것 같은 그의 만년의 심경이 엿보여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 무렵 로마에도 동란이 일어나, 고향 피렌체에의 향수에 젖으면서, 병을 얻어 르네상스로부터 초기 바로크에 이르는 89세의 오랜 예술적 생애를 마쳤다. 메디치가(家)나 교황에의 봉사를 끝없이 요구 당하면서도 언제나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여 싸운 그의 괴로운 심경은 남겨진 편지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예술은 모두 이와 같은 인생의 고뇌와 사회의 부정과 대결한 분개와 우울과 신앙의 미적 형상화이며, 더욱이 그것은 초인적인 억센 제작력에 의해 달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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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 Pi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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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1504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9)
    츨처:CGNTV
     

    불경 나마다경(38:8)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석가모니의 예언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 燈也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 등야

    이 말은 놀랍게도

    "언젠가 예수께서 오시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름없는 등과 같이

    쓸모가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불경에 있는 내용으로,

    석가가 입멸하기 전 최수로 한

    설법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석가모니는 마지막에는

    자신이 깨닫고 가르쳐왔던 불교의

    모든 교리를 부정하고 갔습니다.

    ....................................................................................................................................................


    "사단이여! 어서 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부처님입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탄이여 ! 어서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읍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은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줄 알 때에 착한생각 악한생각, 미운마음, 고운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처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볼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 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1987. 사월초파일. 성철스님 법어>


    조선일보 - 1987.4.23 7면 / 경향신문 - 1987.4.23 9면 /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사서실 [큰빛총서 1] - 서울사시연 1994년 p. 56-59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으로 있던 1987년 "부처님 오신날" 법어에서
    이 영적 사실을 모르고 보이는 대로 자신의 체험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 스님은 죽음 앞에서      

    이 영적 사실을 깨닫고 토로했습니다.


    생평기광 남녀군 - 일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미천과업 과수미 -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신보다 더 크다
    활염아비 한만단 -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갈래나된다
    일륜토홍 괘벽산 - 한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성철스님의 열반시
    - 근거 (조선일보 1993.11.15 15면),동아일보(1993.11.5 31면)
    경향신문 1993.11.5 9면, 중앙일보 1993.11.5 23면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유언에서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성철 스님의 가슴의 한이 당신에게도 들려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을 운명과 사주팔자로 얽어매고 망하게 하는    

    사탄의 실체를 확인하시고 거기서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


    성철 스님 운명전 석가는 큰 도적이라는 시를 남겼다.

    [성철의 운명전 참 깨달음의시]

    석가는 원래 큰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西天(서천)에 속이고 東土(동토)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 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녀잎에 夜叉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섬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빽빽함이여 바람이 씽씽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 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 1 2 3 4 5 6 7 이여
    두견새 우는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억!---

    * * * * * * *

    위의시는 성철의 운명전
    시사저널 김당기자가 취재해 온 것이며
    이 시는 추상적인 시가 아니라 성철스님이 운명전 영계를 직접보고
    그리고 지옥의 석가와 달마와 가섬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싯구로 잘 묘사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 말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극락 간다는 말은

    원래 성경 시편 43편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였다

    극락은 천국의 낙원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믿고 죄사함을 받은 자들이 가는 곳이며
    석가와 달마도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성철스님이 영계속에서 직접보고 시로 옮긴 것이다


    성철 스님은 그렇게 운명하셨습니다.
    이 시는 운명전 영계를 직접보고 석가와 달마와 가섬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싯구로 묘사한 것입니다.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서야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온 우주에는 룰(Rule)이 있고 질서가 있어 달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태어난 이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다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서 들고 태어난 것 없이 다 하나님 주신 것을 한 평생 활용하며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고

    사탄에게 속아 한 평생 사탄을 섬기고 살게 된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삶도 환경도 죽음도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아울러 천국과

    지옥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법(Rule)대로 되는 것입니다.

    부디 따지려 하지 마시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으시기 바랍니다.

    ................................................................................................................

    출처 :도사초등학교 동문들의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 이른 봄

    아프간 공습으로 탈레반·시민 97명 사망
    탈레반 은신처 아지지 마을에서 공중폭격을 벌여 “탈레반 잔당 80명 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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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 서부 지역의
     반군 거점에 공습을 벌여 탈레반 80명과 아프간 주민
     17명이 숨졌다.
    연합군은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21일 저녁~22일 새벽에
    걸쳐 칸다하르주의 탈레반 은신처로 알려진 아지지
    마을에서 공중폭격을 벌여 “탈레반 잔당 80명을
    소탕했다”고 밝혔다.
    아사둘라 칼리드 칸다하르 의사들은 공습으로 시민
    17명이 숨졌고, 15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난 17일 이후 남부와 서부 지역에서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군을 포함한 연합군 사이에 산발적 교전이 벌어져,
    이번 공습 피해자를 빼고도 150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경찰은 이날 가즈니 주에서 전날 납치됐던 모함마드 알리 잘라리
    전 팍티카 주지사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잘라리 주지사는 21일 전 팍티카
     경찰서장 등 2명과 함께 예배를 보던중 납치됐고, 전 경찰서장 등 2명은 무사히 풀려났다.
    납치극을 벌인 주체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탈레반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한겨레신문)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28:1-5)


    하나님, 두려움과 분열과 전쟁은 모두 대적자에게 속한 것입니다. 악인들은 스스로 도망하여
    자신이 지키는 율법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공의를 깨닫지 못하고 달음질하여도
     기가막힐 웅덩이에 빠질 뿐이며, 자기의 꾀에 계획하여도 인도하심과 주권은
    오직 여호와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간다 할 지라도 영원한 생명이
    주께 속해있으며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면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탈레반의 지도자들이 붙잡힌 후 더 악이 드러나는 이 때에 주님 모든 악이 없어지기 까지
    속히 끊어주시고 모든 정사와 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강하여 용맹을 발하게 하옵소서.
    기사제공 : 기도24365 (본부)  이미지 전체보기prayer@prayer24365.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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