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교회에서 하는 주기도문은 바른 기도의 내용이 들어있지만

그것을 반복적으로 예배 형식의 한 부분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달라한 것은 (눅11:1)

당시 요한 뿐아니라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주었고

그 제자들은 기도문을 가지고 그대로

외워서 하였습니다.

 

바로 그처럼 제자들은 염두하고 주님께 청하였는데

주님은 그것이 아니고

이러한 방법으로 기도하라며 기도할 내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일 기도문으로 주셨다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가르친 기도가 (마6:9-13 / 눅 11:2-4)

글자가 똑같아야 하는데 비교해 보면 다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원문에 '이러한 방식으로'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마6:8)

 

천주교에서는 기도문이 책으로 엮여있습니다.

그 내용을 매일 반복적으로 읽으며 기도하고

외워지면 보지않고 하면서

몇번 하는 지 손에 묵주를 돌려가며 반복합니다.

이방인의 중언부언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것이며

 

주기도문을 교회 모임에서 1회로 끝난다고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으나

예배나 모임의 끝으로 흔히 하는 기도문은

시간적 간격이 크다뿐이지 결국은 반복적인 것이며

내용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의 마음의 감정과 인격을 담아 고백해야 하는

기도와는 멀어지고 형식적이 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을 따라

나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했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빚진자들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 같은 기도 내용을

'주님! 제가 OOO의 잘못을 끝내 용서를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의 죄도 용서해주시지 않으시겠네요.

아직도 OOO에 대한 생각이 저를 미움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합니다.

저의 마음을 다스려서 용서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와 같은

내용으로 내 삶에 직접적인 마음의 진솔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의 형편에 따라 다르므로

함께 기도문을 합동으로 하는 것은

결국 틀에 모두를 묶는 것이기에 옳지 않은 것이고

주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던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출처: 가나의 혼인집

 출처

“크리스천들이 속고 있다”

(이 시대 크리스천들이 꼭 봐야 할 영상)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막 3:35)


 

 

 


사랑을 위하여 40년이 되었다 교회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강산이 변해도 4번이나 변했다 요즘 강산은 하루아침에도 변하지만... 40년 내 신앙의 발걸음을 돌아본다 변한 것이 없다 첫 사랑에 빠져 몇 년을 뭐 몰라라 하고 다닌 거 말고는... 내 마음도 옛날 그대로이고 내 행동도 옛날 그대로이다 그러니, 나에게 어떤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까 변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 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지난 10여 년을 아내 없이 덩그라니 방 한구석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채 10년은 안되었지만 아내가 쓰러져서 요양원에 가 있는 시간이 9년 하고도 5개월이다. 홀로 남으면서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를 기대했다. 아직 때가 이른 봄철인가 그 깊은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외로움만 더하고 있다 이젠 나를 잊어버릴만한 때도 되었건만 오히려 나를 나되게만 하는 익숙함에 젖어 있다.

이제 내가 바위 앞에 서리라 그곳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바위처럼 완고한 나 거기 하나님의 지팡이가 닿으니 나는 쪼개지고 물이 솟아 나왔다 가슴이 쪼개지니 생명수가 흐르고 생명수가 흘러 넘치니 죽었던 심령이 살아난다 죽음에서 살아나니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찬란한 태양처럼 떠오르신다 그 찬란한 태양빛으로 만물이 살아난다 꽃은 잎을 피우고 새들도 노래하고 삶이 꿈틀거리는 것을 본다. 새롭다 신비하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신비, 죽었던 내가 살아나는 이것이 어찌 신비로움이 아닌가. 사랑, 주어야지 내 한 몸 부서지더라도 남은 피 한방울 다 쏟을 때까지 주고 또 주고... 사랑하리라...



-해처럼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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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질문한다는 것은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한번에 모든 곳에 임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육체에 속박된 분이라고 누가 그랬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습니까? (그분의 귀는 우리의 귀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부, 성자, 성령님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과는 체질이 다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없다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훨씬 더 큰 죄인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 반대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은혜를 베푸실 수 있습니다. 은혜는 그분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집/맥스 루케이도

십자가 그 사랑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기를 원한대요
사람들은 모두
사랑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간혹 어그러진 사랑도 있지만
모두가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태초에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해
어떤 사람은 부귀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고
모두가 다 자기 사랑을 찾아다니고 있네요.

세상 사람 모두는 사랑을 받기 원해요.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있는 사랑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어린 사랑
연인간의 달콤하고 황홀한 사랑
아프고 외로운 영혼들도
위로 가득한 사랑을 받기 원하네요.

세상 사람들 이 사랑 받지 못해
참 평안 얻지 못하고
저마다 사랑을 찾고 받기 원하나,
오호라!
그 사랑을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랑을 떠난 무지한 사람들
참 사랑 알지 못해
참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고 있어요.

십자가 그 사랑
갈보리 언덕위 피흘린 그 사랑
아무 댓가없이
대신 죽어진 그 사랑
그 사랑이 사랑 중의 사랑일진대
이 사랑 알지 못해
헛된 사랑속에 빠져 살고 있네요.

영원하지 않은 것은
모두가 다 진리가 아니랍니다.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면,
환경따라 변하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최고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것
시대를 초월하고
인종을 넘어서고
종교를 넘어서야 한답니다.
십자가 그 사랑은
그렇게 그 모든 것을,
삼라만상 우주를 품은 것이랍니다.

우리도 그 사랑 따라 살아봐요
위로는 하나님
아래로는 이웃
이 두 사랑이 최고의 계명
새 계명일진대
가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 보자구요.

나는 그 사랑 짊어줄 수 없으나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하네요
그 사랑이 나를 붙들어 주네요
One Way!
일방적인 사랑!

오늘 나에게 노래가 있음도
나에게 내일이 있음도
십자가 그 사랑 때문이랍니다.

십자가 그 사랑이
참 사랑이랍니다.


-해처럼달처럼






서울 하늘에 나타난 예수의 형상, 예수의 사진, 예수의 기적



하늘에 갑자기 예수의 형상이나 모습이 나타난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리고 과연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는 실제 존재하는 신일까요?

정말 예민한 주제가 아닐 수 없지요.

오늘 게시글의 주제를 예수의 형상(사진)으로 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중세부터 지금까지 예수에 대한 존재 여부가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어 왔지요.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예수는 실존했던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실존에 대한 논쟁은 그 결론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죠.





1951년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으로 인해서 한창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하늘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1951년 3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유엔군의 참전으로 북쪽으로 밀려갔던 북한군이 다시 중공군의 지원을 받아 남쪽으로 공격해 내려오고 있었지요.

북한군에게 다시 서울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후퇴하던 상황에서 미군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서울을 다시 점령하던 상황에서 미군은 서울에 주둔해 있는 북한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지요.

결국 미군은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 대규모 비행단을 수도서울의 상공에 진입시켜서 폭격 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합니다.



북한군에게 돌아간 승기를 다시 잡기 위해서 미군이 세운 골육지책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미군의 폭격 작전은 영국군과 유엔군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 이유는 미군폭격기들이 수도 상공에서 융단폭격을 가하면 미처 피난가지 못한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군은 영국군과 유엔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B-29기 비행단을 출격시킵니다.


그런데 서울쪽으로 날아갔던 비행단 전투기들 사이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미군 전투기들이 경기도에서 서울쪽으로 막 넘어가려고 할 때에 하늘에 이상한 물체가 떠 있는 것을 비행기 조종사들이 목격하게 됩니다.



전투기를 몰던 한 조종사가 하늘에서 예수형상을 목격했던 것이지요.

그 조종사는 이 사실을 본부에 보고하게 됩니다. ‘하늘에 커다랗고 하야한 옷을 입은 예수의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고 보고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조종사에 이어서 다른 조종사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늘에서 예수의 형상을 목격했다는 보고들이 계속해서 본부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수도 서울 상공에서 융단 폭격을 하기 위해 출격했던 B-29기 전투기조종사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말로 하면 맨붕에 빠지게 된 것이죠.

결국 미군본부에선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퇴각명령을 내리게 되었고 출격했던 B-29기 전투기들은 모두 부대로 복귀하는 상황이 벌어졌지요.

그 시기가 1951년 3월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51년 3월 미군 B-29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목격되었던 하늘에 떠있는 예수형상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조종사 한명도 아니고 수많은 조종사들이 목격했던 예수의 형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당시 출격했던 미 B-29기 전투기 안에는 종군기자 로버트 게리슨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B-29기 전투기 안에서 종군기자 로버트 게리슨이 하늘에 떠있는 예수의 형상을 사진기로 찍었으며 그 사진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아래 사진이 바로 그 당시 종군기자 로버트 게리슨이 찍은 실제 예수형상의 사진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이 예수형상의 사진도 종군기자 로버트 게리슨이 찍은 실제 예수의 사진입니다.



바로 이 예수의 형상이 갑자기 서울 상공에 나타남으로 인해서 출격했던 미군폭격기들은 폭격을 포기하고 다시 부대로 복귀했던 것이고 이로 인해서 아직 서울에서 피난가지 못했던 수많은 한국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하늘에 갑자기 출현한 예수의 형상이 수많은 한국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이고 신화 같은 이야기이지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1951년 3월 한국 서울의 상공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입니다.

즉, 수도 서울의 상공에 예수가 나타난 것이지요. 진짜 예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조종사들이 목격했으며 종군기자 로버트 게리슨도 목격했으며 그가 그 당시에 찍은 예수의 사진은 현재까지도 남아있어 그 증거가 되고 있지요.



과연 1951년 3월 서울의 상공에 출현했던 예수의 형상은 진짜 예수였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외계의 존재일까요?

미국 OSS(전략사무국)에서는 이 불가사한 현상을 밝히기 위해 오랫동안 조사활동을 벌였지만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하고 영원히 미스테리를 남게 되었다고 하네요.


1967년 월맹군과 미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여졌던 베트남전을 돌아가 볼까요?

67년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월맹군을 공격하기 위해 팬텀기편대를 월맹군의 본거지인 호치민시에 출격시켰죠.

그러자 월맹군은 전투기 요격용 무기인 고사포를 발사하여 미군 팬텀기들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호치민시를 방어하기 위해서 월맹군들이 맹렬하게 고사포를 쏘아올렸지만 미국 팬텀기들은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월맹군들은 팬텀기를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한 채 자신들의 고사포 포탄을 모두 소진하게 되었고 월맹군의 고사포 공격에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던 미국 팬텀기들을 월맹군들은 ‘도깨비’라고 부르며 두려움에 떨었다고 하네요.


이 전투에서 미군은 월맹군을 대파하였는데 이렇게 미군 팬텀기가 한 대도 적의 포탄에 맞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 당시 출격시켰던 미군의 팬텀기들은 진짜 팬텀기들이 아니라 홀로그램을 사용해서 만든 가짜 팬텀기들이었다고 합니다.

즉, 미군은 진짜 팬텀기들을 출격시킨 것이 아니라 팬텀기 이미지를 호치민시 상공에 홀로그램을 이용해서 만들어 놓고 월맹군의 고사포공격을 유도하여 고사포폭탄을 모두 소진시키게 하는 전략이었지요.

월맹군은 하늘에 이미지만 만들어놓은 허공에다 대고 아까운 고사포 포탄만 낭비하였던 것이지요.



1991년 1월에 발생한 걸프전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지요.

후세인의 이라크군과 미국이 주축이 된 다국적군 전투에서도 미군은 홀로그램을 이용한 가짜 전투기들을 출격시켜서 이라크군의 대공포 공격을 유도하였고 홀로그램으로 만든 가짜인줄 모르는 이라크군들은 엄청난 양의 대공포를 발사함으로서 자신들의 대공포 포탄을 모두 소진시켜 버렸지요.



이렇게 미군과 다국적군은 이라크 방공망을 무력화시키고 난 후 자신들의 진짜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출격시켰고 이라크 대공포의 공격을 받지 않고 바그다드로 출격했던 다국적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엄청난 화력으로 바드다드 요새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해서 바그다드를 초토화시킴으로써 이라크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죠.


미국은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해서 무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불루빔 프로젝트라고 하지요. 이 불루빔 프로젝트를 활용해서 미국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2007년 8월 러시아의 리페츠크 옐레츠 상공에서도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의 형상이 출현했다고 하네요




또한 2008년 4월 미국 레이크랜드 하늘에서도 십자가 형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날 레이크랜드에서는 토드 벤틀리목사가 집회를 하는 도중에 하늘에서 십자가형상이 나타났고 그 집회에 참석했던 수많은 신도들이 십자가 형상을 목격하였고 기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상공에 십자가 형상이 나타나는 미스테리한 현상이 계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는 일들이 벌어졌는데요.


신도들은 이러한 십자가 형상의 출현을 두고 성령의 계시라고 받아들이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미국 레이크랜드에 나타난 십자가형상은 성령의 모습이 아니라 홀로그램으로 만든 가짜 형상이라는 사실을 미국 미리암 프랭클린이라는 과학자가 밝혀내었다고 합니다.

즉, 금세기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 십자가 형상 등은 많은 신도들을 세뇌시키고 자신들의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종교적 지도자들이 계획적으로 만든 홀로그램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베트남전과 걸프전에서 미군이 사용해서 효과를 톡톡히 본 홀로그램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미국 레이크랜드에서 십자가형상을 만들었던 홀로그램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 것일까요?

홀로그램이란 미리 컴퓨터를 이용해서 전투기나 무기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은 후 이 이미지들을 인공위성을 이용해서 해당 지역에 레이저를 발사해서 만들어 놓은 가짜 형상의 이미지를 의미하지요.


즉, 레이저를 쏴서 만든 이미지의 형상을 홀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홀로그램 무기는 레이저 기술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레이저가 발명되었던 1960년도에 비로소 홀로그램 기술이 발견되었지요.



여기서 의문점이 생기네요. 67년 베트남전과 91년 걸프전 때에 전투기 형상을 만들어냈던 것은 홀로그램으로 밝혀졌지요.

그리고 2008년 미국 레이크랜드 상공에 십자가 형상을 만들었던 것도 홀로그램 기술이었구요.

이렇게 홀로그램 기술로 만들었던 형상들은 모두 다 60년대 이후에 발생했던 일들이었지요.

즉, 홀로그램 기술은 1960년에 발견되었으며 홀로그램을 이용한 형상 재현도 1960년 이후에나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한국전쟁 때 서울상공에 나타났던 예수의 형상은 그 시기가 1951년이었는데 이 당시에는 홀로그램 기술이 발견되기 훨씬 전의 일이었지요.

홀로그램 기술이 최초로 사용된 1967년보다 16년이나 앞선 1951년에 서울 하늘에 나타난 예수의 형상과 사진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1951년 서울 하늘에 나타난 예수의 형상은 홀로그램으로 만든 형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그럼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있는 서울 상공의 예수의 형상과 모습은 서울의 수많은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진짜 예수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아무도 알 수 없는 정말 미스테리하고 신비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나타났던 예수의 형상들은 대부분 홀로그램으로 만든 영상들이었지만 유독 51년 한국 서울에 나타난 예수의 형상은 홀로그램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기 그지 없군요.

물론 홀로그램 기술로 만든 형상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진짜 예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서울 상공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은 수많은 조종사들이 목격했었고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까지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1951년 수도 서울의 상공에 나타났던 예수의 형상은

첫째 진짜 예수이던가 또는

둘째 외계에서 온 외계인들의 기술로 만들어진 형상 재현


이렇게 둘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당시는 우리 인류는 홀로그램 기술이 발견되기 전의 일이었으니까요. 그 가능성은 위의 둘 중 하나라고 봅니다.

1951년에 벌어진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다시 점령한 북한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 계획한 미군의 전투기편대 출격으로 그 당시 서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수많은 한국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서 하늘에서 온 구세주 예수가 나타나서 미 전투기들의 공습을 막아준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우리 지구를 탐사하기 위해 지구를 순회하던 외계인들이 한국 서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외계인들의 선진 첨단기술을 이용해서 홀로그램에 의한 예수 형상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 당시 인류가 홀로그램으로 예수의 형상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위에 열거한 두가지 중 하나가 정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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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가 해답이라네


나를 낮추게 하는 것도
나를 높이는 것도
나를 살리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십자가 뿐이라네.

미움을 용서로
시기와 질투를 감사와 축복으로
누군가를 세워줄 수 있는 것도 십자가 뿐이라네.

누군가를 품어주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십자가 뿐이라네.

이 나무가 나를 살게 하네
木,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人),
森, 세 개의 십자가,
골고다 언덕을 상징하는 데...

이 나무가 나를 살게 하네
오늘 내가 숨 쉴 수 있는 것도 이 나무 덕분이라네.
사람이 마시는 산소를 만들어주고
사람이 내뱉은 더러운 것을 대신 먹어주는 나무처럼...
나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고 돌아가신
그 생명이 나를 살게 하네
그 십자가 뿐이라네.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죽어, 열매 맺을 수 없나니...

그 십자가 나무에
접붙임 되어야 생명수를 공급받을 수 있다네
나는 죽어지고 그 나무에 붙어야 하나니
이것이 십자가의 원리라네.

누구든지
십자가에 붙어야 살고
십자가에 죽어야
영생얻는 부활이 있다네.

내가 평안을 누리며
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도
오직 십자가로 말미암아서라네
십자가가 해답이라네.

-해처럼달처럼

 

 

 

 

...하나님의 편지...


너는 나를 잘 모를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너무도 잘 안다.  너의 앉고 일어섬을 알고 (시 139 : 2)
너의 모든 행위를 알며 (시 139 : 3)
너의 머리털을 다 셀 정도지 (마 10 : 29 - 31)
이는 내 형상대로 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창 1 : 27)
너는 항상 내 안에서 살며 기동하여 있느니라 (행 17 : 28)
복중에 짓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렘 1 : 4, 5)
창세 전에 너를 택하였도다 (엡 1 : 11, 12)
너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 정한 날이 내 책에 다 기록되어 있었고 (시 139 : 15, 16)
너의 태어날 때와 살 곳을 정하였으며 (행 17 : 26)
너를 신묘막측하게 만들어 (시 139 : 14)
어미의 모태에서 지었고 (시 139 : 13)
내 너를 취하여 태어나게 하였다 (시 71 : 6)
나를 모르는 자들이 나를 잘못 알렸다만 (요 8 : 41, 44)
나는 너와 함께 있는 사랑이니라 (요일 4 : 16)
이 사랑을 너에게 아낌없이 주련다 (요일 3 : 1)
너는 나의 자녀이고 나는 너의 아비니라 (요일 3 : 1)
육신의 아비가 줄 수 없는 것을 주리니 (마 7 : 11)
나는 온전한 아비니라 (마 5 : 48)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내게로부터 오나니 (약 1 : 7)
네게 있어야 할 것을 내가 아니라 (마 6 : 31, 33)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너의 장래에 소망을 누리는 것은
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렘 31 : 3)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조차 없구나 (시 139 : 17, 18)
나는 너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노래부르며 (습 3 : 17)
너에게 복 주기를 멈추지 아니하리니 (렘 32 : 40)
너는 나의 소유니라 (출 19 : 5)
내가 기쁨으로 너에게 복을 주며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해 너를
이땅에 심으리라(렘 32 : 41)
보아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구하면 나를 만나리니 (신 4 : 29)
나를 기뻐하라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시 37 : 4)
네가 소원을 두고 행하기를 원하노라 (빌 2 : 13)
네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게 주리니 (엡 3 : 20)
나는 너의 위로자니라 (살후 2 : 16, 17)
모든 환란중에도 너를 위로할지니 (고후 1 : 3, 4)
너의 마음이 상할 때 내가 너를 더욱 가까이 하리라 (시 34 : 18)
양을 안은 목자같이 내가 너를 품 속에 안으리라 (사 40 : 11)
언젠가 너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고 (계 21 : 3, 4)
내가 예수를 사랑한 것 같이 너를 사랑함이라 (요 17 : 23)
예수를 통해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보였나니 (요 17 : 26)
예수는 나의 형상이라 (히 1 : 3)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보이고 (롬 8 : 31)
너의 죄를 묻지 않으며 (고후 5 : 18, 19)
너와 화목하게 하려고 그가 죽었나니 그의 죽음은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라 (요일 4 : 10)
너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나의 소중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했다 (롬 8 : 31, 32)
아들의 사랑을 받는 자는 나를 받는 것이요 (요일 2 : 23)
나의 사랑에서 너를 끊을 것이 없느니라 (롬 8 : 38, 39)
네가 돌아오는 날 하늘에서는 기쁨의 잔치를 열리라 (눅 15 : 7)
나는 언제나 너의 아비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나 (엡 3 : 14, 15)
너는 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느냐? (요 1 : 12 - 13)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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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교회의 전도사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교회 헌금 다 모아봐야

목사님 사례비도 드리기 어려운 교회였지요.


어느 날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전도사님. 사례비에요" 하시면서 봉투를 건네시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


목사님도 사례를 받지 못하시는 상황인데

"목사님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서둘러 집으로 와버렸지요.


몇 시간 후, 딩동 소리가 나서 문을 였었더니,

장을 거하게 보셔서 집 앞에 두시고

목사님은 도망을 가버리신 것 아닌가.


대략난감...


그런데 묘한 승부욕이 발동이 되더군요.


찢어지게 가난한 영국 유학생 생활이었지만

"여보. 돈 꼬불쳐 놓은 것 다 주라"

그 돈을 들고 테스코로 달려가서

두배로 장을 봐서 목사님 댁 문 앞에 두고

도망을 쳐버렸지요.


"내가 이겼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우리 집 초인종 소리가 울려서 나가보니,

이번에는 각종 과일이.....

목사님은 다시 도망을 가셨고요.


내 수중에는 더이상 돈은 없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고,

고민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그 때 하늘의 지혜가....


목사님께서 사주신 과일과 장꾸러미를 들고

다시 목사님 댁으로 갔지요.


아뿔싸.

대문앞에 서 계시는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 마음 다 아니까... 이제 그만합시다."


가난했던 그 시절,

목사님과 부등켜 안고 집 앞에서 참 많이 울었지요.


가난한 처지의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게 느껴지니 더 눈물이 났습니다.


목사님 댁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그 길과

그 시간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저런 목사 되어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지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

나는 과연 그런 목사로 살고 있는지...

부끄러운 날들이 쌓여만 갑니다.



출처: 김관성 목사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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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의 김영보 피디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른 피디 하나가 제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 피디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광주 극동방송 지사장 대행을 하고 있는 장대진 피디였습니다.


올 1월에 극동방송 본사 부흥회를 인도한 후 제 설교 영상을 DVD로 제작해서 각 지사에 보냈고 그것으로 예배를 드리게 했었는데 그 영상으로 은혜를 많이 받고 전화 연락을 했었던 피디입니다.


사연을 알고 보니 참 안쓰러웠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 간암 말기인 것입니다. 게다가 암이 폐와 복강으로 전이가 되었고 상태가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계속 제 생각이 나고 기도를 받게 하고 싶어서 연락을 한 것입니다.


저로서는 시간을 내는 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설교 일정이 있었고 주일에는 오전예배와 저녁예배로 인해 이동이 어렵고 다시 월요일부터는 부여중앙교회 부흥회라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토요일에 안양에 있는 병원에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은 주일 준비를 해야 하는 날이기에 마음이 분주하지만 거라사의 한 영혼을 위해 바다를 건너가신 예수님처럼 저 역시 한 영혼을 위해 기꺼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내내 기도를 하고 오후에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서 장 피디를 만나 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이 기독교에 대해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가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장 피디의 형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성령님께서 운행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형이 계속 눈물을 닦습니다. 마음으로 계속 하나님을 부르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주었는데 역시 눈물로 기도를 받습니다. 기도해주면서 구원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었는데 다음에 들르게 되면 제대로 복음 전도를 해서 예수님을 영접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아닙니다. 사업에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형이 구원받기를 원해서 발버둥을 치는 장 피디를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로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너무 임박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단순하게 정리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더 많은 곳에 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안개와 같습니다. 세상에 가득한 것 같지만 해가 뜨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사람들이 움켜잡으려는 것은 다 바람과 같습니다. 움켜쥐지만 손을 펴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업습니다. 적어도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사라질 것을 위해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 안희환 목사님



출처: 크리스찬 타임스 (http://www.kctusa.com/technote7/board.php?board=column&config=1&command=body&no=3330&#.WTzV88YlFPa)

나: 주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 그래, 말해보거라.
나: 먼저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주님: 그래, 화내지 아니하마.
나: 왜 오늘 저에겐 힘든 일만 있었던 겁니까..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셨나요..?
주님: 더 말해보거라.
나: 평소에 늦게 일어난 적이 없던 제가, 중요한 약속이 있는 오늘 늦게 일어났습니다.
주님: 그래.
나: 그것은 시작의 불가합니다.. 차의 시동이 오랫동안 걸리지 않아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주님: 그랬구나.
나: 바쁜 와중에 점심식사로 센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점원의 실수로 또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주님: 그래..
나: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가 걸려와 받았더니 갑자기 핸드폰 안테나가 안잡혀 전화가 먹통이 되지 몹니까..
주님: 그랬구나..
나: 결국 지친 몸을 달래며 집에 도착한 저는 어제 막 구입한 마사지 의자로 피로를 풀까 했는데.. 이 새 의자도 고장이 났는지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어요.. 왜 저에게 이러신 것입니까??

주님: 그래, 내 말을 들어보거라. 오늘 아침 죽음의 사자가 네 머리맡에 있더라, 너를 살리기 위하여 나의 천사를 보내 싸우게 하였다. 그리하여 너를 늦게까지 자게 한 것이니라..
나: 오..
주님: 네 차의 시동이 늦게 걸리게 한 이유는, 너의 집앞을 지나쳐 갔던 술에 취한 트럭 운전사 때문이니라.
나: ....
주님: 편안했어야 할 너의 점심 시간에 처음에 너의 센드위치를 만들던 점원은 병에 걸려있었단다. 나는 너에게 그 병이 옮겨지기를 바라지 않았단다.
나: 네...
주님: 너의 핸드폰에 문제가 생긴 이유는, 너에게 전화를 건 그 사람이, 너에게 잘못 된 정보를 주려했기 때문이니라. 나는 너를 보호하고 싶었단다.
나: (경건히) 주여...
주님: 그리고 너의 새 마사지 의자는.. 네 집에 정전을 일으키려 하였기에 내가 그리했노라. 나는 너가 어둠 속에서 헤매길 바라지 않았단다.

나: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미안해 말거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안에서 나를 믿는 법을 배우거라.
나: 예 믿겠습니다. 주님!
주님: 그리고 의심하지 말거라, 너가 계획한 하루보다 내가 계획한 하루가 더 나으리라.
나: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오늘 뿐만이 아니라 나는 항상 너희 안에서 너희를 돌보고 있단다..

미국 사이트에 있는 글인데
은혜가 되어 함께 나누고자합니다.
사랑하는 님들,
주님과 매 순간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지치기 쉬운 간절기에 힘과 위로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매사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시고 힘들 때도 용기잃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용서: 리키 잭슨씨가 거짓 증언으로 자신을 사형형 언도 및

39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만든, 에디 버넌씨를 용서하다


에디 버넌씨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리키 잭슨씨는 18살의 나이에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리키 잭슨씨 인터뷰 중울음)


하지만, 에디 버넌씨의 회심 및 클리브랜드 재판소에서의 거짓증언 번복 및 올바른 증언을 통해,

57세인 리키 잭슨씨는 7주전에 교도소에서 석방되게 되었다. 리키 잭슨씨는 39년 동안 복역했다.

리키 잭슨씨는 그의 성인으로서의 모든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게 제 마루 이구요, 침실 이구요, 베란다입니다” (리키 잭슨씨가 본인의 집을 소개함)

그리고, 리키 잭슨씨는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도서증(도서관 사용증) 신청을 했다.

하지만, 리키 잭슨씨가 다른 할 일이 있다, 바로 그를 감옥에 넣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리키 잭슨)네가 한 일(거짓 증언 번복 및 올바른 증언)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해, 괜찮아.

우리 둘다 피해자야. 내가 너를 용서해, 그 얘기를 하려고 지금 여기 온 거야.”


(에디 버넌)이 수 많은 세월을 복역한 이후에,

어떻게 이 사람이 나를 안아주고 용서해 줄 수 있을까?
(리키 잭슨) “바로 용서할 수 있게 된 건 아니에요,
사실 저와 저희 친구들에게 한 일 때문에 오랫동안 그를 경멸 했었어요.
하지만 이 일을 해야 했어요, 왜냐하면 인생에서 계속 전진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용서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요"


거짓말로 인해 감옥에 같혔던 두 사람이

진실로 인해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위와 같이 원인과 현상을 구분하지 않고 결과만을 주목하여 스스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번 자세히 보겠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증인은,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되어진 것을 말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증인이 "되라고" 했나요? 아니면 "되리라"고 했나요? 글자 하나 때문에 그 뜻은 엄청나게 차이가 생깁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닌, 성령이 임했을 때, 그 능력에 의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영으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내가 직접 깨달아지기에, 그것을 증거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내 삶 가운데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직접 경험하고 그 자리에서 내가 본 것을 증인된 삶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 순종하는 삶은, 모든 것을 예수님이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지도 않았는데 임했다고 가르치면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심령에 임하는 것과 외적으로 역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순절날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모두 예수님을 떠났다가 성령이 임한 이후 그들의 삶이 180도 달라진 것을 보며 순교의 자리까지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면 그가 하는 일로 통해 내가 변화되며 증인된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돌이키는 회개를 하게 되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이 성령님이 내 심령에 임해야 합니다. 이걸 보고 거듭났다, 즉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외적으로 은혜받고 영적인 체험을 한 것과 , 나를 드려 내 심령에 성령님이 임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나를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시며 내안에 쓴 뿌리와 삶의 찌꺼기, 그리고 그동안 종교로 인한 생각의 견고한 진을 깨부수는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원하고 내 생명보다 예수님을 소중히 여길 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이 모든 신앙의 첫걸음이자 마지막이며, 전부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여러가지 은사가 같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은사만을 원하면 주시지 않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과 교통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면, 영의 은사들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예수님과 교통하길 원하면, 주십니다. 너무나 주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원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먼져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부디 그분과 연합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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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영적전쟁이 시작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들은

믿음을 시험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이 치열한 영적 전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볼링 경기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볼링에서 열 개의 핀을 한 번에 쓰러뜨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열 개의 핀을 한 번에 쓰러뜨리기 위해선 목표로 삼아야 할 핵심 핀이 있습니다.


5번 핀입니다. 5번 핀을 ‘킹 핀(Kingpin)’이라고 부르는데 이 킹 핀을 제대로 공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킹 핀을 제대로 공략하기만 하면 나머지 핀들은 자동적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볼링에서의 킹 핀처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진정한 삶의 변화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신앙의 결단과 맹세를 반복하곤 하지만 곧 맥없이 무너지고 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 안에선 사자와 같은 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풍파와 유혹 앞에서 그저 흔들리고 움츠러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활신앙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이 그저 교리 지식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복음이 내게 진정한 복음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활신앙은 과연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이 전했던 복음의 핵심은 ‘죽은 예수가 아니라 살아나신 예수’였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만한 증거라고 증언했으며, 롬 10:9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부활하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까? 성경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성경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대속 제물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분명히 믿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신앙생활의 외형을 갖추었고 대단한 종교적인 행위를 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중심에 부활신앙이 분명하지 않다면 참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실제의 삶은 너무나 무기력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부름받은 제자로서 3년 동안 예수님을 열심히 쫓았지만 참 믿음은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이 분명하지 않았을 때는 고난받으시는 주님을 버려두고 하나같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확실히 믿었던 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요 2:22를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부활신앙을 통해서 참 믿음을 갖게 된 제자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킹 핀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 중심에 확실한 부활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신앙만 분명하다면 아무리 힘든 시대도 그 어떤 상황도 우리를 무너지게 만들 수 없습니다. 부활신앙은 우리를 강하게 하고, 순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정직하게 하고, 열정적으로 만듭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의 가치관, 바라보는 것을 다르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성도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세웁니다. 우리는 변화를 갈망합니다. 개인, 가정, 교회 공동체, 사회와 나라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떤 프로그램, 훈련 체계, 교육이나 철학, 성경 지식, 신비한 체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변화는 각 사람이 부활의 복음을 제대로 만날 때 이뤄지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이상일 목사(삼선교회) vocation0416@hanmail.net


출처: 갓톡

아부 오마르(Abu Omar, 보안상의 이유로 변경된 이름)는 수년 동안 종교 학자이자 중동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시민이었다. 그는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에서 코란(Koran), 하디스(Hadith)와 샤리아(Sharia) 법을 가르치고 설교했다.

 

이슬람 사원에서 저녁기도 후 그가 차를 탈 때 차창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떼어 내고, 그의 차에 올라타 빛을 비추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그는 분노해서 그것을 구겨 버렸다. 그리고 총을 들고 그것을 붙인 사람을 찾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종이를 던져 버렸다.

 

돌아 오는 길에 그는 쇼핑몰 앞에서 멈춰 섰다. 한 장의 종이가 그를 향해 날아가 그의 옷에 달라 붙었다 : 같은 성경 구절! 그는 그것을 찢어서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에 넣었다.

 

쇼핑을 마치고 그는 차에 다시 와서 문을 열었을 때 쓰레기통에서 종이 조각이 튀어 나와서 찢어져 던져 버렸다. 그는 격분하여 그들을 모아 라이터로 태워버렸다.


그는 집으로 운전하다가 왼쪽 어깨에 뭔가를 느꼈다. 그는 그것을 꺼내 불에 탄 종이 한 장을 보았다. 그는 차를 멈추고 그것을 읽었다 : "죄의 삯은 사망이다." 끔찍한 공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부는 두 명의 기록 천사를 믿었다. 하나는 선행을 기록하는 천사이고, 다른 하나는 악행을 기록하는 천사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죄와 나쁜 행동을 기록하는 천사 'Atid'가 그의 왼쪽 어깨에 앉아 있다고 추정했다.

 

갑자기 그는 오른쪽 어깨에 뭔가를 느꼈다. 거기에서 그는 불에 탄 종이 조각을 또 발견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는 선행을 기록하는 천사인 "Raqib"가 오른쪽 어깨에 머물렀다고 생각했다.

 

아부 오마르는 밤에 겨우 잠이 들수가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예수님께서 꿈속에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 : 17-18)”

 

아부 오마르 (Abu Omar)(못으로 인해서) 가운 데가 뚫린 손을 보았고 그가 예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 앞에 엎드렸다. 그가 머리를 들 용기를 찾았을 때, 예수님은 사라졌다. 그는 모스크에서 아침기도를 부탁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그는 불에 탄 종이를 꺼내기 위해 차에 달려갔다. 그는 종이의 뒷면에서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자신의 개인 구원자이자 주님으로 받아 들였다


출처: bibles4mideast https://goo.gl/p30hI3



가져온 곳: 갓톡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기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 도움이 되는 3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의무감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기도하라.


때로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기도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나아가 쉼과 안식을 얻고자 하지 않고, 기도를 일이나 하나의 의식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에게 쉼과 안식을 주는 방법이 된다면,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잘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더욱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말하라.


기도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정치적으로’ 옳고 좋아보이는 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를 살펴보자. 그는 하나님 앞에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편 42:9~11)라고 기도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으며, 이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기도에 잘 드러나 있다. 시편을 읽다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쏟아내는 구절을 자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다윗과 동일하게 당신 앞에 나아오길 원하신다.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신실하게,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나아오길 원하신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항상 더 나은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준다.


기도는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한 것이다.


기도를 하든지 안 하든지 여러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에는 변함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마 6:8)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필요한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의 초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우리와 소통하길 원하신다.


기도를 통해 더욱 그분의 뜻과 능력과 신실함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잘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출처: 크리스찬 투데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는 당신에게



우리는 기독교인들만 기도와 믿음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믿음생활을 하고 기도한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인지, 자기 나라와 의를 구하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믿음이나 기도 없이 살 수는 없다.


기도. 단지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인가?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온전한 인격적 사귐이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고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올려드림으로써 그에 대한 응답, 해결, 보상만을 받고자 한다.


기도가 단지 이렇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면, 굳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거나 친밀함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마음을 일치시켜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한다.


결국 기도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갖기 위해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면 그 다음 전략으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고 그 결과 바쁘게 만든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한자리에 있지 못하게 되고, 여유가 없기 때문에 풍성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주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문을 닫는다”는 것은 기도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세상과 단절되어 모든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활동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은밀한 중에 계신”이라는 의미는 단지 물리적 세계로부터 차단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모든 역동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몸은 격리되었지만 마음은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슨 생각이라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참뜻은 육신의 눈이 닫히고 마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임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상태는 물리적으로 ‘조용한(quite)’ 곳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모든 역동성이 사라지는 ‘은밀한(silent)’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기도는 육신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바쁜 삶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바로 마음의 모든 역동성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바로 ‘거룩한 낭비’이다. 이 훈련이 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머물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주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법!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고 원하시는
진짜 기도를 드려라
지금 여기 나의 삶 가운데 임한 하나님나라를 선포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실제적으로 이 땅에 실현시키는 기도
손기철 / 규장

 


† 말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 마가복음 14장 38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마태복음 6장 6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 요한계시록 3장 7절,8절


† 기도
주여, 주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기에 모든 장소에서 저희가 하는 모든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정확하게 읽고 계십니다. 그 주님 앞에 저희가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만물이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소서. 깨어있어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 적용과 결단
기도의 골방이 어디이신가요? 어느 곳에서 혼자 있을 때 주님을 묵상하시나요? 주님을 바라보는 그 시간, 그 장소를 생각하며 주님 앞에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출처: 갓피플 말씀테마 (http://gp.godpeople.com/archives/35814)


천국에서의 쇼핑

 

천국에 가서 쇼핑을 했다.

 

 

세상에 나가 살려고 하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쇼핑을 하는데,
우선은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았다.

 


 

천국백화점 1층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랑을 카트에 실었다.

기쁘고 평화롭게 이웃들과 사는 것이 중요해서
코너 옆쪽에 있는
평화와 화해도 실었다.

때로는 참지 못할 일도 있을 것 같아
차곡차곡 쌓여있는 오래참음도 하나 올렸다.

 


 

너무 강팍하지 않게
자비를 베풀 일도 있을 것 같고,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자비와 양선과 충성도 충분하게 담았다.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온유는 꼭 필요했다.


온유도 싣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욕심이 생기면
스스로 절제하는 것도 꼭 필요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절제도 한 묶음 실었다.

이제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행복하고 넉넉하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대로 가서 너무 비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산하는 천사에게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천사가 하는 말이 모두가 공짜라고 한다.

아니 이 귀한 모든 것이 어떻게 공짜냐고 했더니
천사가 하는말,


"이미 예수님께서 다 지불하셨어요

 

옮긴 글

주기철 목사 마지막 설교

나의 5종목의 기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특별히 다섯가지 종목을 들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 시간 그 기도내용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 앞에 "5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잠시 기도) "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번에야말로 순교의 영광을 허락하시는가 싶더니 또 풀어주시어 이렇게 강단에 다시 서게 되었나이다. 아직까지 제가 받은 핍박과 고난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에 이르지 못한 걸 알고 있사오나, 할 수만 있다면 이 고통스런 육신을 떠나 하루라도 빨리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옵나이다. 사랑하옵는 주님이시여!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간악한 마귀의 흑암권세로부터 지켜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주님의 강하신 손으로 붙잡아 주시옵소서! 빛 되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저 어두움의 사망권세를 물리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 불쌍한 어린양들을 천국가는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이제 이 종이 선포하는 주님의 말씀에 은혜 받고 힘을 얻어서 주님의 뒤를 따르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이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5종목의 나의 기원!

첫 번째 저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나는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내 목숨을 빼앗으려는 검은 손은 시시각각으로 내 가까이에 뻗어오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이 다 죽음 앞에서 탄식하며, 숨쉬는 인생은 모두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합니다. 사망의 권세는 마귀가 사람을 위협하는 최대의 무기인 것입니다. 죽기가 무서워 의를 버리고 죽음을 피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의 우두머리 베드로도 죽음이 두려워서 가야바의 법정 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계집종 앞에서도 세 번이나 맹세하였으니 누가 감히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제왕(帝王), 장상(將相), 재사(才士), 가인(佳人)도 다 죽었고 성현(聖賢), 군 자(君子), 위인(偉人), 걸사(傑士)도 다 북망산(北邙山)에 가 묻혔습니다. 죄 없이 억울하게 죽는 약자도 불쌍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죽는 사람, 가엾은 아이를 두고 가는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도 허다합니다.

폐결핵 환자로 요양원에 눕지 아니하고 예수의 종으로 감옥에 갇히우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도 있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수백번의 죽음을 당한들 무슨 후회가 있으리오만은, 주님을 버리고 천년 살고 만년 산다한들 그 무슨 저주스런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을 욕되게 마옵소서! 주님은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다만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이올시다.

(설교 중간에 잠시 기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 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여! 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에게 부활의 믿음을 굳게 하사 나도 부활을 믿고 사망의 권세를 내 발 아래 밟게 하소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나도 부활하리로다!
(아멘! 할렐루야!!!)

(발을 쾅 구르며)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 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 버리지 마십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이보다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번 죽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얻는다면 이보다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주 목사가 죽는다고 결코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주님 밖의 다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 수는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 나의 주님을 따라서 가는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 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르고 백합도 시들기 전 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요한은 33세, 스데반도 청장년에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오로 지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나의 두 번째 기원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가지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고문이 끈질긴 만큼 나는 더욱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웬만한 믿음 가지고는 오래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을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단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1년, 10년 계속하는 고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고통을 면하고 도리어 상 준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 마디만 타협하면 살려 주는 데는 용감한 신자들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같이 연 약한 약졸(弱卒)이 어떻게 장기간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4)고 신신 부탁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도 십자가를 직면하자 그 받으실 고 난을 인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고 십자가상에서 그 혹독한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질 때, 그 고통이 어떠하였으 리요! 나와 여러분의 피, 억만! 죄인의 죄 짐을 대신 지실 때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고통의 소리를 우주 도 감당하지 못하여 태양도 빛을 잃고 그 고통의 핏방울은 땅도 감당할 수 없 어, 지축이 흔들리어 지진이 터졌던 것입니다. 내 주 예수 날 위하여 이렇게 고 난을 참으셨는데 내 당하는 고난이야 그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러므로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지어줍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제 받는 고난, 길어야 70 년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천 년 만 년 영원무궁합니 다. 지금 받는 고난은 어차피 한 번 죽어 썩을 몸이 죽는 것 뿐이요, 장차 받을 영광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영생불사의 몸이며 영원 영화의 몸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며, 우리 앞에는 천 국 가는 밝은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 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 하는 수욕(羞辱)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나의 세 번째 기원은 "노모(老母)와 처자(妻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저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남의 아들로의 의무도 지중하고 남의 가장, 아비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고 가르치신 은혜가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은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키우신 이 몸이 남의 발 길에 채이고 매맞아 상할 때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춘풍추우(春風 秋雨)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에,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에 어머니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 의 계명을 범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재차 요한에게 부탁하실 때의 심정 어떠하셨을까요? 십자가 밑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 떠하셨을까요?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 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 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어머님을 80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 다.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인생을 내게 바치었거늘 나는 남편된 의무를 못 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 두고 잡혀 다니는 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 되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경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不肖) 이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에 제 자식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는 자식 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4명의 아들이 있어 어린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것을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한정 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의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든 어린 자식을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내 마음 끝없이 처절합니 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 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 피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하셨으리이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저의 자식도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저의 자식들도 주 님 품에 부탁합니다.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시여! 저에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사랑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 내 양떼를 뒤에 두고 다 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의 이리 떼 중에 내 양들을 두고 떠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맡기나이다. 대목자장이신 예 수님 손에 이들을 맡기옵니다.

저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저의 병든 아내도 주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은 줄 압니다. 저의 어린 자식들도 자비하신 주 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한 자를 주님 보혈로 사유하여 주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 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 마음 차마 못할 일이올시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옵소서.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재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 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렵니다. (떨리는 목소리, 깊은 흐느낌, 흐르는 눈물, 흐느끼는 회중. 감시하던 일본 형사들도 슬금슬금 교회당 밖으로 나가버림)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께 짐 지울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 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 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이 목메어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 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우리 주님께 합당치 아니 합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네 번째 기원은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臣民)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정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무너지는 한(漢)나라를 붙잡고 오장원(五丈原)에서 죽기까지 국궁진쇄 (鞠躬盡鎖) 사이후이(死而後而), 즉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인간끼리의 의도 이럴 진대,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주를 위하고 또 그 교회와 그 의를 붙들고 "국궁진쇄 사이후이", 죽도록 충성하여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백이(伯夷) 숙제(叔齊) 두 형제는 은(殷)나라의 신민으로서 주(周)나라에서 살 수가 없어 수양산에 숨어 서산(西山)의 고사리를 뜯어먹다가 굶어 죽으니 백세청풍(百世淸風) 모두 그 고상한 인격에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정몽주는 망하는 고려나라를 위해서 선죽교에다 피를 뿌리니 대(竹)야 났으랴마는 그 절개 대보다 청청창창 시푸르도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건 없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이와 같은 시를 읊은 그의 충절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귀한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이 땅, 이 나라에 대한 의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수가 있으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의 대의를 지키느라 풀무불에도 뛰어들었고,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자굴 속에도 들어갔습니다. 이 모두가 오직 예수를 사랑하는 까닭에 믿음으로 행한 일들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니 용광로 같은 풀무불이 두려우랴! 예수를 사랑 하니 굶주린 사자굴도 두렵지 않도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습니다.

백제나라의 도미(都彌) 부인은 개루왕의 협박과 부귀의 유혹도 물리치고 두눈 뽑힌 남편 도미를 찾아 일엽편주 조각배로 만경창파 서해(西海) 바다에 떠서 황주(黃州) 마을 뫼 아래서 한 평생 그 남편을 섬겼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의 딸들 이 정절을 지키던 피눈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 되어 주 님 향한 정절을 변할 수 있겠습니까?

주후 2백년 카르타고의 벨빼추어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젖먹이와 늙은 아 버지의 우는 소리를 뒤에 두고 형장에 나가서 사나운 소뿔에 찔려 죽었습니다. 천고(千古)의 열녀(烈女) 벨빼추어는 지금 주님의 나라에서 승리의 찬송을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 스도의 신부는 신사(우상)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부터 예수 안에서 자라났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 구구도생이 어찌 말이 됩니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 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이몸 죽고 죽어 열백번 다시 죽어도 주님 향한 대의정절 변치 아니하겠습니 다. 십자가, 십자가, 주님 지신 십자가 앞에 이몸 드립니다. 우리 초로 인생 살면 며칠입니까? 인생은 짧고 의는 영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살으십시다! 의를 버리고 더구나 예수께 향한 의를 버리고 산다 는 것은 개짐승의 삶만 같지 못합니다.

여러분! 예수는 살아 계십니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십시다. (흐느끼는 교우들을 바라보다가 찬송가 196장을 소리 높여 부르기 시작)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피와 같이 붉은 죄/눈같이 희겠네……/(3절까지 부른 다음, 숨을 돌려 다시 설교)

나의 다섯 번째 기원은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나이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혹여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 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가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 하시옵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케 하사 영광의 존전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 하나이다.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 주여, 영광 받으옵소서!!!

이 터질 것 같은 벅찬 기쁨을 주신 주님께 모두 감사의 박수로 영광 돌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송가 384 장을 함께 부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방패와 병기 되시니

하나님 나라가 있다. (1)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육체적 감각으로 경험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육체적 오감으로는 경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비주의자들이 경험한 그러한 체험들은 모두 범신론에 속한 거짓된 것들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육신의 정욕으로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경험할 수 없다.

어떠한 종교적 열광주의로서도 하나님 나라는 경험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알아간다.

하나님 나라는 중생한 신자들이 믿음으로 인식한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믿음으로 경험한다..

그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공로와 자기 의와 자기 업적과 자기 재능으로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경험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가지시고 이 세상에 강림하셨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계속 하나님 나라는 지상에 도래하며 확대되고 있다.

다만 믿음이 없는 자들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간다.

그 나라는 지금 우리 가운데 와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믿음으로 만 알 수 있기에 세상의 관점에서 볼때에 하나님 나라는 초라하고 없는 듯하게 보인다.

그래서 많은 자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맛보고자 탐심으로 재물을 모으고 불법적 권력에 집착하고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목을 맨다.

오히려 그들은 멸망을 향하여서 곤두박칠하는 어리석은 영혼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탐욕을 가지고 추구하는 세상적 가치에 하나님 나라는 없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오직 하나님 나라는 중생한 신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하게 강림한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머리로 하여서 성취하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하였다.

다만 어두운 인생들의 무지함이 죄악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러한 인생들의 어두움에 대하여서 잘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니라 너희와 죄가 여호와와 너희 사이를 갈라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시지 않으신다. (사 59:1-2)

결국 죄악이 인생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알 수 없게 하였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참된 신자란 믿음으로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WlQp/251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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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의 시점 & 곧 일어날 일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1-53)


이 천년 전에는 이 비밀이 풀려지지 않았고,

지금 현재도 다 풀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성경은 정말 최고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적은 사람들에게만 읽혀지고 있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교회의 80%가

성도들의 ‘자가양육’ 프로그램이 없다고 합니다.


또 아쉬운 부분은

오직 3%의 성도들만 성경통독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비밀이 비밀인 것 입니다.


여기서 ‘잠’은 죽음을 돌려서 애기한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 나팔’ 이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여기에서 마지막 나팔(Trump)이라고 해서

도널트 트럼프를 얘기한 게 아니고,

저는 트럼프 당선 전에 그가 당선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방송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이 놀라움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들이 잘못된 곳에 있어서 놀라움이였고,

저희는 그전에 그의 당선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아는 저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당선에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휴거가 그 마지막 나팔(Trump)에,

도널드 트럼프의 때에 일어나는 부분도

그리 놀라운 소식이 아닐 것입니다.


트럼프의 때에

반드시 휴거가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 휴거가 내년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트럼프의 공직시기는 몇 년이 더 있고,

그의 딸이 다음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들으면

그대로 해석하는데,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얘기를 듣고, 말씀을 보고,

상황적인 이해가 100% 갖쳐져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말씀의 예언 그 자체가 이루어질 것 입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이 탈모가 있거나,

수술을 해서 무릎연골이나 치아가 없다면,

변화될 때 그 부분도 변화되고 회복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말세에 대한 걱정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안경 쓰시는 분들은 아마 시력이 다른 행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양쪽 다 변화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저희 기독교의 독특성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전부가 아니고,

그냥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 영혼만의 삶이 아니고,

우리의 삶은 실제 실질적, 육체적인 현실일 것 입니다.

(변화된 몸)


그리고 이 부분은 기독교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막연한 죽음 이후 삶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혼 불멸성 정도만 믿고 있지만, 기독교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영혼 구원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을 포함한 잘못된 모든 것을 다 고치실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모두가 몸과 함께 변화된다는 것이고,

안 좋은 소식도 모두가 몸과 함께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주님과 천국에서 다스리지 못하고,

지옥의 불에서 영원히 슬퍼하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몸과 함께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슬프죠?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휴거는 무엇입니까?

죽음을 보지 않고 몸과 함께 변화되는 것입니다.


만약 죽은 사람이면,

성경말씀에 따라 새로운 몸과 함께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살아있는 상태에서의 휴거된다면,

현재의 몸과 함께 하늘로 승천하여 주님을 만날 것이고,

그 일이 눈 깜짝할 사이,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히브리어 표현상으로는

해가 짐과(여전히 약한 빛은 있음),

어둠의 경계같은 형태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에 나와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 4:16~18)


여기서도 트럼프가 나옵니다.

휴거로 서로 위로하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휴거는 서로 위로를 줄 수 있는 역할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고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합니다.


네 맞습니다.

주님과 함께있는 모든 사람들은 고난을 통과합니다.

불신자들을 보는 모든 신자들은 고난을 경험합니다.


그렇다고 고난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그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과 위로가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환란이 올 때,

적그리스도에 의한 환란시에,

우리에게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모든 사람을 말하는게 아니고,

일부의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휴거입니다!

그리고 오늘 중요하게 다룰 사항은

'누구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즉 누가 휴거를 얻을 것인가 입니다.


관련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만,

그 '누구'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휴거의 순서 및 구조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등장(his appearing) 입니다.

하늘에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고,

그 다음에는 바울 사도가 얘기한대로,

우리가 다 모입니다.


순서는 주님을 믿었고, 휴거 전에 죽었다면

그 분들이 먼저 모입니다.


어떤 분들은 질문을 합니다.

몸이 산산히 부서졌거나,

상어에게 먹힌 분들은 어떡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단 번에 우리 몸의 세포들을 모으실꺼고,

단숨에 영화로운 육체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살아있는 우리가 올라갈 것 입니다.


휴거의 기간 동안

이땅에는 말세의 징조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하늘에서의 징조가 있을 것입니다.

천국과 천상의 징조들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분노가 임할 것입니다.


환난 중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임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 1회(아마 다수)의 핵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그 환란 중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고,

평화와 안전을 약속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이 많이 하는 얘기를 할 것입니다.

‘평화, 안전’을 약속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올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 근거하면 적그리스도는 중동에서 나올 것으로 보이고,

범중동 리더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적그리스도에게 사람들은 속을 것이고,

그에게 죽임당해,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백마 탄 자가 나올 것입니다. (계 19장)



- 디스커버 미니스트리 ‘스티브’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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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크리스천투데이, 발렌타인데이 맞아 소개

사랑
ⓒPixabay

발렌타인데이가 하루 지났다. 발렌타인데이는 원래 기독교의 성인 발렌티노의 축일을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 연인들끼리 카드나 선물을 주고 받는 날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성 쪽에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날로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처럼 사랑하는 이들이 낭만적인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개념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최근 성경적인 관점에서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성경구절 14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2. 아가 8: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3. 고린도전서 13:4~7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4.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5. 누가복음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6. 요한일서 2장 5절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7. 히브리서 10: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8.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9. 잠언 15:17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고 사는 것이, 서로 미워하며 기름진 쇠고기를 먹고 사는 것보다 낫다”

10. 에베소서 3:18~1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갚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8~19)

11. 레위기 19:34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12. 데살로니가전서 3: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라”

13.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4. 골로새서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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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이유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내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한번은 토스카니니가 연주중에 냉정을 잃고

격분하여 밖으로 나가버렸고

단원 한 명이 사과하려고 뒤따라 나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디가 잘못되었나요?"
토스카니니가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잘못한것이 전혀없습니다
제가 잘못 한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토스카니니는 자신이 만족할만큼 지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화가 났고
자신과 싸웠으며
그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며
그들과도 싸웠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이유는
자신과 싸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전반적인 문제가 아닙니까?
인간은 하나님과 화해하기전에는

절대로 자기자신과 화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자신을 바로보기
전에는 언제나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야망과 질투심과 라이벌의식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서 안식과 평안을 빼앗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는 순간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과
삶과
세상의 대상과
목적도
바른 시각으로 봅니다

자아로부터 자유로운 마음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생수로 채우라 ㅡ마틴로이드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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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길 vs 죽음의 길”

(영적세계의 실상)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크리스찬들에게는

세상과 염려와 유혹의 영들이

끊임없이 죄 가운데 빠지게 하려고

독화살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은 대다수의 크리스찬들이

성령의 인도와 순종의 도를 따르기보다는

성경책과 교리 자체를 우상시하게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크리스찬들을

이단으로 몰아 등을 돌리게 만들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아주 유익한 영상입니다!


깨어있는 크리스찬들은

영적 전쟁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하고,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주 예수 안에서 천국본향을 향한

여정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번역: 지저스파워 /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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