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회복하면 용서하게 됩니다


찬송 : 218장 네 맘에 정성을 다하여서 

성경 : 마태복음 18: 23~35

요절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35)


예수님 당시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가치였고,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었습니다. 그러니 1달란트는 6천 일에 해당하는 품삯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

하면 1만 달란트는 대략 16만 년 이상의 품삯보다 큰 가치입니다.


16만 년 치의 품값이라는 것이 쉽게 상상이 안 됩니다. 요즘의 화폐 가치로 설명하면 3조

윈이 넘는 빚을 단지 애원하는 것으로 당감받고서도, 자기에게 5백만 원 빚진 자를 만나

서는 멱살을 잡으며 돈을 갚으라고 닦달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 감사함이 없는 까닭

입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속된 말로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애원도 헛것이

되었고,그를 불쌍히 여기던 주인의 마음은 괘씸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다시 간구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에게 넘기니라."(34) 감사로 살지 못하면 간구(干求)

조차 하지 못하는 암담함에 빠지게 됩니다.


감사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애원할 때의 사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크기를 기억해야 합니다."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네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신 15:15)종 되어서 신음하던 때

를 기억하면 나그네 된 자들을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

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에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 (신 29:5) 바다를 갈라 바로의 군대를 멸하시고,

광야 건건(乾乾)한 땅,빈들에서 먹이시고 인도하신 은혜는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설혹 누군가 때문에 광야에 버려진 것 같이 외롭고 아파도 지금 그대로


거기에서 감사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아직 마치지 못한 것, 아직 부족한 그 무엇이 있다

해도 다시 간구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감사는 우리의 긴구를 들으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기는 길, 또 다른 기도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 영영 죽을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이 치르신 십자가 사랑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우리 마음 안에 3조 원으로도 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감사가

회복되게 하소서. 죄 사함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게 도우소서. 그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의 잘못을 기꺼이 용서하며 살아가게 도우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광식 목사 혜성교회

 

리버티 헤럴드 대표
김성욱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문(3월30일)]

1. 북핵 문제 해결의 두 축이 굳어지는 모양새입니다. 하나는 ‘단계별 폐기’ 다른 하나는 ‘즉각 폐기’입니다. 북한과 중국의 소위 정상은 26일 회담을 통하여 ‘단계별 폐기’에 합의했고 미국은 ‘즉각 폐기’, 즉 리비아식 핵폐기 원칙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3월30일 한국 정부도 전자에 합류, 남·북·중 대(對) 미국의 대립각이 형성된 셈입니다.

2. 5월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마저 ‘단계별 폐기’에 합의한다면, 한반도 상황은 소위 평화협정(平和協定) 국면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북한과 남한 내 진보·좌파 주장에 따르면, 평화협정은 북한 핵폐기 선언과 함께 한미군사훈련 축소·중단,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로 가자는 것입니다. 북한이 한반도 공산주의 통일 이전, 핵을 포기할 확률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 외에도, 이 같은 흐름은 한미동맹의 이완과 약화로 이어져 한국은 핵을 여전히 보유한 북한과 그 뒤 중국의 영향력 아래 빨려갈 것입니다. 이른바 자기 나라가 자신의 주권을 결정할 수 없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입니다.

3. 주체사상 북한체제 뿐 아니라 유물론 사회주의·전체주의·제국주의적 성격을 노골화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은 한국으로선 재앙입니다. 분단은 장기화되고 사회주의화는 더욱 과격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침체와 쇠락의 늪에 빠져 죄악과 음란이 창궐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중이 원하는 타협에 굴복하면 이 같은 진행을 막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4. 미·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타협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사악한 연합, 어둠의 결탁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어지길 기도합니다.

5. 특히 하나님께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여 북한 구원의 고레스 왕처럼 사용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는 지난 해 11월8일 한국을 방문해 북한 정권은 “불량정권·노예국가·이단적 종교집단...압제, 파시즘, 억압의 기치 아래 국민들을 감옥에 넣고 있다” “6·25 전 기독교 근거지 북한, 신앙인들이 감금당하고, 고문 받고, 처형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연설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또 그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김정은과 야합하는 협상이 아니라 김정은의 악행을 중단할 주님의 도구가 되는 협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체사상 체제가 무너지는 반전의 계기, 이 나라와 민족이 사는 역전의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의 사명은 열린 길, 순탄한 대로를 따라 열리지 않습니다. 수없는 방해와 훼방, 강도와 도적 떼가 출몰하고 깊은 바다와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눈물과 기도로 통곡하며 애곡하는 기도자의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급할수록 기도하고, 초조할수록 주님의 언약과 약속을 붙잡고 부르짖습니다. 북한 우상체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무너질지어다. 죄 없는 자들을 죽이는 살육과 학살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망할지어다. 주여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듯 무너뜨려 주옵소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1~13)”

2018년 3월30일 김성욱

그리스도의 통치가 우리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와 승리를 위한 실천 원리 몇가지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의 길이 옳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면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게 된다
양심이 깨어있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고집할수
없다

둘째 속된 계산에 의해 행동을 결정하기보다 오직 경건을 목적으로 매진하는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

셋째 우리는 다른 것에 소망을 두거나 두려움에
지배되지 말고 목적에 충실하며 신앙의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넷째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뿐이니(고후13:8)라는 말씀대로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목숨보다 진리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다섯째 통치자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를 선택해야한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통해 만족을 얻게 되면 삶의
고삐를 주께 기꺼이 넘겨드릴수 있다

여섯째 변덕스럽지 않은 삶 즉 조화와 질서를
갖춘 삶은 곧 그 마음에 조화와 질서가 있다는
증거이다

일곱째 세상에서 무엇을 잃거나 얻는것에 상관없이 항상 그리스도앞에 머리를 조아린다면 그것은 곧 진실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다

여덟째 마음에 은혜의 법이 존재하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유혹을 멀리한다 그것은 세상보다 천국을 원한다는 증거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에는 승리한다

이런 진리를 더 확실히 이해하고 시련속에서 용기를 얻으려면 승리가 세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는 좌절스러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대항하는 단계이고
둘째는 은혜와 갈등이 공존하면서도 전자의
세력이 더욱 확장되는 단계이며
셋째는 모든 부패가 완전히 정복되는 단계이다
너희 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는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통치는 반드시 승리를 거둔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ㅡ리처드 십스

 

봄인사



예쁜 꽃망울이 피어납니다
아직 잎도 없고
가지도 메말라 보이는데
선분홍색 꽃망울이
부끄러운 듯 살포시 봄인사를 합니다.


질세라,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도
노오란 꽃잎이 삐죽 고개를 내어밀고

'헬로~!'하며 인사를 합니다.


꽃잎을 터트리기에 좋은
따스하고 화사한 햇살이
나뭇가지 속에 움추려 있던
새들의 노래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나뭇가지 끝을
살짝 잘라봅니다
속이 어떻게 생겼길래
분홍색 잎이 피어나고
노란 꽃잎이 나올까 해서요.


참 신기합니다
겉보기엔 같은 나무요
잘라 보아도
무슨 다른 색이 아닌데도
저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 걸 보면 말입니다.


며칠전 사납게
그러나 보기에는 참으로 예뻤던
흰눈 속에서

주춤거렸던 꽃잎이기에
더욱 선명해 보이나 봅니다.


사람도 어려운 일 겪어봐야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새삼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든
나도 나대로의 예쁜 꽃망울을
터트려 보겠다고 다짐하며
봄인사를 드립니다.



-해처럼달처럼



 

우리는 저주받은 원수들과 맞서 싸워야하는데
성령님이 계셔야만 원수들을 정복할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인도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홀인 성령의 진리는 영원할것이다
신자의 영혼은 썩지아니할 성령의 씨로 새로 태어났다
따라서 신자의 영혼은 진리와 함께 모든 적대 세력을 정복할것이다

성령과 말씀사역은 아무도 저항할수 없다

사단은 하나님이 구원하신 이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잠시도 쉬지않는다
그런데 성령께서 신자들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사역을 쉬시겠는가?

영적인 것은 영원하다
진리는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의 빛이다
성령의 빛이 영혼을 비추면 은혜의 사역이 이루어진다
은혜의 사역은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결국에는
승리를 안겨준다

천국은 우리의 것이다
이제 그곳을 온전히 소유할 때까지 남아있는 싸움을 치를뿐이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에 빛을 던지셔서
빳빳한 고개를 숙이게 만드시고 속사람의 완고한 고집을 꺾으신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시작된 곳에서는 그분의 통치가 영원히 계속되며 그나라는 무궁할것이다

원수를 정복하는 능력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능력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뜻하신 바를 이루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에 궁극적인 승리를 안겨주실것이다
그분은 신상을 부서뜨린 '뜨인돌'이시다
우상을 친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세계에 가득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정복사업은 계속될것이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ㅡ리처드 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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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유



무엇인가 자그마한 선물 하나라도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거나
어떤 계산에서가 아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다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을 때에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을 때
살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픔도
모자람도
고통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사랑은 그런 것들을 능히 견디게 해줍니다


건강하거나 부유해도
세상 그 모든 것을 소유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주셨을 때는
무엇인가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나누어 주는 것은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분은 냉수 한그릇 대접도
기억하겠다 하셨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최고의 선도
최고의 가치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있어 당신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며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을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내가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해처럼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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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사람 


찬송 :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성경 : 욥기 1:8~12

요절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8)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라는 평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하루는 하나님과  천사들이 천상(千上) 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 사탄도 참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의 온전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보았느냐?"라

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욥이 이유 없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겠습니까?" 한 뒤,

"만약 욥의 모든 소유를 없애신다면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믿음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탄의 대답에 하나님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네 손에 맡겨 보겠다. 다만 그의 몸과 생

명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은 왜 사

탄에게 욥을 주의하여 보았냐고 물으신 것일까요?


욥의 믿음을 자랑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고난이 와도 욥이 자신을 떠

나지 않을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시험 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우리 삶

에도 이러한 시험이 존재합니다.


시험은 분명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바로 시

험에도 지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신뢰와,그것을 자랑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숨

겨져 있습니다.그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을 통과한,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험을 이기는 믿

음은 우리의 시선에서 시작됩니다.'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그곳에 있다는

것울 의미합니다.시험이 올 때 주변을 바라보면 그 지난한 과정을 이겨 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험이 왔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자하면 힘들지만 분명히 시험을 이길 수 있습

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믿으신 이유는 욥의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온갖 재산과 풍요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바

라보았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께 고정된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하나님께 고정된 믿음의 시

선이 있을 때,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어 하시는 온전하 그리스도인

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을 가지기 위해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

하나님께만 고정된 믿음이 시선을 가진,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어 하시는 믿음이 사람으

로 세워 주소서. 인생의 시험이 올 때마다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

게 하소서. 그리하여 욥처럼 마지막에 칭찬받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필 목사  이천중앙교회 

길 위에서라도 


찬송 : 414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

성경 : 사도행전 18:1~11

요절 : 내가 너화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

       라 (10)


"오늘은 길 위에서 시간을 다 보냈네!" 요즘처럼 활동 반경이 넓고 교통 체증이 심한 시대

에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아끼며 했던 일들은 대체로 꼭 필요한 일

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따져 보면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도 사실입니다.


사실 옛날이라고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사회에서는 지

금보다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

시간들은 무의미한 시간이었다기보다 오히려 생활을 뒤집는 창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에

서 보낸 사람입니다. 지금 고린도에 있는 그는 이전에 빌립보와 데살로니가,그리고 베뢰아

아와 아덴을 지나왔습니다. 실로 복음을 전한 시간은 그 일을  위해 오고 간 시간에 비할 바

가 못 됩니다.


그렇다면 길 위의 사도 바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끊임없이

'기억' 할 것을 추구하셨습니다. 출애굽 여정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지키셨던 그 세심한 손

길과 불꽃같은 눈동자를 잊지 않을 것을 바라셨습니다.


성경에 정통했던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 하나님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의 예수님을 생각하고, 이방인의 전도자라는 소명을 주신 감격을 기억

해 냈을것입니다.


그가 기억하는 주님은 에벤에셀(여기까지 도우셨다:과거),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현재) 여호와 이레(예비하시는 하나님:미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

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이 아닌 실상으로 다가 왔을 게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입니다. 이 시간들을 낭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말고 에벤에셀과

임마누엘, 여호와 이레의 주님을 기억하는 시간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기억은 결국 창조의 씨앗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로 시간을 낼 필

요도 없습니다. 길 위에서 그 섭리와 사랑을 기억해 내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것들로 꽃피우

고 열매 맺게 될것입니다. 오늘이 바고 그날입니다.


* 길 위에서의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창조의 시간임을 깨닫습니까?


기도

하나님, 지금까지 나를 지켜 주셨던 주님을 기억하며 언제 어디서든 주와 함께 영적 교제를

나누게 하옵소서 더이상 길 위의 시간이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좋은 것들을 생각해 내고

실행하는 창조적은 인간임을 알 수 있게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최영식 복사  힘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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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다니엘 손이 묶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부터 방어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기 개미 등 아주 무시할만한 곤충도 이겨낼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그런데 지금 이 장면은 나를 움찔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한마리의 사자가 아닌 여러 마리의 사자들이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보면, 더 놀랍고 소름이 끼칩니다. 사자들이 오히려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자들이 뒤로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들은 아무런 방어능력도 없는 다니엘에게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을 무서워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의 뒤에 계시는 하나님이 무서워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다니엘에 모습에 하나님의 형상이 보였을 것입니다. 다니엘 뒤에도, 앞에도, 옆에도, 하나님이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 사자들이 마치 순한 양처럼 가만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방어능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돈, 명예, 인맥, 힘, 능력... 어떠한 것이든 한계는 있습니다. 


다니엘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가 느껴집니다. 그 분만이, 오직 그분만이 나를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나를 건져내실 분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이


 사진은 그냥 쉽게 보고 지니칠 수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저렇게 묶여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뒤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렇게 많은 대적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펌글



출처: 예수님을 따르는 아가페목장 / 주님만이 나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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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증표, 무지개 


찬송 : 151징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성경 : 창세기 9:8~17

요절 : 내가 내 언약을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샘물 곧 너희와

       함께 산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

       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9~10)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죄악으로 가득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지음을 후회하셨습니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에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6:7)


그러나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의 명

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 수많은 생물들과 함께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을

축복하신 것처럼 (1:28),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7)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로 세

상을 삼판하신 이후,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들로 제물을 

골라 번제물을 드렸습니다. 


그 향기를 받으신 하나님은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

애지는 않겠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라며 약속하셨습니다.(8:21

~22) 하나님은 이 약속이 노아만이 아니라 창조 세계의 모든 생물에 두루 미치는 분명한

약속임을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에 대한 보증으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13.16) 무지개는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상징입니다. 그와 동시에 '인류와 생물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나아가 무지개는 무든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豫表)하는 상징입

니다.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위해 죄악의 짙은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고, 역경과 고난

가운데에 십자가를 두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험한 세상에 살지라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습

니다. 먹구름에 가려진 우리의 영성이 구원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오

신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맑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주의 은혜로, 무지

개처럼 밝게 빛나는 복된 인생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어두운 죄악의 구름 속에 자꾸 갇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기적인 마음과 세속적인 욕망으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빛

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변함없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주님만을 신뢰하면서 은혜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멘.


                                                   허원배 목사  성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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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의 빛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는 것은 계시의 빛
덕분이다
계시의 빛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해주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우리의 의무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할수 있고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더욱 넓혀 나갈수 있다

그리스도는 심판을 통해 영혼 안에 선한 성품을
심어주신다
그런데 선한 성품이 강력한 은혜의 사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자기안에 존재했고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안에는 초자연적인 선의 씨앗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안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만이 있을뿐이다
선을 판단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본성에 그런 성향을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이유는 선한 것을 판단할수있는 판단력을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ㅡ 리처드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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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강한 사랑 


찬송 : 309장 목마른 내 영혼

성경 : 아가 8:6~7

요절 :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

       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6)


이 세상에는 힘으로 대변되는 강한 것들이 많습니다. 재물의 힘인 재력, 사람을 끌어당

기는 힘인 매력, 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지배하는 힘인 권력,군대의 힘인 군사

력 등 사람들이 소유하기를 원하는 강한 힘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힘들은 사망과 멸망의 힘 앞에서는 무두 무기력하게 쓰

러지거나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망의 힘마저 무릅을 끓게 하는 큰 힘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는 진실한 사랑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끝없는 사랑이 바

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진실하고 끝없는 사랑의 대명사로 엄마의 사랑을 꼽습니다. 2007년 한 지상파 방

송에 소개된 뒤, [엄마의 약속]이란 책까지 출간한 안소봉 씨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느 

평범한 여인처럼,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한 뒤 소중한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출산 다음날, 위암 말기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됩니다. 몸부림칠 정도로 고

통스러운 육체의 아픔보다 그녀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사랑하는 딸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없

다는 이별의 슬픔이었습니다.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지만,


그녀는 딸의 돌잔치를 해 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품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한 

그 약속만큼은 꼭 지켜 주고 싶었습니다. 강한 의지와 사랑으로 병마와의 싸움에서 버틴

그녀는 사랑하는 딸의 돌잔치를 무사히 끝내고, 10일 후 이 세상과 작별하였습니다.


힘겨운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고자 한 엄마의 사랑

은 참으로 숭고합니다.하지만 죽음은 사랑하는 엄마와 딸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는 강한 생명의 힘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이 보여 주신 진실하고 영원한 십자가의 사랑이 그것입니다. 딸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려

했던 엄마처럼,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 사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바닷물도 그 사랑의 불길 끄지 못하고, 강물도 그 불길 잡지 못합

니다."(6~7, 새번역)


* 하나님의 진실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기도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주님의 뜨거운 품 안에서 살게 하소서. 나를 향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날

마다 기억하며 새 힘을 얻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정기 목사  참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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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아요 


찬송 :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성경 : 로마서 5:6~8

요절 : 우리가 아직 되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

       셨느니라 (8)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손해와 민폐를 끼치는 죄인(罪人)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며 바르게 사는 의인(義人)이 있습니다.또

타인에게 사랑과 동정심과 온유한 마음으로 유익을 주는 선인(善人)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 중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요? 당연히 선량한 의인과 세상에 이로움을 주

는 선인을 좋아할 것입니다.그런데 의인이나 선인이 좋다고 해서 그들이 죽음의 위게

에 처했을 때 그들 대신 죽을 사람이 있을까요?


혹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런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들이었습니까? 연약한 죄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도,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무기력하고 해만 끼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 대가로 죽음과 멸망의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 그리

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거미

종류 가운데, 모성애가 뛰어난 염낭거미가 있습니다.


염낭거미는 한곳에 집을 짓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사는 배회성(徘徊性) 거미입

니다.배회하며 살던 암컷 염낭거미는 번식기가 되면 새끼를 낳기 위해 부드러운 잎을

말아 작은 주머니 모양의 집을 만듭니다.


새끼 거미의 안정을 위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집을 만든 뒤, 그속에서 알을 낳습니다.

그렇게 어미 거미는 배회하는 본성을 억누른 채,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집 안에서 견딥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부화하면 그들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어 줍니다. 그렇게 어미 거미

는 새끼 거미들을 살리고 생을 마감합니다.어미 염낭거미가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

과 몸을 희생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과 몸

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마침내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

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뜨거운 사랑을 여과 없이,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어떻게 살고자 합니

까? 주님의 그 벅찬 사랑을 가슴에 담고 즐거움으로 상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나요?


기도

하나님, 감당할 수 없는 그 큰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날마다 나에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

의 사랑에 감동하며 살게 하옵소서. 더불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살

수 있는 힘과 마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삽니다. 아멘.


                                                  김진산 목사  오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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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날씨가 상쾌합니다 가뿐한 기분으로 하루룰 출발할 수 있어 창조주의 인간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  상큼한 기운이 마음을 즐겁게 하여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하늘을 보고 주위를 살피며 길을 갑니다.

나는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 찬란한 봄날을 , 이 따뜻한 봄날을 어떻게 지낼까? 무엇을 하며 지낼까? 누구와 다정한 이야기 하며 지낼까? 등등으로 생각에 잠깁니다. 어찌 되었던 줄겁게 내 인생 여정에 보람된 계절로 남기고 싶은데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함은 지나친 기대 때문인가?

그러다가 내게는 그리운 망초꽃이 나를 기다리며 열심히 단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든 고민을 접고 망초꽃과 지낼 멋진 계획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아직 그 고운 자태를 나타내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날 그 날을 가슴 조이며 머리 빗고 신발 조이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이란 어느 기간을 말하는데 그 기준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 전날부터 거꾸로 주일 6번을 뺀 40일간을 말하는데 이 절기는 니케아 공회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신자들은 경건하게 지나면서 자기의 형편에 따라 하루 한끼 금식, 3일 금식, 일주일 금식, 10일 금식, 40일 금식 등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주님의 그 엄청난 고난 당하심과 영광의 부활하심을 연상하면서 그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신자들은 이 기간에 생각과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고 절제와 고요를 하면서 음식은 물론이고 오락이나 취미 생활도 접고 오직 성경를 읽고 기도하면서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기독교에서 40 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노아 때 밤낮 40일 동안 비가 내려 홍수가 졌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광야애서 40년 동안 지냈고,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마귀의 시험을 당했습니다.
이같이 40 이라는 숫자는 고난과 고통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순절( 40일간)을 정하고 이 기간을 고난에 동참하는 차원의 경건한 기간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발간한 책 중에 " 40일간의 기도와 묵상" 이란 책이 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윌리암 바클레이' 가 지은 책으로 40일 동안, 아침기도, 저녁기도, 성경묵상 이런 내용으로 엮어져 있어 사순절 기간에 이용하기에 참 좋습니다. 현제 그 책은 매절되었지만 원하시면 복사할 수도 있지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건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기독교에만 있는 교리 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 갑니다. 영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는자는 천국으로 ,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신자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때 그 변화된 몸으로 천국에 갑니다.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세계 수 많은 유명한 사람들,  예술가. 문학가. 정치가. 과학자. 군인 . 기술자. 농어민 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 . 이는 역사적 사실이요, 지속되는 신자들의 특권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 우리 열심으로 믿음생활 하다가 천국에서도 카톡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옛말에 "춘래불사춘" 이라 해서 봄은 왔지만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심사를 표현했는데 행여 아직도 봄 기운을 느끼지 못한 분이 계시면 마음을 확 비우시고 봄 기운을 잔뜩 불어 넣어세요. 그러시면 봄 기운이 산을 번쩍 들도록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부탁드릴 말씀은 아직 내의는 입고 다니세요. 바람이 겨울꼬리를 달고 설쳐요. 감기 조심 !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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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자기 점검 수칙


 01. 태초에 하나님은 목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려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02. 교인들은 목사가 안수 받는 순간부터 목사를 인간 아무개가 아닌 목사로 본다.

     그러므로 목사는 죽을 때까지 목사답게 살아야 한다.

03. 목사의 주요 역할은 교인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게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목사 자신이 누구보다도 성결해야 한다.

04. 참된 목사가 되기 원한다면

     우리 사회와 교회의 온갖 병리에 물든 눈을 미련 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05. 목사는 구도자다. 구도자는 고독해야 한다.

     고독은 진리를 위한 자발적인 자기 격리이다.

     그래서 고독 속에서만 구도는 깊이를 더해간다.

06. 목사의 승부는 이 세상에서 나지 않는다.

     목사의 승부는 코끝에서 호흡이 멎는 순간 하나님 앞에 선다.

07.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도로 흙이 되었다.

     설교는 흙에 하나님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생령으로 살게 하는 숨길이다.

08. 설교할 때 교인들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설교는 단순한 공기의 진동으로 사라져버린다.

09. 설교 원고를 보지 않고 교인들과 눈을 맞추며 설교하는 것은

     교인에 대한 설교자의 예의이다.

10.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뿐이다.

    설교자는 그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울 수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언어와 단어를 만드신 로고스이기 때문이다.

11. 저가 설교에 부족함을 느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면 그런 설교자의 부족함은 성령님께서 온전하게 메워 주신다.

12. 설교의 원천은 성경과 설교자의 삶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삶의 자리가 다른 타인의 설교를 흉내 내려는 것은 금물이다.

13. 교회를 개척하기 원한다면 또 하나의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자기 야망이나 뜻을 구현하기 위함이라면

     교인이 많을수록 종교 장사꾼이 될 뿐이지만,  소명을 좇아 자신을 던지기 위함이라

     면, 교인이 단 한 병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성공한 목회자가 될 것이다.

14. 많은 목사가 그렇게 하듯,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사람을 버리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사의 입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15. 목사는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 모든 교인의 목사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모든 교인에게 똑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위한 파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16. 교인에 따라서는 정이 더 가고 더 사랑스러운 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스스로 그들과의 거리를 침범하지 않도록 절제하라.

17. 때로는 거리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 때에도 그 거리보다 멀어져서는 안 된다.

     그 교인이 자기 목회지의 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으시고 그를 맡기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8. 언제나 비판의 소리에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에는 지체 없이 사과하라.

     목사는 모든 교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지 않음을 망각하지 말라.

19. 교구 목사가 자기 교구 교인의 이름을 모두 알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 교구 교인 모두의 목사가 될 수는 없다.

20. 목사는 예배를 비롯한 모든 행사를 인도하고 주관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준비하고 연습해야 할 것은 몇 번이고 연습하라.

21. 교인과 전화할 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상대를 전화로 연결하지 말라.

     목사는 교인을 섬기는 사람이지 기업체 사장이 아니다.

     자신보다 연장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문밖까지 따라 나가 인사를 드려라.

22. 심방예배를 드릴 때에도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듯 경건하게 인도하라.

     예배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예의임을 교인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23. 자기 목회지에서 받는 봉급을 족하게 여기라.

     자신의 요料를 족한 줄로 여기지 않는 목사의 섬김과 봉사는

     결국 교인의 주머니를 노리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24. 목사의 재산은 결코 예금통장이 아니다.

     목사의재산은 무엇이든 주님께서 주신것을 교인과더불어 나누는 공생심共生心이다.

25. 무엇보다도 항상 청결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교인들을 대하라.

     교인들에 대해 그보다 더 바른 예의는 없다.

26. 교역자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성경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

     담임목사나 장로 등이 말씀에서 벗어나 있다고 여겨질때, 그들을 비판하는 일에

     정열을 쏟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에 대해 더욱 엄격하라.

27. 목사가 먼저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으면 세상은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는

    샤를르 푸코의 말은 교인 이전에 먼저 목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28.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것이 목회의 전부가 아니다.

     목회는 주님 안에서 교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장 과정의 상처가 주님의 사랑으로 치유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치유 받지 못한 상처는 더불어 사는 사람에게 무서운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29. 현재 자신이 좋은남편(아내)인지 좋은 아버지(어머니)인지 좋은 자식인지 점검하라.

     목사의 가정은 교인들이 들여다보는 진열장이다.

30. 목사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열등감을 지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타인도 존중하는 법이다.

31. 목사는 산 속에 유리된 고립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의 구도자이기에 이 세상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을 지켜야 한다.

32. 자신이 꿈꾸던 예배당 건축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자신의 설교에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갈 때,

     사람들이 자신을 예수님 대하듯 할 때,

     그때 자신이 영적 패륜의 문턱 위에 서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3. 목사도 때가 되면 예외 없이 죽음으로 퇴장한다.

     그러나 죽음의 퇴장은 새로운 등장이다. 자신이 살아생전 야망의 노예였는지

     아니면 진리의 사람이었는지 죽음의 퇴장과 동시에 밝혀지기 마련이므로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음의 퇴장을 준비하라.

 

이재철 목사의 자기 점검 수칙 33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은혜의 단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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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통치와 판단 교회와 신자들을 상대로 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지혜롭고 일관성이 있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판단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단은 지혜의 정수이자 핵심이다 이와같은 결론을 토대로 두가지를 이끌어낼 수있다 첫째,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영적통치는 판단과 지혜에 근거한다 둘째, 참된 지혜와 판단이 있는곳에서

성령의 은혜로운 통치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방향과 목적이 뚜렷한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통치에 복종해야할 가장 큰 이유이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ㅡ리처드 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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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영의 세계를 분별하라!


요즈음 인터넷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몸소 체험한 영의 세계를 전파합니다.


그러나 거의가 지극히 개인적이요 부분적인 간증이며

성도들은 그와 같이 특별한 입신의 체험 없어도

언제나 원하는 시간에 성경 안에서 천국과 지옥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의 세계를 알 수 있는

신령한 은사와 영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


영의 세계는

한 영혼이 사망하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처럼

곧바로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이 되며

캐톨릭이 중세기에 면죄부를 팔기 위해

만들어낸 연옥과 같은 장소는 없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충성된 종들에게

열고을 또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나누어 주심은

이 땅의 헌신과 순종에 따라서 각 사람이 받는

상급의 차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 19:16-17)


여기에 주님께서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극히 작은 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 뜻은 곧

각 사람의 사명에 크고 작음을 떠나

가정이나 직장 또는 목회자와 같이

어떠한 일이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의 상급은 포도원의 일꾼들에게

품삯을 계산해주신 방법과 동일하며

얼마나 많이 일을 하는가 이전에

어떠한 동기와 목적으로 했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마 20:15-16)


이렇듯이 주의 나라와 이 세상의 다른 점은

한시적인 육체와 천사와 같이 영생하는 영체의 차이일 뿐이요

모든 행정과 오감의 느끼는 감정이 현세와 같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지옥은 꺼지지 아니하는 불 가운데

영원히 고통 당하는 장소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막 9:47-48)


성령의 사람들은

신령한 눈으로 말씀 안에서

영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인간의 이성으로 수용할 수 없는 기적의 책입니다.


홍해의 기적과 처녀 마리아의 잉태와 함께

주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며

죽은 나사로가 나흘만에 다시 살아난 일들을

이 땅에 누가 의심 없이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요 곧 믿어지는 은혜입니다.

(엡 2:8)


이러한 체험은

지난날의 불신자 시절을 생각하면

내 자신이 살아있는 증인일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깊이 연구하면

영혼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시대의 흐름은 물론이요 세상 모든 사물을

통찰하여 볼 수 있는 시각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떠한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사람의 생각이나 그 무엇도 숨길 수 없으며

성도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원인은

영적인 일을 세상 지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성경으로 영의 세계를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5)



출처: 예수 생명 원문보기   글쓴이: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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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꽃이 활활 타오르도록 불씨를 입으로 후후 불어주신다. 꺼져가는 등불은 불빛이 희미하고, 불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연기만 뿜어댄다. 하나님의 자녀 역시 처음 회개하고 나서 가진 첫 믿음은 연약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영혼은 마치 연기를 뿜어내는 등불처럼 여전히 온갖 부패에 찌들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처음의 은혜가 미약하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의 불완전한 시작을,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며 완전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로 받아들이자. 낙심될 때는 주님이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주님은 마땅히 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우리를 택하실 때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택하신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ㅡ리처드 십스


 

십자가의 비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 시대에 로마의 학정에서

고통받고 있는 유대인들도 그 옛날 모세와 같이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메시야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그러나 모세가 육신적인 구원자였다면

예수께서는 죄의 댓가로 죽어야만 하는

율법의 요구를 갚으시려고 십자가의

대속 제물로 오신 진정한 메시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을 온전케 하려고

세상에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5:17)


이와 같이 모세의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요,

세상 죄에 대하여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딤전 1:8)


더불어 기독교는 세상의 논리와는 다르게

죽어야 사는 역설적인 신앙이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주님의 십자가에 감추어진 비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곧 죽음을 의미하며 모든 성도들에게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날마다 내려주신

만나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 당하는 시험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길고 긴 신앙 여정을 방해하는

사단 마귀는 천국 문 앞까지 따라옵니다.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과 같이

우리 역시 날마다 죽어야 할 것은

그 십자가가 곧 승리이며 택함 받은 성도들의

영원한 부활에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4)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으며

내게 주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늘의 큰 상급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출처: 한국영성아카데미(성경열기.영성치유) 원문보기   글쓴이: 전도자

대홍수 사건 이후 노아는 까마귀와 비둘기를 여러 차례 방주 밖으로 내보내어 상황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으로 물이 빠져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둘기가 금방 딴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으므로, 노아는 땅 위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았다." (창 8:11)


그러나 노아는 방주 밖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결정할 수 있는 사인은 '보이는 환경과 자기 생각, 이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이 빠졌지만 결국 방주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은 자신을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 하신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거라." (창 8:15-16)


3. 오직 믿음이란 "생각하지 않는 신앙"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리 판단은 필요한 것이고 예의주시 할 수 있는 분별력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는 자세'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태도'인 것입니다.


2018년도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 것입니다. 국제정세를 비롯하야 각 개인들의 삶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세계관, 다음 세대들, 교회 등 모든 기준과 가치가 지금보다도 더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만 피해 보지 않으면 되는 것으로 가치 기준이 더욱 틀어져 갈 것입니다. 그야말로 앞으로 세상은 '노아의 대 홍수'와도 같은 총체적 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노아처럼 사리 판단을 분명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 즉 말씀을 구하며 기다릴 줄 아는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진짜 지식은 결국 보여지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노아가 까마귀와 비둘기를 통해 상황과 환경을 살폈던 것처럼 2018년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십시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으로 방주의 문을 열고 나왔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처럼 '성령님의 최종 사인'을 구하며 기다리는 "신앙의 태도"를 굳건히 세워나가시길 축복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너무 중요시 여김으로 우리는 오늘날 이렇게 되고 말았다!"라는 유럽의 어느 리더십의 자기 고백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보이는 것들로 미혹과 두려움들을 일으켜 절벽 끝으로 달려가는 들소 떼처럼 사회를 조장시키려는 '마지막 시대의 특성'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기에 노아가 보여준 신앙의 태도를 익혀야 살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성)이 아닌,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를 최종 결정으로 삼았던 노아를 통해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가 무엇인지 배워야 할 마지막 때란 것을 깊이 인지하셔여 합니다. 외딴 곳에서 전하는 말이지만 한번 즈음 들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마라나타!



출처: 김영표 목사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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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에는 은혜를 찾아볼 수가 없어요!

손바닥만 한 구름에도 감사하라.


마가복음에 보면 하나님 나라를 다음과 같이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 막 4:26-29


우리는 흔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이미 얻은 줄로 믿어라!”라는 말씀과 같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그려보고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씨를 뿌리지만 우리가 응답받고자 하는 것은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지 새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마가복음의 말씀처럼 한순간에, 그것도 당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당신이 원하는 만큼 뚝딱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 나오는 것이 바로 싹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다리며 소망할 때 처음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싹일 뿐입니다. 싹은 완전한 식물의 생김새와는 전혀 다릅니다. 심지어 잡초와도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싹을 알아보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싹은 마치 이미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엘리야가 일곱 번이나 기도했을 겨우 얻은, 사람 손바닥만 작은 구름과 같은 것입니다. 싹을 알아보는 자만이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되며 곧 이루어질 실상과 증거를 더 확실하게 붙들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싹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는 잡초인 줄 알고 밟아버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삭에 충실한 곡식만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찾지 못하면 또 다른 씨를 심기만 합니다. 행여나 이번에는 곡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비결은 매일 , 손바닥만 구름을 찾고 그것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씨를 붙잡고 믿음으로 계속 기도하기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고 부정하기 전에 당신의 삶에 돋아난 수많은 싹을 찾고 기록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싹들에 대해서 감사할 때 놀라운 은혜가 자라나게 됩니다. 싹들을 찾고 기록하고 감사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에 대한 의심은 사라집니다.


믿으면 믿을수록 더 큰 믿음이 생기듯이,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면 더 큰 은혜를 가져옵니다.


‘급한데 이웃이 엘리베이터의 문을 잡고 기다려주었다.’
‘뜻밖에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누군가가 물건 싸게 사는 법을 알려주었다.’
‘페이스북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주차장에 마침 빈자리가 있었다.’
‘함께 식사한 사람이 점심 값을 내주었다.’
‘길가 포장마차에서 군것질을 했는데 아저씨가 덤으로 하나 더 주었다.’
‘내가 한 작은 일에 대해서 그 사람이 정말 기뻐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내게 꼭 필요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 홈쇼핑에 나왔다.’
‘신호등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길을 건너는데 차가 서주었다.’
‘내가 정류장에 가자마자 버스가 왔다.’
‘식당에서 핸드폰을 두고 일어섰는데 누군가 알려주었다.’


우리 하루의 삶은 없는 은혜로 가득 있습니다그런데도 우리는 없는 것과 부족한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것만을 바라보며 삽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만 열면 이미 주어진 은혜의 조각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에 놀라게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마음의 눈을 뜨고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발견해보십시오!



출처: 갓피플 말씀테마 (http://gp.godpeople.com/archives/category/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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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야 할 이유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탠'이라는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척추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척추암은 수술로도 약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몇 달 후에 그가 병상에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탠리 탠은 “아 네, 전 하나님 앞에 감사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하나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매순간마다 감사하고 감사했더니 암세포는 없어졌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은 '감사'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미국의 정신병원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을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치료 보다는 소위 '감사'치유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감사한 일들은 무엇일까를 찾아내게 하고 감사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물치료보다도 이 감사치유법이 훨씬 더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이 감사치료법은 단지 정신과적인 치료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탠리 탠'의 경우와 같이 육체의 질병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 해군 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 씨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오고 나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이 났고 불평 불만이 쌓여져 갔습니다.

결국 그는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그는 정신 치료가인 후찌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찌다씨는 그에게 “매일 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만 번씩 하세요” 라고 처방했습니다.

기이찌 씨는 자리에 누운 채로 매일 밤 계속해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계속했습니다.

매일 “감사합니다”를 했기 때문에 감사가 몸에 배여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두개의 감을 사와서 “아버지 감을 잡수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때 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신기하게도 손이 움직였고 차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던 목도 움직여지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 감사가 되었고 불치병도 깨끗이 낫게 한 것입니다.

사람의 병은 대부분 스트레스에서 옵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마음의 상처와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모든 스트레스와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인 미국 텍사스 주립대 MD앤더슨 암센터에 31년간 봉사한 김의신 박사는 신앙이 암 치료에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 성가대원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해보니, 성가대원들의 면역세포(일명 NK세포) 수가 일반인보다 몇 십 배도 아닌,
무려 1000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합니다.

감사로 찬양하고 사는 것이 그만큼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합니다.

감사는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소화 작용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1998년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 두 의사가 실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찬양하고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존 헨리 박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감기약보다 더 대단한 효능을 가진 것이 감사약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며 감사하면 우리 신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준다고 합니다.

매일 감기약이 아니라 감사약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1분간 기뻐하여 웃고 감사하면 우리 신체에 24시간의 면역체가 생기고, 우리가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 동안의 면역 체계가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며 감사약을 먹으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탈무드에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항상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호흡이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지금 걸어 다닐 건강이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지금 살아서 움직이며
할일이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왜냐하면 아직도
하나님이 살아 있도록
생명과 건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건강이 없어서
마음의 소원은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죽음만 기다리는
죽은 사자 같은 모습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셔서
아직도 살아 있도록
해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인에게서 받은 글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그랬습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다 가지신 분이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내가 가난하기에

가난한 내게 가까이 오시려고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분은,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지혜로우신 분이

그 지혜로움을 버리시고 바보가 되셨습니다.


내가 바보이기에

바보인 나와 친구가 되고 싶으셔서

세상 가장 못난 바보가 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분은,

건강하신 분이

아픔이란 모르시는 분이

아파 죽어가는 나를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은,

그 분은 그렇게 사랑이셨습니다.

사랑이셨기에

모든 것을 버리시고

가장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너도 그렇게 사마리안처럼 살아라

말씀하시지 않아도

내 안에 흐르는 피

당신에게 받은 것

나의 이 생명 당신 것이오니

당신처럼 살아갈 것을 약속해 봅니다.



-해처럼달처럼



 

총살 앞에서 신앙을 지킨 두 소녀!

우리는 감사하며 죽습니다...


추친슈와 호슈추 이야기

중국 대륙, 장시

1966-69, 홍위병 시대


중국 소녀 두명이 예고된 형 집행을 위해 감옥 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감방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다른 동료 죄수가,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나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고 표현하였다. 무척 슬프지만 다정한 빛을 띠고 있었다고.


인간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추친슈와 호슈추는 신앙을 버리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중국의 한 소녀. 기사와는 관련없음.)


변절한 보초들과 함께, 형 집행인이 손에 권총을 든 채 다가왔다. 그는 그들의 목사님이었다. 그는 이 소녀들과 함께 형 집행을 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회 역사상 수많은 경우에서처럼, 형 집행자들이 그에게 작업을 걸며 그를 유혹하였다. 그들은 이 소녀들을 쏘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녀들은 서로에게 속삭인 후 공손히 목사님께 인사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우리를 쏘시기 전, 우리 목사님이셨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저희에게 세례를 주셨고, 영생을 얻을 길을 알려주셨으며, 지금 권총을 든 바로 그 손으로 주의 만찬을 베푸셨습니다.


목사님은 또한 기독교인이 간혹 약하여 끔찍한 죄를 저지르지만, 다시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목사님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일을 후회하게 되실 때, 유다처럼 절망하지 마시고 베드로처럼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품은 마지막 생각이 목사님의 과오에 대한 분노가 아님을 기억해 주세요. 누구나 어둠의 때를 지나는 법이니까요. 목사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선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감사하며 죽습니다.”


그들은 다시 인사했다.

목사님의 마음이 굳어졌다. 그리곤 두 소녀를 쏘았다. 그 뒤 그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예수쟁이들은 가까운 이들에게 배신당할 때 어떻게 하는가? 예수쟁이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5, 7, 개역개정)



출처: 순교자의 소리 (https://goo.gl/UWHK2m)

스콴토는 인디안 청년의 이름이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하기 약 10년 전 1608년에 헌트라는 함장이 이끄는 영국 무역상들이 이곳에 먼저 도착했다.

그때 그들은 인디안 족을 만나 무역을 거래하는 척하다가 그들을 포로로 잡아 스페인에 노예로 팔아 넘겼다.

그런데 그들 중에 스콴토라는 청년이 끼어 있었다.


그는 스페인의 한 친절한 사제에게 팔려 교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의 전도로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기도하는 것을 배우면서 늘 세 가지를 기도하였는데

첫째는,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 ,

둘째는, 고향에 돌아가면 자기를 잡아간 백인들을 원망하지 않고 백인들과 협력하여

 고향 땅을 스페인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것 ,

셋째는, 자기 평생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했다.


그후 스콴토는 사제의 도움을 받아 진실한 기독교인인 영국의 존 슬랜니(John Slaney)의 집에서 일하게 되고,

슬랜니의 도움으로 고향을 떠난 지 10년 만인 1619년에 미국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한 그대로 백인을 원망하지 않고, 소수의 인디언들을 이끌고 땅을 개간하고 마을을 재건했다.


바로 그 다음 해인 1620년에 청교도들이 그곳에 도착한다.

스콴토는 유창한 영어로 청교도들을 환영하고 청교도들이 그곳에서 정착하도록 도와주었다


 당시 청교도들을 인도한 브래포드 목사는 그의 일기에 스콴토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준비된 특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는 우리에게 옥수수를 어떻게 심는 것과 낚시를 어떻게 하는 것과 땅을 어떻게 개간하는가를 가르쳤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를 인도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오늘날 미국이 있기까지는 스콴토의 믿음과 감사에서 비롯된 기적이 있었던 것이다.


 

-펌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4가지 방법!


1.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마음의 자세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15:3)

우주는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부르심, 우리의 안수, 우리의 사역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재능, 기술, 심지어 우리의 꿈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대부분 분명히 우리의 영광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틀을 깨고, 우리의 삶이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심으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편 115:1)

2.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분의 뜻을 찾으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아닌 그분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세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반적인 뜻을 갖고 계신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3. 당신의 역할을 알라.

그렇다면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어떤 뜻을 두셨는가? 당신을 부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에 에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하리라” (요  14:23)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의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당신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신은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가? 당신은 그분의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며 순종하고 있는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있는가?

여기에 한 가지라도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회개하고 순종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바로 가서 행하라!

만약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면, 염려하지 말라. 이를 계속하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4. 기도하라.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만, 너무 중요한 것이다. 매일, 매주, 매년, 하나님께 당신의 뜻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라. 조금씩 일들이 연결되고, 문이 열리거나 닫히며,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떠한 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매일 매일의 결정에 대하여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마음의 평안’은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려주는 좋은 척도이다.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한 평안이 느껴지지 않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 알 수 없다면, 매우 단순하다. 하지 않으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쌓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이시다. 예수님은 위대한 목자이시다. 그분은 당신을 부르시고, 당신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으로부터 듣고, 그분을 따르라. 그분에 대해 아는 것보다 그분의 뜻을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출처: 영국 크리스찬투데이

 


예수의 천국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는 겨자 씨로부터, 지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또 싹-이삭-열매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 즉 성장의 단계가 있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문제 많은 나라의 모습을 보며, 나라가 확 뒤집어져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다른, 관계가 없는 신비주의적이고 열광적인 모습일 뿐이다.

천국을 바란다면, 지금 당장 겨자씨 한 알부터 심어라.
그리고 열매가 맺힐 때까지 땀을 흘리고 인내하라.

휙휙 뒤집어서 세상을 다 바뀔 수 있으면,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하셨겠나?

옛날에는 우파 정권 때문에 힘들다고 그랬고, 지금은 좌파 정권때문에 힘들다는 이들도 많고, 그래서 확 뒤집어서 바꾸고 싶다고들 하는데, 뒤집어봐야 별 볼 일 없다.
인간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꼭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 실존적인 문제에도 이것은 다 동일하게 적용된다.

세상이 바뀌려면, 환경을 바꾸려면, 인간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 안 바뀌면, 세상이 바뀌어도 그 안 바뀐 인간 때문에 세상이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자기는 안 바뀌면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지금까지 지옥을 경험해왔다.

그래서 천국 비유의 또 다른 핵심은, 천국은 바로 내 마음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변화되지 않고서, 당신 안에 천국이 없으면서, 입에서 늘 헬이니 지옥이니 달고 다니면서, 세상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천국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맛도 못 본 사람이, 무슨 천국을 만든다는 말인가?
천국이, 하나님 나라가, 유토피아가 뭔지 알기나 하냐?

참고로 겨자씨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를 상징한다.
하나님 말씀대로, 진리대로 살아가면, 하나님 나라를, 천국을 맛볼 수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 뒤집을 생각하지 말고, 말씀으로 자신부터 뒤집어라.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먼저 천국으로 만들어라.

 

페친 노승현 씨 페북포스팅 201711101324 ■

창세기로 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성경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신정국가(말 그대로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기사다.

에덴 동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는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로 상징되었다. 모든 창조물을 다스릴 대리자의 지위를 부여받은 아담은 모든 지상활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바지하도록 해야만 했다. 구약학자인 Meredith Kline은 이와 같은 신정국가들을 시종일관 종교(예배)와 문화(세속적 활동)의 결합으로 구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적인 활동들이 '예배'라는 보편적 방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아담의 왕적 신분을 통해 에덴동산을 통치하셨다. 바꿔 말하자면, 에덴 동산은 말 그대로 '지상천국'이었다. 모든 것이 이적에 의해 다스려졌다. 그것은 천국의 축소판이었다. 그렇지만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예배와 문화의 통일성이 와해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장래를 위한 상징과 그림자와 약속을 통해 구원을 소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 나라가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 죄를 용서하고, 믿는 자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모든 것을 바르게 회복하실 때가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구원을 받았다.

세계 역사가 진행된 훨씬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반역과 죄악으로 가득 차 버린 세상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라는 한 사람을 택하시고 방주를 만들게 하셨으며, 장차 그 방주를 통해 '새 창조'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셨다. 각각의 종류에서 보존된 생명체들은 이 작은 신정국가, 곧 노아의 방주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범람하는 바다를 견뎌 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한 왕을 통해 기적으로 자기백성을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아 악인들은 멸망당하고 의인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임을 약속하셨을 때, 하나의 새로운 국가가 탄생되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 신정국가가 되었다. 성막이 세워졌으며 이후에는 성전이 건축되었다. 그 성전은 에덴 동산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냄세로 가득 찬 방주도 아니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업적이었다. 다시 한번 종교(예배)와 문화(인간의 활동)가 융화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직접다스리셨다. 홍해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길을 열기 위해 갈라지고 그들의 대적을 집어삼키키 위해 덮쳤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한번 물로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광야에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양육되었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다. 그 나라는 그들 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우셨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사의 중심이요, 장차 오실 왕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가진 제사장과 왕의 직무를 행함으로 종교와 문화를 하나로 융합시켰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구원, 기도, 예전 그리고 '영적'인 일에 관한 문제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문화, 사회, 정치, 경제 생활의 모든 양식을 지시하셨다.

그와 같은 각각의 신정국가에는 성전,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있었으며, 희생 제사도 있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첫 신정국가의 성전이었고, 노아의 방주는 두 번째 성전이 되었지만, 솔로몬의 성전이 구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것이었다.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무의  경우, 신정국가에서는 대개 한 사람의 대리자가 그 세가지 직무를 모두 겸임했다. 희생 제물의 경우,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덮을 수 있는 가죽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동물을 희생 제물로 삼으셨으며(창 3:21), 죄를 위한 궁극적 희생을 약속하셨는데, 단지 이 동물 희생은 장차 있을 궁극적 희생에 대한 하나의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다(창 3:15). 홍수 이후에 노아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다"(창 8:20). 희생제사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신정 국가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그리고 모든 신정 국가들은 이적으로 통치 받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하시고, 구원하시고, 보여주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사렛의 어느 고요한 밤, 한 유대인 처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잉태했을 그때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였다. 과거에 예언자들과 제사장들과 왕들이 예표했던 바로 그분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자 세상에 오셨던 것이다. 그분의 신정국가는 이적과 계시와 구속 행위가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으로 국면으로 펼쳐질 것을 예고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나라의 실제 속에서 천국을 지상으로 이끄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성전이셨으며, 그것은 솔로몬이 최고 전성기 때 누렸던 명성과 영예의 찬란함을 능가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라고 선언하셨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그때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적보다는 섭리가 특정적이었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승천을 기점으로 지상이 아닌 하늘의 신정국가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천국에 계시기 때문에 천국이 이 땅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복음이 전 세계를 통해 신앙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적으로 현존한다. 우리는 말 그대로 홍해를 통해, 혹은 방주 안에서 홍수를 통해 인도함을 받는다기 보다는 심판의 바다를 통해 인도함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고 있는 나라가 점진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과,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시는 일이 원수를 친구로 변화시키는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그분의 희생으로 성취된다는 것에 주목하자. 대중들이 믿고 있는 바가 다양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강령이나 사회적 행동지침이 아니다. 결국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희생 제물이다. 그리스도는 성전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며,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우리의 죄악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정결한' 짐승 제사로 예표되었던 온전하고 흠이 없는 한 번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화목을 위한 최고의 방식을 충족시키셨다.

은혜의 복음이란/ Michael S. H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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