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장이의 권(權)


[로마서 9장 19-24]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
왜 누구는 택하시고 왜 누구는 버리시느냐고요?
왜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지 않으시느냐고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요?

그럼, 산더미같이 많은 진흙을 몽땅 파서 지고 와야 옳다는 겁니까?
자기 죄악으로 죽은 자들을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모두 구원해 주어야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 되는 것입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택하신 대로 구원하신다 하여 나쁜 하나님이 되고, 저녁 다섯 시에 포도원에 들어와 겨우 한 시간만 일한 품군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다 하여 악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까?
토기장이가 자기 쓸만큼 진흙을 가져다 자기 맘대로 어떤 것은 귀한 그릇으로 만들고 어떤 것은 천히 쓰는 그릇으로 드는 게 잘못입니까?
또 가져왔다 해서 모든 진흙을 공평하게 모조리 고려청자로 만들어 주어야 진흙들이 불평을 않게 되는 겁니까?
토기장이가 진흙 일부를 가지고 도자기 구울 가마를 만든들 진흙이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사랑하셨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에서나 야곱이나 다를 바 전혀 없으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을 뿐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쓰셨을 뿐입니다.
야곱을 그렇게 택하시고 에서를 그렇게 사용하시고 성경에 기록케 하셔서 오늘날 성경을 읽는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려 한 것입니다.
먼 훗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렇게 그들을 각기 사용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 하고 애굽 백성이 되어 혼나고, 애굽군대가 되어 바다에 수장되고, 가나안 족속이 되어 진멸 당하였습니까?
또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다 구원 받았습니까?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고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바벨론에 침공당하여 죽고,
겨우 얼마, 남은 자만이 구원 받지 않았습니까?
인류역사를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하’자, 예수님 ‘예’자도 못 들어보고 죽어갔습니까?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선택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선택으로 여러분의 공로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과 천국을 약속받았습니까?
인류역사 수 천 년에 오늘날 자유세계에 태어나서 복음을 듣고 예수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여러분의 공로이며 여러분의 선택입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가 할 것이 아니라 그 엄청난 구원의 축복이 어떻게 내게 왔는가를 생각하십시오.
너도 나도 다 받는 축복이 아닙니다.
구원은 값싼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흔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 엄청난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어찌 나 같은 것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기 되는 구원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가? 생각할수록 그것이 귀하고, 그것이 감사하고, 그것이 말할 수 없이 큰 은혜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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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9가지 열매는 ...

 

사랑의 열매   

겸손하고 섬기는 마음.
자기 이익만 생각 아니하는 마음
소외를 주지 않고 덮어주고 감싸는 마음
시기 질투하지 아니하는 진리를 기뻐하는 마음

 

희락의 열매  

항상 기뻐하는 마음
매사에 감사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마음.
매사에 긍정하는 마음
좋은 것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창조하는 마음

 

화평의 열매  

모든 사람과 평화하는 마음.
이것도 저것도 다한 양면성있는 마음.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 맞추는 마음.
믿음에 맞추지 않고 상대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
모든 사람의 이익을 좆아 은혜를 가지는 마음.
마땅한 법도를 좆아 불편을 주지않는 융통성있는 마음.
나를 드러내지 않고 걸림이 없는 마음.
언행에 편벽이 없는 마음

  

오래의 열매   

참음
모든 일에 성급하지 않는 마음.
언행에 조급하여 그릇치지 않는 마음.
꾸준하고 지속적인 마음.
순간적인 실망을 하지 않는 마음.
고통과 시험 환난에 요동하지 않는 변함없는 마음

 

자비의 열매  

겉으로 상대를 판단 결정하지 않는 마음
긍휼과 구제의 마음
언행에 경솔하지 않는 마음
모든 사람에 관대한 마음
상대를 모함하지 않는 마음
상대에게 성공을 주는 마음 

 

양선의 열매  

서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는 마음.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 마음.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 존중의 마음. 
분명하지 않는 일에 나서지 않는 마음

 

충성의 열매  

매사에 근면하고 적극적인 마음.
나라에 충성하고 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마음.
존경 하는 마음

 

온유의 열매  

솜털과 같은 마음
넓게 포옹할 수 있는 마음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마음
포근하고 부드러운 마음

  

절제의 열매  

중용 · 조화 · 질서를 추구하는 치우침이 없는 마음
우리들에게 필요한 아홉가지 열매를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꼭 필요한 마음.

 


 충처: 사모님사모님/달빛

그리스도께서 다루실 대상, 그는 상한 사람이다.

 

리차드 십스


1. 회심의 필수 요건인 '상함'


이 상함은 회심 전에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상황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교만하고 높은 생각들을 낮추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실 길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떠나 방황하며 집을 떠난 이방인처럼 지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혹은 저런 십자가를 주심으로 우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탕자인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7] 

둔하고도 간사한 심령으로 하여금 자비를 구하기 위해 간절히 부르짖도록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마치 범죄자처럼, 모든 잔꾀를 동원하다가 실컷 얻어맞은 후 에야만 

심판장에게 자비를 구하기 위해 부르짖습니다. 


회심 이전의 상함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가치를 높이 여기도록 만듭니다. 

복음은 그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의 윤리(Morality)라는 무화과 나뭇잎은 우리에게 무용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더욱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감사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욱 열매 맺는 삶이 됩니다. 

무엇이 많은 이들을 그처럼 냉담하고 메마르게 할까요? 

죄 때문에 상함을 입은 일을 겪으면서 

자신들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 같은 다루심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길에서 넘어지고 상하게 함으로써, 

그리하여 그분의 길에 서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에 첫발을 내딛을 때, 

죄에 대한 슬픔을 경험하지 않고 율법의 채찍을 충분히 맞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타락하고 배교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는 원인은 그런 경험의 부재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고후10장 5절의 말씀처럼 

'높아진 생각을 낮추는' 성령의 초보적인 사역이 회심 전에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  

그리고 성령은 일반적으로 죄인됨을 확신시키는 사역을 진전시키기 위해 

어떤 고통을 더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결하게 하며, 치유하고 정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2. 회심한 후에도 필요한 우리의 상함


 


회심한 후에도 우리는 상함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상함을 통해 갈대는 자신이 참나무가 아니라 갈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갈대조차도 상함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본성 속에는 교만의 찌끼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비에 의해 산다는 사실을 알 게 하기 위해서 상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보다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흔들리고 상하는 것을 볼 때 

너무 심하게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26:75에서 베드로가 심히 통곡할 때 그는 그처럼 상해 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26:75]

이 갈대는 그가 그렇게 상함을 받기 전까지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신앙 위인들의 영웅적인 행동보다는 

그들의 실패와 상함이 교회에 더 큰 위로를 줍니다. 


이와 같이 다윗도 상함을 입었습니다. 

시32:3-5에서 다윗은 

마침내 거짓 없는 영으로 자유로운 고백에 이를 수 있을 때까지 종일 신음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시32:3-5] 

아니, 시51:8에 의하면, 그는 

그 자신의 감정 안에서 뼈가 꺾이는 정도의 극한 고통을 느끼기까지 슬픔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시51:8] 


히스기야도 이사야 38:13에서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그의 뼈를 꺾으셨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사38:13] 

택하신 그릇인 사도바울도 너무 자고해지지 않도록 

그를 괴롭히는 사탄의 사자를 필요로 하였습니다(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

 


3. 우리가 알아야 할 교훈 한 가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함 위에 상함을 역사시키실 때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가혹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상함을 받으신'(사53:5)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상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천국으로 데려가시는지에 대해 

무지한 불경건한 영혼들은 

심령이 상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좌절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롭고도 선한 일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너무나 강퍅하고 고집스럽기 때문에, 

한 사람을 그의 본성으로부터 은혜로 데려가는 것과 은혜로부터 영광으로 데려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리차드 십스의 ‘꺼져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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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끈이 되신다- 좐 칼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것이 되시고 또한 우리 속에 거하셔야만 비로소 그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축복들을 우리와 함께 나누실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가리켜 “우리의 머리”(엡4:15), “많은 형제 중의 맏아들”(롬8:29)이라 부르며, 우리에 대해서는 그에게 “접붙임”이 되었다고 하며(롬11:17), 또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3:27)고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그가 소유하시는 모든 것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또한 그가 베푸시는 모든 은택을 누리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는다.

 

사도 바울은 깨끗이 씻음과 의롭다 하심에 대해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기 자신과 연합시키시는 끈이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특별한 목적으로 성령을 받으셨다.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우리를 영원한 기업의 소망으로 연합시키시기 위하여 친히 성령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가리켜 “거룩하게 하심”의 영이라 부른다(살후2:13,벧전1:2,롬1:4). 그가 친히 우리 속에 있는 하늘의 생명의 뿌리와 씨가 되시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해 제시하는 최고의 사실은 바로 그 나라에서는 성령께서 더욱 풍성하게 부어지리라는 것이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욜2:28). 그리스도는 성령의 선물들을 지니셔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다. 주님은 목마른 자들을 향하여 자기에게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셨다(요7:37). 바울은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엡4:7) 각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를 구하면서 동시에 “성령의 교통하심”을 거기에 덧붙이는데(고후13:13), 그것은 성령의 교통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절대로 맛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한다(롬5:5).

 

성령은 여러 칭호로 부른다. “양자의 영”(롬8:15)이라 부르는데, 이는 그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안에서 우리를 품으셔서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신 그 하나님의 값없으신 사랑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는 분이시며, 또한 그에게 기도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을 기업의 “보증이며 인”이라고도 부른다(고후1:22). 성령께서는 은밀한 가운데 우리에게 물을 대어주심으로써 우리에게서 의의 싹이 돋고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 “물”이라고 부르는 예가 많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55:1),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사44:3). 이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요7:37)과 일치한다. 그러나, 때로는 깨끗 씻어 정결케 하는 그의 능력 때문에 성령을 가리켜 “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호와께서 “맑은 물”로 그 백성들의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정결케 하리라고 약속하신다(겔36:25).

 

또한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부으시고 충만한 삶의 힘을 회복시키신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가리켜 “기름”, 또는 “기름 부음”이라고도 부른다(요일2:20.27).

 

또한 반대로, 성령께서는 악하고 규모 없는 정욕들을 억제하시고 제거하시며, 또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불타게 하시므로, 그를 가리켜 “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눅3:16).

 

성령을 가리켜, 하늘의 모든 풍성한 것들이 우리에게 솟아 나오는 “샘”으로 묘사하기도 하며(요4:14), 그를 하나님의 권능을 시행하는 “주의 손”으로 묘사하기도 한다(행11:21).

 

요컨대, 성령께서는 그의 신적인 감동으로 신적인 생명을 우리 속에 불어넣으셔서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그의 역사하심과 자극의 지배를 받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선한 것은 모두가 그의 은혜의 열매들이며, 그와 상관 없이 우리가 지닌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정신의 캄캄한 어둠과, 마음의 비뚤어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갈5:19-21).

 

그리스도와의 신성한 혼인을 통하여 우리가 그의 살 중의 살이요 그의 뼈 중의 뼈가 되어 그와 하나가 되는데(엡5:30), 이 신성한 혼인이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연합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와 연합을 이루신다. 그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어, 그는 우리를 자기 자신 아래 있도록 지키시고, 또한 우리는 그를 소유하는 것이다.

 

성령의 주된 역사는 바로 믿음이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용어들은 대개의 경우 믿음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그가 우리를 복음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다(요1:12-13).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야말로 초자연적인 선물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님도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고 하셨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은 그들의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했는데(엡1:13) 이 역시 이와 비슷하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하는데(살후2:13), 이는 믿음 자체의 근원이 다름 아닌 바로 성령이시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13).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이 능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의 영”을 주셔서(요14:17), 그들이 하늘의 지혜를 받아누릴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령을 가리켜 천국의 보화를 여는 열쇠라 부르는 것(계3:7)도 합당할 것이며, 또한 그의 조명하심을 가리켜 마음의 눈이라 부르는 것도 합당할 것이다.

 

바울은 성령의 직분을 높이 기리는데(고후3:6), 이는 내적인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지 않으시면(요6:44) 인간 교사들이 아무리 외쳐도 전혀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구원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했거니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심으로써(눅3:16) 우리를 그 구원에 동참하게 하셔서, 그의 복음을 믿는 믿음 속으로 우리를 밝히 이끄시며, 우리를 중생케 하사 새로운 피조물들이 되게 하시며(고후5:17), 그리하여 세상의 더러움에서 우리를 깨끗이 씻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구별하여 세우시는 것이다(고전3:16-17, 엡2:21).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중권(크리스챤다이제스트), PP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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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심판은 반드시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한다 / 존 프레스톤

출처: 청교도의길 http://blog.daum.net/kds2012/732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보내신다. 자신들의 신앙고백에 대하여 삶으로 응답하지 않는 자들은 참으로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예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마12:30). 여러분이 하나님의 원수처럼 사는 자는 아닐 것이다. 어떤 악의 길을 활개 치며 다니는 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그 마음이 온전치 못하다면,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판명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날에 여러분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그러나 여러분을 대적하는 원수로서 임하실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소망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그에 반하여,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을 구해 주실 분으로 소망하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대적하는 가장 장인한 원수로 드러나실 것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시2:12). 그 아들께서는 계시록 1장에서 보여 주듯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분’이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분노하시어 여러분을 밟아 가루로 만드실 수도 있다. 그분은 지극히 외적인 여러분을 치시기 위하여 임하실 것이다.

 

또한 이것을 기억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주(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이 땅에 정사를 어깨에 짊어지신 왕으로 임하셨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여러분은 그분이 세상에 임하실 때 맡으신 직무의 일부분, 아니 임하신 목적의 절반을 망각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영과 지위를 지니신 분이시며, 이 두 분은 모두 죄를 향하여 같은 태도를 나타내신다. 그분을 바르게 인식하라. 그러면 그분은 여러분과 동행하실 것이며, 여러분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 왕께서는 모든 통치를 홀로 책임지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온 땅의 교회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시며, 또 그렇게 다루어야만 하는 사실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시겠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미지근했기 때문이요, 첫사랑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심판을 프랑스에서 시행하실 수 없는가? 영국에서는 안 되는가? 그렇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그 자리에서 제하여 버리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신다 할지라도, 우리를 그렇게 다루셔야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분노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대우는 우리의 신앙이 참된 신앙이 아니라는 증거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들을 향하여 분노를 품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자들을 향해서 가장 빠르게 분노하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심판은 반드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벧전4:17).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온 세상을 주목하신다. 지금 유럽을 바라보시듯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집의 현재 상태를 바라보시며, 심판을 시작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른 이들을 사용하셔서 자기 교회들을 징계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암3:2). 가장 신속하고 자주 그렇게 하신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행하시는 것보다 더 심하게 징계하지는 않으신다. 왜냐하면 교회는 물 아래로 지날지라도 다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사43:2).

 

- 존 프레스톤, 『황금홀』, pp 39-42

가져온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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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웨슬리 L. 듀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는 결코 기차 칸을 옮겨 다니지 말라.”

실망해 있거나, 큰 어두움을 느끼고 있거나, 또는 낙심에 짓눌러 있는 동안에는

결코 결단을 내리지 말라. 그럴 때 결정을 내린다면

당신은 그것을 후회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 왔다.

침묵 때문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질문이 응답되지 않았다고 해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두운 침묵때문에 당신이나 하나님이나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현재 당신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 번처럼 그렇게 분명한 인도하심을 주시지 않는 한,

당신이 조금이라도 변화를 시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변화를 계획하고 계실 때에는 하나님의 성격상

반드시 적절한 시기에 당신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사 30:20-21).

반복해서 말하지만, 순종하는 자녀에게 적절한 때에

새로운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일은 아버지가 절대적으로

책임을 지셔야 하는 일이지, 새로운 지시 사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녀가 책임지고 알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주하시는 상담자가 책임지고 당신이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지,

당신이 그에게 방향을 지시해 달라고 요청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는,

다시 말씀하실 때까지 당신이 그대로 있어 줄 것을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웨슬리 L. 듀엘의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싶거든"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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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에서 제일 더운 지역: Death Valley National Park, 화씨 134도(July 10, 1913.)





2. 세계에서 제일 추운 지역: East Antarctic Plateau, 남극, 화씨 -135.8도(August, 2010).





3. 제일 주민이 많은 도시: 상해, 주민 24,150,000 인





4. 제일 주민이 적은 도시: 바티칸 시, 주민: 842인





5. 제일 가난한 도시: Kinshasa,콩고공화국, 생활비=하루 $1





6. 사진을 제일 많이 찍히는 도시: The Guggenheim, 뉴욕




7. 가장 인기있는 국가: 독 일





10. 가장 습한 지역: Mawsynram, India, 년간 467인치의 비가 온다.





11. 제일 건조한 지역: The Atacama Desert, 남 아메리카, 1000년동안 4 인치의 비가 옴





12.가장 해가 잘 비치는 도시: Yuma, Arizona, 하루에 11시간 해가 비침. 일년중 90% 해가 비침.





13. 가장 생활비가 비싼 도시: 싱가폴, 자동차 값이 미국의 4~6배, Toyota Prius 가격=$150,000.00





14. 가장 생활비가 싼 도시: Mumbai, India, 빵값이 거저나 다름 없이 싸다.





15. 가장 많은 음식 소비 국가: 미 국, 매일 3,700 칼로리 섭취한다.





16. 가장 오래된 도시: 다마스커스, 시리아, 11,000년의 역사.





17.제일 많이 방문하는 도시: 런던, 년간 1800만 방문객 기록





18.제일 인기없는 나라: 이란





19. 제일 위험한 나라: San Pedro Sula, Honduras, 하루에 3건의 살인사건 발생.





20. 가장 커피를 많이 먹는 나라: 스웨덴, 하루에 388mg 소비.





21.가장 술 많이 먹는 나라: 벨라루스, 술을 매년 1인당 4.6 갤론 소비.





22. 가장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 네델란드, Groningen시는 주민의 50%가 자전거를 이용.





23.가장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나라: Reykjavik, Iceland, 도시 전체를 지열로 난방처리.





24. 고양이를 제일 많이 키우는 나라: 미국, 76만 마리 고양이를 키움.





25.성 교육이 가장 잘 된 나라: 스위스, 유치원 시절부터 성교육.







26. 성에 제일 불만인 나라: 일본, 여성의 15%만 만족한다는 통계.





27. 가장 정서적인 나라: 필립핀




28. 가장 비정서적인 나라: 싱가폴




29. 가장 장수하는 나라: 모나코, 평균 87.2세




30. 가장 단명국가: 시에라 레온, 수명 47세




31. 가장 스트레스가 적은 나라: 놀웨이





32.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발달된 나라: 서울, 한국, 최고의 통신속도, 최고의 스마트폰 보급율, 개방된 인터넷 환경.



 

 

 

 

 

세상의 모든 명언중 "인간 관계의 5가지 법칙'이라는 좋은 글이 있어서

소개해 드릴까해요!!

 

1. 노크의 법칙

마음의 문을 열려면 먼저 노크하라.

그리고 나에 대해 알려 주라. 내가 먼저 솔직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 망가지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2. 거울의 법칙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웃어야만 거울속의 내가 웃듯이 인간 관계도 내가 먼저 웃어야 한다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3. 상호성의 법칙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싶으면 먼저 호감을 가져야 한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관게에 있어서는 항상 좋은 감정을 갖고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4. 로맨스의 법칙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으면

이런 이중잣대를 버리고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라.

 

5. 짚신의 법칙

짚신에도 짝이 있듯이 사람마다 맞는 짝이 있기 마련이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친해지려고 애써지마라. 인간관계가 많다보면 악연이 생기기 쉽다.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 하지 말고 나와 통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연을 구하고 악연을 피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하는 비결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출처 BAND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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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글,            


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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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


<교황>은 아직도 지상의 하나님인가?(천주교인도 잘 모르는 카톨릭의 무서운 이단성


이 글은 카톨릭이 직접 편찬한 < 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1994 >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많은 내용을 2p정도(사진 제외)로 줄였는데 더 이상은 못 줄이겠다.

어쨌든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1. 교황은 지상의 하나님이며 율법도 바꿀 수 있다

 

• 바티칸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베드로가 1대 교황으로 임명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근거 없는 억지에 불과하며, 베드로조차도 “이분은......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느니라 (행 4:11)”고 말하며,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한다. 또한 성경 전체적으로도, 반석이 인간을 미화하는데 쓰인 경우가 없었다.

 

• 교황은 성경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

- “교황은, 하늘과 땅과 지하세계의 왕으로서......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 => Lucius Ferraris, "Papa, art" Prompta Bibliotheca 1782년)

(교황의 공식 칭호에 대한 글)

 

               

 

• 교황의 전용관인 3층 면류관의 의미 : 교황이 천상•지상•지하를 다스리는 하나님이라는 의미

- “우리(주: 교황들)은 이 땅 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June 20, 1894, The Great Encyclical Letters of Leo XIII , 304 )

 

• 카톨릭은 공식적으로, 교황을 지상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였다.

-“ 교황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 => Lucius Ferraris, "Papa, art" Prompta Bibliotheca 1782년 )  (교황의 공식 칭호에 대한 글)

 

• 중요한 것은, 교황이 1992년에서야 <지동설의 갈릴레오>를 사면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교황이 직접 철회하거나 교리책에서 없애지 않는다면, 그 교리는 계속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에 “교황의 결정은 틀릴 수 없다”는 <교황무오설>을 믿는 까닭이다. 어떤 교리들에 대해서 아무런 철회도 없이 침묵만 지킨다면, 그 교리들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봐야 한다.

• (현대인들은 까먹고 있지만) “ 과거 개신교의 종교개혁가들은 한결같이, 계시록의 ‘작은 뿔‘,‘불법의 사람’,‘적그리스도’의 단서를 지닌 ‘짐승’을 교황이라고 지적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 월간 풀빛목회, 강춘오목사 ( 한국 기독언론협회 회장, 교회연합신문 발행인,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

 

 

           2. 마리아는 만물의 여왕이다

 

• 교리문답에 나오는 마리아에 대한 언급 중 몇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 “그녀(마리아)의 중보로 영원한 구원의 선물이 우리에게 미치는 것이다.” (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969항 )

- “ 그러므로 마리아는, 변호인, 돕는 자, 중보자, 은혜를 베푸는 자의 이름을 가지며 교회 안에서 간구의 대상이 된다. ” ( 교리문답 969항 )

- “ 그녀의 삶이 끝났을 때, 하늘의 영광을 입게 되었고, 주께서 만물의 여왕으로 마리아를 높이셨다. ” ( 교리문답 966항 )

 

• 간단히 말하면 성경은, 마리아가 ”여자 중에 복이 있다”라고만 했지 그녀를 신성시한 부분이 전혀 없다. => 성경은 예수만이 ‘유일한 중보자’라고 말한다. <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 예수시라. (딤전 2:5 ) >

=> 성경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변호인’이라고 한다. < 누가 죄를 지으면.....한 변호인이 있으니, 곧 예수그리스도시라. ( 요일 2:1 ) >

 

• 카톨릭의 마리아는 바벨론의 세미라미스 등 이교도 여신들과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또한 천주교인들은 존경의 대상일 뿐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기도의 대상이며, 교리문답에는 중보자이며 여왕으로까지 숭배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외에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마리아에 대한 숭배도 언급하지 않는다. < 모든 이름 위에.....뛰어난 이름을 주사.....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9-10) >

      

                    3. 태양신 숭배

        

           

 

                         

                                                        성체숭배행렬

 

태양신 숭배에 대한 공식적인 교리는 없다. 하지만, 성당들 내부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흔적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성체숭배행렬은 가장 태양을 사모하는 행사이다. 특별한 날에는, 태양모양의 <성체안치기>에, 태양모양의 빵을 끼워, 태양 형상의 제단에 바치는 것이다.

      

                      4. 고해성사

 

카톨릭은 카톨릭의 신부와 교황이 인류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고 가르친다.  - “주교들과 사제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갖는다” ( 교리문답 1461항 )

그러나, 성경은 결단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 < 하나님 한분 외에 누가 죄들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 막 2:7 ) >  예수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존재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종교는, 그것이 신천지든, 통일교든, 카톨릭이든 다 이단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출처: JESUS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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