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얻게 하소서/최송연


밤이 늦도록 당신 곁에서
당신의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이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때
당신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세상에 모든 아픔도 슬픔도
당신께서 모두 짊어 지셨음을...
이 멍에를 내려놓지 못해
오늘도
고통하며 고뇌하며...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싶습니다

생의 모든 한숨을
사랑을...
아픔을...
내 모든 짐일랑은
거두어 가시고 당신 안에서 쉼을 얻게 하소서





Beloved / 안단테(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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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에 대한 책망과 화가 나와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참다운 신앙인 자세가 되라 하시며  본문은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의 신앙자세를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1)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1.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서 군림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였습니다  2. 자신들의 유전한 것을 율법위에 두고 가르켰다. 그들은 입으로 말은 하였지만 자기는 행치 않으며,  자신은 손하나 대지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며,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것은 누구든지 해서는 안된다는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2) 아름다운 신앙이 어떤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따르는 것입니다   (1) 겸손입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 사랑이십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1서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3) 자신을 희생하셨읍니다 (마27:45~)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을 버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려고 사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예수님이 책망하십니다


3) 신앙인의 잘못된 점들을 지적해 봅시다

 (1) 교회에서 물질을 강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감사해서 내는 신앙으로 길러야 합니다  신앙성장의 목적이 아닌 축복이라는 타이틀이어서는 안됩니다  (2) 지나치게 인간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3) 행위 주장을 너무 강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주님앞에 내가 죄인입니다 라는 신앙을 가르켜줄 지언정 너무 행위를 강조하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보혈의 공로가 가리워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앞에 잘 서도록 복음안에서 주님만 가르켜 주어야 믿음안에서 바로 서게 됩니다   (4)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약 2장1절 이하에 보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위하면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며 죄를 짓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잘못된 쪽으로 교회가 기울어지면 이러한 것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도 없고 복음이 오히려 가리워집니다


4) 특히 신앙생활에서 삼가해야 될 것

 (1) 사람으로 부터 칭찬받는 것을 삼가해야 합니다  (2) 높힘을 받는 것을 삼가해야 됩니다  본문 23:6-7 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은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하였읍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삼가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 좋습니다


5)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을 대할 때는 더욱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며 영혼이 다치지 않게 언행심사를 삼가며 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영혼이 다치지 않게 하며 그 영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려는 마음 가질 때에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이러한 자세가 전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꾸중을 듣는 것입니다  본문13-36 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여" 하시는 예수님의 책망과 7가지 제목들의 화를 읽어보면 무섭습니다  새로운 각오로 자기를 단장하며 주님을 섬길 때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11/29/08 새벽기도회 목사님 요약설교 말씀)



 


        멋있는 말  &  맛있는 말


살맛나고  멋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
언어는 인간 생활을 도와주는 음성표현문자로서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활동적 매개체이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듣기와 말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긍정적으로 듣고 낙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윤택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이 든다.



낙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즐거워지고 기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편안감과 안정감을 주는 말,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멋진 사람이다.


말은 요리와도 같다.
맛있고 멋있는 요리를 또다시 찾듯이
맛과 멋을 느끼게 하는 말은 더 듣고 싶어지는 것이다.
요리의 맛과 멋을 내기 위해서는  신선하고 다양한
재료를 선택하여 정성을 다해 조리해야 한다.

말의 맛과 멋도 시대적 상황에 맞는
밝고 올바른 용어를 선택하여 자신있게 표현해야 한다.



' 멋있는 말 ' 은 
'당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사랑의 말이다.

' 맛있는 말 ' 은
'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라고 신뢰를 표현하는 믿음의 말이다.


사랑의 재료는 이해와 관용과 화합과 배려와 포용이다.
믿음의 재료는 용기와 격려와 위로와 존경과 감사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재료를 선택하여 희망의 요리를 만들어 주고,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믿음의 재료를 선택하여
용기의 요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살맛나는 세상은 서로를 사랑함에 있고,
멋있는 세상은 믿음에 있다


                  -  좋은글  -

출처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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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습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이 죽자

앤은 충격으로 미쳤고 실명까지 했습니다.

 

앤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습니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습니다.

 

모두 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 간호사인 로라 (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을 위해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준 쵸코릿 접시에서

쵸코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용기를 얻고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 수가 높아졌습니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 학교에 입학했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으로 밝은 웃음을 찾았습니다.

 

그 후, 로라가 죽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했습니다.

 

수술 후 어느 날, 앤은 신문 기사를 봤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못 가르친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최대 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헬렌 켈러 (Helen Keller)이고,

그 선생님이 앤 셜리번(Ann Sullivan) 입니다!

 

로라는 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사랑으로 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 냈고,

앤도 헬렌과 48년 동안 함께 있어 주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는 헬렌과 모든 수업에 함께 하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내용을 적어주었습니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셜리반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셜리반 선생님을 보고싶어요.

 

정말 그렇습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상처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충고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입니다.

상한 마음은 사랑만이 최고의 명약입니다!

 

 

 

최송연/사모

 

 


 



 

 

 

 

구원론(救援論, Salvation)

우리(성도)가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논제가 있다면 그것은 곧 다름아닌 구원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구원론을 다루기를 회피하는 것은 구원론이란 사실 신학상의 용어로서 잘못하면 오해를 가져오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가 나가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나 지도자들의 견해를 있는 그대로 받고 수용하여 자기것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어떤 성도가 구원론을 접하게 되면 그것의 깊이와는 상관이 없이 ‘내가 아는 이것이 정답이다. 다른 것은 틀렸다.’라고 주장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칫 흑백주의로 흘러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오늘 필자는, 우리(성도)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구원론은 과연 어떤 것인가? 광범위하게 신학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구원론의 진리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좀 다루어 보려고 한다.

1. 구원((救援)의 뜻: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구원’은 각각 ‘예수-아’와 ‘소-테-리아’인데, 보편적으로는 임박한 악과 위험으로부터 구출해 낸다는 뜻이다. 신약에서는 그 의미를 좁혀 ‘죄로 말미암아 오는 형벌과 죄의 권세와 죄 된 생활에서 구해 내는 것을 가리키며 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구원, ‘소테리아’는 신약성경에만 약 150회 정도 나온다. (막3:4, 행27:20참조)

2. ‘쏘테리아’의 원형 동사는 영원한 의미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과 육체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다시 말해 구원이란: 영과 육이 질병과 진노로부터 동시에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함 (롬5:9절 참조).

3. 마지막으로 ‘소테리아’는 종말적인 점인데 그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비로소 실현을 보게 될 것이다 (롬13:11,고전5:5, 히9:28절 등, 참조).

기본 구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절 말씀), (요 5:24, 요1서5:12, 요3:36, 요10:28-29 절을 읽고 참조)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 영원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 것이 기본 구원론이며, 한번 구원, 영원 구원의 법칙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가 죄를 지으면 구원을 잃게 되는가? 아니면 죄와는 상관없이 영원구원인가? 하는 것이 주요 쟁점으로 남게 된다.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 우리는 먼저 그가 진실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인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 교회의 마당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부터 연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성도)가 교회의 어떤 직위나 직분에 상관없이 반드시 거듭난 성도가 되어야만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복음 3: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기에 성도라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중생 (重生, born again) 중생이란 ‘파링게네시아’인데 그 뜻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거듭난 성도가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러가지 욕심과 미혹에 이끌려 (이때도 반드시 고의성이 없고, 실수라야만 하며 짐짓죄나 고의적인 죄는 거듭난 성도의 할 일이 아니다.)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이미 목욕한 사람이 발을 씻는 기분으로 회개기도를 올리고 돌이켜서 다시는 그런 범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요13:6-9절 참조 )

그러나 영원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 곧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다.
요1서5:16-17절을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여기에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세상의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그 경중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것과 마음에 믿음으로 영접하고 받아드리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교회에는 수없이 다녔으나 교회 마당만 밟을 뿐,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마음속에 모신 삶이 아닌 종교인의 행위에만 그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도 언제든지 그 마음속에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영생은 주어진다. 죽기 직전에 가서라도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그 입술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는다 행위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고 어떤 중직을 맡아서 일을 했다고 하여도 죽기전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돌아선다면, 그런 자에겐 구원이 주어지지 않는다. (필자는 많은 이들의 죽음앞에서 두 가지 길로 갈라지는 것을 체험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born again)기 전에는 구원이 없고, 형태는 있으나 알갱이가 없는 가라지들이며,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기에 구원을 잃을만한 대죄를 지을 수 없도록 주께서 지켜주신다. 요1서5:18절 말씀에서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우리가 거듭난 자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하는 또 다른 의문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간단하다. 그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안다. 삶이 엉망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는 능력이나 병자가 일어나는 기적을 보인다고 하여도 그것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적과 이사는 사단의 힘을 빌려서 얼마든지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령의 선한 열매가 생활 속에 맺혀져야 한다. 즉 다시 말해, 진실로 거듭난 사람은 그 삶 자체가 성령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거듭나고 구원을 맛본 자가 하나님보다 그 죄의 유혹이 더 크므로 인하여 죄에 졌다면(반드시 고의성이나 짐짓(계속) 짓는 죄가 아니어야만 함)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가 있다. 그 죄가 만일 ‘음란이나 간음’ 죄라면, 눈물로 자백하고 예수님께 고하면 주께서 불쌍히 여기시사, 그 죄를 지은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 주어 멸하고(고전3:17, 고전 5:1-5절 참조)그 영혼은 구원을 받게되니, 영원한 구원이 성립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 성령을 훼방하는 죄(마12:31-32참조)와 배도, 즉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죄에서 만은 돌이켜야 한다. 이런 자에게는 영원한 지옥불만이 그의 영과 혼과 육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무리 강같이 넘쳐 흘러도 그 강물 속에 자신의 몸을 내어 맡기지 않는다면, 조상(원죄)적부터 내려오는 죄의 형벌을 속죄받을 수 없고 자기가 그 모든 죄(조상(원죄)의 죄와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항상 그 위에 머물러 있다. (요3: 36절 첨조)

그런고로: 우리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절 말씀) 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서 있나 확증하고 (고후13:5절 참조) 또 주님을 마음으로 믿고 항상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시인하여(롬10:9-11)우리 주님 앞에 서게 되는 그날, 부끄러움과 회한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이김과 구원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립니다!!  


USA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신앙칼럼 글


 .



지난 월요일,친구 하나가(정확히는 고등학교 1년후배)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요양중 입니다
본인의 표현대로 이상하고 희귀한 병에 걸려 멱(목)을 땄다고 합니다
허리 위 목부근의 뼈가(3,4번) 안으로 커져 목뼈안에 있는 신경을 건드리고 눌러
 몸 한쪽을 쓰지 못하게 되는 위험한 병입니다
어제 병원에 잠깐 들려 같이 병원 복도를 걷는 데 몇발자욱을 옮기고 힘이 든지,
숨울 몰아 쉬고... 다행인 것은 다리의 통증이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아직 팔과 어깨는 완전치 않으나 재활치료를 하면 좋아질 거라고 합니다
 
돌아 오는 중에 친구가 신고 있던 빨간 양말이 자꾸 떠 오릅니다
신을 신지 않고...
성격이 대쪽같고 분명하여,또 너무 까탈스러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장애우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많아 지난 몇년간 장애우를 돌보는 일을 열심히 ,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친구입니다
수술을 하여 건강회복은 물론이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던 이친구의 말이 생각 납니다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고 명하신 하나님!!
여리고 성을 향해 진군하던 여호수아의 신을 벗기신 하나님!!
사랑하는 친구의 신을 벗기신 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지으신 자,당신의 종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이 그 입에 있게 하옵소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함락시킨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가 그의 삶속에,
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병중에 있는 친구를 생각하며...
 

글/김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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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자아상


          


            자기 존중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있

        는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 또는 판단이다.


        당신은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건강한 자아상은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결정하는 핵

        심요소 중 하나다. 자기개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생

        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반응한다는 데 있다.


        반면 하나님과 같은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만족한 삶을 살아

        간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영화

        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

        하고 좋아하심을 알기에 자신감이 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믿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그 믿음

        을 끊임없이 성장시키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차고 넘치는 복을 예비해

        놓으셨다!

                                                                                 -조엘 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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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힘겨워하지 마세요

그대 힘겨워 하지 마세요
그대의 모습이
다른 이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힘겨움을 이기지 않고
아름답게 거듭나는 것은 없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도
땡볕과 어두움과 비바람을
똑같이 견딥니다.

마을 어귀의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견디는
비와 바람을
채송화와 분꽃도 똑같이 견딥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외로워 하지 마세요
살아있는 것 중에
외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들판의 미루나무는 늘 들판 한 가운데서 외롭고
산비탈의 백양나무는 산비탈에서 외롭습니다.

노루는 노루대로
제 동굴에서 외롭게 밤을 지새고
다람쥐는 다람쥐대로 외롭게 잠을 청합니다.

여럿이 어울려 흔들리는 들풀도 다
저 혼자씩은 외롭습니다
제 목숨과 함께 외롭습니다.

모두들 세상에 나와 혼자 먼 길을 갑니다.
가장 힘들때에도 혼자 스스로를 다독이고
혼자 결정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외로운 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나만 외로운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외롭습니다.

지금 그대 곁에 있는
사람도 그대만큼 외롭습니다.
그대가 거기 있어 외로운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대가 거기 있는 것처럼
소박한 모습으로 서서 자기들이 있는 곳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이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을 꽃밭으로 가꾸는 것처럼
그대도 그렇게 꽃으로 있습니다
그대 힘겨워 마세요
그대의 모습이 다른 이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도종환님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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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3:14-20  “A Life With Jesus Christ in the Heart”

 

A person named Henry van Dyke said something like this, “A man with 100 degrees from 100 universities but who doesn’t know the Bible is ignorant and can not be a scholar.”  Newton who discovered the theory of gravitation said, “I know the Bible, which is the word of God, as the most elegant philosophy.”  These are excellent and explicit statements.  Then, such great elegant knowledge as the living word of God, what does the Bible say?  Briefly in a few words from the Old and New Testaments: Men are fallen sinners, to save sinners, God, incarnate in the flesh came to this earth.  Then He was whipped for sinner like us and died on the cross with a beaten body.  Three days after His death He was resurrected and raised to heaven.  Then the Holy Spirit was sent and abides with us, helps, guides, and fills us in our need until the end.  If a person believes this fact they will be saved and if a person does not believe this they will perish.  This is what the Bible says.  In this aspect, can we ignore Jesus Christ, Who is the great redeemer?  I am not a great person, however I say something on my own, like this, “Whoever has Jesus possesses everything.  Whoever does not have Jesus has lost everything.”  Then let us think on a few things about what kind of life it would be to have Jesus Christ in our heart based on the Bible.  I pray God’s grace fill your heart and mind.

 

First, a person who has Jesus in their heart has the joy of first love and shaken heart jubilation.  For example, look, one day a bachelor suddenly meets a beautiful and lovely young lady who is like an angel.  At first sight they fall in love.  This young man thinks he could give his life for this beautiful woman, so they get married.  This newlywed couple has a wonderful marriage in the beginning, however their love cools down and there is a lot of complaining in every situation.  If it gets worse they may turn their backs on each other.  This may not happen in every case, but it is possible.  This is a sad story for the family who lost their first love.  Likewise, Jesus says in Revelation 2:4-5, “Nevertheless I have this against you, that you have left your first love.  5Remember therefore from where you have fallen; repent and do the first works, or else I will come to you quickly and remove your lampstand from its place-- unless you repent.”  What does it mean by “you have left your first love” and “remove your lampstand from its place?”  j”You have left your first love” means that you had strong love to serve other saints, God’s children in the redemptive love of Jesus Christ, however you have left that love.  It means that in the beginning you loved Jesus and loved each other and had respect, somehow, your heart cooled down and that love faded away.  Revelation 2:5A says, “Remember therefore from where you have fallen; repent and do the first works.”  Why is this?  What caused you to do this, search and exam yourself?  k”And remove your lampstand from its place-- unless you repent.”  To remove means a) a heart that has left God b) and lost value as a truthful saint.  It means a person may come to church but have nothing to do with God’s church.  Why is this?  It is because God is love.  In 1 John 4:20 it says, “If someone says, "I love God," and hates his brother, he is a liar; for h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whom he has seen, how can he love God whom he has not seen?”  We must examine our belief.  Once we may have had love for Jesus more than any others and a burning love for our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Somehow, has your love faded away and gotten cold?  Do you know that this kind of person comes to church once in awhile and is hooked by the power of sin because of worldly pleasure and enjoyment since it seems much better?  Revelation 3:15 and 16B says, “I know your works, that you are neither cold nor hot. I could wish you were cold or hot.”  16B “I will vomit you out of My mouth.”  To vomit means to push out of God, may not enter into God but be excluded.  We must have our first love for Jesus and love God and our brothers.

 

Secondly, only the life in Jesus can give true service and true dedication.  Psalm 84:10 says, “For a day in Your courts is better than a thousand.  I woul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dwell in the tents of wickedness.”  Nowadays so many people are self-centered and so many people want to be served.  However Jesus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came to serve and gave His life for a ransom.  Those who have servant Jesus in their heart want to live like Him.  Furthermore, they serve others in truthful service and dedicate themselves with a truthful heart.  In these days so many saints ignore this fact because they misunderstand that their service and dedication are according to their power, they have no joy of living.  For example, there is a story of a certain young missionary nurse.  This lady missionary nurse left her home and parents and went to work for a leprosy center in a far away country.  One day a newspaper reporter was taking a picture of this missionary caring for one child with leprosy by wiping off the oozing sores.  This was such a strange looking sight for the reporter who said, “I would not do that even for a million dollars.”  At this the missionary nurse lifted her head and said, “I too would not do this for a million dollars.”  The reporter was so surprised and said, “Why do you do it then?”  The missionary replied, “Sir, I do this because of the love of Jesus.”  This is so true.  We too serve and work in the Lord because of the love of Jesus, then it is truthful service.  Beloved saints!  I believe we love our brothers because of Jesus, then our love is truth.  Without Jesus in our life, there is no truthful sacrifice and service.  Only the work in Jesus becomes an acceptable sacrifice to our Lord.  There is no need of bragging or announcing to show people, but only to please our Lord, who sees in secret as we desire to serve Him willingly.  Today’s churches don’t know this and promote activities by making announcements on TV and are proud of themselves which is far from what the Lord wants and it is in vain and not worth their time and energy.  (Matthew 6:1-18. Ref. Jesus’ teaching on doing charitable deeds and prayer and fasting . . .  being seen by people.)  Beloved saints!  I bless you in the name of our Lord that each one here today be a truthful worker.  We must work in joy and delight without complaint, in very difficult tasks, if we have servant Jesus in our hearts.  In conclusion, why don’t people who come to church and say that they believe in Jesus, have joy in their hearts?  This just shows they truthfully don’t have Jesus in their hearts. 

Beloved brothers and sisters!  You know an egg has a little air space inside. Likewise the human heart also has a little space inside.  People may have everything in the world, however there is a small corner left empty.  They try to fill this empty space with everything.  However, if Jesus is not enthroned in that space there is no true satisfaction.  I believe if our hearts are filled up with Jesus Christ our work becomes truthful and our love will be so true that it will bring us happiness in our spiritual walk with the Lord.  May God’s grace and blessings be with you.

By: Rev. Samuel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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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곳저곳에 선지(예언자) 학교란 특별 학교가 세워지고 자칭 사도들, 예언자들, 선지자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현재 이곳저곳에 세워지는 선지 학교와 예언자 혹은 선지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더 좁혀서 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언이란 어떤 것이며 예언자의 자세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1. 예언의 정의:

예언이란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는 예언(豫言)과 동음어인 예언(預言) 이 두 단어의 뜻이 모두: ①앞에 올 일을 미리 말함 ②또는, 신탁()을 받은 사람이 신의 말을 듣고 신의 의지()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③또는, 그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예언은 한자로 보면 예언(預言)이 아니라 동일한 동음인 豫言 (예언)을 뜻한다. 또 영어 'predict (prediction)라는 단어와  'prophesy'(prophecy)라는 단어는 같은 뜻 같으나 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  ‘predict란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의  단순 예언(預言)을 뜻하며,  'prophesy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의미로서의 예언 ((豫言), 신탁()을 뜻한다고 보면 되겠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豫言)자의 개념:

하나님의 선견자(先見者) 로에 대변자 (代辯者), 나비로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의 대변자, 선견자란 뜻이며,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곧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예언자들의 말은 그 자신들의 영(spirit)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Holy Spirit)에 의해 말하게 한 대언이었기 때문이다(삼상 9: 9, 23: 16, 13: 2절 참조).

 

구약 시대에도 선지학교가 있긴 있었다. 선지학교는 사무엘시대 이후부터 세워진 기록이 있고, 아마도 사무엘이 좋은 선지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선지 학교를 세운 것 같다고 성경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그 후로 이스라엘의 각 지역에 세워진 선지 학교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양성된 선지자들은 왕실에서 혹은 동리에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극진한 대접과 환대를 받으며 편하게 지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혹은  선견자(대선지자, 소선지자 포함)들은 선지 학교 출신들이 아닌,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골라 특별히 불러 세우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선견자나 선지자, 예언자의 특성상, 인위적인 방법으로서가 아닌, 전적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신탁에 의해 주어진 말씀이어야만 했기 때문이 아닐까?

 

또 구약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서 주님의 영으로 부름을 받은 특별한 대언자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신구약 성경이 완성되어 우리 손에 들려져 있고, 주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면서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고 교훈도 하시는 성령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인 제사장만 성립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만인 대언자가 될 수 있음도 믿어야 한다. 대언이 어떤 특정인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새삼스럽게 인위적인 방법의 선지 학교나 그곳에서 배출된 선지자들, 혹은 예언자들이 필요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진정한  예언= 우리에게는 오직 무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언서인 신구약 66권 외에 다른 예언의 말씀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서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셨다. 가장 확실한 예언은 성경 말씀이다 (벧후 1:19-20).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신령한 예언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언이라기 보다는 대언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보혜사 성령님께로부터 성도가 신앙생활을 더 잘 해 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써,  때로는 예언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말씀을 레마로 주시기도 한다. 곧 양이 그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직통계시적 형태를 취하는 태도를 삼가야 한다. 우리(성도)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하며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은 성령하나님의 역활이시요, 사용되어지는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에 있이어야만 한다. (27:22-25)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 속에는 크게 나누어 두가지 형태의 계시가 있는데
,

1.      특별계시, 혹은 기록(문서)계시,  2. 일반(자연)계시로 나누어진다. 간단히

요약해, 특별계시는 성경말씀을 가르키며,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요, 핵심은 인간 구원이다. 일반계시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현세대에서 우리(성도)는 성경을 다시 쓸 수 있는 특별 계시는 받을 수도 없고, 또 받을 필요가 없다. 일반 계시도 자연 속에서 찾으면 되기에 우리가 다시 재창조를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성도)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란, 곧 성령님의 조명하에 특별계시 속에서나 혹은 일반계시 속에서 찾아지고 들려질 수가 있으며 양으로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차원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따로이 선지학교가 필요없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손에 이미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하게 무릎꿇고 기도하는 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따로이 선지 학교가 필요치 않다고 본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14;26).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대언 영으로 주시는 말씀도, 반드시 다음과 같은 잣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이 되어져야만  한다.


       a)  은사로서의 예언: 권면하며 안위하며 덕을 세우기 위해서 대언의 영으로 증거(예언)할 수가 있으나, 반드시 교회와 사람(개인)에게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말씀이 되어야 한다. (고전14:3, 계시록19:10절 참조.) 사업이 잘 될는지, 자녀가 학교에 입학 가능한 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혼은 어떤지...등등, 점치는 형식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b)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신명기18:18-22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내가 고하라고 말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예수 그리스도)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 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c) 말씀을 들을 때 혹은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

 (때론 너무나 뜨거워서 부모가 돌아 가셨을 때보다 더 통곡을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큰 감동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24:32절 말씀 ).

d) (다 불과) 두 세사람이 증인, 검증이 되어야 한다.

(고전14:27)

 

d) 자기가 기도하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생각이 머리에 주입된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3절하반절)".

e)
그 생각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어야 하며 레마로 머리에 정확히 떠오르거나 입술에서 터져 나온다. 성령님께서 예수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4:26
)

f)
다른이가 예언 은사적 말씀을 받았을 때에도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같이 마음이 뜨거워진다. (1:41-45
)

 g)
항상 선한 말씀이 아니고 때론 책망함과 바르게 함으로 탄식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결론적으로, 

이 혼탁한 세상에서 악한 영에 미혹 받지 말고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 성령에 의해서 잘 인도되어지고 내 귀에 아무것도 들리는 것 없고 내 눈에 아무런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변하지 않고 온전하신 말씀 안에 내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성도가 복된 성도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다.

 

 


    성탄절 십계명 1.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기쁨을 구하지 말라. 2. 성탄절의 장식과 행사가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 3. 성탄절을 빙자하여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 4. 규칙적으로 깊이 말씀을 묵상하라. 5.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라. 6. 다투었던 사람과 화해하라. 7. 받은 사랑을 잊지 말고 감사를 표현하라. 8. 미루어 온 신앙적 책임과 의무를 최선을 다하여 마무리하라. 9. 따뜻하고 덕스러운 사랑으로 말하라. 10. 받을 것 보다, 드릴 것과 나누어 줄 것을 생각하라.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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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본문 19절 말씀)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구원 받는 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다 하였읍니다  예수님의 피와 인간에게 미쳐오는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1) 무죄한 피입니다

    (마27:4)에 보니 가롯 유다가 스스로 뉘우쳐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입니다  사람의 피인 인간의 피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는 무죄한 피입니다

   (2)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요일1:7)에 보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3) 떨어진 사이를 화목시키십니다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하나님과 우리와 떨어진 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그리스도의 피로 사이를 붙이는 화목의 피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다음과 같은 기초를 둡니다

    (1) 구원의 기초를 둡니다

    (롬3:24-2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구원시키십니다  (엡1:7하)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벧전 본문 말씀에 보니 조상적 부터 유전된 행실에서 구속된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된것이라고 했읍니다

   (2) 칭의의 기초합니다

    칭의란 그렇게 되게 합니다란 것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의롭다고 칭의해 주십니다 (롬5:9)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를 그의 피로 의롭다고 칭의하십니다

   (3) 성화의 기초를 둡니다

    (히9:14)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점점 더 성스럽게 성화되어 가도록 기초를 둡니다

   (4) 영생의 기초를 둡니다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5) 속죄의 기초를 둡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3) 예수님의 피는 사탄의 권세를 이깁니다

    (계12:7-11)에 보니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함은 큰 용 옛 뱀 곧 마귀라고 하는 사탄을 싸워 이기는데 예수의 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었다 하였습니다  이기는 것은 두가지의 뜻으로 현재 내가 이기는 것과 장차 이기는 것입니다  현재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피로 승리합니다  장차 세상 끝날에 온 천하를 꾀는 마귀를 멸하는 것이 예수님의 피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더럽고 추악한 죄와 유전된 습성을 가진 피로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이기에 보배롭고 능력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말씀을 기초로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죄악을 이기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앞에 설 수 있도록 소망을 주신 위대하신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04/05/08 새벽기도회 말씀 요약)


출처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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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오신 12월이면

                                     난 생각하게 되네...


                                     못다한 충성

                                     베풀지 못한 사랑

                                     좁은 마음

                                     외면해 버린 충고


                                    이 모든 것들이

                                    그냥 지나쳐버리기엔...

                                    하늘을 향해 너무 부끄럽지 않느냐고...


                                     주님이 오신 12월이면

                                     난 기도하게 되네...


                                    충성은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는 것임을...

                                    가난한 이웃은 항상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님을


                                    내게 아픔을 주는 이의 껍질속엔

                                    크나큰 상처가 있음을


                                    비록 힘이 드는 말씀일지라도

                                    모두 나를 살리기 위한 충고임을

                                   

                                    깨닫게 해 달라고...


                                    주님이 오신 12월이면

                                    난 간절히 소원하네...


                                   자신을 값없이 내어주신

                                   주님을 닮고 싶노라고....


                                  최송연/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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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같은 사람 "연필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어.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첫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 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지. 네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으로 다섯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 중에서 - A New Irish Tune - Tol & 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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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미울 때마다
    아내는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바람을 피우거나 외도를 할 때에는
    큰 못을 쾅쾅 소리나게 때려 박기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때리고 욕을 할 때에도
    못은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불렀습니다.
    보세요, 여기 못이 박혀 있는 것을...
    이 못은 당신이 잘못할 때마다
    하나씩 박았던 못입니다.

    나무에는 크고 작은 못이
    수 없이 박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남편은
    아내 몰래 나무를 안고 울었습니다.
    그 후 부터 남편은 변했습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며 아꼈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불렀습니다.

    여보! 이제는 끝났어요.
    당신이 고마울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뺏더니 이제는 하나도 없어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아직도 멀었소,
    못은 없어졌지만 못자국은 남아 있지 않소?

    아내는 남편을 부둥켜 안고서 고마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출처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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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만피부의 흑인, 오프라 윈프리의 어둡고 불우했던 어린시절
                                   그녀는 1954년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의 미시시피주 코시어스코의
                                   지독하게 가난한 미혼모에게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거의 매일 매질을 당하면서 자라났고,
                                   그 곳에서 아홉 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였고,
                                   14세에 미숙아 출산과 동시에 미혼모가 되었고,
                                   아이는 태어난 지 2주만에 죽었다.

                                   그 이후로도 어머니의 남자친구나 친척 아저씨 등에게
                                   끊임없는 성적학대를 받았다.
                                   20대 초반에는 가출하여 마약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으며,
                                   살고자 하는 의욕이 전혀 없는 237파운드(약 107㎏)의
                                   몸매를 가졌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사생아였고 흑인이었으며,
                                   가난했고 뚱뚱했고 미혼모였고
                                   마약중독자였던 것이다.  

                                   그런 윈프리의 가장 큰 성공비결은
                                   책읽기와 감사일기에 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한 그녀는
                                   친구가 없어서 강아지에게 성경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 중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찾아 기록하는 감사일기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있다.

                                  감사의 내용은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등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녀는 감사일기를 통해 두 가지를 배우게 됐다고 한다.
                                   하나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 하나는 삶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를.

                                                ■ '윈프리 감사일기' 이렇게 쓰세요
                                   1. 내 맘에 꼭 맞는 작은 노트를 장만한다.
                                   2. 감사할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기록한다.
                                   3. 아침에 일어날 때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언제든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의 제목을 찾아 기록하는 시간을 갖는다.
                                   4. 거창한 감사의 제목을 찾기보다 일상의 소박한 제목을 놓치지 않는다.
                                   5.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으로부터 받는 느낌,
                                      만남이 가져다준 기쁨 등을 기록해 나간다.
                                   6. 교회나 학교에서 '윈프리 감사일기 쓰기 모임'을 만들어 함께 쓴다.
                                   7. 버스에 있거나 혼자 공공장소에 있을 때
                                      그동안의 감사제목들을 훑어본다.
                                    8.정기적으로 감사의 기록들을 나누고 격려한다.
                                    9. 나의 감사제목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지켜본다.
                                   10.카페나 정원 등 나만의 조용하고 편안한 장소를 선택하여
                                       자주 그곳에 앉아 감사의 일기를 쓴다.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 미국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힘이자 막강한 브랜드로, 눈부신 존재로 우뚝 섰다.
                                     현재 미국 내 시청자만 2200만명에 전 세계 105개국 1억4000만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지상에서 제일 유명한 토크쇼의
                                     여왕이 되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불행한 환경이지만 불행타 않고
                                     성경을 읽어 줄 친구가 없어 강아지에게 읽어주는 그런 외로움.
                                     그러한 환경가운데서도 참으로 순수하고 작지만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로 하루를 마감하는...

                                     우리가 입만 벌려 복음을 전한다면 어디서든지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강아지에게가 아니라 내 이웃에, 아니 만방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나팔로 사용되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도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를 감사일기로 마무리를 지으니
                                     불평과 불만은 줄어들고 감사한 일만 찾게 되더군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더라구요.
                                     저와 함께 감사일기에 동참하지 않으시렵니까....

                                  출처:서춘웅 목사님방   글/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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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미즈노 겐조라고 하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장애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심한 열병을 앓았다고 하는데,
그 결과로
그는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고
발가락도 움직이지 못하며
말도 할 수가 없는,
그야말로 식물인간처럼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고통스러운 몸과 마음이 되어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데.

그런 그에게 이웃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이 찾아와

성경책 한권을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겐조의 어머니는 척추가 마비가되어

앉을 수도 없는 사랑하는 아들이 엎드린채라도

성경을 읽을수 있도록 작은 나무받침대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겐조의 어머니가 나무 받침대위에
성경책을 펴놓아 주긴 했으나,

겐조는 손가락을 쓰지 못하니까
책장을 넘길 수 조차 없었지요.

그래서 겐조가 성경 한장을 다 읽은 후,

눈으로 껌벅껌벅 신호를 보내면 옆에 앉아있던

그의 어머니가 책장을 한장씩 한장씩
손으로 넘겨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해서 학교도 교회도 다닐 수가 없었던 겐조는

남아있던 눈으로만 성경책을 읽고 또 읽었답니다.

그러든 어느날, 그는 성경을 읽다가 그 속에서

구원의 주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벌레보다못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신 것과 십자가를 지신 그 귀한 사실을

 마음속 깊이 깨닫게된 그는 울고 또 울었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글로서 표현하고 싶었으나

손가락이 말을 안 들으니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고,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녹음을 할 수도 없었고

그저 두 눈만 껌뻑거렸다고 합니다.

 

이것을 본 그의 어머니가 철자가 적혀있는 종이를 한장

그앞에 놓아 두고 막대기로 한자 한자 짚어 나가면서

아들의 눈동자를 살폈습니다. 어머니가 들고 있는 막대기 끝이
자기의 원하는 글자에
가서 닿으면 그것이 맞다고 겐조는
눈으로 신호를 보내었고
그러면 그의 어머니가 그 글자를 뽑아서
다른 종이에다 옮겨 적었고,
이렇게 고통 중에서
 겐조가 눈으로
한자 한자 모아서 적은 글이
 
시집으로 출간 되었는데
그곳에는 아름답고 영감있는
시가 170여편이나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편을 여기에 소개하면,

제목은 괴롭지 않았드라면…’ 하는 것인데,

 

만일 내가 괴롭지 않았드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이 괴롭지 않았드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드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정말 눈물없이는 읽을 수가 없고 깨달은자 만이
 쓸 수가 있는 시요,
깊은 영감이 흐르는
 아름다운 글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깊이 생각을 해 보면

내가 받은 것이 없어서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치 못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우리가 쉬운데로 부모자식간의 예를 한번 살펴 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것이 없어서 감사치 못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런 것은 아니지요.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치 않는 것은 받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받은바 은혜를 깨닫지 못해서 입니다.

부부지간도 형제자매도 이웃간에도 꼭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기만 한다면, 설령 내가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그저 나와함께 있어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같이 있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몸서리치는 외로움에 떨며 울고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안그래요?

 

이것은 육신적인면도 그러하지만 영적인면도

 매 한가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십자가의 사랑그것 하나만 생각하여도 너무나 크고 놀라워서

이 생명 다 하는 그날까지 감사 또 감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란.오직 깨닫는 자만 느낄 수가 있고

누릴수 있는 특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주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 한 주간만이라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해 보십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해 보십시다.

감사가 있는 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50:23)

 

최송연/사모








 





 


저희 집 근처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큰 호수가운 데는 높은 분수가 물을 뿜고,군데 군데 있는 갈대숲사이로
오리들과 물새들이 떼를 지어 다닙니다
제법 큰 나무사이에 벤치도 놓여 있고,호수주변으로
산책길과 조그만 잔디밭도 있습니다
대도시 도심지에 있는 전형적인,그런 공원이지요
일주일에 2~3회 이곳에 나가 걷고,뛰고 운동을 합니다

오늘도 한가로운 주말 늦은 아침 호수 주변을 걸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뛰는 젊은 청년들,개를 끌고 나와 같이 산책하는 사람들,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같이 걷는 가족들...
또 한편에는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노숙자와 노인들...
주위를 돌아 보며 걷는 제 앞에 한 노파가 개를 두마리를 끌고 지나 갑니다
무심히 그 '개'를 쳐다보는 데...이 '개'들은 무엇을 대하던지 먼저 코를 내민다는 것이었지요
지나가는 사람,나무,또 마주치는 동족(?),일단 코부터 드리대더군요
킁킁거리고,냄새를 맡고...아군과 적군을,좋은 것과 필요없는 것,등등...
모든 것을 그 코를 통하여 분간하며 구별하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무엇으로 분별을 하는가?
사물을 볼 때,관찰하며, 평가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잣대는?...
'개' 가 코를 내세우는 것(?)처럼...나에게 내세울 것은 있는 지...있다면 무엇인 지...
아무리 생각해도 '개코'(?)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누구나 내 세울 것이 없습니다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고,기린,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습니다
호랑이와 사자의 힘을 이길 수없고,독수리처럼 창공을 날 수 도 없습니다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숨을 쉬며 헤엄을 칠 수 도 없지요
더더욱이,이제 나날이 약해져 가는 장년의 육체로는 걷는 것조차 힘들 때도 있습니다
불과 몇 계단,2층을 오르 내리며 숨을 몰아 쉬는...그런 육체가 되었습니다

내세울 것이 없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낮추고,낮추시사 당신을 더 의지케 하시려고...
육체를 의뢰하지 않고,내 힘대로 하지 않고....
아니 육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안으로,영귀로 사물을 판단하며,평가하며 바라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대하며 긍휼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로하기 원합니다
 
진리의말씀,우리를 소성케 하는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을 허락하셨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와 자비,긍휼하심,축복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구원해 주시고 삶의 여정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고
소망가운 데 살아 가게 하시며, 마침내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승리의 찬양을 부르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로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실 그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추수감사절 주일을 기다리며.....


글/김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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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봉사를 하다가 ◯◯◯병원 암센터에서 폐암 말기로 판정 받은  한 어르신을 만났다.

말쑥한 외모와 단정하게 차려 입으신 녹색 환자복이나 질서 정연하게 정리 정돈된  침상을 보아  한 눈에도 그의 성격을 가히 짐작 할 수 있었다. 깔끔하고 내성적이며 의기소침한 그를 접근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차가운 얼굴에 이따금 번뜩이는 그의 눈빛에 서린 분노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서 너 달 동안 한 주간 한 두 번 씩 찾아뵙게 된 덕분인지 서로 무관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평상시 보다 아주 좋은 기분을 틈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 냈다.   “ 어르신이나 저나 이젠 석양 길을 가고 있는데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느닷없는 나의 질문에도 그는 조금도 당황 하지 않는다. 이미 체념한 것일까? 다행이다 싶었다.   

 창밖에는 철지난 벚꽃이 봄바람에 이따금씩 하얗게 흩날리고 있다. 그는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 볼뿐 아무 말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한다. 병실은 적막할 뿐이다. 공연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왜 그걸 생각 해 보지 않았겠나? 내 꼴이 이 모양인데 아무 생각도 없다면 사람이 아니지!”  

그는 평소보다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억양을 높인다.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치의로부터 폐암 말기라는 사형선고를 직접 들었고 매 순간 마다 저벅 저벅 다가오는 죽음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으니 무슨 생각인들 안 해 보았겠는가?  아픈 상처를 바늘로 찌르고 말았다는 생각에 내 눈길은 창밖을 향하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와 함께 삶과 죽음이란 문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공감이라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 삶과 죽음은 인생의 끝없는 물음이야 !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도 해결 못한 물음이 바로 죽음이야, 그걸  해결 했다는 놈들이 있다면 모두 자기기만이야!”   

한학을 공부 할 만큼 했다는 그가 내린 결론은 요지부동이었으나 죽어서 가는 곳은 없다고 저승이라는 말을 완강히 거부 했다. 


 어느 날 정오를 앞두고 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급히 달려갔다. 깐깐한 말솜씨, 돌처럼 차가운 표정과 함께 그가 내게 던졌던 부정적인 언어의 파편들이 현란하게 나의 뇌리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병실을 들어서니 가족들이 이미 그의 침상을 둘러싸고 있다.

핼쑥하다 못해 뼈만 남은 그의 얼굴은 짙은 황달에도 검은 빛이 감돈다. 잠깐의 뒤척임에도 안간 힘을 다 쓰는 힘든 모습이다. 호흡이 깊고 가파르며 가래가 끊는다. 얼굴에는 진땀이 비 오듯 한다. 오후 서너 시가 다 되도록 헐떡거리기만 한다. 이따금씩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기도 한다. 가족들 모두가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의 호흡 하나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혼미한 상태에서 마지막 생병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이 처절하기 그지없다. 그러던 그가 조금씩 평온을 되찾고 몸부림도 잦아드는가 싶더니 또 이를 반복한다.

 두 손에 땀을 쥐고 반복되는 절박한 상황을 장시간 지켜보는 가족들이 모두 지치고 말았다.

육신의 허물을 벗어던지는 것이 그토록 힘든 것인가 !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일이다.    

큰 아들이 견디다 못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이제 그만 가셔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아들은 죽음의 저편을 그 곳이라고 표현했다. 하늘나라, 저승, 낙원, 천당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이 말하는 그곳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언젠가 그 어르신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  인생은 삶이 전부야. 삶이 끝나면 그만 인거야 ! 망자도 이 땅에서, 생자도 이 땅에서 함께 사는 거야 ! 가기는 어디를 가, 망자의 혼은 생자를 돕고 생자는 망자를 기리고 제를 올리면서 함께 사는 거야 !”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은 유교문화권 속에 자리 잡은 듯했다. 그의 자녀들 신앙이나 호스피스 봉사자인 나의 신앙을 인정하거나 받아 드리는 법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 그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한 참 만에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 했다. 그는 안간 힘을 다해 아들을 향해 말을 한다. 

 “ 나 ?  외로워서 못 가, 무서워, 같이 가 !”

뜻밖이었다. 삶이 전부이고 삶 이후에는 갈 곳이 없다던 그가 외롭고 무서워 갈 곳을 홀로 가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 같이 가야 자기도 간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갈 곳이란 과연 어떤 곳일까?  그는 어느 시점부터 가야 할 곳인 그곳을 생각 해 본 것이며 형상화 한 것일까?  몹시 궁금하기 만 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황천길 가본 일 없으니 무섭기만 하고 혼자서는 외로워서 갈 수 없다고 눈도 뜨지 못 한 채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 되지 않은 머나먼 길, 기약 없는 마지막 길, 믿음도 소망도 없는 길이니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으면  한나절을 지나도록 떠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것일까!    

침상주위를 둘러싼 가족들은 눈물을 흘릴 뿐 아무 말이 없다.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이 광경을 지켜보시던 병원 원목님이 그의 침상 위로 올라갔다. 그를 반쯤 일으켜 세운 뒤 그의 등 뒤에서 그를 아기처럼 꼭 끌어안는다. 

그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부비며 작고 부드러운 그러나 힘 있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 어르신, 제가 같이 갈게요. 어르신 손을 붙잡고 함께 갈게요. 주님이 동행하십니다. ”

그를 더욱 힘 있게 끌어안는다. 그러자 가파른 호흡이 순조로워졌고 끓던 가래마져 멈추기 시작 했다. 감았던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눈방울을 굴리면서 침상을 둘러선 가족들을 하나하나씩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 했다. 그의 눈길은 아쉬움과 사랑으로 섬광처럼 번뜩였다. 한 참 만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나 ? 이제 갈 거야, 내 본향으로!  난 정말 행복해 !”

이 말 한마디를 남긴 후 그는 평안히 눈을 감았다. 창가에 비친 붉은 저녁노을이 두 눈 곱게 감은 그의 얼굴을 비춘 탓인지 홍안의 소년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그렇게 그는 원목님의 손을 붙잡고 그와 함께 속삭이며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났다.

 원목님과 함께 임종 예배를 드리면서 평안히 잠든 그를 향해  이렇게 속삭였다.     

 ‘ 어르신! 당신이 그토록 아끼고 고집 하던 삶과 죽음의 철학을 이젠 헌 신짝처럼 벗어 던졌구려!  부디 당신의  본향에 이르러 그 분과 함께 행복한 삶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 “  


출처:CGNTV  준비: 정월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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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눅2:11)



누가복음에는 아주 중요한 탄생기사가 나옵니다. 온 인류에게 미칠 가장 강력하고 충격적인 탄생기사입니다. 이 탄생은 모든 인류사를 통해 심판과 멸망과 영원한 생명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 명백한 사실에 대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거부하고 믿지 못하고 있는것이 현실이지만 소수의 적은 무리들에게는 유일한 소망이며 기대이며 꿈이며 삶의 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출생이 어떤이에게는 가장 저주스러운 것이고 또 다른이에게는 가장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성탄절이 다가 옵니다. 온 세상이 이날을 기다리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대형 매장은 성탄 분위기를 준비하느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진정으로 구주의 나심을 이해하고 기뻐함은 아닐것입니다. 요즘같은 세계적인 경기불황에 빠질 수 없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준비하느라 분주하겠지요.



누가의 증언은 먼저 세례자 요한의 출생부터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의 수태고지 기사를 증언하면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기사입니다. 사실 이런 성령에 의한 출생은 인간적으로 아무리 양보를 해도 결코 이해될 수가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더구나 문명의 최고 절정기를 구가하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요한과 구주 예수의 탄생이 쉽게 믿어질 리가 없습니다. 하나의 신화정도로 이해를 할 뿐이지요.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믿음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원래 믿음이란 믿을만 해서 믿는것이 아닙니다. 신비이며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믿음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본다고 다 믿는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지식의 충족을 위한 만족으로 보는 이가 있으며 종교적인 의무감과 자기 만족으로 또는 이방종교와 무속신앙처럼 치성들이는 식으로나 만일 신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면 화를 당할까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본문으로 들어가봅니다. 우리의 복되신 구세주 예수께서 탄생한 기사를 누가는 비교적 간략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눅2:7)

오히려 누가의 관점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입체적으로 현장을 묘사하려다보니 다양하게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세상이 고요하게 잠들었을 때 말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때 말입니다. 모든 기대와 소망이 끊어졌을 때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내려 놓고 포기할 때 시작하십니다.



그 지역의 목자들이 들에서 밤을 새우면서, 자기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는데,(눅2:8)


당시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유력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숨겨졌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렇게 당연히 먼저 알아야할 지도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많은것들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열매를 많이 맺고 인간적인 열매를 많이 맺었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았던 것이 꼭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사장들은 이미 주의 음성을 듣고 한 밤중에 마리아가 해산하고 있을 곳으로 달려 와야만 했습니다. 경건한 바리새인들 역시 뒤질새라 달려와서 주님께 경배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중에서는 아무도 몰랐고 먼 이방땅에서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보고 수천리길을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쉽지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서 왔었고 주의 인도를 따라서 아기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며 귀중한 예물을 드리고 즉시로 그 자리를 떠나 갔습니다. 그 이후로 전혀 동방박사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면 이룩하면 꼭 그 자리에 남아있고자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노리고 간증합니다. 좋은일입니다. 주의은혜를 감사하면서 간증하며 새로운 신자들에게 영적인 신앙적인 도전과 감동을 주는 분명 좋은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마십시오. 반드시 처음의 감동은 잊혀지고 인간적인 모습만 남게 될 것입니다. 기회를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생명과 물은 고이면 안됩니다. 흘러야 합니다. 계속 해서 바울사도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만약 한곳에 정착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우리의 본성은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을 추구할 것입니다.



당시에 목자는 아주 비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꺼려하고 부정하다고 하는 직업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배척과 무시를 당하는 최하층에 속한 신분입니다. 그러니 그 밤에 잠을 쫒으며 추위를 참으며 맡겨진 양때를 돌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바로 그들에게 나타난것을 누가는 증언합니다. 그들이 설마 주의 사자들이 나타날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을까요?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것이 실현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그 밤에 양을 지키면서 내 인생은 왜 이모양인가를 한탄하고 있었을지 누가 압니까? 얼마나 고단하고 고독하였을까요.



바로 그 순간에 갑자기 환한 빛에 감짝 놀라는 목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절망과 씨름하고 있을때는 어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문제안에 같혀서 불평하고 있는한은 어둠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둠에 눌려 있을 때는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전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의 상태가 원래 흑암한 중에 있었습니다. 그때 빛이라고 생각한 것은 진정한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밝다고 좋아라 했고 믿었더랬습니다. 그 빛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참빛이 비추었을 때 우리는 놀라워 하고 당황해 하고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목자들의 눈을 부시게 하는 강력한 빛은 놀라움이었습니다. 목자들이 두려움에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빛은 처음 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빛도 참 빛은 아니었습니다. 참 빛으로 가는 가이드였습니다. 요한이 참 빛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증언한 것처럼 말입니다. 목자들이 아연해서 놀라고 있을 때 그들에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주의 사자들의 소식을 누가 들어야 합니까? 정작 들어야 하고 사모해야 하고 기다려야할 제사장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경건하고 율법에 열심인 바리새인들과 랍비들은 다 어디 있습니까?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은 율법사들은 다 어디 있습니까? 초라한 목자들에게 이 기쁨의 놀라운 소식이 들려 진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언제 변변한 예복을 차려입고 경건한 모양으로 회당이나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드렸겠습니까?

누가의 증언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천사들이 떠나자 목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달려 갑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그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서 그들은 증언합니다. 천사가 전한 소식을 그대로 증언합니다. 더 보탤것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주의 천사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사를 만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이미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충분하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하게 보여진 계시를 믿음으로 보고 읽고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보았다라고 하지 않아도 말씀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깊이 있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보면 성령께서 은혜 가운데 이끄시며 각자의 길을 열어 보이시고 알게 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고민은 다릅니다. 기도는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듣고자 무릎꿇고 마음을 열고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면 듣겠나이다하며 주 앞에 서는 사무엘처럼 그렇게 들을 자세와 준비가 기도입니다. 내가 계획하고 통보하고 마무리해 달라고 때를 쓰거나 이미 저질러논것을 속히 성취시켜 달라는 억지가 아닙니다.



언제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를 할 지언정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기에 열심을 낸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늘 짜여진 기도 제목과 논리 정연함과 정당성을 담보로 해서 이것만은 꼭 이뤄주셔야 한다고 작정하고 정시에 새벽에 혹은 금식하며 주 앞에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것을 엄청난 기도인양 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조차 허락지 않고는 일방적인 믿음의 거창한 기도를 실컷 올리고서 벌떡 일어나서 가지는 않았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지 못했노라고 탄식하며 부끄러워 하며 뒤로 물러가는 것을 봅니다. 기도가 무슨 자랑이며 공로가 되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다시한번 하나님의 오묘하고 신비한 섭리를 묵상해 봅니다. 주께서 태어 나심은 엄청난 사건이며 우주적인 사건입니다만 그 소식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은 정작 오셨지만 전혀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 제사장들 랍비가 있어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존경을 받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노라 했었지만 어이 없게도 그 밤에 양을 지키느라 수고하고 소외 당하던 목자들에게 들려 졌습니다. 다윗의 왕권으로 오셔서 통치하시리라던 예수께서는 아주 작고 초라한 사람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말 구유에서, 사람들이 거부하고 외면하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비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며 빛을 비추셨습니다.



이제 곧 주께서 다시오신다는 때입니다. 밤중엘는지 한 낮엘는지 아는이가 없는 이 때에 과연 주께소 오심을 누가 볼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재림하실 주님께서도 초림시와 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로 나타나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부활하실 때에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분명 구름을 타시고 오신다 약속하셨지요. 이제 주님 다시 오실 시간이 다가 옵니다. 정확하게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소원이겠지만 반면에 온 세상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목자들에게 강보에 쌓인 아기를 보리니 그것이 표적이 되리라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의 사자가 전한 것을 이루시는 표적이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 입니다. 이제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그 날이 더디 오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하루를 주 안에서 살고자 합니다. 지금 오시면 그렇게 기뻐할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도 아직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직도 제 주위에는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한채로 혹은 교회안에 머물기는 하지만 집사라는 직분은 있지만 맡은바 성실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 있지만 정말로 주님안에서 사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그런 마음이 자꾸만 드는 군요. 지금 창밖은 칠흙같은 밤으로 살을 애이는 칼 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오 . 주님.

다만 한 순간이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며 주만 바라는 시간에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숨쉬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숨결을 느끼며 그 마음을 느끼며 그의 뜻을 구하며 이끄심으로 만족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선하심이 나와 내 가정과 모든 그리스도의 가족들의 삶가운데 이루워 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리고 평강이 모두에게 있기를 구합니다. 아멘.



2008/11/18. 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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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깊어 가는 가을입니다

      이 한 해도 곧 지나가겠지요.
      어제를 슬퍼하지 마세요. 후회하지도 말아요.
      아름다운 내일이 있음을 믿어요


      지나가 버린 날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잖아요.

      새 날을 꿈꾸며 살아요, 우리.
      다시 한 번 높이 높이 뛰어오르세요.


      주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시잖아요.

      토기장이의 손에 들려지면

      더 많이 깨어진 조각들,

      더 많이 부서진 진흙덩일 수록

      더 아름다운 작품의 소재로...

      더 멋지게 사용되어질 수가 있답니다.
      Have a wonderful Thanks- Giving, friends!!!



    최송연/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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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 최수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특별한 까닭이 없습니다.

당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좋아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당신이 살고
당신 안에 내가 사는
눈물겹도록 행복한 사랑
생에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죽는 날까지
그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그 누구도 담지 못할
여백이 없는 가슴으로 살고 싶은 것은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내 곁에
늘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제나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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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힘들어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 가운데 이것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막는 영역들이

무엇인지 헤아려보자.

예수님의 발치에까지 가지고 나갔지만 더는 깨뜨리지 못한 채

여전히 두 손에 꽉 틀어쥐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저는 깨어지기 싫습니다. 상처받기 싫습니다.

내 체면도 좀 생각해주세요. 나도 영광을 같이 받고 싶습니다.

나도 적당히 같이 누리면 안 될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신다.

"네 안에 네가 너무 크면 내가 들어갈 수 없단다.

나는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구나.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나 네 안에 네가 너무 커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네 것을 달라는 이유는 네 것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란다.

너를 온전케 하려면 네가 잡고 있는 그것을 깨뜨려야 한단다.

네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네가 그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니 줄 수 없는 거란다."


우리안에 혹시 하나님조차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 있는가?

이 영역 안으로 주님을 초청하라.

주님이 내 의식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셔서

나의 주관자가 되어주셔야 한다.


더 내려놓음 中

출처: CGN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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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헬렌이 미국 가서 형 집에 살게 되자마자, 인도 북동부의 나가랜드 2자매가 주말마다 저희 집에 와서 삽니다. 현재는 2자매가 합류해서 4자매로 되었는데, 캘커타에서 한국인
가정에 입주해서 영어를 가르키고, 주말에는 저희 집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교회 3군데를 다니면서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슬럼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영어, 성경, 찬송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두 자매가 자비량 선교사로 가기 위해서, 캘커타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자매 잔배니가 한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말을 전합니다.
영어선생이긴 하지만 발음이 안 좋다고, 또 인도인들 화장지를 안 쓰고 대변 보고 그러니까, 선교사 사모님에게 구박을 많이 당했습니다. 잔배니가 하는 말이 'I was scared to face a new day'.  When I go back to Korean family from Victor Kim's house, I asked myself 'How can I live another week with this family?'. 그래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면서 참된 겸손과 인내를 배우게 되었고, 이제는 'I am ready to face a new day'.
시련과 고통을 두려울 때 기도하면, 같은 환경이지만 힘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전에 두려워 하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승리자로 변하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Victo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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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1장





李錫奎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 날 그 약속의 한 복판에서 나는 보았다
한 송이 꽃망울은
원항어선보다 더 거세게
발돋움하고 있었다


믿음은 귀항하는 배가 되어
뭍과 바다 사이에 출렁이고
항구를 조금 남겨놓은 바다엔
지금 갈매기들 밖에 보이지 않지만,
거센 파도 속에서도 나는
한 송이 꽃이 되고 싶다


가도 가도 파도뿐인 바다
귀향하는 그날부터 주님은
내 기도이고 내 노래이다


파도가 친다 배가 흔들린다
그러나 주님을 선장으로 모신 사람은 안전하다
파도도 바람도 다 주님이 다스린다
주님의 바다에서 노 젖는 그대
지금 꽃망울을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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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밝혀주는 인생의 지도★


그리스신화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이 인간들은 어떤 기도를 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 바구니를 가진
두 천사를 땅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한 천사는 바구니에 인간들이 소원을 비
는 기도를 가득 채우라는 명을 받았고.
다른 한 천사는 인간들이 감사를 올리는
기도를 가득 채우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두 천사는 신의 나라로 되돌아왔습니다 .

한 천사는 기쁜 얼굴로 소원을 비는
기도의 바구니를 꽉꽉 채워 왔지만.
다른 한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얼굴로 돌아 왔습니다.


감사하는 기도의
바구니에는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채...

행복해지는냐 불행해지느냐,
그것은 바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마음먹느냐, 불행하다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 까요.


바닷가를 거닐다가 진주를 하나
발견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긴 모래밭이 아니야 진주밭이라구!"

진주는 단 한 알에 불과하고 모래는
가득 쌓인 곳인데도 말입니다.


모래밭을 진주 밭으로 만들수 있는것은
우리의 마음이란 사실을 잊지마십시요.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삶일수 있습니다.

마음의 분노 속에서도 작은 사랑의
씨앗을 발견하는지혜,싸움과 질투 속에서도
작은 정을 깨닫는 여유로움. 고통과 슬픔과


이별과 눈물속에도 희망을 품을수 있는용기.
그리고 쓰레기가 썩어가는 악취속에서도
향기로올 수 있는 아름다운의 비법은 숨어 있습니다.


이유없이 행복하시고
유괘한 삶.그런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인생의 지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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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hesians 3:1-9  “A Worker by Grace”

 

Today we gather to worship in a Thanksgiving Service and also this day is the time to install workers to serve the church, which is the body of Christ.  I pray this blessed day brings glory to God and great blessings to us.  Let us read verse 7 together, “Of which I became a minister according to the gift of the grace of God given to me by the effective working of His power.”  In this we see that the ministry we serve in, no matter what kind it is in the house of God, it is the gift by the grace of God.  How thankful we are for it.  Therefore today we receive grace through a sermon titled “A Worker by Grace.”  I pray God’s grace will fill your hearts.

 

First, Let’s think about the church of God and its importance.  In 1 Timothy 3:15B it says, “The house of Go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ground of the truth.”  As you well know, the word for church in Greek is Ekklesia (ek-klay-see'-ah), the meaning of this word comes from the word Ek and the word Kaleo (kal-eh'-o) put together meaning “to call out” – to call out to life from death, to call out the people to heaven from hell, to call out the people who belong to God from Satan, to call out to light from darkness.”  Therefore the church is the divine gathering of those who have remission of sin through Jesus Christ and are led by the Holy Spirit.  The truthful meaning of the church’s existence is that people come to God and meet Jesus Christ and give glory to God and praise the name of Jesus Christ.  While gathered saints go forward to God’s nation, love each other, and have fellowship they make a beautiful group of people called God’s church.  Every church of God is like an individual branch of God’s nation.  It is such a glorious and great blessing that we are permitted to serve God’s people and His kingdom in such a glorious place.  This is the grace from God to us and a gift from God.

 

Secondly, there is a spiritual structure for those who serve in God’s church.  This structure is in the leadership, like the pastor, elder and deacon, Sunday school teacher, van driver, and includes everyone.  They are the ones serving in God’s church, the branch of God’s kingdom.  There are three distinctions in ministry.  jOne is the generality in ministry.  It is a belief that our ministry comes from God.  It is not rank, not rule over others, it is only to serve others to meet Jesus and to help them.  It is to believe that the ministry we have comes from God therefore it is divine.  Paul said in Romans 11:13, “For I speak to you Gentiles; inasmuch as I am an apostle to the Gentiles, I magnify my ministry.”  We too magnify our ministry as workers of God’s kingdom.  kTwo, is a classification in ministry.  There are different positions as pastor, as elder, as deacon, as teacher, but the same purpose.  This is the call to work to extend God’s kingdom.  lThree, is to assume responsibility and relinquish rights.  Ministry in church is different than social positions.  How are ones in social areas generally?  They ask for their rights, order others around, and rule over others.  However in church, it is totally the opposite and is to be different.  The command, from God the Master, we obey as a servant.  We are not to rule over other believers or ask for possessions or give out orders.  We seem to have no power in man’s eyes. Nevertheless if servants are ignored or mistreated or disturbed in their work, in that time, God the Master, our Lord Jesus Christ will speak to them.  I believe you will do well in your ministry if you know rightly these three distinctions (generality, classification, and assume responsibility and relinquish rights) and follow them according to your ministry.

 

Thirdly, let’s think about the attitude for ministers.  jWe must be humble.  We must be humble as Jesus Christ was humble (Philippians 2:8B).  kWe must know the will of the Master.  To do this we must read God’s word, the Bible, thoroughly.  lWe must be faithful (1 Corinthians 4:2).  Jesus Christ was so faithful to fulfill God’s will which was death on the cross.  The apostle Paul was also faithful to his ministry which was given by the Lord.  He was imprisoned, received five times forty stripes minus one for preaching the gospel and the church and ran to the end for the sake of our Lord.  mThe workers by grace must serve in joy and thanks.  The apostle Paul was able to serve God’s church because he counted it as a gift from God and to do the work of God was his privilege.  However, how do we think of it?  Do you think of it as a joy and privilege to do something for the Lord?  For example, there is something in my younger age that I never will forget.  It was very cold one winter, the wind was very strong and it was a snowy morning.  When the teacher came in to class, he called my name, “Sang-Kun” and told me to go to his (the teacher’s) house because he had forgotten something.  At this time I felt so good and ran in one breath in spite of the winter cold.  All of my friends looked at me with envious eyes.  If it was nowadays, it would be frustrating and one would say, “Why me on this cold day”?  However at that time the teacher specifically selected me, asking that I run the errand and it was a privilege for me.  Among so many students, I was chosen; this brought me thanks, joy and pride in myself.  If only I could keep that mind all of my life, how wonderful my life would be. 

Beloved saints!  Let us give thanks to God that He chooses and calls us.  “Just as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that we should be holy and without blame before Him in love.”  (Ephesians 1:4)  We must have a thankful heart to God.  Today, we become workers in God’s church according to the gift of God’s grace.  This is a privilege and glory.  Paul thought it a privilege and grace of God that he became a servant and worker.  It is our mission to serve each person, each soul.  I bless you in the name of our Lord that we all become saints who know the ministry by grace and work faithfully in God’s church

By: Rev. Samuel Choi

    에스겔서 18 : 4. 20 에 보면 하나님앞에 범죄한 그 사람이 죽을 것이다 한대로 사람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습니다  그리고 범죄한 사람들의 후손이 나올때 죄의 성품까지 이어받아 태생합니다  태생하고 보니 내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롬6:23)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대로 모든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습니다  불쌍히 여겨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대신하고 태워서 속죄드리면 죄사함 받게되는 규례를 전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피가되신 주님의 보혈의 의미에 대한 은혜를 전하겠습니다


1) 구약의 제사는 개혁될 때까지 맡겨둔 것입니다

        (히9:10)에서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 구약에서는 양과 염소등이 희생을 당하는 것입니다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께서 어린 양이 되시는 것입니다  구약 제사를 폐지하고 완성시키기 위한 신약제사를 위한 뜻에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 예수님께서 이루었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졌음이 이것을 증거합니다(마27:51).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개혁될 때까지 구약제사가 이어졌고 침례요한까지 이어왔읍니다  침례요한이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 전하고 증거한 그 이후부터 신약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것을 믿으면 됩니다


2)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죄사함 받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12) 예수의 피 공로 의지하여 죄사함 받은 것입니다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10"14)   믿으면 속죄함 받고 거룩함을 입어 온전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혈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나에게 어떤 일이 이루어 졌습니까

  (1) 하나님과 가까워 졌습니다  (엡2: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신부요 주님나라 시민인 믿음이 있을때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니다

  (2)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모든 산천초목과 새와 짐승들과 하늘의 해와 별과 달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만물과 함께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 아들의 피로 구속하셨으니,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된 성도들이 기쁨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앞에 서게됩니다  (계7:14)에서 어린 양의 피에 씻어 성결된 옷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앞에 선 그것을 요한이 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어려움속에서도 예수님믿고 구원받고 피로 희게 씻은 성도들이 주님앞에 올라왔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계21:27)에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 사람들이 서게됩니다


    언제나 가까이 나아가 화평함과 주님앞에 서게되는 그 날까지 온전히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보혈의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며 마음과 생활속에 기쁨이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며 살아가시길 기도드립니다  (01/26/08  새벽기도회 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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