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남성, 한국 기독여성 노린다
결혼 구실 접근, 개종 강요하고 폭력 휘둘러

양봉식 sunyang@amennews.com


무슬림의 한국교회 침투에 경계경보가 내려졌다. 최근 무슬림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여성, 특히 기독교 여성과 결혼하면서 개종 강요는 물론 폭력 등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중동선교 전문가들이 이같이 경고했다. 무슬림과
결혼 서약을 할 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믿느냐" 등의 종교적
서약이 있음에도 한국 기독여성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외국어로
질문해 배교의 고백을 하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파키스탄 출신 이슬람교도와 결혼했다가 최근 심각한 폭력과 개종 압력에 시달린
익명을 요구한 K씨는 "결혼 서약을 할 때 파키스탄 언어로 해서 못 알아들었을
뿐만 아니라 서약 내용을 잘 몰라 주의해서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K씨는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원해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한국기독인 여성에게 접근하고 일단 결혼하면 폭력까지 불사하며 개종을 강요하고
있다"며 "이들의 경우 이슬람의 선교적 차원에서 기독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경우도
있어 이슬람 국가 출신 외국인과의 결혼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선교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코란에 따르면 무슬림 여성은 타종교인과 결혼이 아예
금지됐고 남성은 가능하되 기독교인과 유대교 여인과 우선적으로 결혼하라고
규정됐다"면서 "무슬림 남성들은 한국여성, 특히 기독교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하고 집요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주위를 환기시켰다.
또 "이슬람 남성들이 한국여성을 만나는 방법의 70%의 경우는 한글교육을 부탁하는
방법"이라면서 교회의 선교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선교전략연구소 최헵시바 소장은 “무슬림 선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 문제만큼은 성도의 신앙과 그 자녀들의 신앙이 걸린 문제니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전체보기  
한편 한국선교전략연구소에서 지난 7월 19일 기독교회관에서 개최된
투아이즈네트워크  세미나에서 최헵시바 소장이 '무슬림 남성과의 결혼 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10가지'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혼인신고를 하려면 모스크에 가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이슬람국가의 혼인제도는 일부다처제이다 △한국에서 무슬림들은 기독교 여성을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속아서는 안된다 △이슬람 결혼정책은 이슬람을
포교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결혼 후 당신의 자녀는 무조건 무슬림이 되며 무슬림식
교육을 받게 된다 △1부4처제 국가이므로 본국에 부인이 있어도 독신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으니 본국에서 꼭 확인해야 한다 △교회에서의 선교방법은 무슬림
남성은 남성이, 무슬림 여성은 여성이 감당해야 한다 △샤리아 법은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구절들이 아주 많다 △출입국관리소와 교회 내에 국제결혼 상담소를
설치해야 한다 등이다.

교제중이거나 무슬림 남성을 접촉하고 있는 기독교인 여성들과 해당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한 최 소장은 “불의의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기독교인 여성들은 무슬림 남성과 결혼을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런 피해 사건 가해자의 대부분은 파키스탄인과 방글라데시아인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연구소측은 "남성들은 체류비자와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접근했으며 결혼 후 또 다른 한국여성들을 유혹해 성적쾌락을 즐기거나 폭력을
동반한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슬림과의 교제 또는 결혼 중 갈등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여성들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여성관 및 결혼관에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무슬림
국가들이 오일달러로 서구는 물론 아시아 국가에 적극적인 선교지원을 하고 학교와
문화단체들을 통해 공격적인 포교활동을 하고 있어 한국교회의 주의가 필요하다.


2008년 08월 01일
이미지 전체보기 양봉식의 다른기사 보기




사랑은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 줍니다.

매력 있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매력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당기는 힘이 있고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매력은 참 멋진 개성입니다.

매력은 사람들을

잘 묶어주는 힘입니다.



매력 있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매력 있는 사람은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고통의 순간조차

기쁨으로 바꾸어놓는 사람은

매력이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은

매력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할 때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매력 있는 사람입니다



삶에 독창성이 있는 사람은

매력 있는 사람입니다.



남을 신뢰할 줄 아는 사람은

매력이 있습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이 있습니다.



매력은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들의 삶을 부드럽게 인도해 줍니다.



거짓으로 꾸미고 가장하는 것은

매력을 만들지 못합니다.



남을 배려해주는 사람은

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욕심 속에 살지 않고

나눔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남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하면

강한 의욕이 만들어집니다.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은

매력의 산실입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면

매력은 배가됩니다.



내 매력은

당신의 가슴에서 자라납니다.


좋은 생각


     ♬ 0 Kaleidoscope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의 못  (2) 2008.11.27
용기를 잃지않는 사람이 유능한 자  (0) 2008.11.23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  (0) 2008.11.22
당신이 갖고 있는 향기  (2) 2008.11.17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0) 2008.11.16


이미지 전체보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니지요.

오히려
너무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보다는 불행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이룰 때 느끼는 성취감, 기쁨,
이런 감정들이 바로 행복입니다.

행복은
돈이 많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값싼 감정이 아닙니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힘든 시련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노력 속에 있지요.

부자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 좋은글 중에서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기를 잃지않는 사람이 유능한 자  (0) 2008.11.23
매력적인 사람  (0) 2008.11.22
당신이 갖고 있는 향기  (2) 2008.11.17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0) 2008.11.16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2) 2008.11.08
이미지 전체보기

                         
                       행복한 미소로만 채워주소서

                                    최송연


    손바닥만 하게 작지만...
    도심 한 폭판에
    푸른 잔디 깔린 뜰이 있어
    더 없이 싱그러운 아침

    토독!
    솔솔 불어오는
    실바람의 숨결 따라
    새벽 이슬 머금고 다소곳
    피어난 하얀 '푸루메리아'

    그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며
    생채기난 가슴을 토닥토닥...

    햇살 한가득 뿜어내며
    솟아오르는 힘찬 태양 앞에
    안개인 듯 구름인 듯, 산산이
    흩어지는 새까만 하늘조각들

    상처 주고,
    상처받아 아린 우리
    어둡고 슬픈 기억들은

    태양보다 밝은 주님 빛 앞에
    안개인 듯 구름인 듯,
    조각으로 산산이 흩어지게 하시고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행복한 미소로만 가득,
    가득하게 채워주소서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쉼을 얻게 하소서  (4) 2008.12.03
주님이 오신 12월이면...  (4) 2008.11.28
한 사명자의 고백  (2) 2008.11.21
아침이슬 같은 주의 사랑  (2) 2008.11.19
마음의 문을 열어주소서  (2) 2008.11.13
 

한 사명자의 고백

0


   

   쪽빛으로 새파란 하늘에는

                             하얀 새털구름 두둥실 흘러가고

                             살랑거리는 바람 따라 풀 내음 향긋한 데...

 

                             풀 숲에 쪼그리고 앉아

                             시계꽃 넝쿨째 뜯어

                             손목에 칭칭 감아 팔찌 만들고...

 

                             빨간 진달래꽃

                             입에 물고 잘근잘근...

                             입안에 달착지근한 꽃잎 물,

                             소녀의 마음은 나비가 되어 춤추었습니다...

 

                             내 인생의 들녘에

                             봄은 그렇게 왔다 가고

                             오고 또 가는데...

 

                             저 멀리 메마른 광야

                             길 잃은 양떼의 울부짖는 울음소리  어쩌자고 귓전을 때리며 들려오는가....

 

                             그 울음소리

                             차마 외면치 못해

                             훌훌 따라 나선 이 길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의 길,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가야할 길은 아직도 상거가 먼데,

                             나는 어이하여 이리도 주저앉고 싶어지는가….

                            

                             때때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며, 자빠지고,

                             뾰족한 가시 찔러대어 피맺힌 무릎,

                             고픈 배 움켜쥔 채 터벅거려도

 

                              목자의 핏빛 사랑 나를 오라 손짓하시니 나는 힘없는 무릎 일으켜 세우고 생명으로 생명 바꾸신 목자의 끝없는 그 사랑이야기 가녀린 목 터지도록 외쳐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시록2:10)"

 

 

 

 

                             최송연/사모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 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 : 8 - 9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Deuteronomy 16; 9-17  Truthful thanks

Since we are having an Installation ceremony for the kwonsa next week Sunday, I’ll deliver Thanksgiving message today.  The churches in the Old Testament time observed Passover, Feast of Weeks and Thanksgiving. However, the churches in the New Testament including our church observe Christmas which celebrates the birth of Jesus Christ. Also, we observe Easter which celebrates Jesus’ resurrection after his death on the cross. Then, we observe Thanksgiving. In this perspective, I think that observing Thanksgiving has a deep meaning.  We know that Jesus came to this earth in the form of body and that He died on the crossed and resurrected after three days. However, if we’re not thankful to God, we can’t say that we have the right kind of faithfulness in our life. Of course, there are many of us who are thankful for God’s grace. Those of you who are thankful should continue to be thankful and those of you who are not should learn to be more thankful so that you receive blessings. Therefore, I would like to share a sermon titled, “A truthful thanks” and receive grace. May the Lord’s blessings fill your spirit and mind.

First of all, let’s think about what kind of person gives truthful thanks? That is, a wise person knows how to give truthful thanks. A wise person knows the origin and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refore, they can have thankful heart. Look, a wise person who knows the parents’ sacrifice is thankful and treat them well. However, a foolish person doesn’t know the parents’ sacrifice. So, he complains to the parents and mistreats them. Likewise, a wise person who realizes and knows God’s grace can give genuine thanks. On the other hand, a person who doesn’t realize God’s amazing grace is not thankful and rather complains. Why is that? It comes from the foolishness of not realizing. For example, the Israelites were this way. God led them as pillar of cloud in the daytime and as pillar of fire in the night. He provided them with quail and manna. When they were thirsty in the wilderness, He made water gush out from a rock. Not only that, when the Pharaoh came after them with his army, the Red Sea was in front of them.  So what did he do?  The Red sea split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walk on ground. God did whatever Israelites asked for. But, if you look at the bible, what did they do? They blamed God and complained to Him. Instead of thanking God, they blamed him first. Why do you think that is? That comes from foolishness of not knowing and not realizing His grace. If you look at Genesis, Sarah’s servant Hagar didn’t realize her master’s love for her. Instead of being thankful, she despised her and eventually this led her to be thrown out from Sarah’s house. Also, Adam and Eve who lived in the Eden garden by the grace of God weren’t thankful to God. They even foolishly wanted to be like God and got tricked by the devil. They too were thrown out from the garden. Then, it is necessary for us to think about how our life is. Are we not thankful because we haven’t received anything from God?  Or are we not thankful because we haven’t realized the grace that we’ve received from God? If we are blaming him, why are we doing it? When a person who should be thankful is not thankful, it is not a wise thing to do. Dear saints, I pray in the name of the Lord that we become wise and beautiful saints who are thankful to God.  Are we in hardship because of the situation we are in right now? Then, we should be thankful by thinking of the people who are less fortunate than us. In our lifetime, we have difficult times, good times and bad times. Therefore, Paul said in 1 Thessalonians 5:18,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Yes!! I pray in the name of the Lord that we become wise saints who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Secondly, what should we be thankful for? That is we should be thankful for God’s blessings. There are two types of God’s blessings. First is general blessing. Second is special blessing. Then, what is a general blessing? That is given to everybody without discrimination. It is the gift of the nature. This blessing was given to believers of Christ and non-believers. The things such as sun, air, rain, clothes, food, stars in the sky and moon are provided for everyone. The believers don’t get more than the non-believers. For the farmers, they are given good harvest because it is part of general blessing. Second, special blessing is given only to the believers of God. The special blessing enables us to believe that God came to this earth in the form of body and he died on the cross and resurrected after three days. Some people can’t believe it but we believe in our heart that Jesus Christ is our Savior. The special blessing is that if we believe, we’ll receive eternal life. St. Paul said in Corinthians 1: 18,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This is indeed the spiritual secret. The one who believes in the message of cross can have an effect which is to become God’s children. Also, it is to have our sins forgiven and receive the salvation. The one who can believe this is the one who received the special blessing. Then, how can we tell who receives the special blessings? That is, first, we know when someone voluntarily comes to God. John 6:44 says, “No one can come to me unless the Father who sent me draws him,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Also, John 6:65 says, “He went on to say, “This is why I told you that no one can come to me unless the Father has enabled him.” Second, we know when someone says Jesus is Lord. In 1 Corinthians 12:3 says,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We indeed received the special blessing since we came to church and open our mouth and called Jesus our Lord and praised him. God made all this possible. We are so blessed to be part of the special blessing of salvation but those who are not are pitiful and they will perish.

Thirdly, let’s think about what we can do to give truthful thanks. First, we should think that even if we don’t have anything, we should still be joyous because of God. If you look at Habakkuk 3:17~, it’s about Habakkuk’s prayer.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Even if he has nothing, He is saying that he’ll be thankful because of God. I believe this is the right attitude of truthful thanks. Second, the person who is thankful has to understand the mind of the one receiving thankfulness. Look, if the children have thankful heart to their parents, they would try to do things to please them. When they are young, they just need to eat well and be healthy. When they are students, they just need to study hard. When they are grown-ups, they just need to work hard. Then the parents are content. However, if they didn’t have thankful heart, they would hang out with bad friends and not care about what the parents think. Also, if a servant has a thankful heart to the master, he would do his best to complete his job. Likewise, if we have thankful heart to Jesus, we would try our best to please Jesus. Then, what would God want us to do most? There are many but foremost, He wants us to bring the lost souls to the Lord. Why did Jesus come to this earth and be ridiculed and mistreated and died on the cross? What is the purpose for this? Therefore, even one lost sheep was valuable to him and when he found it, he rejoiced with his neighbors.

Dear saints, next week is the Thanksgiving service. Also, we’ll have Installation ceremony. If we have genuine thankful heart, we would be looking at the souls who should come to Jesus Christ. This is the time to harvest the crops in the field. At this time of harvest, if we don’t harvest, the crops will be thrown away in the cold winter. Before the dead winter comes, don’t you want to be part of harvesting the crop of life? I believe the truthful thanks to our Lord is to find lost souls and bring them to Him. On Thanksgiving, it is important to make offering and offer our service with thankful heart. However, what’s more important is to find the lost souls and bring them to the Lord. I pray God’s grace fill your spirit.

 By: Samuel Choi

아침 이슬같은 주의 사랑

0

벌써

새벽어둠을 뚫고

보라빛 하늘이 열리는가...


도심에서 듣지 못한 닭소리가

내 곤한 단잠을 깨웁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이 전원의

새벽을 맞이하고파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드르륵 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패랭이꽃 소복한 들길을

내 주님의 손 꼬~옥 붙잡고

걸어가노라니


나뭇가지 사이에서

잠자던 새들이

우리 발자욱 소리에 놀랐는가

화들짝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자욱하던 새벽 안개가

살랑이는 아침 바람에

속절없이 사라짐을 지켜보면서


내 일상에 쌓여가던 근심 걱정도

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게 해 주십시오

조용한 입술로 주님께 기도했었죠.


내기도 소리를 들으신 주님께서

나를 어루만지셨는가...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며

늘~투정하던 내 마음이


어느새,

감사와 감격의 찬양으로 바뀌어 지고

내 두 뺨엔 뜨거운 눈물이

주르룩 흐르고 있었습니다.


영롱한 이슬방울이

풀잎 위에 조롱조롱 매달리 듯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이

영롱한  아침이슬 되어


 내가 걷는 발걸음 따라

조롱조롱 매달려 가고 있음이

이제사 보여집니다.


                                                      최송연/사모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미소로만 채워주소서  (0) 2008.11.22
한 사명자의 고백  (2) 2008.11.21
마음의 문을 열어주소서  (2) 2008.11.13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2) 2008.11.12
그리운 내 친구야  (2) 2008.10.24
본국에서 유명한 어느 기독교 싸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곳에 자신의 신분을 ‘서울의 어느 신학대학원의 교수라’고 밝힌 L교수님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가 있는가?’ 라는 거창한 명제 아래 밝힌 글의 요지는 결국, 현대는 결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끝을 맺고 있음을 보았다.

과연 그러한가?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더욱이 놀라운 것은 모신학대학교 교수라고 자신을 밝힌 L교수님은 이런 엄청난 명제를 다루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해 줄 수있는 단 한구절의 성경말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지 청교도들의 신앙고백인 ‘웨스터민스터’의 신앙고백과 또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가 그러함으로 그러하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경솔함에 놀랍다 못해 경악을 금치못하겠다. 다시말해서 L교수님은 성경말씀을 감(減)하는 죄를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범하고 있으며 들은 풍월로 성경을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우리(성도)는 오늘날도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 (요한복음10장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을 하셨다. (요한복음10장26절)에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한다.” 라고 경고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직통계시적 형태를 배재해야 한다. 우리(성도)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하며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은 성령하나님의 역활이시요, 사용되어지는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에 있이어야만 한다. (행27:22-25)

계시속에는 크게 나누어 두가지 형태의 계시가 있는데,
1. 특별계시, 혹은 기록(문서)계시,  2. 일반(자연)계시로 나누어진다. 간단히 요약해, 특별계시는 성경말씀을 가르키며,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요, 핵심은 인간 구원이다. 일반계시는 자연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현세대에서 우리(성도)는 성경을 다시 쓸 수 있는 특별계시는 받을 수도 없고, 또 받을 필요가 없다. 일반계시도 자연속에서 찾으면 되기에 우리가 다시 재창조를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성도)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란, 곧 성령님의 조명하에 특별계시속에서나 혹은 일반계시속에서 찾아지고 들려질 수가 있으며 양으로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성도(양)는 반드시 목자의 음성, 곧 성령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음성이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중에서 우리들의 속에 계시면서 역사하시는 성령하나님의 몫이며, 반드시 성경말씀을 레마로 들려져야하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양들에게 들려주시는 것은 목자로서 양들을 바른 길, 구원의 길,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시기 위함이다. 언제 어느 때 장사가 잘 되고 또 아들이나 딸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가 있고 없고, 등등…이런류의 점치는 형식이나 쪽집게 점쟁이식의 음성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다음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하나님의 음성듣기 분변법 성서적근거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명기18:21절 말씀”. 했다.

누가 방언으로 기도 할 때나 무시로 기도 할 때나 주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가 있다.
그 음성을 판별하지 못해서 많은 주의 종들이 사탄의 덫에 걸려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젊었을적 부터 하나님께서 온갖 고생 중에서 당신의 음성을 가려 내는 훈련을 시키셨고,  성령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아래와 같이 말씀의 잣대로 검증되어진 대언은, 그 정확성에 있어서 단 한번도 그 말씀이 빗나가거나 틀려본 적이 없다. 고로, 하나님의 음성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잣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이 되어져야만  한다.

1.자기가 기도하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생각이 머리에 주입된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절하반절)".

2.그 생각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어야 하며 레마로 머리에 정확히 떠오르거나 입술에서 터져 나온다. 성령님께서 예수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4:26절)

3.그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겁다(때론 너무나 뜨거워서 부모가 돌아 가셨을 때보다 더 통곡을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큰 감동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24:32절 말씀 )”.

4.다른이가 예언 은사적 말씀을 받았을 때에도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같이 마음이 뜨거워진다. (눅1:41-45절)

5.항상 선한 말씀이 아니고 때론 책망함과 바르게 함으로 탄식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절)”.

양에게 있어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듯, 성도가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건만 ‘현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대는 끝났다’ 라고 가르키므로서 성령님의 역활마저 제한시키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신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목회자들에게 만연하게 된 것은 ‘신비주의자들’의 1류급 신자의식이나, 직통계시파들의 이단적 행위가 성도들의 삶을 좀먹는 것을 많이 보아온 까닭이기도 하고 또 자신이 성경을 많이 읽지 않고 들은 풍월, 혹은 배운 신학사조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서 항상 살아있는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읽어야 하며,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영과 혼과 육체를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겸손하게 내 마음의 보좌를 내어드려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면, 주시는 말씀이 힘들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보여야만 한다. 이렇게 될 때 현대에도 양은 목자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으며 그분의 사랑과 보호하심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날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심을 받게된다.

최송연/사모

'최송연의 신앙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2) 2008.11.26
핏자국 선명한 그 길로만...  (0) 2008.11.23
정체성을 먼저 회복하라!  (0) 2008.11.13
보다 높은 차원의 감사  (2) 2008.11.11
최상의 선택  (2) 2008.11.03
0


    본문17절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율법과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읍니다   성경을 읽어나갈 때 구약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율법책이라고 정의합니다  신약은 하나님의 은혜, 은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내용을 사도 요한은 요1:17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 말씀 전체를 잘 읽어나가며 내 신앙의 자세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1) 구약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율법입니다  율법을 강조합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십계명과 구약성경 말라기서 까지를 포함하여 총칭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부르시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기 위한 법규로 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계약 공동체입니다 이 계약체 속에 법을 정해 놓은 것이 십계명입니다 (출20:1-1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 살아가는 법률입니다   법률에는 정책법과 절차법이 있습니다  정책법이란 이스라엘 백성앞에 너희는 이 규정된 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십계명입니다  1-4계명 까지는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우상 숭배하지 말고 주일을  잘 지키라이며  5-10계명 까지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앞에 살며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로 살라는 것입니다  절차법은 정책을 특별 문제로 적용시켜 실효하게 하는 것입니다  법률에 어긋난 행위에는 하나님의 형벌이 있으며 잘 지키면 내 백성이요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읍니까?  그들과 하나님과 계약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조건적인 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구약성경이 강조합니다


2) 신약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은혜와 사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율법을 다 못지키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다 죄인의 존재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9가지 계명을 잘 지키며 한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다 무너지기에 사람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죄의 근성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갈2:16 하반절에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불가능한 인간이 가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시면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지옥의 형벌받을 영혼을 위하여 대신 죽어주신 것이 사랑이며 거져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신약성경이 그것을 강조합니다  계약된 백성이 정책법을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사형장에 끌려가야 하는데 소나 양,염소,비둘기등 죄없는 동물들이 대신 죽었읍니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법입니다  그래도 인간의 마음속에 여전히 죄가 남아있기에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롬3: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성도가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십자가 은혜안에 들어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앞에 나올 때 주님 사랑을 깨닫고 은혜안에 들어가는 자세가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도의 분명한 위치는

    은혜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랑안에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켜야 끊어지지 않는 백성이 됨같이 신약에서 성도들은 예수님의 은혜안에 있어야 끊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은혜로 하고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은 무효가 됩니까?  아닙니다  본문 말씀에서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롬13:9-10 은  사랑가운데 율법이 다 들어있으며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읍니다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십계명을 다 지켜집니다   예수 사랑안에 들어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례히 행할 수 없고 미워할 수 없으며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마음이 됩니다 모든 잘못은 내게로 돌리고 잘 된것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겸손이 사랑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안에 율법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요일4:7 에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잘 읽어가며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깨달아짐으로 나의 삶에 축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축복이 되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랑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이루어가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04/24/08  목요예배 설교말씀 요약)


                  당신이 갖고 있는 향기가
                  사람들에게
                  따스한 마음이
                  배어 나오게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향기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자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윽한 장미의 향기처럼
                 누구나 좋아하는 향기를 뿜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려고
                 또는 자신의 몸을 향기롭게 하려고
                 향수를 뿌립니다.

                 그러나 향수 중에 가장 향기로운 원액은
                 발칸 산맥에서 피어나는 장미에서
                 추출된다고 합니다.

                 그것도 어두운,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때가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 중에서 만들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본 사람만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영혼의 향기가
                 고난 중에 발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그렇다면 당신의 향기도
                 참 그윽하고 따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향기를 맡게 하는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을 만들어 주는 책 중에서                posted by esther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력적인 사람  (0) 2008.11.22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  (0) 2008.11.22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0) 2008.11.16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2) 2008.11.08
오바마의 당선 설교요지  (0) 2008.11.06
신앙이란 삶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다면 신앙한다는것을 어떤 특정한 장소로 한정지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적용하는것을 장소적이거나 어떤 법을 적용하는 것들입니다. 형식이라는 틀을 세워 놓고 그 틀안에서 잘 적응하면 성공한 것이고 그 틀 밖에서는 아무리 선한일을 해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기현상 말입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글이기는 합니다만 신앙의 전부는 성도의 인격과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합니다만 우리는 마치 교회와 관계되는 것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잘 정리되고 제도화되고 짜임세 있는 형식을 수행하기만 하면 그는 훌륭하고 믿음있는 성도가 되는 것이고 그 형식과 제도에 녹아들어 가지 못하면 믿음이 시원찮거나 심지어는 구원의 확신 운운하는 따위의 범주에서조차 밀려나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 현실입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교회=신자=천국] 이런식의 공식이 성립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정말로 교회를 약화 시키거나 부정해서 이런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만 안티적인 글로 튀기때문에 저 자신도 정말 괴롭습니다만 지난번 퇴근을 하면서 주일 예배를 위하여 집으로 가는중에 많은 상념들이 교차하더군요.



교회는 죽어야 한다

정말 어이없는 생각입니다만 저는 요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슨 망언이냐고 하겠지만 제가 말하는 교회란 제도화되고 인본 주의화되고 맘몬화되고 자본주의화 되고 개인주의화되고 기업화 되고 백화점식화 되고 세속화된 교회들을 싸잡아서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건전하고 성경적인 교회는 당연히 예외가 될줄 압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위에서 열거한 내용에 적용되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을줄도 압니다. 그래서 저는 제도화되고 교단산하에 속한 교회에 대하여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안전한것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견고한 힘을 원하는것과 동일합니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장해주는 어떤 힘을 간절하게 원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종교의 발생이 바로 이러한 불안한 인간들의 상태에서 부터 기인한것은 아닐까요?  노아시대 홍수사건 이후의 바벨탑 사건 역시도 그런 맥락으로 생각합니다. 나를 지켜줄 든든한 보호막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하나님이 완전한 방패요 보호자 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의 보호자가 되시며 방패가 되시며 능력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 입니다. 그것을 신앙하는 삶의 모습이 성도요 교회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제가 교회가 죽어야 한다는 내용의 저변에는 이런 부분을 절대화 하는 것에서의 경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만족이나 평안하고자 하는 것을 교회로 한정을 두는 것입니다. 왜 개척 교회보다는 대형교회와 유명 목회자가 있는 교단 교회가 성장할까요? 이것은 사람들의 심리가 평안함과 안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미자립교회나 개척교회가 고전하는 이유는 성도들에게 안정감보다는 수고와 헌신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것들때문입니다.

중대형 교회는 모든 조건에서 흠잡을데 없이 풍요롭습니다. 사회적으로 비교해도 그 수준이 결코 부족하거나 뒤떨어 지지 않았습니다. 구제와 봉사하는 시스탬이 잘 설치되고 운영이 되어서 통계적으로도 개신교회와 모든 교회의 참여율이 압도적인것도 사실입니다.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제가 왜 경계에 경계를 해야 한다고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는지요.



교회안에서 만족하는 사람들

예전에 성가대와 오후 찬양예배시 인도를 조금은 한 경험에서 보면 아마도 저역시 그런 부류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교회가 어느정도 안정적이 되면(이것은 규모의 크기를 의미하기보다는 비록 적어도 기본족인 프로그램이 활성화 된것을 예로 들은것입니다.) 주일 아침이면 여러 가지 풍경들이 들어 옵니다. 한것 시간을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서 교회로 향합니다. 요즘은 자동차의 수가 급증함으로 자가 운전자들이 많기는 합니다만 대형 교회에서 운행하는 교회버스들의 움직임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시간 시간에 맟추어서 돌아 다니면서 성도들을 운송합니다. 차량 봉사를 하시는 분들이나 주차 정리를 하시는 분들이나 뿌듯함이 역력합니다. 여러가지로 맡은 부서에서 잘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열심히 움직이는 분들은 주일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분들입니다. 교사들도 그렇고 성가 대원들도 그렇고 모두들 기쁨과 감사함으로 희열을 느끼는 모습들입니다. 또한 목사님들은 더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전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준비하면서 은혜를 나눌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반주자들도 그렇고 감사함과 은혜 가운데 이미 준비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얼마나 좋은지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로 모두들 교회때문에 기쁨으로 충만함을 맞이합니다. 비록 주일 모든 순서를 마치고 다음날 부터 각자 세상에서 또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지언정 기독교인들에게 주일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한번 뒤집어서 비틀어 본다면 이렇게 은혜로 뒤범벅이된 믿음이 좋은 성도들 혹은 장로요 목사요 집사님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교회 때문에 만족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는 어떤 삶이든 신분이든 형편이든 상관 없이 교회때문에 행복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설과 환경이 최적화되고 세련된 교회일 수록 만족도는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교회가 든든한 방패요 보호자요 자랑이요 자존심이며 자부심일 수도 있다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교회에 철저하게 적응하는 성도와 및 교역자들에게는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그 교회는 존재해야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고 사회법적으로 실형을 받거나 해도 어지간해서는 교회가 와해되는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명백히 범죄한 사실이 있더라도 대부분은 용서라는 성경으 가르침에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의 교리중에 용서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용서 못할 죄가 없습니다. 신약 성경에도 보면 사랑하고 허물을 용서해 주라는 근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교회의 질서와 순결과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한 징계와 치리도 있다는 것은 언제 부터인지 거론되지 않는것이 현실입니다.



교회제일주의



이스라엘은 성전을 최고의 거룩한 장소로 믿는 민족입니다. 지금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도 안계실거라고 믿는 민족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보면 무너진 성전을 새롭게 증건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인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성전안에만 계시는 분으로 가둬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로 참 성전된 자기몸을 그리스도의 보혈안에 들어온 자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은 아무런 필요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미 우리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므로 믿는 성도가 성전이며 교회인 것입니다. 성전된 몸으로서의 교회인 성도들은 그러므로 이제 세상에서 온전하게 성전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성도의 기준과 목적은 교회(오늘날의 제도화된 교회와 건물과 담임목사와 교단과 노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인식이 정립이 안된 상태에서 그동안 교회 중심으로만 한정 지어놓고 교회 프로그램과 형식을 만들어서 성도들로 하여금 충실하게 실천하도록 가르쳐 왔기 때문에 성도들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이끄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마치 과거 구약시대의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율법 의식화가 된 지금의 교회구조는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얻은 성도가 되었다는 표징이 교회의 법과 전통과 의식에 최선을 다하여 동참하는것이 하나의 모범 답안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빛이며 소금으로 살아가야할 성도의 신분과 소명 의식이 세상에서는 전혀 동원되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만 적용이 되어지는 현실을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교회안에서 은혜로 만족하시는 분들을 깎아 내리고 흠집을 내자고 쓴소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감사하며 만족하며 신앙하시는 분들 계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여지는 모습이 절대화 되어질 때 우리는 종교적인 행위로만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증거할수 밖에 없는 단점을 알고 계시는지요? 이스라엘이 그토록 제사와 율법에 충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왔지만 들려오는 선지자의 탄식은 무엇입니까? 이 백성들이 나를 섬기는 것이아니라 마귀에게 제사한것이라고 증언하지 않습니까? 이사야 1장의 하나님의 탄식이 그런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더욱 더 율법에 충성했고 제사에 열중했으며 종교적인 열심으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누군가 성전 문을 좀 닫아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늘 우리는 심각하게 자기를 부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처럼 잘 번성하고 우리의 만족감이나 우월감이나 지켜줄 보호자로 충분해져버린 교회안에서의 모든 행위와 의식들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자기부인은 말뿐인 공염불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목사가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설교하라는 조건이라면 오늘날 처럼 목회자로 헌신하겠다는 사명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아미쉬 공동체를 견문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특히 그 공동체에서의 목사의 역할과 자질을 보고서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참고: http://blog.naver.com/amishstory/100017289157)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절대적으로 알고 있는 그 보호막을 재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조건들입니다. 만족할수 있도록 하게 해 주는 전통과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과 무능함을 보게 되며 진정으로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솔직 해져야합니다. 물론 교회의 제도와 장치는 우리로 하여금 평안함을 주기는 합니다. 만족감도 줍니다.



우리가 좌절하고 낙심하였을 때 교회에서 주는 위로와 격려와 앞에서 말한 틀속에서의 행위에 충성하기만 하면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스스로도 만족감에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중독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실제의 사귐에서는 어쩌면 위선과 가면과 포장으로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종교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종교인으로 만족하며 사는것도 사실 입니다. 세상에서도 인정을 받고 신앙적으로도 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삶이란 정말 달콤한 것입니다. 아무나 누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탈교회를 꿈꾸며



앞에서 저는 인간의 본성이 절대적인 평안함과 안식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끊임없이 그런 삶을 원했습니다. 애굽에서 430 여년을 노예 생활을 해왔던 이들은 모세를 통해 해방시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러한 보호자요 안락을 주며 평안을 제공해줄 것을 기대 하였습니다. 광야 생활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도록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소망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유랑생활을 해야만 한 것입니다. 지치고 힘들었던 이스라엘은 순간 순간 우상들을 만들어서 기대를 얻고자 하였고 그것 때문에 심각한 징계를 받아야 했었습니다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이 힘을 키워서 혹은 하나님 대신 이방의 신들을 끌어들여서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만족하지 못하니까 하나님도 섬기도 이방의 신들도 섬기는 혼합주의로 변질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택한 원 가지들이 그렇게 타락해 갑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들인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성전중심으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가둬놓고 신앙하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교회중심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둬놓고서 교회밖에서는 도무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부인하는 것이 어쩌면 유대인들의 의식과 닮았을까요?



지금의 교회 현실에서 안일함과 평안함과 만족에만 집착 한다면 정말 주님과의 관계가 다른길에서 평행선을 달릴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척을 준비하시는 목사님들과 현재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분들역시 기존의 통념을 전면 재고하지 않고서 그동안의 관행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솔직하게 아멘으로 고백하셨다면 다시 새롭게 계획을 바꾸셔야 합니다.



교회 부흥 세미나에서 들은 것들부터 버리셔야 합니다. 성공하는 목회자의 책을 버리셔야 합니다. 나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임하셔야 합니다. 오직 예수 때문에 살고 예수 때문에 죽는 것을 결심 하셔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원리와 교회 행정과 경영에 대한 것을 전부 지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십시오. 사도들의 삶을 추적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 가기 위해서는 매일 매 순간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포기 입니다. 그 자기 포기에는 어쩌면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관계도 포함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달란트나 재능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 지혜를 포기 해야 합니다. 또한 안주 하고자 하려는 육신의 본성을 거슬러야 합니다.



광야를 행진하던 이스라엘이 왜 구름이 멈추면 행진을 멈추고 장막을 펴서 기다리다가 구름이 움직이면 다시 장막을 철거하고는 앞으로 향해 걸어 갔을까요? 이제 어느정도 안정적이고 적응할 만 하니까 구름 기둥이 앞으로 떠서 인도합니다. 다시 힘든 여정을 하면서 익숙해지니까 멈추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기준이 말씀입니다. 성막은 말씀이 함께 함을 의미합니다. 모세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말씀이신 하나님 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안에 함께 거하십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예수님의 뜻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성도입니다. 교회 건물만이 우리의 최종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공동쳬가 왜 흩어졌을까요? 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부흥하면서 안정화 되니까 돌연 흩으셨습니다. 흩어 버리시자 곳곳에 도망가면서 복음의 소식이 전파 되었습니다. 생명의 물이 고여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물은 흘러 넘쳐야 합니다.



교회가 지금의 모습들을 은혜라는 명분으로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개혁과 변화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습니다. 그러나 쉬운일이 아닙니다. 기존의 틀을 벗어 던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그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우리의 본성들이 두려움속에서 안주하기만을 원할 것입니다. 교회를 벗어나는 것을 마치 구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집착하는한 더 이상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들부터 의식에서 새롭게 전환 하고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전한 길을 원하게 되는 한 생명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반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의 검으로 빛으로 우리 스스로를 진단해야할 때입니다.



유대인들을 향하여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았었지만 고침을 받은 사람은 나아만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기근으로  고통 당할 때 오직 엘리야와 사렙다 과부한 사람이 기근을 면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저는 이글을 작성하면서 정말 두렵고 떨리는 심정입니다. 저도 은혜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정말 싫습니다. 그래봐야 저 자신에게 유익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말은 불신자들에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이제는 어떻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며 반성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야하는 시점입니다. 그저 이대로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초막을 짖고 살자는 베드로처럼 꿈속에서만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재는 자다가 깰때가 되었다는 사도의 가르침에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잡고 있는 것을 놓지 않는다면 새로운 약속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 이기만을 소망해 봅니다.



2008-11-04.

글/빈의자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밝혀주는 인생의 지도(감사)  (0) 2008.11.24
기도는...  (0) 2008.11.22
당신께 모두 바치오니/정유찬  (0) 2008.11.15
내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  (0) 2008.11.15
나사못과 금화  (2) 2008.11.15
0


한 병실에서 투병생활을 같이 하는 두 노인이 있었습니다
오랜 투병끝에 찾는 이들도 없는 외롭고 쓸쓸한 이 노인들에게
유일한 즐거움과 기쁨은 창 밖을 내다 보는 것 이었습니다
하나 뿐이 없는 창가의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는
거동하기 힘든 몸을 일으켜 창밖의 풍경을 설명해 줍니다
그러면 안 쪽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매일 매일 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창밖의 풍경은 새로워 집니다
봄이면 온갖 아름다운 화초와 화사한 꽃들로,싱그러운 들풀이 병실을 채웁니다
또 엄마와 같이 산책을 나온 어린 아이의 손에 들린 풍선과
조그마한 호숫가에서 종이배를 띄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창 밖에는 구름 한점 없는 푸르른 하늘을 나르는 새들의 지저귐,
때론 붉게 타오르는 석양의 장엄이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듣는 안 쪽 침대의 할아버지는
오래 전 고향마을 개울에서 어린 아들과 물놀이 하던 생각이 떠 오릅니다
또 이제는 본 지 오래된 어린 손녀의 귀여운 얼굴이 그려 집니다

어느 날 이 할아버지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바깥 세상을 직접 보고 싶은 욕심을 주체할 수 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거동조차 하지 못하는 데도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밤중에 잠을 깬 할아버지는
창쪽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당연히 신호를 하여 도움을 청해야 하는 데 이 노인은 끝내 외면 하지요
괴로워 하던 할아버지는 마침내 숨을 거두고....
창가 침대로 옮기운 할아버지....

다소 소란하고 부산했던 병실이 진정되고 평상으로 되돌아 왔을 때
이 할아버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윗몸을 일으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기대와 설레임속에 창밖을 바라봅니다
                             .

....창밖에는 차디 찬 세멘트 벽 뿐이었습니다....


0
 

처처와 곳곳에 재난들이 일어나고 있는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주님이 오실 징조들을 보며  주님의 교회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성전을 찾고 신앙으로 단장하며 주님오심을 준비하는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며 분주한 가운데 12 제자를 삼은 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세우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후 이 땅위에 남아있는 제자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겠읍니까 ?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왜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회란 어떤 곳이며 교회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생각해 만?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 성전으로 반드시 찾아 올라오는 것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또 현대가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합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고 모든 성도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찬송과 기도로 마음을 주께 드리며 말씀을 청종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모이는 곳인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행20:28 하반절에서 교회를 샀는데 자기 피로 사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한사람씩 사서 교회로 불렀다 하셨읍니다  이와같이 영적인 차원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계심과 동시에 피로 사신 성도들이 모인곳입니다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사셨기에 거룩한 곳이며 예수님의 권위안에서 모인곳입니다  딤전3:15 하반절에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말씀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소유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에 올라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2)  하나님은 교회를 왜 지상에 세우셨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이 영광을 돌림으로 영광받으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함으로 영광돌리며  (2) 하나님의 집에 올라와 그이름을 구하며 간절한 소원을 아뢰며 기도함으로 영광돌리며  (3)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떡을 공급받는 장소로 떡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거룩한 곳에서 영광을 돌리며  (4) 말씀을 공급받아서 감사함으로 보답하고 표현하는 예물을 드리는 장소로 영광돌립니다  그러므로 지상에 세워져 예배드리기 위하여 성도들이 교회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봉사하는 터전입니다  이 봉사에는 여러가지가 포함됩니다

구원받고  예배드리는 방법을 배워 예배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워가며 신앙생활의 훈련받아 가정과 사회에서 예배드리는 삶을 살며  예수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상처입은 자들을 위로하고 도우며 ,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 구제하는 것 , 선교하는 하는일을 하는 것입니다


3)  교회를 통하여 무엇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본문10절에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 각종 지혜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죄사함과 구원에 대하여 ,  하나님 나라에 가는것과 축복받는 비결의 지혜와 지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알면 하나님의 각종 보화가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비밀이요

계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영생얻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예수님 알기만을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 하지 맙시다  

빌3:18 에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하며 사도 바울은 눈물 흘리면서 말하였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안에서 각종 지혜를 배워 말세에 주님 오실때를 위하여 내 신앙자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4) 나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본문16-19절 말씀이 우리의 자세입니다  성령안에서 속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강건해 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으면 내가 들어납니다

들어난 나를 다듬어 가도록 성령이 지시를 해주십니다  지시에 따라 말씀안에 세우며 뿌리를 박으면 견고하고 튼튼하게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십니다  교회에 대한 바른 관념을 갖고 말씀읽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님을 만나면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게되는 정확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때를  우리는 성경 말씀읽고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며 가르쳐 주시는 대로

신앙생활을 함으로 교회와 내가 든든히 서가며 평강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08/14/07  화요찬양 예배 설교 요약)




당신께 모두 바치오니 / 정유찬 
 
당신을 사랑한 이유로
잠시도 멈추지 않고 
그리움에 애간장이 타오르는
천형을 받았습니다

제가 짊어질 아픔이라면
피하거나 마다하지 않고 
거칠어 가기 힘든 곳까지
당신을 맞으러 갈 겁니다

제게 내려진 숙명적인 방황이
아름다운 천상의 선물임을 알기까지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이해되지 않는 슬픔에
수많은 날을 꿈틀대며 몸부림쳤지요

어리석게 살아와 여린 몸
두려움에 시달려 지친 영혼 
당신께 모두 바치오니
저를 거듭나게 하소서

이제 아픔을 지난 모습으로 
긴 잠에서 깬 맑은 영혼으로
아득하기만 했던 당신께 다가가
그 품에 영원히 안기오니

날마다 저를 
새롭게 하옵소서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는...  (0) 2008.11.22
신앙에 대한 단상  (0) 2008.11.16
내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  (0) 2008.11.15
나사못과 금화  (2) 2008.11.15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2) 2008.11.13
 내 아버지께서는
 

 

'불가능합니다'라고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눅 18:27)라고 하십니다.


'너무 지쳤어요' 라고 하면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마 11:28-30)라고 하십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라고 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리라'(요 13:1, 요15:9)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못해요' 라고 하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리라' (고후 12:9)라고 하십니다.


'앞이 캄캄해요' 라고 하면
'내가 너의 발을 인도하리라'(잠 3:5-6)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가치가 없어요' 라고 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가치가 있다'(롬 8:28)라고 하십니다.


'저는 제 자신을 용서 못해요' 라고 하면
'내가 너를 용서하리라'(요일 1:9, 롬 8:1)라고 하십니다.


'너무 힘들어서 헤쳐나갈 수 없어요' 라고 하면
'네 모든 필요를 채우마'(빌 4:19)라고 하십니다.


'저는 항상 걱정이 많고 좌절해요' 라고 하면
'너의 염려를 내게 맡기라'(벧전 5:7)라고 하십니다.


'너무 외로워요' 라고 하면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리라'(히 3:5)라고 하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옮긴글-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에 대한 단상  (0) 2008.11.16
당신께 모두 바치오니/정유찬  (0) 2008.11.15
나사못과 금화  (2) 2008.11.15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2) 2008.11.13
동행/플래시  (0) 2008.11.12
0


저희 공장에는 여러 종류의 연장(Tool)이 있습니다
그 중에 요즘 제가 긴요하게 쓰는 도구가 하나 있는 데,주로 견본재단용(Sample Cutter)으로 쓰이는 연장입니다
이 Tool 에는 아주 조그마한 나사못(Screw)이 2개가 있는 데 그 크기가 너무 작아 나사를 조이고 푸는 데 쓰는 Screw Driver 를 구하기가 마땅치 않을 정도 입니다
안경테와 다리를 잇는 곳에 쓰이는 나사보다 약간 큰, 그런 나사못입니다
이 나사못이 연결하여 주는 부속이 중요해서 이 나사못이 빠지면,없어지면, 이 연장은 당연히 쓸모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자리를 비울 때에 대신 일할 일꾼에게 그 중요성(?)을 숙지시켜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돌아오자마자 그것부터 확인했을 정도이니까요
그런데 며칠 전 일을 하며 나사못이 빠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새것을 하나 장만해야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간수를 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들더군요
그런데,몇시간 후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그 나사못을 발견했습니다
각종 천조각과 실타래,먼지투성이인 공장바닥에서 좁쌀만한 나사못이 눈에 보일 때에 그 반가움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었습니다
마침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 데(잃은 것조차 아는 사람은 없었지요)...떨어 진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찾아 가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었습니다
순간 제 머리속을 스치며 드는 생각은...성경에 있는,금화를 찾은 어느 여자의 기쁨이었습니다
금화를 잃은 여자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의 팔레스타인 농가는 창문이 없던 지,있어도 아주 작은,직경 18인치 정도의 창문하나로만 빛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마루는 흙바닥에 마른 갈대와 풀을 깔았는 데,이런 곳에서 금화(드라크마)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누가복음15장에는 먼저 잃은 양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금화의 비유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가 뒤를 이어서 나옵니다
동전은 생명이 없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며 잃어버린 양이나 탕자처럼 청하는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집으로 돌아 갈 수도 없습니다
당시 금화(드라크마)에는 거북이나 왕들,그 나라를 상징하거나 군주의 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귀중한 형상이 새겨진 금화라 할찌라도 찾지 않으면 먼지와 암흑속에 파묻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세상속에 머물러 있는,잃어버린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
주위에 잃어 버린 금화처럼 어두움속에 있는 영혼은 없습니까?
아니,내가 버려 진 금화는 아닙니까?
잃어 버린 인간을 찾기 위해 수고와 고통을 아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사랑의 하나님은 찾도록 부지런히 찾을 것입니다
불을 켜고 집을 쓸며 마침내 찾아 내실 것입니다
 
 
         " 찾은 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눅15:9)
 

글: 김만니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께 모두 바치오니/정유찬  (0) 2008.11.15
내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  (0) 2008.11.15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2) 2008.11.13
동행/플래시  (0) 2008.11.12
바울의 마음  (1) 2008.11.11

우리가 아는 대로 지난 화요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돈이 엄청나게 많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공황당의 노련한맥케인후보를 제치고, 이름도 없던 민주당의 젊은 후보, ‘오바마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Point  Mccain 163,  Obama 349)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건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야 여러가지가 되겠지만, 가장 교훈을 꼽으라면, 필자는 이번일로 인해서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된다고 하는 신념과 꿈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심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미국은 아직도 꿈의 나라로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앞으로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를 논하는 것은 정치가들의 몫이요, 사람의 일반시민이요, 크리스챤인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오늘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바마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대표적 인물이요, 거듭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거는 기대치를 높이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로, 그의 지나온 과거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대통령선거가 한참 치열한 때에, 필자는 CNN 뉴스에서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살아온

삶에 대해서 기자들과 대담을 갖는 것을 경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바마는 흑인

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0살이 때까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자랐습니다  10살때 한번 만나본 아버지는 다시 그의 고향인 케냐로

돌아갔고,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젊은 그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해서 오바마곁을 떠났습니다., 졸지에 홀로 남게   그를 백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맡아서 키웠습니다  다행히 그는 머리가 좋아서 하와이에서 최고 수재들만 어간다는 사립학교푸나호 들어가긴 했으나, 시만 해도 그곳에는 다수가 돈많은 집의 백인 아이들이었습니다  (Punahochool:: Hawaii에서 전통있는 명문사립학교로써 옛날 왕족들만을 위해서 세운 학교임)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그만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체성을 잃은 그는 끝내 마약에까지 손을 대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났고 대학교에 가서( Occidental) 그의 삶은 완전히

뀌어졌습니다. 뉴욕에 있는콜롬비아 대학하바드 법대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젊은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죽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기 하루 , 월요일 , 어린 그를 맡아서 길러주시던 그의

외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아픔과 역경을 딛고 당당히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일로

인해서 미국은 지금 흥분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가 아브라함 링컨을 연상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브라함 링컨은 흑인은 아니지만, 그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대통령이요, 흑인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써, 아브라함 링컨 역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비교할 하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1900년대에 경제 공황을 이기고 승리한 미국의 26 대통령 이였던

루즈벨트 기억합니다. ‘루즈벨트’ (Theodore  Roosevelt) (1858-1919)대통령은
어릴 소아마비를 앓고 휠체어가 없으면 걷기조차 힘이 지체장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고, 그가 대통령이 , 남긴 멋진 연설은 경제 대공황에 빠져서 허덕이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안정시키고 국민에게 새로운 새로운 꿈과 비젼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우리가 가장 두려워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입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환경이나 주어진 조건만을 바라본다면 가장 먼저 죄절할  밖에 없는루즈벨트대통령의  말은 모든민들의 마음에 하면 된다고 하는 도전의식과 뜨거운 열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다시 힘을 얻은 모든 국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일어서서 열심히 일을 댓가로 미국은 세계에서 경제대국이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획득해 내었다고 봅니다.

 

세상은 지금 전쟁과 기근의 소문, 경제의 어려움, 이런저런 암담한 소식만 들려옵니다.

이제 미국과 세계는  다시금 어려움에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때에 먼저 믿는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고 담대한 믿음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다음에 일어서서 굳세게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이방인들과 악조건의 환경이

여러분과 앞에 굴복을 것입니다. 요셉의 두형님들이 요셉앞에 무릎을 꿇게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내가 그리스도인이란 정체성을 먼저 회복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우리 성도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의연히 일어서서 일해야 때입니다.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활을 감당해 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소금의 맛을 잃은 자들이요, 밖에 버리워져서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입니다. 이렇게, 성도라는 자기 정체성을 그리스도안에서 확고히 해두 아니하, 어려운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고, 나아가서는 자살이라고 하는 마지막 보루마저 스스로 무너트리는 어이없는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시금 그리스도 안에있는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고 분연히 일어나지 아니하면 이방인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짓밟을 것입니다!  경제 난국이다, 말세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언제까지 서로 반목하며, 개탄하고, 시커멓게 몰려오는 태풍만을 바라보고 두려워 떨면서 뒤로 물러가기만 하고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잃고 방황했을 , 흑인이라 괄세받고 천대 받던오바마’, 부모에게 마저 외면 당했던오바마’,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 모든 악재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히 나갈 수 있었고, 그럴 때, 세상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고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의 정체성을 먼저 찾고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입니까?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자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내가 깨달아야할 우리들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의 피로 값주시고 자신의 아들과 딸을 향해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41:10하반절)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들인오바마 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동등한 신분을 가진 여러분과 나도 있습니다!  

 

 최송연/사모

 

0
 

주여,
내 마음에
행복의 문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시면
불행으로 우는 자들에게
당신의 그 행복을
나누어 줄 수가 있겠습니다.

주여,
내 마음에
사랑의 문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게 아픔을 주는 자들에게
당신의 그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가 있겠습니다.

주여,
내 마음에
용서의 문을 열어주소서
그리하시면
내 앞길을 가로막는 자들까지도
당신의 그 넓은 관용으로
품어 줄 수가 있겠습니다.

주여,
내 마음에
용기의 문을 열어주소서
그리하시면
두려워 떠는 자들에게
당신의 그 평강으로
복빌어 줄 수가 있겠습니다.

주여,
내 마음에
소망의 문을 열어주소서
그리하시면
낙심하여 우는 자들에게
소망의 밝은 빛을 나누어
줄 수가 있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주께서 마음 문을 여시고
채워 주신 것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나누어 줄 수 없는
이기적 존재임을 당신 앞에 고백합니다.


별똥별/최송연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사명자의 고백  (2) 2008.11.21
아침이슬 같은 주의 사랑  (2) 2008.11.19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2) 2008.11.12
그리운 내 친구야  (2) 2008.10.24
가을 나무  (0) 2008.10.09
시편 136편은 다윗의 고백이며 찬양이며 모든 성도들의 고백이어야 할줄 압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전심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요? 성경의 표현 가운데 '모든것의 모든것 되시는 분' 이 아마도 시편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것에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이라는 고백을 자주 합니다.

절망과 두려움과 낙심으로 방황할 때 시편이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되어지는 시간속에서 가장 작고 연약해졌을 때 붙들었던 말씀들이 시편입니다. 시편 1편과 18편과 23편을 암송하면서 그 기나긴 시간들을 헤엄쳐 왔습니다.

다윗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믿음에 놀라면서 도전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러움을 넘어서서 시샘까지 할 정도로 그의 신앙과 믿음에 탄복하곤 합니다. 어린 소년 때부터 부모와 형들의 무관심과 무시속에서 그는 빈 들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면서 아버지의 양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얼마나 그가 가정에서 소외 되었었는가 하면 사무엘이 제사하러 왔을 때 다윗은 홀로 양들을 지켜야 했었고 형들은 멋진 옷을 차려 입고서 사무엘에게 나아간 것입니다. 후에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이 또 없는가 묻자 마지못해서 지금 양을 치고있는 막내아들이 있다고할 정도 였습니다. 형들과 부모의 관심에서 없는사람 취급을 당했었던 다윗이 그의 심경을 이렇게 고백 하였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시27:10)

그리고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아서 도망을 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내 미갈을 뒤로하고서 그의 모든 신분을 내려 놓고 목숨을 위하여 밤중에 정신없이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기 위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까지 했지만 미친척 하며 겨우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할 수 없는 막다른 곳인 아둘람 굴에까지 갑니다. 동굴속으로 들어가서 숨어야 했었던 다윗에게 누가 찾아왔는가 하면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아둘람 굴 속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러자 형들과 온 집안이 그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모두 다윗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삼상 22:1-2)

다윗 혼자서 도망치고 살길도 벅찬대 별로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이 달려 온것이 아니라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빛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모두 몰려온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적으로 볼 때 소외되고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쓸모없는 실패자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어찌본다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어부들을 제자삼으신 것처럼 사람들이 볼 때 한심한 모습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을 부으시고 택한 종을 그렇게 어려운 막다른 길로 몰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본성대로라면 정말 훌륭하고 멋진 스폰서나 든든한 배경과 재정적인 능력이 출중한 후원자를 만나게 해서 힘있게 큰소리 치며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 소원이 있겠지만 현실은 그런식으로 풀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여라도 하는일 마다 맥이 빠지는 어려움을 당하시는 믿음의 사람들 있으시다면 용기를 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행하심과 일하심이 얼마나 기이하고 신묘 막측한지를 다윗이 경험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시편이 얼마나 당연한 기록이겠습니가? 다윗의 시편을 자주 묵상하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136편은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아멘. 주님께 감사하라는 고백입니다. 시작이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일까요?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영원하시므로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만일 주님께서 영원하신 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영원하시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힘이며 능력이며 소망이며 은혜인지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대한 다윗의 찬양입니다. 오늘은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요.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모든 주 가운데 가장 크신 주님께 홀로 큰 기적을 일으키신 분께  지혜로 하늘을 만드신 분께 물 위에 땅을 펴 놓으신 분께 낮을 다스릴 해를 지으신 분께 밤을 다스릴 달과 별을 지으신 분께~~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신 분께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시는 분께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송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감사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원수라면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형벌이며 그보다 더 큰 저주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가끔 듣는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패하거나 범죄할 때 강력하게 막으시지 않으시는가? 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고 은혜안에 들어 왔을 때 지난날의 실수와 허물을 말하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눌 때 그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 당시 내가 악한 영의 속임과 유혹에 속아서 그만 죄 가운데 있었는데 다시 회복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그 때 잡아주시거나 막으셔서 사단에게 속지 않게끔 하시지 않으셨을까하는 약간은 서운한 질문을 해옵니다.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범죄와 타락한 문화가 범람 하는것을 보면서 자주 생기는 의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냥 보고만 계셨을까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사건들을 보면서 인간의 죄악들을 목도하면서도 어떻게 사람이 그럴수가 있을까 하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으로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간섭하시고 심판하셨다면 도대채 지금 살아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를 말입니다.

우리는 명백하게 범죄하는 사람들과 단체와 국가를 구별합니다만 그들이 어떠한 형식으로든 몰살당하거나 망하는것을 쉽게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지금도 지구촌에서는 쉴 사이 없이 전쟁과 살인과 약탈과 기아와 굶주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을 즉각 즉각 하셨다면 벌서 인류는 멸망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오래 참으심 때문에 베드로 사도가 언급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벧전3: 8~10)

우리가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할 분은 하나님 한분입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다윗의 삶을 보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무리 조건과 환경이 뜻대로 되어지지 않더라도 결국 승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견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음으로 견딘 믿음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최고의 최상의 찬양과 고백이 하나님께 감사함입니다.

다윗의 어마어마한 감사의 찬양을 들으면서 다시금 잃어버렸던 감사를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범사에 감사함을 말입니다. 감사할 이유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주님때문 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절망적이고 불편하고 낙심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입술에서는 바로 주님때문에 주님의 선하심 때문에 주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 때문에 그 주님께서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임을 감사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글: 빈의자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  (0) 2008.11.15
나사못과 금화  (2) 2008.11.15
동행/플래시  (0) 2008.11.12
바울의 마음  (1) 2008.11.11
사랑하기 때문에  (2) 2008.11.10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주세요.
부디 미소 때문에, 미모 때문에,
다정한 말씨 때문에,
또한 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런 날엔
내게 편안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저 여인을 사랑한다고는
정말이지 말하지 마세요.


이런 것들은, 님이여!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을 위해 변하기도 해요.
그처럼 묶인 사랑은
그처럼 풀리기도 해요.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사랑 어린 연민으로도
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으면
울음을 잊게 되고,
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잃을지도 몰라요.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주세요.
언제까지나 당신의 사랑을 누리도록,
사랑의 영원을 통해.”


영국의 여류시인 브라우닝은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이란 제목 아래
조건적 사랑이 주는 아픔을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 속에서 우리는
'때문에'의 사랑이 주는 허무함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며
조건적인 사랑은
그 조건이 채워지지 않으면
퇴색되고 마는 사랑입니다.
 
세상에서의 사랑도 그러하거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맺어진 형제 자매를 진정 사랑한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하는
우리들의 사랑마저
조건적 사랑으로 변질하여 가는
가슴 시린 현실에
종종 부딪히게 되는 것은 또 어쩐일까요...
 
우리 주님의 아카페적인 사랑이
더 없이 귀한 것은
그 사랑은 변질하지 않고
퇴색하지도 않으며
 나의 아픔도, 슬픔도
나의 모자람까지라도...
감싸 안아주시는 사랑...

영원에서 영원까지 이어지는 사랑,
불멸하는 사랑이기에... ...


오늘도 이 아카페적인 주님의 사랑으로
나의 빈 가슴을 가득히 채워주시기를...
두손 모아 기도드려 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이슬 같은 주의 사랑  (2) 2008.11.19
마음의 문을 열어주소서  (2) 2008.11.13
그리운 내 친구야  (2) 2008.10.24
가을 나무  (0) 2008.10.09
죽음의 문턱  (2) 2008.09.17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사못과 금화  (2) 2008.11.15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2) 2008.11.13
바울의 마음  (1) 2008.11.11
사랑하기 때문에  (2) 2008.11.10
한남자  (0) 2008.11.08
0


본문(롬1:8~13)에 나타 난 바울의 마음의 하나는...
1.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8절)
성도들의 믿음에 관심이 있는 바울에겐 로마 성도들의 믿음이
 온세상에 전파되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2.쉬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9절)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며,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바울은
그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하나님께 기도로 표현하였습니다
자녀를 위한 최고의 사랑표현,최선의 방법은 기도입니다
목회자의 양떼를 향한 최고의 사랑은 그들을 향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복음의 진보가 있게 하시고,
견고하여 요동이 없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는
모든 영혼을 향한 목회자들의 공통된 기도일 것 입니다

3.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11절)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간절히 보기를 원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그들을 견고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그들 중에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A.D.57년 경 제3차 선교여행을 끝 마칠 무렵,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쓴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와 무한한 자비를 이해하게 하며,
이 은혜와 자비가 너무 놀랍고 모든 사람에게 조건없이 주어진...
이 복음을 사랑하는 로마성도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성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과 뜨거운 열정,관심이 이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최고의 편지(선물)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편지(선물)를 받은 우리들...답장을 쓰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1. 하나님께 감사하는 편지를 씁시다
 미물만도 못한 나를, 이 세상에서 사랑할 대상이 하나뿐 인 것 같이
사랑해 주시니,감사합니다

2.내 평생에 기도를 하겠습니다
...내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시116:2)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자비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는,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하겠습니다

3. 주님,보고 싶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재림의 주를 맞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의 일을 힘쓰고
           썩을 장막 떠날 때에 주의 얼굴 뵈오리
           빛난 하늘 그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로마서 강해설교중 오늘 주일 설교 말씀 요약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말썽꾸러기 아들을 위해,
도시락과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구절이 쓰인
편지를 넣어 주신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내일, 아들과 조카 딸의 샌드위치와 함께...
사랑한다! 수고한다! 네가 자랑스럽다! 라는 글을 써 보내렵니다

누군가에게,배우자에게나,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자녀나 부모에게 편지를 쓰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표현되어야 합니다

글/김만니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2) 2008.11.13
동행/플래시  (0) 2008.11.12
사랑하기 때문에  (2) 2008.11.10
한남자  (0) 2008.11.08
히스기야의 기도  (0) 2008.11.08

 

    심리학자 젤린스키는 걱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나 일에 대한 것이고,

    걱정의 22%는 안 해도 될 사소한 것이고,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고,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걱정해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청교도들의 7가지 감사의 조건에서 나는 큰 힘을 얻습니다.


    첫째,    180톤 밖에 안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셨음에 감사.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

    넷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져 나갔으나 배가 파선하지 않았음을

                감사.

    다섯째, 여자들 몇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되었음을 감사.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

    일곱째,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단 한명도 되돌아 가자고

                고집하는 사람이 없었음을 감사.


    또 구약 성경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환란과 역경속에서도

    하나님 한분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언제나 즐거운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건강에 어려움, 가난의 어려움,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이웃과의 갈등 등등...

    각가지의 어려움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어려운 현실에만 내 시선을 너무 집중시키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고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 예수님에게

    내 시선을 집중시킬 수만 있다면 ,

    우리도 여호와 한분만으로 즐거워하는 마음이 항상 넘칠 수가

    있음을 믿습니다! 이런 감사야 말로 차원이 높은 감사입니다.


    이 아름답고 복된 추수절기에 우리도

    우리 믿음의 조상들처럼 '아무것도 없고, 없고, 없을찌라도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분이 내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노래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의 감사수준으로

    내 신앙을 끌어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최송연/사모



A Saint Who Steps Up and Stands Through Difficulty(Isaiah 41:8-16) 

 

As you know we had a presidential election last Tuesday and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the U.S.A., a black man was elected president.  (Electoral votes: McCain 163, Obama 349)  I’m not interested whether he will do well or not in politics, but my wife and I had a chance to see presidential candidate Obama’s conversation about his past life experiences on CNN News a few days ago.  Now that he is elected president and I reflect on his life, I think he is one who represents many who step and stand through adversity.  He was born from a marriage between a black father and a white mother but he never saw his father until he was 10 years old.  However after this his father left for Kenya and then at the age of  young his mother died of cancer.  He was raised by his mother’s parents, his grandparents, who were white.  It was during this time that he went to Punahou school (located here in Honolulu) where the majority of the students are white.  In this experience, he lost his identity and even experimented (tried, dealt) with drugs.  He said some how he met Jesus Christ and was completely changed in newness at the college he attended (Occidental College). 

As I listened to this (story I realized) the difficulty in men’s lives can be rather good in the Lord.  We see in today’s text, God says for us not to fear.  Nowadays in this world we hear the rumor of war, famine, difficulty in the economy, and all kinds of dismal news.  However, the Lord says to us, “Fear not, for I am with you.” (Isaiah 41:10A)  Therefore today we receive grace from a sermon titled “A Saint Who Steps Up and Stands Through Difficulty.”  May the grace of God fill your hearts and minds.

 

First, we must believe and trust that God is with us.  God is almighty.  Why do we fear when the Lord of Hosts is with us?  Verse 10 in today’s text says, “Fear not, for I am with you.”  What does this mean?  This doesn’t mean that we have no tribulation, it means even in tribulation God is with us, therefore have faith and do not fear that tribulation.  In Deuteronomy 32:11 we see, when God was leading His people out of Egypt, God put them on His back and crossed as an eagle carrying its young on its wings.  God trained His people 40 years in the wilderness as an eagle trains its young (Deut. 8:1-6).  An eagle is a strong bird with strong wings and has an eye that can see far and watches the land from high in the air.  An eagle always makes its nest in a high cliff or a tree that is on the edge of a high cliff.  She lays her eggs in it and waits and then feeds her babies for sometime while they grow.  When the babies are grown enough the mother eagle brakes up the nest and pushes the babies out of the nest.  The baby eagle falls to the ground in surprise.  As mother is watching she flies quickly and spreads her wings for her baby and flies high up in the air with it.  Then she turns upside down and drops her baby, she does this repeatedly until her baby becomes strong and learns to trust that the mother is with it and it does not fear anything as it learns to be bold.  Its wings gain strength and later on it becomes a most strong and fast bird among all the birds of the world.  We saints are the same way in our life.  One who believes that almighty God is with him will not fear no matter what difficulty, trial, or adversity may come.  Why is this?  It is because in the process of training he believes that God will help him to be a strong and mature Christian.  I believe we must always believe, with a strong and courageous mind, that God is with us.

 

Secondly, we must understand the trials we face mature us in our faith and character.  Those who have gone through many trials are matured in their personality and have a pure heart and are not drown in dangerous self-illusions.  They rather follow after Jesus.  Jesus was complete from the beginning and grew up as a man.  Luke 2:52 says,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He was a complete man with intellect, emotion, and will.  Intellect: is to know God (knowledge of God).  Emotion: is the heart to love human life.  Will: is to bear as Jesus Christ did even till death on the cross.  In Philippians 2:5 it says, “Let this mind be in you which was also in Christ Jesus.”  I give you Joseph in the Old Testament as an example.  Joseph was sold by his brothers when he was of a young age.  He had so many difficulties and wounds as a slave in Egypt.  However, it was because he trusted God that he matured beautifully in his faith and character.  So he was able to show mercy to his brothers and forgive their sins.  He became a mature Christian.  In Genesis 45:3A it says, “Then Joseph said to his brothers, "I am Joseph; does my father still live?"”  (45:4B-5)  “I am Joseph your brother, whom you sold into Egypt.  But now, do not therefore be grieved nor angry with yourselves because you sold me here; for God sent me before you to preserve life.”  How religious he is before God and how mature before his brothers!  This kind of adversity is a tool that will mold and shape our faith and character by making us grow.  The adversity is not good but through it I believe we become more beautifully blessed.

 

Thirdly, we need to believe God who helps us and gives us strength.  In Isaiah 41:10B it says, “I will strengthen you, yes, I will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God is the God of help providing help to us.  God is our power and He strengthens us.  We see in today’s text it says, “I will . . . you, I will . . . you, I will . . . you.”  This word ‘you’ is not plural but singular.  Therefore God is my God and your God and our personal Savior and Lord.  God’s Son, Jesus Christ, not only saves individual’s souls, but also saves nations which believe in the salvation of God.  As long as we believe in God, I believe the U.S.A., where we live will never be destroyed.  As you well know in the past there was this kind of difficult time.  For example, there was the Great Depression in 1930.  At that time, 1800 banks claimed bankruptcy and closed their business.  The rates of unemployment rose to 50 percent.  Everyone was anxious and thought in their mind that if this continued it may cause the end of capitalism.  It was much more difficult than today.  Do you know who the president was that saved the nation from this crisis?  It was President Roosevelt.  He was lame from infantile paralysis (Polio) so he used a wheelchair to get around.  He gave a famous speech during his inaugural address and said that,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that is to say a fearful heart.  I believe that faith in God will cast out fear in our hearts.  I believe those in Christ should not have fear.  God saved Daniel from the lion’s den.  God saved Shadrach, Meshach, and Abed-Nego from the fiery furnace.  God strengthens and keeps His people who trust Him.  Beloved saints!  When you were young you experienced stomachaches.  At that time your mother or grandmother might have rubbed your stomach with a warm hand saying, “Tummy, tummy get better, my hand is a medicine hand.”  Then amazingly your tummy felt better and you fell asleep.  Did you have that experience?  Then how much more is our God’s hand able with great power?  Our God’s hand is a powerful hand, holding up the universe in His hand.  It is the same hand which bled on the cross for our sins.  The Lord’s hand is a hand of power.  Whenever His hand touched those who were about to die they came back to life just like the daughter of the synagogue ruler Jairus.  When our Lord’s hand touches, the blind open their eyes and the deaf open their ears.  The Lord’s hand is the hand that orchestrates history.  With a powerful hand He holds us, you and me today. 

The one who believes this will not fear but will receive strength among the trials.  I believe as much as we meet the time of difficulty, we must have more faith to trust God.  Romans
8:28 says,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to those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I believe today’s difficult tribulation will be changed into blessings for good.  Our U.S. is a nation which believes in Jesus Christ.  I believe the U.S. will go through this difficult crisis that will bring great blessings and it will become a stronger nation.  I believe you and I will become saints who are held by the Lord’s hand and will overcome and win over this difficulty.  God’s grace be with your hearts and minds.

By: Rev: Samuel Choi

내 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십니다
 

0
  

단단한 곡식은 부서져야 빵이 됩니다
포도는 잘게 부서져야 포도주가 됩니다
향수도 잘게 부서짐을 통하여 만들어 집니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잘게 부서져야
소화되어 영양분이 됩니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추려면
반드시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부서짐의 정도가
성숙의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면 시골에서
도리개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두어들인 곡식을 앞마당에 펼쳐 놓고
사정없이 내려칩니다
'왜 때려' 곡식들의 신음소리에도
 '이제 그만 좀 때려' 곡식들의 저항소리에도
 농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려칩니다

하지만 아프라고, 미워서 때리는 게 아닙니다
껍데기를 벗겨내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여
더 잘게 부수기 위함입니다

농부이신 내 님도
나에게 도리개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나는 너무 아파
'왜, 나만 때리냐고?' 불평도 합니다
'이렇게 힘들어서야 누가 믿겠느냐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그래도, 내 님의 도리개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도리개질의 세기가 사랑의 깊이입니다
더 많이 부서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깨어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죽으라고 하심입니다
왜냐하면
부서져야 사용하시고
부서진 만큼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보통 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달군 쇠를 적당히 두드립니다
그러나 귀한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슬땀을 흘려 가며 두드리고 또 두드려댑니다
대장장이의 두드림 소리는
나를 향하신 내 님의 마음입니다

내 님 오실 날 알곡 되게 하시려고
내 님오신 날 더 귀하게 쓰시려고
나의 신음소리에 외면하신 채
두드리고 내리치고 밟고 깨뜨리고
상하게 하고 거절 당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고 수치를 당하게 하고 비참하게 만들어
결국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심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살고
버림을 통하여 얻고
부서짐을 통하여 알곡 되고
깨어짐을 통하여 쓰이고
포기함으로 소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루만 죽어서는 안 됩니다
한번만 죽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내 님 때문에 내 님 위하여 내 님과 함께
부서지고 깨어지고 죽어야 합니다

나의 삶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내가 날마다 살고자하기 때문입니다
불쑥 불쑥 혈기가 나는 것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주체할 수 없는 원망과 짜증으로 시달리는 것도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감으로 우울해지는 것도
덜 깨어져서 그렇습니다
덜 부서져서 그렇습니다
덜 죽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서지게 하심은 쓰시기 위함이며
깨어지게 하심은 익히시기 위함이며
죽으라 하심은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내 님이 그렇게 하심은
그만큼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똑바로 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걷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믿게 하심입니다



오늘 새벽
 내 님의 사랑에 목이 메고 눈물 겨워
그분 가슴에 얼굴을 살포시 묻고 고백합니다
                    이전보다 당신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Julia Kim
                        인도에서 보내어온 詩

찬양곡 바이올린 연주곡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행/플래시  (0) 2008.11.12
바울의 마음  (1) 2008.11.11
한남자  (0) 2008.11.08
히스기야의 기도  (0) 2008.11.08
예수님 때문에  (0) 2008.11.07

0


며칠 전부터 아래 어금니가 살살 아프기 시작을 하더니 갈수록 더 많이 아픈 것이
어쩐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료나 한번 받아 볼 생각으로 늘 다니던 치과 의를 찾았습니다. 담당 의사가 X-ray를 찍어보더니 치석이 생겼다고 치료를 해야겠다고 합니다. 전에도 몇 번 치석이 생겨서 긁어내고 봉을 씌운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면서 간단한 마음으로 의자에 누웠습니다.

 

한참을 긁어내고 치료를 하더니 다시 봉을 한 후 끝마쳤습니다... 나는 간호사가 주는 물로 입을 대충 헹군 후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하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의 인사에 대답하는 대신 “벌레가 너무나 깊이 먹어서 신경을 죽이고 다시 치료를 해야겠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별로 심하게 아픈 적도 없었는데…, 신경까지 뽑아야만 한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돈도 걱정이었지요. (이곳 (미국)은 치과 보험이 있어도 신경을 뽑는 데만 약 $1000.00(한화 약 백만원)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이 하라시니 할 수밖에씁쓸한 마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경전문 의사에게 예약하고 신경을  뽑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늦게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신의 치아상태를 이야기하는데 신기하게도 나와 꼭 같은 증세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집사님, 저도 이번에 신경을 뽑아야
한다네요.
그랬더니 사모님,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second opinion을 받아 보셔야 합니다. 하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목회자인 것을 담당 치과 병원 내의 모든 직원이 다 알고 있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덕이 안될 것 같다고…, 될 수 있는 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을 해 드렸습니다. “아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재진단은 반드시 받아 보아야지, 사모님은 돈이 그렇게나 많으세요? 그리고요, 돈도 돈이지만 한번 신경을 죽인 그 치아는 얼마 오래가지 못 한 데요. 하면서 하두나 졸라대는 통에 마지못해 그저 반강제로 끌리다시피 하여 집사님이 잘 아신다는 그 치과엘 한 번 더 가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약속된 날에, 그 의사의 사무실에 발을 드려 놓는 순간, 갑자기 내 안에서 세미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괜찮다. 조용하나 아주 단호한 음성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안된다고 하는데요, 주님?

나는 다급할 때마다 들려주시던 성령님의 음성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내가 좀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경을 죽이고 봉을 하는 데는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내 마음이 말이 되어성령님의 말씀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니깐요.


그래요. 주님, 만약 이 의사선생님의 진찰결과 신경까지 죽일 필요가 없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옆에 같이 간 남편에게도 자신 있게 말해 주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더,  너는 괜찮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사가 혹시 신경 의에게 갈 필요가 없소. 하는 말이 나오려나…, 잔뜩 긴장과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진찰을 마친 의사는 진단 결과로는 확실치 않으니 신경전문 의에게 가보셔야겠소. 라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들으셨지요? 의사가 안된다잖아요, 주님.  하고 성령님께 내가 옳았다는 듯 성령님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다시 내 마음 속에서 너는 괜찮다. 짧으나 아주 단호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님, 정말 당신이세요?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

 

이튿날, 저는 약속한 시간에 신경전문 의사를 찾았습니다. 신경전문 의사는 다시 X-ray도 찍어보고 몽혼을 하고 미리 봉해놓은 자리를 긁어내는 등 여러가지 정밀 조사를 끝마친 후, 당신의 치아와 신경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벌레먹은 자리만 다시 긁어내고 덮어씌워 주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사는 안된다고 했는데주님, 정말 당신이셨군요.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감사의 눈물이 두 볼에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할렐루야! 작은 것 하나까지라도 잊지 않으시고 챙겨주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7말씀)

 




 

최송연/사모


'신앙간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으신 하나님(2)  (2) 2009.02.11
좋으신 하나님(1)  (0) 2009.02.1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 2009.02.05
하나님과의 인터뷰  (0) 2009.01.15
"나, 무서워서 못가!"  (6) 2008.11.25
주제: 비평 학자들은 민수기가 모세의 사후 수세기 동안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모세가 기록했을 수 있는가?

본문: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제 이년 이월 일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1)

성경 비평 학자들은 민수기만 아니라 소위 우리가 모세의 오경으로 부르고 있는 구약의 첫 다섯 책들을 모두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세 오경이 J. E. D 그리고 P와 같은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모세 사후 오랜 기간에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J는 주전 10세기, E는 주전 9세기, P는 주전 6세기 그리고 Ps는 더 후대로 본다.  JE는 아마도 모세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옛 전통을 담고 있다고 보나 P는 크게 과거에 대한 이상화의 기록으로서 믿을만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법이나 제도들도 모세 시대가 아니라 아주 후시대에 기록된 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별히 민수기는 상대적으로 초기 J와 E의 혼합체로 보며 또 아주 후대의 P와 Ps자료의 혼합이라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자료들은 그 마지막 작업이 주전 5세기경이었을 후대 편집자들에 의해 합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민수기의 후대 저작설이나 오경의 후대 저작설은 하나의 가설에 근거한 것이다.  더구나 민수기의 내용이 초기 저작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민수기 1장과 26장에 나오는 인구조사의 목록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마리 본문(Mari)과 옛 에집트 왕국의 문서들 그리고 고전적 자료들에서 발견된다.  지파의 지도자들에 대한 이름들은(1:5-15)  그 형식에서 주전 2000년대의 특성이 있다.  이스라엘이 진을 친 것은 주전 13세기 람세스 II(Rameses) 때에 것과 유사하다. 등대에 대한 설계(민 8:)는 그것이 후기 청동 시대에 온 것을 보여준다(15-13세기).  나팔들은 애굽에서 전쟁이나 제사를 위해 사람들을 소집하는데 쓰였다. 장식이 달린 옷들(민 15장)은 중기 2천년 대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들에서 사용되었다.  에돔에 대한 편지의 문체와 형식은 2천년 대의 외교문서와 유사하다(민 20장).  

구리뱀(민 21장)과 장막 제단은 12세기에 미디안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음이 팀나(Timma)에서 발견되었다.  민수기에 있는 발람에 대한 내용이나 언어 그리고 다른 시들은 초기 저작을 시사해 주고 있으며 매매 계약은 초기 왕조시대보다 늦지 않다.  민 28-29장에 제물에 대한 규례들은 우가릿(Ugarit)에서 온 14세기 의식적 달력을 닮았다. 그리고 민수기 34장에 규정된 가나안의 경계들은 주전 15-13세기의 문서들에 있는 가나안에 대한 애굽 지방의 것들에 일치된다⑴.   따라서 이상의 증거들은 민수기가 모세의 저작이라는 정통적인 견해를 부인할 수 없게 한다.
그밖에 민수기가 모세의 저작이라는 사실로는 다음과 같은 증거들이 있다.

  1. 모든 기록된 증거들이-시간, 장소 또는 그 시대의 관습들-목격자 모세의 기록임을 반영해 준다.
  2. 민수기 자체가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1:1; 33:2).
  3. 민수기에서 인용한 신약의 구절들이 모세의 글로 말씀하고 있다(행 7장, 13장, 고전 10:2-8; 히 3:7-10).
     만일 모세가 민수기를 쓰지 않았다면 영감된 신약의 책들은 오류가 있는 것이 된다.
  4. 주님께서 민수기에서 인용하셨고 광야에서 뱀을 든 자가 실로 모세였음을 증명하시었다(요 3:14;
     참고, 민 21:9)⑵.

  그러므로 우리는 민수기가 모세의 저작이라고 확신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다르게 쓴 것이 문서상 자료의 차이에서 온다는 비평 학자들의 주장은 하나의 가설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다른 이름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른 품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주
   1. Gordon J. Wenham, Numbers(Downers Grove: IVP.1981), pp.21-24
   2.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95



글/서춘웅 목사님
0

한남자


한 남자가 있었네

그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었지 갈릴리 바다가 고향이었어

그는 바다를 사랑했네 바다에서 삶을 일구고 그 바다가 전부였네

고기잡는게 일이고 취미였고 놀이였다네 그는 그것외에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네 할수 있는게 없었지



그러던 어느날

시몬은 한 남자를 만났었네

그를 본 순간 시몬은 그 발아래 무릎을 꿇었지

난생 처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네 한번도 이런일이 없었는데

왜그런지 그 앞에서만은 작아지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네



그를 진짜로 좋아했다네

그가 없는 시몬은 상상도 못했었지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였네 그에게는 모든것이 가능했지

그는 시몬의 꿈이 되었네 시몬의 모든것이 되었지 시몬의 생명과 같았었다네

그가 없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네



하지만 어느날

그는 나를 비웃듯이 눈앞에서 죽어 버렸네

나무에 높이 매어달린채로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가는 그를 보았었네

시몬은 꿈을 꾸는것 같았지 믿을수가 없었지 그는 언제나 믿을 수 없는

존재였네 지금도 믿을 수가 없었다네 그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갔다네

그가 죽었네



아니,

내가 죽었네 시몬이 죽었네 내 꿈이 죽었네 시몬의 꿈이 죽었다네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다네 지나가 버렸다네

누군가 말했다네 그가 살았다고 말하였네 그를 보았다고 소리쳤지

시몬은 그저 멍청하니 앉아있었지 믿을수가 었었으니까



그러던 내 앞에

그가 왔었다네 눈앞에서 죽었던 그가 서 있었다네

다시 살아났다네 믿을수가 없었다네 정신이 없는 나에게 그가 말했지

잘 있었나 시몬 나는 아무말도 못했었네 멀뚱하게 그를 보고만 있었다네

먼가 말을 해야하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네

그렇게 꿈이려나 생시려나 어물거릴때



그는 또 어디론가 떠나갔지

보이지 않았었지 꿈을 꾼거 같았었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네

가만히 있다간 죽을 것 같았어 시몬은 답답해서 바다로 갔다네

깊은바다로 갔다네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그러나 고기는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네

그래도 던졌지 밤을 새워 던졌다네 고기를 꼭 잡으려고 던진건 아니었지

아무생각없이 헛된 밤을 보냈다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이 왔을 때



어디선가

시몬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네

그가 나를 불렀지 나는 달려 갔었다네 뛰어갔었네

이제 나는 알았네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네

나는 그를 만나야 했었네 시몬은 그를 만나야 하는거였지

어떻게 그를 만나야 할 줄 몰랐을 때 그가 찾아왔다네



시몬은 그를 만나야 하고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네

그의 음성이 나를 살렸네 그의 소리가 나를 평안케 했었다네

그만이 나의 기쁨이라네 그만이 나의 평안아라네

그것을 이재야 알았다네 너무 기쁘고 맘이 평안해졌다네

그를 만났네 한 남자가 있었네 갈릴리에서

그를 만났네 그가 거기서 시몬을 불렀네

나를 불렀네

나를....



한 남자가 있었다네....



(요21:1-4)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하늘노래님의 사랑과 편지 중에서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의 마음  (1) 2008.11.11
사랑하기 때문에  (2) 2008.11.10
히스기야의 기도  (0) 2008.11.08
예수님 때문에  (0) 2008.11.07
숨겨진 보물  (0) 2008.10.30
기도는 성도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삶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말하지 않는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기독교 이단 사이비 종파들도 기도를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모든 종교에는 예외없이 기도를 가르칩니다. 무신론자들은 기도할까요? 만약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기도할 이유가 없지요.

신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은 스스로를 믿는 자신교 이겠지요. 자기가 자기의 신이되는 것이니까 엄밀하게 말한다면 무신론자가 아니지요. 그러므로 모든 인류와 모든 역사와 모든 세계는 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교를 거부하거나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찌라도 결국은 자기가 신적인 대상이기에 절대적인 무신론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 절망의 상황 에서는 기도 행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부인할 수 없는 피조된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어떤이는 기도하여서 극적으로 위기의 순간들을 지나갑니다만 또 다른이는 끝까지 기도하지 않아서 비극적인 시간을 견뎌야하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인간의 선택과 결단과 의지로 할 수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그것이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나중에 겪을것 다 겪은 후에 기도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미 기도하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야 그때 왜 기도하지 못했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기도를 안한것이아니라 못한것이고 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기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 하여주시기에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히스기야왕


어느날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능력이며 힘이며 구원인지요.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여 정금보다 더 귀하고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하다고 합니다. 또한 여호와의 말씀은 공의로우며 심판의 검과 같습니다. 그 말씀에 숨어 피할 자가 없습니다. 한번 말씀하시면 변개하거나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에게 전한 이사야의 메세지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왕하20:1)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왕입니다. 전에 히스기야왕이 치리하던 제 십사년에 즉 그의 나이 서른아홉살 되던 해에(왕이 된 나이가 스믈다섯)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성을 포위하면서 위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싸워보기도 전에 금은보물을 많이 보내어서 전쟁을 피했지만 후에 다시 재차 공격하려고 왔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백성들에게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라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앗시리아의 사자가 하는 말에 대꾸하지 말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왕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걸 알았고 이제야말로 여호와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랍사게의 조롱과 비웃음과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왕도 직접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곧 현실적으로 위기를 극복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가운데 히스기야왕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믿음역시 한차원 높아졌을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서 시름시름 앓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과로와 피곤이 겹쳐서 그랬을거라 생각하였고 의원들이 최선을 다하며 정성을 드리고 치료하기에 좋아질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며 주를 의지하던 히스기야왕에게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최후의 선고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던 왕입니다. 역대 다윗왕 이후에 히스기야왕보다 더 신실한 믿음의 왕이 없었다고 기록한 왕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며 살았던 왕입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더 살려고 애쓰지말고 정리하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왕도 사람인지라 영원히 살수는 없지만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무슨 특별한 엄청난 죄를 하나님께 범하여서 징계를 받는다면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개인적으로 살펴봐도 크게 실수한적은 있을찌라도 허물은 있을 찌라도 여호와께 범죄한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병이 나을 기미조차 없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왕에게 이사야는 구원의 전령사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간절하게 기도한 왕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좋은소식을 전하라고 보냈다고 생각하였을것입니다. 왕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이사야는 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럴수가 있습니까라며 항변해야할 왕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여호와께 다가갑니다.

 

이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는 그의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주께 기도하여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저는 히스기야왕의 반응을 보면서 만일 내가 저런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대가 무너지고 기도가 거절 되었을때의 상실감은 오히려 절망과 원망의길로 가는것이 대부분입니다. 시험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시험은 필수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시험은 피할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은혜의 방편이며 성장시키려는 테스트이지 벌을 주시기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자녀를 괴롭히려고 작정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혹시 엄하게 대하더라도 잘되게 하기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주는 시험이라면 결국은 선하고 좋은것입니다.

 

왕에게 병이들도록 하시고 또한 그것을 이기도록 하신것은 알지못하는 크고도 비밀한 일을 행하시며 그 기이한 빛을 보여주시고자 하심입니다. 왕이 그렇게 절망적인 시험을 받을때 가장 먼저 보인 첫번째의 반응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답이 아닐까요? 물론 왕이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답을 정확하게 모르지만 말입니다.

 

부모가 섭섭하고 냉정하게 대한다해서 화를 내면서 자기 고집대로 뛰쳐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부모가 언성을 높이고 본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해도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럴 줄 몰랐다면서 난 역시 친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것이라며 집을 뛰쳐 나간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히스기야왕은 전혀 자기 기분대로 하지 않고 더욱 더욱 여호와께 나아 갑니다.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진정으로 나아갑니다. 그동안도 진심으로 기도하며 나아갔지만 이번에는 질적으로 다르게 나아갑니다. 완전히 결단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하나님뿐이라며 나아갑니다.

 

이말을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우리도 히스기야를 본받아서 뜨겁게 열정적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메어달리면 응답을 받는다는쪽으로 가면 곤란합니다. 한동안 유행한 '강청기도'처럼 오직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며 열심으로 기도하자로 가면 곤란합니다. 기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정성이나 분량이나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을 섬겼으니 이번만 살려주시옵소서가 아니라 그저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기억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살리시고 죽이시는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니 다만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다만 그동안의 관계를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하나님께 기억해달라는 기도를 할수 있을까요? 저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시기만 간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앞에 내세울것이 전혀 없습니다. 공로가 없습니다. 행함도 없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며 참회하며 애통하는 심령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흘리신 주님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그 귀하신 이름 예수 이름만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행한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행한대로 갚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며 구원자가되심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오늘도 주님 이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나의 방패시며 피할 바위시며 굳건한 반석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2008/11/07.

하늘나그네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기 때문에  (2) 2008.11.10
한남자  (0) 2008.11.08
예수님 때문에  (0) 2008.11.07
숨겨진 보물  (0) 2008.10.30
주님  (0) 2008.10.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