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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아래 어금니가 살살 아프기 시작을 하더니 갈수록 더 많이 아픈 것이
어쩐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료나 한번 받아 볼 생각으로 늘 다니던 치과 의를 찾았습니다. 담당 의사가 X-ray를 찍어보더니 치석이 생겼다고 치료를 해야겠다고 합니다. 전에도 몇 번 치석이 생겨서 긁어내고 봉을 씌운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면서 간단한 마음으로 의자에 누웠습니다.

 

한참을 긁어내고 치료를 하더니 다시 봉을 한 후 끝마쳤습니다... 나는 간호사가 주는 물로 입을 대충 헹군 후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하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의 인사에 대답하는 대신 “벌레가 너무나 깊이 먹어서 신경을 죽이고 다시 치료를 해야겠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별로 심하게 아픈 적도 없었는데…, 신경까지 뽑아야만 한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돈도 걱정이었지요. (이곳 (미국)은 치과 보험이 있어도 신경을 뽑는 데만 약 $1000.00(한화 약 백만원)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이 하라시니 할 수밖에씁쓸한 마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경전문 의사에게 예약하고 신경을  뽑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늦게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신의 치아상태를 이야기하는데 신기하게도 나와 꼭 같은 증세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집사님, 저도 이번에 신경을 뽑아야
한다네요.
그랬더니 사모님,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second opinion을 받아 보셔야 합니다. 하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목회자인 것을 담당 치과 병원 내의 모든 직원이 다 알고 있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덕이 안될 것 같다고…, 될 수 있는 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을 해 드렸습니다. “아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재진단은 반드시 받아 보아야지, 사모님은 돈이 그렇게나 많으세요? 그리고요, 돈도 돈이지만 한번 신경을 죽인 그 치아는 얼마 오래가지 못 한 데요. 하면서 하두나 졸라대는 통에 마지못해 그저 반강제로 끌리다시피 하여 집사님이 잘 아신다는 그 치과엘 한 번 더 가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약속된 날에, 그 의사의 사무실에 발을 드려 놓는 순간, 갑자기 내 안에서 세미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괜찮다. 조용하나 아주 단호한 음성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안된다고 하는데요, 주님?

나는 다급할 때마다 들려주시던 성령님의 음성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내가 좀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경을 죽이고 봉을 하는 데는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내 마음이 말이 되어성령님의 말씀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니깐요.


그래요. 주님, 만약 이 의사선생님의 진찰결과 신경까지 죽일 필요가 없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옆에 같이 간 남편에게도 자신 있게 말해 주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더,  너는 괜찮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사가 혹시 신경 의에게 갈 필요가 없소. 하는 말이 나오려나…, 잔뜩 긴장과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진찰을 마친 의사는 진단 결과로는 확실치 않으니 신경전문 의에게 가보셔야겠소. 라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들으셨지요? 의사가 안된다잖아요, 주님.  하고 성령님께 내가 옳았다는 듯 성령님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다시 내 마음 속에서 너는 괜찮다. 짧으나 아주 단호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님, 정말 당신이세요?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

 

이튿날, 저는 약속한 시간에 신경전문 의사를 찾았습니다. 신경전문 의사는 다시 X-ray도 찍어보고 몽혼을 하고 미리 봉해놓은 자리를 긁어내는 등 여러가지 정밀 조사를 끝마친 후, 당신의 치아와 신경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벌레먹은 자리만 다시 긁어내고 덮어씌워 주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사는 안된다고 했는데주님, 정말 당신이셨군요.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감사의 눈물이 두 볼에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할렐루야! 작은 것 하나까지라도 잊지 않으시고 챙겨주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7말씀)

 




 

최송연/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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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비평 학자들은 민수기가 모세의 사후 수세기 동안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모세가 기록했을 수 있는가?

본문: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제 이년 이월 일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1)

성경 비평 학자들은 민수기만 아니라 소위 우리가 모세의 오경으로 부르고 있는 구약의 첫 다섯 책들을 모두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세 오경이 J. E. D 그리고 P와 같은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모세 사후 오랜 기간에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J는 주전 10세기, E는 주전 9세기, P는 주전 6세기 그리고 Ps는 더 후대로 본다.  JE는 아마도 모세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옛 전통을 담고 있다고 보나 P는 크게 과거에 대한 이상화의 기록으로서 믿을만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법이나 제도들도 모세 시대가 아니라 아주 후시대에 기록된 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별히 민수기는 상대적으로 초기 J와 E의 혼합체로 보며 또 아주 후대의 P와 Ps자료의 혼합이라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자료들은 그 마지막 작업이 주전 5세기경이었을 후대 편집자들에 의해 합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민수기의 후대 저작설이나 오경의 후대 저작설은 하나의 가설에 근거한 것이다.  더구나 민수기의 내용이 초기 저작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민수기 1장과 26장에 나오는 인구조사의 목록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마리 본문(Mari)과 옛 에집트 왕국의 문서들 그리고 고전적 자료들에서 발견된다.  지파의 지도자들에 대한 이름들은(1:5-15)  그 형식에서 주전 2000년대의 특성이 있다.  이스라엘이 진을 친 것은 주전 13세기 람세스 II(Rameses) 때에 것과 유사하다. 등대에 대한 설계(민 8:)는 그것이 후기 청동 시대에 온 것을 보여준다(15-13세기).  나팔들은 애굽에서 전쟁이나 제사를 위해 사람들을 소집하는데 쓰였다. 장식이 달린 옷들(민 15장)은 중기 2천년 대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들에서 사용되었다.  에돔에 대한 편지의 문체와 형식은 2천년 대의 외교문서와 유사하다(민 20장).  

구리뱀(민 21장)과 장막 제단은 12세기에 미디안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음이 팀나(Timma)에서 발견되었다.  민수기에 있는 발람에 대한 내용이나 언어 그리고 다른 시들은 초기 저작을 시사해 주고 있으며 매매 계약은 초기 왕조시대보다 늦지 않다.  민 28-29장에 제물에 대한 규례들은 우가릿(Ugarit)에서 온 14세기 의식적 달력을 닮았다. 그리고 민수기 34장에 규정된 가나안의 경계들은 주전 15-13세기의 문서들에 있는 가나안에 대한 애굽 지방의 것들에 일치된다⑴.   따라서 이상의 증거들은 민수기가 모세의 저작이라는 정통적인 견해를 부인할 수 없게 한다.
그밖에 민수기가 모세의 저작이라는 사실로는 다음과 같은 증거들이 있다.

  1. 모든 기록된 증거들이-시간, 장소 또는 그 시대의 관습들-목격자 모세의 기록임을 반영해 준다.
  2. 민수기 자체가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1:1; 33:2).
  3. 민수기에서 인용한 신약의 구절들이 모세의 글로 말씀하고 있다(행 7장, 13장, 고전 10:2-8; 히 3:7-10).
     만일 모세가 민수기를 쓰지 않았다면 영감된 신약의 책들은 오류가 있는 것이 된다.
  4. 주님께서 민수기에서 인용하셨고 광야에서 뱀을 든 자가 실로 모세였음을 증명하시었다(요 3:14;
     참고, 민 21:9)⑵.

  그러므로 우리는 민수기가 모세의 저작이라고 확신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다르게 쓴 것이 문서상 자료의 차이에서 온다는 비평 학자들의 주장은 하나의 가설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다른 이름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른 품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주
   1. Gordon J. Wenham, Numbers(Downers Grove: IVP.1981), pp.21-24
   2.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95



글/서춘웅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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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


한 남자가 있었네

그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었지 갈릴리 바다가 고향이었어

그는 바다를 사랑했네 바다에서 삶을 일구고 그 바다가 전부였네

고기잡는게 일이고 취미였고 놀이였다네 그는 그것외에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네 할수 있는게 없었지



그러던 어느날

시몬은 한 남자를 만났었네

그를 본 순간 시몬은 그 발아래 무릎을 꿇었지

난생 처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네 한번도 이런일이 없었는데

왜그런지 그 앞에서만은 작아지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네



그를 진짜로 좋아했다네

그가 없는 시몬은 상상도 못했었지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였네 그에게는 모든것이 가능했지

그는 시몬의 꿈이 되었네 시몬의 모든것이 되었지 시몬의 생명과 같았었다네

그가 없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네



하지만 어느날

그는 나를 비웃듯이 눈앞에서 죽어 버렸네

나무에 높이 매어달린채로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가는 그를 보았었네

시몬은 꿈을 꾸는것 같았지 믿을수가 없었지 그는 언제나 믿을 수 없는

존재였네 지금도 믿을 수가 없었다네 그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갔다네

그가 죽었네



아니,

내가 죽었네 시몬이 죽었네 내 꿈이 죽었네 시몬의 꿈이 죽었다네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다네 지나가 버렸다네

누군가 말했다네 그가 살았다고 말하였네 그를 보았다고 소리쳤지

시몬은 그저 멍청하니 앉아있었지 믿을수가 었었으니까



그러던 내 앞에

그가 왔었다네 눈앞에서 죽었던 그가 서 있었다네

다시 살아났다네 믿을수가 없었다네 정신이 없는 나에게 그가 말했지

잘 있었나 시몬 나는 아무말도 못했었네 멀뚱하게 그를 보고만 있었다네

먼가 말을 해야하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네

그렇게 꿈이려나 생시려나 어물거릴때



그는 또 어디론가 떠나갔지

보이지 않았었지 꿈을 꾼거 같았었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네

가만히 있다간 죽을 것 같았어 시몬은 답답해서 바다로 갔다네

깊은바다로 갔다네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그러나 고기는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네

그래도 던졌지 밤을 새워 던졌다네 고기를 꼭 잡으려고 던진건 아니었지

아무생각없이 헛된 밤을 보냈다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이 왔을 때



어디선가

시몬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네

그가 나를 불렀지 나는 달려 갔었다네 뛰어갔었네

이제 나는 알았네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네

나는 그를 만나야 했었네 시몬은 그를 만나야 하는거였지

어떻게 그를 만나야 할 줄 몰랐을 때 그가 찾아왔다네



시몬은 그를 만나야 하고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네

그의 음성이 나를 살렸네 그의 소리가 나를 평안케 했었다네

그만이 나의 기쁨이라네 그만이 나의 평안아라네

그것을 이재야 알았다네 너무 기쁘고 맘이 평안해졌다네

그를 만났네 한 남자가 있었네 갈릴리에서

그를 만났네 그가 거기서 시몬을 불렀네

나를 불렀네

나를....



한 남자가 있었다네....



(요21:1-4)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하늘노래님의 사랑과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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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성도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삶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말하지 않는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기독교 이단 사이비 종파들도 기도를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모든 종교에는 예외없이 기도를 가르칩니다. 무신론자들은 기도할까요? 만약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기도할 이유가 없지요.

신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은 스스로를 믿는 자신교 이겠지요. 자기가 자기의 신이되는 것이니까 엄밀하게 말한다면 무신론자가 아니지요. 그러므로 모든 인류와 모든 역사와 모든 세계는 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교를 거부하거나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찌라도 결국은 자기가 신적인 대상이기에 절대적인 무신론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 절망의 상황 에서는 기도 행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부인할 수 없는 피조된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어떤이는 기도하여서 극적으로 위기의 순간들을 지나갑니다만 또 다른이는 끝까지 기도하지 않아서 비극적인 시간을 견뎌야하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인간의 선택과 결단과 의지로 할 수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그것이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나중에 겪을것 다 겪은 후에 기도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미 기도하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야 그때 왜 기도하지 못했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기도를 안한것이아니라 못한것이고 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기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 하여주시기에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히스기야왕


어느날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능력이며 힘이며 구원인지요.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여 정금보다 더 귀하고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하다고 합니다. 또한 여호와의 말씀은 공의로우며 심판의 검과 같습니다. 그 말씀에 숨어 피할 자가 없습니다. 한번 말씀하시면 변개하거나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에게 전한 이사야의 메세지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왕하20:1)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왕입니다. 전에 히스기야왕이 치리하던 제 십사년에 즉 그의 나이 서른아홉살 되던 해에(왕이 된 나이가 스믈다섯)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성을 포위하면서 위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싸워보기도 전에 금은보물을 많이 보내어서 전쟁을 피했지만 후에 다시 재차 공격하려고 왔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백성들에게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라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앗시리아의 사자가 하는 말에 대꾸하지 말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왕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걸 알았고 이제야말로 여호와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랍사게의 조롱과 비웃음과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왕도 직접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곧 현실적으로 위기를 극복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가운데 히스기야왕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믿음역시 한차원 높아졌을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서 시름시름 앓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과로와 피곤이 겹쳐서 그랬을거라 생각하였고 의원들이 최선을 다하며 정성을 드리고 치료하기에 좋아질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며 주를 의지하던 히스기야왕에게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최후의 선고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던 왕입니다. 역대 다윗왕 이후에 히스기야왕보다 더 신실한 믿음의 왕이 없었다고 기록한 왕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며 살았던 왕입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더 살려고 애쓰지말고 정리하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왕도 사람인지라 영원히 살수는 없지만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무슨 특별한 엄청난 죄를 하나님께 범하여서 징계를 받는다면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개인적으로 살펴봐도 크게 실수한적은 있을찌라도 허물은 있을 찌라도 여호와께 범죄한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병이 나을 기미조차 없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왕에게 이사야는 구원의 전령사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간절하게 기도한 왕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좋은소식을 전하라고 보냈다고 생각하였을것입니다. 왕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이사야는 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럴수가 있습니까라며 항변해야할 왕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여호와께 다가갑니다.

 

이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는 그의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주께 기도하여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저는 히스기야왕의 반응을 보면서 만일 내가 저런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대가 무너지고 기도가 거절 되었을때의 상실감은 오히려 절망과 원망의길로 가는것이 대부분입니다. 시험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시험은 필수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시험은 피할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은혜의 방편이며 성장시키려는 테스트이지 벌을 주시기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자녀를 괴롭히려고 작정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혹시 엄하게 대하더라도 잘되게 하기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주는 시험이라면 결국은 선하고 좋은것입니다.

 

왕에게 병이들도록 하시고 또한 그것을 이기도록 하신것은 알지못하는 크고도 비밀한 일을 행하시며 그 기이한 빛을 보여주시고자 하심입니다. 왕이 그렇게 절망적인 시험을 받을때 가장 먼저 보인 첫번째의 반응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답이 아닐까요? 물론 왕이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답을 정확하게 모르지만 말입니다.

 

부모가 섭섭하고 냉정하게 대한다해서 화를 내면서 자기 고집대로 뛰쳐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부모가 언성을 높이고 본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해도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럴 줄 몰랐다면서 난 역시 친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것이라며 집을 뛰쳐 나간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히스기야왕은 전혀 자기 기분대로 하지 않고 더욱 더욱 여호와께 나아 갑니다.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진정으로 나아갑니다. 그동안도 진심으로 기도하며 나아갔지만 이번에는 질적으로 다르게 나아갑니다. 완전히 결단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하나님뿐이라며 나아갑니다.

 

이말을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우리도 히스기야를 본받아서 뜨겁게 열정적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메어달리면 응답을 받는다는쪽으로 가면 곤란합니다. 한동안 유행한 '강청기도'처럼 오직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며 열심으로 기도하자로 가면 곤란합니다. 기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정성이나 분량이나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을 섬겼으니 이번만 살려주시옵소서가 아니라 그저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기억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살리시고 죽이시는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니 다만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다만 그동안의 관계를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하나님께 기억해달라는 기도를 할수 있을까요? 저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시기만 간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앞에 내세울것이 전혀 없습니다. 공로가 없습니다. 행함도 없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며 참회하며 애통하는 심령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흘리신 주님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그 귀하신 이름 예수 이름만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행한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행한대로 갚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며 구원자가되심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오늘도 주님 이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나의 방패시며 피할 바위시며 굳건한 반석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2008/11/07.

하늘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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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라는 것을 배울 때부터
우리는 너무
계산에 젖어 살았습니다

주는 것만큼
되돌려 받으려 하고
받은 것만큼
베풀려고 하지만...

사랑에는
이유가 없듯이
진실한 사랑은
조건이 없는 단순한 것입니다.

계산하며 사는 삶은
늘 엇갈리는 투정으로
힘든 삶을 사는 것과 같은
계산기를 두드리는
잘못된 습관입니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합류하듯
주고, 또 주고 싶은 것이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주님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고
무조건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주의 사랑안에서
계산하지 않는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는
사랑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옮긴글 -

출처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 문지기





 

      I'll be your bridge over troubled water,when you down,
      I will carry you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down.

      그대 지치고 서러울 때
      두 눈에 어린 눈물 씻어주리라
      고난이 와도 오~ 물리치리라

      외로운 그대 위해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그대 괴롭고 외로울 때
      그대 지친 영혼 위로하리라
      재난이 와도 오~ 물리치리라

      외로운 그대 위해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I'll be your bridge over troubled water,when you down,
      I will carry you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down.

      고운 마음을 가지며
      아름다운 꿈을 깊이 간직하세
      밝은 해가 오~ 우릴 비추네

      하루 해가 지듯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내 생명 다 할 그날까지 변함이 없이


      I'll be your bridge over troubled water,when you down,
      I will carry you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_
      I will lay me down, lay me down.




      solo/Bar. 왕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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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나의 작은별이야
     
    이번 여행중,벳남에서
    서울을 가는 비행기안에서의 일이었어
    나는 비행기좌석을 예약할 때
    가능하면 통로로 하거든
    그래서 이번에도 내 좌석을 찾아
    앉으려고 하는 데,
    웬 아가씨가 자리를 바꿔 달라는 거야
     
    이유인 즉 남편이 내 옆자리이고
    자기는 뒤쪽 창가에 자리를 했던 모양인 데
    나란히 앉아 가고 싶다는 뜻이었 지
     
    아,그거야...내가 또 누구인가
    의리의 사나이 돌쇠, 아...매너 김 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한마디로 O.K하고
    한참 뒤쪽으로 가서 창가에 앉아...
    책을 펴 들었었지 오래 된 책인 데...
    어떤목사님의 부흥이란 책을 읽고 있었던거야
     
    책을 한참 읽다가 좀 지루하고
    졸립기도 하고ㅡ밤 비행기였었어-
    그래서 창문을 여니...와...초생달이
    바로 눈앞에 있더라구
    구름 바로 위로 마치 바람에 흔들릴 것 처럼,
    생생한 초생달이였었지
     
    아,이렇게 아름다운 구름위의 장관을
    보게 해 주시는 구나...
    감탄과 찬사를 하며 자세히 보는 데....
    그 생생한 초생달 밑에ㅡ옆으로ㅡ작은 별하나가...
    지금도 생각이 나고 있어
     
    먹구름은 마치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펼쳐 져 있고 희미하지만
    코발트색의 하늘에 떠 있던 초생달,
    그리고 바로 옆에 점을 찍어 놓은 것 같던 작은 별....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초생달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그 작은 별 하나가 온 하늘을 채우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나 할까...?
     
    그래 그랬어, 난 너를 위해서
    작은 별이 되고 싶은 것이었어
    비록 희미하지만...
    너는 내게 작은 별이구...
    아니...큰 별인가? 음~ 그래..가장 큰별...
    1등급 별...어디서나 육안으로 볼 수가 있는... 
    
    

    詩/김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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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e 16:1-10  “A Steward of the Lord”

 

The Bible says that we all are stewards of the Lord.  A steward in today’s definition means “a proxy or an agent who takes care of entrusted assets of his master.  A steward is obviously a servant.  He is trusted by his master and entrusted to care for his master’s assets as a servant, and has the privilege to manage other servants according to his will.   Therefore a steward is mostly self-regulating (autonomous) than other servants.  Of course, this is contingent (dependent) on him obeying the commands of his master.  As we see in this dimension, everyone in the world is a steward and it is right to recognize that the Master is in charge.  Therefore we will receive grace from a sermon titled “A Steward of the Lord.”

 

First, we all are stewards.  There is an old saying we “Came empty handed, go empty handed.”  This is very true.  When we are born by our mothers we receive life and bring nothing with us.  We did not bring things to eat or money to spend.  In spite of this we have lived well thus far.  How is this possible?  Our lives are settled in the place where everything is already prepared with fresh air, fresh water, and bountiful fruit in the field every season.  And with little effort we are able to obtain things to eat and to use.  Then, who was it that prepared everything before we were born?  It was God.  In John 1:3 it says, “All things were made through Him, and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was made.”  Because God made everything in the universe He is the Master of all things.  He made all the things that we buy and sell as we wish and eat and live.  In this aspect we are autonomous as stewards.  Then, one among you may think like this, “Pastor, I understand all the things in this world have a master, and the Master is God, however, you didn’t say that my children, who I had, and myself are not God’s?”  I’m sorry to say this, but the Bible says your body and your children are not yours but God’s.  Psalm 127:3 says, “Behold, children are a heritage from the LORD, the fruit of the womb is a reward.”  Children are given as a reward by God to enjoy them for a while in your hard life.  And in 1 Corinthians 6:19-20 it says, “Or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the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from God, and you are not your own?  20For you were bought at a price; therefore glorify God in your body and in your spirit, which are God's.”  This is true.  Look! if our body was ours, we should be able to do anything with it as we wish, shouldn’t we?  It will be ours if when we wished to be tall we were able to be tall, or if we wished to be short we were able to be short, if we were full without eating, no need to take a shower if we were able to be clean, and if we wished to live longer we were able to live thousands and thousands of years.  We need to know the true facts that we are not self-regulating (autonomous) when it comes to living or dying but we are dependent.  We may think our body belongs to us and try to eat well and dress well; however one day, when the Master says to stop living and come to Him, then we must leave all of a sudden without saying a word.  We may insist and say that this time is too soon and it is not time to die.   However, we must go because our body is not ours.  As we see this, we are only a steward and enjoying the things of the Master momentarily.

 

Secondly, the Lord said to give an account of your stewardship (Luke 16:2).  A while ago, we watched a government audit in Korea (Oct 1997).  There arose a great public criticism because of the Han-Bo case (some iron company).  Why was this?  It was because the government did not manage it right.  I felt so sorry just watching such a tragedy.  The president of the bank killed himself and the chief operating director of the bank and some politicians who were involved in that event went to jail when it came to light.  It is the same in our lives, we must remember that there will be a day when we open the written record of our lives and report to the Master before a multitude of angels and ancestral saints.  At that day, at that moment, how will we appear?  If we were able to stand in proud, commanding, majestic posture, how wonderful would it be?  But opposite of this, the Bible says there will be so many who feel ashamed.  In Daniel 12:2 it says, “And many of those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sha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some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Now you and I who are saved by the grace of Jesus Christ will go to heaven even though we die now.  It is by faith that we go to heaven and not by deeds.  It is God’s promise and covenant to us that we are saved by believing Jesus Christ as our Savior and Lord.  Then what do we have to give an account for?  We need to know that it is about the stewardship that we are entrusted with and the care we take with the Master’s estate.  The day when we open the report of our life as a steward, who has been entrusted to take care of the things of the Master, our God, if we present an empty paper, how shameful we will be?  This is the shameful salvation just like a person who was brought out from the fire which is written in the Bible.

 

Thirdly, then how do we live as a steward?  We have to live wisely and redeem the time.  We must be faithful and live for God’s glory.  When we look at Jesus’ life in this world, we see that He lived only for God’s glory and died on the cros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Then how is our life supposed to be as we follow Jesus Christ?  We too live for God’s glory.  In fact, a legend says that all eleven disciples of Jesus were martyred.  We need to pay attention and understand that the way to give glory to God is absolutely not an easy way.  Jesus says to His disciples in Matthew 16:24,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one desires to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Then He says we will be able to transform the world. 
Beloved saints!  How are we?  We normally pursue riches; but the Lord became poor to make us rich.  We seek comfort; but the Lord gave up His life so we may have life, for He was lonely, despised, and gave up His life and died.  We want to be welcomed; but the Lord was rejected and unwelcome.  We try to avoid pain; but the Lord gave up His life for others.  Jesus lived His life centered on others.  Jesus taught this and lived as an example and commended us to follow Him. 

Beloved saints!  I conclude with this, we are stewards who are entrusted with the things of the Master, God and have used them thus far.  We must know there is a day when we will stand before the Master as a steward.  I believe, before we hear the Master’s voice saying “To give an account,” we must use our given time, money, and talents well.  Of course, our Lord does not demand the same thing from each of us as individuals.  I believe when we do our best where we are placed to live, God’s glory will be revealed.  As a lay person, as a deacon, as a pastor, if we do our best God will be glorified.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 . . Enter into the joy of your lord.”   I bless you in the name of our Lord that you all receive praise from our Lord.

By: Rev. Samuel Choi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사도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확신하는 위대한 사도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성도님들은 없을줄 압니다.

성도님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경에서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에 결코 모자르지 않을만한 복음의 진수를 기록한 것이 바울 사도의 서신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복음서와 함께 바울 서신서를 즐겨 애독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약 성경을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자주 접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은 빌레몬서를 계속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최근부터 맥체인 성경 읽기를 주로 이용해서 묵상하는데 오늘 본문이 빌레몬서이기에 좀더 깊숙히 들어 가고자 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주목하는 부분이 1절의 도입부분 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새번역)에서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바울의 삶가운데 감옥에 갇혀서 지낸 시간들이 많다는걸 확인합니다. 그는 왜 그렇게 감옥과 관계가 있었을까요? 감옥하면 우리의 선입견은 썩 좋을리가 없습니다.

될수 있으면 그런곳은 안가려고 하는게 정상입니다. 누가 일부러 감옥을 가고싶어서 소원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필시 정신적으로 심각한 병이 들었다는 것일겁니다. 한편으로는 감옥에 가고 싶어서 간 경우도 없을것이지만 때로 불가항력적으로 원치않는 감옥생활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감옥과는 친할 수가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출세가도를 향하여 무한질주할 충분한 조건과 실력을 두루 갗춘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유대인중의 유대인이며 로마 시민권자요 율법에 관해서라면 조상들의 유전을 열심히 수행하였고 당시 최고의 학문의 대가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한 엘리트 였습니다.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의 집안에서 장차 가문을 빛낼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었지요. 특별한 변수가 없는한 그의 인생은 성공가도를 달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소망이 어느날 여지 없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라는 공부는 집어 치우고 느닷없이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해 죽었던 갈릴리 나사렛 예수를 전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눈에는 사울이 미쳐도 보통으로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름까지 바울이라고 스스로 개명을 하고는 집과는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쁘게 돌아 다니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거의 절망하였을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한다면 '세상이 이런일이!'에 나올법한 사건인 것입니다.

바울의 절친한 친구들도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모두의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던 친구가 어느날 전혀 다른세계의 사람이 되어서 딴 사람이 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 스스로도 사울은 이제 죽었고 바울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였으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성경에는 바울의 사적인 가족관계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충분히 유추할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처음에는 바울이 공부에 미쳐서 머리가 돌아버렸을 것이라고 실성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다가 세월이 지난후에 그의 친구들 가운데도 복음을 받아드리고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바라기는 가족들역시 복음안에서 바울을 위하여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물론 개인적인 소망이지요.

그랬던 바울이 감옥에서 지금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감옥안에서도 그의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받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길래 그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복음 전하기를 쉬지 않은 것일까요?

마치 사무엘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한 것처럼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복음을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전 제자들의 키워드가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 였다면 바울의 키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입니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바울의 십자가 교리가 기독교를 편협하게 만들고 소종파로 전락 시켰으며 성도들을 두렵고 억압하는데 일조 했노라고 혹평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로 시작해서 십자가로 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유물 가운데 하나는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1:18) 바울의 옆구리를 툭 치면 나오는 소리가 십자가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지금 바로 그 십자가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가운데 십자가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모두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바울이 호소 합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뭐라고 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의 나를 보면서 지금의 교회를 보면서 지금의 성도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를 보면서 바울이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나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전우인 아킵보와 그대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몬1:1~3)

아멘.

글/하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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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의 당선연설 요지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조상의 꿈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과 민주주의의 힘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직 있다면, 바로 오늘밤 여러분이 그 답을 보여줬다.

    젊은이와 노년층, 부자와 가난한 자,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인디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인 할 것 없이 미국인들은 전 세계에 우리가 단순히 공화당과 민주당의 집합체가 아님을 보여줬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하나의 미국'이 될 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오늘밤 우리가 이룬 것으로 인해 미국은 변화를 맞고 있다. 이 승리는 당신들(미국시민)의 것이다. 두 개의 전쟁, 환경 문제, 최악의 금융위기 등 우리가 내일부터 당장 직면할 도전들은 거대하다.

    앞으로의 길이 멀고 험난하겠지만, 나는 우리가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한다.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겠다. 무엇보다 이 나라를 재건하는 데 있어 당신들의 동참을 요청할 것이다. 이번 승리는 그러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당신들이 없다면, 새로운 희생정신이 없다면,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자, 이제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남들도 보살피며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애국과 책임의 새로운 정신을 만들어가 보자.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부문)의 고통으로 월스트리트(금융가)가 번성할 수는 없다는 점도 분명히 기억하자.

    오랜 기간 우리의 정치를 더럽혀온 분열주의와 편협함에 기대려는 유혹도 떨쳐내자. 링컨이 우리보다 훨씬 더 분열됐던 미국을 상대로 강변한 것처럼,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다.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시민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비록 당신의 표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당신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우리는 운명을 공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의 새 아침이 밝았다고 말씀드린다.

    세계를 파괴하려는 자들에게는 당신들을 패배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평화와 안정을 희구하는 세력에게는 지지의 뜻을 보낸다.

    민주주의와 자유, 기회와 희망, 이것은 미국의 진정한 재능이다. 우리가 이뤄온 이 가치들이 앞으로 우리가 성취하려는 것들에게도 희망을 제시한다.

    미국이여,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목도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변화를 목격하게 될까. 어떤 진보를 우리가 이룩해낼까. 지금은 우리가 이 물음에 대답할 때다.

    지금은 우리가 번영을 회복하고 평화의 뜻을 가다듬을 때이며, 아메리칸 드림을 되찾고, 우리가 하나라는 근본적 진리와 우리가 숨 쉬는 동안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때다. 아울러 우리는 냉소주의와 의문에 부닥칠 때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영원한 신념으로 대답해야할 것이다. 감사드린다.
    당신과 미합중국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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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여년 전에 미국에 귀화하여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미국에 거주한 지 5년이 경과하면 누구에게나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거의 형식적인 미국역사와 법률상식,영어시험등 간단한 서류심사가 있긴 했습니다만...
시민권선서를 하고 나오는 현관옆에 테이블을 놓고 각 정당에서 정당등록을 받고 있더군요
깊이 생각치도 않고 저는 민주당에서 나온 테이블에 가서 민주당원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지금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만 그 당시에는 민주당은 영어로 DEMOCRACY, 공화당은 REPUBLIC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 데,민주당에 등록한 것은 공화당보다는 한국의 정치상황에 관심을 갖고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이유 하나뿐 이었습니다
당시,한국은 서슬이 시퍼렀던 군부통치하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민주투사나 반골은 아니었구요
 
오늘 드디어 미국의 새대통령이 선출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론조사를 통하여 예측은 했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일 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아침 뉴스를 보니 벌써 새대통령 오바마에게 권면,충고의 글이 있습니다
몇가지 권면의 글중에 하나는 먼저 메케인과 협력하라! 또는 공화당원들을 중용하라! 등등...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입니다
마지막 대목에,이런 글이 있더군요
...Meet with a cross-section of religions leaders...
모든 종교지도자들을 만나라는 말이 되겠지요
신구교,유대교,불교,모슬렘등의 종교지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그들의 협력,지혜를 얻으라는 뜻이겠지요
정치와 사회,문화계등 전반적인 추세로 보아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지만 종교계,특히 기독교일부에서도 타종교와의 협력,유대,상생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소위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이것도 옳고,저것도 취해야 하고,무슨 주의,신념,사상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다행이랄까,좋은 소식은 캘리포니아의 주민발의안으로 상정된 Proposition 8 Eliminates Right of Same-Sax Couples to Marry 이 통과 된 것입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를 거스려 동성끼리의 결혼을 합법화한 것을 무효화한 것이지요
일단은 동성연애자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소위 인류박애주의자(?)들의 의도를 제지하였지만...
지난 번 서울에서 만난 한 친구의 우스개 소리처럼 하던 넋두리가 생각납니다
요즘,아들 가진 친구들의 걱정거리는 연상의,그것도 자식이 있는 며느리를 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남자 며느리를 맞는 늙은 부모들이 점점 늘어 갈 것,또한 틀림없는 일입니다
학교에서는 남자 엄마,여자아버지를 가르켜야 하고,동성의 결혼에 주례를 거부하는 성직자는 가장 큰 죄목인 인종차별법에 의해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되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참 답답하고...
믿는 자여!! 어이 할꼬!!
어느 제도나 사상이...새로운 정권,새로운 지도자에게 우리의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찟는 회개와 함께... 기도합시다!!
한 줌의 누룩이 포대안의 밀가루를 변화시키듯이...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4:12)
 
 
 

글/김만니 집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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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별노래 최송연 별이 될래요 그대 위한 별이되어 밤마다 당신 창가에서 노래를 불러 드리겠어요 갈꽃 흐느끼는 소리에 잠못 이루는 당신 당신의 그리움도 당신의 아픔도 당신의 슬픔도 모두 다 내가 가져갈께요 사르륵사르륵 고운 별노래를 들으며 사랑하는 당신만은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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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raise me up / Josh Groban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나는 여기에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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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며 이스라엘 선생이라 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마 세상의 지위가 있으니 사람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였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와서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 하며 질문할 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미리 알고 계시며  갖고 있는 교만을 아십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하시지 않으시며 너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를 거듭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볼 수 없다는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육신으로 나는 것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했습니다  부모로 부터 육체의 형질을 가지고 나와 먹고 입고 교육받고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회생활을 하며 육체가 살기위해 해야하는 범위가 육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영으로 나는 것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 뜻은 너희 속에 있는 영이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영적인 차원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님의 삼위일체의 믿음이 있을 때 신앙인으로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을 가르켜 영의 사람이라 하며 그것을 믿을 때에 영으로 다시 났다는 거듭난 것입니다


3) 거듭난 사람으로 하나 더 나는 것

    사명을 받아 사명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복음에 대한 사명의식을 자동적으로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을 영적으로 깨닫게 되어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 사명의식은 목사님 뿐만 아니라 교회의 누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거듭난 첫단계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믿는다 함이 헛것이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생명구하기 위한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에게 생명이 걸려 있기에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평생에 복음 위해서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했고 살아간 바울의 예를 듭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16)  예수께로 받은  복음 증거하는 사명에 자기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행20 :24)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12)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이라" (고전9:16)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고전 9:23)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엡3:7)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딤후2"9)  거듭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생명과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복음을 우선합니다  복음안에서 살아간 바울의 생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육신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사명자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되면, 그런 사람은 다른이의 영혼이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께로서 난 자로서 생활속에 만나지는 모든 생명과 영혼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자,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다시 태어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1/01/08  새벽기도회 목사님 요약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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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26가지 삶의 지혜  
 
0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하고는 동업하지 말거라.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 아이들을 많이 만들어 놓거라.
그 중에 하나 둘은 안그랬다면 말도 붙이기 어려울 만큼

예쁜 아가씨로 자랄 것이다.

목욕할 때에는 다리 사이와 겨드랑이를 깨끗이 씻거라.
치질과 냄새로 고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거든 주방장에게 간단한 메모로 칭찬을 전해라.
주방장은 자기 직업을 행복해할 것이고 너는 항상 좋은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좋은 글을 만나거든 반드시 추천을 하거라.
너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해진다.

여자아이들에게 짓궂게 하지 말거라.
신사는 어린 여자나 나이든 여자나 다 좋아한단다.

양치질을 거르면 안된다. 하지만 빡빡 닦지 말거라.
평생 즐거움의 반은 먹는 것에 있단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친구가 너를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아내가 즐거워할 것이다.

하느님을 찾아 보거라.
만약 시간의 역사(호킨스), 노자(김용옥 해설), 요한복음(요한)을
이해한다면 서른 살을 넘어서면 스스로 서게 될 것이다.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너무 예의바른 사람을 집에 초대하지 말거라.
굳이 일부러 피곤함을 만들 필요는 없단다.

똥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누거라.
일주일만 억지로 해보면 평생 배 속이 편하고 밖에 나가 창피당하는 일이 없다.

가까운 친구라도 남의 말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속을 보이지 마라.
그 사람이 바로 내 흉을 보고 다닌 사람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도 청춘만큼이나 재미있단다. 그러니 겁먹지 말거라.
사실 청춘은 청춘 그 자체 빼고는 다 별거 아니란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빈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어주거라.
엄마는 기분이 좋아지고 여자친구 엄마는 널 사위로 볼 것이며
네 아내는 행복해할 것이다.

양말은 반드시 펴서 세탁기에 넣어라.
소파 밑에서 도너츠가 된 양말을 흔드는 사나운 아내를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네가 지금 하는 결정이 당장 행복한 것인지 앞으로도 행복할 것인지를 생각하라.
법과 도덕을 지키는 것은 막상 해보면 그게 더 편하단다.

돈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말거라.
돈에 눈이 멀어진다.

돈을 너무 멀리 하지 말거라.
너의 처자식이 다른 이에게 천대받는다.
돈이 모자라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해서 사용해라.

너는 항상 내 아내를 사랑해라.
그러면 네 아내가 내 아내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으면 최소한 세 명의 의사 진단을 받아라.
생명에 관한 문제에 게으르거나 돈을 절약할 생각은 말아라.

5년 이상 쓸 물건이라면 너의 경제능력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사거라.
결과적으로 그것이 절약하는 것이다.

베개와 침대와 이불은 가장 좋은 것을 사거라.
숙면은 숙변과 더불어 건강에 가장 중요한 문제다.

너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친구가 되거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것 같으면 아버지를 택해라.
친구는 너 말고도 많겠지만 아버지는 너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줌을 눌 때에는 바짝 다가서거라.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될 것이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락이 거의 없던 이가 찾아와 친한 척하면 돈을 빌리기 위한 것이다.
분명하게 ´노´라고 말해라.
돈도 잃고 마음도 상한다.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면 되돌려 받지 않아도 될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다 해줘라.
그러나 먼저 네 형제나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해줬나 생각하거라.

네 자녀를 키우면서 효도를 기대하지 말아라.
나도 너를 키우며, 너 웃으며 자란 모습으로 벌써 다 받았다.

원작자는 확실치 않으나 '김승호'씨라고 합니다.
자료 출처:서춘웅 목사님 방/ 준비: peter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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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선택

 

우리는 매일 매순간 선택을 해야할 일들을 만나게됩니다.

작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일생을 결정하게 되는 직업, 결혼대상을 선택해야 하는 것,

어찌보면 매일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입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을 감옥 안에서 후회하며 지내야

하는 사람도 있고, 한 순간 잘 된 선택으로 일생이 별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택이란 단어 자체는

간단하고 쉬운 말같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쉽게 생각해 버릴 사안은

또 아니란 것입니다.

 

소련의 스탈린 통치시절, 보리스 콘펠드라고 하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의 열정적인 전도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영혼의 자유와 평안함을 얻고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준

그 그리스도인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겠다

것과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살겠다였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다시 의사로서 일하게 되었는데

한 젊은이가 암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불법 수술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수용소 법을 어겼기 때문에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 전날, 이 의사는 자기가

수술해 준 젊은이 곁에 앉아서 밤늦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진지하게 전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의사는 처형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 이때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그는 한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약속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이 의사로 인해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그렇습니다!

매순간의 선택,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겠지만, 특별히,

한 영혼을 구원시킬 것이냐, 아니면 그냥 방치해 둘 것이냐 하는

것은 가볍게 생각하고 그냥 넘겨 버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

 

당신의 일생에 허락된 그 많은 선택의 시간들 중,

과연 “최상의 선택”에 사용되어진 시간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12:3절 말씀)”

 
최송연
/사모




0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예수회에 대한 만화입니다. http://www.chick.com/reading/comics/1302/1302_allinone.asp

자료출처: Chick Publications


 

 

 

부부는 가깝고도 먼 이방인

 

부부는
참으로 가깝고도 먼 이방인

살아오면서 말없이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 알아 그저 가슴 설레고

바라만 보아도 그저 좋아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차고
손끝만 닿아도 찌릿한 전율...

하지만 살면서 서로
무엇인지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쩌다 가슴에 비수꽂는 말로
깊은 앙금 쌓이다 보면
얼음판 보다도 냉랭한게 부부 아닌가요

마음에 가시 꽂히기 시작하면
그 가시 빼내기 힘들고
그 가시 빼낸다 하더라도
상처가 너무 깊으면 결국 흔적이 남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아주 가까이 있지만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게 부부 아닌가요
 
그래서 상처가 아물기 전에 이혼이라는
꼬리를 달게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부부는
서로 아주 편안 사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마음을 진정 모르기에 박빙을 밟는것이 아닌가요
서로 조심하지 않으면
살얼음 깨지듯 금방 깨져
수렁텅이로  빠져 뒹굴고 마는거지요

당신 아니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당신 아니면 못 살것 같이 여겨도
가슴에 썩은 감정의 씨앗 움틀거리면
새싹은 돋아나질 않고 흔적만 남아 썩어지지요
썩은 씨앗이 되기전에
서로 예의를 지키며, 배려와 위하는 마음,
신뢰하는 마음으로 너그러운 삶을 채워가며
디딤돌과 버팀목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믿음의 씨앗을 잘 보다듬고 가꾸면

비로소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듯이
참 믿음의 싱그러운 사랑의 씨앗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러나 계속 어긋나면 회복하기 힘든게 부부
부부는 참으로 가깝고도 아주 머~~언 이방인

 

                               

   -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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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가는 세월 어쉬움이 무엇인지 몰라
낙엽 몇 잎 밤길에 살며시 내려 놓았습니다.

약속 없던 사랑이 그 길로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마음의 등불로
어둠을 살며시 밝혀 놓았습니다.

마디마다 스치는 스산한 바람처럼
누군가가 떠나가고 있었기에
내 쓰린 가슴을 그대에게 내어 놓습니다.

닿을 듯 말 듯한 낙엽의 거리...
그 쓸쓸함으로...

떠나는 것은 닥쳐올 슬픔이기에
쓸쓸한 그 길을 마음에 두고 걷지도 못하고
풀벌레 마지막 노래만 무심코 들었습니다.

늘 이맘때면 가슴속 가득 자리한 시리움으로
고독을 삼키며 들어야 했던 그 노래...

추억과 사랑은 가슴에 깊이 묻어 두고
그렇게 부르던 가슴시린 그 노래...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힘내세요!!
어리석은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 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음을 한탄하고,
똑똑한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 사슴의 몸에 붙어 달릴 수 있음을 자랑한다.





* 함께 실천해 봅시다!! (고,미,실,안,꼭, 운동)
1) 맙습니다. (환한미소)
2) 안합니다  (환한미소)
3) 례합니다. (환한미소)
4) 녕하세요. (환한미소)
5) 부탁합니다. (환한미소)






사랑하는 이의 safely returned  home 을 주께  감사드리며... 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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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시




    李錫奎


    감의 몸속엔 음악이 흐른다
    가사를 음미하는 박자의 속도와
    높낮이를 조절하는 리듬에 맞추어
    나는 점점 붉어진다


    고독을 가르는 음악의 처절함과
    고독을 아우르는 음악의 부드러움과
    그 중심을 떠받치는 햇살들 바람들
    눈망울은 꿈인가
    눈물인가


    음악의 세계는 깊다
    미숙함이 황홀과 대면 악수
    잎 진 가지와 새의 날갯짓
    나는 막차를 놓친 나그네로서
    발길을 잠시 멈추고
    찬 서리로 분단장한다


    쌓인 낙엽과 헐벗은 나뭇가지의
    눈물 속에


    망각에 못박지 못할 이름과 오솔길들
    고독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름의
    손과 발의 숨결들
    음악의 골짜기 속에
    발갛게 닳아 오른 서러움들
    꿈에도 잊지 못한 얼굴들
    바라만 보아야 하는 江처럼
    느껴졌을 때
    그의 얼굴은 잔잔히 떨리며 웃음 지었다
    - 그건 내가 누군가에게 못 붙인 편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의
    제 몸속에 고여 있는 말을 들려주려
    우리에게 온 피울움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음악의 선율을 쫓다가 노래가 된 노래
    가 조용히 흐른다 그에 몸속엔,



.
자료 출처: 서춘웅목사님 방, 준비: peter님

지금까지 나는 종말교회(성도)가 대환난을 통과한 후 휴거가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나라 종말론적 성경해석의 주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나에게도 닥칠 대환난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지금의 세계경제불안을 통해 이미 이런 걱정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다가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세 가지 문서를 통해 접한 환난과 휴거에 대한 내용은 이와는 다르다.

이것은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기 전에 휴거된다는 설이다.

교회(성도)가 그 큰 환난을 겪지 않아도 된다니 아! 얼마나 복스럽고 위안이 되는 얘기인가?

물론 환난 전 휴거가 절대적으로 맞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아는 하나님의 성품과 맞는 해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성도들도 함께 이런 희망과 위안을 나누기 바란다!!!



1. 첫번째 접한 내용은 블로그 내의 이 문서 안에 포함되어 있다.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5004405


2. 두번째 접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 문서에 있다.

http://blog.daum.net/weddingkgm/12555466


3. 세번째 접한 내용은 영문으로 된 계시록 (대중적?) 해설책의 내용인데 책 이름은

"THE BOOK OF REVELATION: the Smart Guide to the Bible series" by Daymond R. Duck이다.

환난 전 휴거의 열가지 성경적 이유를 드는 그 책의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1. 성경은 한번도 교회가 환난기를 통과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2. 교회는 다니엘의 앞의 예순 아홉 이레와 아무 관계가 없었으며 또한 이른번째 이레와도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다(다니엘서 9:24).


3. 계시록 첫 3장에서 교회는 스무번 넘게 언급되었으나 4:1에서 19:1까지의 사이에서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계시록의 3장까지는 교회시대를 묘사하며, 4장부터 19장까지는 종말과 대환난기를 묘사한다. 위 그림 참조)


4. 예수께서는 그의 교회를 맞이하러 휴거 속으로 오신다(살전 4:16-17). 예수께서는 그의 교회와 함께 재림하신다(살전 3:13). 교회는 휴거로 땅에서 들리우고  주의 재림으로 땅으로 내려온다.

 

5. 적그리스도는 휴거가 있게 되기까지는 드러날 수 없다(살후 2:6-8). 하지만 만약 교회가 환난기를 통과한다고 하면, 교회는 다음의 이유들로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세계단일정부를 주재할 것이며(계시록 13:10), 재건된 성전에 자신의 상을 세울 것이며(마태복음 24:15),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표, 이름이나 수를 받도록 요구할 것이며(계시록 13:15-17), 두 증인을 죽일 것이며(계시록 11:7) 등 떄문이다.


6. 주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마태복음 24:36). 하지만 교회가 환난기를 통과한다면 일부 사람들은 그 날을 알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한 이레(칠년) 동안의 언약을 맺은 때로부터 한 이레(칠년) 후이며(다니엘 9:24-27), 적그리스도가 성전을 더럽힌지 천이백육십 일 후이기 때문이다(계시록 12:6).


7. 교회는, 환난기 끝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계시록 19:11-14)에 앞서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위해 하늘에 가야만 한다(계시록 19:7).


8. 적그리스도는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나(계시록 13:7), 음부의 권세는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마태복음 16:18).


9. 이십사 장로(교회의 대표)는 일곱 두루마리의 봉인이 떼어지기 전에 하늘에 있을 것이다.


10. 환난전 휴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와 더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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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었네 오늘은 열왕기하 5장을 묵상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양합니다. 먼저는 본문의 중요 등장 인물들을 봅니다. 아람 왕과 군대장관 나아만,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와 나아만 장군의 아내, 또 나아만 장군의 종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과 선지자 엘리사와 사환 게하시도 있습니다.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을 합니다. 대부분은 이 본문에서 엘리사와 나아만과 게하시에 대하여 집중을 합니다. 저는 오늘 먼저 이름도 없이 적국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한 어린 소녀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살았었는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은 여전히 악조건입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포로로 잡혀왔기 때문입니다. 이 소녀의 나이가 몇살인가는 추측만 할 뿐이지만 어린 소녀라고 한다면 약 열살이상 열일곱살을 전후로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난리가운데 소녀의 부모는 어디론가 도망을 갔던지 죽었든지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헤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간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 소녀는 포로로 잡혀왔는데 다행인지 아람의 군대장관에게 종으로 끌려온 것입니다. 그리고서 나아만 장군의 아내의 몸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물론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가 있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더구나 이 소녀는 여주인에게 신임을 얻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소녀였지만 사마리아의 장군의 여주인에게 신임을 두둑하게 얻었다고 하는 것은 평소에 이 소녀의 삶과 주인을 향한 진실한 태도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말이 안통하고 문화가 다르고 신분이 차이가 난다해도 그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는 누구나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소녀의 신앙의 중심은 여호와 하나님 입니다. 이것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는 신앙이 아니라 매우 어려서부터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무서운 하나님이나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만이 아니라 삶의 주인되시고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 되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으로 사귐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진실하고 거짓없는 사랑의 관계로 만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어떠한 환경이나 문제를 당한다해도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와 사도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굳게 신뢰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신앙인들이라면 조건이나 상황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과 삶의 자리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계적인 대 경제난으로 모두들 절망과 근심으로 요동하고 있는 때입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관리가 잘 안되는 현실입니다. 곳곳에서 사회적으로 연약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순간적인 판단의 미숙으로 돌이킬 수없는 재난을 당합니다. 본인도 불행하고 주변 이웃들까지 공포와 두려움과 손해를 겪는 불상사들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소위 묻지마 라고 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측은지심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그런 사건들을 정당화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을 향하여 무조건 심판과 정죄만을 일방적으로 할 수도 없는 것은 사회 구조적인 모순과 악순환의 풀수 없는 고리들 때문입니다. 이제는 남의 일이라고만 무관심할 수 없을 만큼 우리곁에 너무나 가까이 왔기 때문에 서로 조금씩만 나누며 손 잡아주며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야할 중요한 의미를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집단의 이기에 의하여 희생양으로 몰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정의와 공의와 도덕과 사회적인 양심이 극도로 마비되어 가는 현실과 일류 경쟁의 가속화 속에 병들어 버리는 학생들의 미래도 심히 걱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하기전에 사실은 이 땅의 교회가 마당히 품어야 할 숙제입니다. 최근 기독교인들의 우울한 사건을 접하면서 정말 새롭게 정신을 차리고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고 전심으로 돌이켜서 회개해야할 때입니다. 물량적인 성장에 집착한 나머지 성도들의 삶과 영성에 대한 관심에서 빗겨난 것을 돌아보고 다시한번 영적인 부흥을 위하여 참회하고 주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구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이렇게 기도의 자리로 가는 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는 엄청난 기도의 양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교회마다 기도없는 교회가 어디 있을까요? 지금도 열심이 부르짖는 한국교회들을 향하여서 기도하라고 요청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기도의 사람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하는 기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리오 왕 일 년에 나 다니엘이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 곧 예루살렘이 칠십 년 동안, 황무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보았다. 나는 아무런 음식도 먹지 않고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주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간절히 구했다.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고백하였다. “주 하나님, 주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주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에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언약을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지었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악하였고 주를 배반했습니다. 주님의 계명과 가르침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인 예언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조상들과 이 땅의 모든 백성에게 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여, 주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부끄러움이 가득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주님께서 여러 나라에 흩어 놓으신 모든 백성이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주께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우리와 우리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조상들이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했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종인 예언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주를 배반하고 주의 뜻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종인 모세의 율법에 적힌 저주와 심판이 내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큰 재앙을 내리셔서 우리와 우리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과 같은 것은 이 땅 위에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이 모세의 율법에 적힌 대로 닥쳤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재앙을 준비해 두셨다가 우리에게 닥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은 다 의로우신데도 우리는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 주는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 일로 지금까지 주의 이름이 유명해졌습니다. 주여, 우리가 죄를 지었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주여, 주의 의로우심을 따라 주의 거룩한 산이자 주의 성인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의 악한 죄 때문에 우리 주변의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주님의 백성을 욕하고 비웃습니다. 우리 하나님, 이제 주의 종의 기도와 간절한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주를 위해 폐허가 된 주의 성전을 다시 일으켜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주시고, 눈을 떠서 우리에게 닥친 끔찍한 일을 봐 주십시오. 우리가 도움을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해서 구합니다. 주여, 들어 주십시오. 주여, 용서해 주십시오. 주여, 들으시고 이루어 주십시오. 주를 위해서 늦추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곳은 주의 성이고 우리는 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내 죄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털어 놓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산인 예루살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단9:2-20) 에스라의 회개 기도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깨닫는 자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프로그램과 행사용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은혜 가운데 깨달은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수한 기도가 아무런 유익함이 없는 것은 혹시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내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쓰는 기도가 아닌가를 살펴볼 일입니다. 이 소녀의 신앙이란 바로 하나님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쌓은 기도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이라 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신뢰 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섬기는 여주인의 남편의 문둥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소녀는 즉시로 자기의 소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찌 본다면 자기를 종삼고 자기 민족을 괴롭혔던 나아만 장군이 병들었다면 속으로 좋아라 해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거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만 이 소녀는 전혀 그럴생각이없습니다. 그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이 사마리아에 사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예언자는 주인님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왕하5:3) 이렇게 말하는 소녀의 여주인은 그 말을 듣고 무시하거나 흘려 넘기지 않고 남편에게 고합니다. 남편역시 하찮은 어린 여종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세심한 간섭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치밀하고도 세심하고도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사용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주 자주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면서 혹은 이것이 우연이겠거니 하면서 무심히 지나갈 만한 모든 조건과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다 사용하신 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소녀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알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아만 장군이나 엘리사나 이스라엘의 왕이나 게하시나 누구나 할것없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시대와 역사와 나라와 모든 사람들을 품으시고 살피시며 한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모든 능력을 아낌없이 동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아만 잔군의 병을 고치고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고백을 얻기까지의 과정속에 바로 우리가 보기에 하찮은 어린자를 통해서도 큰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찮다고 표현을 한 것은 우리의 고정 관념속에 들어 있는 선입견이나 죽어버린 사고의 틀을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의 속성은 그렇게 언제나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곁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를 놓치고는 있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압니까? 바로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절망하고 있는 여러분이 그 숨겨진 하나님의 보물인지를요? 누가 압니까? 지금 여러분의 눈에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 사람이 그 남편이 그 아내가 그 동생이 그 자녀가 바로 하나님의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존재인지를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십자가 안에서 여러분과 저를 그렇게 존귀하게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아만 장군의 아내의 어린 여종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글/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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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李錫奎

고대하는 마음은 촛불 한 자루
내 마음으로 삼아서 재가 되기까지 타고 싶다

내 머릿속엔 온통 주님 생각뿐이어서
비는 오고, 와도,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어,
길은 캄캄해도, 꿈속에도 잊지 못할 주님의 약속,
등불같이 빛나서, 필사적으로, 거기 가려고,
내 눈은 주님의 말씀 속을 더듬고
머리는 주님 발 앞에 조아리고 있다

주님의 말씀은 별처럼 빛나고
나의 가슴엔 천 개의 눈이 있다
주님 마음에 들고 싶은 마음은  강물에 띄우는 편지 한 장,
주님의 사랑에 반한(反汗) 나도 모르게 길 들여진
편리와 방종, 그 후회 그게 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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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보다 아름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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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무엇하나 줄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넘쳐 흐르는 사랑이 있었지요

어느날 그런 그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덮쳐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알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지요

그렇게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남편은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날을 골똘히 생각하던 남편은
 마침내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남편은 이웃에게 인삼 한 뿌리를 구해 그것을 산삼이
라고 꿈을꾸어 산삼을 구했다고 아내에게 건네 주었지요

남편은 말없이 잔뿌리까지 꼭꼭 다 먹는 아내를 보고
 자신의 거짓말까지도 철석같이 믿어주는 아내가
너무나 고마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삼을 먹은 아내의 병세는
놀랍게도 금세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기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아내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내의 건강이 회복된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미소를 띄우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는 인삼도 산삼도 먹지 않았어요
당신의 사랑만 먹었을 뿐이에요

세상에는 진실보다 아름다운 거짓이 있습니다
거짓도 진실로 받아 들이는 사랑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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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아름답다, 그러나 진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다"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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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의 청소년들, 사역자님들, 선교사님들, 그리고
제 블로그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 독자님들을 위해
우리 목사님의 주일설교 중, 영어번역문을
계재해 드리려고 합니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필요하신 분들께 큰 도움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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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9:21-29  “A Powerful Saint”

 

Beloved saints, we live in a world with identity as children of God.  If we become children of God it means that God, Who is master of the universe, becomes our God.  God poured out the power of the gospel to His children.  However regrettably, we see so many people who say they believe in Jesus as Savior and Lord but have no power of the gospel and authority or blessing from the Lord.  We see them struggle in very poor spiritual condition.  Then why do they struggle in poor spiritual condition and what is their problem?  Therefore today we will receive grace through a sermon titled “A Powerful Saint.”  May God’s grace over flow in your hearts and minds.  Then how do we become saints with power?

 

First of all, we must meet Jesus Christ in our hearts.  In today’s text, the father of a child originally came to meet Jesus, didn’t he?  But he did not meet Jesus; instead he met with nine of Jesus’ disciples.  Under these conditions of not seeing Jesus but meeting with His disciples physically was comforting to him, so he had high hopes they might be able to heal his son’s sickness, however he became distressed because they could not heal him.  The father was disappointed and sat down without strength and then Jesus came down from the mountain.  Jesus heard of the poor condition of the sick child and told the father to bring his son to Him.  As soon as the child was brought to Jesus the evil spirit left him and the child was clean.  At this point we need to think what happened.  A person came to see Jesus and met His disciples, mere human beings before meeting Jesus.  Did his problem get solved or not?  No! It did not get solved.  Then, at the moment of meeting Jesus he received a blessing by receiving the solution to the problem.  I believe this is a spiritual teaching for us from today’s text.  It is the same in today’s life of the church.  People come to church to meet Jesus.  Unfortunately however, before they meet Jesus, they meet people who are the followers of Jesus.  They meet the pastor, ordained deacons, kwon-sa’s, and lay people.  Those who came to have a problem solved, however, develop more problems.  Then they get disappointed just like the sick child’s father was.  Some even give up and turn back to the world before meeting Jesus, don’t they?  Therefore if we want to live powerful lives, I believe, first of all, we must meet Jesus Christ who is the Lord of power.

 

Secondly, if we want to be powerful saints, we must have faith.  Verse 23 in today’s text says that.  Let’s read it together.  “Jesus said to him, "If you can believe, all things are possible to him who believes."”  Yes, this is true!  If we want to be powerful saints we need to meet Jesus first.  After we meet Jesus then we need to believe in Him.  Look, at the time of Jesus, Pharisees and scribes also met Jesus.  However, they did not have faith to believe.  Rather the Bible says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had faith to believe in Jesus.  It is true that no matter how long a person goes to church and knows Jesus is a savior, if that individual has not affirmed faith to believe then he can not live a powerful life.  At this point let us think about the definition of what faith is.  As Hebrews 11:1 says,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hat all the things that are not seen in my sight right now, I believe that they are possible in Jesus.  At this time, things that I look for and wish for become true in reality.  If we apply this in today’s text, it is the faith of the sick child’s father.  He meets nine people who are boasting as Jesus’ disciples, before he meets Jesus.  But his problem was not solved.  In spite of this, he did not give up and turn back.  Why is that?  It is because he had faith that Jesus must solve his problem.  I believe Jesus looked at his faith and listened to his wishes.  I believe that to be powerful saints we must have faith to believe.


Thirdly,
if we become powerful saints we need to be people of prayer.  Let us read verse 29 together, “So He said to them, "This kind can come out by nothing but prayer and fasting."”  What do the words “this kind” mean?  That is the difficult problem that the child and his father are facing.  All of the similar difficulties, we generally say by the words “this kind.”  As we live in today’s world, all kinds of problems we face can be summed up in “this kind.”  That is to say that all kinds of trouble and disappointment that we face as problems are solved by prayer, there is no other way.  Do you believe this?  Let’s look at a true example from the Bible.  Hannah was known as the mother of Samuel and is also known as a prayer warrior.  When she was in trouble, lonely, and childless, it was Peninnah, her husband’s second wife who made her miserable and severely provoked her.  It was at this time Hannah went up to the temple with this problem and kneeled down before God and prayed earnestly with tears.  Through this prayer she had a son, Samuel, who became a prominent spiritual leader in the history of Israel.  Actually Hannah escaped from “this kind” of suffering through prayer.  Another example we know well, George Muller who started an orphanage with empty hands, fed over 150,000 orphans until he reached the age of 93 and died.  It says in his autobiography he received answers to his prayers 50,000 times while he was alive, this means that he prayed 50,000 times with 50,000 problems.  “This kind” of problems were solved by the answers to his prayers (in contrast we struggle with few problems).  There is a weapon behind the powerful life; the weapon is prayer which no one can deny.  Queen Esther in the Old Testament prayed and fasted for 3 days about a problem and it was solved through the powerful life.  Elijah experienced the power when fire came down from heaven by prayer and rain came through prayer.  Beloved saints, I conclude with this.  We are the people of God bought by the blood of Jesus Christ and we are His children.  God wants us as His children to live powerful lives.  In spite of this, when we meet “this kind” of problems we sometimes become disappointed and frustrated.  Nevertheless, we learn the way to overcome the troubles and win by the powerful life. 

In summary, we must first meet Jesus.  We must not turn back in disappointment seeing people who are mere human beings before we meet Jesus.  We all have lives full of problems therefore we must meet Jesus.  Then we must become faithful saints after we meet Him.  Paul says in Philippians 4:13, “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o strengthens me.”  I bless you in the name of our Lord that we all become precious saints who are free from “this kind, and that kind” of problem by coming before God and kneeling down and praying.
By: Rev. Samuel Choi 


 

 

 

부부는 가깝고도 먼 이방인

 

부부는
참으로 가깝고도 먼 이방인

살아오면서 말없이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 알아 그저 가슴 설레고

바라만 보아도 그저 좋아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차고
손끝만 닿아도 찌릿한 전율...

하지만 살면서 서로
무엇인지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쩌다 가슴에 비수꽂는 말로
깊은 앙금 쌓이다 보면
얼음판 보다도 냉랭한게 부부 아닌가요

마음에 가시 꽂히기 시작하면
그 가시 빼내기 힘들고
그 가시 빼낸다 하더라도
상처가 너무 깊으면 결국 흔적이 남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아주 가까이 있지만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게 부부 아닌가요
 
그래서 상처가 아물기 전에 이혼이라는
꼬리를 달게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부부는
서로 아주 편안 사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마음을 진정 모르기에 박빙을 밟는것이 아닌가요
서로 조심하지 않으면
살얼음 깨지듯 금방 깨져
수렁텅이로  빠져 뒹굴고 마는거지요

당신 아니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당신 아니면 못 살것 같이 여겨도
가슴에 썩은 감정의 씨앗 움틀거리면
새싹은 돋아나질 않고 흔적만 남아 썩어지지요
썩은 씨앗이 되기전에
서로 예의를 지키며, 배려와 위하는 마음,
신뢰하는 마음으로 너그러운 삶을 채워가며
디딤돌과 버팀목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믿음의 씨앗을 잘 보다듬고 가꾸면

비로소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듯이
참 믿음의 싱그러운 사랑의 씨앗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러나 계속 어긋나면 회복하기 힘든게 부부
부부는 참으로 가깝고도 아주 머~~언 이방인

 

                               

   -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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