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이단성을 폭로한다(3): 교황

종교개혁의 중대한 기폭제 역활을 한 것은 루터가 등장하기  100여년 전 보헤미안 그리스도인인 얀 후스가  쓴 “교회 (De Ecclesia)”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가장 심오한 요지는 그 제목을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라고 한 4장이었다.

후스는“ 교황도 추기경도 거룩하고 전 우주적 교회의 머리가 아니고 또한 추기경들만이 거룩하고 보편적인 가톨릭 교회의 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는 그 시대의 교회 리더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주권을 멸시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직자들이 오히려  자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며 설교하는 자들을 미워한다.”라고 말했다.

후스는 이러한 그의 정직함으로 인하여, 그의 목숨을 잃었다.  그는 이단으로 선고 받았고, 1415년에 화형에 쳐해졌다.

그 후 100여년 후에, 이미 교황 제도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던 마틴 루터가 그의 저서 ‘교회’를 읽고,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지금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얀 후스’의 주장을 가르치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존 스터피츠”도 저와  마찬가지 이었구요.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한 마디로 모두 후스의 추종자들 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머리로서 교황은 종종  “거룩하신 아버지”, 혹은 “그리스도의 대리자” 라고 불린다. 그리나 이 호칭과 역할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교황은 성좌선언( ex cathedra)을 말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좌선언을 할 때에는 교황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무오성(무류성(無謬性))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서에 무엇을 보태거나 확대 시킬 수 있는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계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는 비성경적이고 불경스러운 권위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과시하고,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침해하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왜곡하고 있다. (*성좌 선언에 대한 아래의 역자주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종 교 개혁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이해했고, 그리고 담대하게 선포했다.  마틴 루터는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교황권이 진정한 적그리스도의 중심지라고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적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의무가 없는것 같이 교황에게도 순종할 의무가 전혀 없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칼빈은 “기독교의 강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과격하고 비판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 바울의 말을 그대로 옮겨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우리를 비난하는 것은 사도 바울을 비난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누가 다른 주제에 대한 바울의 말로 우리가 로마 교황을 부당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우리에게 반감을 갖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하여, 나는 그들이교황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은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간단하게 보여줄 수 있다. (존알렌번역본 4권, 7장)

칼빈이 인용한 바울의 말은 데살로니가 후서에 기록된 적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살후 2:4).

이 와 동일한 이해와 해석은 후에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에도 반영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교회의 다른 머리는 없다. 로마의 교황 역시 그 어떤 의미로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없고, 다만 그는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이요, 멸망의 아들이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이다.”  (25.6)

그러나 이것이 교황이 마지막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아니다.  요한일서 2:18이 말하는 것처럼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많은 거짓교사들이 항상 존재해 왔고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청교도 카튼 매더는 바빌론의 멸망이란 책에서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적그리스도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의 특성들은 로마의 교황에게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만약 누구든지 성경을읽고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 한다면 그들은 눈먼 맹인과 같다고 생각한다.”

스펄젼은 “예수님을 향한 기도”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청중들에게 말하기를 “적그리스도를 대항하고 적그리스도가 무엇인지에 대항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모든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나 영국의 천주교를 제외하고 적그리스도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계속해서 말했다.

앵글리칸 천주교이던 로마 천주교이던 상관없이 천주교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반대됩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이며 우리는 이들을 대항하는 기도를 해야할 것입니다.  모든 믿는자들은 적그리스도가 맷돌이 홍수에 던져져 다시 떠오르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해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도적질하며,  그리스도의 속죄의 자리를 성사들의 효험으로 대치 시키고,  빵 조각을 구세주의 몸으로 몇 방울의물을 성령님으로 둔갑시키고 , 우리와 같은 불 완전한 인간을 이 땅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세운다. 만일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대항하여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잘못은 미워하지만 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거짓된 교리를 혐오하고 몹시 싫어하지만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는 향기롭게 될 것입니다.

또 “영광의 그리스도”라는 설교에서 스펄젼은 말했다.

” 그리스도는 교황이 그의 영광을 도적질하라고 교회를 그의 피로 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저 한낫 죄인에 불과한 자가 모든 열방의 존경을 받으며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부르라고하며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늘에서 이땅에 오셔서 그의 마음을 다해서 그의 백성들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그의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5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라고 전한다.  교황은 누군가가 채워야  할 필요가 없는 권력의 자리에 스스로 앉아 있는 것일 뿐이다.

 

존 맥아더

* 역자주: 엑스 캐소드라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권위의 자석으로 부터’라는 말이다.(가톨릭 대사전은 이 말을 ‘성좌 선언’으로 번역했고, “교황이 성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대한 교리를 정의하는 일”로 정의했다.) 이는 교황 무류설을 말하는 것으로 교황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Available online at: http://www.gty.org/Blog/B130226/exposing-the-heresies-of-the-catholic-church-the-pope

COPYRIGHT (C) 2014 Grace to You

You may reproduce this Grace to You content for non-commerical purposes in accordance with

Grace to You’s Copyright Policy (http://www.gty.org/connect/Copyright).

가져온 곳 : 
카페 >개혁주의 마을
|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가정 생활의 필수 지혜 31가지
 
 
1476F00B4A36E0E31685F9
 
1.....마늘을 쉽게 까는 방법
요즘 마늘이 제철이죠
마늘 뿌리부분을 0.5mm자릅니다.
전자렌지에 마늘을 넣고 30초가량 돌립니다..
꺼내서 머리만 살짝 눌러주면 마늘 알맹이가 쏘~옥 빠집니다
이렇게 하면 마늘을 쉽게 빨리 깔수 있을 뿐더러
눈물,콧물,손이 짓무르는것을 막을수 있답니다..
 
2..양파 쉽게 까기
양파껍질까면서 양파 썰면서 눈물 한번 안 흘려본
주부님들 없으시죠?
저도 양파 까면서 자주 울었습니다...
양파를 잠시 물에 담가두었다 꺼내서
살짝만 껍질을 문질러도 손쉽게 벗길 수 있어요
양파의 매운 성분도 물에 녹아 사라져 양파를 깔 때
눈물이 나거나 손이 매운 것을 방지 할 수 있습니다..
 
3.마 가렵지 않게 껍질 벗기는법   
마 껍질을 벗길 때 손이 가려운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식용유를 조금 떨어뜨려
 손 전체에 바른후 벗기면기름이 손의 피부를 보호해 가렵지 않습니다 
이미 가려워진 경우엔식초 몇 스푼을 희석해서
손을 씻으면 가려움이 싸악 가십니다
 
4...쌀벌레가 생기는 것 막는 법
쌀벌레가 생긴 쌀통에 마늘을 넣어두면
쌀벌레가 싹 없어 진답니다
 
177A810F4A36E15475C101
 
5...시든 쑥으로 냉장고 냄새제거 하는 법
시들어 버린 쑥을 비닐봉지에 넣고 입구를 벌려
냉장고에 넣어 두기만 하면
나쁜 냄새를 제거하는데 아주 좋아요..
숯이 좋다고 시커먼 참숯을 냉장고에 넣어 두시는 분들 많으신데..
요즘 성큼 자란 쑥 조금 뜨더서 함 해보세요.
 
6...감자싹 나는것 방지법
사과를 하나 감자 사이에 넣어두면
감자에 싹이 나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7... 김 눅눅 해지지 않게 보관하는 법
김은 잘 못 보관하면 눅눅해지기 쉽고,
색이 변합니다,저도 경험을 해 보았어요.
그래서 먹지도 못하고 버리죠~
 신문지에 김을 넣고 공기가 안 통하도록 잘 싼 후에
김을 다시 한번 비닐 팩에 넣습니다
김을 냉장실이 아닌,
냉동실에 넣어 보관하면 공기 중의 수분을 막아
색이 변하지도 않고 오래도록
바삭바삭한 두고 먹을수 있습니다...
 
8...북어 보관하는 법
북어는 습기에 매우 약해 곰팡이가 발생하기 쉬워요
이럴때는 북어와 건조된 녹차잎을 함게 보관하면
방습과 방충을 해결할수 있습니다...
 
9...부추 보관하는법
부추가 시들었다면?간단히 찬물에 담가만 두면
다시 싱싱해 집니다
부추를 오래오래 보관하려면 부추를 살짝 데쳐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필요시 꺼내 사용하면 색상과 신선도가 오래오래 유지 됩니다...
 
10...농약 제거에 효과적인 녹차
야채나 과일에 묻은 농약이 걱정 된다면,
차를 마시고 남은 녹차를 버리지 말고,
다시 우려낸 물에 행굽니다
그러면 녹차에 사포닌 성분이 농약을 말끔히 없애 줍니다

 
 
  11...호두 쉽게 까는법
호두를 소금물에 하룻밤 정도 담가두면,
껍데기는 잘 부서지고 알맹이는
잘 쪼개지지 않아 요리하기 좋아요
 
12...남은묵 싱싱하게 먹는법
 남은 묵이 말라버렸을 때는
살짝 데치기만 하면 새로 한 묵처럼
말랑말랑~ 꼬들꼬들~ 해 집니다..
 
13...딱딱한 콩 부드럽게 먹는법
 콩은 딱딱해서 먹기가 힘들어요
이럴 때는, 콩을 삶을 때 천일염1%를 첨가하면
먹기 좋게 부드러워 질뿐 아니라,
소화 흡수율에도 도움을 줍니다
 
14...매밀가루 반죽하는법 
 
메밀가루는 끈기와 탄력이 부족해
잘 뭉치지 않고 쉽게 풀어집니다
이럴 땐 전분이나 달걀흰자위를 살짝 섞어주기만 하면
메밀가루가 잘 뭉쳐져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어요

15....더덕 껍질 액체 안 묻어나게 벗기고 싶을때
더덕은 껍질을 벗길때 더덕손질이 까다로운데,
더덕을 끓는 물에 재빨리 데쳐서 찬물에 담가 껍질을 까면
쉽게 까지고 또한 끈적끈적한 액체도 묻어나지 않습니다
 
16...결명자 비린 냄새 없애는 법
 결명자는 그냥 끓이면 비린내가 나서 먹기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서 사용해야
 비린내도 사라지고 맛도 더욱 고소해집니다..
 
17..씀바귀 보관법
씀바귀를 싱싱하게 먹고 싶다면
젖은 신문지에 씀바귀를 싸서 봉지에 넣고 공기를 불어 넣어
냉장보관하면 오래도록 싱싱하게 먹을수 있습니다..
 
18...시든 돌나물을 싱싱하게    
시든 돌나물을 다시 싱싱하게 먹고 싶다면
얼음물에 잠깐만 담그면 금방 파릇파릇 싱싱해 집니다
 
19....냉이 손질 하는법
 냉이를 쉽고 깨끗하게 손질하고 싶다면,
 
냉이는잔뿌리를 제거한후 물에 담가 흙을 가라앉히고
받아놓은 물에서 살살 흔들어서 여러 번 헹굽니다  
냉이는 꼭 받아 놓은 물에서 씻어야 한다는 사실!!
흐르는 물에서 씻으면 큰 뿌리가 손상되어
맛과 향이 손실되기 때문이다.
 
20...도라지 쓴 맛 없애는 법
도라지 특유의 쓴 맛을 없애기 위해선,
요리를 하기 전 도라지를  따뜻한 소금물에 넣어
여러 번 주물러 씻어줘야
쓴 맛도 사라지고,
도라지 특유의 쌉쌀한 맛은 되살아나 입맛을 돋아줍니다

  

21,...너무 짠 음식맛을 약하게 만드는 법
 이미 다 만들어진 음식에 간이 너무 짤 땐,
식초 몇 방을을 떨어뜨려 주면 짠맛을 약하게 만들어
맛이 한결 부드러워 집니다
 
22..청양 고추 만진 후 손에 남은 매운 기운 없애는 법
 청양 고추를 만진 후 오랫동안 매운 기운이 손에 남아있어,
피부가 화끈거렸던 경험이 있다면
이럴 경우 청양고추를 만진 후 손을 쌀뜨물로 씻으면
매운 기운이 사라집니다
또한 고추를 담은 반찬통의 매운 기운도 쌀뜨물에 담갔다
씻으면 쏙 빠져 다시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23..무우 속이 비었는지 감별법
 무를 고를 때 속이 비었는지를 확인 하려면,
무 잎을 잘라 그 단면이 파랗고 생기 있으면 속이 꽉 찬 것이고,
단면이 허옇게 되어있다면 속이 빈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콩나물밥 짓는 법
콩나물밥을 지을 땐, 밥을 뜸들일 때 콩나물을 넣어야
아삭한 맛도 살리고 비타민C의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25...고기 냄새 없애는 방법
고기를 재울때나 양념할때 계피가루를 넣으면
고기 특유의 냄새가 쏘옥 빠져 맛있는
고기 오리를 즐길수 있습니다...
 
  16799B0F4A36E43C5DDD3C
 
26..풋 매실인지 먹어도 되는 매실인지 구분법   
풋매실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매실을 칼로 잘라보는 것인데요
 칼로 잘라보아 씨 때문에 절반으로 잘려지지 않으면
먹어도 되는 매실이고,
쉽게 싹둑 잘리면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27...고추장 물이 든 그릇 깨끗하게 씻는법    
고추장을 담아 놓았던 그릇에 붉게 물이 들었거나 냄새가 날때는
쌀뜨물에 담갔다 씻어주면 새 것처럼 깨끗해 집니다
 
28...시든 상추를 싱싱하게 만드는법   
- 보관해 두었던 상추가 시들었을 때,
차가운 얼음물에 잠시 담가만 주면
다시 파릇파릇 싱싱해 집니다
 
29....현미밥 짓는 법
현미밥은 거칠한 질감 때문에 먹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때 일반 백미밥보다 물을 30% 더 넣어 지으면
밥이 물러져서 먹기가 수월해 집니다
 
 30....보리밥 짓는 법
보리밥은 까끌까끌해서 먹기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리밥을 짓기 전,
보리를 잘 씻어 물에 충분히 삶아준 다음 체에 건져 물기를 뺀 후,
쌀과 함께 섞어서 밥을 지으면 부드럽고
맛있는 보리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31....표고버섯밥 짓는 법
일단 말린 표고버섯을 물에 불린 후,
그 우려낸 물을 버리지 말고 밥물로 사용하세요
그래야 물에 용출되어 나온 몸에 좋은 성분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조그만 락엔락에 딱딱하니 마른표고버섯을
두~서너개 담고 물붓기***



[특별기고]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④ 교황무오 교리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이 무오(無誤)하다고 믿는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무엇을 결정·선포할 때 그에게 오류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교황이 결정하고 성명·선포한 것은 교회가 동의할 사안이 아니다. 타인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그 내용은 바뀔 수 없다. 후대의 교황이 바꿀 수 없다. 교황무오교리의 유효성은 하나님의 계시와 동등하므로 절대적이며 불변하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준 최상의 교도권(敎導權)이므로 비판·항의·거역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황무오교리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교리는 역사적·성경적 근거가 없다. 정당성 입증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기록되지 않은 성경’이라 일컫는 전통론과 더불어, 지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교황제국을 떠받쳐 온 권력지향적·배타적·독선적 기둥이다. 교회개혁을 방해한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고 금하는 것을 교황이 상반되게 선포해도, 그 명령에 항거하지 못하게 한다. 무조건적 순종·복종·맹종을 요구한다. 교황이 무오하다는 발상은 교황직을 신성불가침 영역에 두어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계급주의 제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이단적 발상이다.

1. 기록되지 않은 성경

교황무오교리는 사도직 계승론, 교계제도, 교황수위권 교리와 더불어, 로마가톨릭교회론의 바탕인 전통론에 기초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론을 이해해야 교황무오교리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다.

로마는 전통(傳統, tradition)을 전승(傳承), 성전(聖傳), 유전(遺傳), ‘기록되지 않은 성경’, ‘기록되지 않은 전통’, ‘전승되는 하나님의 말씀’ 등으로 표현한다. 무오(無誤)와 무류(無謬)는 같은 뜻이다. 개신교회는 전자를 로마는 후자를 선호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 초기부터 눈에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도 않고 실체 없이 전승되는 무엇이 교황에게, 교황과 더불어 주교단에게 계시로 주어진다고 믿는다. 교회 초기부터 전승되어 오는 교훈과 실천 관행과 구전(口傳)으로 전달되는 가르침을 일컬어 ‘거룩한 전통’, 곧 성전(聖傳)이라고 한다. 이것이 방치되지 않고 사도직 계승이라는 방법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되었다고 한다. 교황, 그리고 교황과 함께 하는 공의회가 이를 전유(專有), 독점하고 있다고 본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성경’을 모두 진리의 원천이라고 하면서도, 이 두 가지가 병립(竝立)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통과 성경이 나란히 있지 않고, 전자가 후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기록되지 않은 성경(전통)’이 수위(首位)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기독교 신앙에 구속력을 가진 전통, 성경, 교황의 교도권(敎導權)은 교차 관계에 있다. 독립적이지 않다고 한다.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뒤에 모인 트렌트공의회(1546)는 성경과 전통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라고 선언했다. “진리와 규범이 기록된 책들만 아니라 사도들이 그리스도 자신의 입에서 받아들이거나 혹은 사도들에게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 기록되지 않은 전승들 안에도 보존되어 있다(제1차 회기, 제1교령, <보편공의회문헌> 3, 663)”고 했다. ‘전통’의 계시를 따라 위경 7권을 구약성경에 포함시켰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성경은 73권이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도 전통의 계시성을 강조했다. “초자연적 계시는 기록된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에 담겨 있는데, 이 전통은 그리스도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와 사도들에 의해 수용되었거나 성경의 영감에 의해 그 사도들이 손에서 손으로 전수하여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앞의 문헌 806)”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1965)’은 복음과 전통을 논하면서 기독교 전체를 묶는 하나의 복음 전통이 있음을 인정한다. “전통과 성경은 밀접히 같이 매여 있고, 서로 공통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곧 성전과 성경은 하나님의 꼭 같은 샘에서 흘러나오며, … 같은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제9항)”라고 한다.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가시적 교회일치를 목적으로 고안한 ‘전통론(1963)’을 일부 수용한 결과이다.


‘계시헌장’은 “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제9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82조)”라고 한다. “성전(聖傳)과 신구약 성경은 거울과 같아서 하나님을 참 모습 그대로 얼굴을 맞대고 뵈올 수 있을 때까지 지상의 순례하는 교회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관상하며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받고 있다(제7항)”고 한다.


그리고 성경과 전통은 교회 또는 교황의 교도권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전승되는 ‘하나님 말씀’―전통은 모두 다 하나님의 계시이다. 베드로의 열쇠를 가진 자만이 이것들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열쇠와 교도권은 로마 교회의 수장에게 맡겨져 있다고 한다(계시헌장 제8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20조). 로마는 성경의 독립성·완전성·충족성을 부정한다. 성경과 전통과 교도권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계시의 영역이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권위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이 전통의 진행·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정경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은 전통―성전(聖傳)을 가진 자에게 있다고 본다. 전통의 산물인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현실화시키는 데는 전통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전통과 성경을 분리하거나 독립시키면 성경이 갖는 본래의 가치와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성경은 ‘항상 살아 있는 거룩한 전통’ 안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교황무오교리와 직결된 ‘성경과 전통’ 주제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사이에 가로놓인 루비콘 강이다. 진리의 원천은 하나인가 둘인가?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만이 교회와 신앙에 구속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만이 진리의 유일 원천이라고 믿는다. 성령의 직접적인 간섭과 영감 안에서 기록된 성경 66권만이, 신앙과 교리의 최종적인 척도이며 표준이라고 확신한다.


2. 교황무오교리

교황무오교리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 문헌 ‘영원한 목자’에 처음 나타난다. 당시의 교황 비오 9세(1846-1878)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행위로 선포할 때, 오류가 없다고 선언했다. “로마 교황이 권위를 가지고 말할 때, 곧 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자와 교사로서 자기의 직무를 수행할 때 그는 전(全) 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신앙교리 또는 도덕 문제들을 규정한다. 이때에 교황은 복된 베드로 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때문에 무류하며 결과적으로 로마 교황이 내린 정의들을 변경할 수 없다(Infallibility, The Catholic Encyclopedia VII, 1907, 796)”고 했다. 교황은 우주적 권력을 가진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직책상 완전한 최상의 전권을 가졌고, 믿음과 도덕, 그리고 교리 문제에 대해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교황을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만들어진 주교단도 무류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교도권 교리를 모든 신자가 굳게 믿어야 할 것”으로 재천명했다(교회헌장 제18조). “교황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기 형제들의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할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무오성을 지닌다(제25항)”고 한다.


‘교회헌장’은 교황무오교리가 신성불가침의 진리라고 선언한다. 교황이 결정 선언한 신앙(교리)과 도덕에 관한 것은 바뀔 수 없다. 교회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어느 누가 어떠한 이의제기도 할 수 없다. 상소의 대상이 아니다. 교황무오교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위탁이 펼쳐지는 그 만큼 펼쳐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891조)”. 성경과 전통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교리이다. 변개할 수 없다. 교황이 공적으로 결정·성명·선언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는 나중의 교황, 공의회가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교회헌장’은 주교단도 교황이 지닌 무오성과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교황과 더불어 결정할 때”라는 제한 조건을 붙인다.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고 교도권을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제25항)”고 한다.


교황무오교리에 대한 신성불가침 선언은 교황 제국(Papal Monarchy) 건설에 몰입하던 중세기 교황이 선언한 ‘우남상탐(Unam Sanctam, 1302)’을 연상시킨다. 지상에서는 하나의 거룩한 권력(One Holy)만 존재한다. 한 목자 아래에 한 양떼가 있을 뿐이다. 세상 권력은 영적 권력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영적 권력의 오류는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한다고 했다. 교황과 교회의 탐욕스런 세속적 야망을 담은 ‘우남상탐’은 교황 인노센트 3세(1198-1216)가 저지른 신앙과 교리의 오류였다.


예수께서는 로마가 ‘첫 번째 교황’으로 간주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이라고 꾸짖었다(마 16:23). 자신의 대속사역 곧 신앙 교리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교황 바오로 5세(1605-1621)와 우르반 8세(1623-1644)는 천동설이 교회의 해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 목록에 올리고, 갈릴레오를 고문하고 종교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교황이 저지른 교리적 오류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세인들을 고려하여 교황무오교리에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 그르침이 없다(교회헌장 제18조)”는 단서를 붙였다.

교황무오교리의 심각성은 그리스도와 교황을 동격화하고, 나아가 교황, 교황좌, 교황과 주교들로 구성된 교계(敎階)를 신격화, 절대화하는 데 있다.

기독교 전통 가운데는 신빙성이 있는 것들도 있지만(살후 2:15; 고전 11:23; 고전 15:3-11), 그렇지 않은 것들(마 15:2-3, 골 2:8)도 있다. 장로들의 유전인 손 씻는 규례, 할례, 철학, 신화, 민담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과 동격(同格)의 권위를 가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은 성경해석을 독점할 권위를 가진 신성불가침의 인물이나 교회를 허락한 적이 없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성경을 해석하는 정확하고 무오한 법칙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새로운 계시 또는 인간의 전통 등 그 무엇도 기독교의 성경 66권에 첨가할 수 없다고 한다(제6조). 로마가톨릭교회가 앞세우는 배타적 교도권이나 ‘거룩한 전통’은 필요하지 않다고 명시한다(제5항).


3. 역사의 반증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스 큉 교수(1929-)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과 교황무오교리를 비판하다가 가톨릭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했다. 큉은 이 교리가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했다. 교황, 주교단, 공의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보존하고 그릇되지 않게 해석할 수 있는 오류 없는 교도권을 부여받았다는 교리의 증명 불가능성을 입증했다.


큉의 <과연 무오한가?(1970)>는 로마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오류들, 교황제도의 폐해, 교황, 공의회, 주교단이 저지른 오류들을 소개한다. 로마가톨릭교회 바깥에서 이 교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안에서도 의심스럽고 모호한 교리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황무오교리의 오류, 곧 ‘교황의 교도직 수행의 오류 없음 교리’의 불합리하고 어두운 면들을 아래와 같이 열거한다(Hans Kung, Infallible?, 1994, 27 이하).

제9세기의 교황 니콜라오 1세(858-867 재위)가 동-서방교회 분열의 책임자로 매도된 포티우스를 파문한 것은 오류이다. 이 파문을 추인한 제4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869-870)의 결정은 오류이다. 1054년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미카엘 세룰라리우스를 파문하고 정교회를 일방적으로 정죄한 일도 교회(교황, 공의회, 주교단)의 오류이다.


교회의 교도권을 가진 자들(교황, 주교)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했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차례 타협을 했다. 이들이 가르침을 바꾼 것도 오류이다. 교황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를 단죄한 사건은 신앙적 오류이다. 큉은 교회가 인도, 중국, 일본에서 새로운 형태의 예배 형식과 조상제례를 둘러싼 갈등을 비난하고 정죄한 바, 이것은 로마가톨릭 선교를 실패하게 한 큰 규모의 실수였다고 말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 때까지 로마가 시행한 정죄 또는 출교 결정권은, 교황의 중세기적 지상통치권을 떠받쳐 온 수단이었다. 교회는 20세기 초 성경 각 권 저자들에 대한 비평-역사 방법론을 사용한 신학자들을 정죄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역사와 문학 장르 연구를 단죄했다. 교의학의 현대적 발전에 이바지한 학자들을 처벌했다. 금서 목록을 만들고 내용을 정밀 조사했다. 모두 교황의 그릇된 결정이다. 이 과정에서 신학은 교권을 도왔고, 교권은 신학에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 하나가 교황무오교리이다.


교황들이 회칙과 교령을 빌미로 많은 신학자들을 처단한 일은 교황무오교리가 성립 불가함을 반증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에 프랑크 지방 주교관의 문서고에서 850년경에 발견된 ‘이시도리아 법’이라는 위서(僞書)를 가지고 로마교회 주교의 수위권(Supremacy)을 증명하는 데 사용했다. 교황무오교리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입증한 사건이다. 이 가짜 문서는 교황 수위권에 관한 내용이다. 교황이 홀로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고, 최고의 판단자이며, 교황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주교를 파면할 수 없으며, 전 세계에 권한을 행사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공 피임법을 불허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1968)’은 교황무오교리가 성립 불가함을 입증한다. 교황청은 시기를 조절하는 자연적 피임법이 ‘자연법’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허용하면서도, 인공적 수단을 사용하는 피임법은 불허했다. 교황의 가르침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을 구분하는 바,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스토아주의-고행주의에 바탕을 둔 중세기 발상이며, 성(性)에 대한 인간의 생물학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경험과 사상에 불일치한다. 기독교 진리가 아니라 마니교적 유산이다. 지금부터 약 350년 전의 갈릴레오 정죄 사건의 재현이다.

교황청이 인공 피임금지를 명하면서 이를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특별한 직무(magisterium extraordinarium)에 호소하지 않고, 그르칠 수 있는 일상적 직무(magisterium ordinarium)의 권위로 지시한 것도 오류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고 무죄한 자를 살해하는 행위를 잘못이라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특별한 직무에 속한다. 그러나 산아제한 문제는 일상적 직무이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제25조가 명시하는 주교직의 특별한 직무에 대한 정의와 불일치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각각의 주교들이 무류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제25항)”라고 한다. 주교들이 사도들의 계승자라면, 그리고 교황무오교리가 정당하다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그것을 즐기고,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25항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신앙과 도덕의 사항들을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주교들이 하나의 의견을 확정적으로 고수하여야 할 것으로 합의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류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는 진술로 연결된다. 인공적 피임금지가 정당화되려면 자연법이 아니라 하나님 계시의 말씀(성경)에 부합해야 한다. 성경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사실상 ‘장식 기능의 역할’을 할 뿐이다. 모세오경에 자연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로 산아제한을 금지한 회칙은 성경이 주장하는 결혼의 존엄성과 불일치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선포한 교황무오교리는 신학적 논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 아니므로, 신빙성이 없다. 강압적 분위기에서 중세기적 교황 권력에 매력을 느끼며 옛 로마가톨릭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열정을 가진 교황 비오 9세가 정치적 동기로 결정했다. 공의회가 모이기 전, 반계몽주의와 반합리주의적 낭만주의 정신을 가진 복고파 운동이 광범위하게 교회와 가톨릭 교회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통치 동안 혼란을 겪은 유럽은 평화와 질서를 바랐고, 정치적·종교적 안정을 유지한 기독교 중세기를 그리워했다. 교황보다 그것을 더 그리워한 사람이 있었겠는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전통주의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성직주의는 반성직주의를 부추겼다. 성직자들은 신학자들의 과학 방법론 도입과 쇄신파 운동에 변증적 자기 방어 자세로 대응했다. 교황무오교리는 이러한 강압적·정치적 풍토에서 만들어졌으며, 교황이 교도직을 잘못 사용한 결과이다.


4. 성경의 반증

큉은 교황무오교리가 성경이 뒷받침하지 않음을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Hans Kung, Infallible?, 63 이하). 첫째, 교황무오교리는 성경이 보증하지 않는다. 교황무오교리는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교도직’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교황, 주교들, 신학자들은 성경이 아니라 당대 일반 문화에 적합한 이성적 표본에 따랐다. 로마가톨릭교회도 개신교회처럼 성경을 신앙의 규범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이 제공하지 않는 것은 전통―성전(聖傳)이 제공한다고 본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전통을 계시에서 파생된 성경과 동등한 계시 영역으로 간주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경, 전통, 교도권의 불가분의 관계를 말한다. 공의회는 교회의 갱신을 위한 궁극적인 규범, 수위적 규범(supreme norm)이 무엇인지 논의했고, 새로운 공적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명시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와 마찬가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교황무오교리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았다. 성경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도, 밝히지도 않았다.


둘째, 교황무오교리는 로마 감독을 포함한 주교들만이 사도직의 계승자들이라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의 무오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사도단이든 사도 개인이든 어떤 형태든 간에, 누구도 오류 불가능성을 말한 바 없다. 사도들은 기본적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자로 보냄을 받았다. 그들은 무오성을 선언할 만큼 영웅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 연약한 인간, 보배를 가진 질그릇(고후 4:7),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요 15:5)라고 했다.


복음서들은 베드로, 요한,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 전과 후에도 연약하고, 어리석고, 인간적이며, 실수 많은 사람이라는 특징을 예증(例證)으로 삼고 있다. 베드로는 실수가 많았다. 신속하게 해야 할 사도적 임무 수행(mission)을 지체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 사도들은 인간 이상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바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형제들에게 위로와 중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엡 2:20; 고전 12:28; 계 21:14)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인 의미에서나 직무상으로나 자신들의 무오성을 말한 바 없다. 실수나 오류의 불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없다.


셋째, 교황무오교리는 로마교회 주교가 사도직의 계승자라는 교리에 기초한 바, 이 주장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주교들이 사도들의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의미의 계승자들이라는 근거가 없다.


넷째, 교황은 주교가 교회의 교도직임을 맡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교리는 성경적으로 입증 불가능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 바울은 사도, 선지자, 교사를 통합하는 단일화 경향을 공박했다(고전 12: 28). 공의회가 교황무오교리를 뒷받침하려고 내세운 성경구절들은 로마가 베드로 교구의 법적 수위권의 근거로 삼는 데 무리하게 사용해 온 본문들이다. 성경은 교황의 수위권(Supremacy)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인용되는 성경구절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베드로의 계승자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교회의 주교직, 교황직 또는 교황의 무오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은 교황무오교리의 근거인 전통―성전(聖傳) 교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로지 복음의 영(靈) 안에서 이루어진 목회와 교도(敎導) 활동의 연속성을 말할 뿐이다. 로마교회의 주교가 아니라 베드로 개인의 영적·카리스마적 사역을 언급한다. 로마가 가지고 있는 문서 중 어느 것도 교황무오성을 말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 바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황무오교리를 확신시킨 로마가톨릭 신학자는 아무도 없다.

큉의 비판을 조리 있게 반박한 신학자는 없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칼 라너 교수가 “큉이 과연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인지 의심스럽다(Karl Rahner, ‘Kritik an Hans Kung,’ Stimmen der Zeit 1970, 12)”고 궁색한 비난을 한 정도였다. 큉은 신학교수직을 해임당했으나 사제직을 유지하고 있다.


5. 세계교회협의회의 태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론과 교황무오교리를 사실상 인정해 준다. 신앙무차별주의와 래티튜디나리안주의(latitudinarianism)를 표방하면서, 한 통 안에 물과 기름을 함께 담으려 한다. ‘오직 성경’ 원리와 기타 중요한 개신교회 신앙의 정박지를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 교리들을 묵인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에 가로놓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WCC는 로마와 가시적 교회일치를 꾀할 목적으로 전통론(1963, 몬트리올보고서)을 만들었다. 기독교 전체를 일컫는 ‘전통’을 강조하면서, 성경과 전통이 하나의 샘, 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온다고 한다. 하나의 복음 전통(Tradition)에서 성경과 여러 가지 유형의 교회 전통들(traditions)이 나왔다. 계시의 유일의 원천인 하나의 복음전통(Tradition) 또는 기독교 전체로서의 전통에서 성경과 전통들 곧 각 교회, 교회 전통들(traditions)이 유래했다. 새 세대대로 전달되는 복음 그 자체를 의미하는 ‘전통(대문자 T)’과 그 하나의 전통에 대한 교회들의 다양한 표현들을 의미하는 ‘전통들(소문자 t)’은 구분된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전통(the Tradition of his revelation)’을 등장시켰고, 거기서 여러 유형의 교회들, 교회 전통들이 파생했다고 한다(WCC, Scripture, Tradition and Traditions, 1963, para.42, 42-63 참고).


WCC 전통론에 따르면, 16세기 종교개혁기로부터 쟁점이 되어 온 성경과 전통의 관계, 그리고 그것에서 발견되는 모순과 불일치는 하나의 주변적인 무엇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과제는 성경 가르침이 아니라 기독교 안의 전통들(소문자 t)과 유일한 복음전통(대문자 T)을 구별하고 이 두 가지의 관련성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WCC 전통론을 작성한 신앙직제위원회 몬트리올대회는 로마가톨릭교회가 파송한 신학자들을 옵서버로 참가시켰다. 이들은 WCC 전통론 고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은 기존의 두 원천 이론과 달리 전통과 성경이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나와 …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계시헌장 제9항)”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전통이 하나의 원천―복음전통(대문자 T)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성경과 전통(소문자 t)들이 모두 한 전통(대문자 T)의 산물이라고 한다(계시헌장 제7항).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전통들’이라는 복수 용어를 사용한 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통’이라는 단수용어를 사용했다.


WCC 전통론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교회라는 인간 제도의 전통(소문자 t)과 대등한 위치에 둠으로써, 특별계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종교개혁 운동이 강조한 ‘오직 성경’ 원리를 버린다. 성경이 분명히 제시하는 것도 상대적인 무엇으로 해석하게 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그 교회의 전통―성전(聖傳)이 유효하다고 인정해 준다. 교황무오교리, 사도직 계승교리, 교황 수위권교리, 계급주의 교회제도, 교황 중심적, 법률적, 패권주의적 전통을 묵인·인정한다. 가경들을 정경에 포함시킴을 비판할 수 없게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만이 ‘기록되지 않은 성경’을 가졌다는 주장을 묵인한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성경과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개신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복음 안에서의 진정한 하나됨을 방해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WCC에 일부 가담하면서도, 교회 교리를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교황권 권위에 추호의 의구심도 표출하지 않으며, 로마의 교리 규정에서 한 걸음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 로마가 기존의 교리를 양보, 포기하면 교황무오교리가 옳지 않음을 입증하는 격이 된다. 로마가톨릭교회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의 버팀목을 빼버리는 행위가 된다.


6. 프로테스탄트 정신

교황무오교리 논의의 신학적 핵심 요지는 교회, 교황, 공의회의 결정, 가르침, 교도권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히’ 위배될 때 신자는 이에 항의(protest), 거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로마는 인간인 교황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가두고 신자들에게 무조건 순종할 의무만을 강요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를 상대로 목숨을 건 혈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까닭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교회, 공의회, 교황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많은 오류를 범해 왔으며, 성경과 상반되는 결정, 지시, 교리를 공표할 경우 기독인은 교회, 교황, 공의회에 항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개신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나치독일 치하에서 독일 국가교회는 ‘우상숭배’를 했다. 당대 독일의 유명한 지식인, 신학자, 목사, 지도자들은 앞장서서 ‘히틀러 만세’를 외쳤다. 독일교회는 살인 행진에 열성적으로 동참했다. 일제 말기 한국장로교회도 우상숭배를 행하기로 결정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우상숭배를 할 것을 공적으로 결정한 예는 전무후무하다. 교회는 순종하지 않는 신자들을 출교시켰다. 평양노회는 주기철 목사가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그의 목사직을 파면했다.

예장 고신교단이 가진 교회론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친 것에 상반되는 교리·고백·실천을 교회가 명했을 때 기독인은 이에 항거(protest)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지식산업사, 2000)>이 상론한다. 네덜란드개혁교회 헌장 제31조는 중세기적 교권과 사악한 교회로부터의 해방 또는 자유(liberation)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교황무오교리는 인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황은 인간이며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아니다. 비록 성령이 함께하며 그 안에서 역사하지만, 교회는 인간 집단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교회·교황·공의회는 수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기독교 역사를 ‘범죄사’로 규정하는 교회사가도 있다. 한때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였던 카를하인츠 데쉬너(K, Deschner)는 자기 일생을 헌신하여 6권의 교회 기독교 범죄사를 저술했다. 기독교회의 역사는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이다. 동시에 인간들의 오류·추문·범죄의 역사이기도 하다.


맺음말과 질문

교황 바오로 2세는 새 천년기가 시작되는 2000년 3월 12일, 바티칸 베드로대교회당에서 ‘용서의 날’ 미사를 집전했다. “기억과 화해: 교회의 과거의 과오들(2000)”을 발표했다. 가톨릭교회가 교회가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고, 정복주의 야욕을 채웠으며, 성경적 진리를 신봉하는 자들을 죽인 과거사를 참회했다. 유태인과 무슬림에게 특별한 용서를 구했다. 한글 번역문은 필자의 <양심선언과 역사의식(2000)> 부록에 실려 있다. 바오로 2세의 참회고백은 교황들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도권 행사에 그릇됨이 많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무오교리를 변함없이 신봉하고 있다. 모순(矛盾)은 이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어느 교회당 고백실에서 이름 모를 사제에게 무릎을 꿇고 참회고백했다. 자신이 죄인임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역사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교황무오교리를 폐기처분한다고 선언하지 않겠는가? ‘전통’을 계시로 여기는 그릇된 교리를 과감히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를 성경이 보여주는 초기교회의 모습으로 개혁하지 않겠는가? 로마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의 일치의 시대를 열지 않겠는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



    仙景
    a1.jpg

    a2.jpg

    a3.jpg

    a4.jpg

    a5.jpg

    a6.jpg

    a7.jpg

    a8.jpg

    a9.jpg

    a10.jpg

    a11.jpg

    a12.jpg

    a13.jpg

    a14.jpg

    a15.jpg

    a16.jpg

    a17.jpg

    a18.jpg

    a19.jpg

    a20.jpg

    a21.jpg

    a22.jpg

    a23.bmp

    a24.jpg

    a25.jpg

    a26.jpg

    a27.jpg

    a28.jpg

    a29.jpg

    a30.jpg

    a31.jpg

    a32.jpg


 Alexander Warenberg & His Orchestra - Old Melody (From The Deerhunter)

'Amazing N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 운무 속의 자이언 캐년  (0) 2014.09.07
환상의 세계  (0) 2014.08.29
결코 마르지 않는 폭포  (0) 2014.08.06
나이아가라폭포(The Niagara waterfalls)  (0) 2014.08.02
결코 마르지 않는 폭포  (0) 2014.08.01

어느 쪽 명령을 따르는가?

대장쟁이
ㅇ 로마서 6장 13절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ㅇ 로마서 6장 16절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성경은 세례를 예수와 합하여 죽는 것으로 말씀하면서 동시에 애굽 세상으로부터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를 지나며 세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는 애굽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광야엔 오직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천국에 비유되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험한 광야를 전진해 나갈 뿐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군대'라고 부르십니다.
민수기를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군대편제로 편성하십니다.
무기도 없고 훈련도 한 번 안 받아본 오합지졸들로 말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 남자 20세 이상 60만이 넘는 대군을 열 두 지파, 12개 사단병력으로 나누시고, 동서남북에 3개 사단병력씩으로 군단을 배치하시고, 레위지파로 본부참모, 모세를 야전사령관으로 삼으시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휘통솔을 하십니다.

“약진 앞으로! 부대정지! 오늘밤은 여기에서 야영한다, 텐트치고 은폐엄폐 실시! 아침 다섯 시 기상, 식사시간이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이거 완전 군대입니다. 최종공격목표는 가나안 고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열두 정탐군의 보고를 듣고는 ‘우리가 메뚜기? 아고, 다 죽었구나,’ 싸워보지도 않고 통곡을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집단항명을 하고 단체탈영을 시도합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전능하신 총사령관이신 하나님, 한 사람의 전사자도 없이 전원 가나안에 입성하게 하실 능력의 하나님을 믿지 못 하고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 심리전에 말려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군대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 가나안 땅 천국으로 가려고 하나님의 군대에 합류했습니다. 세례를 받아 홍해를 건넜습니다.
우리는 이제 절대로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되돌아가면 하나님으로부터는 근무지 이탈이요, 탈영병이라 총살감이고, 세상으로부터는 배신자요, 적군이라서 교수형감입니다.

오늘 로마서는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2-13)"

이 말씀은 좋은 말로 “너희를 살리려고 아들을 내어 주었잖니? 너희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죽었지 않니? 그러니 너희도 이렇게 해 주면 참 좋겠구나.” 이런 식으로 부드럽게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게 아닙니다.
사령관의 명령입니다.
“이제는 죄가 너를 주관치 못 하게 하라, 죄가 너의 몸의 왕 노릇 하지 못 하게 하라, 죄의 명령과 지시를 받지 말라. 너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려서 이적행위하지 말라. 너희를 하나님께 드리라, 저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추상같이 엄한 명령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으면서도 적당히 죄를 짓고, 주님 싫어하시는 줄 알면서도 죄 가운데 살고,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애굽의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름이 없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올바른 믿음과 신앙고백 없이 홍해를 건넜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군대지 속으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양심이 더러운 죄를 씻지 못 한 가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가짜성도는 아니라고요?
가짜 성도가 아니라면 왜 세상 죄의 유혹을 떨치지 못 하고 죄의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까?
이 편 군대에 속하였으면서, 왜 저 편의 지시와 명령을 받고 따르느냐 말입니다.

'이응한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리하는 군병  (0) 2014.09.07
우리가 그럴지라도  (0) 2014.09.01
그 순종이 어떤 순종이었는지  (0) 2014.08.12
예수 우리 하나님  (0) 2014.08.03
너는 내 앞에서 걸어 완전하라  (0) 2014.07.30

케네디 암살

 

댈러스를 배회하는 케네디의 유령

 

▲ 19일 새로 공개된 케네디 암살 직전의 사진. 동영상은 케네디 암살 박물관 홈페이지(www.jfk.org/home.htm)에서 볼 수 있다.

ⓒ2007 Six Floor Museum 제공

 

지난 19일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 직전 상황을 보여주는 새 동영상이 공개됐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조지 제프리가 40년 넘게 보관해 온 동영상을 미국 대통령의 날에 맞추어 댈러스 케네디 암살 박물관(Six Floor Museum)이 공개한 것. 이 동영상에는 케네디가 암살된 댈러스시 다운타운 옛 텍사스 교과서 보관창고(Texas School Book Depository) 건물 앞을 지나기 직전 90여 초 간의 장면이 담겨 있다.

암살 진상조사 과정에서 아브라함 자프루더의 동영상 등 여러 편의 동영상이 공개됐으나 새롭게 공개된 동영상은 케네디의 부인이었던 재키 케네디의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가 암살된 이후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미국의 언론들은 이 동영상의 공개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공식 언론 말고도 암살 장소 인근에는 아직도 케네디 암살 관련 음모론을 믿으며 관련 책자를 파는 사람들이 있고, 그 책자를 소중하게 구입하는 하루 수 천명의 관광객들이 있다.

이 관광객들은 암살 박물관 1층 공식 기념품점보다 음모론 관련 기념품만 모아 놓은 '음모론 박물관(Conspiracy Museum)'을 더 많이 찾는다. 미국인들은 '케네디'라는 이름이 주는 상징성에 흥분하고 그의 암살 이후 나타난 '집단 트라우마(trauma,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서 아직 회복되지 못한 듯 하다.


결론이 다른 두 진상조사

케네디 암살 이후 진상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첫째는 암살 직후인 1964년 케네디에 이어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에 의해 구성된 '워런 위원회(Warren Commission)'였다. 이 위원회는 케네디 암살 후 2시간 만에 붙잡힌 전 해병대 저격수 리 하베이 오스왈드에 의한 단순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체포 직후 자신은 "희생양(patsy)"이라고 주장했던 오스왈드가 잡힌 지 이틀 만에 잭 루비에 의해 암살되고, 교도소에서 잭 루비마저 폐렴으로 죽어 사건의 진상이 묻힐 뻔 했다. 하지만 케네디 암살은 한 검사의 용기 때문에 다시 파헤쳐 지게 됐다.

1967년 뉴올리언스주 검사였던 짐 게리슨은 케네디 암살 음모 혐의로 지역 유지였던 클레이 쇼를 법정에 세웠다. 이 재판은 케네디 암살 진상조사를 다시 하라는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미 연방 하원은 1976년 '암살특별위원회(HSCA, the House Select Committee on Assassinations)'를 구성해 케네디 암살 사건을 다시 조사했다.

HSCA는 워런 위원회와 달리 "음모의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내려 전 미국을 뒤흔들었다. HSCA의 결론은 91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 JFK >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 케네디 암살 장소인 댈러스시 다운타운 엘름(Elm) 도로에 온 관광객들. 사진 오른편 도로 가운데 X표시(원 안)가 케네디 전 대통령이 두 번째 총알을 맞고 즉사한 장소.

ⓒ2007 신기해


단독범행 vs. 제2의 암살자


음모론의 핵심은 "오스왈드 외에 제2의 암살자가 있었다"는 것. 암살자가 2명 이상이라면 암살은 누군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계획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누군가'의 정체를 밝히는 게 사건의 핵심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오스왈드 단독 범행이냐, 제2의 암살자가 존재하는가라는 논쟁은 각각의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팽팽하게 진행됐다.

단독 범행의 증거는 오스왈드가 총을 쏘았던 텍사스 교과서 보관창고 6층 바로 아래층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위층에서 3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한 증언,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총에 오스왈드의 지문이 묻은 것, 케네디가 타고 있던 차와 그 인근에서 발견된 3발의 탄알이 모두 한 종류라는 것, 아브라함 자프루더의 동영상에는 뒤에서 총을 맞았기에 케네디의 피가 앞쪽으로만 터진다는 것 등이었다.

반면, 제2의 암살자가 존재한다는 측은 워런위원회 조사 당시 케네디 앞쪽에서도 총성이 들렸다고 한 35명의 증언, 총에 맞은 케네디를 보호하며 병원까지 호송한 경호원 클린트 힐과 병원 의사들이 "케네디 대통령의 오른쪽 뒤편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 총알이 앞쪽에서 날아온 것으로 짐작케 한 증언, 전 해병대 저격수 훈련교관들이 "오스왈드가 가진 이탈리아제 '만리커 카르카노' 총으로는 워런위원회가 조사한 대로 2.3초 안에 2발의 총알을 발사할 수는 없다"고 한 증언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음모론, CIA에서 이스라엘까지

제2의 암살자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암살을 계획한 세력들의 정체에 대해 나름의 논리를 펴 왔다.

가장 유력한 것은 CIA 연루설. 케네디 이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쿠바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피그만 침공' 계획을 세웠다. 케네디 취임 직후인 61년 이 계획은 실행됐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CIA에 대한 케네디의 신뢰가 추락했다. 이후 CIA의 해외 공작을 케네디가 자주 제지하면서 CIA는 대통령을 갈아치울 계획을 세웠다는 것.

케네디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 뇌물 수수 등 자신의 정치적 스캔들을 책망하던 케네디를 죽이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려 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동서 냉전이 최고조를 이루던 당시 소련이 케네디 암살에 개입했다는 주장은 물론, 가톨릭 신자였던 케네디가 아랍 정부를 옹호하고 자신의 핵개발을 저지하려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보조직이 케네디를 죽였다는 음모론까지 대두됐다.

▲ 10년 이상 케네디 암살 장소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음모론 관련 책자를 팔고 있는 제임스씨와 그가 파는 '음모론 신문'.

ⓒ2007 신기해

 

음모론 전도사들 "이 사진을 보세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케네디 암살. 미국 사람들은 공식 진상조사 결과 보다 음모론에 더 솔깃하다. 2003년 ABC 방송의 조사에서 70%의 미국인들은 아직도 "케네디가 음모에 의해 살해됐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케네디 암살 장소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10년 이상 음모론을 소개하는 책자를 팔고 있는 제임스를 만났다. 그는 그 70%의 미국인들 중 한 명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세요. 케네디가 타고 있던 차가 지나가려던 저 앞쪽 다리 위에 정체 모를 한 사람이 급히 몸을 숨기는 게 보이죠. 그가 분명 제2의 암살자였을 겁니다. 그 동안 진상위원회는 이 사진을 전혀 조사하지 않았어요. 다리 위에는 분명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하수구가 있어 이 암살자가 다른 곳으로 쉽게 피할 수 있었는데 위원회는 조사하지 않았죠."

곁에서 그의 설명을 듣는 서 너 명의 관광객들은 그의 말을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가 설명한 다리를 연신 카메라에 담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 중 몇 명은 주머니를 털어 제임스가 건낸 잡지와 신문을 사 들었다.

같은 장소의 또 다른 음모론 전도사인 로버트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그림을 보세요. 진상조사 위원회는 오스왈드가 쏜 첫 번째 총알이 케네디의 목을 통과한 뒤 케네디 앞쪽에 타고 있던 당시 텍사스 주지사 코넬리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통과했다고 밝혔죠. 하지만 왼쪽으로 날아가던 총알이 어떻게 방향을 갑자기 바꿔 코넬리의 오른쪽 어깨를 지날 수가 있죠?"

▲ 음모론 박물관

ⓒ2007 신기해

 

케네디 암살 공식박물관이 있는 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는 사설 '음모론 박물관'이 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잠시 문을 닫았으나 한창 음모론에 대한 전국적 관심이 일 때는 하루 수 백 명이 이곳을 들렀다. 공식 박물관보다 관광객 수가 더 많았던 것.

이 박물관에는 케네디 암살과 음모론을 보도한 당시 신문들, 오스왈드와 그를 암살한 잭 루비에 대한 기사와 소장품들, 음모론 관련 각종 책자들이 전시돼 있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통령

이런 음모론에 대한 끊이지 않는 관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암살 사건을 둘러싼 추리 자체가 매력이기도 하지만 케네디에 대한 미국인들의 진정한 추모에서 나온 관심이다.

재임 기간 3년이 채 안 되는 대통령에 대해 미국인들은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나, 노예 해방의 영웅 에이브러햄 링컨만큼이나 케네디에 대해 존경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가 남긴 프론티어 정신, 우주 계획, 쿠바 미사일 위기 타개 등의 업적은 이런 존경의 부차적인 원인이다.

43세에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미국인들의 뇌리에 '희망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외교관의 자녀로 태어나 프린스턴,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그가 2차 대전에 형과 마찬가지로 해군으로 참전해 목숨을 무릅쓰고 부하를 구해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었다.

신기해 기자

오마이뉴스 2007-02-24

 


 

케네디 암살 음모론 또 다시 '모락모락' 

케네디 암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주장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의혹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前) 미 연방수사국(FBI) 소속 금속 전문연구원 윌리엄 토빈을 비롯한 탄환 전문가들은 '존 F 케네디 전(前) 대통령이 리 하비 오스왈드가 쏜 2발의 총탄을 맞고 암살됐다'는 미 정부의 결론을 반박,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총탄 파편 성분을 화학적·통계적으로 새롭게 분석한 결과 2발 이상의 총탄이 대통령을 관통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어 탄환 전문가들은 이제껏 잘못된 증거에 근거해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이 단독범행에 의한 것이라 정당화해 왔다며 미 정부는 지난 1963년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됐을 당시 몇 발의 총알을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총알 파편들을 재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렌위원회로 알려진 케네디 암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1964년 오스왈드의 총기에서는 3발의 탄환이 발사됐으며 이 가운데 1발은 빗나가고 2발만이 대통령을 관통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에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미 의회 하원은 오스왈드 이외에도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제2의 암살범이 쏜 총탄은 케네디 대통령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하원의 근거는 총탄 파편을 분석한 결과 파편들의 성분이 2개 이상의 총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유사했다는 것.

하지만 토빈을 비롯한 탄환 전문가들은 오스왈드의 총에서 나온 다른 탄환들도 모두 유사한 성분으로 이뤄졌으며, 더 나아가 탄환 30개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암살 현장에서 발견된 파편 가운데 1개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이는 암살에 사용된 탄환이 3개 혹은 4개였음을 의미한다"며 "만약 암살에 사용된 총탄 파편들이 3개 혹은 4개에서 나온 것이라면,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배혜림기자 beh@newsis.com

워싱턴=로이터/뉴시스 2007-05-20

 


 

 마피아 두목 딸 "케네디 암살은 마피아 소행"

 (시카고 UPI=연합뉴스) 존 에프 케네디 미 대통령 암살 사건은 당시 시카고의 암흑가 거물이었던 샘 지앙카나가 부하들에게 시킨 일이라고 지앙카나의 딸이 주장했다.

1984년에 "마피아 공주"(Mafia Princess)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 회고록을 냈던 지앙카나의 딸 앙투아넷 지앙카나(70)는 곧 출간될 "JFK와 샘:지앙카나와 케네디 암살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책은 1960년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던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가 일리노이주에서 승리해 대선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도록 마피아가 지원하면서 당선 후 마피아에 관대한 자세를 보일 것을 기대했으나 케네디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앉히고 마피아를 단속했다고 암살 배경을 기술했다.

샘 지앙카나는 1975년 시카고 지역의 자택 지하 주방에서 총에 맞아 피살됐으며 이 책에는 당시 미중앙정보국(CIA)이 지앙카나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돼있다.

이달 중 출판될 217쪽 짜리 이 책은 신경과 의사 존 휴즈와 정신과 의사 토머스 조비가 앙투아넷 지앙카나와 공저한 형식으로 돼있으나 대부분의 자료 조사와 저술은 휴즈가 했다.

휴즈는 시카고 선타임즈지와의 회견에서 앙투아넷 지앙카나를 저술에 끌어들인 데 대해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5-10-11

 


 

‘케네디 암살’ 음모론이 살아나고 있다


 ▲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11월 22일 저격 당하기 1분 전 카퍼레이드 하는 모습.


케네디 암살 음모론이 살아나고 있다
마피아 두목 지앙카나의 딸 "아버지의 지시" 주장한 책 출간··· 극우파 음모론도 확산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둘러싼 의혹이 요즘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케네디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암살당했다. 범인은 오스왈드로 발표됐다. 오스왈드는 수사를 받던 도중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지배인에 의해 살해됐다. 그리고 잭 루비는 수감 중에 사망했다. 이처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과 그를 살해한 범인이 허탈하게 죽음을 당하게 되자 당연히 사람들은 뭔가 숨겨진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케네디 암살사건 당시 시카고 암흑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마피아 두목 샘 지앙카나의 딸 앙투아네트(70)가 ‘JFK와 샘:지앙카나와 케네디 암살 커넥션’이라는 책을 통해 “케네디 암살은 지앙카나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네디가 마피아의 지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음에도 불구하고 마피아를 단속했기 때문에 암살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음모설은 이것만이 아니다.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1991년 ‘케네디 암살은 미국 군산복합체 등 극우세력의 음모’라는 내용의 영화 ‘JFK’를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케네디 암살을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보는 출판물이나 영상물이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미국인의 상당수가 ‘케네디 암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2003년 ABC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미국인의 70%는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51%는 ‘오스왈드말고도 제2의 암살범이 있다’고 답했다.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을 믿는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특히 음모론의 신봉자는 1960년대의 40%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증가하고 있다.


음모론이 나오는 정황

젊고 잘 생긴 영웅적인 인물이 뜻을 다 펴지못하고 죽으면 사람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전설과 소문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그런 것말고도 케네디 암살의 경우는 음모론이 들어설 정황이 충분하다.

첫째, 당시는 미·소 냉전의 절정기였다. 많은 미국 사람은 ‘미국 대통령을 죽인 것은 소련의 공작원’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소련이 본격적인 핵공격을 하기 전에 미국 대통령을 살해해 미국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다. 때문에 미국의 정치 지도부는 대중에 ‘소련이나 쿠바의 공격은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야 했다. 미국의 정치 지도부가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대한 공포를 걷어 내기 위해 먼저 한 일은 ‘대통령 암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점을 믿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그 이전에 CIA가 시도했던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 암살계획 등을 은폐했다. 카스트로 암살계획이 드러날 경우 케네디 암살과 관련, 모종의 음모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살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중에 카스트로 암살 계획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진짜 정부가 뭔가를 숨겼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음모론을 갖게 됐다.

둘째, ‘CIA가 자료를 지나치게 은폐함으로써 음모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케네디 암살을 조사한 암살기록 검토국(Assasination Records Review Board)이 수천 쪽의 민감한 기록들을 공개했지만 CIA에는 아직도 미공개 문서가 쌓여 있다. 1970년대에 CIA는 오스왈드가 암살을 행하기 이전에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한 것에 관한 도청기록 등을 끊임없이 파괴했다는 사실이 미 하원조사위원회에 의해 드러났던 적이 있다. 이런 은폐 사례들이 끊임 없이 음모론을 유발하는 것이다.

암살사건 발생 당시의 정황도 의문투성이다. 하원 암살조사특별위원회를 자문했던 로버트 블레이키(Robert Blakey)는 “오스왈드를 포함해 2명의 암살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피아 음모설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마피아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특히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카를로스 마르첼로, 일리노이주에서는 샘 지앙카나 등의 마피아 보스들이 유권자에 대한 협박과 매수를 통해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네디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마피아들과 관계를 유지했다.

‘피그만(Bay of Pigs) 사건’으로 불리는 쿠바침공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는 CIA에 대한 케네디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피그만 사건’이란 CIA의 주도하에 쿠바 난민 등을 동원해 쿠바에 무력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케네디는 지앙카나의 마피아 조직을 이용해 카스트로를 제거하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앙카나로서는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에 공헌한 데 이어 카스트로 제거에도 협력함으로써 권력의 편의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지앙카나 등 마피아 조직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나갔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는 그 순간에도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조직범죄 소탕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대통령 암살이 행정부의 조직범죄 소탕과 쿠바 카스트로의 암살 시도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지앙카나로서는 당연히 케네디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마피아들의 배신에 대한 징벌은 죽음뿐이다. 마피아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암살범 오스왈드가 잭 루비라는 조직범죄와 관련된 인물에게 살해당한 것은 조직범죄의 전형적인 일처리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살인자를 살해해서 조직의 범죄 간여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 조직범죄 활동의 기본원칙이라는 것이다.

극우파 음모설

뉴올리언스의 지방검사인 짐 개리슨은 극우파 음모설을 제기하며 실제로 수사를 벌였던 인물이다. 개리슨 검사의 이야기는 영화 ‘JFK’의 바탕이 됐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소련 및 쿠바의 카스트로와 화해를 꾀했기 때문이다. 그를 암살한 사람들은 케네디가 공산주의 세계와 평화적인 관계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려던 광적인 반공주의자들이다”라고 주장했다.

개리슨에 따르면 음모의 하위 실행 레벨에는 반(反)카스트로 성향의 쿠바 난민사회가 있다. 이들은 케네디를 절대 용서 못한다. 피그만 침공 당시 케네디가 쿠바 공산군에 대한 공중폭격을 거부해 자신들을 엄호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소된 이후 미국이 쿠바와 화해하는 것을 매우 우려했다. 이들은 케네디가 자신들을 공산주의자에게 팔아넘겼다고 믿었다.
음모의 상위 통제 레벨에는 극우파들이 있다. 이들은 케네디의 평화적인 외교정책에 반대했다. 이들은 케네디가 소련과의 핵무기금지 조약에 서명하자 일을 벌였다. CIA는 1963년 늦여름까지 데탕트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CIA 자체가 반카스트로 공작을 지도하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 이후 케네디는 쿠바를 겨냥한 CIA의 공작을 축소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63년 7월 31일 FBI는 쿠바 난민과 극우 민병대의 훈련소를 급습해 무기와 탄약을 몰수했다.

1963년 초가을에 이르러 케네디와 쿠바와의 화해무드는 급진전됐다.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카스트로의 대리인인 체 게바라가 만나 협상을 벌일 계획이 추진됐다. 미국의 아들라이 스티븐슨 유엔대사는 양국간 적대관계의 청산 가능성에 대해 연설했다. 케네디의 안보보좌관인 맥조지 번디는 “대통령이 댈러스 방문 직후 양국 관계의 정상화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케네디 암살 이후 번디 보좌관은 “쿠바계획은 동결됐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도 그 해 11월 23일 케네디 암살을 “미국 내에서 평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꾸민 일”이라고 말했다. 쿠바 외무부는 “케네디 저격은 세계평화에 반대하는 미국 내 가장 반동적인 부문에 의해 완벽하게 계획된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케네디와 카스트로 간의 화해 시도는 2003년 사실로 확인됐다. 케네디가 암살되기 불과 17일 전 카스트로와의 비밀특사 교환을 승인한 사실이 2003년 11월 24일 비밀해제된 녹음테이프에서 드러난 것. 테이프에 따르면 케네디는 당시 미국 특사를 아바나로 보내 카스트로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에대해 번디 안보보좌관과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테이프에는 카스트로가 양국간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외교관을 아바나로 초청해 비밀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것을 번디 보좌관이 케네디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케네디는 “이 회담에 대한 미국의 공식개입을 그럴 듯하게 부인할 수 있을 경우 비밀회담을 추진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미 문서국의 한 분석관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케네디가 적대적인 미·쿠바 간의 관계 변화를 원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이런 구상이 결실을 얻으려는 순간 일어난 암살은 양국간의 끊임없는 반목의 역사에 ‘만일’이라는 큰 가정으로 남는다”고 평가했다.

극우파 음모론에 따르면 케네디의 암살범은 오스왈드가 아니다. 오스왈드의 역할은 암살범이 좌익이라는 점만 드러내는 한편 실제로 대통령을 살해한 사람들이 경찰의 주목을 받지 않고 댈러스를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케네디를 쏜 것은 7명으로 구성된 게릴라팀이었다는 것. 여기에는 반카스트로 모험주의자, 극우민병대 등이 포함돼 있다. 케네디를 향해서는 5~6발이 앞과 뒤에서 최소한 4명의 저격범에 의해 발사됐다. 그리고 증거인멸을 도운 자들이 있다. 두 사람은 탄피를 주웠으며 암살범들 주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일을 했다. 오스왈드는 암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을 조사한 워런위원회는 ‘오스왈드가 순간적으로 미쳐서 대통령을 쏘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그가 체포되기 직전 경찰관을 살해한 것도 순간적인 광기에 의한 짓이고, 마지막으로 잭 루비가 오스왈드를 쏴죽인 것도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3건의 살인이 모두 우발적인 광기에 의한 충동으로 결론지어졌다는 점은 쉽게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스왈드 암살범 잭 루비

잭 루비가 오스왈드를 살해하자 당시 언론들은 환호했다. 루비의 변호인은 “루비가 의회메달을 받아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뉴욕 데일리 뉴스는 ‘좋은 살인범은 사망한 살인범뿐이고 좋은 공산주의자는 죽은 공산주의자일 뿐’이라고 썼다. 루비는 국가적으로 증오받는 인물을 죽이면 무죄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감옥에서 썩게 됐다. 1년쯤 지나자 그는 댈러스 감옥에서 워런위원회에 증언을 할 수 있도록 불러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내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말하고 싶지만 여기서는 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잭 루비는 감옥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그의 동료인 데이비드 페리가 암세포를 주입했다는 설도 있다. 페리는 암에 관심이 많아서 한때 집에서 쥐를 2000마리나 키웠으며 쥐에 암세포를 주입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논문을 쓴 적도 있다. 그런데 잭 루비는 ‘댈러스 이외의 지역에서 재판하라’는 판결이 난 지 몇 주일 후, 즉 그가 바라던 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판결을 받고 나서 암으로 사망했다.

루비의 동료인 페리는 CIA에 충원돼 반카스트로 운동에 가담했던 인물이었다. 케네디 암살 직후 페리는 CIA로부터 돈을 받지도 않았으며 반카스트로 운동에서도 떨어져 나갔다. 그는 다량의 진정제 등 약물을 복용하며 살았다. 그가 암살에 죄책감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의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고문당하는 사람 같았다. 페리는 공식적으로는 자연사했다고 발표됐지만 당일 작성한 유서가 있다. 유서에는 “고통스런 삶을 끝내는 일이 얼마나 달콤한가”라고 써 있었다. 유서를 쓴 그 날 자연사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우태영 조선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tywoo@chosun.com)

 


 

케네디 암살의 의혹-1

제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는 1963년 11월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리 하비 오스왈드'의 총탄에 맞아 절명했다. 당시 사법당국은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지만 배후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사건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것인가.

워싱턴 타임스 등 상당수 미 언론들은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42주년을 맞은 22일 케네디 암살 사건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며 "암살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지난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당초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소행으로 알려졌으나 그가 갑자기 피살되면서 배후 음모설이 힘을 받게 됐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단독범 소행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정확한 배후를 규명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올해들어 부쩍 케네디 암살사건과 관련한 뉴스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 것은 단연 당시 시카고 암흑가 거물이었던 샘 지앙카나 배후설이었다.

지난 1984년 베스트 셀러 회고록 "마피아 공주"(Mafia Princess)를 발간했던 지앙카나의 딸 앙투아넷 지앙카나(70)는 지난달 "JFK와 샘:지앙카나와 케네디 암살 커넥션"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부친이 부하들에게 시킨 일이라고 주장했다.

마피아가 1960년 박빙의 승부였던 대선에서 케네디가 일리노이주 승리의 여세를 몰아 확실히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케네디가 당선 후 관대함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앉혀 마피아를 단속하자 '거사'를 꾸몄다는게 핵심 논지다.

그녀는 또 1975년 시카고 지역의 자택 지하 주방에서 총에 맞아 피살된 샘 지앙카나의 암살 배후는 미 중앙정보국(CIA)이었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9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이 사건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려는 회의가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한 호텔에서 열렸으나 별다른 성과없이 막을 내렸다.

회의에선 오스왈드 단독범행설에 대한 의혹과 케네디 암살 사건의 가장 정확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는 '자프루더 필름'의 조작 가능성, 댈러스 경찰 테이프에 녹음된 총성이 최대 5발이었다는 등 확인하기 힘든 설들만 난무했을 뿐 뚜렷한 결론이 없었다.

다만 이 회의를 후원한 암살기록보관 및 연구센터 소장인 짐 레서 변호사가 1964년 연방정부 공식조사기구인 워런위원회가 결론내린 '단독범행설'은 오류라고 지적한게 그나마 성과였다.

레서 변호사는 그 이유로 중앙정보국(CIA)이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암살 시도에 관련한 결정적인 정보들을 워런위원회에 주지 않았고 1970년대 말 구성된 하원 특별조사위원회에도 중요 정보들을 감추고 있었던 사실을 들었다.

이처럼 미 언론이 올해들어 부쩍 케네디 암살사건을 집중 조명하는 데는 이라크전과 허리케인 강타 등 잇단 국내외 악재로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된 미국의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론 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케네디가(家)의 비운, 이른바 '케네디가의 저주'에 대한 미국인들의 흥미도 한 요인임은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케네디 형제들이 비운을 겪은 것은 물론 젊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들 존 F 케네디 2세가 부인 캐럴린과 함께 1999년 7월 항공기 사고로 사망했고, 부인 재클린 여사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하는 등 케네디가는 언제나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그러나 올해들어 유난히 케네디 추모 분위기가 강한 것은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반추하며 우울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미국인들의 심리적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 분위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그비(Zogby International)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케네디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케네디 저격의 현장. 범인 오스왈드가 오른쪽 창문을 통해 케네디에게 총구를 겨눴다고 한다.



 
왼편 건물이 케네디 암살 현장이었던  건물 

 


  오른쪽 건물의 6층 맨 오른쪽 방이 범행 현장

 


 
오스왈드가 케네디에게 쏜 저격용 소총

 


 
범인 오스왈드가 경찰들에 둘러싸여 가는 도중 방송국 리포터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리 하비 오스왈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가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하지 않았으며, 미 CIA와 군부가 짜놓은 함정에 빠져 암살범 누명을 쓴 것처럼 묘사돼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오스월드가 암살범이라는 증거가 더 확실해진 것 같다.

제럴드 포스너의 신저 '사건 종결'(Case Closed)에 인용된 탄도실험 결과와 사건 당시 에이브러햄 자프루더가 찍은 가정용 영화를 재검토해 보면 발사된 총탄은 단지 세 발뿐이며, 모두 사건 현장 부근의 텍사스 교과서 창고에서 발견됐고, 오스월드에겐 세 발을 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는 믿을 만한 논거를 볼 수 있다. 또 오스월드가 24년의 세월을 비참하게 살아 왔다 는 점을 볼 때 그에겐 역사적 범죄를 저지를 만한 심리적 동기가 충분했다는 점도 명확한 것 같다.

오스월드는 냉전의 와중에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소련체제에도 환멸을 느끼고 귀국한 고질적인 불평분자였다. 지식인으로 자처했지만 한 직장에 오래 있지를 못했고, 암살 사건 전에도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었다. 9세때 이복형제를 식칼로 공격한 적이 있고, 아내를 구타했으며, 우편으로 주문한 소총으로 우익 과격파인 에드윈 워커 소장을 살해하려 했으며, 7개월 뒤 바로 그 소총으로 케네디를 저격했다. 63년 9월엔 장전된 권총을 갖고 멕시코 시티의 소련 대사관을 찾아간 적도 있다고 당시 그와 대화한 적이 있는 KGB 요원 올레크 네치포렌코의 신저 '살인 면허증'(Passport to Assassination)은 밝히고 있다.

오스월드의 소외감은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1939년 부친 사망 2개월 후 뉴올리언스에서 출생했다. 생활이 불안정해지자 그의 모친은 오스월드 및 형제들을 한동안 고아원에 맡긴 적도 있고, 열 살이 될 때까지 그를 데리고 13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13세때 등교를 하지 않은 그를 관찰한 적이 있는 뉴욕의 한 정신과의사는 오스월드가 '폭발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으며, 전능함과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오스월드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했다. 16세 때엔 미국 사회당에 편지를 보낸 그 당시 '청년동맹'가입을 희망했다. 그 몇 주 후엔 해병대에 입대했다. 해병대에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마르크스 관련서적을 읽었다. 1등 사수 자격을 얻었지만 일본의 한 공군기지에 근무도중 오발로 자기 자신을 쏜 적도 있다. 59년 11월 그는 모친의 지병악화를 이유로 조기 제대했다. 그러나 며칠 후 배를 타고 영국으로건너간 다음 모스크바로 떠났다.

소련 관리들은 미 해병대에서 배운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하는 20세의 거만한 오스월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몰랐다(처음엔 그를 미국 첩자로 생각했다). 전직 KGB 간부인 블라디미르 세미차스티니는 최근 모스크바에서 뉴스위크에 이렇게 밝혔다. "당시 그에겐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접선책이 한 명도 없었고, 또 우리가 몰랐던 정보도 없었다"

소련 당국이 시민권을 주지 않자 오스월드는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기도 했다. 결국 소련 당국은 그를 민스크의 라디오 공장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적은 액수의 급여를 현찰로 주었다. 그러나 소련체제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타락시켰다고 본 것이다. 그는 수작 수류탄 두 개를 만들었는데, 소련인들에게 자신의 출국을 허용하도록 협박하기 위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11월 21일 오스월드는 근처 어빙에 있는 마리나를 찾아가 댈라스에 와서 함께 살자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했고,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의 저축 총액인 1백70달러와 그의 결혼반지가 옷장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원미상의 30세 가량된 백인 남성, 야윈 몸매에 신장은 1m78cm, 체중은 74kg' 케네디 암살 직후 경찰 라디오로 급송신된 범인의 이 인상착의는 J.D. 티피트 순경이 오후 1시 15분에 본 한 남자와 일치했다. 티피트가 오스월드를 정지시키자 오스월드는 그에게 권총을 쏘고는 어느 영화관으로 도망쳤다. 오스월드는 체포됐을 때 그 권총을 지니고 있었다. 후에 경찰은 교과서 창고에 남겨진 소총에서 그의 지문을 발견했다. 그러나 구속 후 오스월드는 티피트순경에게 총을 쏜 것과 대통령을 저격한 것도 부인했다. 또 소총 소지 사실과 멕시코에 다녀온 사실도 부인했다.

오스월드의 단독 범행을 확신하는 사람들조차 그의 암살 동기에 대해선 정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케네디 쿠바 정책과는 별도로 케네디를 존경했다고 말한다. 오스월드는 카스트로의 환심을 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괴로웠던 결혼생활 속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프리실과 존슨 맥밀런의 77년도 전신 '마리나와 리'에 따르면 마리나는 침대 위에서도 오스월드를 조롱하며 민스크에 있는 자신의 옛 애인과 닮은 케네디 대통령에 매력을 느낀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했다. 그러나 케네디 암살 음모설 신봉자들은 결코 질투심과 같은 평범한 동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2주전 전 CIA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1천5백 여 쪽의 관련 문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오스월드의 고통받은 심리상태를 고려할 때 아무리 사소한 자극도 그를 격분시켜 살인으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오스왈드의 군대생활하던 19세때



 존슨 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영부인 재클린의 비통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케네디 암살의 의혹-2

<사건 개요>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 암살사건  

1963년 11월 22일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가 유세지인 텍사스주  '댈러스' 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 저격범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사건.

 

언제 : 1963년 11월 22일

어디서 : 텍사스주 댈러스

누가 : 미국 대통령 J.F.케네디

무엇을 : 자동차 페레이드중 저격범의 총탄을 맞고

어떻게 : 사망하였다


사건 발생 약 2시간 후 현장 부근에서 L.H.오즈월드가 용의자로서 체포되었다.

이틀 후 오즈월드를 구치소로 수감하기 위하여 댈러스 경찰서의 지하실에서 나오는 순간 나이트클럽의 경영자이자 연방수사국(FBI)의 정보원인 J.루비에게 그도 사살되었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대법원장 E.워렌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10개월 후 보고서가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오즈월드의 단독범행이며, 배후에 국내외의 어느 기관도 관련된 사실이 없다. 

② 3발의 탄환이 발사되었는데, 그 중에서 2발이 대통령에게 명중되었다. 1발은 대통령의 등 윗부분에서 목을 관통하였고, 1발은 텍사스 주지사 J.B.코널리의 허리에서 오른쪽 손목을 뚫고 왼쪽 대퇴부에 도달하였다.

 


 
범인 오스왈드의 신분증



케네디 암살범 용의자 존 오스왈드는 체포된 이틀 뒤인 1963년 11월 24일 유태인 출신의 '잭 루비' 에게 경찰서 지하에서 권총으로 살해 되었다.


1963년 11월 22일 금요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리 하비 오스왈드' 라는 사람에 의해 암살당했다.

 

오스왈드 역시 교도소로 이송 도중 댈러스의 스트립쇼 클럽을 운영하던 유태인 '잭 루비' 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래서 케네디의 암살은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를 남기고 있다.

2005년, 올해로 케네디 대통령 사망 42주년을 맞는다. 

오스왈드의 숨겨진 연인인 '주디스 배리 베이커'가  오스왈드와 암살 사건에 얽힌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케네디 암살 당시 많은 목격자들은 저격범인 오스왈드가 총을 쏘았던 곳과는 다른 각도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고 말한다. 과연 제2의 범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당시 24세였던 오스왈드는 체포된 직후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사건 당일 아내와 커튼을 만들기 위해 커튼 재료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것. 또 그 자신이 러시아에 거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범인으로 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 역시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오스왈드의 연인이었던 주디스 배리 베이커는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오스왈드에 얽힌 이야기를 40년 동안 비밀로 간직하며 살았다. 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갔던 오스왈드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오스왈드의 여인이었음을 고백하게 됐다고 한다. 그녀의 증언을 들어보면 오스왈드가 평범한 시민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케네디 암살 사건 당시 미 경찰이 발표했던 것처럼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반대로 오스왈드는 쿠바 카스트로 정부의 전복을 계획하고 있던 한 단체에 몸담고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오스왈드는 CIA와 같은 정보국 요원에 의해 역공작의 희생물이 된 것일까.




 


 

케네디 암살의 의혹-3



1963년 미국 달라스에서 리무진을 타고 가던 케네디 대통령이 2발의 총탄을 맞고 숨진다.

범인으로 근처 창고에 있던 오스왈드가 체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무죄 라고 주장했고, 구식소총으로 비전문가가 멀리 떨어져 움직이는 표적을 나무에 가린 상태에서 저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여러 증거로 볼 때 케네디의 뒤가 아닌 앞과 옆에서 쏜 총탄에 맞은 것 이 분명하다.

해병대 출신의 오스왈드는 호송되는 중 잭 루비에게 살해되고, 잭 루비는 감옥에서 사망함으로써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개리슨 검사가 범인으로 지목한 클래이 쇼는 CIA에서 근무했고, 이스라엘 모사드의 단원이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으로 각종 공작과 암살을 자행하는 단체다. 그러나 클래이 쇼는 결정적 증인이 죽고 정부의 보호를 받아 무죄로 석방된다.

케네디는 상원의원이었던 아버지 조세프 케네디의 아들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 프리메이슨의 도움을 받았다. 때문에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프리메이슨 단체인 CFR과 빌드버그에서 추천한 사람을 주요 요직에 앉힌다. 이들은 일루미나티 단원들로 대부분 군수산업과 관련이 있었다.

일루미나티들은 방위산업체가 돈을 벌 수 있도록 일부러 전쟁을 만들어 돈을 쏟아 붓게 만든다.

그런데 점차 케네디가 이들의 노선을 따르지 않아 베트남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고, 쿠바침공에 반대했으며, 일루미나티 휘하에 있는 CIA도 해체 시키려 하였다.

케네디가 암살 당하자 대통령이 된 존슨 부통령은 이들의 의도대로 베트남전을 확대시키고, CIA도 되살려 놓았다.

케네디는 당시 유대인들이 재계를 주름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원자력 시설을 점검하겠다고 해 프리메이슨의 핵심인 유대인 들의 분노를 산다. 가장 큰 원인은 유대인들의 자금줄인 연방준비은행의 화폐발행권을 없애 고 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화폐를 발행하려면 정부가 공채를 발행하고, 연방준비은행에서 공채를 인수해 화폐가 발행되는데 정부에서는 공채에 대한 이자를 꼬박 꼬박 내야 한다.

그러니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고, 연방준비은행은 지폐에 대한 인쇄비용만 들이면 돈을 만들어 정부에 빌려주고 이자도 받고, 그 몇배에 해당하는 돈을 찍어내 유통시킬 수 있어 앉아서 불로소득을 챙긴다.

CIA는 미국 대통령도 터치할 수 없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일루미나티를 위해서 활동한다.

또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약 밀매 사업까지도 서슴치 않는데 미국에서 유통하는 마약이 대부분이 CIA의 공작을 통해서 들어온다.

미국의 대형 범죄조직은 거의 모두 CIA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CIA 국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약 장사를 하면 은밀히 제거되거나 FBI의 수사를 받게 된다. 마약을 유통시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하나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고, 또 하나는 국민들을 타락시키고 바보로 만들어서 다루기 쉬워진다.

CIA와 연방준비은행에 손을 대려 했던 케네디는 결국 CIA와 모사드에 의해 암살 당한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탄 차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들 중 하나였던 문제의 피살 현장으로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총에 맞은 직후 케네디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이 차량 뒷편에 오르는 모습


 

당시 케네디 부처가 탔던 차량 모습. 정면으로 보이는 좌석이 케네디 대통령과 영부인 재클린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다.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이 케네디. 앞 사람은 대통령 측근인 코넬리. 케네디 대통령의 어깨 뒷부분을 뚫고 들어간 총알은 케네디의 목 부위를 지나 계속해서 앞 자리에 앉은 코넬리의 옆구리를 뚫고 손목 관통하고 허벅지에 가서 박혔다.


 

피에 흥건히 젖은 케네디의 셔츠


 

암살현장 개념도




 

케네디 시신의 오른쪽 머리부분. 총알이 머리를 뚫고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총탄이 뚫고 들어간 케네디의 등 부분.


치명적인 두개골 상흔을 보여주는 개념도


 사망한 케네디 대통령의 모습

 


 

 케네디암살은 영국M1-6의 소행이였다
 

아래글은 들녘 출판사에서 출판된 - 음모의 지배계급 300인 위원회 - 란 책에 기술된 내용입니다. 저자는 전직 MI-6 요원이었다네요. 참고

로 MI-6는 007, 제임스본드로 유명해진 영국첩보기관입니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제가 요약해서 틈틈히 올릴께요.

케네디 암살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존 F 케네디는 왜 암살되었을까? 그 계획은 왜 그렇게 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행되었을까?  

2. 케네디 사형집행을 명령한 사람은 누구인가? 또 이 음모를 실행한 책임자는 누구인가?  

3. 계획자와 사형집행자는 수사망을 완전히 벗어날 수가 있었따. 이 은폐공작의 성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시다시피, 케니디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 데일리 광장에서 세계 최고의 저격수 3명에 의해 저격당했으며, 이때 사용된 총은 1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정확하게 목표물을 맞춘다는 모제르 저격용 총이며, 이 암살은 2년이상 신중하게 계획되었다. 일단 이 암살의 직접적인 여파로 베트남 전이 확전되었다.

 

왜 케네디가 암살되었을까?

케네디 가문의 역사는 너무나 잘 알려져서 전부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만 케네디가는 아일랜드계의 반역자로 그 평판이 높았다는 점만 말해둔다. 존의 아버지 올드 조(Old Joe)가 주영 미대사관직에서 해임되었을때 케네디가가 공공연하게 독일의 전쟁준비를 지지하고 있따는 영국정부의 항의를 받은 뒤였다. 온갖 전쟁들을 유발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은 국제은행가들의 하수인인 루스벨트는 그들의 지시에 따랐따. 조지프 케네디는 그 일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았고, 자식들가운데 누군가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루스벨트같이 유약하고 비굴한 인간은 만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존 F.케네디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을때 그것을 자신의 실력이라 생각했다.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은 젊고 고집센 케네디에게 두려움을 안 겨주지 않으려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300인 위원회로 알려진 엘리트 지배조직은 처음에는 부드럽게, 그러나 차츰 다급하게 케네디에 목에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걸었다. 케네디는 그 올가미의 실체를 알아차리고는 필사적으로 벗겨내려고 했다. 조사결과가 분명해지면서 결국 영국의 일개 기관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가 자신의 대통령권한과 미국 전체에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 케네디는 격노했다.

케네디는 " 선거에서 선출된 정부가 통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라는 디즈레일리의 말에 유념했ek. 그는 원스턴 처칠이 공 언했던 영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차렸지만, 그것이 "특별한 관계"가 아닌 "특별한 지배"라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권한의 외세 지배를 물리치려는 케네디의 결의는 쿠바의 미사일 위기동안 더욱 견고해졌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흐루시초프를 원조했던 것은 영국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와 백악관에 있던 케네디 자신의 측근이었다.

그 기만술은 다음과 같다. 흐리시초프는 쿠바에 있는 소련의 구식 단거리미사일을 이전하는데는 동의하였지만 그 조건으로 미국이 터키의 전선기지에 배치한 최신 핵로켓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그 뒤의 조약에서는 미국이 잃은 것은 엄청났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대실패를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케네디는 재조사를 명령했다. 조사결과 원흉의 측근들, 특히 헨리 키신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뒤에 대통령은 키신저는 미치광이라 백악관에서 추방했다고 부인에게 고백했다.

키신저의 추방은 300인위원회의 계획에 큰 타격을 주었다. 키신저는 300인 위원회의 최고집행기관인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지시적 조언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주요통로였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키신저가 뒷날 리차드 닉슨대통령의 실각에 주역을 맡았던 일도 언급해볼 가치가 있다. 분명 키신저의 추방은 영국과 미국간의 특별한 관계에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에 300인 위원회는 이를 허용할수가 없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메신저인 키신저의 가면을 벗긴 사람은 소련에서 망명한 거물 스파이 올레그 펜코프스키였다. 대통령 최측근이자 MI-6가 배치한 첩보원이었던 맥조지 번디는 펜코프스키가 케네디 대통령과 직접 만나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러나 이소련의 거물 스파이와 대통령의 직접회담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맥조지 번디의 방해를 물리친 사람들은 비밀리에 백아관에 문서를 가지고 들어가는데 성공하여 케네디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였다.

일단 문서를 검토할 기회를 가진 케네디는 자신의 추종자, 특히 키신저가 어떻게 배신을 했는가, 또 300인 위원회의 미국지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이해하였다. 이러한 발견으로 케네디는 미군의 귀환수송이 가능한 즉시 남베트남 참전을 끝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케네디가 300인 위원회 소유의 국제은행들, 특히 연방준비제도에 대한 그들의 지배를 타도하려고 결심한것도 이 시점이었다.  


    청포도 향기 최송연 자고 하지 말거라 아직은 설익어 샛파란 너 찜통 불볕더위 후끈거리는 여름, 모진 시간 지나는 동안 한없이 흘린 땀방울이, 고달픔이 알알이 영글어 그윽한 향기 흩날릴 제면 그제야 참 진가(眞價) 드러나리니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총의 하루  (4) 2014.09.04
당신을 만난 후  (0) 2014.08.30
그리움마저 행복입니다  (0) 2014.08.15
수채화처럼 고운 生  (0) 2014.07.18
아플 땐 아프다...최송연  (9) 2014.07.09

천국과 지옥 간증

   

        

  이것은 미얀마(버마)의 불교 승려가 경험한 간증입니다.


 본 이야기는 테이프로 녹음된 것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는 친척, 동료 그리고 동기들로 부터 멸시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메시지를 전하는 것 때문에 살인 협박까지 받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위험에 뛰어들도록 하고 있습니까?

 저의 이름은 아텟 피안 신토우 파우루. 저는 미얀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1958년에 보가일(마얀마 남쪽에 위치해있는 이라와디 델타 지역: 전 버마)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부모는 대부분의 미얀마 사람들처럼 절실한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저에게 팃핀('나무'라는 뜻)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제가 살았던 곳에서 저희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13살때,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고기잡이배에서 일하기 시작 했습니다. 제가 16살 되던 해에 저는 그 배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17살 때 일 입니다. 우리는 물고기를 많이 낚았습니다. 많은 물고기 때문에, 큰 악어가 저희에게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 악어는 저희의 배를 따라왔고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겁에 질려서 노를 저어서 배를 될 수 있으면 빨리 강기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 악어는 계속 쫓아왔고, 그 꼬리로 배를 쳤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이것은 저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고기잡이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악어는 우리의 배를 가라 앉혔습니다. 우리는 유료 선을 타고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8살 때, 저는 스님이 되기 위해서 절로 보내어 졌습니다.

 제가 19살이 된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1977년), 저는 스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임 스님의 이름은 유 자딜라 키알 니 칸 사야도우입니다 [유 자딜라 는 그의 법명입니다]. 그는 그 당시 미얀마에서 가장 저명한 스님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칭송받았고 훌륭한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83년에 교통사고로 인해서 갑자기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 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스님이 된지 6년째 되던 해였습다.

 저는 최고의 스님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불교에 있는 모든 것을 이행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엔 저는 제가 명상하기 위해서 공동묘지에서 살았습니다. 진실을 알려고 하는 스님들은 제가 하는 것을 따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자기자신을 부인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몇 년간 저는 최고의 스님이 되기를 갈망했고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조상들처럼 불경을 배웠습니다.

  저의 승려로서의 삶은 제가 병을 앓을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당시 만다라이에 있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의사는 진료를 하였습니다. 저는 황열병과 말라리아 두 병을 동시에 앓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은지 1달 후에 저의 병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의사는 제가 회복하기는 불가능 할 것이라면서 저의 퇴원을 조치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저는 저를 돌보던 승려들이 있는 절로 갔습니다. 저는 점점 더 쇠약해져 갔고 혼수상태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3일후다시 깨어나서야 제가 죽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육체는 썩어있었고, 시체냄새가 났습니다. 제 심장의 고동은 오래 동안 멈춰있었습니다. 저의 육체는 불교관례에 따라서 장사 지내어 지고 화장 되기 위해 준비 되었습니다.


  저의 영혼이 저의 육체에서 빠져 나갔지만, 저의 영과 혼은  완전히 뚜렷하고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매우 강한 바람 속에 있었습니다. 크나 큰 폭풍우가 한 지대를 나무도 풀도 없는 광활한 광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 광야를 매우 빠르게 걸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단지 저 혼자였습니다.   저는 얼마 후에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강 맞은편에서 저는 무서운 불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경에는 이런 것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처음 이것을 보았을 때, 전 이것이 지옥인 줄을 알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야마(YAMA)를 본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야마는 아시아 다 문화권 에서 전해지는 지옥의 왕입니다.) 그의 얼굴은 사자 얼굴 같았고, 그의 몸도 사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용의 비늘과 같았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뿔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너무도 무섭게 생겼기에, 저는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저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지옥의 왕, 곧 파괴자"라고 지칭했습니다. 


너무도 끔찍한 불의 연못

 그 지옥의 왕은 저에게 불의 연못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미얀마 스님들이 입는 사파론(연황)색 옷을 걸친 스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더 가까이 가서 보았고, 머리를 삭발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제가 그 얼굴을 보았을 때, 저는 그가 우 자딜라 키알 니 칸 사야도우[1983년에 교통사고로 죽은 저명한 스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왜 전 지도자가 이 고통의 연못에 감금 되었는지 지옥의 왕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왜 그가 불의 연못에 있는 겁니까? 그는 매우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지옥의 왕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그는 좋은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로 인해서 그는 지옥에 있는 것이다."


  그는 저에게 그 연못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왼쪽 머리가 긴 머리카락들로 감싸여진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도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옥의 왕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자옥의 왕은 그는 제가 섬기던 부처라고 하였습니다.[카투마:부처]저는 부처가 지옥에 있다는 게 참을 수 가 없었습니다. 저는 '부처는 올바른 교리와 사상 그리고 고결한 인품이 있다. 그런 그가 왜 불의 연못에서 고통 받고 있냐'고 반박했습니다. 지옥의 왕은 저에게 말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착한지는 상관이 없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다."


 나는 그리고 군 복장을 한 다른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의 흉부에는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지옥의 왕은 "그는 미얀마의 혁명 지도자 아웅산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웅산이 지옥에 있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불의 연못에서 또 한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컸으며, 군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칼과 방패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마에 상처가 나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커 보였습니다. 그가 팔을 쭉 뻗었을 때, 그 팔 길이는 보통사람의 손가락에서 팔꿈치사이의 길이의 6배에 달했습니다. 지옥의 왕은 "이 남자의 이름은 골리앗이다.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그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종 다윗을 모독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골리앗과 다윗을 몰랐기 때문에 혼돈스러웠습니다. 지옥의 왕은 "골리앗은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너는 지금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크리스챤이 된 후엔 알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지옥의 왕이 저에게 왔습니다. 저는 불의 연못을 뜨겁게 달구기 위해서 불을 지피는 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당신도 불의 연못에 들어갈 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다! 나는 여기를 보러 온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연못에 불을 지피는 자는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열개의 뿔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일곱 개의 날을 가진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네 말이 맞다. 너는 여기를 보러 온 것이 맞다. 네 이름은 이 목록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제가 온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제가 불의 연못에 오기 위해 왔던 황량한 벌판이 있는 곳을 가르쳤습니다.

결정의 길

 저는 피가 흐르도록 오랜 시간동안 걸었습니다. 저의 몸은 뜨거웠고, 크게 앓고 있었습니다. 3시간정도 걸은 후에야 저는 넓은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이정표가 나타날 때까지 걸었습니다. 한 길은 왼쪽으로 나 있었고 넓은 길이었습니다. 다른 길은 오른 쪽으로 나있었고 좁은 길이었습니다. 분기점에는 푯말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왼쪽의 넓은 길로 갈 것이요.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오른쪽 길로 갈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넓은 길로 나있는 곳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그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300야드 전방에는 두 사람이 제 앞에서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따라 잡으려고 하였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기점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멀어져가는 그 두 사람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그들이 그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도 그들의 당한 것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이 가던 길은 상당히 위험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저는 믿는 자들의 길로 들어서서 걸었습니다. 1시간정도 걸은 후에 그 길의 표면은 순수한 황금빛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길은 너무도 순수한 황금이었기에 저의 얼굴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앞에 서있는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횐 색 예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 저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너무도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그것은 제가 절에서 불공을 드리면서 드리는 찬불보다 더 의미 있고 좋았습니다.  그 흰 예복의 남자는 저와 같이 걷기를 귄유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여섯 번 묻자, 그 남자는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천국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너는 지금 그 곳을 갈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예수를 따른다면, 너의 명이 다한 후엔 올 수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저에게 앉기를 권하였고, 그는 우리가 있는 곳의 북쪽을 향하여 가리켰습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북쪽을 보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라." 저는 멀리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천사에게 "사람을 창조하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천사는 하나님께 "제발 사람을 창조하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그는 죄를 지을 것이며, 당신을 슬프게 할 것입니다."라고 항변하였습니다. 버마 말로는 ["그는 당신의 체면을 잃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입김을 그에게 부셨고, 그는 살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아담'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새 이름과 함께 저를 돌려보내소서.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부처를 믿는 자와 우상을 믿는 자들에게 말하라. '그들에게 그들이 변화 받지 않는다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라고 전하라. 사원과 우상을 만든 사람들도 지옥에 간다고 전하라. 또한 지옥에 가려고 중들에게 예물을 주는 자들도, 중들에게 절하고, 그들을 '프라'[중을 높여서 일컫는 말]라고 부르는 자들도 지옥에 간다고 전하라." 베드로는 저에게 세상으로 돌아가서 제가 본 것을 증거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너는 새 이름을 사용하라. 이제 이후로 너는 '아텟 피안 신토우 파우루'[부활한 바울']라 불릴 것이다.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천국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천사들은 책을 펼쳤습니다. 처음엔 저의 어렸을 때의 이름(팃핀)을 찾아보았지만, 목록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불교에서 받은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그것 또한 있질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이름은 쓰여 있지 않다. 너는 돌아가서 불교인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라." 

  저는 황금 길을 따라서 돌아갔습니다. 또 다시 저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제가 땅으로 돌아올 때까지 함께 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하늘에 걸려있는 천국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다리는 땅에 닿진 않고, 공중에서 끊겨 있었습니다. 사다리에서 저는 많은 천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천사도 있었고, 땅으로 내려오는 천사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바빴습니다. 저는 베드로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은 하나님의 메신저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님께 올리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저에게 이제 가야할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이다!

 그 후에 제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우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제 어머니가 우시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얘야, 어째서 네가 우리를 버리고 이렇게 떠날 수 있단 말이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관에 눕혀져 있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관 옆에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경악하여 소리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살아났다. 그가 살아났어."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부모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손으로 관을 붙잡고 똑바로 앉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리 질렀습니다. "귀신이다." 그리고 재빨리 도망쳤습니다.

 거기에 남은 사람들은 말을 잃었고 무서워 떨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상한 냄새나는 액체에 제가 앉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액체는 제가 관에 있을 때, 저의 위와 몸속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제가 진짜로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불길에 태워지기 일보직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죽은 자를 관에 두고 밀폐시킨 다음 태웁니다. 제가 다시 돌아왔을 때, 저의 부모님은 화장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저의 육신을 보려고 관 옆으로 가까이 왔습니다. 하마터면, 저는 관과 함께 태워질 뻔 했습니다.

 저는 즉시 제가 보고 들은 것들은 얘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저는 불의 못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 하였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으며, 저의 조상들은 수 천년동안 속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그들은 제가 어떤 중이었는지, 그리고 제가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이 특심 이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한 바울'이 위의 이야기처럼 경험한 것같이, 그는 예수께 믿음 있는 증언자로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버마 목사들은 그가 수 백 명의 스님들을 예수께 돌아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수년간의 스님, 엄격한 부처의 옹호자로 지내다가, 그의 사랑과 부활 후에 즉시 찬송하게 되었고 다른 스님들에게 가짜 신을 버리라고 하면서, 전심으로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기 전에,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삼일동안 관에서 배운 모든 것들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오디오와 비디오로 담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있는 경찰과 불교재단은 수거할 수 있는 한 많이 이것들을 모아서 태워왔습니다.

  그의 담대한 증언 때문에, 손을 쓸 수 없던 재단은 그를 적어도 한번은 감옥으로 감금당하게 했습니다. 그가 석방된 후에도, 그는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기를 다시 하였습니다. 그의 현재의 행방은 아무도 모릅니다. 한 버마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감옥에서 살해당했을 수 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석방되어서 지금도 계속해서 예수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간증문은 1999년도에 ARM(복음미디어선교회)에서 전도용으로 번역하였던 완역본입니다.

 
출처: 전주에덴장로교회 홈피

신문(중앙지)

신문(지방지)


인터넷테마신문

시사지

잡지(매거진)

경향신문
국민일보
대한매일
동아일보
매일경제
무역일보
문화일보
서울경제
세계일보
신문가게
실리콘밸리뉴스
연합뉴스
전자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코리아 타임즈
한국경제
한국일보
DSD뉴스월드


경기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광주일보
국제신문
대구광역일보
대구매일
대전일보
부산일보
영남일보
인천일보
전남일보
전북일보
충청일보

가톨릭신문
갈도신문
국악신문
국제섬유신문
기독신문
김대리
넷피니언
뉴스데이트
딴지일보
디자인뉴스
디지털 야단법석
디지틀 환경타임즈
망치일보
머니투데이
시네마조선
사이버신문 더럽
세정신문
약사신문
어패럴뉴스
와우디지털신문
인터넷비지니스신문
일간건설
전파신문
족보신문
직장인
현대불교신문
화장품신문
iNEWS


뉴스메이커
뉴스위크한국판
뉴스피플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조선
주간한국
한겨레 21
NewsWorld

과학동아
레이디 경향
온라인정보시대
여성동아
우먼센스
프로그램세계
하이테크넷
ELLE
HOW PC
LuLu
PC 라인
PC 사랑
VOGUE



스포츠신문

연예신문


스포츠서울
일간스포츠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


리더넷 코리아

출처: 서춘웅 목사님 방/에스더



영적 판단과 식별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1-6)

6절은 7장 1-5의 결론이며 그에 관한 최종적인 진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절이 앞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지만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균형을 갖추도록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예수님께서 5절에서 끝냈다면 반드시 잘못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비판의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식별이나 판단을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단이 교회 안에 침입해와도 수수방관하게 될 것이다.

비판과 분별

1 주님께서는 지나치게 비판적이어서는 안된다고 권면 하시지만 식별 혹 분별마저 하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2 우리들이 피하여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서 허물을 찾아내고 비판하며 자기만이 사람 위에 설 수 있는 최종 판결자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분별력을 일으키는 것과는 전연 별개의 문제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을 분별하고 시험하라고 권면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거룩한 것과 진주와 개와 돼지

1 거룩한 것과 진주에 비견할 만한 것은 진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천국의 기쁜 소식이다.

2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진리를 불신자에게 주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다. 불신자를 회심시키는 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며 구원의 복음이 필요하다. 주님은 제자들을 불신자들에게 파송하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3 그러나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주지 못할 개와 돼지 같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심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한다. 예수님의 예를 들어보면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러나 헤롯 앞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헤롯은 불건전한 호기심으로 이상한 기적을 보기 원했던 것이다. 바울의 경우에도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데 저들이 시기와 질투의 반대를 일삼았다. 그러자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기로 영생을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개와 돼지와 같이 정면으로 대적하거나 저주하면서 진리를 발로 짓밟아 버렸던 것이다.

다양한 전도 방법이 필요함

1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 다양한 종류의 개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식별하는 범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세일즈맨들이 물건 하나를 팔기 위하여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 사람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세일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 복음을 전하는데 천편일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전도회는 노방전도만이 유일한 복음증거의 수단이고 노방전도를 하지 않으면 잘못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2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율법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되었다. 이것이 진리의 복음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인 것이다.

3 우리는 진리를 줄 때에 반드시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며, 어떤 방법으로 주어야 좋을 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단의 지배아래 있으며 사단에게 속아서 마음이 구부러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귀한 줄로 여길 줄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저들의 이러한 심령 상태를 알아서 진리의 복음을 주의 깊게 증거해야 한다.

4 예수님은 저들의 마음을 보시며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 하는 모습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바로 이러한 주님의 동정과 긍휼의 마음을 가질쁜만 아니라 지혜롭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소망한다

로이드존스|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1. 몸가짐
남의 딸이 애인이 많으면 행실이 가벼워서이고,
내 딸이 애인이 많으면 인기가 좋아서이다.

2. 교육
남이 학교를 자주 찾는 것은 치맛바람 때문이고,
내가 학교를 자주 찾는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3. 며느라와 딸
며느리에게는 "시집을 왔으니 이집 풍속을 따라야 한다."
딸에게는, "시집가더라도 자기 생활을 가져야 한다."

4. 용돈
며느리가 친정 부모한테 용돈 주는 것은
남편 몰래 돈을 빼돌리는 것이고,
딸이 친정부모한테 용돈주는 것은
길러준데 대한 보답이다.

5. 남편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6. 아들
남의 아들이 웅변대회 나가서 상을 받으면
누구에게나 주는 상을 어쩌다 받은 것이고,
내 아들이 웅변대회 나가서 상을 받으면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7. 훈육
남이 자식을 관대하게 키우면 문제아 만드는 것이고,
내가 자식을 관대하게 키우면 기를 살려 주는 것이다.

8. 반항과 소신
남의 자식이 어른한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자식이 어른한테 대드는 것은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이다.

9. 부부싸움
며느리가 부부싸움을 하면, "여자가 참아야 한다."
딸이 부부싸움을 하면,
"아무리 남편이라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10. 꾸지람
남이 내 아이를 나무라는 것은
이성을 잃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고,
내가 남의 아이를 꾸짖는건
어른된 도리로 타이르는 것이다



1. 몸가짐
남의 딸이 애인이 많으면 행실이 가벼워서이고,
내 딸이 애인이 많으면 인기가 좋아서이다.

2. 교육
남이 학교를 자주 찾는 것은 치맛바람 때문이고,
내가 학교를 자주 찾는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3. 며느라와 딸
며느리에게는 "시집을 왔으니 이집 풍속을 따라야 한다."
딸에게는, "시집가더라도 자기 생활을 가져야 한다."

4. 용돈
며느리가 친정 부모한테 용돈 주는 것은
남편 몰래 돈을 빼돌리는 것이고,
딸이 친정부모한테 용돈주는 것은
길러준데 대한 보답이다.

5. 남편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6. 아들
남의 아들이 웅변대회 나가서 상을 받으면
누구에게나 주는 상을 어쩌다 받은 것이고,
내 아들이 웅변대회 나가서 상을 받으면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7. 훈육
남이 자식을 관대하게 키우면 문제아 만드는 것이고,
내가 자식을 관대하게 키우면 기를 살려 주는 것이다.

8. 반항과 소신
남의 자식이 어른한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자식이 어른한테 대드는 것은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이다.

9. 부부싸움
며느리가 부부싸움을 하면, "여자가 참아야 한다."
딸이 부부싸움을 하면,
"아무리 남편이라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10. 꾸지람
남이 내 아이를 나무라는 것은
이성을 잃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고,
내가 남의 아이를 꾸짖는건
어른된 도리로 타이르는 것이다







'웃으며 삽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2) 2014.10.01
나 좀 봐주세요.^^  (0) 2014.09.22
살기 싫은 사람.ㅋㅋ  (0) 2014.08.17
어느 것이 본모습이야? ㅋㅋ  (0) 2014.07.25
아빠가 아기 보면 안되는 이유.ㅋㅋ  (0) 2014.07.23

바다와 야자수















 




 

 



 

 


 


 



 

 


 


 


 


 



 

 



 

 



 

 



 

 



 

 



 

 



 

 


 



 


 

 



 

 



 


 


 


 


 

 












 
 



 

 


 

 




 

 

 

 

 











'마음을 열어주는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仙景  (0) 2014.09.04
최고수준의 분재예술품  (0) 2014.08.26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  (0) 2014.08.17
귀여운 놈들  (0) 2014.08.12
세계최고의 예술적인 빌딩들  (0) 2014.08.09
총회장이 가톨릭과 신앙 및 직제(직분과 제도)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조인식에 서명한 것은 교단의 헌법과 신앙의 근간을 파괴한 엄청난 범죄행위요, 탄핵 받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


크기변환_통합 바대우.jpg

예장 통합측 목회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영우 목사, 이하 비대위)를 구성하고 나서서 교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에 구성된 통합측는 비대위는 '가톨릭과 신앙 및 직제 협의회를 조인한 총회장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부 목회자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비대위는  [가톨릭과 신앙 및 직제 협의회를 조인한 무책임한 교단장에 대한 통합 목사들의 결의문]이란 제목으로 교회연합신문 1면 하단에 실었다(위 사진). 

비대위는 성명서에서 “지난 2014년 5월 22일 서울정동 대한성공회 NCCK(한국지부)에 속한 교단 장들이 모여 한국 가톨릭과 신앙 및 직제(직분과 제도)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조인식에 우리 교단 총회장 김동엽 목사는 틍합측 대다수 목사들과 통합 285만 성도들이 모르는 가운데 서명을 하였다”고 말문을 열면서 비대위 구성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비대위는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서명할 때는 총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헌법에 명시한 전국의 목사 장로들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할 것이법이거늘 김동엽 총회장은 이를 어기고 한 행동이야 말로 교단의 헌법과 신앙의 근간을 파괴한 엄청난 범죄행위로써 탄핵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또한 비대위는 “로마 가톨릭이 어떤 단체인가”라고 물으면서, “과거 오직 성경대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성도들 6800만 이상을 고문하고 살해한 집단이었음에도 회개치 않고 지금도 성경에서 더욱 벗어나 여전히 ”가톨릭으로 들어오지 않는 개신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가톨릭이 성경을 벗어나고 있음을 고발했다. 

이어 비대위는 “그러면서도 교황이란 자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천명하고 다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것은 마지막 때에 성경에 예고된 배도의 세력이며 종교를 통합하려는 혼합종교를 추구하고 단체"라고 못을 박았다. 

비대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 총회장이 "그런 저들과 신앙과 직제에서 하나가 되겠다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배도행위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비대위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비대위를 구성했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1. 총회장은 이에 관하여 해명하고 사과하시오
2. 총회장은 총회 헌법을 준수하시오
3.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와의 신앙 및 직제협의회에 싸인한 것을 취소하시오

4. 예장 통합교단은 NCCK를 탈퇴하시오
5. 통합측 전남노회는 2013년 WCC 10차 대회와 관련하여 안디옥교회 박영우 목사를 죄 없이 정직시킨 일을 총회 앞에 사과하고 해지하시오

6. 우리의 이러한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시,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 양심으로 총회의 지침과 정책을 따를 수 없음을 천명합니다. 

이처럼 통합측의 일부 목회자들이 NCCK 탈퇴를 주장하고 나서서 교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위 결의문과 사과 촉구를 통합 총회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 김찬 기자 chantouch@naver.com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cfocus@hanmail.net
 

http://cafe.daum.net/nocatholic/MwyH/3
왜 권준 목사인가?

예수님의 눈물

뉴욕의 목사회가 권준 목사를 초청하여 집회를 한다고 합니다.
과연 권준 목사가 그럴만한 분인가요?

저는 권준 목사가 다른 목회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분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애틀 쪽의 많은 목회자님들과 성도들님의 말을 들으면 권준 목사는 이 시대의 교회를 병들게 하면서 영달과 성공(?)을 누리는 대표적인 목회자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시스탬 좋은 큰 교회를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전혀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분이라고 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과연 권준 목사와 하나님이 무슨 상관인지 아시는 분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쪽 목회자님들과 성도들이 말하기를 이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를 병들게하는 IHOP의 사탄성을 구분하지 못하고 성도들에게 권장한 대표적인 목회자라고 원성이 많더군요. 큰 교회인 권준 목사의 형제교회가 앞장서 IHOP과 관련을 맺으니, 마치 그것이 앞서가는 목회이고, 바른 영혼양육이고, 신령한 교회와 목회의 기준인 것처럼 그 지역에 퍼졌다고 합니다.

그까짓 아이합 좀 다니게 했다고 뭐 그리 ... 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신학과 배교가 일어날 때,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버리자!" ... 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외쳤지요! 은혜가 아니고 마귀의 장난인 것을 큰 은혜라고 가르쳤습니다.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서 그것을 "악한 사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의 바알을 사랑할 때에도 하나님을 버린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과 바알이 혼합되게 믿었습니다.

권준 목사의 목회의 노선이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아이합은 사탄적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권준 목사 같은 사람은 성도들에게 변함없이 아이합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이제 미국의 한 한인교단과 한국의 고신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참여를 금지"한다고 공고하였는데, 그것이 이단이 아니면 뭡니까?

도대체 권준 목사와 같은 혼탁한 신학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 왜 유명한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어째서 뉴욕의 목사회까지 그런 사람을 불러서 집회를 하며 배우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지 않으시겠습니까?

인터콥이 한국과 미국에서 그 동안 이렇게 큰 문제가 되었었는데, 권준 목사는 꾸준하게 인터콥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진목연이 문제를 제기할 때에 형제교회의 주일 광고 시간에 인터콥은 귀한 선교단체라고 광고를 하였다고 하더군요.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배교의 길을 조장하는 문제의 선교단체를 지지하고, 심지어 수 많은 목회자들이 외칠지라도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교회광고 시간을 할애하였다고 하니 .... 기가막힐 뿐입니다.

그런 분이 그리 존경스러울까요? 목사님들까지 저런 분을 선생으로 모시겠다고 난리니 ... 과연 이 시대의 교회에 예수님이 설 자리가 있는 것일까요?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한국 교회에 빈야드 찬양(경배와 찬양), 빈야드 예배(열린 예배), 아이합과 마이크 비클을 멋있게 소개한 하용조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재앙이었습니다. 양복발이 좋은 대학교수 빈야드 무당 손기철 장로에게 발판을 제공하여 한국에 큰 미혹을 퍼뜨리게 하신 분도 하용조 목사입니다. 사도행전 29 ... 하면서 온누리 지교회를 도처에 퍼뜨려서 건강한 작은 교회들만 잡아 먹어 예수님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최근에 들리는 말로는 홀로 되신 하용조 목사님의 부인이 오래전부터 김종필 집회와 연관되었고, 횃불회관인지 ... 그곳과 관련된 그 여동생도 김종필 집회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왜 온누리교회가 저러나 ... 의아함들이 오히려 풀리는 듯 하였습니다. 그쪽은 너무나도 영적으로 혼탁합니다.  

큰 교회면 하나님께 영광입니까? 그러면 기껏 12명 데리고 목회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수치입니까? 큰 교회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온누리 교회는 한국 교회의 피고름입니다. 하용조 목사는 건강한 교회가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해 버린 악한 자였습니다. 과연 지금 그가 예수님 곁에 있을까요? 생각이 있는 목사님들 중에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분개하지 않는 분이 없습니다. 늘 아프고, 특히 말년에 신장투석하며 오늘 내일 하시니 그냥 편히 가시도록 하자 ... 하고 참았을 뿐입니다.

그런 하용조 목사 밑에서 목회수업을 받은 사람들을 한결같이 그런 혼탁하면서 사람을 많이 불러모으는 목회의 귀재들입니다. 각 지역의 교회를 병들게 하는 분들의 공통점을 추적하면 온누리 교회를 경험한 목회자들이라는 특징이 나옵니다.

씨애틀의 형제교회의 권준 목사는 그 중에서도 황태자입니다.  

왜 목사님들까지 그런 무서운 사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 분을 강사로 불로서 집회를 하려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에 예수님이 설 자리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출처: USA 아멘넷 게시판ㅁ
한기총, 신학대 교수 207명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패소
"이단해제 비판은 종교자유의 영역"

2014/08/19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가 ‘다락방 류광수 이단해제’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이단연구가들과 신학대 교수, 학교법인과 신학회 등 총 207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민사부는 지난 14일 “원고(한기총)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한기총의 이단 해제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서들은 언론, 출판 활동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종교자유의 영역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한기총은 지난해 6월 ‘다락방 류광수 이단해제’와 관련해 신학대 교수 등이 “다락방 이단해제를 취소하라”는 성명서를 연이어 발표한 것에 대해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범영수 ⓒ 뉴스파워




출처: USA 아멘넷

교황의 한국 방문을 바라보며...

 

 

 

 

로마 카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는 그 역사적인 근거를 신약의 로마 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기록한 것처럼 본래 로마교회는 그가 선교 협력을 위해 방문하여 은혜를 나누기를 원했던 교회였으며(롬 1:11), 그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칭찬하였던 교회였다(롬 1:8).

 

로마 카톨릭 교회는 로마에 존재하던 이렇게 아름다운 영적 공동체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교황이 바로 이 로마 교회의 초대 주교라고 알려진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로마 교회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종교 조직이며,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선포했던 기독교의 공인의 정치적인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새로운 종교 조직으로 봐야 한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교회의 수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로마 교회는 예수님이 그 교회의 수장이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회 권력과 정치권력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교황이 그 교회의 수장이다.

 

그러므로 금번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의 모습에서 우리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엄숙한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종교인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기능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오묘한 정치적 종교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결정적인 차이점은 구원관이다. 신약의 로마 교회는 구원의 길이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확실하게 믿는 교회이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 카톨릭은 성인의 반열에 선 사람들은 '지복직관'(beatific vision), 즉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은 바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연옥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본다.

 

더 놀라운 것은 카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의 기도, 헌금, 선행으로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해 교회에 미사를 청구할 수 있고, 그것이 그들을 연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력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카톨릭 교회는 성인들이 평생의 선행과 헌신으로 저장해 놓은 ‘교회의 보고’라고 부르는 거대한 공로의 창고로부터 ‘대사’(indulgence) 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권한을 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 권한을 사용하여 연옥에서 고통을 받는 죄인들을 건질 수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많은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연약한 인간 심성을 적절히 이용하여 많은 위안을 주는 편리한 종교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러한 편리하고 인본주의적인 교리에 붙들리면 무슨 짓을 해도 결국은 이렇게 저렇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종교 조직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최고 존엄의 종교 권력과 세상 권력을 한 수 아래로 보는 정치 권력을 양수 겹장으로 가지고 있는 교황을 내세워 세속 정치를 통솔하면서 세상의 이목을 들어내고,

 

또 다른 면에서는 화려하고 엄숙한 종교 의식과 펀리한 구원론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현재 로마 카톨릭 교회는 가장 성공하고 주목 받는 종교 조직으로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인 공인 이후 1700년 가까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림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현재 한국이나 전 세계에서 개신교 교회 가운데 대형 교회로 그 세력을 확장하려는 교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유사한 종교 조직이나 행태를 볼 수 있으며, 자신들의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직, 간접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금번 교황의 한국 방문을 매우 우려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한국 교회가 진정 사는 길이 있다면 교황의 행태를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미 떠나버린 성경으로 더욱 철저하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방동섭 교수,

전 백석신학대학원,

리폼드신문 편집고문

가져온 곳 : 
카페 >개혁신학연구소
|
글쓴이 : 천지| 원글보기

            


죽은 친구를 꼼꼼하게 묻어주는 강아지!



'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진화론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0) 2014.08.26
일본에서 본 적장 이순신 장군  (0) 2014.08.23
강추-48m sub trailer  (0) 2014.08.15
불편하고 무서운 진실  (0) 2014.07.31
감동-기도가 불법이 될 때  (0) 2014.07.22

 

 <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 >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 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 엄마……. 나 합격 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일 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 위의 글은 10 년 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며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같이 공부하면서 가족들을 보살핀다고 한다.

 

엄마는 이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서.......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 들이 있기 마련.

주어진 환경을 감내하고 이겨 내느냐..

아니면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환경으로부터 회피하느냐.

사람의 앞 길엔 항상 두가지 길이 있다고 엄마가 얘기 했었지?<기억나니?>

어떤 길을 선택 하느냐는 미까의 몫.

회피는 또 다른 고통을 갖고 온단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정면 돌파 하는것.

 

마음을 비워 보렴.

장래에 대한 불안...

타인의 시선....

필요 이상의 욕심....

자존심...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 이외의 것은 주시지 않는단다.

그래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다면..

기다리는 거야...

 

글쓴이의 가족들이 경제적으로는 궁핍 하지만 멋진 사랑을 이루며 사는것 같아

 엄마는 참 부럽다.

우리도 이렇게 사랑하며 살고 있는거지???

사랑해.....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딸에게(음악은 언어를 초월한다)  (0) 2014.09.20
감동- 어머니  (0) 2014.08.28
도베르만과 소방관의 감동이야기!  (0) 2014.08.14
사랑받는 사람의 비밀  (0) 2014.08.11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0) 2014.08.04

예수회가 장악한 미 행정부


카톨릭 지하조직 예수회

 

로마 교황이 과거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죄를 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가 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만약 요일1:9에 따라 자백을 할 것 같으면 먼저 가짜 성경역본을 만든 죄부터 자백을 하여야 하고 또한 가짜 교리들 가령 '연옥'설이나 면죄부 판매 어떠한 계단을 오르면 연옥에서 9년을 감해진다는 엉터리 교리 성물, 천사, 성인, 성모 숭배 등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교황의 자백이 하나의 전략적인 속임수에 불구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들의 교리를 고치지 않고 있다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잃는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하면 무엇이든 성모 마리아라는 여자를 통해서 기도를 한다. 우리의 중보자는 성령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령(성신)은 밥먹을 때 삼각형의 성호를 긋는 일획의 '점' 에 불구한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귀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그 악명 높은 예수회(제수이트)는 교황의 오른팔로써 도미니꼬(도미니크) 회, 프란체스꼬(프란시스코) 회 등과 더불어 유명한 카톨릭의 단체이다. 물론 도미니꼬도 마찬가지로 성경대로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알베르토 리베가 박사(Alberto Rivera)에 따르면 1980년 이전에 미국 정부 행정직에는 예수회(제수이트) 회원이 2천명이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은 미국 행정부 수도 워싱턴과 주 정부에서 얼마나 많이 차지하고 있는지, 얼마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제수이트는 CIA / MK-Ultra/Project Monarch 프로그램 (극도의 외상 유발 다중 인성: 제수이트/바티칸의 마인드 컨트롤)을 통제하고 있다. 이렇게 로봇처럼 된 희생자들은 섹스 노예로 이용되어 주 정부의 고위층이나 전세계의 동료 마약 취급자들에게 마약/돈이나 비밀 메시지를 전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살인을 수행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에릭 해리스(Eric Harris)와 딜랜드 크레볼드(Dyland Klebold): 앨 고어(Al Gore)와 그 부하들은 '트렌치 코트 마피아'임을 확인시킬 수 있도록 컬럼바인(Columbine) 고등학교 연설 당시 검은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프로젝트 모나크(Project Monarch)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다.

제랄드 포드(Gerald Ford),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죠지 부시(George Bush), 죠지 부시 2세(George Bush Jr.), 빌과 힐러리 클린턴(Bill &Hillary Clinton), 로버트 버드(Robert C. Bird), 알랜 크랜스톤(Alan Cranston),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ACHES-MC(인간 실험 생존자 옹호 위원회- 마인드 컨트롤)이란 이 흉악한 제수이트/CIA 프로그램의 생존자/희생자들을 처리하기 위한 조직이다.

 

예수회와 돈, 돈, 돈


바티칸은 2천 6백 80만 달러를 들여 미국 지불준비금의 금을 구입했다. 시장 가격은 34달러/온스였지만 1달러/온스에 구입해서 시장 가격으로 미국 정부에 되팔았다.(미국 월드 매거진, 1952년 12월호). 5,500개소가 넘는 학교와 대학교(클린턴은 예수회 죠지타운대학(Jesuit Georgetown)에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공산주의 철학 교육을 받았으며, 제퍼슨 데이비스는 켄터키 주의 성 토마스 카톨릭 대학에서 공부했다)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플로리다 주 보카 레이톤(Boca Raton)에 있는 메리몬트(Marymount) 대학이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 대학은 1963년에 설립되어 1968년에는 학생 수가 350명이었으며 기숙사 보조금으로 2백만 달러, 이민자 자녀를 위한 빈민 구제 보조금으로 55,000 달러, 교육 보조금으로 10,000 달러를 정부에게서 보조받았다. 1965년 미시시피 주에서 실직자 재교육을 위해 7백만 달러가 지원되었던 프로그램은 로마 카톨릭 주교 관구가 운영했으며, 그 자금은 힐버톤(Hillburton) 법안(1954, 1964)을 통해 정부가 지원했다.

 
1947년부터 1964년까지 그런 프로젝트가 7,372건이나 승인받았다. HUD는 공유지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 카톨릭 교회에 귀속시켰으며, 이와 함께 그 토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프로테스탄트의 세금도 카톨릭에 바쳤다(1961년부터 하루에 83,000 달러 이상씩 받아 카톨릭 학교와 병원을 건립 중). HEW는 CPA(카톨릭 재산 획득 기관)으로 명칭을 바꾸어야 했다.

 
제수이트 포드햄(Fordham) 대학교는 뉴욕 시의 링컨 광장 일부분을 획득한 다음 연방 정부의 도움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와인과 브랜디로 유명한 맨하탄(Manhattan) 대학은 큰 공장을 획득한 뒤 뉴욕 기숙사 담당 당국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 HEW는 시카고에서 하이네스(Hines) 재향군인회 병원 소속 6에이커의 땅(450만 달러)을 제수이트 로욜라(Loyola) 대학교에 헌사했다. 재향군인회 의장 프레드 로데스 2세(Fred B. Rhodes Jr.)는 그 헌사 행위를 주저하고 있었기에 독실한 카톨릭 교도에게 의장 자리가 넘어갔다. 뉴욕 주의 은행 기록을 보면 1962년 카톨릭 교회가 수백 개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카톨릭 교회와 주 정부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공립 학교가 문을 닫으면 카톨릭 교회가 헐값에 구입한다. 카톨릭 교회는 공유지 경매 '밀봉' 경쟁에서 낙찰되지 않는 적이 없다. 이는 미국 정부와 지방 정부 등에 숨어 있는 카톨릭 압력 단체가 미국 헌법을 공개적으로 신의 뜻에 따라 통과시킴으로써 이루어지기도 하고, 카톨릭 교회를 대신하여 입법부와 재정 및 부동산 분야 등에서 무자비하게 활동하고 있는 카톨릭 딜러들의 정치 경제 조작이나 법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 때는 카톨릭 교회가 소유한 토지가 코네티커트 주 전체의 영토보다 더 많았던 적도 있었다. 카톨릭 교회는 토지를 구입하여 뉴욕 시에서 매긴 등급보다 낮게 건물을 건축한다(세금 면제를 위해서. 미스터 코카인(Mr. Cocaine) 조지 부시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 뉴욕 시가 어째서 두 차례나 파산했는지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교황의 은행가 마이클 시돈나(Michele Sindona)는 바쁘게 일을 하다가 결국 프랭클린 국립 은행을 파산시킨 혐의로 뉴욕 주 연방 교도소로 가게 되었다.

 

시돈나는 교황의 은행가였을 뿐만 아니라 IOR(바티칸 은행: Societa General Immobilaire)의 은행가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다음 기관 등에 개입했다. 이탈리아 프리메이슨 지부, P2(이탈리아 프리메이슨 지부의 런던 지부), 바티칸 정당, 시칠리아 마피아 및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Sindona는 시칠리아 마피아 및 코사 노스트라를 세워 스위스에 있는 바티칸 소유 은행에서 들어오는 돈을 세탁했다).


9억 달러에 이르는 위조 채권을 만들어 미국에 적용하려 한 사람은 시돈나일 가능성이 높다. 바티칸 은행(IOR)과 추기경 티세란트(Tisserant, 교황 다음 서열)가 주범임이 밝혀져 수사가 시작되자 티세란트는 자신의 일기를 모두 바티칸에서 제거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편안하게 죽어갔다.

IRS(미국 국세청)은 세금 기록에 관해 자신이 평가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IRS 법령이나 법률은 없음을 알고 기록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분류해서 BATF(마약 담배 총기 담당국)에 넘겼다. BATF는 비밀에 준하는 T 코드 시스템에 따라 그 사람들을 마약 밀매자로 분류한 다음 법률상의 증거를 제시하며 재산을 몰수한다. 어째서인가?

 
이에 관해 '적법한' 사법권을 지닌 곳은 IRS와 BATF뿐이기 때문이다. IRS는 푸에르토리코 재무성 소속이다. IRS의 원래 명칭은 'Internal Revenue Service a Department of The Treasury(재무성 내국세 서비스 담당국)'이다. 어느 국가의 재무성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미국 재무성 USC 31조에서 재무성이 어떤 기관들에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지 찾아 보라. 빠져 있는 기관이 있다. 바로 IRS와 BATF이다. 어째서 미국 재무성이 아닌 IRS에 세금을 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IRS는 자금을 국제 은행가(IMF)에게로 전환시킨다. 세금 사건에서도 IRS는 판사들에 관한 세금 파일을 사건 담당 변호사에게 넘긴다. IRS 편을 들어줄 수 있는 판사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IRS에 관한 문제를 더 알고 싶으면 세금 전문가 벤 호우크(Ben Houck)에게 연락 바란다.


예수회 제수이트는 미국 은행의 51%를 소유하고 있으며, 바티칸은 전세계에 걸쳐 수백 개 은행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라보로(Lavoro) 국립은행(교황이 이해 관계를 좌우함)은 조지아 주 아틀란타 지점을 통해 미국 농무성에서 들어온 세금 50억 달러를 세탁하여 사담 후세인의 무기('슈퍼 건(Super Gun)' 포함)를 구입하는 데 지불했다. 판사 에드워드 로지(Edward Lodge)는 죠지 한센(George Hansen) 의원을 투옥시키고 고문을 가했다(이른바 '디젤 요법'. 그 결과 한센은 손목을 평생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한센이 사법부를 조사하여 「IRS와 정부가 우리 국민을 괴롭히기 위해 남용하는 권력」이란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센은 소득세 탈세와 관련하여 교회를 선택적으로 고소하는 IRS의 관행에 대해 언급했다. 그렇다고 이 행위가 미국 재무성을 위해 징세하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벌금 등을 포함한 세금 액수는 IRS가 문선명(통일교교주) 사건을 고소하는 데 소비한 금액의 일부도 되지 못한다. 뉴욕의 로마 카톨릭 대주교는 문선명이 기소된 법정에서 3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문선명보다 1천 배나 더 비싼 자산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사실 카톨릭 교회법은 관할 교구장이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법률상으로는 '법인의 독점'이라고 하며, 이 때문에 미국 내 추기경과 주교 수백 명은 단 한 차례도 IRS의 조사를 받지 않았다. 또한 아무 혐의도 받지 않았다.


예수회와 이민국 장악


죠셉 몬토야(Joseph Montoya) 의원은 IRS의 개혁을 추진했기에 1970년대 상원 청문회에서 과거 잘못한 사실에 대 추궁받았다. FDA, HRS 등 법원의 명령 없이 또한 권리장전 제5조에 구속받지 않고 사람을 체포하고 건강 식품점을 수색하며 재산을 몰수하고 동물을 죽이거나 재산을 파괴할 수 있는 당국들은 하비스 코르푸스(habeas corpus-유죄로 판결되기까지는 무죄라는 조항)을 파기한 셈이다. 그래서 보트를 통해(합법 또는 불법) 들어오는 히스패닉계(모두 카톨릭) 이민자들(모두 제수이트가 통제)은 미국의 복지 제도를 좀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경제를 파괴하며(그러므로 회사와 근로자를 카톨릭 우세 국가들에 보내려는 나프타와 가트(Nafta and Gat)는 바티칸이 멕시코를 통제함으로써 계획적으로 무산되었다), 연방 및 지방 의회와 선거에 영향을 주고 있다(비공식 개인 법인 NES(뉴스 선거 서비스)가 미국 선거에서 선전과 개표를 물리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중에게 알리지도 않고 있다). 그 이민자들은 복지 제도가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할 때까지 끊임없이 복지 혜택을 받을 것이다.


미국 내 이민 당국은 모두 카톨릭 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인 셈이므로 미국으로 들어오는 어느 카톨릭 이민자에게나 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사실에 관해 의심이 난다면 빈센트 라 비스타(Vincent La Vista)의 「이탈리아 전역의 불법 이민 운동」(비밀 취급 해제 번호 No. NND 760050, 4-11-90, 국립 문서보관소 기록 그룹 No. 59). 미국은 어째서 로마와 멕시코 시티에 이민 당국을 두어야 하는가?


로날드 레이건과 리처드 닉슨은 이 나라로 들어오는 제2차대전 파시스트 전범들을 이용했다(뉴렌베르크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은 나치 전범 월터 도른벌거(Walter Dohrnberger)는 벨 에어로스페이스(Bell Aerospace) 회사 연구개발부장이다). 이는 바티칸의 '연줄'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 때문에 두 대통령은 표를 많이 받아 백악관의 권좌에 앉을 수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에 유고슬라비아 카톨릭군대 우스타쉬(Ustasha)에 대한 승인의 날을 제정했다. 그러자 유고슬라비아 정부의 항의에 부닥쳤다. 유럽의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에는 S.S. 장교의 무덤에 화환을 바쳤다.

 


F.X.Schouppe(제수이트)의 저서 「대학과 학교 활용에 관한 종교적 가르침 축약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카톨릭 교회는 약속한 맹세에서 면제될 수 있다. 이 권한은 교황과 주교에게 속하며, 자신이 또는 위임자를 통해 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203쪽).

"시민법은 카톨릭 교회의 권리에 순응할 때에만 양심의 구속을 받는다."(278쪽).

법정을 관할하는 판사들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피고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내려 주권을 빼앗는다. 텍사스 주 와코(Waco)의 왈터 스미스 2세(Walter Smith Jr.)(판사 Roy Bean)의 예를 보라. 연방 정부가 '시민권'을 유린한 사례는 너무 많다. IRS의 특수 요원은 필자의 책상에 권총을 내려놓고 위협한 일도 있다. 이는 수집상 존 예웰(John T. Yewell)이 직접 목격한 사실이다.


와코(Waco) 사건에서는 필로폰(마약) 실험실 혐의를 날조하여 미국 변호사 빌 존슨(Bill Johnson)에게 BATF 깡패들에 대한 보장을 얻어내려 했다. 이때 BATF 직원 로버트 로드리게스(Robert Rodriguez)가 마운트 카멜에 있었으므로(조사원들이 닥치기 전날) 무기를 모두 조사해 본 상태여서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데이빗 코레쉬(David Koresh)가 BATF에게 무기 조사를 더 해 보라고 요청하자 BATF는 거절했다(그러므로 살인과 폭력에 대한 이유는 없는 셈이다). 또한 조사가 시작된 뒤 어째서 슬릭 윌리(Slick Willy)가 검찰총장을 자넷 레노(Janet Reno)로 교체했는지 알 수 있다. 빌 존슨(Bill Johnston)은 사격장에서처럼 사격하고 싶어했으며, 그 이전부터 조작된 언론의 지원을 100% 받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1994년 1월 28일, 캐롤 무어(Carol Moore)의 「데이비디언 지점의 대학살」)

 

또한 언론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해 언급한 목사들에 대해 '교회와 국가의 분리인가?'라고 외치며 공격을 퍼부었다. 또한 교황이 미국에 와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연설을 하자 모두 침묵을 지켰다. 교황의 낙태에 대한 언급에 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매들린 머레이 오헤어(Madelin Murrey O'Hair)뿐이었는데, 그 언급 내용은 그 이후로 공개되지 않았다. 오헤어와 그 가족은 뉴욕에 가서 교황에게 항의하기 직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매스미디어는 침묵을 지켰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던 ACLU도 정부의 돈(프로테스탄트 납세자들이 낸 세금)이 카톨릭 학교에 지원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제수이트 대학교와 그 프로그램에 지원되고 있는 연방 보조금과 대출금은 수십 억 달러에 이른다). 20세기 말엽 교황 레오(Leo) 13세가 매년 150만 달러 이상씩 갈취한 곳은 다음과 같다.


(1)피터(Peter)의 기부금($415,000 이상)

(2)로마 교황의 대사관 사무국($520,000)

(3)교황 피우스(Pius) 9세가 교황청 재산으로 남겨 두었으며

   주로 영국의 콘솔 공채에 투자된 방대한 금액의 이자($625,000)

 

교황은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와 같이 카톨릭 국가가 아닌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증권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 수치는 오늘날의 금액과 비교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제수이트는 해마다 2억 8천만 달러 이상씩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 대상이 되는 성직자는 539명이다. 이 금액은 모두 면세이다! 또한 IRS의 조사를 받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스탠리 로웰(Stanley Lowell)과 마틴 라르손(Martin Larson)의 「면세해 주신 데 대해 주님께 찬양하라」란 책을 읽어 보라.

 
필자의 논점을 긍정하지 않는다면 필자의 잘못이 무엇인지 증거를 들어 보라. 개인 파일을 열어 보기만 해도 어느 제수이트 학교가 지원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컬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 말타 기사단(Knights of Malta) 등). 판사 랭크(Rank)와 제임스 맥클루(James F. Mcclure)는 펜실베니아 주 민사 법정에서 스티븐(Steven)과 던 아메스(Dawn Ames)의 자녀 유괴 사건을 호의적으로 처리했다(법정에서는 혐의가 있다고 해도 그 어린이들의 부모에 대해서는 통지도 없이 출석하지도 않은 채 진행되었다). 혐의가 있다면 자녀들에게 성경과 미국 헌법을 가르쳤다는 것뿐이다. 또한 BATF나 일루미나이티 회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미지나 심벌이라든지 교리(이름은 바뀌었어도) 등은 나치의 것과 동일하며, 독일의 나치 조직과 직접 관련이 있다.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미국 정부 관료는 누구나(특히 CIA) 스콜본(Skull &Bones) 회원이 되어야 한다(이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유래되었으며, 예일의 알폰소 태프트(Alphonso Taft)와 윌리암 러셀(William H. Russell)이 창설하여 예일 대학교에만 존재한다). 일부 회원들은 오클라호마의 제로니모(Geronimo)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 예일 캠퍼스 묘지에 옮겨 놓기도 했다.


교황은 자신의 의도를 문서로 분명히 정해 놓았으므로 로버트 슘너(Robert L. Sumner, 근본주의 목회자들에 대해 거짓말을 유포하는 사람)의 배경을 조사하는 일은 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딤전 5:19). 짐 발러(Jim Baller),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폴 크로우치(Paul Crouch), 베니 힌(Benny Hinn),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잭 반 임프(Jack Van Impe)와 같은 사람들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요한계시록 17:5)"를 은폐하기 위해 세계교회주의 운동을 벌이는 TV 설교자들이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린도후서 11:13-15)

제수이트는 30년 이상 동안 카톨릭 교회의 국가 회의와 세계 회의를 통제했다.
http://blog.naver.com/cjseong123/60048202033

가져온 곳 : 
블로그 >마지막 때의 진리(眞理)
|
글쓴이 : 아이맨| 원글보기


六曹 거리 광화문

★조선의 상징적 거리 광화문 앞 6조(六曹)거리★

임금이 계시는

정전의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

의정부(議政府=현재의 국무총리실)

이조(吏曹= 지금의 내무부)

한성부(漢城府 =지금의 서울 시청)

호조(戶曹 =지금의 재정경제원)가 차례로 있었고

서쪽에

예조(禮曹= 지금의 외무부,교육부)

병조(兵曹= 지금의 국방부)

형조(刑曹 =지금의법무부)

공조(工曹= 지금의 건설부)가 차례로 있었다.

그 복판으로난 길이라 해서 6조(六曹)거리라 했다

조광조가

도학정치를 펴다가 모함을 받고서 옥에 갇히자

성균관을 비릇한 장안의 유생들이

이 六曹(육조 = 여섯개의 관청=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궐문을 밀치고 난입

궐병(궁궐수비대 병사)들과 싸우는 바람에 유혈이 낭자했다.

옛 六曹 거리는

민심의 공감이 분출되는 시위의 현장이였으며

정부에 항의하는 4.19와 6.3의 학생데모가

이곳에서 벌어졌음도 우연이 아니다.

6조 거리엔

큰 구경꺼리가 있었는데 만인산(萬人傘) 행열이었다.

시골의 현감과 군수들이

자신의 치적들을 六曹의 벼슬아치 들에게

과시 하고자 벌이는 헤프닝인 것으로

커다란 양산에 수령의 치적을 적은 베 나부랭이를

주렁주렁 매어 달고

이를 성장한(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에게 들려 말을 태운 후

<아무개 고을 마무개의 만인산 나들이요!> 하며

삼현육각을 앞세워 이 6조거리를 수십차례 왕복했다고 한다.

1892년의 광화문 육조거리를 묘사한 그림

지금의 서울 시청격인 한성부


하나님의 말씀만을 설교해야 한다-윌리엄 퍼킨스

설교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1) 설교는 교회를 모으고, 선택받은 모든 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도구다. 2) 설교는 주님의 양무리에게서 늑대들을 쫓아 버린다. 설교는 플렉사니마 즉 영혼의 ‘유혹자’다 설교로 인해 자의적인 마음이 누그러지고, 불경건한고 이교적인 삶의 양식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회개하는 삶으로 전환된다. 고대 이교도들의 근원을 흔든 것이 설교라는 무기다.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고전14:3)

말씀의 사역자에게는 오직 두 가지 의무가 있다. 하나는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대언이라는 말은 설교만이 아니라 기도에도 적용된다(대상25:1). 그러므로 모든 대언자의 임무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목소리로(설교로) 선포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백성의 목소리로(기도로) 아뢰는 것이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대언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은 설교를 통해 은혜로 부름을 받고 은혜 안에서 보호하심을 입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께로 오게 하셨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간청한다. 이는 우리를 시켜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5:18-20).

성경의 완전성과 내적인 연속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설교해야 한다.

성경은 설교의 유일한 주제이며 설교자가 끊임없이 일해야 할 유일한 밭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오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거룩한 진리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딛 1:1-2).

성경의 본질이 가진 탁월함은 완전성 또는 순결성 또는 영원성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성경의 완전성은 충족성 또는 순결성에도 있다.

성경의 충족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완전해서 어느 것도 성경에 더하거나 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은 어느 것이나 적절한 목적을 위해 항시 제자리에 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19:7).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12:32).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성경의 순결성은 성경이 실수나 속임이 없이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사실에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12:6).

성경의 영원성은 침범할 수 없는 특성을 말한다.

성경이 명하는 모든 것이 완전히 성취될 때까지 다 이루어진다(마5:18).

성경의 효력은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1. 인간의 영을 꿰뚫는 능력(히4:12).

2. 양심을 묶는 능력,

즉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하여 변명하거나 참소하지 못하게 한다(약4:12, 사33:22).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성경 속에 있다. 성경은 성령의 서기나 비서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교회를 위해 적절한 언어로 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1).

우리가 성경을 정경이라 부르는 이유는 주님이 사용하는 잣대 또는 줄이기 때문이다.

정경의 도움으로 진리를 발견하고 검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모든 논쟁에 따른 판단과 최종적이며 최고의 결정은 성경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의 메시지의 핵심과 본질을 다음과 같은 논증(삼단논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전제: 참된 메시야는 하나님이며 동시에 사람이 되실 것이며, 다윗의 씨를 통해 오실 것이다. 메시야는 하늘 아버지의 품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메시야는 율법을 만족시키실 것이며, 믿는 자들의 죄에 대한 희생으로 자기 자신을 드리실 것이다. 메시야는 죽음과 부활로 사망을 이기실 것이다. 메시야는 하늘에 올라가실 것이고, 때가 되면 심판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소전제: 마리아의 아들 나사렛 예수는 이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신다.

결론: 따라서 예수님은 참된 메시야이시다.

이 삼단 논법에서 대전제는 모든 예언서의 범위 내지 주된 요지이며

소전제는 모든 복음서와 사도 서신 속에 담겨 있다.

- 윌리엄 퍼킨스, 『설교의 기술과 목사의 소명

가져온 곳 : 
카페 >개혁주의 마을
|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주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멜기세덱  (0) 2016.10.16
교회를 슬프게 하는 신학논리  (0) 2015.02.04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 (토마스 브룩스)  (0) 2014.06.27
대체 신학이란 무엇인가?  (0) 2014.06.17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당할 때  (0) 2014.03.09


      질투와 시기심의 차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기심과 질투를 구분해서 설명하였다. 질투는 이웃이 가진 걸 자신이 갖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다. 한편, 시기심은 자기가 갖지 못한 걸 이웃이 가지고 있어서 슬픈 감정이다. 질투의 초점이 본인에게 있다면, 시기심의 초점은 타인에게 있다. 시기심은 언제나 밖을 향한다. - 함규정의《서른 살 감정공부》중에서 - * 질투와 시기심.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질투와 시기심의 갈림길에서 해메이던 경험, 괜히 상대방을 미워하고 초라해진 자신 앞에서 의기소침해진 경험, 누구나 한 두번은 있을텐데요! 나이를 먹을수록 빨리 작별해야할 감정 때문에 일이 힘들고 사람이 힘들다면 내 감정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눠야겠지요. 명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고도원 아침편지]
 

'짧은 글 긴 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을 맞이하기 위한 묵상..!  (0) 2014.09.24
읽으면 힘이 되는 명언  (0) 2014.08.25
어루만짐  (0) 2014.08.14
톨스토이 인생 10훈  (0) 2014.08.09
작은 친절의 결과  (0) 2014.08.03

▼ 하나님과의 인터뷰

http://youtu.be/suvVEayEJww






라벤더 향기가 풍기는 곳으로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수 갚기  (0) 2014.09.11
눈물을 통과한 사명  (0) 2014.09.01
순교자들의 마지막 고백(순교 사화)  (0) 2014.08.08
뒤 늦은 후회  (1) 2014.07.19
예수의 말을 들으라  (0) 2014.07.18

마리아를 중보자로 믿는 로마가톨릭교회 / 최덕성 교수

 

 

자그레브_대성당.jpg


황금 마리아상 (자그레브대교회당)


마리아를 중보자로 믿는 로마가톨릭교회


[특별기고]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③ 마리아 숭배 

 

크리스천투데이, 2014.08.09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4158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구원의 중보자로 믿는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는 두 길이 존재한다. 예수와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올라 있다. ‘성사위일체(聖四位一體)’라 불릴 정도이다. 마리아는 신앙과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살았고 원죄가 없으며, 자범죄도 범하지 않았고, 죽자마자 육체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믿는다.


마리아 교리는 구원자-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을 격하시키는 이단 사상이다. 마리아 숭배 행위는 우상숭배이다. 성경 어느 부분도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 교리와 ‘성모 숭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마리아 숭배는 지중해 세계에 만연한 이교의 여신숭배 사상 및 행습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1. 일평생 동정녀 교리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마리아가 일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는 교리를 로마가톨릭교회의 진리로 확정했다(교회헌장 제52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499조). 공의회 ‘교회헌장’은 약 4분의 1 분량을 마리아 교리 서술에 할당한다(제52-69항).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의 형제들이라는 야고보와 요셉(마 13:55)”은 어떤 관계인가?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들이 “예수의 한 제자인 다른 한 마리아의 아들들(마 28:1)”이라고 한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형제들’이란 구약시대의 표현 방법이며, “예수의 가까운 친척을 일컫는 말(가톨릭교회 교리서 제500조)”이라고 풀이한다.


마리아가 일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는 교리의 배후에는 이원론적 헬라주의 사상과, 고행주의를 미덕으로 여기는 세속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성(性)을 경멸하는 이방 세계의 시각이 로마가톨릭교회를 통제한다. 교회는 플라톤주의 이원론과 고행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교리를 발전시켜 왔다.


성경은 요셉과 마리아가 여러 명의 자녀들 두었다고 증언한다.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했으나,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와 같이 자지 않았으며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마 1:25)”고 한다. 성령으로 잉태된 첫 아들을 낳은 뒤, 다른 자녀들을 낳았음을 시사한다.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마 13:55-56)”. “이 일이 있은 후에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내려갔으나 거기에 여러 날 머물러 계시지는 않았다(요 2:12)”. 이 구절들은 마리아가 성생활과 무관하지 않으며, 여러 자녀들을 낳았음을 시사한다.


예수께는 최소한 두 명 이상의 ‘누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마 13:56)”. 위 번역문은 평양판 <성경전서(2010)>에서 옮겨왔다.


2. 원죄 없음 교리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마리아에게 불멸의 영혼이 주입된 후, 그녀는 윈죄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은혜를 입을 수 있었고, 또 은혜를 입었다. 마리아는 원죄 없이 태어났다”고 했다(John Trigilio Jr, Catholicism for Dummies, 2003, 265).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다는 교리는 19세기에 이르러 공식 교리로 등장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가 원죄의 오염 없이 아이를 잉태했다고 선포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다(The Catholic Encyclopedia, VII, 674)”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마리아의 평생 무죄설을 확정했다. 평생 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라고 한다(교회헌장 제56항). 로마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그녀의 전(全) 지상 생애 동안 어떠한 종류의 죄도 범하지 않았다. … 일평생 모든 자기 죄(자범죄)에 물들지 않았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411조, 제508조)”고 한다.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는가? 자범죄와 무관한가? 이 교리는 마리아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아닐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3. 중보자 마리아 교리


교황 베네딕트 15세(1914-1922)는 마리아의 ‘구원 협력설’, 곧 중보자 마리아 교리를 선언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를 확정했다. “복된 동정녀께서 사람들에게 미치는 모든 구원의 영향은 사물의 어떤 필연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의에서 기인하고, 또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로에서 흘러나온다(교회헌장 제60항)”고 한다.


마리아는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아들과 함께 수난을 겪었다. “영혼들의 초자연적 생명을 회복시키고자 온전히 독특한 방법으로 구세주의 활동에 협력했다(제61항)”.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인류 구속 역사에 참여했다. 구원사역에 협력했다. 마리아는 승천한 뒤에도 구원사역 임무를 계속한다.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주신다. … 그 때문에 복된 동정녀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중보자)라는 칭호로 불린다”고 한다. “하나님의 유일한 신성이 피조물들 안에서 실제로 갖가지 모양으로 퍼져 나가듯이, 구세주의 유일한 중개도 피조물들 가운데에서 그 유일한 원천에 참여하는 다양한 협력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불러일으킨다(제62항)”고 한다.


중보자 마리아 교리는 하나님이 마련한 구원의 길 밖에 또 다른 길, 다른 중보자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유일한 중보자(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엄과 능력을 침해한다. 유일한 구원자-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을 모독하고 격하시킨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실제로 구원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자들은 마리아에게 직접적으로 기도한다.


4. 마리아 승천교리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가 죽는 순간에 승천했다는 교리를 선포(1950)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녀였던 하나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를 마친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계시된 신앙의 진리이다(The Catholic Encyclopedia, XIII, 185)”고 믿는다. 성경은 마리아의 죽음에 관해 침묵하지만, 교회의 ‘전통―성전(聖傳)’은 그가 천국으로 들리어 올라갔다고 가르친다고 한다(Catholicism for Dummies, 265-266). “마리아가 지상 생애의 여정을 마쳤을 때 몸과 영혼은 하늘 영광으로 올림을 받아 주님에 의하여 만물 위에 여왕(Queen)으로 존귀하게 되었다.” 마리아가 “주님께로부터 만물의 여왕으로 추대받았다(교회헌장 제59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966조)”고 한다.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치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했다고 하지 않는다. 만물 위에 여왕으로 등극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능성을 떠올리는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가 마리아에게 부여한 ‘하늘의 여왕’이라는 칭호는, 원래 바벨론 신전의 여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이교 명칭을 마리아에게 부여하여, 만왕의 왕 만유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찬탈하는 불경죄를 범하는 격이 되게 했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하늘의 여왕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왕권 일부를 찬탈한 범죄자이다. 대역죄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종래의 마리아 교리와 교황 비오 12세의 선언들을 고스란히 추인했다. 마리아는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티 없이 깨끗한 동정녀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져, 주님들의 주님이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인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교회헌장 제59항)”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향한 기도를 장려한다. 마리아는 하늘에서도 우리의 ‘변호자’로서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한다. 그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중보자)라는 칭호로 불린다(제62항). 모성애로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스도는 효성이 지극하기 때문에 어머니 마리아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다(제62항). 그래서 신자들은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님! … 이제와 저의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하고 기도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신도들에게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는 길은 둘이다. 신자들은 중보자(중재자, 중개자) 마리아 조형물 앞에 촛불을 켜놓고, 그 상을 향하여 손으로 십자가 표시를 하고 합장으로 예를 올리며, 절을 한다. “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는 성경의 계명에 역행하는 종교 행위를 한다.


5. 우상숭배


마리아는 가장 복 있는 여인이다(눅 1:42). 참으로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성육신 과정에 자발적으로 수종을 들었다. 구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나님의 귀한 쓰임을 받은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인간이다. 예배, 기도,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원죄가 없다거나, 자범죄가 없다거나, 승천했다거나, 인류 구원의 중보자, 중개자라는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미신과 이교신앙과 광신과 교회 권력의지의 결과이다.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통치 이후에 교회 안에 들어온 이교는 서방교회의 미신적 교리를 부추겼고, 마리아 교리와 마리아에 대한 우상숭배 행습을 가져왔다. 에베소공의회(431)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神母)’라고 규정했다. 이 결정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에서 정통신앙으로 수용되고 있다.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뉘앙스를 지닌 이 칭호는, 본디 마리아를 높이는 표현이 아니라 그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 위격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마리아에 대한 로마가톨릭교회의 흠숭, 공경, 상경은 실제 교회 생활에서 인간숭배로 자리잡았다. 신자들은 마리아 상을 향하여 절을 하고 공경의 예를 표한다. 십계명의 제2계명에 저촉되는 경배, 예배, 숭배 행위를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십계명에서 우상숭배 금지 계명, 곧 제2계명을 배제한다. 열 번째인 탐심에 관한 계명을 둘로 나누어 열 가지 계명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우상숭배 금지 계명을 제1계명에 포함시켜 그 명령을 축소, 마비시킨다.


로마는 성상숭배, 성유물숭배, 성인숭배를 하고 있다. 또 일제 말기 정치적 동기로 일본의 신사참배, 중국의 공자숭배, 한국의 조상제사를 허용했다. 여러 해 전 김수환 추기경은 유생 김창숙 선생의 묘소에서 제물을 바치고 몇 차례 큰 절을 하고 술을 따라 바쳤다. 한국 천주교회 사제 문규현 신부는 국토를 남북으로 통과하는 삼보일배 행사의 출범식을 하는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산신령 화상을 향하여 불교 승려와 함께 큰절(사제서품 때처럼 바닥에 완전히 엎드리는 형식)을 하고 제물과 술잔을 바쳤다.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불교 사찰의 템플스테이 행사에 참여하고, 불교의 108 참회기도문을 외우며, 불상을 향하여 절을 하기도 한다. 십계명에서 제2계명을 빼버린 결과는 다양한 형태의 우상숭배 활동으로 나타난다.


6. 이교 배경과 관련성


마리아 교리와 행습의 배후에 있는 이교 배경과 관련성은 성모에 대한 공경, 상경, 흠숭 또는 숭배 행위가 우상숭배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뒷받침한다. 마리아론이 로마가톨릭교회 안에서 그토록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마리아가 ‘하늘의 여왕’으로까지 숭상되는 까닭은 이교 풍습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 끝난다. 기독교회가 박해를 받고 있는 기간과 그 뒤 얼마 동안,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없었다. 4-5세기까지도 마리아 축제라는 것이 없었다. 마리아에 대한 기도가 없었다. 마리아를 칭송하는 신학 이론도 없었다.


핍박기가 끝나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391 AD)되면서, 기독인들 사이에 마리아 숭배 행습이 나타났다. 창검의 힘과 위협에 눌려 형식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이교도들, 중생 체험이 없는 자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옛 종교의 여신들(female deities)을 예배하는 자신들의 풍속을 기독교 안으로 가져왔다. 마리아를 ‘항구적 동정녀’로 생각한 암브로시우스, 제롬, 어거스틴도 마리아에 대한 공경심이 자칫 이교의 모신(母神) 숭배 신앙과 동일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모신숭배 행위는 고대 근동의 여러 종교들에서 나타난다. 아르테미스(Artemis), 더메터(Demeter),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와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다이아나(Diana), 세레스(Ceres), 비너스(Venus) 등 여성 신 개념은 바벨론에서 왔다. 바벨론은 이 땅 ‘최초의 왕’의 아내인 이스타르(Istar)를 ‘위대한 어머니’로 숭배했다. 서양 세계에 기독교가 번영하면서 바벨론의 여신 숭배 사상은 마리아 공경과 숭배로 대체되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경고한 바벨론의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렘 7:18; 44:17)’이 기독교의 ‘여신 마리아’로 바뀌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으로 섬기던 여신 아스다롯 숭배(삼상 7:3, 4; 왕상 11:5, 33; 삿 2:13, 10:6)가 기독교 형태로 옷을 갈아입었다.


어느 로마가톨릭교회 학자는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 에베소라고 주장한다. 에베소는 마리아에게 아주 특별한 도시이다. 에베소공의회(431)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 교리를 다루었고,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규정했다. 이는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에베소는 여신 아데미(행 19:27, 35)에 대한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곳이었다.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예수의 위격(位格)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러나 당시 에베소에 번창하던 헬라주의 여신 개념이 반영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에베소공의회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부여하자마자, 열성적인 이교 출신 기독교 신자들은 당장 “위대한 하나님의 어머니, 찬송받을지어다” 하는 송영을 올렸다. 그들은 정치적 동기 또는 형식상 기독교로 전향한 자들이었다. 송영 형식은 에베소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에 대한 칭송과 같았다. 이스다롯(Ishtar, Ishtarot), 퀴벨레(Cybele) 여신 숭배 개념과 이교 여신숭배 신앙 행습이 곧장 ‘하나님의 어머니’에게 적용되었다.


웅장한 교회당 모자이크는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묘사했다.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기오레대교회당 벽화는 마리아를 이교 여성 모신(母神) 형태로 표현한다. 마리아상에는 이교 여신들의 옷과 장식이 달렸다. 바벨론 여신과 동일한 모습의 하늘의 여왕으로 묘사되었다. 바벨론 어머니와 아기에 대한 예배 형태가 기독교 안에서도 나타났다. 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함께 묘사한 그림들은 모자(母子)를 그린 이시스와 호루스, 퀴벨레와 아티스 그림과 동일한 형태였다(Erich Bruning, Project Einheit, 2004, 40-41). 여신을 숭배하던 종교 건축물들이 우뚝 솟은 것처럼, 큼직큼직한 마리아교회당, 마리아 기념 채플이 건축되었다.


주후 5-6세기에 이르러 서방교회는 마리아에게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마리아를 계시록 12장 1절의 ‘열두 별의 관을 쓴 여자’로 해석했다. 마리아를 성부, 성자, 성령과 동격으로 간주할 정도로 높은 공경을 바쳤다. 마리아에 대한 공경 의식은 5세기에 나타났다. 마리아 축제는 7세기, 마리아 무흠(無欠) 잉태설, 곧 원죄가 없다는 사상은 12세기에 각각 등장했다. 마리아 승천교리는 15세기 신학논쟁의 주제였다. 동정녀 마리아의 우주적 권위는 그가 지상의 생을 마칠 때 몸과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신앙에서 극대화되었다. 그 무렵 마리아에 대한 기도가 등장했다. 서양 중세인들은 사실상 마리아를 포함한 ‘성사위일체(聖四位一體)’를 믿었다. 마리아는 존경, 흠숭, 공경의 차원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서양 중세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했다. 십자군 원정을 치른 서방세계의 신앙은 더욱 감정적으로 변하여, 인간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 구원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라 마리아였다. 어머니와 그 아들의 이야기는 대단한 호소력을 지녔다. 죄인을 위해 마리아가 아들에게 동정적 탄원을 하면, 그 어떤 무서운 죄와 비열한 허물도 모두 용서한다고 믿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청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직자와 수도사만이 아니라 왕, 기사, 농부도 마리아의 도움을 간청했다. 성모는 낭만적 망상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리아를 위한 전승 기념물로 건축되기도 했다. 그 시대 농부들은 그리스도의 피가 섞인 땀방울 뿐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유방에서 짜냈다는 젖을 지역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대와 그 이후, 마리아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19세기에 105차례, 20세기 430차례 나타났는데, 모두 여성의 환영(phantom)으로, 광명―빛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였다고 한다. 성경은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난다고 한다(고후 11:14). 유럽연합 기(旗)에 새겨진 12별의 왕관은 열두 별이 달린 왕관을 쓴 ‘하늘의 여왕(계 12:1)’, 곧 국가와 종교와 세상의 통합을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다.


유럽연합 기(旗) 초안에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초안이 거절되자, 유럽위원회 문화성 수장 폴 레비가 현재의 것을 만들어 승인을 받았다. 벨기에인 레비는 유태교에서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어느 날, 마리아 상에 비치는 햇빛에 반사된 푸른 하늘에 나타난 장엄한 황금 왕관에서 유럽연합 기 모양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연합이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 여황’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그녀를 지극히 공경함을 상장한다.


마리아 신앙은 이처럼 이교의 텃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부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은 로마교회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Regina coeli)’, ‘공동 구속자(Coredemtrix)’,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gratiarum)’ 같은 칭호들로 치장하는 행위를, 그릇된 신앙심의 결과이며 궤도를 이탈한 무절제한 짓이라고 본다(Rene Laurentin, Kurzer Traktat der Marianischen Theologie, 1959, 101).


7. 마리아 교리와 교회일치운동


한국 천주교 교의학자 심상태 교수(수원가톨릭대)는 에큐메니칼 운동 맥락에서 마리아 교리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마리아 숭배 또는 공경의 타당성을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한 구원사적 기능을 수행한 데서 찾는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성육신 사건에 어머니로 참여했고,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자의적으로 적극 협력했으며,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順命)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했다. 따라서 교회가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께 바치는 공경인 흠숭지례(欽崇之禮)보다 낮으나 일반 성인들에게 바치는 공경지례(恭敬之禮)보다 한층 높은 상경지례(上敬之禮)로 마리아를 각별히 공경함이 지당하다고 주장한다(심상태, 가톨릭의 교회 일치적 마리아론, <사목> 244, 1999.5., 21-55).


심상태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그리스도를 잉태했으며, 사망 즉시 승천했다고 하는 로마가톨릭교회 교리는 공의회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교황이 ‘특수 교도권’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했다고 말한다. 이 지적은 마리아 교리에 대한 심상태의 부정적 관점을 암시한다. 그는 마리아에 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비판적인 아래 글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인용한다.


“하나님의 모친 마리아가 교회를 위해서 전구한다 할지라도 죽음을 물리쳐야 하고, 사탄의 어마어마한 힘과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다. 마리아가 이를 행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마리아는 온갖 최고의 찬미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똑같이 간주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신앙과 겸손의 모범을 따를 것을 원한다. 그런데 마리아에 대한 과장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서야 할 자리에 마리아가 대신 들어서게 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마리아 교리를 문제 삼지 않은 채 사실상 인정하는 형태로,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시적 교회일치를 추구해 왔다. WCC 역사에서 마리아론이 쟁점으로 전면에 부각된 적이 없다. 마리아론을 부정적으로 다룬 문서도 없다. 더구나 마리아 교리에 우호적이다. WCC의 ‘하나의 신앙고백(1990)’은 에베소공의회(431)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한 것과 관련해 “마리아는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완전한 의탁, 그녀의 활동적 신앙의 반응, 그리고 그녀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가 교회의 유형(typos)과 모범으로 여겨져 왔다”고 말한다.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와 관련하여 회원교회들에게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 숭배 행위를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을 옹호한다. 고대 교회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규정했고, 개신교회, 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가 모두 성육신의 신비에 신앙을 두고 강조하므로 “마리아 숭배가 미신이 아니냐고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Rita Turner, Mary in the Ecumenical Movement, 1991, 668)”고 한다.


WCC 관련 문서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마리아론’은, 마리아 교리에 대한 이 단체의 우호적인 태도와 신념이 “로마가톨릭교회와 대화를 한 결과”라고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마리아가 유용한 촉매 역할을 하며”, 이로써 “상호 두려움이 잠재워졌고, 공동의 광장이 움터 나왔다”고 말한다. 동방정교회가 나름의 마리아 전통을 주장하지만, 서방교회 경우처럼 교리적 공방의 대상이 되지 않는 바 마리아론을 특별히 공식적으로 교리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실제로 에큐메니칼 토론에서 제기되는 논쟁점은 마리아론 자체의 내용보다, 오히려 그와 관련된 계시의 정통성 문제, 그리고 교황의 절대 무류성에 관한 교회의 권위 문제”라고 지적한다.


WCC는 마리아 교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해방신학과 여성신학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숭배는 강렬하다고 말한다. 여관 주인에게 거부당한 임산부 마리아의 모습, 폭력에서 도피하는 장면, 자신의 아들을 조용히 어른으로 키우는 여인, 그의 학대와 고난을 증거하고 그의 승리에 동참하는 모습 등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WCC의 교회 일치 패러다임을 대변하는 위 글은 이밖에 여러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믿음과 일치의 표본인 마리아는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라고 한다. 마리아론이 WCC가 추구하는 세계교회 일치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리를 계급화한다. ‘더 중요한 교리’와 ‘덜 중요한 교리’로 나눈다. “가톨릭 교리의 여러 진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이루는 관계는 서로 다르므로,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일치교령 제11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90조)”고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는 높고, 연옥설이나 마리아론은 낮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이형기 교수는 로마가톨릭교회와 WCC의 외형적 교회일치를 긍정적으로 본다. 가톨릭대(가톨릭신학회)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쓴 논문(2009)에서 로마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진리들의 위계’를 근거로, 로마가 개신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계급이 낮은 일부 교리들을 포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를 가장 높은 꼭지점에 두고, 비(非)로마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개신교회)이 고백하는 교리와 불일치하는 연옥설, 마리아론 같은 위계가 낮은 자리에 있는 교리들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다(이형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로마가톨릭교회의 에큐메니즘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연구: 종교다원주의 맥락에서 WCC의 ‘신앙과 직제운동’에 비추어서, <신학사상> 64, 2009 겨울, 236).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낮은 계급에 해당하는 교리라도 이를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진리들의 위계’에 대하여, “모든 계시된 교의는 같은 신적 신앙으로 믿어야 할 것이다(교회에 대한 오류를 반박하는 가톨릭 교리 선언, <사목> 34, 1974.7., 125)”라고 못 박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일치교령’은 진리들의 위계질서에 대한 배타적 원칙을 담고 있다. 진리들의 “서열은 어떤 교의가 다른 교의에 의거하거나 다른 교의에 의해 설명된다”고 한다(일치교령 제11항; 앞의 글 125). 마리아에 대한 흠숭, 상경, 공경이라는 위계로 구분되는 교리들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마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과 관련하여,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의 순수성을 손상시키거나 흐리게 하는 ‘거짓 평화주의 일치운동’을 경계하라고 명한다. 에큐메니칼 운동 파트너에게 모든 가톨릭 교리를 명확하게 온전하게 제시하라고 한다. 개신교 신자들에게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설득시킬 표현과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바티칸은 진리들의 “서열은 어떤 교의가 다른 교의에 의거하거나 다른 교의에 의해 설명한다(앞의 글, 125)”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가 표방하는 교리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장로교 에큐메니스트 이형기와 그가 이끌어 온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학의 지나친 순진함과 오판이 드러난다.


맺음말과 질문


마리아는 마리아 교리에 크게 진노하리라. 그 교리는 그리스도의 독보적인 구속사역을 격하시키며, 그러한 오류를 범하는 방식으로 마리아를 모독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행위, 곧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죄는 우상숭배이다.


마리아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마리아 교리와 숭배는 로마가 세속적 권력을 장악하려고 묵인, 수용, 교리화한 이교 사상이며 미신적 행습이다. 화체설, 희생제사 이론, 연옥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성인숭배 등과 더불어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는 교리이며 종교행위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마리아 교리를 폐기하고 그를 숭배하는 종교행위를 금지하노라 선언할 용기가 없는가? 미신적인 이단 사설(邪說) 마리아 교리를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개혁하지 않겠는가? 성경과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에 충실한 역사적 기독교와 일치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계속>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전 고신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


(위 사진: 페북 친구)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웃기는 글 나눔^^

세상에서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가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일이고
두번째가 남의 돈을 내 주머니에 넣는 일이다.

첫번째 일을 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 부르고,
두번째 일을 하는 사람을 사장님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어려운 두 가지 일을
한방에 다하는 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선생님에게 대드는 것은 배우기 싫은 것이고,
사장님에게 대드는 것은 돈벌기 싫은 것이고

마누라에게 대드는 것은.....살기 싫은 것이다...ㅎㅎㅎ

즐겁게 웃는 하루 되세요^^
하하하, 호호호!^^






마12장8절 주일성수와 십일조



"안식일은 사람을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주일- 제일 먼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구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켰던
일곱번째의 날인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켰느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주일을 지키는 것이
교회의 결정이냐 아니면 신적인 결정이냐"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할 수 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마 12:8) 예수님이
일곱번째 날을 첫번째날로 변경하셔서
우리로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셨다.

그래서 이를 그리스도인의 안식일(Christian Sabbath)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한복음 20:19을 보자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 계속해서 같은 장 26절을 살펴보자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6절에 나온 여드레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준으로 말하는것으로서
이 두 구절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날을 정하여 제자들에게 오셨고,
오셔서 그들 가운데 하신 일에
어떤 모범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활과 승천 사이에 주중의 첫번째 날이
중요한 날로 지켜진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2:1을 보면,
"오순절(추수감사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오순절 날은 주중의 첫번째 날이었는데,
사도와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 또한 이미 사도들과 제자들이
주중의 첫번째 날을,
거룩한 목적을 위해 함께 모여
지키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한 사실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로부터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도행전 20:7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마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이 구절은
드로아 교회가 공적 모임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모임은 은밀한 모임이 아니라
일반적이며 누구에게나 개방된 교회 모임이었다.

이 모임이 열렸던 것 또한 주중의 첫째날이었다.

그리고 같은 본문 11절을 보면,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 하고 떠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모임의 마지막에 주의 성찬이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행2:42과 비교)

더불어 이 모임에서는
설교와 기도가 함께 지켜졌다.

계속해서 "주중의 첫째 날",
그리고 "주의 날"이란 표현을 쓰게 되는 이유는
사도들이 거룩한 날로
이 날 외에는 어떤 다른 날도
주중에 지키지 않았으며,
안식일에 행하던 예배와 봉사들을
주중의 첫째 날 외에는
다른 어느 날에 행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6:1, 2에서
주중의 첫째 날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키는
중요한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성도들을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 구절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주일'에
연보하였다는 것이다.

주일에 연보하는 것을
고린도 교회에만 언급했던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회와(고전 16:1)
그 밖의 교회에도 지시하였다.(고후 8:13,14)

이러한구제의 의무들이
안식일에 행해지는 것이 합당한 일임을
예수님이 이미 지적하신 바 있다
(마 12:7 눅: 13:15, 16, 14:5).

그리고 이 의무들은,
"너희가 모일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란
고린도전서14:26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거룩한 회중이 모여서
기도와 설교를 듣고
성례를 행한 후에 행해졌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중의 첫째 날을
거룩한 날로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 적용을
어느 특정 교회가 아니라
전체 교회에 적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즉, 이 지시는 자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주로부터 받아 한 것이다.(고전11:13).

따라서 주일의 제정은 신적인 것이요
인간이나 교회의 편리함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1:10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기록한다.

"주의날"(Lors`s Day)이라고 분명히 언급된 이날은
주중의 첫째날을 말하는 것으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우리 주께서
거룩한 날로 따로 구별하신 것을 의미한다.

주의 성찬과 같이
분명히 주의 타이틀을 그 날에 붙였다.

따라서 이 날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구별된 것으로
거룩한 것이다.(히 2:5)

주목할 것은
이 구절에서 사도 요한이
이날을 언급할 때
이미 그가 알고 있는 날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께서 제정하신 이래로
사도들과 제자들이
계속 이 날을 지켜온 것을 의미한다.

분명히 이날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그 부활을 통하여 유효해진 구원에 대해 감사했다.

이처럼 주중의 첫번째 날에
그리스도인들은 공적 사역을 행하였다.

이 날 회중 가운데 말씀을 설교하고 (행2:1,4)
성례를 행하며(행2:38,41,42)
통회하는 죄인들의 죄를 풀어주면서
(행2:38, 비교 요 20:22,23)

 

출처:  http://cafe983.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pdLC&fldid=HoYr&datanum=211&contentval=&docid=pdLC|HoYr|211|20090827071740&q=%C7%CE%C5%A9%20%BD%CA%C0%CF%C1%B6&search=true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


1308208286PtHJSmU[1].jpg

 

1207539275zhzIvhJ[1].jpg

 

1222254384mfHXiPZ[1].jpg

 

1232209006pxG9Krs[1].jpg

 

1238861585YWhRman[1].jpg

 

1241448490QPArSkK[1].jpg

 

1260960867wxeAL1Q[1].jpg

 

1263428315KgBbE9F[1].jpg

 

1266473072wqm4KRm[1].jpg

 

1277637892UjdbcJf[1].jpg

 

1285135512DXj1ZsB[1].jpg

 

1287339723mHfWtpB[1].jpg

 

1290627799TKevTYH[1].jpg

 

1292919550Sh1WQr2[1].jpg

 

1295087628e9zNg1Y[1].jpg

 

1297094994WwRGiq6[1].jpg

 

1298704550srDwqzp[1].jpg

 

1299847489VLB6MQd[1].jpg

 

1221745796BiVuFG1[1].jpg

 

12855662955DGUbZh[1].jpg

 

1308999861LSahRaj[1].jpg

 

12579447341dbeLpG[1].jpg

 

12710062377jptHCZ[1].jpg



'마음을 열어주는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고수준의 분재예술품  (0) 2014.08.26
바다와 야자수  (0) 2014.08.21
귀여운 놈들  (0) 2014.08.12
세계최고의 예술적인 빌딩들  (0) 2014.08.09
미국 대통령 바위얼굴이 조각되기 까지  (0) 2014.08.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