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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그리스 격언)

고려장 풍습이 있던 고구려 때 박정승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눈물로 절을 올리자 노모는
'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 고 말합니다.



박정승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몰래 국법을 어기고
노모를 모셔와 봉양을 합니다.



그 무렵 당나라 사신이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끌고 와 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지를 알아 내라는 문제를 냅니다.
못 맞히면 조공을 올려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박정승에게
노모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말을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놈이 새끼란다."



이러한 노모의 현명함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왕을 감동시켜 이후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리스의 격언에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 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국가나
사회에도 지혜로운 노인이 필요합니다.



물론 노인이 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 대신 나이는 기억력을 빼앗은 자리에
통찰력을 놓고 갑니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활용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는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인세대들이여! 풍부한 경험과 축척된 지혜를 발휘하여

대한민국과 사회발전에 적극 동참합시다.

통일한국에 초석이 됩시다.



 


출처: 사모님사모님/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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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이기는 최선의 길 / 박신 목사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믿음이 아무리 좋은 신자라도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니 수시로 유혹에 넘어가 죄에 빠집니다. 그 때마다 회개하며 기도와 말씀에 열심을 내어 봅니다. 그런데 막상 또 닥치면 그것도 이전에 실패했던 똑 같은 상황인데도 이겨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 같은 예감마저 듭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차라리 한 길로만 강압적으로 인도해주시면 안 될까하고 실현불가능한 일마저 소원해봅니다.

유혹이란 항상 자기가 하고 싶고 좋아 보이는 복수 방안을 눈앞에 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나쁜 일이라면 아예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서 퇴근하여 집으로 바로 갈 것인지 동료들과 술집에 들렀다 갈 것인지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둘 다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일찍 귀가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동료들과 한담을 나무며 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럴 때는 최종결과를 미리 유추해 보는 것이 죄를 이기는 좋은 방안입니다. 일찍 귀가하는 것은 좋은 결과뿐입니다. 휴식을 취하며 가족끼리 사랑을 나누며 이튿날 출근도 상쾌하고 거뜬해집니다. 동료들이 당장 비난할지 몰라도 속으론 사실 부러워하거나 다음날 아침에 잘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동료와 술집에 가면 처음 얼마 동안은 건전하지만 곧바로 건강, 금전, 정신적으로 손해 보는 일만 생깁니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그 모임이 절대 간단히 끝날 것 같지 않으며 무엇보다 본인이 그럴 자신과 의지도 없지 않습니까? 오직 나쁜 결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죄를 알아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의 종류가 아닌 죄가 불러오는 결과를 아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타락한 본성이 방해하더라도 지정의를 전부 동원해 성경 말씀을 분별하여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죄에 대한 이야기이며 죄에서 구원해 주는 길을 밝혀 놓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또 주위 성도들의 위로와 권면과 도전도 받아야 합니다. 정말 평생을 두고 죄와 피 흘리며 싸워야 합니다. 항상 성령의 인도에 따라 쉬지 말고 기도하며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아니 아예 처음부터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좁고 협착하며 멸망으로 이끄는 길은 넓고 쉽습니다. 선을 행함은 우선 당장에는 무료하고, 힘들며, 손해 보고, 아무 열매 없을 것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일단 행하기만 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보람과 평강과 위로가 넘칩니다. 그 열매도 반드시 아름답고도 풍성해집니다. 반면에 죄는 처음에는 재미있고 신나며 즐겁고 흥분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아무 유익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더럽고 추하며 멸망으로 이끌 뿐입니다.

그렇다면 죄와 싸우는 최선의 방안이 나왔습니다. 죄를 알아서, 죄를 버리되, 선을 행하며 버리는 것입니다. 죄 자체를 이기려 하지 말고 죄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그것에 등을 돌려야 합니다. 죄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면 그 최종적인 결과를 정말 냉정하게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잘 분별이 안 되면 그 전부에서 일단 돌아서야 합니다. 등 돌리기조차 너무 힘들다면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일단 행하고 봐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악을 이긴다는 것이 신자가 가만히 있는데도 신령하고 거룩해지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선을 행할 소망을 심어주며 그런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어려운 이웃을 붙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참모습을 말씀 앞에 완전히 벌거벗겨 철저한 회개를 하게 한 후에 말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죄를 이기지도 선을 행하지도 못할 만큼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악은 그냥 버려지지 않고 반드시 선을 행해야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10/12/2007

 

 

출처: 박신의 말씀을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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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 탄생은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인가?

< 이차식 목사, 덕일교회 >

 

시작하는 말

 

동정녀 탄생교리가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왜 필수적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묘사는 명확하고 분명하다.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은 통상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잉태 당시 남자를 몰랐으며 마리아의 태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자의 성육신의 요람이 된 것이다(1:20; 1:35).

 

그러나 동정녀 탄생교리는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꾸민 이야기처럼 환상이나 웃음거리로 여겨져 왔다. 문제는 교회 내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1. ‘동정녀에 대해 오해한 사상들

 

동정녀 탄생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로 두 논리가 있어왔다.

 

첫째는, 이사야 7:14에서 선지자가 언급한 처녀탄생에 대한 예언은 실제로 젊은 여성을 의미하며 처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학자들이 이사야의 예언에 관하여 이 주장을 하며 여전히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

많은 이들이 이사야의 히브리어는 almah이며 처녀의 전문용어 bethula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almahbethula 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almah가 처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구약에서의 증빙문구는 명백하지 않다.

 

almah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9번 나타나며, 어디서나 전후문맥은 단어의 의미를 명백하게 하는데, 처녀를 나타낸다. 더 중요한 것은 셉튜아진트는 almah를 번역하기를, 이사야 7:14를 인용한 마태복음 1:23에서의 동일한 단어인 희랍어 parthenos라고 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parthenos처녀라는 것에 의견을 일치한 것이다. 만일 70인경 유대 번역자들이 이사야7:14를 젊은 여인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했더라면 그들이 처녀의 명확한 헬라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많은 이들이 동정녀 탄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교신화의 대표적 형태로 안 좋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별들의 전쟁에 처녀 탄생이 있으며 미트라교에 있으며, 기독교에도 동정녀 탄생이 있다. 그게 어떻다는 거냐. 무슨 대수라도 된단 말이냐, 그것들은 모두 우화들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동정녀 탄생도 우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주장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2.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없는 동정녀 잉태개념

 

1) 우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으며, 그 분은 남자를 모르는 처녀에게서 성령으로 나시고, 역사적인 무대 위에서 실제로 확실한 기적들을 행했으며, 그의 백성들을 구원했으며 부활하셨다라는 사실을 추정하고 가정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가? 답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러한 실제적인 인물은 기독교의 출현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다.

 

2) 유대인이 그들의 복음적 이야기에 이단적 요소들을 삽입해서 자기들의 종교로 귀의하거나 새로운 회심자를 얻으려 했다는 것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혹 능한 유대인이 구약의 예언 성취를 위해서 이야기를 재구성했을 것이라고 가정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이단의 사상을 첨가하거나 혼합하는 것이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는 받기 쉬었겠는가. 그런 가정자체가 유대인들에게는 심히 어렵고 혐오스런 것이다.

 

3) 세상 역사 가운데는 그 어디에도 성경과 같은 예언과 성취로서의 실제적 동정녀 탄생은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알렉산더대제, 디오니수스, 미트라 그리고 석가모니들의 탄생 설화를 보면 그들이 죽은 후 여러 세기가 지나서 고대 전기작가들이 만든 이야기이지, 성경의 동정녀 탄생과 같은 역사성과 내용을 언급한 적이 전혀 없다. 게다가 떠도는 그 이야기들은 비정상적 잉태설이며 동정녀 탄생이 아니다.

 

알렉산더의 부모들은 이미 결혼했다. Dionysus는 제우스신이 자신을 인간으로 변장하여 왕자를 수태해서 태어났다. 이것은 동정녀 탄생이 아니며, 우리가 복음서에서 읽은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고대 페르시아 신화에 나오는 신()Mithra는 한 반석에서 태어났다. 동정녀가 아니다. 석가모니의 경우, 그의 어머니는 부처가 하얀 코끼리 형태로 그녀 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그의 사후 5세기까지도 없었던 이야기일 뿐이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자였다. 소위 이런 우화는 불확실한 이야기로서 모두가 사후에 생겨났으며. 어찌됐든지 세상 역사상 실제 동정녀 잉태 사건은 아니다.

 

3. 동정녀 탄생 교리의 중요성

 

문제는 동정녀 탄생이 역사적인 사실이란 것과 그 교리를 믿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기독교신앙을 위하여 심각한 문제가 되는가이다. 응답은 완전히 그렇다.

 

1) 동정녀 탄생은 기독교의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로서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전기 작가들이 허구로 만든 설화가 아니다. 동정녀 탄생은 오랜 구약교회의 역사동안 선지자들이 성령으로 감동하여 예언한 것이며, 이 사실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교회 보편성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동정녀 탄생은 초대 교회때부터 보잘 것 없거나 하찮은 것처럼 치부하지 않고, 그리스도 교회에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인 신앙에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회 역사상 동서고금을 통하여 참 교회는 그 교리를 경시하거나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묵살하지 않았다.

 

2)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잉태되었을 때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었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이 성령하나님으로부터 잉태되었다는 것 외에 마리아의 태에 어떻게 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모른다(1:20). 마리아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묻기를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일이 내게 있으리이까”(1:34)라고 하였다.

 

복음서들은 동정녀 탄생을 증인들로부터 실제 역사에 대한 자세한 보도”an orderly account, 1:1-4)라고 표현하였다. 만약 동정녀 탄생이 거짓이라면 복음서의 역사적 신뢰성이 심각하게 손상된다.

 

3) 이러한 사실을 요리문답이 잘 요약해 준다.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이 참으로 인간이셨고 참 하나님이셨음을 증명해준다.

 

하이델베르그 제14주일은 이렇게 성경을 요약하고 있다. “예수님은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스스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친히 참된 인성을 취하셨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창세전에 성부의 본질로 부터 나신 하나님이시며 그는 시간 안에 자기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나신 사람이시다....한 사람이 영원한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신 것을 신실하게 믿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14주일에 보면 왜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이 되셨는가? 14주일 제36문답의 답에 보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 되시고 그 분의 무흠하고 완전한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있었던 나의 죄를 가려주시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잉태되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가려질수 없다.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라고 했다. 여기서 다윗이 말씀하는 것은 자신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죄인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에게서 탄생이 아니라면 우리를 대신하여 화목제물이 되신 충분한 인간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의 탄생이 여느 사람의 출생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에 의해서 탄생하였다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해야 하는 그의 충만한 신성을 의심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참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지니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치는 말

 

예수님은 타락한 아담성의 부패의 저주를 물려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동정녀 탄생은 중요하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신 분이나 죄는 없으시다(4:15; 7:26, 27).

 

모든 인간 아버지는 죄성을 가진 자녀를 낳는다. 죄인들은 죄인들을 낳는다(51:5).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나 이것이 타락후의 세상의 방식이다.

 

만약 요셉이 예수님의 참 아버지이거나 마리아와 동침하였다면 예수님은 흠이 없지도 무죄하지도 완전히 거룩치도 않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중재자도 없고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도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위한 전가할 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우리의 신앙의 필수적인 것이다.

 

 

출처: 영적분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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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국처럼 되고 싶은가?

  한때 기독교 강국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 그러나 이제 해 지는 나라로, 오히려 동성애와 이슬람 세력등의 공격에 기독교는 맥을 못추고 있는 실정에 놓였다. 한국이 교회 성장과 선교강국을 자랑하지만, 불과 60년 전만 해도 영국이 그랬다. 몰락한 영국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경각심이 일어나고 있다.

 

  16일 오전 ANI서울 기도센터에서는 영국 안드레아 윌리엄스 변호사 (Christian Concern for Our Nation 창립자 및 대표, Christian Legal Cerntre 대표)가 초청되어 "유럽교회가 직면한 신앙의 자유문제" (동성애, 이슬람, 선교의 자유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전했다.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수호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녀는, 차별금지법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현 영국의 절망적인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안드레아 윌리엄스 변호사는 먼저 "과거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한) 영국의 법이 세계적으로 퍼졌지만, 현재는 모든 기독교적 유산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자신이 한국에 온 것은 영국의 경우를 배우게 해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서라고 설명하면서 신앙의 수호를 위한 조직 구성과 세계적인 연대, 펀드 조성, 기독교 정신이 학교 교육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현재 영국에서는 교회가 대중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영국 교회는 개 교회 중심의 성향이 강했는데, 우리의 관심을 이제 밖으로 돌려 정부와 지역사회, 법, 미디어 등에서도 예수를 드러내야 한다"면서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지혜롭게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영국은 여왕 즉위식에서도 신앙수호를 선서하고 선언했던 기독교 가치관 중심의 국가였다. 그것이 불과 62년 전이다. 당시에는 낙태도 불법이었고, 이혼도 별로 없었다. 혼외정사로 태어난 아이도 4.8%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율이 확 줄어들고, 이혼율은 급증했으며, 혼외정사로 태어난 아이들이 50%에 육박한다. 그녀는 "이것은 사회혁명과 가깝다"고 말하고, "조용한 혁명 같지만, 문제는 많은 아이들이 피흘리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라 주장했다.

  특히 그녀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진리에 대한 공격이 이뤄지는 데도 영국 교회는 잠잠했"고 지적하고, "아예 처음부터 교회는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영국이 하나님을 잃어버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됐고, 이제 사람들은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것은 인권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그들은 가정을 파괴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라 주장했다.

  생명과 가정 등한시 하는 '사회풍토' 방관한 영국 교회 동성애, 더이상 영국에서는 문제 안 돼...... 이제 차별금지법이 교회의 '족쇄', 안드레아 변호사는 지난 세월 영국이 낙태를 비롯해 인공수정, 시험관아기등을 법률로 허용했고, 조력자살과 안락사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생명과 가정의 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됐다"고 말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교회가 분명하게외쳐야 한다"면서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1967년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더 이상 죄가 아닌 것이 됐다고 한다. 1970년대 동성애 자유해방전선이 설립됐고, 그 때부터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자랑스럽다고 외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콘돔을 나눠주는 날 순결반지를 빼지 않아 격리되기도 한다. 동성결혼이 옳지 않다는 대화를 나누어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다.

  1992년 영국에서 게이퍼레이드가 처음 열렸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이제 게이퍼레이드가 열리면, 영국에서는 마을 전체가 무지개로 덮이고 난리를 치는데 목사님들은 모른척 한다"고 지적했다. 더 심각한 것은 2000년도에 군대 내 동성애 금지조항이 사라졌고, 2004년에는 대중 앞에서 남자끼리 동성애 하는 것이 가능해 졌으며, 성관계가 가능한 연령이 16살로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영국 국회에서 아예  성관계 가능 연령을 없애자고 논의 중"이라며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동성애 로비단체 스톤윌은 2006년부터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한국 동성애자들도 아마 그걸 것"이라 말하고, "호모포비아 때문에 자신들이 고생한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이것으로 정치적인 영역에서 압력을 가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것이 허용된 영국에서는 기업들이 친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동성애 반대 인사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기세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국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영국에서 2010년 제정됐다고 한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동성애 문제가 종교 문제 위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에서 2002년 동성애자들이 아이 입양을 할 수 있는 법이 생겼고, 2004년에는 성전환자가 전환된 성을 인정받는 법이 통과됐으며, 2014년에 동성애자들이 합법부부가 되는 법이 통과되었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한국교회는 이것을 반드시 막으라"고 강하게 당부했다. 영국에서는 이 법들의 실체를 몰라 교회가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이런 문제들을 전부 인권문제로 포장하는데, 지금 아주 악한 것들을 입법화 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현재 영국에서는 여기에 대항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더 나아가 보수당까지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나섰다"고 지적하고, "캔터베리 대주교(영국성공회)와 심지어 영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조차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면서 "갈 데까지 다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성공회에서는 여자 사제가 남자 동성애자 사제들에게 안수를 주는데, 그들은 '내가 동성애를 하다가 지옥을 간다면 가겠다'고도 한다"면서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분명한 가치를 가르치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혼란스러워 할것"이라 했다. 이어 "교회는 계속 패배해 왔다"면서 "한국교회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런 꼴을 당할 것"이라 했다.

  영국에서는 초등학교 추천 도서들에서 조차 동성애 조장 동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국공립학교에서는 이 책들을 반드시 읽게 한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이것이 동성애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동성애를 가르치지 않는 것 때문에 문을 닫는 학교들도 많아졌고 동성애 문제를 상담해 주던 많은 이들이 법에 의해 쫓겨나게 됐다"면서  "이런 식으로 예수께서 (영국에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자신이 태표로 있는 Christian Concern for Our Nation에서 젊은이들을 기독교 가치관으로 훈련시키는 '윌버포스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시작했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는 동성애자들의 공격으로 사용하던 장소에서 쫓겨났고, 정부 건물에서조차 "차별금지법 위반이라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또한 CCFN은 동성애 반대 광고를 내기도 했는데, 그것 때문에 14만불(약 1억 5천만 원)의 벌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으며, 항소를 했지만 영국에서 가장 비싼 변호사 세력과 맞서고 있다고 한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우리가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하고, "한국도 지금부터 이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펀드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나라이고 지금이 몹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준비해야만 여러분의 나라를 구할 수 있을것"이라 했다.

  덧붙여 "해외선교도 매우 중요하지만, 예레미야서 말씀처럼 여러분의 가정과 조국을 건설하라"고 당부했다. "영국은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려 고통당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영국은 노방전도를 하면 경찰에 체포당한다. 안드레아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기독교인들에게 당신들이 잘못 알고 잘못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가 고쳐주겠다"면서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영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동성애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영국 학교에서 격리당하고 있으며, 학생이나 학부모들이나 이런 일들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학교에 기독교적 가치관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면서"교사가 예수를 찬양해서 해고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한국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재하고, 친동성애 NGO가 있을 텐데 정말 조심해야 한다"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영국의 국가인원위원회는 '질병'이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현재 영국에서는 노방전도자도 체포되고, 비디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페이스북 등 SNS로 전도하면 계정을 잃거나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영국에서 마치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 상징을 제거하기 위한 일들을 벌였던 그런 비슷한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슬람 문제에 대해서 안드레아 변호사는 이렇게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세속주의가 영국 기독교에 압제를 가해오고 있는데, 기독교는 핍박하면서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서 급진 이슬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샤리아(이슬람 율법)법정이 많은 지역에서 실제 운영되고 있고, 영국 대학과 교육기관들에 이슬람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고 한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지금 이슬람이 사회를 주도하고 사람들이 이슬람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를 합법화 시킨 캐머른 총리가 영국 런던을 이슬람 금융센터로 만들겠다고 한다"면서 "이제 이슬람을 비판하면 직장을 잃는 상황이 되었다.  법정이든 학교든 모든 공공장소에 무슬림을 위한 기도처는 있는데 크리스천 기도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안드레아 변호사는 "여러분들이 어떤 시대를 사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하며, 준비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세대들이 이런 죄로부터 보호될 뿐만 아니라 성경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면서이러한 일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기 바란다"고소망을 말했다. 그는 "한국이 기독교 운동 측면에서 참 강한 나라이지만, 강하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영국도 강력한 기독교 국가이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것 처럼, 그리고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이후 한 순간에 달라진 젓처럼,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차별금지법 등으로 말미암아 공공연하게 신앙을 드러냈다가 부당한 해고나 대우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지막으로 안드레아 변호사는 "영국 교회들이 대부분 개교회만 바라보고 조국과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뿐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라며 "조국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가 지배할 때, 백성들이 언제나 행복하고 축복가운데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 기독일보

 

당신의 적극적인

기독교 가치관 표현은

우리 자녀의 미래를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끊임없는 간절한 기도 위에

적극적 참여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은 결국 동의하는 것입니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은

하나님멀어지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 학교에서 콘돔을 나눠주는 날

순결반지를 빼지 않아 격리된 Lydia Playfoot

 

↑ 동성결혼이 옳지 않다는 대화를 나누어

직장을 잃은 Sarah Mbuyi

 

 

↑ 영국에서는 초등학교 추천 도서들에서 조차

동성애를 조장하는 동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국공립학교에서는 이 책들을 반드시 읽게 한다.

 

↑ 경찰에 체포되는 노방전도자

 

 

↑ 환자를 위해 기도했다는 이유로

정직을 당한 Caroline Petrie

 

 

 

 동성애 안돼! 

 

 

 


몸 무게가 340 Kg 나가는 여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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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여자를 보셨나요? -몸무게가 무려 340kg이나 나가는 여자의 삶-

Casa Grande, Arizona, USA


결혼해서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가 비만현상이 오면서 체중이 무려 340kg이나 오르고,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삶에 고통을 당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여자와 함께 불평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이다.

 

여자이름 Susanne Eman, 나이 33세, 몸무게 340kg, 남편 Parker Clark 35세, 자녀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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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비만대회에서 우승 World's Wobbliest Fatty Susanne Eman wants to reach 115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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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Ms Eman aged 19 with her two sons, Brendin, centre, and Gabriel, right, in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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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애완견

Gabriel, left, 16, and Brendin, right, 12, and their dog Sisc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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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Ms Eman poses back to back with her sister Cassie(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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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sanne 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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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네스북에 등재 Pauline Potter(47세) has entered the Guinness

 Book of Records as the world's heaviest living woman, California,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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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입니다.    
앞으로 일어나야 할일 !!

믿음의 친구들에게 널리 알려주십시요.  

텍사스 주에서는  목회자와 교회의 종교자유를 동성애자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단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통과됐다고 합니다!  더 자세한 것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83845/20150624/%ED%85%8D%EC%82%AC%EC%8A%A4-%EC%A3%BC-%EB%AA%A9%ED%9A%8C%EC%9E%90-%EC%A2%85%EA%B5%90%EC%9E%90%EC%9C%A0-%EB%B3%B4%ED%98%B8%EB%B2%95%EC%95%88-%ED%86%B5%EA%B3%BC.htm


ACTION 필수!!

이제는 미국 전역에  텍사스주 처럼 교회와 종교의 자유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며칠 전에 카톡으로 보내드린 First Amendment Defense Act (S. 1588, H.R. 2802)-  법안이 통과 되어야 합니다.  
남녀노소, 유학생, 누구나 온라인에 들어가서 10초도 안걸리는 서명해 주셔서 여러분의 자녀, 다음 세대를 지켜주세요!


**서명방법**


아래 링크 누르기


처음 나오는 파란글씨 “Sign the Action Alert!” 누르기

#1 Take Action 편지 밑에,  Your Name 박스속 에 이름만 적기

#2 Sender Information 에 이름, 주소 적어넣기

파란글씨 “Send Message” 누르면  완전 끝 !!!

서명하실 링크: 
http://www.nomblog.com/40449/



**물맷돌 기도운동팀 드림**

문의: 
tvnext.org@gmail.com    (서명을 tvnext 로 보내지 마세요)

댓글
2015.07.04 15:37:58
samuel

성소수자 단체 반대에도 의회 3분의 2 찬성으로 통과 (펌)


법안에 서명하고 있는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
(Photo : ⓒ텍사스밸류즈액션(Texas Values Action)) 법안에 서명하고 있는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


텍사스 주에서 목회자와 교회의 종교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통과됐다. 

현지 보수 단체 네트워크 텍사스밸류즈액션(Texas Values Action)은 그렉 애보트(Greg Abbott) 텍사스 주지사가 목회자 보호법안(Pastor Protection Bill) SB2065에 11일 서명함으로써 해당 법안이 텍사스 주의 정식 법이 됐다고 전했다.


텍사스 의회에서 당파를 초월한 높은 지지 속에 통과된 이 법안은 목회자나 교회, 종교 기관들이 신앙 양심과 믿음을 거스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동성결혼을 받아들이거나, 동성결혼식을 위해 시설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강요당하는 일을 막고자 제정됐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ACLU, 이퀄리티텍사스(Equality Texas), 텍사스프리덤네트워크(Texas FreedomNetwork) 등 성소수자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입법 과정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텍사스 주 상원과 하원 대부분의 의원들이 법안의 필요성에 동의해 3분의 2 가량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법안은 즉각적인 효력을 발생할 수 있게 됐다.


조너선 사엔즈 텍사스밸류즈액션 회장은 이러한 결실에 대해서 "신실하게 종교적 믿음에 따라 행동해 온 목회자들과 성직자들에게 영광을 돌린다"며, "텍사스 주는 정부 개입 없이 종교자유의 기반 위에 굳건히 자리잡을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고 말했다.

텍사스흑인성직자네트워크(Texas Black Clergy Network)의 로버트 존스 목사는 법안 통과까지 협력해 온 텍사스 지역 지도자와 단체, 주 의회에 감사를 표하면서, 이 법안이 "우리가 자유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진지한 결의로 지키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밝혔다.

스캇 샌포드 텍사스 주 하원의원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정부에 의해 동성결혼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휴스턴 시에서 목회자들이 동성결혼을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시 당국 조사에 설교문을 제출하라는 압력을 받은 사례를 들며, 미국 내에서 신앙 양심에 따라 동성애에 반대하는 일이 범죄 행위로 간주되는 분위기를 비판했다.


그는 "이번 법안은 텍사스 주가 정부에 의해서 국민의 종교자유가 보장되는 장소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 준 것이다"며, 애보트 주지사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펌) 기독일보

댓글
2015.07.04 17:33:53
samuel

플로리다서도 목회자 보호 법안 발의... "오바마 5년전만해도 전통결혼 지지"

텍사스주 이어 테네시주도 동성결혼식 주례 반대 목회자 보호법 발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정치권도 반발…교회 보호법 마련 부심

(이상 펌 :기독신문)

신사도 운동에 관한 연구보고서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

 

제1장 서론

1. 조사의 목적과 한국 교회 상황

2.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운동에 대한 공기관의 규정

3. 신사도 운동의 유래와 발생

 

제2장 본론: 신사도운동의 이단적 사상

1. 피터 그너에 의하여 조작된 사도직(Apostleship)와 선지자직(Prophetship)

2. 성경말씀에서 벗어난 현상적인 집회

3. 거짓 직통계시에 의한 신사도 운동의 무속적 예언 행위

4. 도미니온(Dominion) 속에 숨겨진 비성경적인 주권운동

5. 이단사상까지 포함하는 신사도 운동의 개방신학

6. 지역귀신론에 근거한 영적도해

7. 짜맞추기식 엉터리 성경해석

8. 요엘의 군대(Joel's Army, Jesus Army-집합 그리스도)

9.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오도한 임파테이션(Impartation)

 

제3장 결론

 

부록 1. 신사도 운동 단체들

부록 2. 참고 문헌

 

 

제 1장 서론

 

1. 조사 목적과 한국교회 상황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된 ‘빈야드 운동’은 각종 쓰러짐, 짐승소리, 떨림과 발작현상, 직통계시, 예언, 등 극단적 신비주의적 경향의 행위들로 문제를 일으키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주요 교단들에 의해 이단, 참여금지 등이 발표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보다 더 불건전한 사상들이 혼합되고 변형된 형태로 발전되어 ‘신사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국교회에 도입되었다. 특히 신사도 운동은 일부 대형교회와 유명 단체들을 중심으로 도입되었으며 현재 한국 교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이 신사도 운동은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로 하여금 불건전하고 비성경적인 사상에 물들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의 갈등으로 인하여 교회들이 분열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이 추구하는 목표는 세상을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의 7개 권역으로 분류하여(Seven Spheres, 또는 Seven Mountains, 일곱산으로도 불림) 모든 분야에서 신사도 운동이 지배하고 통치하겠다는 것이다.(1) 물론 일곱 ‘산’의 정상은 ‘사도’나 ‘선지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며, 자신들이 교회의 ‘영적 아비’ 혹은 ‘영적 멘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교회(신사도 운동 교회로서 일터교회)와 돈(부의 이동)이라는 2가지 방법이 사용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집회에는 거짓 예언과 계시가 난무하고, 심지어는 사람이 벽을 통과할 수 있다거나,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고, 교통사고로 잘린 다리가 하루 만에 원상태로 자라나고, 심지어 난치병이 치료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식의 루머와 소문들이 파다하지만 객관적으로 입증이 된 예는 없다. 이와 같이 기적과 표적을 강조하는 현상적인 집회가 교인들을 불러 모으는 주요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에서 본 세이연은 이 운동이 과연 올바르고 성경적인 것인지 분별하고 규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비록 늦은 감조차 있지만 연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 운동에 대한 공기관의 규정

 

아래 모든 신사도 유사 운동 단체들이 신사도 운동의 교리들을 100% 동일하게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신사도 운동은 하나의 교회나 단체가 아니라 일종의 ‘운동’(Movement)을 뜻한다. 신사도 운동은 좁은 의미에서 피터 왜그너의 단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비록 자신들이 “신사도 운동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았거나, 신사도 운동과 유사한 사상을 가지고, 유사한 행위를 하는 단체나 개인을 모두 포함한다.(예를 들면, 마이크 비클의 아이합-IHOP,(2) 빌 해몬의 CI,(3) 릭 조이너의 MSM 등(4) )

다음은 각 교단과 공기관과 본 세이연이 신사도운동과 그 유사단체 및 개인들에 대하여 규정한 내용이다.

 

1) 신사도 운동 : 고신(2007/57/지극히 불건전한 사상, 관련 저술탐독 금지, 강사초빙 금지, 집회참여 금지), 합신(2009/94/이단성, 참여금지),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KAPC(2012, 교류 및 참여금지)

2) 빈야드 운동 : 통합(1995/81/도입금지), 고신(1996/46/참여금지, 2007/57/빈야드성 유사운동 집회 참여금지), 합동(1997/82/참여자, 동조자는 징계), 기성(1998/53/사이비성 있음)

3) 관상기도 : 합동(2011/96/교류삼가, 철저배격), 합신(2011/96/참여금지)

4) 변승우 목사(큰믿음교회) : 백석(2009/94/제명 출교), 고신(2008/58/불건전, 2009/59/극히 위험한 불건전 사상, 그의 저술 탐독 및 집회참여 금지), 통합(2009/94/극단적 신비주의 형태 비성경적 이단), 합동(2009/94/참여금지), 합신(2009/94/심각한 이단성). 예성(2010/교류금지), 기성(2010/교류금지)

5) 손기철 장로(온누리교회) : 합동(2011/96/교류삼가, 집회참석금지),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KAPC(2012/교류금지)

6) 아이합(마이크 비클) : 고신(2011/61/집회참석금지),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KAPC(2012/교류금지)

7) 알파코스 : 합신(2009/94/참여금지), 통합(2009/94/금이빨 사건 등 엄격 배제), 기성(2009/복음적이나 가계치유는 경계)

8) 예영수 목사 : 통합(2011/96/이단옹호 행각 중단할 것)

9) 예태해 목사: 합동(1994/79/이단성 혐의), 기장(1996/81/단호 대처), 통합(1999/84/예의주시, 2004/89/예의주시 철회, 한기총(2007년 합동측 자료 받아들여 이단자료집 수록)

10) 인터콥(최바울) : 통합(2011/96/예의주시, 참여자제), 고신(2011/61/위험한 사상, 지도를 받을 때까지 참여자제), 세이연(2011. 이단성, 교류금지, 예의주시),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KAPC(2012. 교류 및 참여금지)

11) 늦은비 운동 : 미국 하나님의 성회(1949/ 이단사상)

12) 홍정식(WLI, 왜그너 신학교, 하베스트살롬교회) : 제명(합신)

 

3. 신사도 운동의 유래와 발생

 

피터 왜그너(Peter Wagner)는 신사도 운동의 유래를 1800년대로 보지만, 신사도 운동의 유래는 몇 개의 이단적 단체의 혼합과 계승으로 보아야 한다. 첫째는 늦은비 운동(the Latter Rain Movement), 둘째는 늦은비 운동에서 비롯된 캔사스시티 예언자그룹(Kansas City Prophets Group: KCP 또는 캔사스시티 펠로십 KCF), 셋째는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과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 넷째는 영적도해(Spiritual Diagram)를 주장하는 지역 귀신론 그룹까지 포함되어 피터 왜그너의 신사도연맹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신사도 운동의 유래에 대한 대표적 단체는 아래와 같다.

 

1) 늦은비 운동(Latter Rain Movement)

1930년대에 시작된 늦은비 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는 윌리엄 브래넘(William Branham)이며, 브래넘은 오컬트적인 귀신 축사, 치유, 임파테이션, 사도와 선지자의 복원, 예언과 계시, 정통신학의 부정, 알레고리적 성경해석 등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며, 1949년 미국 오순절 교단은 늦은비 운동을 이단으로 공식발표한 적도 있었다. 마이크 비클의 책에 의하면, 브래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엘리야 선지자’라고 부르며 그를 추종하였다고 하는데, 이 늦은비 운동이 현재 신사도 운동의 원조가 되어졌다고 본다.(5)

늦은비 운동의 브래넘은 현재 신사도 운동이 주장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가르쳤으며, 브래넘은 통일교와 같이 하와와 사단이 섹스를 하여 가인을 낳았다는 교리를 주장하거나, 자신을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보내진 천사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그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 후계자들은 교통사고로 죽은 브래넘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특히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 백과사전’은 브래넘의 새로운 계시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브는 뱀과 성적관계를 맺는 죄악도 저질렀다. 어떤 사람은 뱀의 씨앗에서 출생하여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 운명이 영원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씨앗, 즉 브래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이 신사도 운동이 주장하는 신부 운동의 유래가 되었다. (6)

 

2)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Kansas City Prophets Group)

1965년 윌리엄 브래넘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 늦은비 운동은 결국 와해되고, 거기에서 사역했던 폴 케인(Paul Cain 1929-)이 1980년대에 마이크 비클(Mike Bickle)과 밥 존스(Bob Jones)를 만남으로서 함께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Kansas City Prophets Group)이 시작된 것이다. 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은 마이크 비클이 세운 캔서스시티 펠로우쉽(KCF)이라는 교회로 시작되었으며, 1983년 마이크 비클은 밥 존스(Bob Jones)를 처음 만나,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의 본격적인 예언사역이 시작되었고 오늘날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의 예언사역으로 계승되었다. 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KCP)에 대해서 7년 동안 함께 사역했던 어니 그루엔(Ernie Gruen)이라는 목사가 1990년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였다. (7) 이것을 ‘어니 그루엔 레포트’(Ernie Gruen Report)라고 하는데, 이 보고서의 내용에 의하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은 모두 거짓 예언을 조작한 곳이며,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 폴 케인(Paul Cain)은 명백한 거짓선지자라는 것이다. 어니 그루엔이라는 동역자가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이 레포트를 발표하여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에 대해서 폭로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KCP(Kansas City Prophets Group)를 떠나게 되었고, 결국 KCP는 쇠퇴하여 몰락하게 되며, 후에 마이크 비클은 빈야드와 연합하여 빈야드교회로 명칭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8)

 

그들은 자신을 신격화하여 예언을 하면서 철새처럼 떠돌다가, 부흥이 일어난 곳이 있으면 찾아가 연합하였다가 또 다시 헤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물론 그들이 가진 이단적인 사상과 예언, 극단적인 신비주의는 포기한 적이 없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1960-1970년대의 이단들은 대부분 전도관(박태선)의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이, 신사도 운동의 인사들은 브래넘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브래넘의 제자들은 브래넘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폴 케인과 밥 존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브래넘은 7살에 천사를 만났다고 주장하였는데, 폴 케인은 8살, 밥 존스는 9살에 각각 천사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체 안에 의하면, 타드 벤틀리는 브래넘의 영을 갑절이나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되기도 했으며, 지금도 미국에서는 브래넘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9)

 

3) 빈야드 운동(존 윔버)와 토론토 레싱(존 아노트)

빈야드 운동의 시조는 존 윔버(John Wimber, 1934-1997)이며, 소위 능력종교(Power Religion)라고 불린다. 그는 1970년부터 퀘이커 교회의 목사였다가 1974년에는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 연구소의 연구원이 된다. 그는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와 표적과 기사 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1977년에 너하임에 빈야드교회를 개척한다. 윔버는 ‘능력 전도’와 ‘능력 치유’ 등과 같이 능력(Power)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1988년 피터 그너(C. Peter Wagner)는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발행하면서 빈야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신사도 운동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10)

1982년부터 환상과 예언 등의 선지자 운동에 주력하고 있던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를 포함한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이 몰락하자, 이들은 빈야드 운동의 존 윔버와 교분을 쌓은 폴 케인의 권유로 빈야드 운동에 합류하게 된다. 마이크 비클과 캔사스시티 선지자들의 예언 운동과 기적과 표적의 집회를 열었던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이 서로 연합함으로 다시 부흥운동을 시도하였고,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과의 교수였던 피터 그너가 존 윔버를 풀러신학교로 초청함으로 빈야드 운동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피터 그너는 이들을 만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9년 봄에 나는 영적전쟁과 함께 예언사역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존 윔버(John Wimber), 신디 제이콥스(Syndy Jacops), 폴 케인(Paul Cain) 등을 다소 의심했다. 그러나 이들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깨닫게 해준 사람들이다. 예언이야말로 중대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11)

 

존 아노트(John Arnott)의 토론토 공항교회에서 시작된 ‘토론토 브레싱’(Toronto Blessing)은 분열된 또 하나의 다른 형태의 빈야드 운동이다. 존 아노트는 1988년에 토론토 공항근처의 교회에서 토론토 블레싱을 시작하였는데, 빈야드 운동에 비하여 더욱 격렬한 집회를 하였고 이를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게 된다. 토론토 블레싱의 영적체험 현상에 대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진동과 떨림 (2) 쓰러짐, 입신 (3) 술 취한 듯한 행동, 춤 (4) 몸부림 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 뒹굴기 (5) 웃거나 흐느껴 우는 현상, 짐승의 소리, 부르짖음 등.

 

존 윔버는 1988년 예언 운동을 받아들였다가 1991년에는 그 운동을 멀리했다. 존 윔버는 또 처음에 토론토 블레싱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거부하였지만(빈야드운동평가, 박영호, 기독교문서선교회, 78쪽), 오히려 그가 속한 빈야드교회연합회의(VCA)에서 1994년 9월 토론토 블레싱을 빈야드 운동으로 인정하게 되며, 그러나 이 현상의 지나친 조장을 억제할 것을 권하는 성명서를 10월 14일에 발표하게 된다. 1995년 존 윔버는 모든 공적지위에서 물러나며 만성적인 심장질환과 고혈압으로 죽는다(위의 책, 71-72쪽). 그 이후 빈야드 운동은 쇠퇴하게 되며, 피터 왜그너는 ‘신사도개혁운동’을 시작하고, 마이크 비클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들었다고 하면서 빈야드교회에서 ‘국제기도의 집’(IHOP)을 시작하게 된다.(12)

 

4) 지역귀신과 영적도해의 그룹

제1차 로잔회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많이 참석한 회의였지만, 1989년 제2차 로잔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과반수 이상이 오순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13) 그 회의를 통하여 피터 왜그너는 소위 영적도해에 대한 발을 내딛게 된다. 2차 로잔회의에서 소위 영적도해 사상들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왜그너에 따르면 당시 이 회의, 5개 팀의 워크샵에서 ‘지역귀신’들이나 ‘전략적 수준의 중보기도’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그 이후 1990년 2월 12일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첫 모임이 열렸는데, 참석한 자들 가운데 존 도우슨(John Dawson, 예수전도단 세계총재)과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등도 있었다. 피터 왜그너는 조지 오티스(George Otis),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등 몇 사람이 함께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라는 책을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그들의 글을 살펴보자.

 

피터 왜그너 : 【이 과정이 시작된 것은 흔히 2차 로잔회의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복음화 회의에서였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적어도 다섯 명의 연사들이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그 주제는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이었다. 나도 그 다섯 명의 연사들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교회가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엡 6:12)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그러한 ‘공중전’이 전 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 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14)

 

피터 왜그너 : 【악령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과 깊이 연관된 기독교의 연구조사와 사역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은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이다. 이 분야의 발전과 사역의 주도적 인물은 남부침례 외국선교회의 데이빗 배렛(David Barrett) 과 AD2000년 운동의 루이스 부쉬(Luis Bush), 파수대의 조오지 오티스2세(George Otis Jr)이다.(15)

 

조지 오티스 : 【사람과 사단의 세력 사이에 맺은 고대계약들 중 많은 것들이 아시아에서 이루어졌고, 아시아는 현재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에 이 대륙이 지금 10/40 창문이라고 알려진 가장 복음화 되지 못한 지역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사람의 수와 그 계약의 기간은 영적세력의 지역적 참호와 영적 어두움 양쪽에 깊은 관련이 있다】(16)

 

이 지역귀신에 근거한 영적도해 사상으로 피터 왜그너는 풀러신학교에서 제명을 당하지만, 후에 인터콥과 예수전도단과 같은 선교단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국내외의 많은 선교단체들도 이러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 소위 ‘땅밟기 기도’와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게 된다. 학자들은 이러한 영적도해에 의한 귀신론을 ‘신귀신론’이라고 부른다. 총신대 심창섭 교수는 인터콥의 최바울의 사상을 비판하는 보고서에서 김성태 교수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

 

“루이스 부쉬의 10/40창문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곳 지역들이 가장 선교가 안 되고, 선교에 황무지인 것은 이 세상 신, 즉 지역 악마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복음의 서진 운동 즉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하게 될 때 전략적 선교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소위 21세기 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전략적 영적 전쟁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원래 ‘전략적 영적 전쟁’이란 피터 왜그너를 중심으로 한 소위 신사도 개혁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이론이다.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있어서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시지 못한 제한된 영적 피조물이기에 그의 졸개인 악령들과 더불어 세계의 중요 지역에 중심 거점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민속학에서 나오는 지역 수호신의 개념을 놓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17)

 

심창섭 교수가 비판한 내용은 인터콥의 김찬성 선교사와 대표 최바울(최한우) 선교사의 주장을 통하여서도 확인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인터콥 김찬성 선교사 :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운동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첫째의 방법은 10/40창을 위한 연합중보기도 운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현재 10/40창을 묶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향한 영적인 공중전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이 나아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강한 자의 세력을 결박하고, 전진하는 영적군사를 후방에서 영적인 포의 지원사격을 하는 것입니다.】(18)

 

인터콥 최바울(최한우) : 【또한 사탄의 세력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직경 3000Km 전체를 강한 어두움의 진을 형성하여 장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바로 거룩한 곳에서 앉아있는 가증한 것, 즉 적그리스도를 멸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마지막 어둠의 세력, 미운 물건, 즉 가증한 적그리스도가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세계를 호령하며 위엄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천군·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시어 적그리스도를 멸하고 인류역사를 마감시킬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봉쇄하고 어둠의 진을 치고 지금까지 있는 것입니다】(19)

 

5) 피터 왜그너의 신사도연맹

신사도 운동은 이러한 혼합과정을 거쳤다. 즉 브래넘의 늦은비 운동의 사상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으로 계승되면서, 빈야드와 토론토 블레싱과 연합되었고, 또 2차 로잔회의를 통하여 소위 지역귀신을 주장하는 영적도해 그룹이 의기투합하여 신사도 운동으로 출범된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2001년부터 제2의 사도시대가 개막되었다고 말하고 ‘국제사도연맹’(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 ICA)을 조직하여 신사도적 개혁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신사도연맹의 사도의회에는 체 안(Che Ahn/안재호),(20) 조지 바나(George Barna), 라이스 부룩스(Rice Brooks), 데이비드 캐니스트래치(David Cannistraci), 프랜시스 프랜지페인(Francis Frangipane), 잭 디어(Jack Deere), 존 에크하트(John Eckhardt), 테드 헤거드(Ted Haggard),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척 피어스(Chuck Pierce), 데이비드 킴(김광신),(21) 로렌스 콩(Lawrence Khong)과 같은 인사들이 사도로 임명되었고, 후에 타드 벤틀리(Todd Bentley)가 사도로 임명될 때에 빌 존슨(Bill Johnson)과 존 아놋, 체 안이 기둥 사도가 되었으며,(22) 타드 벤틀리가 범죄전력과 성추문에 휩싸여 몰락할 때에 릭 조이너가 교정을 맡았다.

 

왜그너의 신사도연맹 외에 과거/현재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신사도 운동과 유사 운동의 인사로는, 하나님의 성회에서 독립한 ‘거룩한 웃음’의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 ‘거룩한 웃음’의 원조인 하워드 브라운(R. Howard Brown, 사망), 케네스 해긴과 베니 힌이 영향을 받은 치유사역가 캐더린 쿨만(Kathryn Kuhlman, 사망), 빈야드운동의 존 윔버(John Wimber, 사망), 토론토 블레싱의 존 아노트(John Arnott), 존 아놋과 사역했던 번영신학과 쓰러짐의 대가로 불리는 베니 힌(Benny Hinn), 신유집회의 부흥사 오럴 로버츠(Oral Roberts), 영적도해의 밥 베켓(Bob Beckett)과 죠지 오티스 주니어(George Otis Jr), 과테말라 엘샤다이교회의 부흥사 해럴드 카발레로스(Harold Caballeros), 펜사콜라 부흥의 죤 킬 패트릭(John Kil Patrick), Church on the way 교회의 잭 헤이포드(Jack Hayford), 목사가 600여명 이상이 가입되어있다는 CI의 빌 해몬(Bill Hamon), CI 본부교회의 목사이며 예언사역을 하는 탐 해몬(Tom. S. Hammon), ICA의 수석사도인 존 켈리(John Kelly), 우간다 부흥사로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다고 주장하는 존 물린디(John Mulinde), 곧 북한이 해방된다고 했던 모잠비크의 예언가 하이디 베이커(Heidi Baker), 베이커와 사역을 하는 슈프레쟈 싯홀(Suprise Sithole),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난다고 예언했던 데이비드 오워(David Owuor), HIM에서 체안과 사역하는 국제추수선교회의 루 잉글(Lou Engle), 금이빨 집회로 유명한 모아실 페레이라(Moacir Periera), 아이합에서 찬양을 했던 레위지파의 스캇 브레너(Scott Brenner), 예언적 중보기도의 캐더린 페인(Catherine Paine)과 라이언 와이어트(Ryan Wyatt), 예언적 중보기도의 짐골(Jim Goll), 성령을 마리화나로 비유하는 존 크라우더(John Crowder), 무속주의와 예언사역을 하는 페트리샤 킹(Patricia King), 피터 와그너의 부인 도리스 와그너(Doris Wagner) 등이 있다.

 

신사도 운동은 세상을 7대 권역으로 나누어 신사도 운동이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의 모든 분야에서도 통치적인 지배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그들은 ‘지배, 통치’(Dominion)라고 부르기도 하고 ‘킹덤 나우’(Kingdom Now)라고도 하며, 자신들을 종교개혁에 비교하며 기존의 기독교를 신사도 운동으로 대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왜그너의 주장을 들어보자.

 

“이 운동을 가리켜 내가 붙인 이름은 ‘신사도적 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이다. 내가 개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 운동의 전반적인 영향력이 개신교 종교개혁에 필적하기 때문이다.” (23)

 

그들이 즐겨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이며, 그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앞으로는 기독교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옛 포도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고, ‘헌 가죽부대’는 기존 기독교 교회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유대교와 비교하여 새 포도주와 새 부대를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존 기독교의 체제와 정통신학을 신사도 운동으로 교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제2의 사도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 포도주가 옛 포도주보다 더 좋은 것임을 믿어야 한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위해서 새로운 가죽 부대들을 연이어 만들어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가죽부대로 들어왔다. 이것을 나는 제2의 사도시대라고 부른다”라고 주장하였다(24)

한 때 피터 왜그너가 세운 지구촌추수선교회(Global Harvest Ministry)에서 주권운동의 7대 권역 가운데 시장권(Market place)을 맡았던 ICA(국제사도연맹)의 일원이었던 리처 델리(Richer Deli)는 피터 왜그너가 안수해서 사도로 세운 타드 벤틀리의 행위에 대하여 “이것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기획한 것으로 악령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요, 타드 벤틀리에게 안수를 받고 부활했다는 20여명의 이야기도 전혀 입증되지 않은 거짓말이었다”고 폭로했다.

 

제2장 본 론: 신사도운동의 이단적 사상

 

1. 피터 왜그너에 의하여 조작된 사도와 선지자

 

신사도개혁운동(NAR/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은 교회성장학자 피터 왜그너가 정의한 교회성장 이론이다. 피터 왜그너는 1998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왜그너 리더쉽 연구소/WLI’를 설립하고 자신이 대표로 있는 ‘국제추수선교회/GHM’에서 12명의 사도의회를 구성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도로 임명하는 등 새로운 사도의 출현을 선포하였다. 그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슬로건 아래 “약 1600년 동안 교회의 직분체제가 비성경적이었다. 신사도 운동은 새 술로서 21세기에는 신사도 운동이 1517년 루터와 칼빈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보다 더 큰 개혁운동이다.”라고 선언하고 2001년을 제2의 사도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이 진정한 새 시대의 사도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경을 짜 맞추고 있다(preformation). 신사도운동의 주도적 인물들은 자신들이 자칭 사도와 선지자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예언과 계시 행위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갖게 된다는 주장이다. 피터 왜그너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에베소서 4:11-12 말씀을 그 근거로 사도를 임명하였다. 이는 성경을 부분적으로 해석하여 ‘사도’를 하나의 은사적 직분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도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사도와 선지자는 비상(非常)직으로 신약교회의 기초(Foundation)가 되었던 직분이다(엡 2:20).

2)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고 부르신 자들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사도의 제자들이 사도라고 불리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직접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막 3:13-14, 갈 1:1, 행 9:15).

3)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그의 부활을 직접 본(목격한) 자이었다(행 1:21-22, 고전 9:1, 고전 15:7-9).

4) 성경은 자칭 사도와 거짓 사도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계 2:2, 고후 11:13).

 

신사도 개혁운동이 주장하는 것은 초대교회와 같은 사도가 지금도 있어야 한다는 제2사도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피터 왜그너가 만든 <12사도 연맹>의 사도들은 곧 초대교회 사도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평적 사도와 수직적 사도를 나누어 12사도 연맹을 통해서 사도들을 임명해 가고 있다. 이 수평적 12사도들은 피터 왜그너에 의하여 조작된 자칭 사도들이요 거짓 사도들임에 틀림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시대의 사도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며,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거나 새로운 시대에 나타날 사도들에 대하여 성경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는데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기 수하의 선지자들이 사도라고 예언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성경은 주님께서 친히 직접 임명하신 사도들 이외에 교회의 기초로서 사도가 더 존재한다고 언급하고 있지 않다.(25)

 

2. 극단적 신비주의 현상

 

신사도 운동의 집회 성격은 빈야드 운동의 집회와 동일한 방식의 집회로서 비성경적인 것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말씀에서 떠난 신비주의적 현상에 치우침으로 성도들을 왜곡된 신앙생활로 오도하고 있다. 금이빨 현상이나 금가루 현상이나 쓰러짐(일부러 넘어뜨리기도 함)과 입신, 짐승소리나 진동현상 등은 오늘날 많이 유행하고 있는 비성경적 신비주의 현상들이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도 미혹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적과 표적을 사용하여 왔는데, 성경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마태복음 24:24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라고 하였고, 데살로니가후서 2:9-10에서는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라고 하였다.

따라서 모든 기적과 표적을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 수 없다. 표적과 기적 중심의 신앙생활은 말씀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권능과 능력이라 해도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극단적 신비주의적인 신사도 운동은 비성경적 형태로서 지극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3. 거짓 직통계시에 의한 신사도 운동의 무속적 예언 행위

 

최근에 한국에서 신사도적 신유집회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오늘 하나님께서 관절염에 걸린 사람을 다섯 명을 치료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한다. 이는 신사도 운동의 집회에서 흔히 듣고 볼 수 있는 일종의 직통계시로서,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 최근 많은 기도원과 교회들이 신사도식 집회를 한 후에, 성도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예언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교인들의 이름이나 생년월일, 혹은 세례날짜를 적어오면 장래 일을 점쳐주는 무당과 같은 곳도 있다. 주로 개인의 신후사를 예언해 주는 경우이다.

 

① 성경에서 미래의 점을 치는 행위는 절대 금지된 일이다(신 18:10-12, 렘 14:14).

② 예언의 성취가 없으면 거짓 예언이다(신 18:20-22).

③ 예언은 개인의 신후사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는 은사이다(렘 23:32, 고전 12:7-11).

 

신디 제이콥스나 밥 죤스와 같은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언이 틀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면 틀릴 수 없어야 한다. 마이크 비클은 “거의 대부분의 예언이 틀린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예언이 거짓된 예언임을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

2011년 3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26)에서, 마이크 비클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하게 들었던 것은 단 한 번으로 “기도의 집을 하라”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래의 주장과 같이, 그는 다른 책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는 상반된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결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방법으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나는 문자 그대로 두려워 떨면서 울고 있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세대에 이 땅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표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예언사역의 여정, 마이크 비클, New Wine, 42쪽)

 

“1983년 4월13일 수요일 저녁에 하나님과의 또 다른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적인 음성이 들렸는데, 이번에도 아주 명확한 음성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서 21일 동안 금식과 기도를 위한 거룩한 성회를 열라>고 말씀하셨다”(같은 책, 54쪽)

 

“아침 이른 시간에 침대에 누워있던 마이크 비클에게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후에 밥 존스 또한 그날 아침에 열린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초자연적으로 확증해주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10년 안에 <열방에 성령의 포도주를 부어주기 시작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같은 책, 293쪽)

 

개인적 신앙적 체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같이 자기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며, 이것이 신약성경의 계시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받은 직통계시를 성경의 수준으로 올려 놓는 것으로서, 위험한 사상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직통계시를 통하여 무당과 같은 개인적 신후사를 예언하지만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신비주의에 빠지게 하여 말씀을 떠난 신앙생활로 이끌어가는 위험한 행위이다.

 

4. 도미니온(Dominion) 속에 숨겨진 비성경적인 주권운동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신사도 운동은 세상을 7대 권역으로 나누고 있는데(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신사도 운동이 이 모든 영역을 통치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사도 운동의 주권신학(Dominion)은 세 가지 기본 신념에 입각하는데, 첫째 인간은 땅에 대한 주권을 사단에게 빼앗겼으며, 둘째 인간이 그것을 되찾아 세상을 통치해야 하며, 셋째 그 때에 예수가 재림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사도운동 비평가인 알 데이저는 도미니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한다:

1) 사탄이 아담과 이브의 유혹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이 땅에 대한 주권(지배권)을 빼앗았다.

2) 교회는 주권을 사탄으로부터 되찾아 올 하나님의 도구이다.

3) 예수는 "교회가 지구의 정치사회적 기관들에 대한 지배를 장악하여 주권을 확립할 때까지, 재림할 수 없거나 재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7)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지 “땅에 대한 주권을 주셨다”거나, 인간이 범죄한 후에 “사단에게 주권을 빼앗겼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창세기 1:27-28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대리적인 위임자로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을 뿐 하나님은 사단에게 통치권을 빼앗긴 적도 없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통치권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마귀가 하나님께 범죄한 후에 땅으로 쫓겨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되었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주권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은 모든 생물에 대한 다스림이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간에게 양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말씀하셨다. 사도 운동이 세상을 7대 권역으로 나누어(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 자기들이 이 모든 영역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주권이 확립될 때까지 주님이 재림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거짓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갖출 때 이루어지는 조건부적 재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은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사도운동의 통치신학은 위험한 인간중심의 비성경적인 이단적 사상이다.

  

5. 이단사상까지 포함하는 개방신학

 

신사도 운동은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정통 신학을 부정한다. 그 증거로는 피터 왜그너가 이단으로 정죄된 단일신론자들까지도 제외시키기를 원치 않았으며, (28) “나는 때때로 신학이라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신학이 대단한 학문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측면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을 바라보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미묘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신사도적 개혁운동과 관련된 대부분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와 달리 신학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29) 라고 했다.

 

계속해서 피터 왜그너의 글을 보자. “만일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어떤 일들을 인간의 결정에 맡기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지 그 분이 미리 아신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게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도박을 하는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미리 조작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열어 놓기로 결정하실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하나님 자신이 미리 알지 않기로 작정하셨다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 (30)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 Sr. 1917-) 글을 보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고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의 삶 밖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수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31)

이러한 신사도 운동의 주장은 정통신학이 자신들의 행위나 운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비성경적 사상이나 행위, 심지어 이단 사상까지도 자신들의 운동에 유익하다면 모두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신사도 운동 스스로가 이단성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복음을 용납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6. 지역귀신론에 근거한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

  

영적도해가 시작된 것은 흔히 2차 로잔회의(1989. 필리핀)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복음화 회의에서였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다섯 명의 연사가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했는데, 그 주제는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에 관한 것이었다. 피터 왜그너도 그 다섯 명의 연사들 중의 하나였으며, 그는 교회가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엡 6:12)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공중전’이 전 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32)

 

신디 제이콥스는 영적도해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것은 복음의 확산을 방해하고 어떤 도시를 복음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단이 만든 침입로를 찾아내기 위하여 어떤 도시를 조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조지 오티스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도시를 사실 그대로 보게 해준다고 말한다 … 우리가 사단의 견고한 진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일 때 우리가 그 진들을 무너뜨리고 포로된 자들을 놓아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무기들이 들어있다"고 하였다.(33)

 

지역신 귀신론의 영적도해에 근거한 신사도 운동의 행위들에는 땅밟기기도, 대적기도, 선포기도, 동일시 회개, 예언적 중보기도, 백투예루살렘(Back to the Jerusalem) 등이 있다.

 

피터 왜그너는 주장하기를, “선포할 때에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어떤 것들을 이루어지도록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도록 명령해야 한다 … 예를 들면 나는 광우병이 유행할 때 독일에서 공적인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이 내게 광우병을 행하여 사도적인 선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2,500명이 모인 앞에서 그렇게 했고, 바로 그날이 광우병이 보고된 마지막 날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내게 주어진 권세로 그 병이 멈출 것을 명령했다. 그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34) 라고 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각 나라와 족속들이 자신들의 신을 섬기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을 하고 승패가 갈라지면 신의 승패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각 나라가 신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 지역을 다스리거나 주장하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신을 만들어서 우상으로 섬겼을 뿐이다.(고전 8:4-5) 각 지역에 신이 있다거나 그 신이 그 지역을 주관하고 있다는 사상은 비성경적인 사상이다.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헬라국 군이나 바사국 군’은 실제로 헬라나 바사를 다스리는 지역신이 아니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들로서 세상제국을 미혹하는 악령들이다. 이러한 악령을 땅밟기나 대적기도, 선포기도와 같은 방법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세상은 어떤 곳이나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영역이다. 단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는 지역일수록 사단이 더 강하게 역사할 수는 있다. 따라서 영적도해 사상, 즉 지역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사상이다. 또한 전도와 선교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그 지역의 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7. 짜맞추기(preformation)식 성경해석

 

신사도 운동의 특징은 임박한 종말론이며, 대추수(대부흥)와 함께, 신사도 운동의 교회에만 선택적으로 성취된다는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그들의 성경해석은 모두 알레고리칼(allegorical)한 해석과 짜맞추기(preformation) 해석일 뿐이다. 어느 성경도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거나 대추수(대부흥)가 남아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이단들은 자기들의 교리체계를 먼저 세운 후에 성경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짜깁기 하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다음의 예를 살펴 보자.

 

⑴ 요엘서 2:28-32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을 거슬러 올라가면, 1900년대 초에 감리교의 ‘거룩 운동’의 참여자요 방언파의 창시자인 챨스 파햄(Charles Parham)(35) 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요엘의 예언(욜 2:28-32)이 오순절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종말에 제2의 오순절(오순절운동)이 오는데, 이 때에 완전히 성취된다고 했으며, 그 표시가 바로 방언으로서 마지막 시대의 표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요엘서 2:23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비유로 해석하여, ‘이른 비’는 오순절 성령강림이고 ‘늦은 비’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현상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이 브래넘의 늦은비 운동으로 승계되었으며, 또한 아이합의 대표인 마이크 비클도 “요엘이 예언한 성령 부으심에 대한 약속은 베드로의 때에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 부분은 요엘서 2장과 사도행전 2장의 확연한 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엘이 예언한 것의 충만한 분량은 베드로의 때에 일부분만이 성취되었을 뿐,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36) 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엘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언한 것이며 그 성취임을 사도 베드로가 증거하고 있다.(37) (행 2:16 이하).

 

⑵ 마태복음 25:1-13의 열 처녀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 단체들은 유난히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심지어 ‘신부 운동’(Bridal Ident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신부라는 용어가 기독교의 용어와 같을까?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는 참된 우주적 교회와 그 구성원인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단체들이 주장하는 ‘신부’라는 용어는 자신들에게 적용시키는 배타적인 용어로서,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 대한 해석에서 그들의 의도가 드러난다. 열 처녀 모두가 그리스도인인데 그 중의 다섯은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만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기독교인들이며 나머지 다섯은 기름부음을 받은 신사도 운동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38) 그러나 성경의 열 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랑신부를 위한 들러리를 가리킨다.

 

또 그들은 기름을 성령으로 해석하고 성령을 기름부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기름을 성령이라고 직접 해석한다면 다섯 처녀는 성령을 사러 갔다는 말이 되고 만다. 열 처녀의 비유의 초점은 ‘기름이 무엇인가’ 혹은 ‘신부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열 처녀들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 처녀였을 뿐이다. 이 혼인잔치의 비유는 예수의 재림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라는 내용이 그 본질적인 의미다. 왜냐하면 열 처녀는 모두 졸았기 때문이다. 다섯 처녀는 미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였고, 다섯 처녀도 분명히 기름은 갖고 있었지만 신랑이 늦게 왔기 때문에(더디 올새) 그 기름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만일 기름을 성령으로 단정한다면 다섯 처녀도 성령을 갖고 있었으나 성령이 부족하였다는 이상한 해석이 되며, “부족한 성령을 누군가에게 사러 간다”는 주장은 이상한 내용이 되고 만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름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신랑이 늦게 온 것에 기인하며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예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교훈이다.

 

신부 운동을 주장하는 단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위험한 공통적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혼인잔치가 곧 가깝다고 하는 임박한 시한부 종말론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둘째는 이것을 신비적인 연합적 개념, 즉 이단적인 신인합일론(神人合一論)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연합을 한 몸이 된다는 성적이며 관능적인 육체적인 결합으로 비유하거나 상징하며, 특히 그들은 아가서를 풍유적으로 해석한다.

셋째는 신사도 운동을 주장하는 단체만이 신부가 된다는 배타적이며 제한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열 처녀의 비유와 같은 구절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다섯 처녀를 기름부음 받는 성령운동을 하는 자로 해석하고 기름이 부족한 다섯 처녀를 기존 교회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⑶ 계시록 5:8에 대한 해석

 

IHOP에서는 ‘하프와 보울’(거문고와 대접)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어떤 상태’라고 부른다. 즉 하프는 찬양을 상징하고 보울은 기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마이크 비클은 본문의 거문고가 하프(Harp)이고 금대접(Bowl)은 기도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기도는 금대접이 아니라 그 대접에 담겨져 있는 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대접(Bowl)은 무엇인가를 담는 용도 외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6장의 ‘하나님의 진노를 쏟는 대접’도 동일한 ‘Bowl’ 이기 때문이다. IHOP에서 ‘Bowl’ 이라는 단어를 어떤 특별한 임재상태의 개념에서 기도로 본다면, 요한계시록 16장의 진노의 대접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 이와 같이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래 이단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본문은 ‘하프와 보울’이라는 단어는 임재와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과 함께, 예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유일한 중보자임을 뜻하는 내용이다.

 

(4) 사도행전 15:16-17에 대한 해석

 

또한 이들은 24/7(24시간 7일) 찬양이 사도행전 15:16에 나오는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는 것이며, 다윗은 24시간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24시간 동안 계속 드리는 찬양과 예배를 기록한 내용이 전혀 없으며,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잘못된 해석으로서, 실제로 구약에서 성가대는 아침과 저녁으로 찬송을 하였다(대상 23:30).

그들이 인용하는 사도행전 15:16-17의 “하나님의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짓는다”는 말씀은 다윗의 장막에서 24/7 찬양과 예배를 드린다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말씀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고 구원을 받는 사건에 대하여, 바울의 보고와 베드로의 비평을 듣고 난 후에 당시 예루살렘의 최고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라는 아모스 9:11을 인용하여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운다”는 의미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백성이 함께 주를 찾는다는 뜻”으로 설명하면서, 이 말씀이 오늘날 성취된 것임을 확인시키는 내용이다. 결국 자신들의 교리인 다윗의 장막과 24/7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도행전 15:16-17을 가져다 붙인 것뿐이다.

 

(5) 사도행전 2:8-13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과 IHOP에서는 성령에 취하면 술에 취한 것처럼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그들은 집회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신사도 운동은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술취한 현상(Slain in the Spirit, 성령에 압도된 상태)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 근거로 사도행전 2:8-13을 제시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주어진 말씀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조롱을 하기 위하여 “새 술에 취했다”고 말한 것이지, 성령을 받게 되면 몸을 못가누고 술을 취한 것과 같이 되었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이것 역시 성경을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6) 에베소서 4:11-16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에서 주장하는 것은 마지막 때 신사도적 교회에 주어졌다는 5중 직분이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다섯 가지 직분을 주셨는데 현재도 이러한 5중 직분이 교회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가들은 피터 왜그너가 세운 신사도연맹을 중심으로 사도를 세우고 선지자를 세운다. 그리고 사도시대처럼 지금도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하며 그것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에베소서 4:11-16은 교회의 5중 직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초대교회에는 감독, 장로라는 직분이 실제로 있었는데, 본문에서 실제로 없었던 목사라는 직분을 왜 넣은 것인가? 이것은 자신들이 사도요 선지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경을 짜맞추기한 것일 뿐이다.

 

에베소서 4:11-16의 내용은 반드시 있어야 할 교회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권면하면서 하나님이 여러 가지 은사 즉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부르신 것을 사역적 측면에서로 말씀하는 것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말씀이다.

 

8. 조작된 요엘의 군대(Joel's army)

 

신사도 운동에서는 요엘의 군대를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요엘의 군대는 이미 신사도 운동의 원조인 윌리엄 브래넘이나 폴 케인에게서 나온 것인데, 환상 중에 요엘의 군대라 불리우는 ‘이기는 영적 군사들의 엘리트 집단’(an elite company of overcoming spiritual warriors)을 보았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manifest sons of God)이요 ‘집합적 그리스도’(a corporate Christ)요, ‘인간아이 집단’(Man child Company)라고 한다.(39)

신사도 운동에서는 요엘의 군대를 ‘Jesus Army’ 라고 부르거나 ‘하나님의 군대’ 혹은 ‘추수군대’ 라고 부르며, ‘왕의 군대’라고 한다. ‘요엘의 군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며, 이 본래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두 사람이 주장하였던 요엘의 군대의 본래 의미는 아래와 같다. 그들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에 심판자로 나타나는 요엘의 군대 사상은 심각한 이단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첫 열매로서 죽음을 정복하는 사역을 시작하셨고, 요엘의 군대는그의 교회로서 그 과제를 성취한다.

둘째, 예수가 가진 능력과 권세를 오늘날 요엘의 군대인 교회가 동일하게 가졌으며,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를 요엘의 군대라고 하며 그를 통하여 죽음이 정복된다.

셋째,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가 마리아에게 성육신한 것처럼, 요엘의 군대는 집합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성육신된 자들이다.

넷째,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육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육신된 집합 그리스도 곧 요엘의 군대로 재림한다.

다섯째, 예수는 육체 안에서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 안에서 그가 세상에 있었던 것처럼 되어야 하고 우리가 성육신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그의 세상에서 계속되는 성육신이다. 예수의 재림은 육체를 가지고 가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합된 몸으로서 영적 재림이다.

 

‘요엘의 군대’라는 용어는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무서우며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욜 2:11)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세상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의 타락과 범죄를 심판한다는 말씀이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경고하고 촉구하는 의미로서, 그 날이 무서운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이다. 요엘의 군대는 말세에 나타날 하나님의 군대가 아니다.

특히 일부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성육신한 집합 그리스도, 즉 요엘의 군대로 영적재림(spiritual advent)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교리에 짜맞춘(preformation) 자의적인 성경해석이며 육체를 가진 변화된 몸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위험한 이단사상이다.

 

9.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오도한 임파테이션(Impartation)

 

신사도 운동은 안수를 통하여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다(impart)고 주장하며 ‘임파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분별없이 안수를 하고 있다. 특히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전이(transmission)시켜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성령을 나누어 주고 성령의 은사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아주 위험한 사상이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한 성령의 주권적 사역으로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안수해서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8:14-24을 보면 사마리아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 이것을 본 시몬이 돈을 드려 성령을 받는 권능을 달라고 사도들에게 요청했다. 베드로는 분노하여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 생각했던 시몬에게 심한 책망과 함께 회개를 촉구하였다. 시몬이 착각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성령을 받게 한다고 여긴 것이다. 신사도 운동의 임파테이션은 시몬처럼 자신들이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은사나 기름부음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고,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인치시고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안수로 성령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침해하는 위험한 사상이다.

 

‘카리스마’(은사)라는 말은 하나님이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물질적 축복이나(earthly goods) 비물질적(non-material) 영적 은사(恩賜/은혜의 선물)를 말하는데,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를 한글 번역성경은 ‘영적인 축복’으로 해석하고 영어성경은 ‘spiritual gift’로 번역하였다. 로마서 5:15-16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생을 은사(카리스마)라고 말한다. 은사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각 지체에게 나누어 주는 성령의 선물을 뜻한다. 성경은 성령을 주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주체는 성령자신이시며, 그 통로는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서 15:29이나 로마서 1:11에서 신령한 은사를 나눠준다는 말은 ‘성령의 전이(Holy Spirit Transmission)나 임파테이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받은 은혜를 로마 성도들에 나눠줌으로 서로의 믿음을 격려한다는 내용이다.

 

제3장 결 론

 

신사도 운동은 늦은비 운동의 브래넘으로부터 시작된 이단적인 집단의 사상으로서 그 사상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과 빈야드 운동, 토론토 블레싱으로 승계되어, 영적도해라고 하는 신귀신론과 접목되어서 신사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사도 운동은 피터 왜그너를 포함하는 좁은 의미의 사상에서 시작하여, IHOP과 CI등과 같은 유사 운동과 모방 운동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운동을 뜻한다. 그들은 자칭 사도요 자칭 선지자이며 자신들이 초대교회의 사도와 선지자와 같은 권위를 가지며 지금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자신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며 역사하신다고 한다. 자신들이 받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의 완전성이나 충족성을 부인하고 지금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의 교리는 정통신학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이단사상까지 수용한다. 그들의 교리와 사상은 성경을 조작하고 짜맞추는 이단들의 수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어느 경우에는 인본적인 지상천국의 건설, 사이비 종말론, 집합 그리스도과 같은 신인합일론(神人合一論) 등 매우 위험하고 황당한 이단사상까지를 포함한다.

 

심각한 것은 신사도 운동이 말하는 실제적인 적(enemy)은 보수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현재의 기독교 패러다임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기독교에 대해서 피터 왜그너는 ‘종교의 영’ 혹은 ‘사탄’이라고 부르며, 킴벌리 다니엘스는 ‘종교적 사냥개’라고 부른다.(40) 현재의 기독교를 뒤엎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사도운동은 비성경적 이단운동으로서 기독교의 대적자요 이단적 사상의 집합소이다. 따라서 아주 위험한 이단 혹은 사이비 단체로 규정하고 교류를 금지하고 참석을 금할 뿐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집회에 참석하거나 이 운동을 지지하는 교회나 단체에 대해서 각 교단은 엄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신사도 운동과 연관된 개인 및 집단> :

 

외국의 신사도 운동 : ICA(국제사도연맹. 피터 왜그너), HIM(세계추수선교회, 체안), IHOP(국제기도의 집, 마이크 비클), CI(빌 해몬), MSM(릭 조이너), 올랜도 크리스쳔센터(베니 힌), 아이리스미니스트리(하이디 베이커), 밥 존스(큰믿음교회 원로목사), 신디 제이콥스(영적도해, 대적의 문을 취하라), 빌 존슨(래딩 벧엘 교회, 초자연적사역학교), G-12/엔카운터 운동(세자르 카스텔라노스, 로렌스 콩)

 

국내의 신사도 운동 : WLI(와그너사역신학교, 홍정식), 큰믿음교회(변승우), 영동제일교회(김혜자), 레위지파(다윗의장막, 스캇 브레너), KHOP(한성진), 에스더기도운동(이용희), JMI선교회(김희준), 뉴와인/원띵하우스(손종태), 더데이미니스트리(Theday, 조지훈), 아가페신학연구원(김태진), 아이리스미니스트리(김승환), 한국기독교영성운동연합회(예영수), KIBI(한이성경연구소, 송만석), IMN(이스라엘사역네트워크), AMI(HIM Korea, 이성대), Awake Korea(서바울)

  

외국 한인교회 : 엘리야학교/엘리야기도운동(김종필), 사랑과진리교회(뉴욕, 밴자민 오), 가스펠펠로우쉽교회(뉴저지, 성현경), 인터내셔날갈보리교회(워싱턴, 이성자), 워싱톤드림교회(버지니아, 이근호), 신시로 교회(일본 나고야, 다키모토 준)

 

유사단체, 영향을 받은 단체와 개인 : 순복음성서교회/마하나임 ISOM(정바울), 메누하(윤남옥), 늘기쁜교회(문대식), <천국은 확실히 있다>(토마스 주남), 두날개(풍성한교회, 김성곤), 예수전도단(로렌 커닝엄), 온누리월요어노인팅(김성진), 열방교회(김민호), 아가선교회(이현숙, 홍의봉), 인터콥(최바울)

 

이 외에도 적지 않은 교회나 단체가 신사도 운동의 집회를 하거나 그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 피터 왜그너나 마이크 비클, 베니 힌, 체 안, 신디 제이콥스등과 같은 신사도 운동의 인사들을 초청하거나, 국내외의 신사도 운동 단체들의 집회를 열어주는 대표적인 대형교회들이 많은데, 이러한 교회들은 신사도 운동의 위험성에 대해서 인지하고, 차후로는 외국의 신사도 운동 인사를 초청하는 집회나 신사도 운동과 관련된 단체의 집회를 금지하기를 촉구한다.

 

<참고문헌>

1)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 행크 해너그라프, 이선숙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9.

2) 『신사도 운동의 정체와 비판』 이인규 著. 대림문화사. 2011

3) 『도미니온』, 피터 왜그너, WLI. 2007

4) 『기도의 기술』, 케네스 해긴, 믿음의 말씀사. 2003

5) 『요엘서,』 마이크 비클, 드보라하우스. 2009.

6) 『예언사역의 여정』, 마이크 비클, 뉴와인. 2007

7) 『목사와 예언자』 피터 왜그너 著 도서출판 진흥. 2000.

8) 『기도하는 교회, 피터 왜그너』, 알돌기획. 1994

9) 『기도는 전투다』 피터 왜그너 著 명성훈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7.

10) 『방패기도』 C. 피터 왜그너 著 명성훈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11) 『너는 나의 친구라』, 밥 존스, 큰믿음. 2010.

12) 『왕의 나라』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1.

13) 『왕의 군대 the King's Army』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0

14) 『왕의 대로 the King's Highway』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0

15) 『세계영적도해 Global Spiritual Mapping』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1.

16) 『백투예루살렘』 최바울 저. 도서출판 펴내기 2008.

17) 『어서오세요 성령님』, 베니 힌, 은혜출판사. 1996

18) 『주님 저에게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베니 힌, 열린책들 1993.

19)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 왜그너 김영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8.

20)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박영돈, IVP. 2011.

21)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변승우 著. 은혜출판사. 2007.

22)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 C. 피터 왜그너 著 홍용표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23) 『빈야드운동평가』, 박영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6.

24) 『세계 오순절성결운동의 역사』, 빈슨 사이난, 서울말씀사. 2004.

25) 『대적의 문을 취하라』 신디 제이콥스 著 고세중 옮김. 죠이선교회출판부. 1998.

26) 『기도의 배수진을 치라』, 피터 왜그너, 나눔터. 1996.

27) 『능력전도, 존윔버』, 나단출판사. 2004.

28) <펜사콜라 기적의 현장>, 이영훈, 국민일보사. 1997.

29) 『은사 예언자인가 광신자인가 아니면 이단인가?』 죤 맥아더. 생명의 샘. 1994.

30)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김재성 著. 킹덤북스. 2011.

31) 『일터교회가 오고 있다』 피터 왜그너. 이건호 옮김. WLI korea. 2008.

32) 『사도와 선지자 교회의 터』 피터 왜그너. 임수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0.

33) 『오늘날의 사도』 피터 왜그너 박선규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6.

34) 『다가오는 사도시대』 로저 샢. 고새중 옮김. 죠이선교회 출판부. 1998.

 


각기 다른 돌멩이들이 개울바닥에 구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냇물의 넘치듯 노랫소리를 듣지 못 했을 것입니다.

풀 숲을 지나지 않아 송사리 뽀끔질이 없었다면
우리는 시냇물의 간지르듯 웃음소리를 듣지 못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달라서 웃고 노래했을 터인데
오늘 문득 낯설음을 감당할 길 없어 뒤안에 꼭꼭 숨어 울었습니다. / 이행용








 








부제: Knowing Christ

“전체란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는 것이다.”(A whole is that which has beginning, middle and end.) 라고 이야기한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신앙생활을 전체(whole)로 본다면, 이 또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일괄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 시작과 중간 그리고 그 끝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신앙생활에 실패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이 아침에 부어주신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그 끝은 무엇이어야 할까?

필자는 오래전 이단에 빠진 한 청년이 그 이단 신학교(신학원)를 수료하면서 소감문을 발표한 것을 어느 글에서 관심 있게 읽어본 기억이 있기에, 여기에 옮겨본다.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끌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 교회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리고 군대에 갔을 때는 군종병들이 교회 다니는 상관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병들을 억지로 교회에 데리고 가려 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된 후, 다니던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님이 여자 문제로 사모님을 버리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이단 단체에 속하게 된 동기라고 했고, 이단 신학 과정을 마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이단에 빠진 자)는 본질보다 비본질에 눈길을 돌렸고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사냥꾼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신앙생활 출발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중간이 잘못된 것이다. 살펴보면, 그가 말하는 중에서, 지금 우리가 믿는 주님이 잘못되었거나, 우리의 신학이나 교리가 잘못되어서 기독교를 버린 것이 아니다.

이 청년은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다고는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관한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듯 하다. 즉, 본질보다는, 비본질, 그러니까 죄인 된 인간들 삶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는 비본질(거듭나지 못한 장로님들의 부족함, 열심만 있는 군종 상관, 타락한 삯군 목자) 이런 인간의 부족한 부분에 자신의 신앙생활의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들이 실수할 때 함께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그는 하나님을 떠났고 이단이 쳐둔 덫에 걸려들게 된 것이다.

그는 또 이단 신학교 졸업식사 서두에 "천지의 대 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들을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주신 예수님, 그리고 오늘날 약속의 실체가 되셔서 영적 새 이스라엘 12 지파를 창설하신 우리의 이기신 者, 총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라면서 하나님께가 아닌, 그 단체의 교주에게 영광을, 그리고 찬양을 올렸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경험들이 어느 정도로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실망하고 좌절하였다는 것이 결국은 “예수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지(無知)”때문이란 것이다! 이단으로 넘어가 이단의 교리를 배우고, 성삼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이긴 者(그들의 교리에서 '이긴 자'는 복수 형태로 사용될 때에는 그 신도들을 가리키며, 단수로 사용될 때는 인간 교주를 그리고 인간 교주를 가리킬 때 '이긴 자'라는 존재는 보혜사, 사도 요한격 목자, 약속의 목자 등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에게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무엇을 알아야만 하는 것일까? 다른 말로, 그가(이단으로 빠진 청년)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성삼위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배우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고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신관(神觀)을 재 정립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의 신관(神觀):

그리스도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섬겨야 할 분은 오직 우리 ‘ 주 예수 그리스도’한 분 뿐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알아야만 한다. 무슨 뜻인가?

하나: 예수님을 개인의 주(The Lord)로 믿어야 한다.
'주(主)'님이란, 원어로 '아도나이'(ynda)이다. 그 뜻은'주권자', 인간의 또는 신적인 '통제자', '주인', '소유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대명사'이다. 하나님은 죽어서나 만나보는 그런 염라대왕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현재 내 삶에 주인이 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개념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삶에서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하며, 이런 자세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 16 참조)

: 예수님(Jesus)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뜻은 구원자란 뜻이다(마1: 21절 참조).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요, 그분만이 우리의 구속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 12절 말씀)” 그렇다. 석가도, 공자도, 여호와 증인 창시자 럿셀도, 모하멧도, 문선명도.. 요즘 각광하고 있는 사이비 자칭 이긴 자( ),그들 중 그 누구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은 그들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준 사람이 아니며, 또 죽어줄 수도 없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죄인, 자기의 죄로 인하여 저주(요 3: 36절 참조) 아래 놓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와 꼭 같은 신세일 뿐이다. 이 세상에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어 주노라”라고 말씀하셨고 실행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런고로, 예수님만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신관(神觀)이다.

셋: 하나님을 그리스도(Christ)로 믿어야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잠시, 그리스도(Christ)란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구약 성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살펴보면, 1. 선지자 2. 제사장 3. 왕 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의미 “당신은 나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니이다.”하는 선명한 뜻이 함축돼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선지자란, 하나님 편에서 하늘의 소식을 인간에게 전해 주는 사람이다. 제사장이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는 사람이다. 왕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통치자이다. 육신 적으로는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 영적으로는 그의 백성된 나 개인을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이런 사실 하나만 정확하게 알고 바로 믿으면, 결코 이단에게 속아 넘어갈 일도 없고 미혹의 영에 이끌려 탈선할 일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넷: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심판 主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 4: 1) 첫 번째 오신 주님은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희생양으로 오셨지만, 두 번 오실 주님은 심판 주로 오심을 믿고 그분 앞에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여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도 아니며, 하늘 어딘가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가 잘하면 복을 주시고 잘못할 때는 벌을 내리시는 분,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하는 우리네처럼 변덕스럽거나 괴팍한 하나님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된 개념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각종 이단 사설, 하나님은 다 같은 하늘의 신, 하늘님이라고 믿는 다신교나 여러 혼합종교의 유혹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성령의 조명 하심을 힘입어, 우리의 신관(神觀)을 재정립해 보아야 할 시점에 와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믿고 섬겨야 할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창세 때부터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 그 구원의 계획을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으로 성취하신 성자 하나님,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찾아와 내주하고 계시며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 한다!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바로 믿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신관(神觀)을 제대로 정립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요즘처럼 교계의 형편이 바닥을 치는듯하고 세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반기련이나 이단 사설에 미혹되는 이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적, 지성적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이요,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신가?” 정확한 개념을 배우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 설교 준비를 위해서 성경을 인용하는 정도의 지도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무리한 소리일까?

현대는 신학교도 많고, 교회도 많고, 종교 지도자라 칭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지도자 자리에 들기 좋아하여 싸우며 다투기를 즐기지만, 막상, 그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여 우왕좌왕이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머리로만 아는 예수가 아니라 가슴으로 믿고 받아들인 신앙인이 매우 드문 현실이다. 육으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영의 일이다. ( 요 6: 63 참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無知)는 자신 뿐아니라, 수많은 영혼을 지옥 백성이 되도록 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무서운 구렁텅이로 밀어넣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이나 오는 세상에서 무한한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삼위일체가 되신 하나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으며(롬 11:36),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롬 3:23-2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아야 할 존재들이란 것(롬 5:8; 벧전 3:18), 이 사실 하나만 분명히 알고 있다면, 결코 이단으로 미혹되거나 빠질 이유가 없을텐데....

우리 신앙생활은 출발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여야 하고, 가는 길, 중간도 주 예수 그리스만 바라보아야 하며, 신앙생활의 끝(Final)도,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되는, 올바른 신관(神觀)을 세워야 한다. 고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 돼, 힘써 알고, 분명히 알도록 가르치고 지켜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2-26)"

 

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신앙칼럼 글


사랑의 선택/최송연

짐의 무게야
어떠하든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 

기대감은
실망을 대동하여
지친 어깨를
더욱 짓누르게 하지

감정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믿어보는 거야, 끝까지
주님도, 이웃도...

사랑을 하려면
먼저 신뢰부터 배워야 해

신뢰감이 무너지면
사랑도 무너지는 것
사랑의 선택은 신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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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부부의 시간여행 ‘감동의 눈물’

결혼을 앞둔 한 커플의 시간 여행을 담은 영상이 화제다.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Field Day’ 채널은 예비부부를 화장을 통해 늙어가는 모습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해당 영상은 지난 5월에 게재된 이후 1억5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영상은 한 달 뒤 결혼하는 부부, 크리스티와 트래비스의 이야기다. 제작진은 20대에서 90대까지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분장을 통해 보여준다. 각 나이대에 맞는 분장 시간은 약 3시간. 하지만 시간여행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50세 분장에 트래비스는 크리스티에게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한다. 크리스티도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며 “당신도 여전히 멋지다”며 화답한다. 70대 분장을 한 서로의 모습을 본 둘은 말을 잇지 못한다. 크리스티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제작진이 눈물의 의미를 묻자 크리스티는 “그 긴 시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상상이 된다”고 답한다.

90대에 이르자 트래비스의 눈가도 촉촉해진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제작진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크리스티는 트래비스의 눈물을 닦아주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남편에게 감사하다”며 “나이 든 모습을 보니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긴다”고 말한다.

▼100 Years of Beauty: Aging | Cut Has A Field Day

https://youtu.be/X9HlHmY-PsA

☞ 사진으로 천천히 다시보자


























제46강 막14장22-24절 세례와 성찬 / 박영선 목사

 

 

 

46강 막1422-24절 세례와 성찬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성례는 그 자체가 구원의 방편은 아니지만 믿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은혜의 방편이다. 우리는 성례를 행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확인하고 그분의 백성 됨과 우리가 그에게 속한 자임을 확인한다. 교회는 성례와 이 예식의 내용을 충실히 가르쳐야 한다.

 

 

Q 시각교정을 위한 화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 궁극적인 의도는 종말에 하나님 백성을 창조하고 모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죄로 말미암아 고난과 형벌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 형벌의 자리로부터 그들을 구해내는 것, 즉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을 창조하고 모으는 일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 문제가 해결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의 대속 죽음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곧 피흘리신 죄 씻음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귀에 들리며 그의 요구가 우리 영혼을 뒤흔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에 반대되는 길을 가면 마음이 거북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얻은 표요 성경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있는 백성이기 때문에 얻게 된 감각인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실제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특별히 십자가와 부활로 요약되는 대속적 죽음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서 돌이켜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8:12) 하나님나라에 관한 일은 늘 예수를 믿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음으로써 죄 씻음을 통과해야만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담대히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28:31) 또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간의 밀접한 관계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선포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모으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죄사함을 위한 대속적 죽음으로서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창조라는 공통분모로, 하나님나라의 선포와 예수님의 죽음은 직결되며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예수님의 죽음에 의하여 실제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 즉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하신다는 이 구원의 약속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사도들의 선포는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선포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공관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중심 메시지가 하나님나라인데,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설교를 보면 하나님나라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중심 메시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설교의 주제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점으로 하여 하나님나라의 선포에서 예수님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으로 달라지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참조:8:31, 9:31, 10:33). ,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던 그 예수님이 이제는 사도들에 의하여 하나님나라 선포의 대상과 내용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유익을 위한 성례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구체적인 열매로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선포와 죽음을 신앙고백하는 것으로 그 존재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의 표현으로 교회는 규칙적으로 세례와 성찬 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와 성찬 예식이 없는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며, 비록 성례 의식이 행해지고 있더라도 참여하는 자들이 그 예식의 내용과 의미를 모른 채 형식적으로만 참여한다면 바른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례는 그 자체가 구원의 방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로마 교회는 일곱 가지 성례를 갖고 있었으나 개혁주의 교회는 세례와 성찬, 이 두 가지만을 가리켜 성례라고 합니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교회에서 지키라고 명하신 항구적인 제도입니다. 신자들은 성례를 시행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확인하고 성례를 통하여 그의 백성됨과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례는 교회의 공적 모임에서 시행되며 그 의식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결속되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죽음과 부활에의 동참, 세례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죄를 씻는 의식이며, 실제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의미하는 의식입니다. 세례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복종하겠다는 진실한 고백을 하는 자들에 한해서 비로소 베풀게 되며 신자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2:12을 보면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함으로써 세례를 함께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물세례 아래로 들어가심으로 죄인인 우리와 동일시된 것 같이,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과 우리가 동질화됨으로써, 이제 우리 역시 죽음을 이기고, 사망이 우리를 붙잡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동일시되고 동질화되면 그와 함께 죽음에도 가지만 그의 죽음은 곧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세례를 받아 그와 함께 세상과 죄에 대하여 죽는 자리에 동참하고 그와 함께세례를 받아 그와 함께 세상과 죄에 대하여 죽는 자리에 동참하고 그와 함께하나님 안에서 새로 부활하는 자리에까지 동참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골로새서 2:12“‘함께장사한 바 되고 함께일으키심을 받았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일시되어 물 세례를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그와 동일시되어 그 안에 들어감으로써, 그가 사망을 통과한 일에 내가 동참한 자가 되고 싶다는 신앙고백의 행위가 바로 세례입니다. 연합되기 위해서는 동질화되고 동일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연합이라는 말로 많이 일컫기도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6:3-8).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죽는 자리에 동참하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 부활하는 자리에까지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로 다시 살기 위해,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죽음의 자리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내 이름만으로의 죽음이라면 죄값으로 죽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이 아니며, 사망이 그를 붙들 수 없는 분이며,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므로 이제 내가 그분의 죽음에 동참하면 그 죽음이 끝이 아니고 부활로까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가 갖는 뜻입니다. 이 세례의 효능은 시행하는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내적 역사는 세례집행 전이나, 그 순간이나, 그 후에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상관없이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 또한 이 세례는 오직 한 번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의식이 집행될 때마다 그 의미를 우리 마음에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 죽음의 의미, 성찬

그러면 성찬은 무엇입니까? 주의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그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나누는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잘 설명하신 부분은 최후의 성만찬 석상에서였습니다. 이 성만찬에서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떡을 떼는 일과 포도주를 붓는 행위이며, 둘째는 그 행위에 이어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22:19)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 (14:24)라는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특별히 잔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구약에서 가르치고 기다려왔던 구원의 내용이 이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성취되고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53:10-12을 인용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죽음을 백성들을 위해서 고난받는 종의 역할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난받는 주의 종이란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신 매를 맞고 자기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주어서 많은 죄인들을 의롭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잔의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언약의 피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드린 언약의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는 장면이 묘사된 출애굽기 24:8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24:8).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했던 것처럼 이제 그 다음날 이뤄질 자신의 피흘림으로써 제자들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31:33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의 언약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고 남은 자들과 새로운 언약을 세울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바로 이 새 언약의 제사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언약을 세우리라“ (31:31).

 

이상에서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새 언약을 세우는 제사로 보았고 자신의 대속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창조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것이 성찬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이 행해질 때는 반드시 그 행위와 함께 그 행위를 설명하는 말씀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는 기념행사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이 예식이 행해지는 곳에서 그리스도 죽음심의 공효(功效)가 실제로 적용되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기대함이 없이 아무렇게나 참여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본문 되짚어보기

1. 하나님나라 백성의 창조는 어떻게 성취됩니까?

2. 신자들이 성례를 시행함으로 확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성찬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인 행위와 말씀은 각각 무엇인지 본문에서 찾아 적어 보십시오.

행위:

말씀:

 

 

깨달음에 깊이 더하기

세례받았던 때의 감격과 느낌을 서로 이야기 해봅시다.

 

 

 

 

출처: 개혁주의마을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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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여행가는 것이다..
여자 홀로 기다란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생각 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매력으로 느껴진다.
비행기 창가에 혼자 앉아서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여자도 역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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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혼자 걸어가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는 여자의 모습도 그림처럼 멋지다.
이런 연출을 기대하면서 여자는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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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자의 영원한 꿈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둘이하고 싶은 여행보다는

혼자서 떠 나고 싶은 여행의 충동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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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여자는 고독한 모습으로

존재 할 때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자의 깊은 가슴 속에는

항상 메워지지 않는 빈 자리가 있다.
부모도 형제도 사랑하는 사람도 메워줄 수 없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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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나 겨울 같은 특정한 계절이 아니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분에 따라서 여자는
영원히 혼자 떠날 수 있는 여행을 꿈꾸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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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방을 꾸리기만 한다.
혼자 태어나서 엄마의 감시를 받으면서

요조숙녀로 자라나 겨우 어른이 되어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었구나했을 때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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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세월이 좀 지나면 아이들이 태어난다.
아이들은 더 작은 눈으로

짠 그물이 되어서 여자를 조인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강하게 조여드는
결박의 끈으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묶어놓고 만다.
잠시도 문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스스로 나가지 않기도 하면서


언젠가는 못 나가는 것인지 안 나가는 것인지
그 구분이 애매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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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들이 커서 모두 어른이 된 날


여자는 모든 그물에서 해방된다.
그때 자기자신을 돌아다 보면

이미 오십이 가까워진 나이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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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여자가 홀로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려도
조금도 아름답지 않고 매력있어 보이질 않는다.
청승스럽고 초라해 보일 뿐이다.
아무도그 여자한테 말을 걸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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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누구의 관심도 눈길도 끌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린 나이에야
겨우 모든 그물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아무데에도 가고 싶어지지 않는다.
무슨 옷을 입고 나서야 남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백화점에도 이름난 디자이너의 옷가게에도

몸에 맞는 옷은 없다.


마음으로는 젊어보이는 옷을 고르고 싶은데
그런 디자인의 옷은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다.
좋은 옷 입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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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제부터야말로 여자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놓친 시간이 아무리 길고 아깝다해도


그건 생각하지 말기로 한다.
잊어버리기로 한다.
지워버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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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가냘픈 허리에 기다란 스커트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되는대로 틀어 올리고 기차 에서 내린다.
황야를 달려온 속도없는 기차에서 내리면
그 여자는 새롭고 낯선 아프리카의 공기를

몸으로 느끼면서 주위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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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기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인가.

김이연의 '女子가 자존심을 버린다면 그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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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도응답이 되지 않는가? / 박신 목사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신자들마저 매번 당혹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때로는 성경의 약속과 현실의 상황이 이율배반적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든 믿고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본문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즉, 무슨 일이든지 쉽게) “예”(즉, 이뤄진다)가 된다고 분명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틀렸든지 우리가 틀렸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틀렸을 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틀린 것입니다. 무엇이 틀린 것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시늉만 냄으로써 성경대로 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본문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가 되지 않는 경우는 신자가 그리스도 밖에 있거나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뜻을 곡해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광의로 해석해선 신자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경우란 없습니다. 구원을 얻은 후로는 그분의 은총과 권능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때로 신자가 죄를 범하거나 사단의 유혹에 빠져도 주님은 당신의 때와 방법으로 당신의 품 안으로 되돌려 놓으십니다.

반면에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죄와 시험에 빠지지 않고 성실히 교회 생활을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많은 선지자를 통해 메시아를 보내어 죄와 사단과 사망의 멍에에 묶여 있는 죄인들을 구원해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정말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해서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구원 안에 들어온 신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모든 것도 아멘으로 화답하여 지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 본문의 뜻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건하게 믿고 기도했으니 당연히 예가 될 것이라고 또 되어야만 한다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말하자면 바울은 실제로 어떻게 아멘으로 화답했는지에 관해선 구체적으로 알아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기도할 때만 그리스도 안에 있지 평상시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는 모습과 바울이 따랐던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는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지만 우리는 마찬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같은데도 정말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가까스로 예가 되는 까닭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환난 중에 있었음에도 그 환난 중에 주님께 받은 위로로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성도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1:6) 또 성도들을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대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습니다.(1:12) 인간적 지혜나 욕심으로 성도들을 자기 뜻에 맞추어 조종하려고 한 적이 전혀 없으며 정말 하나님께 받은 은혜만 전해 주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 혹은 아볼로 파로 나뉘었지만 바울 자신은 자기편을 만들어 이득 혹은 명성을 얻으려는 욕심이 추호도 없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쓰지 아니”(1:13)했다고 합니다. 말로 가르친 것과 실제 삶이 다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당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먼저 보낸 편지대로 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비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계획의 변경도 단순히 자기 욕심과 편의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고 결국은 그분의 은혜를 다 같이 알고 누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담대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로서 사나 죽으나 성도들이 영적으로 유익하고 충만해지는 것만으로 자기 자랑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던 자가 새로이 구원을 받고 또 구원 받은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는 것만이 바울이 취할 성령의 열매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가 어떻게 말했습니까?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함이 없노라.”(1;17,18) 의문문을 사용해 부정의 뜻을 강조했습니다. 고린도 교인을 대할 때에 육체를 좇은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하기만 간절히 기도했고 또 자기가 전한 것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뿐이었으며 자기 역시 전한 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매사를 그렇게 경영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교회 생활 성실히 하고 또 하나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질 것을 확실히 믿고 있으니까 단순히 무엇이든 기도하면 다 이뤄지리라고 기대합니다. 바울처럼 사람이나 일을 경영할 때에 주께 대하듯이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미혹된 한 영혼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되살아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는 모습이 자신의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일을 위해서만 기도해서, 그것도 억지로 쥐어짜듯 얻어낸 응답이 자랑일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가 된다는 뜻은 절대로 단순히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말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원하는 대로 실제로 살 때에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실 만큼 우리를 사랑했던 그 사랑은 결코 철회, 가감, 수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약속이 우리에게 응하느냐 못하느냐는 당신의 사랑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너무나 지당한 이치가 아닙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변화가 없지만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리는 만무하지 않습니까? 또 부모도 사랑하는 자녀니까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대로 무조건 다 해주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런 부모라면 참 부모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자녀를 완전히 망치려고 작정하지 않는 한 그렇게 못합니다.

반면에 자녀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랄 때에는 자녀의 소원을 그것도 당신의 뜻에 맞는 일만 선별해서 들어주지 않습니까? 본문 식으로 바꿔서 표현하면, “부모의 약속은 얼마든지 부모의 뜻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자녀는 그 뜻에 맞게 순종하면 부모의 기쁨이 되느니라.” 그런데도 아이는 “나는 부모의 사랑 안에 있으니까 내가 요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예가 된다.”고 착각합니다. 분명 자녀가 부모 사랑 안에 있지만 얼마든지 예는 안 됩니다.

성경이 “그리스도 안에”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사신 삶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직 자기를 버리고 남을 살리는 삶만 살았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남을 살리는 기도를 하면 얼마든지 예가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살리는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을 때만 예가 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뜻도 여전히 신자를 세상 앞에 제사장으로 세워서 남을 살리려는 것뿐입니다. 그 일에 필요하다면 신자가 스스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상관없이 당신의 궁극적인 계획에 따라 궁핍하게도 혹은 부유하게도 하십니다.

혹시라도 아무리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약속을 믿고 기도했는데도 잘 응답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이나, 정성이나, 열심의 부족을 점검해보기 보다는 지금 기도하는 내용이 남을 살리려는 것에 초점이 있는지부터, 그것도 자기가 죽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0/5/2007

 

 

출처: 박신의 말씀을 나누며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마음으로 참아내기

사람들에게서
어떤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때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계속 궁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 평가를
자신에게 유익한 약으로 삼고
오히려 겸허하게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뒤에는 자신에게 득이 따른다는
것을 꼭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씀바귀를 먹을 수 있어야
그 후에 오는 단맛도 알지요.

꼭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평소에 가까운 이가 외면할 때
마음으로 느끼는 쓸쓸함은
결국 인간은 홀로라는 생각이 새롭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잘해 주었던
부분들을 더 자주 되새김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는
그들이 그 동안 말없이 인내해준
나의 약점과 허물들을 기억하고
좋은 마음으로 참아낸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언제나 눈길은 온유하게
마음은 겸허하게 지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보면
내 인생도 한결 편안해질 겁니다.

ㅡ<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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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아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값진 보석보다도 더 소중한 슬기로운 아내를.
남편은 아내를 마음 든든해하지.
이런 아내는 재산을 잘 지키고 더욱더 불어나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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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그리움으로)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남편이 아무런 걱정 근심도
하지 않도록 마음 편하게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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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속여인)

양털과 베오라기를 모아서는 손을 놀려 열심히 일을 하지.
무역상들이 타고 다니는 상선처럼 멀리서도 먹을 것을 잘도 구해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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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꽃길 밤에는꿈길)

아직 날이 새지 않았는데도 아침밥을 지으면서
하녀들에게 이런저런 일을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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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자락)  

밭뙈기를 한 뼘 사더라도 이리저리 잘 살펴본 뒤 사고
자기가 번 돈으로 포도밭을 가꾼다.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걷어붙인 두 팔 힘차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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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땀 흘려 일해야 무엇이든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 잘 알아
밤늦게까지도 불이 꺼지는 일이 없다.
두 손은 물레질하는 데 바쁘고 물레틀에서 손이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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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의 초대)

빈민들을 돌보는 데 손이 크고 영세민들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눈이 와도 서리가 내려도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으니,
식구들 입을 옷을 일찌감치 장만해 놓은 까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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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 인상)

곱디고운 이부자리를 만들어 놓지.
베와 자줏빛 털실로 옷을 지어 입는 솜씨도 놀랍지.
아내 덕분에 남편은 성문 마을회관에서 마을 장로들과 함께
같은 자리에 앉아 마을 일을 볼 만큼 사람들의 존경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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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공간)

손수 옷을 짜고 허리에 두르는 띠를 만들어
베니게 상인들에게 넘긴다.
유복하고 명망이 높은 이 부인은 자신에 차 있어
무엇 하나 걱정하는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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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그리는 노래)

어찌나 슬기로운지 하는 말마다 지혜로운 말을 하고,
따뜻한 말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며
사람들을 잘 이끌어 주지.
그토록 집안 일을 잘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게으름 피우는 것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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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그리는 노래)

아이들도 `엄마 최고' 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남편도 아내를 아낌없이 칭찬하지.
'훌륭한 아낙들도 수없이 많지만 그대같이 대단한 아내를
정말 어디서 만날 수 있겠소' 하고 서슴없이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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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의 대화)

우아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다 쓸데없는 것. 다 부질없는 것.
오직 여호와 무서운 줄을 알아 그분을 모시고 사는 여인,
그런 아내는 두고두고 칭송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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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시간)

그 여인이 손수 일한 것은 반드시 그 여인의 손에 되돌려 주어라!
아내가 집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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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여인)

성문 위 마을회관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보고 있는 데서
그 여인이 한 일을 큰소리로 칭송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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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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