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올해 들어서 두 번째로 큰

수퍼 문(Super Moon)이 떠올랐습니다.

 

달의 크기는

언제나 동일하지만

달이 지구 가까이에 왔을 때

 

바로 그 때,

보름달이 뜨면

달이 상대적으로 크게 보입니다.

 

그럴 경우에 사람들은

그 달을 수퍼 문이라고 부릅니다.



 

수퍼문이 생기는 이유는

달이 타원형 궤도로 지구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입니다.

 

달이 타원 궤도로

지구를 공전할 경우

지구에 가장 근접할 때가 생깁니다.

 

그 때가

보름달이 뜨는 날과 일치하면

그 달은 바로 수퍼 문이 되는 것이죠.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그럼 보름달은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질까요?

이 문제를 정확히 맞추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별이나 하늘을

잘 관측하지 않는 사람은

이 쉽고도 간단해 보이는 문제를 헷갈려합니다.

 

보름달은 해와 같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그렇다면

보름달이 떠는 위치는

1년 내내 같을까요, 다를까요?

 

이것도

별 볼일이 없거나

달 볼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아리송한 문제처럼 보입니다.



보름달은

계절마다, 매달마다

떠오르는 위치가 각각 다릅니다.



여름에는

정동쪽의 오른쪽에서 떠오르지만

겨울에는 정동쪽의 왼쪽에서 떠오릅니다.



이론상으로는

춘분과 추분이 보름달과 겹친다면

달은 정동쪽에서 떠서 정서쪽으로 집니다.


 

보름달이

한 달에 한 번 밖에 뜨지 않으므로

 

9월에 추석이 있을 경우

보름달은 비교적 정동쪽에서 뜨게 됩니다.



 

그럼 왜 보름달이 동쪽에서 뜰까요?

이 문제를 알려면 언제 보름달이 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보름달을 포함한

모든 달이 빛을 내는 이유는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은 지구의 빛이

달에 반사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믐달이 어두운 이유는

태양과 지구와 달의 위치가 90도가 되어서

지구가 달에 빛을 거의 반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름달이 밝은 이유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을

달에 완전히 반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태양과 지구와 달의 위치가 일직선이 되어야 하는데

 

보름달이 뜰 때,

 태양, 지구, 달의 순서가

일직선인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위의 이론에 입각하여

보름달은 계절을 막론하고

해가 지는 반대 방향에서 떠오르며,

대부분 해가 짐과 동시에 보름달이 떠오르게 됩니다.


 

보름달을 촬영하는 사진작가에게

수퍼문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달을 촬영할 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렌즈로 촬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수퍼 문이라도

200mm로 촬영하면 달이 작아 보이지만

 

보통 크기의 보름달이라 할지라도

600mm로 촬영하면 훨씬 더 커보이기 때문에

보름달의 크기보다 어떤 렌즈를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입니다.


 

LA 지역에서

보름달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는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있는 촬영장소는

롱비치와 그리피스 팍일 것입니다.




그리피스 팍(Grifffith Park)의 야경...




 

사진과 글 : 주안(POWER 21)


오늘은 천주교가 어떤 꼼수를 가지고 기독교에 침투하였는지에

김정한

오늘은 천주교가 어떤 꼼수를 가지고 기독교에 침투하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길 하겠다.

지난번 wcc가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을 치유하고 예수님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wcc가 태동된 것까지를 말했다. 그러면서 wcc 헌장 1조가 허술한 점을 말하면서 이것이 wcc총회가 거듭해가면서 이를 명쾌하게 보완하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를 통합하겠다는 배도의 세력인 카토릭에게 틈을 내 준 것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아예 천주교와 신앙직제를 하나로 하겠다 고 하는데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카토릭에 의해서 wcc가 태동되었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서 천주교의 제수이트와 기독교 안에 프리메이슨 세력의 합작이라고 하기도 한다. 필자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적어 뭐라고 단정 짓지는 못하겠으나 정황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이야긴 핵심적인 것이 아니기에 넘어가겠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한 wcc는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지는 않았다. 복음주의 연맹인(wea) 로잔선교선언문과는 달리 사회 현상에 대한 치유를(이것을 영혼 구원과는 달리 사회 구원이라고 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여 교회가 나선 것은 당연하고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여기서 잠깐~.  필자는 통합의 정신인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자라고 여러 번 언급하였음에도 필자를 혹자는 교리맹신 혹은 wcc를 파괴하려는 자로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필자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필자의 소망은 한국교회가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wcc(ncck)는 금기 선을 넘어서 버렸기에 이것을 알리기 위해 이를 쓰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로마카톨릭은 1962-1965년 무려 3년에 걸쳐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여 그간의 신앙과 모든 것을 정리하고 로마카톨릭 신앙을 선포하였다. 혹자는 이를 평가하길 그간 폐쇄적이었던 것을 버리고 기독교를 형제 교회로 인정하였다 하여 이를 ‘천주교의 대 개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선언문이야말로 마지막 날에 나타날 배도의 길을 선언하고 종교통합의 야망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한 분들에게 공감하고 있다.

저 같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자에게는 선언문 전체를 분석하는 것은 너무 방대한 분량이고 또 알 필요도 없는 것들이니까 우리 기독교와 특히, wcc와의 관계의 것만 다루기로 하겠다.


이렇게 종교통합의 길을 선포하고 드디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교황이란 자들이, 중요 위치에 있는 자들이 그 나팔을 불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그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는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wcc 3차부터 이들 카톨릭의 전위부대가 입성을 하여   타종교들도 세계에 빛을 비추고 있다. - 종교다원, 혼합주의 신앙을 시도하여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다가 4차 웁살라 대회부터 아예 “다른 종교”를 “다른 신앙들”이라 부르기 시작 1971년부터 회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회의 지지 – 세계 종교통합 시도 이때부터 “다른 신앙들”을 “살아있는 신앙들”로 부르기 시작 – 종교다원주의 가 wcc의 문서에 등장하였다.

5차 wcc 나이로비총회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오직 예수가 아닌 다른 타종교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모든 종교인들은 하나님 자녀이며, 형제, 자매다. 라고 말하며 타종교인은 개종의 대상이 아니며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동료 영적 순례자다. - 종교다원주의, 선교무용론 등이 다루어졌다.

6차 밴쿠버 총회에서는 종교간 대화 프로그램 의장 뮬더는 캐나다 원주민에 관한 인터뷰에서
불교, 힌두교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어도 구원 얻었다고 강력 주장하였고,

7차 호주 캔버라 총회에서 그 유명한 정현경 “초혼제”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통합측 총회에서는 이것을 一過性  해프닝으로 치부하여 버렸다. 세계 모든 무속 미신종교에서 역사하는 영을 성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과 동일시하여 버렸다.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이것을 보면 로마카토릭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wcc의 맹점을 파고들었는지를 알 것이다. 아니 로마카톨릭과 親人士 였던 ‘빌리그래함’ 이나 ‘로버트 슐러’ 등을 보면 배도의 어떤 거대한 세력이 있어 wcc를 숙주삼고 세계 종교통합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항간의 말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다음번에는 바티칸 선언과 교리성의 문안을 살펴보면서 천주교와 신앙직제 협의회를 구성하는데 동의한 천주교의 의도와  우리 통합측이 바라는 것과는 天壤之差가 나는 것을 이야기 하겠다.

그리고 이곳에 어떤 분이 우리교단의 이00, 박00 신학자들을 과소평가한다고 필자를 공박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이야기를 그 다음에 해보려고 한다.


내가 왜 천주교와 일치를 그토록 반대하는가?

김정한


천주교와 WCC에 속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단게시판에 올린 글 여기에도 올립니다.

내가 왜 천주교와 일치에 반대하는가?

필자가 이곳 게시판에 글 올리기를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 였다.(통합측 게시판을 말함) 그 때부터 WCC부산 유치에 우리 교단이 주도한 것을 보고 WCC의 독소조항이 擴大一路에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혹자는 필자에게 우리교단 정책이 에큐... 이고 그 정책을 총회에서 일관되어 추진하여 오고 있는데 이제 와서 公論化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분도 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헛수고라고 말하고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통합 측에 危害를 끼치는 不純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일이 현재 이곳 게시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천주교가 우리 기독교에 대해 일치를 내세우는 의도를 안다면 WCC 핵심이 천주교의 배도적인 일치에 물든 것임을 알 것이고, NCCK의 주요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WCC의 일치운동(에큐메니칼)의 역사를 보면
세계 1-2차 전쟁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인들이 갈등의 골이 깊고 심각한 전쟁 상처를 입은 것을 교회가 이를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자는 것에 뜻을 같이한 교회들이 1948년 암스텔담에서 시작하였다.

이때에 스탈린주의(공산주의)의 나라 교회를 받아들인 것을 가지고 미국교회가 극력 반대하였으나 예수 안에서 ‘하나’ 라고 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갖는 방향에서 이를 수용하였다. 이때 한국교회가 WCC를 수용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합동과 통합이 갈리는데 명분을 제공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통합측은 그 뒤 WCC의 에큐... 정신을 인정하였고 계속하여 WCC참여하게 되었고, 한국교회 8개 교단이 참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필자는 에큐...정신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독소의 소지가 있는 것을 틈타고 들어온 저 배도의 세력 천주교의 치명적인 독소를 수용하여 변질된 것을 알리고 하루 빨리, 한국교회, 특히 우리교단이 이를 저지하며 세계 교회(WCC)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기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며 이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천주교와 일치는 안 된다고 나선 것이다.  


WCC의 독소의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WCC의 헌장 1조부터 이다.  헌장 1조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구주로 고백하는 기본 믿음을 나누는 모든 교회는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고백을 하는 WCC가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교단 총회가 당신만 못한 사람들이 모였는가? 통합 측 신학자들을 우습게 보는가? 라고 하며 필자를 공격한다. 필자는 그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처음부터 에규... 운동을 해야 한다는 當爲性 때문에 헌장 1조의 치명적인 독소가 들어있는 문안임에도 이를 간과(看過) 해 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 구조를 보라.  대한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것에 대한 下位 법에 구체적으로 그 법 조항을 명기하여 구체적으로 뒷바침되어야 하듯이 WCC의 헌장도 마찬가지여야 하는데, WCC는 헌장 1조부터 다원주의가 들어올 소지를 주었다. 또  북한을 보라 그들 역시 헌법을 가지고 있다.   제1조 우리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 下位 法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서문(일부 발췌) 에는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김정일헌법이다“ 라고 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헌법정신은 그 구체적인 하위 법까지가 구체적으로 입법되어져야한다는 뜻이다.

자 그럼 WCC의 헌장 일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구주로 고백하는 기본 믿음을 나누는 모든 교회는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가 1조부터 문제가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아보자

바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기본 믿음부터가 잘못되었다. 우리 개혁주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과 동시 사람이지만 유일한( THE ONE= ONLY) 구세주라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라고 고백하지 않고 구주라고 말하면 ‘다른 구원자’가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줄 수 있는 것이란 이야기다. 다원주의자들에게는 대문을 활짝 열어 논 것이란 이야기다. (성경은 요 14:6. 행 4:12 롬 5장을 통하여 예수님이 왜 유일한 구세주인가를 말하여 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WCC가 10차까지 오면서 이 헌장 1조를 명쾌하게 보완하지 않고 공산주의와 천주교가 들어올 빌미를 제공하였기에 잘못되고 있고 위험천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라는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곳에 어떤 이는 이 구원을 성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영생(조에로서)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에서 쓰는 구원이란 것 내세워 기독교 핵심의 구원진리까지를 희석시키려는 분도 있고, 다른 종교인들을 ‘윤회의 과정’을 통해서 구원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볼 때 그러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자를 “교리에 맹목적 목사”라고 하는 것을 보고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쓴다. 다음번에는 천주교가 어떻게 WCC의 헌장 1조를 파고들었는지 그 것에 대한 것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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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1)

 

 



 


 

 

 

도시에 나왔던 인디언 추장이

가든파티가 열리는 저택에 들어가

"물과 음식을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호소했으나 주인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얼마 후 이 주인은 사냥을 나갔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기진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우연히 이를 발견한 인디언 추장이 자기집에

주인을 데려가 치료해 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기운을 회복한 주인에게 추장은

"이제야 원수를 갚게 되었소"   

라고 말했다

뼛속으로 스며드


-옮긴 글
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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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911 테러로 무너진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지는 One World Trade Center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동북아 무역센터와 장차 세계정부의 세무서가 될 것으로 보이는 전 세계 탄소세를 관리하는 유엔의 녹색 기후 기금(GCF, Gree Climate Fund)이 위치한 송도 신도시의 한 주상 복합 아파트의 조경 모습이다.

 호루스의 눈과 이집트의 신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의 모양이 새겨진 오벨리스크가 두 기둥 사이에 세워져 있고,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분수에는 바포멧처럼 뿔이 달린 태양신이 물을 뿜어내고 있다.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두 기둥(야긴과 보아스) 사이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에는 호루스의 눈과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한쪽에는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분수에서 바포멧처럼 뿔이 달린 태양신이 물을 뿜어내고 있다.

 

 

 

도시 곳곳에 일루미나티의 상징들이 들어서 있는 일루미나티의 계획도시 송도 신도시가 장차 NWO의 계획에 따라 전 세계가 10개의 연방으로 재편될 경우 동북아 수도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길쭉한 피라미드 혹은 태양신 숭배의 상징인 오벨리스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뉴욕의 One World Trade Center의 모습(위)과, 송도 신도시에 있는 동북아 무역 센터의 모습(아래) - 크기만 다를 뿐 그 모양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송도에는 이미 GCF(녹색기후기금)를 비롯한 많은 국제기구(UN 산하 단체)가 상주하고 있다. 인천 송도 신도시 건립과 발전 과정에 일루미나티들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정부의 세무소 역할을 하게 될 탄소세를 관리하는 녹색기후기금 GCF가 들어선 G 타워의 모습 동북아 무역센터 맞은 편에 세워져 있다.

 

일루미나티의 계획에 따라 동북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인천이 그 거점 도시(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 예레미야 -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 여신(마리아 )숭배를 교리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예수회 출신의 첫 번째 교황 프란치스코가 최근 자신의 SNS와 공개적인 강론을 통해 여신(마리아) 숭배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지난 9월 2일 교황은 자신의 SNS를 통해 “the Christian who does not feel that Mary is his or her mother is and orphan.(성모 마리아를 그들의 어머니로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고아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다음 날(9월 3일) 바티칸에서 있었던 회중들을 위한 교리 강연에서는 성도들을 낳고 양육하는 사명을 맡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낳고 기른 성모(마리아)와 비유하며, 이런 교회(성모)의 도움이 없이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관련기사>> Pope Francis: the Church is a mother who guides her children


로마 카톨릭을 여신 숭배의 종교를 바꿔 놓으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적그리스도)의 등에 올라타세상을 음행(우상숭배)으로 더럽히는 타락한 교회를 ‘음녀’라고 표현했던 구체적인 이유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예레미야 -

 

 

 


      가을 호수
                   최송연

       

      넓은 저 하늘 닮고 싶어 산이 외롭다면 산을 품고 별이 투정하면 별을 품고 돌이 날아들면 그 돌마저 품으니

      누가 가시채를 던진다 한들 되갚아 줄 리 없는 깊은 수심, 보드랍기가 천사의 치마 폭 같아라
      불어치는 모진 광풍에 할퀸 생채기 아파 눈물 흘릴 때면 달빛 내려앉아 쓰다듬어 주니 은가루를 뿌린 듯 밤 깊을 제면
      되려 더 반짝이네

      이제 곧 폭설 내려치는 무서운 겨울이 닥칠 것이나 그때도 달빛이 함께 할 것을 믿으니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으리라  


         

        **달빛 같은 주님의 은총을 힘입어 역경을 견뎌내는 성도의 삶을 그린 것임**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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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삶 / 마이클 호튼

    옛 언약의 율법과 새 언약의 율법의 차이는 주로 종말론적이다. 옛 언약의 신정체제를 지배하는 의식들과 시민법은 단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되는 십계명에 일시적으로 부가된 것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의식과 시민법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와 그에 뒤이은 쇠퇴는 결코 이 두 돌판의 영원한 타당성을 위협하지 않는다. 사도 요한은 신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는데 이는 율법의 두 번째 돌판의 요약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그리스도]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요일2:7~8). 이 명령은 그 내용의 측면에서 볼 때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도덕적인 뜻이다. 그러나 흔들릴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 속으로 끌려갔다가 그리스도의 새 창조의 생명으로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존되지 않는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타락한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위협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옛 창조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있는 새 창조에서는 가능하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이며 그러므로 "당신 안에서" 참이다. 밤은 지나가고 있고 낮은 이미 밝아 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밝은 대낮이 아니라 새벽녘이다.

    칼빈이 율법의 세 번째 용도(즉, 신자들을 인도하는 용도)를 "주된 용도"라고 부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신자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의를 떠난 모든 의에 대한 율법의 정죄를 들을 필요가 있지만 칼빈은 설교자들이 율법을 신자들의 양심을 위협하는 데 이용할 때 이를 설교자들의 직분에 관한 중대한 과오로 간주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것처럼 신자들을 다시 사망의 직분으로서의 율법 아래 두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관용"을 논하면서 칼빈은 로마서 8장15절에 나오는 "종의 영" 대 "양자의 영"에 대한 바울의 언급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자를 바울은 종의 영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이를 율법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은 후자를 양자의 영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복음에서부터 나온다. 전자는 이전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어졌으며 후자는 지금 확신을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바울은 진술한다. 바울이 확증하고자 하는 우리 구원의 확실성은 보다시피 상반되는 것들의 그와 같은 대조로부터 훨씬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그 부사로부터 또다시 우리는 바울이 여기서 율법을 복음과 비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바울은 율법에 그 자체의 성질을 할당하며 그로 인해 율법은 복음과 다르다.(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p.269.)]

    그러므로 율법 자체에는 은혜로움이 없다. 율법은 우리에게 명령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할 어떤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칼빈은 여러 곳에서 율법의 첫 번째 용도(즉, 죄인들을 그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절망하도록 몰아가는 기능)를 일차적인 용도로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칼빈은 기본적으로 "율법은 언제나 고발한다."는 루터의 격언을 되풀이한다.

    [율법은 사망만을 낳는다. 율법은 우리의 정죄를 늘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타게 한다.....하나님의 법은 우리 마음에 말하지만 우리 마음을 개혁시키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욕구, 우리의 기질과 생각이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과 반대된다면 우리는 정죄를 받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말한 대로 율법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더 비난받을 만하게 만든다....왜냐하면 복음서에서 하나님은 "너는 이 일이나 저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독생자가 너의 구속자임을 믿으라. 그의 죽음과 수난을 너의 불행에 대한 치유책으로 받아들이라. 그의 피 아래 네 자신을 내던지면 그 피가 너의 씻음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I. John Hesselink, Calvin's Concept of the Law, p.212.)]

    율법은 마치 거울처럼 단지 우리의 더러운 얼굴을 폭로할 수는 있지만 깨끗이 닦을 수는 없다. "바울은 종종 '율법'이라는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자신의 소유인 것을 요구하시고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생명의 소망도 주지 않으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장 작은 명령에 있어서라도 벗어나면 저주를 더하시는 그런 의로운 삶의 규범을 말하고자 한다. 요컨대 "율법의 생명은 인간의 사망이다." "복음의 약속들은 값없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만 의존하는 반면, 율법의 약속들은 오직 행위의 조건에만 의존한다.

    그러므로 신자도 불신자 못지않게 북음이 "교회에서 매일 반복되게" 해야 한다. 성화에 있어서도 칭의와 마찬가지로 "율법과 복음의 대조를 이해해야 하며 이 구별로부터 우리는 율법이 행위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은 오직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믿음을 가져올 것을 요구한다고 추론한다."고 칼빈은 쓰고 있다.

    그렇다면 칼빈은 어떻게 율법의 세 번째 용도가 신자들을 위한 율법의 주요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또다시 칼빈은 새 언약 아래 있는 성도의 새로운 종말론적 상황을 인식한다. 칼빈이 생각하기에 무엇보다 우선 율법은 정죄의 핵심에 있어서 신자에 대해 사법권이 전혀 없다. "율법은 이제 우리에게 요구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 엄격한 집행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우리가 노력해야 할 목표'를 가리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율법이 고발하기만 했지만 이제 율법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이제 율법에는 신자들을 권면하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신자들의 양심을 저주로 속박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섬김을 향한 길을 가리키는 능력이다. 신자는 율법의 위협이 아니라 율법의 지시에 귀를 기울인다. 실제로 워필드는 칼빈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루터의 믿음과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두려움" 보다 "아버지다운 자비심"을 루터보다 훨씬 더 강조했다고 주장하는 한 루터파 신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따라서 워필드 자신은 이렇게 결론짖는다. "한마디로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을 대단히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훨씬 강한 강조점을 둔다." 그래서 심지어 열심조차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명예를 지킨다는 의식으로 인해 고취되었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칼빈이 때때로 루터보다 더 신자의 믿음의 연약함을 강조했고 그 결과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는 명제도 더 강조했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러므로 [믿음]은 또한 한 인간을 새롭게 하고 그에게 거듭남을 주는 한편 그가 끊임없이 선을 행하지 않기가 불가능하도록 그를 새로운 삶의 태도와 방식으로 인도하는 매우 강하고 능동적이며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바쁜 것이다. 선행은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믿음에 뒤따르기 때문이다." 칼빈은 믿음과 행위의 필연적인 연관성에 대해서는 루터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겠지만 새 피조물의 자발적인 순종에 대해서는 다소 덜 확신했다. 칼빈은 신자의 지속적인 의심과 게으름을 종종 강조하며 이런 상태는 심지어 거듭난 상태에 있는 참된 신자에게도 사실이다. 순종은 믿음에서 흘러나오지만 주님의 명령에 생각과 마음과 몸이 언제나 자동적으로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선행에 필요한 감사를 낳아야 하지만 율법은 신자에게 그의 의무를 상기시킴으로써 신자의 게으름을 방해한다. 우리가 의를 구할 때 의무는 법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율법의 우렛소리가 잦아들면 하나님은 종종 자신의 자녀들을 징계하시고 그들에게 그들이 이전에 가던 길을 생각나게 하시는 데 율법을 사용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우리의 의무를 상기시키는 일 이상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오직 복음의 약속만이 우리를 감사의 순종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그는 교훈뿐만 아니라 거기에 수반되는 은혜의 약속도 붙잡으며 이 약속만이 쓴 것을 달게 만들어 준다. 만일 율법이 조르고 위협하는 것만 가지고 두려움을 통해 영혼을 괴롭게 하고 공포를 통해 영혼을 낙심시킨다면 율법보다 덜 사랑스러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다윗은 특히 자신이 율법에서 중보자를 깨달았고 그 중보자가 없으면 기쁨이나 감미로움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Calvin, Institutes, 2.7.12.)]


    마이클 호튼의 '개혁주의 조직신학'(V.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발췌, 679~682p

    출처: 생명나무 쉼터  http://blog.daum.net/7gnak/15722828

    페루, 갈대로 엮은 호수 위의 우로스 섬

    푸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를 30분 정도 가면 우로스 ( Uros )섬을 만난다. 갈대 (토토라)로 만든 섬이다. 호수에 떠있는 40여개의 섬 에는 약 35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으며 학교와 교회도 있다. 이 섬에 사람들은 우루족이라고 불리며 티티카카 (TitiCaca)호수애서 서식하는물고기, 물새등을 잡고, 밭에서 감자 등을 재배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근래에는 관광객상대로 생활하고있는 사람도 많다.

    큰곳에는 우체국, 박물관및 후지모리 대통령 시절 지은 학교도 보인다. 잉카 시대에 천민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코파카바나에서 생활을 하다가스페인 군에 쫓겨서 이곳에서 섬을 만들어 살게 되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몇 백년에 걸쳐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원시 생활형태를 유지하면서 대를 이어 갈대섬에서 살아오고 있다.







































































































    http://blog.daum.net/yunsb/7697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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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 박신 목사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시간과 재물의 특성

    순종이란 항상 수고와 희생을 요구합니다. 일상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구태여 순종하라고 명하지도 않습니다. 그 수고와 희생을 감내하기 위해서 신자들이 먼저 어떤 일을 시도합니까? 또는 시도해야만 합니까?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수고와 희생이 가장 적은 일부터 순종하거나, 자신의 소유와 여유를 늘려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게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스레 나타나는 반응은 후자입니다. 시간과 재물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교회 일에 적극 참여 봉사하겠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순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순수한 동기도 내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당장 순종할 수 있는 일부터 순종하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요? 여유가 생기면 순종하겠다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하나님에게도 좋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따겠다는 심산이 아닐까요?

    문제는 시간과 재물이 늘어날수록 스스로 체감하기는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오히려 더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탐욕이 끝이 없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재물 욕심이 많이 줄고 쾌락 추구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워집니다. 그와는 별개로 시간과 재물에 조금의 여유만 가지려 해도 현실적으로 또 다른 시간과 재물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헌금을 더 많이 하고 싶고 성도들도 근사하게 대접하고 싶고 교회 봉사나 전도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싶은 선한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재물이 갖는 바로 이 특성 때문에 여유를 가진 후 순종하겠다는 것은 물정 모르는 어리석음이나 내 것부터 챙기려는 욕심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금 상태에서 아주 작은 틈새의 여유라도 찾아내거나, 의지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결코 여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시간과 돈이란 누구에게나 무제한으로 제공되지 않고 항상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 특성상 그 둘은 쪼개고 또 쪼개면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본인의 일이 아닌 다른 이의 일을 위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내어놓으면 수고와 희생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또 자기 것을 내려면 그런 아픔과 미련이 따르니까 순종인 것입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십일조입니다. 참으로 지속적으로 온전하게 헌금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수입의 10%나 다시 빼앗아(?) 가셔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세상 만물이 전부 당신의 것이자 당신의 관할 아래에 있는데 새삼 자기 것으로 당신의 창고에 쌓아둘 이유나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십일조는 교회나 목회자나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헌금을 하는 당사자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선 올바른 물질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인 신자에게 재물이 잠시 맡겨진 것뿐입니다. 원래 소유권자인 하나님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헌금입니다. 자기가 소유한 것 전부를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힘써 온갖 수고를 했더라도 재물을 만들 능도 그분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주인 내지 힘을 주는 이가 재물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한 분이라는 고백을 실제로 구현해 보이는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또 하나님만 의지하며 근검절약하며 사는 습관을 들이라는 뜻입니다. 부족해 보이는 나머지 90%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면 그분이 의외의 지출과 재난에서 보호해주셔서 쓰고 남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가장 중요한 뜻은 다른 이를 섬기기 위해 자기 재물의 10% 정도는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작금 십일조가 단지 종교적 헌신을 측정하는 용도로 제한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결국 십일조도 현재 자기가 가진 것에서 일부를 의지적으로 떼어내는 훈련을 겸하는 것입니다. 바치면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름 없는 과부가 구차한 중에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여 예수님께 그 믿음을 칭찬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전부를 바치는 헌신만 강조하지만, 그에 앞서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서 헌금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단언컨대 시간과 재물이란 언제나 부족한 법입니다. 수치적 양이 늘어난다고 해서 선한 목적으로 활용할 여유까지 따라서 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현재 소유한 것에서 따로 떼어내지 않으면 나중이라고 따로 더 생기지 않습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정작 시간과 재물을 바쳐야할 미래의 어느 순간도 사실은, 그때까지 이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 간에, 미래가 아니고 바로 지금입니다. 모든 행위는 지금 이뤄지는 것이며 미래에 행할 행위를 미리부터 확정적으로 예단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맹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죄라고 지적했지 않습니까?

    현재 순종 못하면 미래에도 순종 못합니다. 시간과 재물에서 여유를 만들어 순종하려 들지 말고, 서두에서 지적한 대로 그리 부담 느끼지 않고 당장 순종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찾아야 합니다. 주님이 적은 일에 충성하라고 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현재의 적은 일에 순종 못하면 미래의 큰일은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신자는 미래의 큰일로 절대 부르지 않습니다. 그럼 결국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지 못하고 자기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떼만 쓰다가 신앙생활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또 종국에는 그런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얼굴로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실체가 없다.    

    당분간 시간과 재물이 늘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그런 핑계를 대자니 아무래도 쑥스러워져서 순종하지 못하는 또 다른 핑계를 댑니다. 아직 믿음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과 교리를 더 많이 배우고 기도도 열심히 한 후에 감당할 만한 믿음의 수준이 되면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신자들이 생각하는 믿음에 사실상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실체가 없는 믿음인지라 실제로는 거의 자라지 않는데도 자라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나름대로 온갖 노력을 경주해보지만 실패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또 그런 착각에 붙들려 있으니까 동일한 수고와 실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내 믿음은 왜 아직 이 모양이지라는 고백 내지 한탄을 입에 달고 다니지 않습니까?  

    실체가 없다는 것이 너무 심하게 느껴진다면 믿음의 본질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수정하겠습니다. 성경적 지식이 늘어나고 기도 금식 예배 찬양 헌금 봉사 같은 종교적 행위나 의식에 능숙해져야 믿음이 자란 것으로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성경 지식과 종교 의식에 능해지는 것은 정작 믿음과 별개로 교회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 자질 내지 의무일 뿐입니다. 믿음이 좋아지면 그런 것도 함께 능해지지만, 그런 것에 능하다고 반드시 믿음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교회 차원이 아닌 현실의 일상 삶에서 적용이 되어져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고난이 닥치면 주님의 구원을 소원하고 또 잘 이겨나가기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열심히 해놓고는 종일 염려 초조에 사로잡혀 고난을 제대로 뚫고나가지 못하면 기도한 의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라는 종교적 의식을 행한 것뿐이지 믿음으로 삶에서 승리는커녕 적용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신자들이 내 믿음이 왜 자라지 않는지 불평할 때는 사실은 삶에서 믿음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지식과 종교행위에 능해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고난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고난을 이기는 것보다 성경지식과 종교의식에 능해지는 것이 믿음이 자란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체험하는 것과 겉으로 말하는 것에 괴리가 있습니다. 평강이나 담대함으로 고난을 대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이가 알면 믿음이 적다고 탓할까 두려운 반면에, 성경 지식과 종교 의식은 시간이 지나야 자란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기에 별로 수치가 안 되기 때문은 아닐까요?  

    고난을 실제로 이겨내는 것이 믿음이 자란 증거라면 일단 온 몸으로 고난과 부딪혀 봐야 믿음이 늘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도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범람하는 요단강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선 일단 첫발을 디뎌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구체적으로 갈 바가 어디인지 또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만 믿고 갈대아는 무조건 떠나야 했습니다. 여리고 성 싸움에서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기발한 전투방법이긴 했어도 그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요단강이 갈라지지도, 가나안 땅이 정복되지도 않는 것입니다.

    흔히들 십일조를 잘 하면 믿음이 자랐다고 간주합니다. 역으로 십일조 하라고 하면 믿음이 자란 후에 하겠다고 합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평생 믿음이 자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십일조를 하라고 하면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 상태로 있겠다는 것이며 실은 믿음을 키울 의사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순종 자체의 특성이 믿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명령의 구체적 내용에 관심을 모으다 보면 대부분의 명령이 내 능력에 과분한 것이므로 거의 매번 주저하게 됩니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시간과 재물에서 순종할 여유를 찾지 않으면 영영 그럴 수 없듯이,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믿음에서 순종할 수 있는 여분을 찾아내어야만 합니다. 지금 믿음의 상태에서 일단 순종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여전히 아니, 더더욱 힘들어지게 마련입니다.

    다른 말로 명령의 내용은 제쳐두고 명령을 내리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어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분임을 확신하기에 일단 순종하고 보아야 합니다. 합력해서 선으로 이끈다는 것은 일단 순종하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놀랍고도 큰 은혜와 권능을 체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 번이라도 순종해 본 사람이 다음에도 더 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의지적으로라도 일단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기에 일단 순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믿음이 자란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 자란 표시입니다. 믿음이 자라야만 순종하겠다는 것과는 믿음에 대한 전혀 다른 차원의 해석이자 적용입니다. 성경적 지식과 종교적 의식에 능해지는 것은 믿음이 자라기 위한, 더 정확히 말해 믿음을 삶에 적용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믿음은 믿음이라는 지식일 뿐이며 실습을 통해서 그 지식을 적용하는 지혜가 늘어야만 믿음이 자란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식이 자란 것으로만 믿음이 자랐다고 오해하고 실제로 적용(순종)은 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해도 그 지혜, 참 믿음은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의 삶에서 순종하는 훈련, 체험이 없으면서 교회 생활 열심히 했다고 믿음은 절대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을 순수하게 믿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요컨대 순종이 없이는 믿음 자체가 아닌데도 믿음이 자란 후에 순종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논리라는 것입니다.  

    나만 유독 사랑하는 신자들

    물론 일단 순종해야만 믿음이 자라고, 아니 순종하는 것 자체가 믿음의 본질이라고 이해하는 신자도 꽤 있습니다. 자기 신앙에 대해 조금만 갈등해봤다면 최소한 믿음이 자란 후에 순종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오랜 교회 생활의 경험으로 터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애가 있습니다. 이야말로 온전히 순종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과, 그와 같은 열정과 세기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그 둘로 대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둘을 또 합치면 당신을 사랑하되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뜻이 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명령이 결국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귀착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신자 스스로 막상 순종해야만 하는 명령을 대하면 그 궁극적인 내용이 바로 그것임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신자치고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으며 어느 정도(‘어떤’보다는 이 표현이 적합할 것임) 수고와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분의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측면에선 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목숨까지는 몰라도 마음과 뜻은 다 바쳐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연약함까지 아시고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은 거의 시키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웃사랑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실상 이웃 사랑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간에 정작 자기 사랑은 왜 없느냐는 것이 신자의 뿌리 깊은 불만입니다. 이해도 안 되고 출구도 안 보이는 고난은 신자에게 허락해 놓고서, 또 기도를 아무리 해도 나아질 기미도 안 보여주면서, 대신에 수고와 희생이 잔뜩 따르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나 기회만 마련해 놓으니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일한 열정과 성의로 사랑하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 제가 숨이라도 좀 쉴 수 있어야 남을 사랑하든지 할 것 아닙니까?”라는 한탄이 절로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더러 이웃을 사랑하게 하려면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내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도 제 잘못은 아닙니다.” 결국 시간과 재물에 여유가 있으면 순종하겠다는 첫 핑계의 자리로 되돌아 왔습니다. 거의 모든 신자가 자신의 믿음이 자라지 않고 항상 그 모양인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명령에 순종치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말입니다.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없는 것은 아니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자기를 이웃보다, 때로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담의 타락 때부터 내려오는 모든 인간이 지닌 죄의 본질 즉, 자기중심성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극심한 고난의 십자가 처형 앞에 세 번이나 망설인 까닭이 무엇입니까?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세 번밖에 망설이지 않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자신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죄에 찌든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그 큰 고통을 감내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소명에 철저히 붙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십자가 이후의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성부 하나님께 의탁했던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능히 순종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이웃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뿐입니다. 엉뚱하게도 시간과 재물의 여유, 믿음의 미성숙, 기도나 말씀에 능하지 못한 것, 의지력이 약한 것, 아직 믿은 지 얼마 안 된 것, 교회에서 맡은 일이 너무 많고 바쁜 것, 현실적 지위 신분 책무 등이 비기독교적이라 상충되는 점, 현재 겪고 있는 다른 고난과 문제들, 가족이나 인간관계의 상처 등등에 이유를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처럼, 아니 그 반의반이라도 이웃의 영혼을 안타까이 여긴다면 어떤 계명에도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거룩하게 살고 또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겨봐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현실적 유익은 없다는 것이 순종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여유, 믿음, 의지 등은 부차적입니다.

    복음 안에서 소명을 붙들어라.

    그러니까 어떤 현상이 생깁니까? 하나님을 잘 믿고 잘 따르면 현실적 복락이 따른다고 가르치면 신자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기복주의나 크리스천 청부(淸富) 사상을 가르치는 교회는 자연히 크게 성장합니다. 신자들도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희생해가면서 열심히 순종합니다. 막상 하나님의 거룩한 뜻보다는 교회 일에 더 순종하지 않는지 염려가 되긴 해도 말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좋은 일입니까? 아닙니다. 누이가 좋으면 매부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인간 신자의 착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바라는 것도 그것일 것 같거나,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것도 큰 오해일 뿐입니다. 이런 주제에 혼동이 오면 무조건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와 십자가에 비추어 보면 그 답은 명확해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갈대아 우르에서 불려내실 때에도 그를 복이 통과하는 근원으로 삼으신다고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별도 보너스를 크게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직접 축복하기 보다는 그를 축복하는 다른 이를 축복하고 그를 저주하는 다른 이를 저주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날의 신자도 아브라함과 똑같은 자리에 서야만합니다. 자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불쌍한 영혼들에게 전해지는 도구로써 말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자기가 사나 죽으나 자기 몸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에게서 자신과 하나님 이 땅에서 함께 win-win 하는 모습은 발견할 수도 없었고 또 그것을 소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win 하면 자신은 어떤 모습이 되어도 좋았습니다. 죽이기로 작정이 되어서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어도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무쪼록 몇몇 사람이라도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코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했고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른 것은 일상사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로 날마다 그 속이 눌렸습니다.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주님 안에서 붙잡힌 소명을 실현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주님을 위한 자신의 수고와 희생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재물의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는 핑계는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으로 항상 불타 있었습니다. 그도 주님처럼 사탄의 노예가 되어 흑암 속에 헤매는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을 이끄는 힘이자 활력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 모든 핍박과 고난을 아무렇지 않게 담대히 이겨낸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으로 떨었던 적도 있었고 여러 번 야반도주도 했습니다. 아마 겟세마네의 주님처럼 고난과 핍박이 닥칠 때마다 그 잔을 피하고자 하는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안락과 형통을 바라기보다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심정이 훨씬 더 컸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자신을 사랑할 겨를도 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순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거기다 어쩌면 주님보다 실제적인 고통은 더 많이 겪었을 법한 그가 정말로 확고하게 믿는 바가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 체험적으로 만난 이후에 자신을 위한 영광의 면류관이 천국에 분명히 예비 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이 땅의 어떤 극심한 고통을 포함해 죽음마저 뚫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확신했습니다.

    요컨대 자신이 어떻게 되든 주님께 죽기 까지 순종하면 하나님이 천국의 상급으로 보상함을 알았습니다. 아니 그전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절대 수정, 변개, 감소, 왜곡, 파괴, 취소되지 않음도 알았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십자가 복음 안에 온전히 들어와서 자신에게 맡겨준 소명대로 그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살든지 죽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수를 외치며 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의 뜻에 쉽게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은혜와 권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시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현실적 형통과 하나님의 승리와는 절대 무관하다는 진리에 대한 확신과 적용이 온전히 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붙잡혀 살지 않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실은 이 둘이 하나입니다. 사나 죽으나 자기를 대신해서 죽으신 자를 위해서 살아야만 하는데도 자신이 사는 데에 먼저 신경을 쓴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 안에 온전히 들어왔다면 최소한 신자로써의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 소명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소명대로 살려면 믿음과 여유를 키우기보다는 복음의 능력과 은혜에 대한 확신, 정확하게는 실제 순종으로 인한 앎을 더 키워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끈질기게 자신을 옭아매는 자기중심주의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잘라내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일단 주님께 순종하면 그 모든 일도 성령의 간섭과 인도를 통해 그분께서 이루어주십니다. 한 번 순종하면 두 번 세 번의 순종은 쉽고도 아름답고 풍성한 모습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7/11/2012

     

    출처: 박신 목사님 홈페이지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Todd가 에이즈로 죽기 13일 전 찍은 간증동영상

    십년 전까지만해도캘리포니아는 겨울이면 우기라고 할만큼 비가 많이 와주어서맑은 하늘에 수목은 푸르르고...  그야말로 기후좋은 지상낙원에 버금 갔었는데수년째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이젠 희뿌연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산하를 보면 한숨만 내쉬게 되는데요.

    그에 비해 워싱턴과 오레곤주는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있는데다  하얀 눈으로 덮힌 산 아래에 파릇한 초목이 우거져선 그야말로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있어 부러울 지경이더군요.

    특히 오레곤과 워싱턴 경계를 가르는 컬럼비아강을 따라서 80 마일간 펼쳐진 Columbia River Gorge National Scenic Route는 강과 산, 협곡과 숲, 그리고 폭포로 이루어지는 절경에 운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곤하는데요.

    군데군데 비스타 포인트나 크라운 포인트등 뷰 포인트가 있어 차를 세우고 감상하기도 좋습니다.

    (참고로 컬럼비아강은 캐나다 록키산맥에서 시작해, 워싱턴州와 오레건州의 경계를 지나태평양으로 흘러가는 총길이 1250마일(2천여km)에 달하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강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 많은 폭포중에서도 으뜸인 멀트노마 폭포(Multnomah Falls)를 감상하시겠는데요.Portland에서 약 30마일 동쪽, 콜로라도 강변 National Scenic Area 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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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트노마 폭포의 총체적인 View입니다.

    오레곤주에서 가장 높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이 폭포는 저 꼭대기에서부터 막힘없이 542 ft를 낙하한 후 약 3 ft를 흐르다가 다시 69 ft를 낙하하는 총높이 620 ft의 계단폭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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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bia River Gorge National Scenic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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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싸인에서도 볼수 있듯이 폭포뿐만 아니라 수목이아름다운 주변경관으로도 유명한 곳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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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일이 잘 닦여져 있고 피크닉등의 제반 시설이 잘 되있어 년간 이백만명 이상의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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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트노마 폭포앞의 전경.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어 접근성도 용이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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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ltnomah Falls Lodge

    이 Lodge는 1925년에 A.E.Doyle에 의해 지어진, 유서깊은석조건물로 레스토랑,기념품샵, 비지터 센터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국립유적지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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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가까이에 있는 와키나 폭포(Wahkeenah falls) 입구. 주변경관이 아름다운 또 하나의 폭포인데 멀트노마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비해선 시선을 끌지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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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트노마폭포는 빙하가 녹으면서 내려오는 물줄기로 라치산에서 솟는 물이 수원을 이루며 산에 쌓인 눈과 빗물이 합치면 유수량이 늘어 더욱 장관을 이루는데 봄에 수량이 많고 9월 하순경이면 수량이 가장 적어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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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포 중간에 걸쳐 있는 Benson Foot Bridge(벤슨 인도교)

    폭포앞으로 보이는 양쪽 언덕을 이어주는, 이 105ft 높이에 45 ft(14 m)길이의 다리가 아주 인상적인데 1914년에 통나무 다리를 대신해서 이탈리안 석공들(Italian Stonemasons)에 의해 만들어졌답니다.

    믿기 힘들게도, 이 엄청난 폭포가 한 때는 개인 소유였다는데 포틀랜드의 사업가였던 Simon Benson이그 소유주였습니다.

    그가 죽은 후,이 폭포와 함께 근처의 땅과 와키나 폭포(Wahkeenah falls)등이 포틀랜드시에 기증 되었고 그 후 그의 이름을 따서 밴슨 인도교로 명명되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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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두어번의 안전사고가 있었슴에도 수많은 이들이 폭포뒤 트레일을 따라 이 다리위에 올라서 사진촬영등을 하느라 줄을 잇는다는데 저는 아쉽게도 올라가보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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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는 이끼나무등 수목이 울창하고 물줄기 시워스레 뻗어내리는 이 곳에서 하루만 보내도지친 심신에 자연치유가 될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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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오레곤주의 명물, 멀트노마 폭포에서...


    글, 이미지, 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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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하는 군병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만일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자격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면 우린 “만고 땡” 아무 할 일이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죄에 순종하지 말고 의에 순종하라,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순종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너희 꼴이 어떻든, 자격이 어떻든, 능력이 어떻든, 오합지졸이든, 설사 절름발이요, 소경이라 할지라도 군대의 소속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네가 누구의 명령을 듣는 군병이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 13절을 봅시다.
    “죄가 너의 몸에 왕 노릇하지 못 하게 하라, 너의 몸을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라,”
    이것은 새로운 사령관의 명령입니다. “네 소속을 분명히 하라, 너의 사령관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 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너의 사령관이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 은혜 사령관 아래에 소속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15절: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안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세례를 받아, 홍해를 건너, 하나님의 군대, 천국을 향해 가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제 죄 사령관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의 사령관이신 은혜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달콤하고 추악하고 교활하고 무서운 죄 사령관에게 굴복하고  속아서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사령관 은혜 사령관에게 진짜 진심으로 스스로 자진하여 마음을 다 하여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리고 다음절, 16절부터 순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홍해를 건너와서도 애굽의 지시를 받고 육신을 통해 전달되는 죄의 명령에 따른다면 당신은 겉으로만 하나님의 군대이지 실상은 죄 군대 소속입니다.
    하나님의 군대 안에 속한 스파이입니다. 가짜입니다. 사형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믿고 지금 당장 변화하여 천사같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이 흰 눈 같이 거룩하고 성자같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애굽 노예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예수 믿고 세례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적 죄성과 습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나 하나님은 단 한 가지, “너의 소속이 어디냐? 네가 누구에게 순종하느냐?”, 이 한 가지를 물으십니다.

    이 세상의 온갖 고난과 유혹 속에 살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 어려운 줄은 압니다. 그러나 순종하십시오.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더러운 이익이나 부정한 방법이나 추악한 속임수에 순종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돼지를 먹이로 이끌어내어 하나님의 군대로부터 이탈하게 하려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하달되는 죄의 명령에 순종하면, 눈 딱 감고 한 번만 불의를 저지르면 선악과의 달콤한 열매가 주어지고, 돌덩이가 떡덩이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탈영하는 길이요 죽음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단호하게 죄의 유혹을 물리치면 고통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군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군병들이 적장이 내미는 달콤한 유혹의 미끼를 물고 낚여 갑니다.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께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과 만물이 그 발 아래 엎드리는 영광과 권세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없겠습니까?
    순종하는 자에게, 승리한 군병에게 놀라운 축복과 예비하심이 왜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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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

    비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입니다.

     

    1년에 한 두 번 가는 여행이라

    모처럼 계획을 세우고 현지에 도착했는데

     

    여행지에서 비가 주룩 주룩 내려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한다면 무척 아쉽겠죠?

     

    비는 또한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에게도

    그리 달갑지 않은 불청객입니다.

     

    일출을 촬영하려고

    잔뜩 기대하고 먼 길을 달려갔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분명 낭패일 것입니다.

     

    하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비 때문에 기대한 경치를 볼 수 없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멋진 운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그런 운무를 촬영하기 위해서

    일부러 비오는 날을 택하여 촬영하러 가기도 합니다.

     

    혹시 자이언 캐년의 운무를 보셨나요?

    비오는, 혹은 비온 후의 자이언 캐년의 모습은 어떨까요?



    21194930_1.jpg

    자이언 캐년은

    여름에 몬순 기후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여름에 소나기나

    국지성 호우가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난 후에

    거대한 산군과 암벽에는

    구름이 걷히면서 운무를 형성합니다.


    21194930_2.jpg

    때로는 비가 오면서

    자이언 캐년에 운무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구름이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장관입니다.


    21194930_3.jpg

    워치맨 타워에 걸린 구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21194930_4.jpg

    Towers of the Virgin 의 모습입니다.

    가장 우측에 구름에 덮인 바위가 Altar of Sacrifice,

     

    왼쪽에 구름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바위가 West Temple입니다.


    21194930_5.jpg

    구름이 좀 더 걷힐 때가지

    기다렸다가 촬영한 Towers of the Virgin의 모습입니다.


    21194930_6.jpg

    West Temple의 웅장한 모습입니다.

    웨스트 템플은 Zion 캐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죠.

     

    높이는 7,810ft(2,380m)로서

     한라산보다 높습니다.


    21194930_7.jpg

    운무에 쌓인 부분을 줌으로 당겨 보았습니다.


    21194930_8.jpg

    자이언 캐년은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운무에 둘러쌓인 거벽은

    경외감을 불러 일으킬 정도입니다.


    21194930_9.jpg

    자이언 캐년에서

    물이 흐르는 폭포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21194930_10.jpg

    그 이유는

    대부분의 폭포가

    비가 내릴 때만 흐르는

    마른 폭포(dry fall)이기 때문입니다.


    21194930_11.jpg

    때문에

    자이언 캐년에서

    물이 흐르는 폭포를 본다는 것은

    행운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만약 자이언 캐년의 폭포들이

    지속적으로 물이 흐른다면 자이언 캐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한 국립공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21200129_12.jpg

     

    9번 도로의 일부인

    Zion – Mt. Carmel Highway로 올라가면서 바라 본 터널 쪽의 모습....



    21200129_13.jpg

     

    전망대 부근에서 바라 본 반대편의 모습...

    산 전체가 온통 구름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21201249_14.jpg

     

    암벽과 바위에

    구름이 걸린 모습이 마치

    동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



    21201249_15.jpg

    마치 설악산이 연상되는 모습입니다.


    21201249_16.jpg


    위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은

    마치 중국의 황산이 연상되는군요.


    21202005_1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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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무에 쌓인 나무의 모습이

    동양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21203534_20.jpg

    캐년 정션에서 바라 본

    버진 리버와 워치먄 타워의 모습입니다.


    21203534_21.jpg

     

    사진과 글 : 주안(POWER 21)

     

    Ma Xiaohui - M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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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없다”
    개혁신학포럼, ‘교황 방한과 가톨릭교회’ 주제 좌담회②

     

     

     

     

    개혁신학포럼(대표 김향주 박사) 주최 ’교황 방한과 가톨릭교회를 논한다’는 주제로 좌담회가 최근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 2층 민들레영토 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좌담회는 기독교사상연구원(원장 최덕성 박사)과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원장 서창원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등이 함께했다.
    좌담회는 사회자 최더함 박사(아리엘교회)가 던진 질문을 서창원 박사(총신대 교수)와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가 따로 또는 같이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Q4. 개신교에 대한 염증? 지도자들의 책임?
    (지난주에 이어서)
    서 박사는 “일반 시민들에 있어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보이는 장점은, 교황을 필두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라며 “반면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가장 잘 부각시켜야 할 개신교회는 교황 대신 ‘담임목사 교회’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교회의 보편성을 훼손시켰다”고 했다. 그는 “이 기회를 통해 우리 개신교회가 그리스도의 수장권을 확실히 드러내고 교회의 보편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교황의 방문을 통해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을 다시 부각시킨다면, 개신교회에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 박사는 “종교개혁의 선배들은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없다’고 했고, 그 진리를 위해 투쟁하고 말씀대로 살려 노력한 모습들이 신앙고백서들에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Q5. 가톨릭 교리의 문제점은?
    가톨릭교회의 교리적 문제점들도 언급했다. 서창원 박사는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수장권 자체를 부정하는 집단이라는 측면에서 ‘교회의 보편성’을 상실한, 간단히 말해 ‘주님의 교회’가 아닌 ‘교황 교회’”라며 “종합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우상숭배 집단’”이라고 했다. 서 박사는 “물론 가톨릭은 마리아 숭배 사상의 경우 ‘마리아에게 청원하고 기도할 뿐, 그를 숭배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마리아나 다른 성인들을 통해야 하는가”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 누구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됨을 부정하는 처사로, 교황과 교회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있는 모습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교황 교회’”라고 했다.
    또 외경을 둔 점, 십계명에서 우상숭배를 금하는 ‘제2계명’을 빼 버린 점 등을 꼬집으면서 “가톨릭은 ‘개신교의 주장을 다 믿고, 우리는 더 믿는다’는 입장이지만, 성경은 기록된 말씀에서 더하지도 빼지도 말라고 하셨다”며 “주님 말씀에서 더 첨가하거나 본인들에게 유익하지 못하면 빼는 모습은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덕성 박사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다원주의를 추종하는 진보 개신교를 제외한 ‘역사적 개신교회’의 교리 간 차이가,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켜 인정할 정도인가 아니면 순교의 각오로 거부하고 투쟁할 정도인가”라며 “그 차이는 후자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학자라면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영적 작업에 답을 줘야 한다”며 “이에 입을 닫고 가만히 있는 것은 직무태만이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고 했다.
    최 박사는 또 “가톨릭 구원론의 결론은 ‘예수 없이도 구원 받는다’, 즉 예수를 꼭 믿어야 할 당위성을 제공하지 않는 만인보편구원주의”라고 했다. 
    서 박사는 “이를 반박하는 가톨릭 신부의 글을 읽었는데,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 은혜를 붙들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드릴 때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 일어나는 미사(Mass)도, 그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파손시키고 우리 자신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Q6. 가톨릭과 개신교는 하나 될 수 있는가?
    ‘가톨릭 내에도 개신교처럼 교파가 있는가? 신학은 같은가?’ 하는 질문에 최덕성 박사는 “교파보다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나 예수회 등 단(order)이 있는데, 모두 교황의 통제 아래 있다”며 “신학이나 생각이 모두 같지 않아도, 교황이 거부하면 수용되지 않는 것이 가톨릭의 현실”이라고 했다.
    서창원 박사는 “개신교 내에 너무 탈신학화 또는 비성경적 가르침이 많이 침투한 모습 때문에, 가톨릭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며 “조폐공사에서 위조지폐를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위조지폐의 특성을 말하는 대신 진짜 지폐의 특성만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종교개혁의 소중한 유산들을 되찾고 성경의 가르침만을 분명하게 증거하다 보면, 성도들이 가톨릭의 허구성과 거짓된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분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덕성 박사는 ‘교황무오(류)설’에 대해 “역사는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인 동시에 교회의 실패의 역사로, 수많은 교황들이 잘못을 저질러 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래서 2000년,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2천년간 저지른 범죄를 참회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것만 봐도 교황은 결코 무오할 수 없다”고 했다.
    최 박사는 “그런데도 교황이라는 신성불가침 영역을 만들어 놓고, 교회나 공의회가 동의를 구할 필요조차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러한 교리를 포기함으로써 복음적 개신교회와 일치할 생각이 없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로마가톨릭이 그 심대한 여러 교리들을 포기하고, 역사적 근거나 합리적 설명이 되지 않는 모든 부분들을 포기하며, 성경적 고백과 교리들을 받아들인다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서 박사는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받았다.

    Q7. 로마가톨릭교회와 대화를 해야 하는가?
    최덕성 박사는 “선교 접촉점도 얻고 공동선을 함께하는 차원에서, 가톨릭은 물론 타종교와도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통일 문제, 기아 구호 문제 등은 종교인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할 수 있다”며 “그러나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자꾸 대화하다 보면 비슷해지고 저항력을 상실하며 진리가 무엇인지 희석되고 퇴색되는 면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서창원 박사는 “가톨릭이 계속해서 대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것일 뿐, 결코 개신교회에게 맞추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했다. 최 박사도 “그들과의 대화에 있어 종착역은 교황좌 밑으로 개신교가 귀정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서 박사는 “가톨릭 내에도 ‘교회’의 모습이 남아있지만, 핵심 진리에서 많이 이탈돼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서 종교개혁자 존 녹스는 가톨릭을 ‘바벨론의 창녀이자 적그리스도’로, 미사를 ‘사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으로 표현했다. 핵심적 겉모습만 비슷하고 내용이 싹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덕성 박사는 “저는 이 기회에 한국교회 교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 나라 운동은 떠들고 과시하고 조직체나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등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고, 밀가루 서 말 속에 있는 ‘누룩’처럼 소리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열어 보면 ‘이것이 복음이구나’ 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하나님 나라는 그런 방법으로 왕성하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교황 방한에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이 여러분이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 생명의 하나님과 만나고 있는지, 그 복음에 자신의 삶을 바칠 신앙적 각오를 하고 있는지 다짐하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끝

    △ 교황이 한국에 오기 이틀 전 좌담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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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9월 3일 오전 1시 23분경 용인시 영동고속도로 신갈분기점 부근(인천 방향 43㎞ 지점)에서 대구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5인조 걸 그룹 레이디스코드가 탄 승합차가 갓길 방호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나 멤버 중 한 명인 은비 양이 숨지고, 권리세 양이 중태에 빠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고 직후 “자동차의 뒷바퀴가 빠지면서 사고가 났다.”는 기획사의 발표가 나오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데, “아무리 차량 정비를 소홀히 했다고 하더라도 멀쩡한 차량 뒷바퀴가 빠질 수 있느냐?”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레이디스코드 은비 사망, 사고차량 스타렉스···바퀴빠짐 진실은”, (경향 비즈 N 라이프).

     

    사고 다음 날인 4일 레이디스코드 소속사 측 관계자는 레이디스코드의 차량은 사고 당일 처음으로 운행됐던 차로 기존 매니지먼트 차량에 문제가 생겨 렌트카 업체로부터 새로운 차량을 교체 받아 처음으로 운행하던 중 사고가 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사고차량의 운전자 박모씨는 초보 면허 보유자나 신입직원이 아닌 경력직 매니저로 박모씨가 매니저로 활동한 동안 사고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사고로 보기엔 미심적은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사원문>> “레이디스코드 사고차량, 교체 후 사고 당일 첫 운행”, (텐 아시아)

     


    뒷바퀴가 빠져 있는 사고 차량의 모습

     


    아래는 작년(2013년) 8월 6일 레이디스 코드가 발표한 Hate You라는 뮤직 비디오이다. 노골적인 일루미나티의 상징들과 Mk Ultra Project의 상징들, 그리고 인신제사를 연상시키는 장면들로 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케이팝 뮤비 가운데 가장 노골적이고도 하드코어적인 일루미나티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뮤비는 The Vigilant Citizen이라고 하는 일루미나티 문화를 폭로하는 유명한 외국 사이트에 소개될 만큼 주목을 끌었었다.


    관련글>> “A-JAX and Ladies’ Code: Two Blatant Examples of Mind Control Culture in K-Pop”, (The Vigilant Citizen).

     

     

     

     

     

     

    이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엔  5 명의 멤버들을 상징하는 듯한 5 개의 인형들이 바포멧 앞에 인신제사로 바쳐진 것처럼 케익 속에 엉켜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1년 전 만들어진 이 뮤직 비디오가 1년 만에 발생한 오늘의 안타까운 사고를 예견(Prediction)한 것인가?  대한민국 안에서 일루미나티의 세력들이 벌써 이렇게 노골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어느 사람의 댓글처럼 이번 사건이 일루미나티와 연계되어 있는 우리나라 소속사와 연예인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 기획된 일종의 경고인가?  

     

     

    관련글>> 레이디스 코드의 Hate You와 Mk Ultra Project

     

     




    전시안

     



    Mk Ultra Project


    일루미나티(프리메이슨)의 노예(puppet)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

     

     

    바포멧 앞에 놓여진 케이크


    5 멤버들을 상징하는 5 개의 인형들이 바포멧에게 바쳐진 제물처럼(사고난 차량 안에서 뒤엉킨 모습처럼) 놓여있다. 

     

    사고 직전 대구에서 가진 마지막 공연에서 멤버들이 흰색과 검은색으로 꾸며진 무대에서 흰색과 검은색(분홍색과 흰색)으로 매치된 옷을 입고 있다.

     

     

     

     

      

     

    - 예레미야 -

     

     


    안진섭 목사-설교 표절, 무엇이 문제인가?


    안진섭 목사(기침, 새누리2교회), 한목협 열린마당 발제문

    Sermon의 라틴어 어원 sermo, 혹은 sermonis는 고대 로마의 웅변가들의 웅변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단순히 ‘연설’(speech)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단어에 세례를 주어 전혀 새로운 의미로 옷 입혔다. 성경이 결코 단순한 책일 수 없듯이 설교도 단순한 연설이 아니다. 설교는 예배의 자리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요, 회중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이다. 그러므로 신학자 에밀 브룬너는 “진정한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게 선포되는 곳에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금의 한국 교회는 설교 표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재정 문제, 목사의 윤리성 문제와 아울러 설교 표절까지 문제가 되어 내홍을 앓고 있는 교회가 한둘이 아니다. 200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가 교역자 3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교 준비, 설교문 작성 실태 및 의식조사”에서 타인의 설교를 그대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43%로 조사됐다. 기윤실은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 교회 홈페이지 활성화 같은 현대 문화의 특성상 상황은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어떤 목사는 아예 카페를 만들어 수천 편의 설교를 올려놓고 누구든지 가입비를 내고 회원이 되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요즘같이 지적 재산권 문제가 첨예하게 되어 있는 시대에 그런 무분별한 설교 장사가 가능한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에 본고는 무엇이 설교 표절인지를 규정하고 그 해악과 해결책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무엇이 설교 표절인가?
     
    미국의 유명 대학들은 글쓰기에 있어 표절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하버드대학: “출처를 표시하지 않고 가져다 쓴 정보나 데이터.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임을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것. 인용부호를 하지 않은 어구. 출처를 밝히지 않은 구조나 구성 전략.” 예일대학: “인용부호 없이 원전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정보의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원전을 조금 바꿨으나 거의 흡사한 경우.” 프린스턴 대학: “다른 사람의 언어나 생각, 또는 다른 사람의 고유한 것에 대해 각주나 인용부호 등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옮기는 경우. 몇 가지 변화를 주기는 했지만 원 저자가 쓴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여 바꿔 쓰면서 각주를 달지 않은 것.” 스탠포드대학: “합당한 자료의 출처나 작가를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작업을 도용하는 것.”

    이상에서 보듯 각 대학들의 공통적인 규정은 출처를 밝혀야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일반적인 글쓰기와 설교는 다르다. 글쓰기에서는 남의 것을 인용할 때는 아이디어든 문장이든 출처만 밝히면 된다.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거의 없이 인용으로 점철되는 글이라도 학위를 받는 데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나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설교에서는 출처를 밝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설교 중에 ‘이것은 어느 주석에서 따왔습니다,’ ‘이것은 어느 목사님 설교집에 있는 내용입니다.’를 연발한다면 과연 교인들이 은혜 받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설교 표절 문제를 다룰 때는 다음과 같이 일반 글쓰기와는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1) 의도적인가?
    설교자가 처음부터 베끼기를 하겠다고 작심하고 시작했는가 아니면 설교자가 다른 사람의 자료로부터 받은 영향을 무의식중에 표출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도성 여부가 중요하다. 우리 주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건서적들, 주석들, 강해서적들이 나돈다. 그 자료들을 접하다 보면 거기에 나오는 아이디어들, 영감들, 힘 있는 문구들이 끊임없이 목사 자신의 사고 속에 축적된다. 그런 자료들이 설교를 통해 흘러나온다면 그런 것을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자료들은 이미 깊은 묵상을 통해 목사 자신의 피와 살로 체화된 것이라고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목사의 사고와 영성, 삶과 인격이라는 필터를 거쳐 선포되는 종합예술과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의 설교자가 강단에 서기까지는 자신의 고뇌어린 몸부림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외부적 영향들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영향들 중에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예화들 중에는 돌고 돌아서 전해지기 때문에 무엇이 오리지널인지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제가 어떤 책에서 보니까,” 라든지 “누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등의 단순한 포괄적 표현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 설교자의 윤리적 책임은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베끼기로 작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대지를 가져오든 내용을 통째로 가져오든 출처를 밝히지도 않고 남의 설교를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도용이다. 일반 글쓰기와는 달리 설교에 있어서는 출처를 밝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대리인으로 강단에 선 설교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없이 다른 사람의 말만을 들고 선다면 그것은 설교자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처사이기 때문이다.

    (2) 반복적인가?
    또 한 가지 표절의 척도는 그런 행위가 단회적인가 반복적인가? 그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행위였는가 아니면 습관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매주 서너 차례씩 설교해야 하는 과중한 부담 속에서 때로는 초읽기에 몰려 불가피하게 남의 설교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출처를 밝히기만 한다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설교 가운데서 강한 성령의 감화를 받으며 현재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청중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 설교를 사용하는 것도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자신의 설교를 재탕하는 재탕설교도 경우에 따라서는 가능하다고 본다. 교회사에 영성이 출중한 목사 가운데서 자신의 설교를 백 번 넘게 재탕한 사람도 있었다. 관건은 남의 설교를 사용하든 자신의 설교를 재탕하든 그 메시지가 하나님이 회중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적실한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경우의 표절의 가납 여부는 전적으로 설교자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상습적으로 남의 설교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작금에 설교 표절로 인해 내홍을 앓는 교회들도 대부분 목사의 장기간에 걸친 설교 도용 때문이다. 그런 경우는 100% 출처를 밝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목회 윤리적으로나 말씀의 종으로 세움 받은 사명의 차원에서나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표절행위에는 아편보다 더한 중독성이 있다. 설교자 자신을 위해서나 회중을 위해서나 그런 행위는 근절되어야한다.

    (3) 위선적인가?
    설교 표절 중에 가장 교묘한 것은 남의 설교를 기술적으로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남의 설교를 이곳저곳에서 끌어와서 편집하거나 짜깁기해서 자신의 것처럼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설교자는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 면죄부를 주는 경향까지 있다. 짜깁기를 하더라도 자신의 관점이나 방향이 있어야 하고 또 자신이 일정 부분 노력도 했으므로 그렇게 짜 맞춘 설교를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이나 자신의 고유한 창의적인 내용이 없이 남의 것을 편집한 것에 불과한 설교는 기술적인 표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남의 예화를 편집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남의 예화에 나오는 이름과 일시를 살짝 바꾸어 사용하거나, 남의 체험을 마치 자신의 체험인양 둔갑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며 저질스러운 변조 행위이다. 그런 비양심적인 행위를 동원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위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설교 표절 행위의 해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설교 표절이 왜 잘못인가?
     
    첫째, 표절한 설교는 하나님의 현재적 메시지를 가로막는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시대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신적 메시지를 전했지만 그 배후에서 말씀하신 진정한 설교자(the only Preacher)는 하나님이셨다. 설교자 하나님은 교회 시대에는 목사를 통해 말씀하기를 원하신다. 주일마다 강단은 회중을 향한 하나님의 생생한 뜻과 음성을 전달하는 계시의 현장인 것이다.

    그런데 설교자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은 없이 베끼기만 한 원고를 들고 선다면 그보다 더한 잘못이 있겠는가? 바울 사도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preaching)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라고 했다(고전 2:4). 그 어떤 인간의 지혜로운 말보다도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하나님의 현재적 메시지를 그분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 설교자의 직무이다. 그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해 설교자는 늘 두렵고 떨림으로 엎드려 묵상하며 말씀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몸부림이 없이 ready made 된 인간의 말만을 들고 서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선생이 받을 더 큰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약 3:1 참조). 설교 표절은 윤리적 문제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가로막는 참람한 행위이다.

    둘째, 설교 표절은 설교자의 영혼을 고사시키는 행위이다.
    혹자는 설교를 통해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만 있다면 표절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논문 표절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부도덕한 행위지만, 설교는 교인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신학지식이나 지성이나 영성이 깊은 분들의 설교를 이용하는 것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것은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어떠해도 좋다는 상황윤리적인 궤변이다.

    계속되는 설교 표절 행위는 결국 설교자의 영을 죽게 만든다. 위로부터 공급받는 말씀이 없이 남의 대문만을 기웃거리는 영적 걸인 같은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건강하고 충만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빈핍한 영성으로 어떻게 교인들을 먹이며 교회를 이끌 수 있겠는가? 상습적인 설교 표절은 양떼들의 목자로 세운 설교자의 영을 고사시켜 결국은 목사도 죽고 교인들도 죽게 만드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셋째, 설교 표절 행위는 교회를 병들게 한다.
    베낀 설교라도 은혜롭기만 하면 교인들은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교회마다 회중의 특징과 그들이 처해 있는 삶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교회에서 은혜로웠던 설교라고 해서 내 교회에서도 반드시 은혜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성경에 담겨있는 영원한 진리를 ‘지금 여기에’ 있는 청중에게 적실하게(relevant) 들려지도록 전파하는 것이 설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본문을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청중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표절 설교는 청중을 완전 무시한 적실성 제로의 설교이므로 그런 설교에서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한 편의 설교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영성은 물론 그의 지성과 인품, 가정생활, 인간관계, 사회생활, 취미생활에 이르기까지 설교자의 전 삶이 영향을 미친다. 한 편의 설교 안에 설교자의 전 인격이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목사는 “지난 주 설교를 준비하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습니까?” 하는 질문에 “55년이 걸렸습니다.”라고 답했는데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표절 설교를 통해서는 그런 설교자의 전 인격적인 감화를 기대할 수 없다. 청중은 비 양심과 위선의 냄새를 맡을 뿐이다. 따라서 표절 설교는 교인들에게 일시적인 은혜를 끼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균형 잡힌 건강한 성장을 안겨줄 수는 없다.

    현금에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중심에는 신뢰성의 붕괴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말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충격파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수년 간 들었던 설교가 남의 것을 베낀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교인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보라. 결국 목회 현장은 황폐화되고 교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설교 표절이야말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핵심 전략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보다 엄중한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개선을 위한 제안들
     
    설교 표절 문제는 목사 개인의 양식에 의존하는 개인 윤리의 성격이 강하므로 외부적인 제도나 환경의 변화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안들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첫째, 설교 작성에 관한 전반적 교육의 강화이다.
    댈러스신학교의 M.Div 과정은 신학의 전 과목들이 좋은 강해설교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신학의 꽃은 설교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중요성에 비해 한국 신학교들의 설교에 대한 교육은 빈약한 경우가 많다. 비전공자가 대충 가르친다거나 현장과는 동떨어진 지엽적인 이론 교육에 치우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본문 선택에서부터 주석과 아웃라인 작성, 그리고 전개의 전 과정을 스텝 별로 세밀하게 가르치는 실제적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 든든한 기초도 없이 배출된 사역자들이 평생 남의 자료에 휘둘리며 살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신학교 시절부터 설교 작성의 윤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과제물을 작성에 있어 신학생들의 정직성은 일반 대학생들보다 하등 나은 것이 없다. 신학교 시절에 짜깁기 같은 비양심적인 행위에 익숙하게 된 학생들이 평생을 그와 유사한 유혹에 노출되어 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의 대학들은 학생들이 학문적 정직성을 준수할 수 있도록 ‘명예규약(honor code)’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도 2010년부터 리포트를 제출할 때 표지의 ‘배움의 윤리 서약’에 서명하는 절차를 거치게 하고 있다. ‘배움의 윤리 서약’에 담긴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이 과제는 내가(우리가) 직접 연구하여 작성한 것이다.
    2. 정확한 출처 제시 없이 다른 사람의 글이나 생각을 가져오지 않았다.
    3. 인용한 문헌의 내용이나 자료(도표나 데이터)를 조작(위조 혹은 변조)하 지 않았다.
    4. 과제물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거나 구매하여 제출하지 않았다.
    5. 과제물 작성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공동제출자로 명기하지 않았다.

    신학교에서도 위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기본적인 글쓰기의 윤리에 대해 세밀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둘째, 목사의 과중한 설교사역에 대해 제고할 필요가 있다.
    작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목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목회자들은 일주일 동안 평균 7.5회 설교하며, 주일 낮 설교시간은 평균 45.9분, 그리고 설교준비 시간은 평균 4시간 4분으로 나타났다. 4시간 준비해서 설교해야 한다면 바울 사도라도 좋은 설교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교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의 절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목사들이 표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과중한 설교사역을 개선하기 위해 목사 자신과 교회 당국의 공동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목사는 대외적인 활동이나 목회 외적인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절제해야 한다. 동시에 목사가 교회 행정에 대한 전반적인 관여나 심방, 각종 모임 주도 같은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도록 교회 측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할 수 있어야한다. 목사는 오로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해야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성경적 원리이다.

    셋째, 목회 성공주의 신드롬을 극복해야 한다.
    목사들은 초읽기에 몰린 다급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타인의 설교를 베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유명 목사의 탁월한 설교를 도용함으로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려는 불순한 동기가 작용하기도 한다. 출처를 밝히기만 하면 표절의 잘못은 면할 수 있는데도 굳이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랴? 좋은 설교를 통해 명예도 얻고 교회 성장도 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열매가 곧 파멸의 열매였듯이 그러한 욕망은 망하는 길임을 알아야한다. 세속적인 성공주의 가치관에 함몰되어 무분별하게 거짓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곧 자신을 망치고 교회를 파괴시키는 지름길이다.

    넷째, 설교사역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목사는 오직 말씀 증거를 위해 부름 받은 자이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입’으로 부름 받은 자이다. 그것은 인간이 땅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놀랍고 영광스러운 직무이다. 20세기가 낳은 강해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그의 책 「목사와 설교」의 첫 문장을 “설교사역은 인생이 받을 수 있는 소명 중에서 가장 고상하고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소명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잭 하일즈는 설교가 유한한 존재들에게 영원을 안겨주는 사역임을 확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이 강단에 가까이 갈 때에는 천사들도 날지 못하게 하고 천국의 호산나 소리도 잠잠케 하며, 어른들을 경청케 하고 아이들은 귀를 기울이게 하고 젊은이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여, 천국이 응답하고 지옥은 떨도록 전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거룩함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럴 때 영원한 모든 것은 떨며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두려움으로 흠뻑 젖게 될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사역을 부끄럽고 부정직한 사탄의 유혹에 넘겨주는 것은 진주를 돼지 앞에 던져주는 망령된 일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다시금 말씀의 종으로 부름 받은 영광스러운 소명을 자각하고 설교사역에 목숨을 걸어야한다.

    ⓒ 뉴스파워
    출처: USA아멘넷

    십자군 전쟁 (crusades, 十字軍) 

     

     

     

     평범한 아랍 청년이 느닷없이 허리에 고성능 폭탄을 두르고 미군에게 뛰어들고, 그런 자살 폭탄 테러를 두려워한 미군은 의심스런 행동을 하는 중동인을 향해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민간 여객기를 탈취한 중동 테러리스트가 미국 무역 센터 빌딩을 공격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리비아에도 서방 기독교 국가들의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세상을 양분하고 있는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은 왜 이렇게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게 ?을까 ? 하느님과 알라는 공존할 수 없는 걸 까 ? 중동인은 원래 폭력적이어서 그런 건가 ? 여러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표면적인 이유를 걷어낸 근본적인 해답은 서기 1096년 있었던 어느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해 는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을 이후 천 년간 충돌하게 만든 1차 십자군 전쟁이 있었던 해다.

     

    (영화 Kingdom of Heaven, 십자군 출정 장면)

     

    당시 이슬람 세력의 서진(西進)에 위기를 느낀 비잔틴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종교와는 그 다지 관련없는 영토 유지의 목적으로 당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SOS를 친다. 중동을 평정하고 비잔틴 제국(동로마)을 위협하던 이슬람 세력에 맞서 큰 형뻘인 교황에게 지원군을 좀 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교황은 마침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과 성직자 임명권을 둘러싸고 세속적인 권력 싸움을 벌이던 중이었고, 알렉시우스 1세가 도움을 요청한 지역내에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이 있음을 알고 교황은 기회가 찾아왔음을 직감한다. 영특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전략을 순서대로 풀어보자면 대략 이랬다.

     

    1. 비잔틴의 위기를 이용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으로 편 가르기 하고 갈등을 조장한다.  

    2. 비잔틴을 지원하기 위한 기독교 세력이 뭉치게 되면 대장은 당연히 교황이 할 수 있다. 

    3. 교황이 대장이 되면 유럽내 모든 황제나 영주들을 세속적인 종속관계로 둘 수 있다. 

    4. 교황과 교회의 권위는 황제의 권위보다 강해지고 정치적 영향력도 증대된다. 

    5. 내부적 갈등은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적개심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사진 (좌)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 모인 유럽 영주들

    사진 (우) : 당시 십자군 기사들의 복장, 갑옷과 방패에 십자가를 새겨넣었다

     

    대강의 계획을 수립한 그는 차근 차근 행동에 옮긴다. 먼저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 3,000명에 달하는 유럽내 권력을 지닌 황제, 영주, 귀족들을 불러모았다. 그 자리에서 비잔틴 황제의 지원요청을 설명하며 이슬람 지배하에 있던 예루살렘의 상황을 전달한다. 예루살렘에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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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순례를 가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끔찍한 박해와 고문을 받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지를 점령한 이교도에 의해 성지와 성물들이 처참히 훼손, 모욕받고 있기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더이상 성지를 이렇게 방치하는 건 하느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또 분노한 영주들에게 교황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교도로부터 성지를 해방 시킬 것'과 '해방 전쟁은 성스러운 전쟁, 즉 성전(聖戰) 이라는 것', '그 징표로 옷에 십자가를 붙일 것 그리고 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공표한다. 하지만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슬람,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고, 성지 순례를 오는 기독교인들은 일정 세금만 내면 자유롭게 예루살렘을 드나 들수 있었다는 진실은 의도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사진 : 1차 십자군 원정대의 주력부대를 이끌었던 고드프리아)

     

    결론적으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영토를 지키고자 했던 비잔틴 황제의 지원 요청과, 이를 종교 전쟁으로 미화해서 교회의 권위를 세우려던 교황의 선동이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면서 전 유럽이 분노로 술렁인다. 기사뿐만 아니라 민간인,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십자군을 조직했고 좀 더 자극적이고 효과적인 선동을 위해 교황청은 유럽 전역에 십자군 전쟁 참가를 독려하는 전도사들을 파견한다. 이렇게 왜곡된 정보에 분노한 기독교 세력은 칼을 들고 십자가 깃발아래 모여든다. 프랑스인, 노르만인, 로렌인등으로 구성된 4개 주력 부대의 1차 십자군 원정대는 총 6만에 달했고, 그 지휘관은 '고드프리아 드 부용', '레몽 드 툴루즈'같은 후세에 영웅으로 미화된 유력 영주들이 맡게된다. 1096년 8월 15일 쾰른을 출발한 십자군 1차 원정대는 앞서 출발했다가 전멸당한 민간인 십자군과 달리 우여 곡절끝에 1097년 니케아를 함락하고, 1098년 안티오크를 점령한데 이어 1099년 7월 15일 남은 2만 병력을 동원해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사진 : 1098년 안티오크 십자군 전쟁 묘사도) 

     

    사실 1차 십자군 원정대가 강력했다기 보다는 뜻밖의 공격에 준비가 되 있지 않았던 이슬람

    군의 내부 분열이 예상밖의 성과를 거둔 원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비극적인 증오의 역사는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에 십자군이 입성하면서 시작된다. 그간 교황이 왜곡해 놓은 이슬람 이미지로 복수심에 가득차 있던 기독교 기사들은 성안에 살고 있던 모든 주민 - 남녀노소 불문, 종교 불문 - 모든 예루살렘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기독교 순례객을 도륙한 것에 대한 보복이자 하느님을 모독한 이교도를 징벌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십자군은 입성 후 무려 6주간 학살을 계속했으며 기록마다 편차는 있지만 기독교권 기록에서는 4만, 아랍권 기록에서는 7만에 이르는 주민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성안에 살고 있던 사람은 누구를 불문하고 모두 도륙되었으며 당시 공존하고 있던 대다수의

     이슬람,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 주민들 마저도 학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이 이슬람인, 유대인, 기독교인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이로써 공존의 역사는 끝장나 버렸다. 이 잔인한 학살은 이슬람인들에게 복수심을 안겨주었고, 이후 십자군 원정이 7차례나 거듭 되면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간의 증오심은 씻을 수 없는 감정으로 세대를 넘어 전해지게 되었다. 십자군 원정은 시간이 흐를 수록 애초의 종교적 목적에서 약탈, 노략, 방화등을 통한 전리품 획득 즉 일확 천금의 기회로 변질되간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십자군이 동맹국인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했던 사건은 그 원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목적이 얼마나 세속적이었던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1996년 4월 기념비적인 행사가 유럽에서 열렸다. 총 500명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과거 1차 십자군 원정 당시의 경로대로 총 5,000km 를 도보로 걸어 쾰른에서 예루살렘까지 횡단하는 행사였다. 1999년 7월 12일 예루살렘에 입성한 이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은 900년 전 십자군의 영광을 재현하고 상기시키는 데 있지 않고, 반대로 당시 십자군이 저지른 대 학살을 사과하고 십자군 원정을 제대로 보겠다는 의지를 아랍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라고 밝혔다.

     

     

     

    1999년 7월 14일 경향신문에 보도된 참가자의 인터뷰 내용은 당시 기사를 읽는 내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유럽에도 십자군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양심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옮겨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시에 저질러진 일들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키위해 여기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서구인들이 왜곡된 역사관에 빠져있다. 지금도 많은 서구 영화들이 십자군의 안티오크 승리나 기적같은 예루살렘 정복등을 소재로 제작되고 있으며 그 승리를 찬양하고 있다. 하나 같이 이슬람 지휘관 '살라딘'을 악의 화신으로, 보스푸러스 해협을 넘어 이슬람의 땅으로 진격하는 십자군은 고귀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하느님의 군대로 설정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교황에게 선동되어 양민을 학살하고 동족을 약탈했던 십자군 원정이 이후 역사에 얼마나 깊은 상채기를 남겼는 지를 조명하는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루살렘내 모든 생명체를 살해한 잔혹성은 사실 묘사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 이후 생겨난 두 종교간의 희생과 복수의 순환고리는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동인과 서구인들 가슴속에 남아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자긍심의 역사로 기록된 십자군 원정이 지속적인 종교 분쟁을 야기한 최악의 사건중 하나로 냉정하게 재 조명되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추악한 성전(聖戰) - 십자군 전쟁의 실체 |작성자 가우디 

     

    The Crusades : 제1부

     

     

     The Crusades : 제2부

     


     The Crusades : 제3부

     


     

     

     

     

     

    가져온 곳 : 
    블로그 >멀뚱박사의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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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멀뚱박사| 원글보기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로마기독교공인 그 이면의 진실: 세속적인 변질의 시작

     

    지난 포스팅에서도 로마기독교공인 이후에 기독교가 변질되기 시작한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에 콘스탄티누스를 숭상하고 그의 지시에 타협을 시작하면서 사자굴과 카타콤에서는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공인한 기독교, 로마기독교 공인. 사실 그것은 진실된 기독교 공인이 아니라 로마를 이끄는 콘스탄티누스의 입맛대로 변형시켜 본 모습을 잃은 변질된 기독교로서 기독교 공인이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신자를 자처했다는 콘스탄티누스에 대해서도 모순적인 상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콘스탄티누스의 신앙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포스팅에서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가 과거처럼 핍박을 받지 않게 된 것은 은혜였지만, 황제에게 보호를 받지 않는 것은 더 큰 은혜였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 기독교 사역자들은 새로운 사회적 신분과 세속적 이익을 얻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전에 이방 종교의 사제들이 누리던 특권을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주었다. 감독들은 높은 명예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교도의 돈으로 교회들이 신축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의 면세를 확대했고(312), 십자가형을 금지시켰으며(315), 검투를 폐지시켰다. 또한 기독교의 주일을 공휴일로 제정했고(321), 교회의 절기를 존중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는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다음 도시를 확대해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하고, 그곳에 수많은 교회들을 건축했다. 자연히 출세를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불로 시험을 받던 교회가 이제는 호의로 시험을 받았다.”(롤랜드 베인튼, 1894-1984).


    “(예배당) 지붕은 금으로 치장하고 대리석을 끼워 장식하고 있다. 한때는 불꽃 속에 던져졌던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책이 이제는 화려하게 제본되고 황금과 보석으로 꾸며지고 있다.”(제롬, 345?-419?)


    많은 가짜 기독교인들이 생겨났고, 점차 많은 사람들이 매우 무가치한 동기로 성직자 세계에 들어왔다. 순교를 각오한 신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었던 교회가, 정치적 야심을 품고 아직 반은 이교적인 사람들이 몰려들어오는 세속적인 교회로 변질되어갔다.

     

     


    콘스탄티누스가 본 환상과 그의 삶은 그가 참으로 회개한 사람이 아니며,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그는 개종했다고 한 후로도 여러 번 살인했고, 20년간 살아온 두 번째 부인 파우스타(Fausta)를 물이 끓는 목욕탕 안에 넣어 질식시켜 죽이라는 비밀 명령을 내렸다. 또 니케아 공회의를 소집한 그 해에 맏아들을 처형(암살)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고, 그의 누이의 아들은 태형으로 죽였다. 그는 피로 물든 옷을 입은 황제였다. 그러나 타락한 교회들은 고마운 후원자를 위해 콘스탄티누스의 미덕들을 찬양하고 그의 결점들은 감추었다. ‘황제의 축제일’까지 제정한 거짓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12사도에 준하는 분이라는 명칭을 반드시 덧붙였다.  

    
    콘스탄틴 대제와 로마제국교회 -송광택
     관리자    | 2006·02·14 11:14 | HIT : 8,538 | VOTE : 3,117 |

    콘스탄틴 대제와 로마제국교회

     

    송광택 교수

    들어가는 말

    주후 4세기부터 중요한 변화가 서방교회와 정치구조 가운데 발생하였다. 제 4세기에 콘스탄틴의 종교정책에의해 소수파였던 기독교가 4세기말에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었다. 또한 교회와 로마제국 그리고 이방종교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교회사가 곤잘레스의 표현대로, 제4세기는 “교회사에서 새로운 전기를 여는 시작” 1)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푼 ‘밀란의 칙령'(the Edict of Milan) 2) 을 출발점으로 하여 제4세기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콘스탄틴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로마 제국 최초의 기독교 황제”(Christian emperor) 3) 로 환호하며 맞이하였다.  그리고 콘스탄틴 대제는 직접 간접으로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 이전에 이교 사제들이 누리던 특권을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주었다. 교회는 이교 사원과 동일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은 법정 공휴일이 되었다. 감독들은 높은 명예를 가지게 되었으며, 교회가 이교도의 돈으로 신축되었다. 그러나 “불로 시험을 받던 교회가 이제는 호의로 시험을 받았다”(Roland Bainton).  제롬(Jerome, 435?-420)은 “(교회당) 지붕은 금으로 치장하고 대리석을 끼워 장식하고 있다. 한때는 불꽃 속에 던져졌던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책이 이제는 화려하게 제본되고 황금과 보석으로 꾸며지고 있다” 4) 고 말했다.

    본 소고에서는 로마제국교회 탄생의 배경을 살피면서, 당시의 교회가 겪은 변화와 직면한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당시의 교회 상황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배우고 통찰을 얻고자 한다.

    1. 콘스탄틴의 성장 배경

    콘스탄틴은 로마제국의 속주(屬州)인 상 모에시아(Upper Moesia)의 나잇수스(Naissus) 5) 에서 로마 군대의 장교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와 헬레나(Helena)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헬레나는 해방된 동방의 여노예로서 그리스도인으로 미인이었다고 한다(a beautiful Christian Oriental freedwoman 6) ), 그가 일생동안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모친 헬레나는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와 결혼하였지만 법률상의 아내는 되지 못하였다. 이는 당시 로마법이 고급 장교들에게 속주의 주민들과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

    콘스탄틴은 일신교 8) 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경향이 짙은 가정의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3세기의 로마 제국에 있어서 종교적 성향은 모든 신들을 초월하는 ‘최고신'에 대한 신앙이 우세하였는데, 그의 부친도 이러한 일신교 신봉자였다. 콘스탄틴의 이복 여동생 아나타시아(Anathasia)는 유대교신자이거나 그리스도인이었고, 또 다른 이복 여동생 콘스탄시아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었다.

    콘스탄틴은 292년에 니코메디아에 있는 디오클레시안의 황궁에 들어가서 지도자로서의 교육을 받았다. 그후 그는 디오클레시안과 이집트 전쟁에 출전하러 가던 도중에 팔레스타인에서 유세비우스 9) 를 만나 친교를 맺게 되었다(후에 유세비우스는 대규모로 '교회사' 10) 의 저술을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가이사랴의 감독으로 일했고 콘스탄틴 황제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11)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로마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궁극적 승리를 위한 준비였다. 그는 최초의 기독교 황제를 구약의 메시야 예언들의 성취(the fulfilment of the messianic prophecies)로서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콘스탄틴을 통해 이루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세상은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로 인도되었기 때문이다. 12)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의 친구요 정치평론가(publicist)요 전기작가였다 13) ).

    그후 305년 디오클레시안과 막시미안이 은퇴를 선언하였을 때, 콘스탄틴은 그의 부친이 제1 정제(正帝)가 되고, 자신은 부친의 뒤를 이어 제2부제로 임명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디오클레시안은 그의 사위 갈레리우스를 제1정제로 임명하였고 콘스탄틴의 부친은 제2정제가 되었다. 또한 두 부제에는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ia)와 세베루스(Severus)가 임명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콘스탄틴은 몰래 황궁을 빠져나와 그의 부친이 있는 골(Gaul) 지방 불로뉴로 갔다가, 후에 부친과 함께 브리탄니아로 건너서 갈레도니아(Galedonia) 전쟁에 참전하였다. 전쟁 발발 후 얼마되지 않아 그의 부친이 요크(York)에서 사망하자, 군대의 지도자들이 콘스탄틴을 정제(正帝)로 추대하였다. 이제 그는 부친을 계승하여 골 지방과 브리탄니아 속주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다.

    콘스탄틴은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군사력을 통해서 310년에 에스파니아를 정복하고 로마제국의 서부 지역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311년에 제1정제인 갈레리우스가 사망한 후, 서부 지역에서는 콘스탄틴과 막센티우스가 영토를 나누어 지배하였고, 동부 지역의 통치자는 리키니우스와 막시미누스 다이아였다. 이 황제들의 정치적 동맹관계는 그들의 지리적 환경과 기독교에 대한 정책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즉 콘스탄틴은 서방에서 막센티우스를 물리치고 유일한 통치자가 되기 위해 동방의 리키니우스와 동맹관계를 맺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콘스탄틴은 그의 부친처럼 관용정책을 취하였고, 리키니우스도 이에 동조하였다.

    2.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

    312년에 콘스탄틴은 당시 이탈리아와 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던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을 계획하였다. 그는 막센티우스를 서부 지역의 폭군으로 규정하고, 주민에게 자유를 부여한다는 명목으로 이탈리아로 출정하였다. 그는 알프스를 넘어 저항군대를 격퇴시키면서 로마로 진격하였다.

    그는 로마의 티베르 강에 놓여있는 밀비안 다리에서 상대방의 막강한 군대와 마주쳤을 때 그의 군대로서는 로마를 점령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는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런데 콘스탄틴은 전투 전에 환상(혹은 꿈)을 통해 그의 군대가 승리할 수 있는 표징(sign)을 받았다. 그는 “이 표식으로 이겨라”( In this sign, Conquer, In hoc signo vinces )라는 라틴어 환상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14)

    자신감을 얻은 그는 로마로 진군하였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막센티우스(Maxentius)의 군대는 완전히 패했다. 막센티우스 자신이 타이버 강을 가로 질러 밀비오 다리를 건너 도망하려고 시도하다가 그 강에서 빠져 죽었다.

    이 전쟁은 312년 10월 28일에 있었는데, 세계 역사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큰 전쟁이었다. 이 전투가 콘스탄틴에게는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 그는 서부 유럽 전체를 차지한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312년 10월 28일에 로마 원로원은 콘스탄틴을 최고통치자로 영접하였고, 그의 승리를 기념하는 개선문을 착공하였다(315년에 완성됨).

    리챠드 토드에 따르면, 콘스탄틴의 ‘환상' 이야기는 ”미심쩍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 신앙을 불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또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신령한 태양 사이의 구별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가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충성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15)


    3. ‘밀란 칙령'과 교회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콘스탄틴은 로마에서 두 달을 지낸 다음 313년 봄에 밀란(밀라노)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그의 누이동생인 콘스탄티아와 리키니우스(Licinius) 황제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여기서 두 황제는 소위 ‘밀란 칙령''(the Edict of Milan)이라는 포고령을 선포하여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관용 정책을 베풀었다. 16) 그리하여 동부 로마제국의 집정관들에게 제극내의  제국내의 여러 종교에 부여된 권리들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승인하도록 지시하였다. 밀란의 칙령은 “기독교로 하여금 로마 제국 내에 있는 다른 종교들과 함께 법률 앞에서 동등한 발판을 얻게 하였다.” 17)

    그때부터 수년 동안에 콘스탄틴은, 칙령을 내려, 몰수되어 있던 교회 재산을 반환하고 국가가 교회를 보조하도록 하며, 성직자에게는 공적인 의무를 면제하고 점장이를 금하고, ‘태양의 날'(Day of the Sun)을 안식과 예배의 날로 정했다. 18)

    콘스탄틴은 재위 기간 중에 기독교에 대해 물질적 특혜와 법적 특권을 부여하였다. 313년에 그는 로마 감독에게 라테란 궁전을 기부하여, 후에 이곳에 콘스탄틴 대성당(지금의 죠반니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또한 그의 시대에 베드로 대성당, 예루사렘 무덤 성당, 베들레헴의 예수 성탄 성당이 건립되었다. 이로써 기독교 예술과 건축이 처음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콘스탄틴은 315년 십자가 처형을 폐지시켰고, 321년에는 ‘일요일'을 그리스도인의 예배일로 공인하였다. 또한 국법에 의하여 주일과 교회 축일을 공휴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공휴일에 로마인들은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데 여가 시간을 보냄으로써 예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아울러 콘스탄틴은 몰수된 교회재산의 반환 조치를 취하였고, 321년에는 교회가 상속권을 갖는 법을 제정하여 신자들이 그들의 재산을 교회에 기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교회는 급속적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였고,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콘스탄틴은 사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임을 공인하였고, 그의 가족은 모두 신자로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337년 그는 임종을 앞두고 침상에서 세례를 받았다. 19)   세례를 미루는 일은 ‘인간의 죄를 피하기 위한 계락'으로서 그 당시에는 관습적으로 유행하던 것이었다. 20) “당시 사람들은 그와 같이해서 죄에서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갈 것을 희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21)

    그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콘스탄티노플의 건설이다. 옛 비잔티움의 터전을 두 대륙을 통치하는 최선의 장소로 선택하여, 326년 11월 26일 정초(定礎)하고, 330년 5월 11일 신도(新都) 창설의 축하를 행하고,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폴리스)이라 명명하였다.

    4. 평가

    1) 콘스탄틴에 대한 평가

    (1) 긍정적 평가

    이 평가와 관련하여 제일 먼저 던져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인이었나?”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한 사람이나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가정해왔다. 22)  

    콘스탄틴을 옹호하는 케레츠페스(Paul Kereszte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시의 문헌과 기록을 보면, 콘스탄틴은 자신이 삶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며 언제나 교리 문제를 잘 알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성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 교회사에 있어서 진정으로 위대한 그리스도인 황제이며 순수한 사도였다.”(Constantine: The Christian Monarch and Apostle, 1981, p. 8) 23)

    김성태 교수에 따르면, 콘스탄틴은 이교도의 종교행사를 조심스럽게 제한함으로써 기독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24)  

    그러면, 콘스탄틴이 세례 받는 것을 뒤로 미룬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콘스탄틴이 당시의 일반적 관례를 따랐다는 것이다. 크리소스톰(Chrysostom)도 말하기를 “세례는 이전의 죄들을 용서해 줄 수 있다(Baptism can give remission of former sins.)...  우리가 받은 은혜가 큰만큼, 세례 후에 죄를 범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더 중하다”라고 했다. 25)

    (2) 부정적 평가

    일부 카톨릭 교회사가의 입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은 콘스탄틴의 ‘개종'과 신앙(경건)에 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콘스탄틴의 개종이 정확하게 어떠한 성격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알리스테어 키는 콘스탄틴에게 종교가 제국 전략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로마제국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라는 생각을 타당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콘스탄틴이 그리스도인의 신과 제휴한 것은 “그의 천재성과 창의적인 안목 때문이었다.” 26) 그는 콘스탄틴에게 ‘개종'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27) 그는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인이었나?”라는 질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3) 중도적 평가

    얼 케언즈(Earle E. Cairns)에 의하면, “환상은 사실이었는지 모르나 콘스탄틴이 그리스도 교회에 호의를 보인 것은 편의상의 일 이었던 것 같다.”  또한 “죽음의 직전까지 세례를 받기를 연기하였고, 이교적인 국가의 ‘대사제직'(Pontifex Maximus)의 직위를 보유하고 있었던 일은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다. 더구나 제위에 오를 권리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을 그가 처형한 것은 28) 진실된 그리스도 신자의 행동(the conduct of a sincere Christian)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마도 그의 정책에는 미신과 편의주의가 혼합되어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콘스탄틴은 재위기간 동안 우상숭배의 이교사상을 배격하지 않고 그리스도교와 동등한 위치에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의 동기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옳든지 옳지 않든지간에) 콘스탄틴은 그리스도 교회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29)

    얼 케언즈는 다음과 같이 당시의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

    "멸시를 받아오던 소수의 회원을 가진 하나의 종파이던 그리스도교가 강대한 로마 제국의 공인 종교가 되었던 경로를 회고해 볼 때, 이 승리의 행진은 교회로서 좋지 못하였다고 믿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고 그 결과로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전보다 높아졌고, 투기사의 죽음을 구경하는 것이 폐지되고, 노예에게는 전보다 관대한 대우가 주어지고, 로마의 법제는 훨씬 공정하게 되고, 전도사업은 더욱 촉진되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와 밀접하게 협력하는 일의 이익이 있었던 한편, 또 현저한 손해도 있었다. 정부는 교회의 지위와 보호와 지원의 보상으로서 영적 문제와 신학문제에 간섭하는 권리를 요구하였다...교회와 국가 사이의 논쟁이라는 길고 복잡한 문제는 이 시대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313년부터 590년까지의 시기에 있어서의 교회의 로마 제국과의 긴밀한 제휴(closer association)는 박해 시대에는 문제도 되지 아니하던 그러한 많은 약점들을 교회내에 가져 들어오고 말았다” 30) 즉, 교회와 국가 사이의 친선(화해)은 교회에 축복 보다는 손해를 더 많이 가져왔다.

    2) 기독교 공인(또는 국교화)의 결과에 관한 평가

    (1) 긍정적 측면

    곤잘레스에 의하면, "새로운 환경을 맞이해서 4세기의 교부들은 지금까지 순교를 가르치고 이교도들의 고소에 대해 논박하는 데 집중시켰던 정력을 이제는 다른 활동 분야에서 배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31)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4세기는 아타나시우스, 캅바도키아 교부들, 제롬, 암부로스, 어거스틴 등등 위대한 교부 배출하였다.

    (2) 부정적 측면

    B. K. 카이퍼는 기독교 공인의 부정적 결과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자의 이름은 정치적 군사적 패스포트(passport)이며 사회적 승진의 수단이 되었다. 그 결과로 수천 수만의 이교도들이 교회에 합류하였는데, 이들은 불행하게도 다만 이름뿐인 기독 신자였다...  콘스탄틴 황제도 의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참으로 높은 수준의 신자는 아니었다. 교회가 양(量)에서는 얻었으나 질(質)에서는 잃었던 것이다. 313년에 콘스탄틴의 칙령은 교회에 힘센 타락의 홍수 문을 열었던 것이다.” 32)

    곤잘레스에 의하면, "대량적인 개종은 교회의 도덕적 삶과 신앙의 확신의 깊이를 얄팍하게 하였다.“ 그리고 ”황실의 보호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신학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황실은 어떠한 신학적 주장이나 다른 문제에 대해서 정죄를 내리거나 총애를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33) 콘스탄틴은 교회 논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곤 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공인의 결과와 관련하여, 콘스탄틴의 개종 이후  ‘수많은 이교도들'(crowds of the heathen)이 교회에 들어오려고 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34) 이교도들은 우상숭배의 축제를 거행할 때 익숙하였던 흥청거림과 술취함을 포기하지 않고 교회에 들어 왔다. 또한 이교적 관습이 그들과 함께 교회에 들어왔다.

    교회는 많은 이방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35) 5세기 중엽에 교황 레오 1세는 베드로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태양에게 절하기 위해 돌아섰던 숭배자들을 비난하였다. 기독교화된 몇몇 이교적 풍습들, 즉 초나 향, 화관 같은 것을 사용하는 풍습은 이방 종교를 상징한다고 해서 초기에 교회 내에서 금했었다. 성모 마리아 숭배는 이방 종교의 유사한 것들 때문에 자극을 받은 듯 하다. 몇몇 학자들은 아데미(다이아나) 숭배가 마리아 숭배로 바뀌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본래 아데미를 숭배했던 에베소 사람들은 초기부터 마리아를 숭배하였다. 마리아 숭배를 애굽의 여신 이시스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시스를 열정적으로 숭배하는 자들은 그 여신을 ‘대동정녀'(the Great Virgin) 혹은 ‘신의 어머니'라 불렀다.

    이방 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되면서 4세기에는 성자와 순교자들을 숭배하는 일이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교회당을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세웠고, 성자들의 시신을 찾고자 하는 경쟁은 곧 미신적인 탐사로 타락해 버렸다. 동방 지역에서는 아직 살아있기는 하지만 곧 죽을지도 모르는 ‘숨어있는 성자들'을 찾기 위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36)

    잘못된 순교자 숭배와 성자 숭배에 대해 아퀸타인 출신의 비지란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비난하기도 했다:

    “우리는 신앙심을 구실로 하여 교회에 들어 온 이교적 의식을 볼 수 있다. 즉 양초가 대낮을 밝히고 있고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진귀한 천에 싸여 있는 작은 항아리의 먼지에 입을 맞추고 그것을 숭배한다.” 37)

    3) 입교 절차(교리문답교육)의 체계화

    적어도 콘스탄틴의 시대부터(개종자가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에) 더 정교한 입교 과정이 발전되었다. 38) 305년에 엘비라 종교회의(the Synod of Elvira)는 세례 준비 기간을 최소한 2년으로 확정했고, 병자를 위해서는 더 짧은 유예기간을 허락하였다. <힙포리투스의 법규집>은 3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특별히 열성적이고 적절하다면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있다. 그 준비기간이 6년 이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보이나, 다른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일반적인 요구사항은 아닌 듯 하다. 39)

    교리문답 내용은 기독교 교리의 기본적 내용들로 이루어졌다. 즉, 하나님의 본성과 삼위일체, 창조와 우주의 질서, 세계 창조의 목적과 그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 인간의 본성, 악인에 대한 심판과 성도에 대한 보상,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 등이었다. 교육이 이루어지면, 감독이나 사제의 기도 후에 교리문답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수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40)  

    나가는 말

    콘스탄틴 아래에 일어난 큰 변화가 교회에 있어서 축복된 일인가 아니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간단히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이르기는 어렵다. W. V. 뢰벤이히에  의하면, “중요한 일은 단지 교회의 외적 대승리는 아니고, 그리스도교 라고 하는 것의 현실적인 발전이다. 공공의 생활은 전부 그리스도교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다”라고 했다. 41)

    교회는 이 세계를 정복했으나, 이번에는 이 세계가 교회를 정복하려 했다. 교회는 국가에 대해서 잘못된 의존관계에 빠져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은 이 방향에 나아가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 밑에서 절대적인 국가교회의 제도가 시작되었다. 42) 뢰벤이히는 이 세속화가 “콘스탄티누스에 의한 제국교회의 설립에 의하여” 비로소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이 일에 책임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교회 자신이다.

    1) 후스토 곤잘레스, 기독교사상사 I, 311쪽.

    2)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Eusebius Pamphilus(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1), X. v.; cf. 박용규, 초대교회사, 107-109.

    3) J.D. Douglas ed., Who's Who in Christian History, 1992, 172.

    4) 롤랑 베인튼, 정통교회사(서울: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1), 50쪽에서 인용.

    5) 오늘날의 세르비아에 위치함.  cf. "Conctantine the Great", Microsoft Encsrta 98 Encyclopedia.

    6)  Earle E. Cairns,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Grand Rapids: Academie Books, 1981), 124.

    7) 김성태, 세계교회사 I (서울: 성바오로출판사, 1990), 215쪽.

    8) 콘스탄틴은 그의 부친과 3세기초의 황제들의 본을 따라 초기에 로마의 태양신(Sol)을 믿는 ‘태양 단일신론자'(solar henotheist)였다. 태양신은 우주 배후의 원리인 ‘보이지 않는 최고의 신'(summus deus)의 보이는 현시(顯示)라고 생각했다.
    9) 마이클 스미드, ‘유세비우스', 교회사핸드북, 17쪽.

    10) 교회사는 303년 혹은 311년에 최초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324년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몇 가지 부록을 첨가하였다. 그의 친구 콘스탄틴의 최후 승리까지 추가시켰던 것이다. 유세비우스는 지루하고 장황하며 어려운 문체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이 책은 다른 잃어버린 저작들로부터의 인용문들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귀중하다. 대부분의 그의 역사기술은 앞선 저술가들로부터의 긴 인용문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저술가로서의 유세비우스는 지나치게 경솔하게 믿지도 않았고 아주 비판적이지도 않았다.
    11) Erwin R. Goodenough, The Church in the Roman Empire, 56. "..., Eusebius, Bishop of Caesarea, the learned historean of the Church, become his intimate friend."12) R. A. Markus, Christianity in the Roman World(London: Thames and Hudson Ltd., 1974) 91, 98.
    13) 그의 정치사상은 비잔틴 기독교제국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콘스탄틴의 통치를 새 시대로의 진입으로 여겼다.
    14)  콘스탄틴은 이 승리의 표시가 태양신이 보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만약 전투에서 이긴다면 태양신의 전사가 되겠다고 서약했다. 다음날 10월 26일 콘스탄틴의 군대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콘스탄틴은 그의 승전을 그리스도의 위력과 그리스도교의 우수성의 증거로 보았다.
    15) 리챠드 토드, ‘콘스탄틴 대제와 기독교 제국', 교회사핸드북, 130쪽.
    16) Erwin R. Goodenough, The Church in the Roman Empire(New York: Cooper Square Publishers,Inc.,1970), 40. "...  Constantine had conquered the Roman world, he renewed with Licinius the policy of toleration for Christians in the great Edict of Milan, late in the year 312, or early in 313."
    17) B. K. 카이퍼, 세계기독교회사(서울: 성광문화사, 1980), 37쪽.
    18) Earle E. Cairns,124.
    19) 콘스탄틴은 세례를 받은 후 황제복을 다시 입기를 거부하여 세례복인 흰옷을 입은 채 세상을 떠났다.
    20)  세례를 지체하는 이유는 세례가 회개한 교리문답자들에게 과거의 죄에 대한 용서를 보장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아세례는 5세기가 될 때까지는 규정(rule)이 되지 않았다.
    21) W. V. 뢰벤이히, 교회사개론(서울:마라나다, 1995), 95쪽.
    22)  알리스테어 키,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8쪽.
    23)  알리스테어 키,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 22쪽.
    24) 김성태, 세계교회사 I, 223쪽.
    25) M. L. W. Laistner, Christianity and Pagan Culture in the Later Roman Empire(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78), 34.
    26)  알리스테어 키, 21쪽.
    27) “우리는 진실로 이 점에서 ‘개종'이란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알리스테어 키, 같은 책, 21쪽)

    28) 예를 들면, 326년 그의 아들 크리스푸스(Crispus)와 황후 파우스투스(Faustus)를 간통 혐의로 처형했다.
    29)  Earle E. Cairns, 124.

    30) Earle E. Cairns,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Grand Rapids: Academie Books, 1981) 121.
    31) 곤잘레스, 같은 책, 311쪽.

    32)  B. K. 카이퍼, 세계기독교회사, 38-39쪽
    33)  콘스탄틴은 아리우스 논쟁에 깊이 개입하였다.(참고. 곤잘레스, 312쪽 이하)34) Peter Brown, Authority and the Sacred: aspects of the Christianisation of the Roman world(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23.
    35) 교회사핸드북, 131쪽. “예를 들면, 태양숭배로부터 에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 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36) 교회사핸드북, 132쪽. “성자 숭배 의식은 그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들(제롬, 암브로우스, 어거스틴)에 의해서 고무되었다.”
    37) 같은 책, 132-133쪽.

    38) Erwin R. Goodenough, The Church in the Roman Empire(New York: Cooper Square Publishers,Inc.,1970), 36.
    39) 같은 책, 38.

    40) 같은 책, 39.
    41)  W. V. 뢰벤이히, 교회사개론(서울:마라나다, 1995), 95쪽.
    42) 같은 책, 96쪽.

    http://www.chongshin.re.kr/4_study/stud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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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늘새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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