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도는 거짓말하거나 속이거나 훔치지 않으며 또는 (규칙을) 범하는 자를 관용하지 않는다.”


사진은
미육사와 공사의 생도명예규칙입니다.  해사도 비슷한 내용의 생도규칙이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훔치지 않는다
규칙을 범하는 자를 관용하지 않는다

얼핏 봐서는 너무 작고 쉬워보이는 규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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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단연구가 및 단체들이 1월 10일 서울 신길동 대림감리교회에서 ‘호교단체 신년하례회 및 세미나’를 갖고 다락방, 박윤식, 인터콥 등의 이단성에 대해 토론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의 이단옹호 행각이 도를 넘었다는 데 공감하고, 류광수 다락방의 이단성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최근 한기총이 다락방에 대해 사실상 이단해제 수순을 밟는 것과 달리 이단연구가들은 류광수 목사의 이단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다락방, 왜 이단이라 하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한 한창덕 목사(한교연 바른신앙수호위원회 전문위원)는 “복음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영접의 비밀, 언약의 비밀, 삼위일체의 비밀, 임마누엘의 비밀 등 소위 다락방의 ‘비밀 시리즈’ 교리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 이단성이 다 드러난다”며 “다락방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정통교회의 ‘그리스도’와 다른 개념이며, 다락방에서 말하는 ‘복음’은 정통교회의 그것과 ‘다른 복음’”이라고 지적했다.

다락방에서는 김기동 베뢰아 귀신론과 같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불행, 질병, 가난, 사건·사고, 재앙 등이 다 사단 때문이라고 하며, 사단만 멸망시켜버리면 그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을 멸해버리셨으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구원파와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다락방이 베뢰아와 흡사하다는 말을 듣게 된 이유라는 게 한 목사의 지적이다.

“이 주장들만 보아도 류광수 목사가 얼마나 베뢰아 사상에 찌들어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그는 베뢰아 사상과 같은 주장을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성락교회의 김기동 목사와 같은 축사를 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 ‘그리스도’를 넣고 그리스도가 현실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그런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다락방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사단을 꺽은 왕’으로서의 왕이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로서의 선지자이며, ‘인생의 모든 저주와 실패를 전부 해방시켜버리신 분’으로서의 제사장이다.”

   
▲ 한창덕 목사

그러면서 한 목사는 △ 베뢰아 귀신론과 동일한 ‘사탄신학’ △ 예수님의 성육신과 성령의 내주를 같은 것으로 보는 ‘다른 복음’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등 정통교회 신앙고백과 ‘다른 그리스도론’ △ 번영신학 △ 신화사상 등을 류광수 씨의 이단성으로 지적했다.

한 목사는 특히 “류광수 목사는 정통교회와 다른 그리스도를 주장하면서 성령의 내주로 인한 성도들의 거듭남을 예수님의 성육신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지방교회와 같은 신화사상이 되어 ‘천사 동원권’, ‘사단 결박권’ 등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각종 권세를 사람이 하게 된다는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락방에서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그리스도의 삼중직인 ‘그리스도의 비밀’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복음의 비밀’이라 하며, 그런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영접의 비밀’이라 하고, 성령의 내주를 성육신과 같은 의미에서 ‘임마누엘의 비밀’이라 하기 때문에 다락방의 이와 같은 주장은 ‘사람이 하나님 된다’라고 하는 지방교회의 ‘신화사상’과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락방이 이런 신화사상에 근거해 ‘천사 동원권’, ‘사단 결박권’ 등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것을 자기들의 주장과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사람이 하게 된다고 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다락방은 과거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확실히 이단이다.”

한편, 세미나에서는 박윤식의 이단성에 대해 이영호 목사(기장 이대위원장)가, 인터콥의 이단성에 대해 이인규 권사(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대표)가 각각 논문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세미나에 앞서 진행된 예배에서 참석자들은 이단사이비 척결을 위한 기도회 시간을 가졌다.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 대표회장 박형택 목사, 공동대표 진용식 목사)가 하와이 임마누엘한인침례교회에서 2013년 3월 4일~6일까지 제 2회 세계대회를 진행했다. 한국·미국·호주 등의 이단 대처 사역자 36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한 대회에서 세이연은 △비방과 인신공격 등을 서슴지 않고 있는 ‘미주크리스천월드’(발행인:강선만, 발행처:필라델피아)는 이단옹호언론으로 규정한다 △각 지역마다 비전스쿨로 인하여 교회가 내분이 생기고 있는 인터콥에 대해 우선 성명서를 발표하고, 곧 이어 연구보고서를 발표한다 △최근 브라질과 미국 등의 각 일간지에 홍보를 하고 있는 ‘돌나라 박명호’에 대해서 성명서를 발표하여 건전한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한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세이연 멤버나 세이연에 대한 ‘동영상 및 비방 글’들에 대해 좌시하지 않고 고소 등 적극 대처한다는 안건을 채택하고 통과시켰다.

세이연은 한국 대표회장에 박형택 목사, 미국측 대표회장에 김순관 목사, 한국 대표에 진용식 목사, 미국 대표에 나성균 목사를 임명했다. 세이연의 3차 세계대회는 2014년 2월 제주도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다음은 신사도운동에 대한 연구 보고서 전문이다<편집자주>

신사도 운동에 관한 연구보고서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


제1장 서론
1. 조사의 목적과 한국 교회 상황
2.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운동에 대한 공기관의 규정
3. 신사도 운동의 유래와 발생

제2장 본론: 신사도운동의 이단적 사상
1. 피터 왜그너에 의하여 조작된 사도직(Apostleship)와 선지자직(Prophetship)
2. 성경말씀에서 벗어난 현상적인 집회
3. 거짓 직통계시에 의한 신사도 운동의 무속적 예언 행위
4. 도미니온(Dominion) 속에 숨겨진 비성경적인 주권운동
5. 이단사상까지 포함하는 신사도 운동의 개방신학
6. 지역귀신론에 근거한 영적도해
7. 짜맞추기식 엉터리 성경해석
8. 요엘의 군대(Joel's Army, Jesus Army-집합 그리스도)
9.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오도한 임파테이션(Impartation)

제3장 결론

부록 1. 신사도 운동 단체들
부록 2. 참고 문헌


제 1장 서론

1. 조사 목적과 한국교회 상황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된 ‘빈야드 운동’은 각종 쓰러짐, 짐승소리, 떨림과 발작현상, 직통계시, 예언, 등 극단적 신비주의적 경향의 행위들로 문제를 일으키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주요 교단들에 의해 이단, 참여금지 등이 발표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보다 더 불건전한 사상들이 혼합되고 변형된 형태로 발전되어 ‘신사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국교회에 도입되었다. 특히 신사도 운동은 일부 대형교회와 유명 단체들을 중심으로 도입되었으며 현재 한국 교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이 신사도 운동은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로 하여금 불건전하고 비성경적인 사상에 물들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의 갈등으로 인하여 교회들이 분열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이 추구하는 목표는 세상을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의 7개 권역으로 분류하여(Seven Spheres, 또는 Seven Mountains, 일곱산으로도 불림) 모든 분야에서 신사도 운동이 지배하고 통치하겠다는 것이다.(1) 물론 일곱 ‘산’의 정상은 ‘사도’나 ‘선지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며, 자신들이 교회의 ‘영적 아비’ 혹은 ‘영적 멘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교회(신사도 운동 교회로서 일터교회)와 돈(부의 이동)이라는 2가지 방법이 사용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집회에는 거짓 예언과 계시가 난무하고, 심지어는 사람이 벽을 통과할 수 있다거나, 한 사람이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고, 교통사고로 잘린 다리가 하루 만에 원상태로 자라나고, 심지어 난치병이 치료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식의 루머와 소문들이 파다하지만 객관적으로 입증이 된 예는 없다. 이와 같이 기적과 표적을 강조하는 현상적인 집회가 교인들을 불러 모으는 주요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에서 본 세이연은 이 운동이 과연 올바르고 성경적인 것인지 분별하고 규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비록 늦은 감조차 있지만 연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2.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 운동에 대한 공기관의 규정

아래 모든 신사도 유사 운동 단체들이 신사도 운동의 교리들을 100% 동일하게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신사도 운동은 하나의 교회나 단체가 아니라 일종의 ‘운동’(Movement)을 뜻한다. 신사도 운동은 좁은 의미에서 피터 왜그너의 단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비록 자신들이 “신사도 운동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았거나, 신사도 운동과 유사한 사상을 가지고, 유사한 행위를 하는 단체나 개인을 모두 포함한다.(예를 들면, 마이크 비클의 아이합-IHOP,(2) 빌 해몬의 CI,(3) 릭 조이너의 MSM 등(4) )

중략…


3. 신사도 운동의 유래와 발생

피터 왜그너(Peter Wagner)는 신사도 운동의 유래를 1800년대로 보지만, 신사도 운동의 유래는 몇 개의 이단적 단체의 혼합과 계승으로 보아야 한다. 첫째는 늦은비 운동(the Latter Rain Movement), 둘째는 늦은비 운동에서 비롯된 캔사스시티 예언자그룹(Kansas City Prophets Group: KCP 또는 캔사스시티 펠로십 KCF), 셋째는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과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 넷째는 영적도해(Spiritual Diagram)를 주장하는 지역 귀신론 그룹까지 포함되어 피터 왜그너의 신사도연맹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신사도 운동의 유래에 대한 대표적 단체는 아래와 같다.

1) 늦은비 운동(Latter Rain Movement)
1930년대에 시작된 늦은비 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는 윌리엄 브래넘(William Branham)이며, 브래넘은 오컬트적인 귀신 축사, 치유, 임파테이션, 사도와 선지자의 복원, 예언과 계시, 정통신학의 부정, 알레고리적 성경해석 등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며, 1949년 미국 오순절 교단은 늦은비 운동을 이단으로 공식발표한 적도 있었다. 마이크 비클의 책에 의하면, 브래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엘리야 선지자’라고 부르며 그를 추종하였다고 하는데, 이 늦은비 운동이 현재 신사도 운동의 원조가 되어졌다고 본다.(5)
늦은비 운동의 브래넘은 현재 신사도 운동이 주장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가르쳤으며, 브래넘은 통일교와 같이 하와와 사단이 섹스를 하여 가인을 낳았다는 교리를 주장하거나, 자신을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보내진 천사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그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 후계자들은 교통사고로 죽은 브래넘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특히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 백과사전’은 브래넘의 새로운 계시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브는 뱀과 성적관계를 맺는 죄악도 저질렀다. 어떤 사람은 뱀의 씨앗에서 출생하여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이 운명이 영원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씨앗, 즉 브래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이 신사도 운동이 주장하는 신부 운동의 유래가 되었다.(6)

2)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Kansas City Prophets Group)
1965년 윌리엄 브래넘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 늦은비 운동은 결국 와해되고, 거기에서 사역했던 폴 케인(Paul Cain 1929-)이 1980년대에 마이크 비클(Mike Bickle)과 밥 존스(Bob Jones)를 만남으로서 함께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Kansas City Prophets Group)이 시작된 것이다. 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은 마이크 비클이 세운 캔서스시티 펠로우쉽(KCF)이라는 교회로 시작되었으며, 1983년 마이크 비클은 밥 존스(Bob Jones)를 처음 만나,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의 본격적인 예언사역이 시작되었고 오늘날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의 예언사역으로 계승되었다. 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KCP)에 대해서 7년 동안 함께 사역했던 어니 그루엔(Ernie Gruen)이라는 목사가 1990년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였다.(7) 이것을 ‘어니 그루엔 레포트’(Ernie Gruen Report)라고 하는데, 이 보고서의 내용에 의하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은 모두 거짓 예언을 조작한 곳이며,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 폴 케인(Paul Cain)은 명백한 거짓선지자라는 것이다. 어니 그루엔이라는 동역자가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이 레포트를 발표하여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에 대해서 폭로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KCP(Kansas City Prophets Group)를 떠나게 되었고, 결국 KCP는 쇠퇴하여 몰락하게 되며, 후에 마이크 비클은 빈야드와 연합하여 빈야드교회로 명칭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8)

그들은 자신을 신격화하여 예언을 하면서 철새처럼 떠돌다가, 부흥이 일어난 곳이 있으면 찾아가 연합하였다가 또 다시 헤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물론 그들이 가진 이단적인 사상과 예언, 극단적인 신비주의는 포기한 적이 없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1960-1970년대의 이단들은 대부분 전도관(박태선)의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이, 신사도 운동의 인사들은 브래넘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브래넘의 제자들은 브래넘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폴 케인과 밥 존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브래넘은 7살에 천사를 만났다고 주장하였는데, 폴 케인은 8살, 밥 존스는 9살에 각각 천사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체 안에 의하면, 타드 벤틀리는 브래넘의 영을 갑절이나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되기도 했으며, 지금도 미국에서는 브래넘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9)

3) 빈야드 운동(존 윔버)와 토론토 블레싱(존 아노트)
빈야드 운동의 시조는 존 윔버(John Wimber, 1934-1997)이며, 소위 능력종교(Power Religion)라고 불린다. 그는 1970년부터 퀘이커 교회의 목사였다가 1974년에는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 연구소의 연구원이 된다. 그는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와 표적과 기사 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1977년에 애너하임에 빈야드교회를 개척한다. 윔버는 ‘능력 전도’와 ‘능력 치유’ 등과 같이 능력(Power)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1988년 피터 왜그너(C. Peter Wagner)는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발행하면서 빈야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신사도 운동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10)
1982년부터 환상과 예언 등의 선지자 운동에 주력하고 있던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를 포함한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이 몰락하자, 이들은 빈야드 운동의 존 윔버와 교분을 쌓은 폴 케인의 권유로 빈야드 운동에 합류하게 된다. 마이크 비클과 캔사스시티 선지자들의 예언 운동과 기적과 표적의 집회를 열었던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이 서로 연합함으로써 다시 부흥운동을 시도하였고,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과의 교수였던 피터 왜그너가 존 윔버를 풀러신학교로 초청함으로써 빈야드 운동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이들을 만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9년 봄에 나는 영적전쟁과 함께 예언사역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존 윔버(John Wimber), 신디 제이콥스(Syndy Jacops), 폴 케인(Paul Cain) 등을 다소 의심했다. 그러나 이들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깨닫게 해준 사람들이다. 예언이야말로 중대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11)

존 아노트(John Arnott)의 토론토 공항교회에서 시작된 ‘토론토 브레싱’(Toronto Blessing)은 분열된 또 하나의 다른 형태의 빈야드 운동이다. 존 아노트는 1988년에 토론토 공항근처의 교회에서 토론토 블레싱을 시작하였는데, 빈야드 운동에 비하여 더욱 격렬한 집회를 하였고 이를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게 된다. 토론토 블레싱의 영적체험 현상에 대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진동과 떨림 (2) 쓰러짐, 입신 (3) 술 취한 듯한 행동, 춤 (4) 몸부림 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 뒹굴기 (5) 웃거나 흐느껴 우는 현상, 짐승의 소리, 부르짖음 등.

존 윔버는 1988년 예언 운동을 받아들였다가 1991년에는 그 운동을 멀리했다. 존 윔버는 또 처음에 토론토 블레싱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거부하였지만(빈야드운동평가, 박영호, 기독교문서선교회, 78쪽), 오히려 그가 속한 빈야드교회연합회의(VCA)에서 1994년 9월 토론토 블레싱을 빈야드 운동으로 인정하게 되며, 그러나 이 현상의 지나친 조장을 억제할 것을 권하는 성명서를 10월 14일에 발표하게 된다. 1995년 존 윔버는 모든 공적지위에서 물러나며 만성적인 심장질환과 고혈압으로 죽는다(위의 책, 71-72쪽). 그 이후 빈야드 운동은 쇠퇴하게 되며, 피터 왜그너는 ‘신사도개혁운동’을 시작하고, 마이크 비클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들었다고 하면서 빈야드교회에서 ‘국제기도의 집’(IHOP)을 시작하게 된다.(12)

4) 지역귀신과 영적도해의 그룹
제1차 로잔회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많이 참석한 회의였지만, 1989년 제2차 로잔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과반수 이상이 오순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13) 그 회의를 통하여 피터 왜그너는 소위 영적도해에 대한 발을 내딛게 된다. 2차 로잔회의에서 소위 영적도해 사상들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왜그너에 따르면 당시 이 회의, 5개 팀의 워크샵에서 ‘지역귀신’들이나 ‘전략적 수준의 중보기도’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그 이후 1990년 2월 12일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첫 모임이 열렸는데, 참석한 자들 가운데 존 도우슨(John Dawson, 예수전도단 세계총재)과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등도 있었다. 피터 왜그너는 조지 오티스(George Otis),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등 몇 사람이 함께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라는 책을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그들의 글을 살펴보자.

피터 왜그너 : 【이 과정이 시작된 것은 흔히 2차 로잔회의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복음화 회의에서였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적어도 다섯 명의 연사들이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그 주제는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이었다. 나도 그 다섯 명의 연사들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교회가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엡 6:12)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그러한 ‘공중전’이 전 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 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14)

피터 왜그너 : 【악령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과 깊이 연관된 기독교의 연구조사와 사역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은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이다. 이 분야의 발전과 사역의 주도적 인물은 남부침례 외국선교회의 데이빗 배렛(David Barrett) 과 AD2000년 운동의 루이스 부쉬(Luis Bush), 파수대의 조오지 오티스2세(George Otis Jr)이다.】(15)

조지 오티스 : 【사람과 사단의 세력 사이에 맺은 고대계약들 중 많은 것들이 아시아에서 이루어졌고, 아시아는 현재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에 이 대륙이 지금 10/40 창문이라고 알려진 가장 복음화 되지 못한 지역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사람의 수와 그 계약의 기간은 영적세력의 지역적 참호와 영적 어두움 양쪽에 깊은 관련이 있다】(16)

이 지역귀신에 근거한 영적도해 사상으로 피터 왜그너는 풀러신학교에서 제명을 당하지만, 후에 인터콥과 예수전도단과 같은 선교단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국내외의 많은 선교단체들도 이러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 소위 ‘땅밟기 기도’와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게 된다. 학자들은 이러한 영적도해에 의한 귀신론을 ‘신귀신론’이라고 부른다. 총신대 심창섭 교수는 인터콥의 최바울의 사상을 비판하는 보고서에서 김성태 교수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

“루이스 부쉬의 10/40창문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곳 지역들이 가장 선교가 안 되고, 선교에 황무지인 것은 이 세상 신, 즉 지역 악마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복음의 서진 운동 즉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하게 될 때 전략적 선교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소위 21세기 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전략적 영적 전쟁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원래 ‘전략적 영적 전쟁’이란 피터 왜그너를 중심으로 한 소위 신사도 개혁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이론이다.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있어서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시지 못한 제한된 영적 피조물이기에 그의 졸개인 악령들과 더불어 세계의 중요 지역에 중심 거점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민속학에서 나오는 지역 수호신의 개념을 놓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17)

심창섭 교수가 비판한 내용은 인터콥의 김찬성 선교사와 대표 최바울(최한우) 선교사의 주장을 통하여서도 확인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인터콥 김찬성 선교사 :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운동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첫째의 방법은 10/40창을 위한 연합중보기도 운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현재 10/40창을 묶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향한 영적인 공중전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이 나아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강한 자의 세력을 결박하고, 전진하는 영적군사를 후방에서 영적인 포의 지원사격을 하는 것입니다.】(18)

인터콥 최바울(최한우) : 【또한 사탄의 세력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직경 3000Km 전체를 강한 어두움의 진을 형성하여 장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바로 거룩한 곳에서 앉아있는 가증한 것, 즉 적그리스도를 멸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마지막 어둠의 세력, 미운 물건, 즉 가증한 적그리스도가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세계를 호령하며 위엄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천군·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시어 적그리스도를 멸하고 인류역사를 마감시킬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봉쇄하고 어둠의 진을 치고 지금까지 있는 것입니다】(19)

5) 피터 왜그너의 신사도연맹
신사도 운동은 이러한 혼합과정을 거쳤다. 즉 브래넘의 늦은비 운동의 사상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으로 계승되면서, 빈야드와 토론토 블레싱과 연합되었고, 또 2차 로잔회의를 통하여 소위 지역귀신을 주장하는 영적도해 그룹이 의기투합하여 신사도 운동으로 출범된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2001년부터 제2의 사도시대가 개막되었다고 말하고 ‘국제사도연맹’(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 ICA)을 조직하여 신사도적 개혁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신사도연맹의 사도의회에는 체 안(Che Ahn/안재호),(20) 조지 바나(George Barna), 라이스 부룩스(Rice Brooks), 데이비드 캐니스트래치(David Cannistraci), 프랜시스 프랜지페인(Francis Frangipane), 잭 디어(Jack Deere), 존 에크하트(John Eckhardt), 테드 헤거드(Ted Haggard),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척 피어스(Chuck Pierce), …(생략)…로렌스 콩(Lawrence Khong)과 같은 인사들이 사도로 임명되었고, 후에 타드 벤틀리(Todd Bentley)가 사도로 임명될 때에 빌 존슨(Bill Johnson)과 존 아놋, 체 안이 기둥 사도가 되었으며,(22) 타드 벤틀리가 범죄전력과 성추문에 휩싸여 몰락할 때에 릭 조이너가 교정을 맡았다.

왜그너의 신사도연맹 외에 과거/현재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신사도 운동과 유사 운동의 인사로는, 하나님의 성회에서 독립한 ‘거룩한 웃음’의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 ‘거룩한 웃음’의 원조인 하워드 브라운(R. Howard Brown, 사망), 케네스 해긴과 베니 힌이 영향을 받은 치유사역가 캐더린 쿨만(Kathryn Kuhlman, 사망), 빈야드운동의 존 윔버(John Wimber, 사망), 토론토 블레싱의 존 아노트(John Arnott), 존 아놋과 사역했던 번영신학과 쓰러짐의 대가로 불리는 베니 힌(Benny Hinn), 신유집회의 부흥사 오럴 로버츠(Oral Roberts), 영적도해의 밥 베켓(Bob Beckett)과 죠지 오티스 주니어(George Otis Jr), 과테말라 엘샤다이교회의 부흥사 해럴드 카발레로스(Harold Caballeros), 펜사콜라 부흥의 죤 킬 패트릭(John Kil Patrick), Church on the way 교회의 잭 헤이포드(Jack Hayford), 목사가 600여명 이상이 가입되어있다는 CI의 빌 해몬(Bill Hamon), CI 본부교회의 목사이며 예언사역을 하는 탐 해몬(Tom. S. Hammon), ICA의 수석사도인 존 켈리(John Kelly), 우간다 부흥사로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다고 주장하는 존 물린디(John Mulinde), 곧 북한이 해방된다고 했던 모잠비크의 예언가 하이디 베이커(Heidi Baker), 베이커와 사역을 하는 슈프레쟈 싯홀(Suprise Sithole),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난다고 예언했던 데이비드 오워(David Owuor), HIM에서 체안과 사역하는 국제추수선교회의 루 잉글(Lou Engle), 금이빨 집회로 유명한 모아실 페레이라(Moacir Periera), 아이합에서 찬양을 했던 레위지파의 스캇 브레너(Scott Brenner), 예언적 중보기도의 캐더린 페인(Catherine Paine)과 라이언 와이어트(Ryan Wyatt), 예언적 중보기도의 짐골(Jim Goll), 성령을 마리화나로 비유하는 존 크라우더(John Crowder), 무속주의와 예언사역을 하는 페트리샤 킹(Patricia King), 피터 와그너의 부인 도리스 와그너(Doris Wagner) 등이 있다.

신사도 운동은 세상을 7대 권역으로 나누어 신사도 운동이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의 모든 분야에서도 통치적인 지배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그들은 ‘지배, 통치’(Dominion)라고 부르기도 하고 ‘킹덤 나우’(Kingdom Now)라고도 하며, 자신들을 종교개혁에 비교하며 기존의 기독교를 신사도 운동으로 대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왜그너의 주장을 들어보자.

“이 운동을 가리켜 내가 붙인 이름은 ‘신사도적 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이다. 내가 개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 운동의 전반적인 영향력이 개신교 종교개혁에 필적하기 때문이다.” (23)

그들이 즐겨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이며, 그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앞으로는 기독교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옛 포도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고, ‘헌 가죽부대’는 기존 기독교 교회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유대교와 비교하여 새 포도주와 새 부대를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존 기독교의 체제와 정통신학을 신사도 운동으로 교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제2의 사도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 포도주가 옛 포도주보다 더 좋은 것임을 믿어야 한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위해서 새로운 가죽 부대들을 연이어 만들어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가죽부대로 들어왔다. 이것을 나는 제2의 사도시대라고 부른다”라고 주장하였다(24)

한 때 피터 왜그너가 세운 지구촌추수선교회(Global Harvest Ministry)에서 주권운동의 7대 권역 가운데 시장권(Market place)을 맡았던 ICA(국제사도연맹)의 일원이었던 리처 델리(Richer Deli)는 피터 왜그너가 안수해서 사도로 세운 타드 벤틀리의 행위에 대하여 “이것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기획한 것으로 악령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요, 타드 벤틀리에게 안수를 받고 부활했다는 20여명의 이야기도 전혀 입증되지 않은 거짓말이었다”고 폭로했다.

제2장 본 론: 신사도운동의 이단적 사상

1. 피터 왜그너에 의하여 조작된 사도와 선지자

신사도개혁운동(NAR/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은 교회성장학자 피터 왜그너가 정의한 교회성장 이론이다. 피터 왜그너는 1998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왜그너 리더쉽 연구소/WLI’를 설립하고 자신이 대표로 있는 ‘국제추수선교회/GHM’에서 12명의 사도의회를 구성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도로 임명하는 등 새로운 사도의 출현을 선포하였다. 그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슬로건 아래 “약 1600년 동안 교회의 직분체제가 비성경적이었다. 신사도 운동은 새 술로서 21세기에는 신사도 운동이 1517년 루터와 칼빈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보다 더 큰 개혁운동이다.”라고 선언하고 2001년을 제2의 사도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이 진정한 새 시대의 사도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경을 짜 맞추고 있다(preformation). 신사도운동의 주도적 인물들은 자신들이 자칭 사도와 선지자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예언과 계시 행위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갖게 된다는 주장이다. 피터 왜그너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에베소서 4:11-12 말씀을 그 근거로 사도를 임명하였다. 이는 성경을 부분적으로 해석하여 ‘사도’를 하나의 은사적 직분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도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사도와 선지자는 비상(非常)직으로 신약교회의 기초(Foundation)가 되었던 직분이다(엡 2:20).
2)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고 부르신 자들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사도의 제자들이 사도라고 불리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직접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막 3:13-14, 갈 1:1, 행 9:15).
3)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그의 부활을 직접 본(목격한) 자이었다(행 1:21-22, 고전 9:1, 고전 15:7-9).
4) 성경은 자칭 사도와 거짓 사도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계 2:2, 고후 11:13).

신사도 개혁운동이 주장하는 것은 초대교회와 같은 사도가 지금도 있어야 한다는 제2사도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피터 왜그너가 만든 <12사도 연맹>의 사도들은 곧 초대교회 사도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평적 사도와 수직적 사도를 나누어 12사도 연맹을 통해서 사도들을 임명해 가고 있다. 이 수평적 12사도들은 피터 왜그너에 의하여 조작된 자칭 사도들이요 거짓 사도들임에 틀림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시대의 사도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며,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거나 새로운 시대에 나타날 사도들에 대하여 성경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는데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기 수하의 선지자들이 사도라고 예언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성경은 주님께서 친히 직접 임명하신 사도들 이외에 교회의 기초로서 사도가 더 존재한다고 언급하고 있지 않다.(25)

2. 극단적 신비주의 현상

신사도 운동의 집회 성격은 빈야드 운동의 집회와 동일한 방식의 집회로서 비성경적인 것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말씀에서 떠난 신비주의적 현상에 치우침으로 성도들을 왜곡된 신앙생활로 오도하고 있다. 금이빨 현상이나 금가루 현상이나 쓰러짐(일부러 넘어뜨리기도 함)과 입신, 짐승소리나 진동현상 등은 오늘날 많이 유행하고 있는 비성경적 신비주의 현상들이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도 미혹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적과 표적을 사용하여 왔는데, 성경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마태복음 24:24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라고 하였고, 데살로니가후서 2:9-10에서는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라고 하였다.
따라서 모든 기적과 표적을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할 수 없다. 표적과 기적 중심의 신앙생활은 말씀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권능과 능력이라 해도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극단적 신비주의적인 신사도 운동은 비성경적 형태로서 지극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3. 거짓 직통계시에 의한 신사도 운동의 무속적 예언 행위

최근에 한국에서 신사도적 신유집회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오늘 하나님께서 관절염에 걸린 사람을 다섯 명을 치료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한다. 이는 신사도 운동의 집회에서 흔히 듣고 볼 수 있는 일종의 직통계시로서,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 최근 많은 기도원과 교회들이 신사도식 집회를 한 후에, 성도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예언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교인들의 이름이나 생년월일, 혹은 세례날짜를 적어오면 장래 일을 점쳐주는 무당과 같은 곳도 있다. 주로 개인의 신후사를 예언해 주는 경우이다.

① 성경에서 미래의 점을 치는 행위는 절대 금지된 일이다(신 18:10-12, 렘 14:14).
② 예언의 성취가 없으면 거짓 예언이다(신 18:20-22).
③ 예언은 개인의 신후사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는 은사이다(렘 23:32, 고전 12:7-11).

신디 제이콥스나 밥 죤스와 같은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언이 틀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면 틀릴 수 없어야 한다. 마이크 비클은 “거의 대부분의 예언이 틀린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예언이 거짓된 예언임을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
2011년 3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26)에서, 마이크 비클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하게 들었던 것은 단 한 번으로 “기도의 집을 하라”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래의 주장과 같이, 그는 다른 책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는 상반된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결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방법으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나는 문자 그대로 두려워 떨면서 울고 있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세대에 이 땅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표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예언사역의 여정, 마이크 비클, New Wine, 42쪽)

“1983년 4월13일 수요일 저녁에 하나님과의 또 다른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적인 음성이 들렸는데, 이번에도 아주 명확한 음성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서 21일 동안 금식과 기도를 위한 거룩한 성회를 열라>고 말씀하셨다”(같은 책, 54쪽)

“아침 이른 시간에 침대에 누워있던 마이크 비클에게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후에 밥 존스 또한 그날 아침에 열린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초자연적으로 확증해주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10년 안에 <열방에 성령의 포도주를 부어주기 시작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같은 책, 293쪽)

개인적 신앙적 체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같이 자기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며, 이것이 신약성경의 계시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받은 직통계시를 성경의 수준으로 올려 놓는 것으로서, 위험한 사상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직통계시를 통하여 무당과 같은 개인적 신후사를 예언하지만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신비주의에 빠지게 하여 말씀을 떠난 신앙생활로 이끌어가는 위험한 행위이다.

4. 도미니온(Dominion) 속에 숨겨진 비성경적인 주권운동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신사도 운동은 세상을 7대 권역으로 나누고 있는데(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신사도 운동이 이 모든 영역을 통치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사도 운동의 주권신학(Dominion)은 세 가지 기본 신념에 입각하는데, 첫째 인간은 땅에 대한 주권을 사단에게 빼앗겼으며, 둘째 인간이 그것을 되찾아 세상을 통치해야 하며, 셋째 그 때에 예수가 재림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사도운동 비평가인 알 데이저는 도미니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한다:
1) 사탄이 아담과 이브의 유혹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이 땅에 대한 주권(지배권)을 빼앗았다.
2) 교회는 주권을 사탄으로부터 되찾아 올 하나님의 도구이다.
3) 예수는 "교회가 지구의 정치사회적 기관들에 대한 지배를 장악하여 주권을 확립할 때까지, 재림할 수 없거나 재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7)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지 “땅에 대한 주권을 주셨다”거나, 인간이 범죄한 후에 “사단에게 주권을 빼앗겼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창세기 1:27-28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대리적인 위임자로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을 뿐 하나님은 사단에게 통치권을 빼앗긴 적도 없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통치권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마귀가 하나님께 범죄한 후에 땅으로 쫓겨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되었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주권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은 모든 생물에 대한 다스림이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간에게 양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말씀하셨다. 신사도 운동이 세상을 7대 권역으로 나누어(정치, 경제, 미디어, 예술, 문화, 교육) 자기들이 이 모든 영역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주권이 확립될 때까지 주님이 재림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거짓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갖출 때 이루어지는 조건부적 재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은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사도운동의 통치신학은 위험한 인간중심의 비성경적인 이단적 사상이다.

5. 이단사상까지 포함하는 개방신학

신사도 운동은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정통 신학을 부정한다. 그 증거로는 피터 왜그너가 이단으로 정죄된 단일신론자들까지도 제외시키기를 원치 않았으며, (28) “나는 때때로 신학이라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신학이 대단한 학문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측면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을 바라보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미묘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신사도적 개혁운동과 관련된 대부분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와 달리 신학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29) 라고 했다.

계속해서 피터 왜그너의 글을 보자. “만일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어떤 일들을 인간의 결정에 맡기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지 그 분이 미리 아신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게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도박을 하는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미리 조작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열어 놓기로 결정하실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하나님 자신이 미리 알지 않기로 작정하셨다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 (30)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 Sr. 1917-)의 글을 보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고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의 삶 밖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수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31)
이러한 신사도 운동의 주장은 정통신학이 자신들의 행위나 운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비성경적 사상이나 행위, 심지어 이단 사상까지도 자신들의 운동에 유익하다면 모두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신사도 운동 스스로가 이단성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복음을 용납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6. 지역귀신론에 근거한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

영적도해가 시작된 것은 흔히 2차 로잔회의(1989. 필리핀)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복음화 회의에서였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다섯 명의 연사가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했는데, 그 주제는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에 관한 것이었다. 피터 왜그너도 그 다섯 명의 연사들 중의 하나였으며, 그는 교회가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엡 6:12)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공중전’이 전 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32)

신디 제이콥스는 영적도해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것은 복음의 확산을 방해하고 어떤 도시를 복음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단이 만든 침입로를 찾아내기 위하여 어떤 도시를 조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조지 오티스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도시를 사실 그대로 보게 해준다고 말한다 … 우리가 사단의 견고한 진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일 때 우리가 그 진들을 무너뜨리고 포로된 자들을 놓아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무기들이 들어있다"고 하였다.(33)

지역신 귀신론의 영적도해에 근거한 신사도 운동의 행위들에는 땅밟기기도, 대적기도, 선포기도, 동일시 회개, 예언적 중보기도, 백투예루살렘(Back to the Jerusalem) 등이 있다.

피터 왜그너는 주장하기를, “선포할 때에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어떤 것들을 이루어지도록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 우리는 하나님께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도록 명령해야 한다 … 예를 들면 나는 광우병이 유행할 때 독일에서 공적인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이 내게 광우병을 행하여 사도적인 선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2,500명이 모인 앞에서 그렇게 했고, 바로 그날이 광우병이 보고된 마지막 날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내게 주어진 권세로 그 병이 멈출 것을 명령했다. 그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34) 라고 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각 나라와 족속들이 자신들의 신을 섬기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을 하고 승패가 갈라지면 신의 승패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각 나라가 신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 지역을 다스리거나 주장하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신을 만들어서 우상으로 섬겼을 뿐이다.(고전 8:4-5) 각 지역에 신이 있다거나 그 신이 그 지역을 주관하고 있다는 사상은 비성경적인 사상이다.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헬라국 군이나 바사국 군’은 실제로 헬라나 바사를 다스리는 지역신이 아니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들로서 세상제국을 미혹하는 악령들이다. 이러한 악령을 땅밟기나 대적기도, 선포기도와 같은 방법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세상은 어떤 곳이나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영역이다. 단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는 지역일수록 사단이 더 강하게 역사할 수는 있다. 따라서 영적도해 사상, 즉 지역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사상이다. 또한 전도와 선교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그 지역의 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7. 짜맞추기(preformation)식 성경해석

신사도 운동의 특징은 임박한 종말론이며, 대추수(대부흥)와 함께, 신사도 운동의 교회에만 선택적으로 성취된다는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그들의 성경해석은 모두 알레고리칼(allegorical)한 해석과 짜맞추기(preformation) 해석일 뿐이다. 어느 성경도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거나 대추수(대부흥)가 남아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이단들은 자기들의 교리체계를 먼저 세운 후에 성경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짜깁기 하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다음의 예를 살펴 보자.

⑴ 요엘서 2:28-32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을 거슬러 올라가면, 1900년대 초에 감리교의 ‘거룩 운동’의 참여자요 방언파의 창시자인 챨스 파햄(Charles Parham)(35) 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요엘의 예언(욜 2:28-32)이 오순절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종말에 제2의 오순절(오순절운동)이 오는데, 이 때에 완전히 성취된다고 했으며, 그 표시가 바로 방언으로서 마지막 시대의 표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요엘서 2:23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비유로 해석하여, ‘이른 비’는 오순절 성령강림이고 ‘늦은 비’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현상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이 브래넘의 늦은비 운동으로 승계되었으며, 또한 아이합의 대표인 마이크 비클도 “요엘이 예언한 성령 부으심에 대한 약속은 베드로의 때에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 부분은 요엘서 2장과 사도행전 2장의 확연한 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엘이 예언한 것의 충만한 분량은 베드로의 때에 일부분만이 성취되었을 뿐,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36) 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엘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언한 것이며 그 성취임을 사도 베드로가 증거하고 있다.(37) (행 2:16 이하).

⑵ 마태복음 25:1-13의 열 처녀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 단체들은 유난히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심지어 ‘신부 운동’(Bridal Ident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신부라는 용어가 기독교의 용어와 같을까?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는 참된 우주적 교회와 그 구성원인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신사도 운동과 그 유사단체들이 주장하는 ‘신부’라는 용어는 자신들에게 적용시키는 배타적인 용어로서,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 대한 해석에서 그들의 의도가 드러난다. 열 처녀 모두가 그리스도인인데 그 중의 다섯은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만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기독교인들이며 나머지 다섯은 기름부음을 받은 신사도 운동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38) 그러나 성경의 열 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랑신부를 위한 들러리를 가리킨다.

또 그들은 기름을 성령으로 해석하고 성령을 기름부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기름을 성령이라고 직접 해석한다면 다섯 처녀는 성령을 사러 갔다는 말이 되고 만다. 열 처녀의 비유의 초점은 ‘기름이 무엇인가’ 혹은 ‘신부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열 처녀들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 처녀였을 뿐이다. 이 혼인잔치의 비유는 예수의 재림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라는 내용이 그 본질적인 의미다. 왜냐하면 열 처녀는 모두 졸았기 때문이다. 다섯 처녀는 미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였고, 다섯 처녀도 분명히 기름은 갖고 있었지만 신랑이 늦게 왔기 때문에(더디 올새) 그 기름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만일 기름을 성령으로 단정한다면 다섯 처녀도 성령을 갖고 있었으나 성령이 부족하였다는 이상한 해석이 되며, “부족한 성령을 누군가에게 사러 간다”는 주장은 이상한 내용이 되고 만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름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신랑이 늦게 온 것에 기인하며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예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교훈이다.

신부 운동을 주장하는 단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위험한 공통적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혼인잔치가 곧 가깝다고 하는 임박한 시한부 종말론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둘째는 이것을 신비적인 연합적 개념, 즉 이단적인 신인합일론(神人合一論)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연합을 한 몸이 된다는 성적이며 관능적인 육체적인 결합으로 비유하거나 상징하며, 특히 그들은 아가서를 풍유적으로 해석한다.
셋째는 신사도 운동을 주장하는 단체만이 신부가 된다는 배타적이며 제한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열 처녀의 비유와 같은 구절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다섯 처녀를 기름부음 받는 성령운동을 하는 자로 해석하고 기름이 부족한 다섯 처녀를 기존 교회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⑶ 계시록 5:8에 대한 해석

IHOP에서는 ‘하프와 보울’(거문고와 대접)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어떤 상태’라고 부른다. 즉 하프는 찬양을 상징하고 보울은 기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마이크 비클은 본문의 거문고가 하프(Harp)이고 금대접(Bowl)은 기도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기도는 금대접이 아니라 그 대접에 담겨져 있는 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대접(Bowl)은 무엇인가를 담는 용도 외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6장의 ‘하나님의 진노를 쏟는 대접’도 동일한 ‘Bowl’ 이기 때문이다. IHOP에서 ‘Bowl’ 이라는 단어를 어떤 특별한 임재상태의 개념에서 기도로 본다면, 요한계시록 16장의 진노의 대접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 이와 같이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래 이단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본문은 ‘하프와 보울’이라는 단어는 임재와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과 함께, 예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유일한 중보자임을 뜻하는 내용이다.

(4) 사도행전 15:16-17에 대한 해석

또한 이들은 24/7(24시간 7일) 찬양이 사도행전 15:16에 나오는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는 것이며, 다윗은 24시간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24시간 동안 계속 드리는 찬양과 예배를 기록한 내용이 전혀 없으며,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잘못된 해석으로서, 실제로 구약에서 성가대는 아침과 저녁으로 찬송을 하였다(대상 23:30).

그들이 인용하는 사도행전 15:16-17의 “하나님의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짓는다”는 말씀은 다윗의 장막에서 24/7 찬양과 예배를 드린다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말씀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고 구원을 받는 사건에 대하여, 바울의 보고와 베드로의 비평을 듣고 난 후에 당시 예루살렘의 최고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라는 아모스 9:11을 인용하여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운다”는 의미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백성이 함께 주를 찾는다는 뜻”으로 설명하면서, 이 말씀이 오늘날 성취된 것임을 확인시키는 내용이다. 결국 자신들의 교리인 다윗의 장막과 24/7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도행전 15:16-17을 가져다 붙인 것뿐이다.

(5) 사도행전 2:8-13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과 IHOP에서는 성령에 취하면 술에 취한 것처럼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그들은 집회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신사도 운동은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술취한 현상(Slain in the Spirit, 성령에 압도된 상태)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 근거로 사도행전 2:8-13을 제시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주어진 말씀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조롱을 하기 위하여 “새 술에 취했다”고 말한 것이지, 성령을 받게 되면 몸을 못가누고 술을 취한 것과 같이 되었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이것 역시 성경을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6) 에베소서 4:11-16에 대한 해석

신사도 운동에서 주장하는 것은 마지막 때 신사도적 교회에 주어졌다는 5중 직분이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다섯 가지 직분을 주셨는데 현재도 이러한 5중 직분이 교회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가들은 피터 왜그너가 세운 신사도연맹을 중심으로 사도를 세우고 선지자를 세운다. 그리고 사도시대처럼 지금도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하며 그것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에베소서 4:11-16은 교회의 5중 직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초대교회에는 감독, 장로라는 직분이 실제로 있었는데, 본문에서 실제로 없었던 목사라는 직분을 왜 넣은 것인가? 이것은 자신들이 사도요 선지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경을 짜맞추기한 것일 뿐이다.

에베소서 4:11-16의 내용은 반드시 있어야 할 교회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권면하면서 하나님이 여러 가지 은사 즉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부르신 것을 사역적 측면에서로 말씀하는 것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말씀이다.

8. 조작된 요엘의 군대(Joel's army)

신사도 운동에서는 요엘의 군대를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요엘의 군대는 이미 신사도 운동의 원조인 윌리엄 브래넘이나 폴 케인에게서 나온 것인데, 환상 중에 요엘의 군대라 불리우는 ‘이기는 영적 군사들의 엘리트 집단’(an elite company of overcoming spiritual warriors)을 보았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manifest sons of God)이요 ‘집합적 그리스도’(a corporate Christ)요, ‘인간아이 집단’(Man child Company)라고 한다.(39)
신사도 운동에서는 요엘의 군대를 ‘Jesus Army’ 라고 부르거나 ‘하나님의 군대’ 혹은 ‘추수군대’ 라고 부르며, ‘왕의 군대’라고 한다. ‘요엘의 군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며, 이 본래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두 사람이 주장하였던 요엘의 군대의 본래 의미는 아래와 같다. 그들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에 심판자로 나타나는 요엘의 군대 사상은 심각한 이단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첫 열매로서 죽음을 정복하는 사역을 시작하셨고, 요엘의 군대는그의 교회로서 그 과제를 성취한다.
둘째, 예수가 가진 능력과 권세를 오늘날 요엘의 군대인 교회가 동일하게 가졌으며,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를 요엘의 군대라고 하며 그를 통하여 죽음이 정복된다.
셋째,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가 마리아에게 성육신한 것처럼, 요엘의 군대는 집합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성육신된 자들이다.
넷째,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육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육신된 집합 그리스도 곧 요엘의 군대로 재림한다.
다섯째, 예수는 육체 안에서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 안에서 그가 세상에 있었던 것처럼 되어야 하고 우리가 성육신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그의 세상에서 계속되는 성육신이다. 예수의 재림은 육체를 가지고 가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합된 몸으로서 영적 재림이다.

‘요엘의 군대’라는 용어는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무서우며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욜 2:11)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세상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의 타락과 범죄를 심판한다는 말씀이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경고하고 촉구하는 의미로서, 그 날이 무서운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이다. 요엘의 군대는 말세에 나타날 하나님의 군대가 아니다.
특히 일부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성육신한 집합 그리스도, 즉 요엘의 군대로 영적재림(spiritual advent)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교리에 짜맞춘(preformation) 자의적인 성경해석이며 육체를 가진 변화된 몸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위험한 이단사상이다.

9.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오도한 임파테이션(Impartation)

신사도 운동은 안수를 통하여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다(impart)고 주장하며 ‘임파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분별없이 안수를 하고 있다. 특히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전이(transmission)시켜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성령을 나누어 주고 성령의 은사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아주 위험한 사상이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한 성령의 주권적 사역으로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안수해서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8:14-24을 보면 사마리아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 이것을 본 시몬이 돈을 드려 성령을 받는 권능을 달라고 사도들에게 요청했다. 베드로는 분노하여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 생각했던 시몬에게 심한 책망과 함께 회개를 촉구하였다. 시몬이 착각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성령을 받게 한다고 여긴 것이다. 신사도 운동의 임파테이션은 시몬처럼 자신들이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은사나 기름부음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고,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인치시고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안수로 성령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침해하는 위험한 사상이다.

‘카리스마’(은사)라는 말은 하나님이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물질적 축복이나(earthly goods) 비물질적(non-material) 영적 은사(恩賜/은혜의 선물)를 말하는데,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를 한글 번역성경은 ‘영적인 축복’으로 해석하고 영어성경은 ‘spiritual gift’로 번역하였다. 로마서 5:15-16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생을 은사(카리스마)라고 말한다. 은사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각 지체에게 나누어 주는 성령의 선물을 뜻한다. 성경은 성령을 주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의 주체는 성령자신이시며, 그 통로는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서 15:29이나 로마서 1:11에서 신령한 은사를 나눠준다는 말씀은 ‘성령의 전이(Holy Spirit Transmission)나 임파테이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받은 은혜를 로마 성도들에 나눠줌으로 서로의 믿음을 격려한다는 내용이다.

제3장 결 론

신사도 운동은 늦은비 운동의 브래넘으로부터 시작된 이단적인 집단의 사상으로서 그 사상이 캔서스시티 예언자그룹과 빈야드 운동, 토론토 블레싱으로 승계되어, 영적도해라고 하는 신귀신론과 접목되어서 신사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사도 운동은 피터 왜그너를 포함하는 좁은 의미의 사상에서 시작하여, IHOP과 CI등과 같은 유사 운동과 모방 운동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운동을 뜻한다. 그들은 자칭 사도요 자칭 선지자이며 자신들이 초대교회의 사도와 선지자와 같은 권위를 가지며 지금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자신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며 역사하신다고 한다. 자신들이 받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의 완전성이나 충족성을 부인하고 지금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의 교리는 정통신학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이단사상까지 수용한다. 그들의 교리와 사상은 성경을 조작하고 짜맞추는 이단들의 수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어느 경우에는 인본적인 지상천국의 건설, 사이비 종말론, 집합 그리스도과 같은 신인합일론(神人合一論) 등 매우 위험하고 황당한 이단사상까지를 포함한다.

심각한 것은 신사도 운동이 말하는 실제적인 적(enemy)은 보수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현재의 기독교 패러다임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기독교에 대해서 피터 왜그너는 ‘종교의 영’ 혹은 ‘사탄’이라고 부르며, 킴벌리 다니엘스는 ‘종교적 사냥개’라고 부른다.(40) 현재의 기독교를 뒤엎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사도운동은 비성경적 이단운동으로서 기독교의 대적자요 이단적 사상의 집합소이다. 따라서 아주 위험한 이단 혹은 사이비 단체로 규정하고 교류를 금지하고 참석을 금할 뿐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집회에 참석하거나 이 운동을 지지하는 교회나 단체에 대해서 각 교단은 엄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중략….

<참고문헌>
1)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 행크 해너그라프, 이선숙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9.
2) 『신사도 운동의 정체와 비판』 이인규 著. 대림문화사. 2011
3) 『도미니온』, 피터 왜그너, WLI. 2007
4) 『기도의 기술』, 케네스 해긴, 믿음의 말씀사. 2003
5) 『요엘서,』 마이크 비클, 드보라하우스. 2009.
6) 『예언사역의 여정』, 마이크 비클, 뉴와인. 2007
7) 『목사와 예언자』 피터 왜그너 著 도서출판 진흥. 2000.
8) 『기도하는 교회, 피터 왜그너』, 알돌기획. 1994
9) 『기도는 전투다』 피터 왜그너 著 명성훈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7.
10) 『방패기도』 C. 피터 왜그너 著 명성훈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11) 『너는 나의 친구라』, 밥 존스, 큰믿음. 2010.
12) 『왕의 나라』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1.
13) 『왕의 군대 the King's Army』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0
14) 『왕의 대로 the King's Highway』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0
15) 『세계영적도해 Global Spiritual Mapping』 최바울 著. 도서출판 펴내기. 2011.
16) 『백투예루살렘』 최바울 저. 도서출판 펴내기 2008.
17) 『어서오세요 성령님』, 베니 힌, 은혜출판사. 1996
18) 『주님 저에게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베니 힌, 열린책들 1993.
19)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피터 왜그너 김영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8.

20)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박영돈, IVP. 2011.
21)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변승우 著. 은혜출판사. 2007.
22)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 C. 피터 왜그너 著 홍용표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23) 『빈야드운동평가』, 박영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6.
24) 『세계 오순절성결운동의 역사』, 빈슨 사이난, 서울말씀사. 2004.
25) 『대적의 문을 취하라』 신디 제이콥스 著 고세중 옮김. 죠이선교회출판부. 1998.
26) 『기도의 배수진을 치라』, 피터 왜그너, 나눔터. 1996.
27) 『능력전도, 존윔버』, 나단출판사. 2004.
28) <펜사콜라 기적의 현장>, 이영훈, 국민일보사. 1997.
29) 『은사 예언자인가 광신자인가 아니면 이단인가?』 죤 맥아더. 생명의 샘. 1994.

30)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김재성 著. 킹덤북스. 2011.
31) 『일터교회가 오고 있다』 피터 왜그너. 이건호 옮김. WLI korea. 2008.
32) 『사도와 선지자 교회의 터』 피터 왜그너. 임수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0.
33) 『오늘날의 사도』 피터 왜그너 박선규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6.
34) 『다가오는 사도시대』 로저 샢. 고새중 옮김. 죠이선교회 출판부. 1998.

논문 / 보고서
1) 신사도 운동의 위험성(보고서), 정이철 2011.
2) 한국의 신사도 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 박형택. 2009년 합신총회보고서.
3) <빌 브라잇, 로렌 커닝햄, 피터 왜그너의 주권운동의 7권역> 교회와 신앙, 2006 전정희 기자
4)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by Orrel Steinkamp, D. Min 2009.9.13 <The Plumbine>
5) "Joel's Army"에 대한 Joel van der Merwe의 비판
6) <개혁주의 교회론을 통한 신사도 운동평가>, 문태성 석사논문, 2005년

미주
1) 피너 왜그너 『도미니온』, WLI, 2007. 에 나오는 신사도 운동의 7대 권역 지배사상은 늦은비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신학(Kingdom Now, Dominion)이 핵심 내용이다. 이 사상은 신사도 운동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사상이다.(도미니온, 피터 왜그너, WLI, 9쪽, 188-190쪽)
2) Mike Bickle이 세운 국제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으로서 24/7 365일 24시간 기도를 표방한다.
3) Bill Hamon이 창설한 크리스챤협회(Christian Institutes)로서 신사도 운동 단체이다
4) Rick Joyner의 Morning Star Ministry. Jim Baker의 헤리티지 사역을 인수받아 거기에 차림. 예언사역을 하는 신사도 운동가
5) 이인규 著.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 대림문화사. 2011. pp. 25-26
6) 행크 해너그라프 著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운동』, 부흥과 개혁사, PP. 257-258
7) 어니 그루엔(Ernie Gruen)은 켄서스 시티 예언자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그들의 만행과 비리들을 발견하고 거기서 이탈해 레포트를 작성 발표하여 그들의 정체를 드러낸 사람이다. 이 리포트의 원명은 ‘"Documentation of the Aberrant Practices and Teaching of the Kansas City Fellowship (Grace Ministries)"이었다.
8) 김재성 著.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킹덤북스. 2011. pp. 23-27
9) 이인규 著. 『신사도운동의 정체와 비판』 대림문화사. 2011. p. 25

10) 김재성 著.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킹덤북스. 2011. p. 63
11) 피터 왜그너 著.『기도는 전투다』도서출판 서로사랑, 1997. P. 44
12) 피터 왜그너와 마이크 비클은 빈야드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로 죤 윔버와의 관계상 문제가 발생하자 거기서 나와 왜그너는 “신사도개혁운동”을 시작하고 비클은 아이합(IHOP) 곧 “국제기도의 집”을 시작하게 된다.
13) 제1차 로잔회의는 1974년에 모였으며 보수주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참여하였다면 2차 로쟌회의는 1989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모였는데 과반수 이상이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자들었다.
14) 피터 왜그너 著.『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김영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8. p. 129
15) 피터 왜그너 著.『기도는 전투다』 명성훈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7. p. 179
16) C.피터 왜그너 著.『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 홍용표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p. 47
17) 심창섭. <인터콥의 사상도해 비판>. 2010. 심창섭교수는 인터콥에 대한 보고서에서 인터콥의 사상도해를 비판하였다.
18) 인터콥 김찬성 선교사가 2011.9.23 국민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19) 최바울 著.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도서출판 펴내기 2008. p. 405
20) 체 안(Ché Ahn 한국명 안재호). 한국인 2세 목사. 캘리포니아 패서디나(Pasadena)에 있는 추수반석교회(Harvest Rock Church)를 세웠다.
…(생략)…
22) 신사도 연맹에는 수평적 사도와 수직적 사도가 있는데 수평적 사도의 지도를 받는 사도들이 수직적 사도들이다. 기둥(기초)사도는 수직적 사도로서 수평적 사도의 지도를 받아 사도가 되어 일터 사도들을 돕는 자들을 말한다.
23) 피터 와그너 著『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김영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8. pp. 9-10
24) Ibid. p. 18
25) 박형택 목사. <한국의 신사도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 총회보고서. 합신 이단상담연구소. 2009.
26) 마이크 비클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2011.3)에서 IHOP의 예언자들의 예언이 2/3 이상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27) Al Dager, 著.『The Church In Dominion』 <Vengeance Is Ours> p. 44, 87
28) 피터 와그너 著.『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영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8. p. 198
29) 피터와그너 著.『도미니온』. WLI. 2007. p. 68-69
30) Ibid. p. 100

31) 케네스 해긴 著.『기도의 기술』. 믿음의 말씀사. 2003. p. 12. 케네스 해긴은 현존하는 오순절 지도자중 가장 영향력있는 신사도운동 인사이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캐넌(E. W. Kenvon. 1867-1948)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며, 캐넌의 긍정적 고백이론은 오순절 은사주의 안에 파급시킨 장본인으로서 침례교 목사이다.
32) 피터 왜그너 著.『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김영우 옮김. 쉐키나 출판사. 2008. p. 129
33) C. 피터 왜그너 著.『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 홍용표 옮김.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4. p. 92
34) 피터 왜그너 著. 『도미니온』, WLI 출판. 2007. pp. 170-171
35) 챨스 파햄Charles Parham 1873-1929)은 “성결운동”에 속한 부흥 설교자요 방언파의 창시자로서 늦은 비와 오순절의 연관성을 새롭게 연결시킨 사람인데 방언이 성령세례의 상징이요 마지막 날의 상징이라고 주장하여 빈야드를 거쳐 신사도운동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이른비는 오순절이 아니라 가을에 내리는 비이며, 늦은비(말코쉬)가 봄에 내리는 비를 뜻한다.
36) 마이크 비클 著.『요엘서』 드보라 하우스. 2009. p. 149
37) 김재성 著.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킹덤북스. 2011. pp. 30-32.
38) 김재성교수, IHOP과 마이크 비클의 문제점들, 미주크리스찬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8278
39) 김재성 著.『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킹덤북스. 2011. pp. 44-45
40) 킴벌리 다니엘스, <종교의 영으로부터의 자유>, p.169, WLI Korea



천국과 지옥

(16:19-31)

 

누가복음 16:19-31까지를 가리켜 혹자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터툴리안(Tetullian)과 암브로스(Ambross), 칼빈(Calvin)은 이것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본문에 거지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나사로입니다. 부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다이브스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많은 비유 가운데 이름이 나와 있지 않지만 거지의 이름이 나와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믿는 자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 품으로갔다는 말씀이 잘 가리킵니다(22). 부자는 믿지 않는 자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호화로운 연락한 생활을 하였다는 말씀이 증거합니다(19).

 

 

부자

 

부자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그는 자색 옷을 입었습니다. 이 자색은 로마 황실에서 전용으로 입는 색깔입니다. 자색의 빛깔은 깊은 시내의 고동 끝에서 조금씩 나오는 자연 색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옷 한 벌을 자색으로 온전히 물들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실은 자기의 권위를, 부자들은 자기의 부요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색 옷을 입었었습니다. 거기다가 고운 베옷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운 베옷은 이집트에서 직조를 했습니다. 마에서 가장 가는 섬유로 천을 만들었기 때문에 한없이 부드럽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 값을 칠 때에는 옷 무게와 금을 똑같이 달아서 금 값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고 그 고운 베옷을 입었는지 모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는 날마다 호화롭게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친구들을 불러모아놓고 자기 좋은 것을 원 없이 나누고 같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돈 많이 벌어 축재하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값진 옷입니다. 부자로서의 자기 과시를 옷,자동차,주택 등으로도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즐기는 생활입니다. 여가를 기분 좋게 보냅니다. 생의 목표가 그것입니다. 아침에 침상에서 일어나며 궁리하는 것이 오늘은 무엇을 하며 즐길까? 하는 것입니다.

호화로운 생활입니다. 분수 넘치게 사치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를 최대한 활용하여 남은 아랑곧 하지 않고 사치합니다.

 

 

거지

 

이에 비해 나사로는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나사로에게는 부스럼이라는 병이 있었습니다. 못먹고 병원 가지 못하니 병이 떠날 틈이 없는 것입니다. 질고를 지고 평생살았습니다. 그는 부자의 연회에서 남겨진 음식 부스러기를 얻어서 배를 채웠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는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그 문가에서 같이 음식을 나누던 개가 그 헌데를 핥아 주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나사로가 어떤 사유로 거지가 되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사람은 몹시 불행했고 고통받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22절에 보면 그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부자보다 나사로가 먼저 죽었습니다. 가난한 자는 빨리 죽습니다. 부자는 젊어서 몸을 녹용, , 인삼 등으로 많이 보호했기 때문에 숨이 안 끊어져 고생을 합니다. 나사로는 죽었으나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가마니에 둘둘 말아다 어딘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호화로운 장례식을 치루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사람은 다같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인 죽음입니다. 육신적 죽음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압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요 영원한 죽음 지옥에 가게 될 운명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육신이 죽으면 심판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됩니다. 사람이 죽은 뒤의 운명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죽기 이전의 상태와 죽음 이후의 일을 예수님은 가장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만 18회에 걸쳐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죽으면 두 길이 나타납니다. 간단 명료하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실을 설명해 줍니다.

 

  

23절에 음부 지옥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거기에 비해서 지옥에 있는 부자를 봅니다. 부자가 그 지옥 속에서 외치는 외침을 들어봅시다. 그는 첫 번째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서 내 혀를 적셔 주시옵소서." 그는 이미 지옥에 가서 분위기를 파악했습니다. 머리가 보통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지옥은 한번 빠지면 이미 결판이 났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안되는 곳임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그는 최소한의 것을 요구합니다.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서 내 혀에 대달라고...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얘야,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그것뿐만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서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단절이 생겼다. 그래서 갈 수가 없다."

이 사람은 생각이 깊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강청합니다. "아브라함이여, 내 아버지 집에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 다섯 형제만은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는 형제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아니라.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고 구원을 받아야 된다". 부자는 말합니다. "아브라함이여, 아닙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형님 전갈이라고 말하면 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말합니다"아니, 모세가 다시 살아나서 가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는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지옥의 중요한 요소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옥이 없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옥을 말하시는 분은 이사야도 아니고 예레미야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호세아도 아니고 아모스도 아닙니다. 세례 요한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지옥을 말합니다. 성경 전체를 보십시오. 지옥에 대해서 가장 심각하게 경고하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창조를 아십니다. 시작을 아십니다. 끝을 압니다. 인생의 높이를 압니다. 저 깊은 낮음도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그 분이 지옥의 실체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옥을 부정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몸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분이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죽어주신 그 분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자비가 끊어진 장소입니다.

 

두 번째로 이 지옥은 단 한 방울의 물의 자비도 끊어진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악인과 선인에게 햇빛과 비를 골고루 주십니다. 공평하십니다. 한없이 주십니다. 그런데 그처럼 흔한 물이 지옥에서는 단 한 방울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불 자체가 지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옥 불 같은 불 속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세 친구는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의 보호가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있었습니다.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 자체가 지옥이 아닙니다. 주님의 자비가 끊어져버린 장소, 단 한 방울의 물의 자비마저도 말라버린 장소가 지옥입니다.

 

  

지옥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지옥에서는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거기 들어갔던 이 부자는 다시 기회 없는 줄 이미 눈치챘습니다. 만약 기회가 있었으면 그 유능한 능력으로 아마 예수님이라도 로비를 해서 천국으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먼저 물 한 방울만 요구하고 있고 그리고 자기가 이미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 두 번째로 자기 형제들을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단절의 땅입니다.

   

지옥은 기억력이 되살아나는 곳입니다. 부자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다섯 형제를 분명하게 기억했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의 고통은 필설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지옥으로 빠져가는 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18:8-9)

 

  지옥의 고통의 길을 피하도록 하나님은 천국을 준비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복이 무엇입니까?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4)”


개혁주의마을/Grace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하나님의교회 신도 신천지 2배 이상”
진용식 목사의 체크리스트 … ‘우리 어머니 사진전’ 초청에 주의
2014년 10월 10일 (금) 12:59:21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단들의 성장세가 꺾일 줄 모른다.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의 신도수가 신천지의 2배 이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신천지는 144,000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 신도수가 30만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대표회장 진용식 목사)가 2014년 10월 9일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안상홍증인회, 안증회) 접근 여부를 판별하는 체크리스트를 공개했다. 진용식 목사 “하나님의교회 신도들은 이미 신천지 신도의 2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전국적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교회들을 적극적으로 매입하거나 경매로 낙찰 받아 십자가를 떼어내고 자신들의 집회 공간으로 활용하고 지역 포교에 열정적으로 매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 교회를 매입하거나 낙찰 받아 ‘하나님의교회’로 활용한다.

진 목사는 이어 “신천지와 동일하게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장 주의할 단체 중 하나가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일명 안상홍증인회다.”고 경고하고, 특히 “최근에는 ‘우리 어머니 사진전’을 열어 초청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체크리스트는 총 16개 항인데 1번~4번 중에 ‘예’가 2개 이상이면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의 접근 받았을 가능성이 높고, 5번~16번 중 ‘예’가 1개라도 있다면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의 접근을 받았다고 봐야한다는 것.

●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 접근여부 판별 체크리스트

1. 신학생의 설문조사를 하고 ‘어머니 사진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2. 부녀자들이 2인1조로 접근한 적이 있다.
3. 성경공부 인도자가 ‘십자가는 우상숭배’라고 말했다.
4. 성경공부 인도자가 ‘성경공부 사실을 남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
5. 성경공부 인도자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6. ‘확실한 증거’라는 전도 책자를 본 적이 있다.
7. 성경공부 인도자가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8.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유월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9. 침례를 즉시 받아야 한다고 해서 하얀색 머릿수건을 쓰고 침례를 받았다.
10. 성경공부 교사가 시대별 구원자가 있는데 성부시대는 여호와, 성자시대는 예수, 성령시대에 구원자의 새 이름이 있다고 했다.
11. 성경공부 교사가 ‘예수님이 육신으로 재림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12. 성경공부 교사가 ‘이 땅의 가족은 천국가족의 그림자’라고 말했다.
13. 이 땅의 가족에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있듯 천국가족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영의 자녀가 있다고 했다.
14. 자녀가 탄생하기 위해선 어머니가 반드시 필요하며, 영의 자녀들도 ‘어머니 하나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15.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다.
16. 다윗이 30세에 왕이 됐듯이 예수님도 30세에 침례를 받았다.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도 30세에 침례를 받아야 한다.

   
▲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리플릿

체크리스트를 공개한 진용식 목사는 “이단에 빠진 사람을 회심시키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단 예방은 한두 시간으로도 가능하다.”며 “접근 여부 판별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이단에 노출되지 않도록 성도들을 보호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체크리스트는 2013년 6월에 공개한 신천지 접근 및 복음방 체크리스트에 이어 두 번째이다.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는 장길자를 여자 하나님으로, 1985년에 사망한 안상홍을 남자 하나님으로 신앙하며,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었다(예장통합 2002/87회/이단, 예장합신 2003/88회/이단, 예장합동 2008/93/이단 등).

한편,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 측으로부터 총 6억 4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국민일보>가 10월 7일 단독입수 했다며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의 정관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 관련기사보기 )

<국민일보>는 “김주철 총회장은 종신제 총회장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하나님의교회는 정관 제5장 제28조에서 김 총회장이 입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지닌 ‘영구직’이라고 못 박아 놨다. 대외적으로는 장길자(71)씨가 ‘어머니 하나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 총회장이 조직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김 총회장은 지난 7월 국민일보에 6억4000만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장본인이다.”고 보도했다. 이어 “하나님의교회 측의 반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출처: 교회와 신앙

출처 블로그>생각하는 그리스도인 | calvianus

원문 http://blog.naver.com/calvianus/220059731665


 존 파이퍼

 존 파이퍼: 방언, 영적 언어인가 육적 언어인가? (John Piper: Speaking in Tongues)

 

출처 : 유튜브 http://www.youtube.com/watch?v=7K4sSTNvKu4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성경이 가르치는 그분의 속성과 사역을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신은 그들의 상상이 빚어낸 허구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만들고 그것을 사랑한다. 하나님은 시편 저자를 통해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50:21)라고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신과 성경의 하나님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거룩하심, 의로우심, 주권, 진노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혐오스런 표정으로 나의 하나님은 이렇지 않아라거나 나는 이런 하나님을 절대 사랑할 수 없어라고 외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은 성경의 하나님과 마주할 때 반감을 드러내며 강력히 거부할 수 밖에 없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3:19,20)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그분께 복종할 수 없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신과의 올바른 관계가 개인의 복종과 공로, 또는 신을 기쁘게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신념이다.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이 없는 한, 인간은 하나님께 복종하거나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7:14-24,2:4,5).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아무런 공포도 내세울 수 없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행위조차도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64:6).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를 개혁할 수 없다. 20세기는 인간이 더 위대하고 고귀한 피조물로 진화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혁신의 시대가 될 것으로 믿었지만, 절망과 혼란으로 귀결되었다. 성경은 인간이 영적으로 죽었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상태로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자기 혁신을 위한 인간의 시도는 무엇이든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번번히 실패로 끝날 뿐이다.

 

인간의 희망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희망을 붙잡으려면, 먼저 자신의 전적 무능력을 깨닫고 스스로에 대해 절망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복음 설교의 핵심 기능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부패한 본성에 속박된 채로 태어나 사탄의 노예가 된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공중 권세 잡은 자”,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고 있다고 증언한다(2:2).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사탄에게 지배받는 길을 선택했다. 회심 이전의 인간은 모두 마귀의 자녀로 불려야 마땅하다(요일3:8,8:44).

 

폴 워셔, 복음, PP 163-167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아바, 아버지!"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 성경말씀은 우리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으며, 그 영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종의 영은 헬라어로 “프뉴마 둘레이아스”입니다.
종은 그 주인에게 생사여탈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일반적인 해석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 종의 영을 받았지만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양자의 영’을 어떤 영어성경은 Spirit of son ship, ‘아들 됨의 영’으로, 또 어떤 영어성경은 Adoption, ‘양자로 삼는 영’으로 번역하는데, 헬라어 원어는 ‘프뉴마 휘오데시아스’이므로 “아들 됨의 영”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무래도 옳을 것 같습니다.
남의 아들을 데려다가 자기 아들 삼는다면, 죄인이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변경이 된다면 ‘양자 삼는 영’이 맞겠지요.
그러나 죄인이었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다면, 새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양자가 되며 ‘양자의 영’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계속 읽어보면 “양자의 영(아들됨의 영이 보다 합당한 번역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부르짖는 것일까요?
“아바 아버지”에서 ‘아바’라는 헬라어는 ‘αββα’로 두 알파 사이에 베타가 두 개가 쓰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바’ 보다는 ‘아빠’가 더 가까운 발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아들 됨의 영’ 안에서, 성령 안에서 “아빠, 아버지”라고 크락소멘, 부르짖는다, cry, 운다는 것입니다.
왜 헬라어 ‘크락소멘(동사원형은 크락소), 운다, 부르짖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갓난아기로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서 운다는 것입니다.
금방 태어나서 안 우는 아이 있습니까?
갓 태어난 아이가 울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성령 안에서 거듭 난 아기가 우는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

억지로 우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부르짖는 것도, 지어내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속으로부터 저절로, 억제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울음이요 부르짖음일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그 옛사람을 벗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 이 죄악 된 세상, 죽음과 멸망의 파도로 넘실대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멸망으로 끌고 가는 더럽고 무서운 죄에서 벗어나,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 부르며 우는 것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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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전통은 구별되어야 한다

 

바빙크가 그의 교의학에서 잘 지적했듯이, 교회의 전통을 성경보다 '위에' 혹은 동등한 '옆에' 두는 것은 중세 교회가 범했던 실수였고 악습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것을 개혁하여, 전통을 성경 '아래에' 두면서, 오직 성경을 기치로 내걸었다.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나온 교리조차도 저런 '전통'과 같은 것이라고 혼동을 해버린다면 그것은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즉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성경 '아래에' 두고자 했던 그 '전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교회의 전통은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과 구분되며, 반드시 성경 아래에 있어야 한다. 교리도 소중하다. 전통과는 다른 이유에서 소중하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소중하다. 따라서 이것은 성경 위에 혹은 옆에 혹은 아래에 두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교리는 항상 성경에서 비롯되며,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 따라서 교리를 배운다는 것은 곧 성경을 배운다는 것이다.

 

교리가 역사라고 하는 시간 속에서 다음 세대의 교회에 상속되면서 교회의 전통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출발점도 다르고 개념도 다른 것을 혼동하여 '교리와 전통은 배제해야 한다'거나, '교리와 전통을 배우기 전에 성경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교리와 전통에 대한 개념의 혼동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으로 돌아가기에 성경 연구를 통해 성경과 다른 점이 밝혀진 교리가 있다. 그 교리는 즉시 자기 자리를 상실하고 개혁된다. 그 위치에서 개혁되지 않고 버티는 교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다. 이처럼 교리를 만들기도 하고 개혁하기도 하는 주체는 오직 성경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전통을 만들고 그 전통을 따라 잘못된 교리를 고수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단과 사이비를 양산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따름이다. 이러한 개념조차 구분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교리는 성경을 가로막는 전통일 뿐이다.

 

차제에 우리는 역사적인 보편 교회가 고백해 온 신앙고백서와 그에 따른 교리문답서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문서들을 전통이라는 명찰을 붙여서 배제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 고백하는 역사적인 신앙의 내용들조차 무시하는 잘못된 관행을 낳을 뿐임을 명심할 일이다.

기독교개혁신보

http://rpress.or.kr/xe/index.php?mid=private&document_srl=362035

 

 
개혁주의마을/Grace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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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 4: 예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그리스도인은 예정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은 예정을 말하기 위한 확실한 기본 규칙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왜 누구는 예수를 믿는데, 또다른 누구는 예수를 믿지 않는지에 대해 예정론과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경건하고 호의적인 형제나 자매들이 예정론은 열정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교리 같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지 않는가? 혹은 그 교리는 모든 영적 열심을 흡수해 버리는 메마른 스펀지 같다는 말도 하지않는가? 그런 사람들은 예정론이 너무 이지적이고생기 없으며, 무익하다고 주장한다.

예정론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준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위로를 받아야 하며 구령을 위해 기도하고 소망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선택의 교리가 영화로운가? 예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에베소서 1장의  바울의 말을 통해 그 이유 다섯가지를 알아보자.

 

* 불변성

어떤 이유로 선택의 교리는 영화로운가? 그 이유는 불변성 때문이다. 에베소서, 혹은 다른 어떤 성경에서도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변경하셨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선택은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목적” (도르트신조 1.7)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항상 확고부동한 것으로 묘사된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의 특징이 바로 불변성이다” ( 6:17-18).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바꾸신다 주장했던 자들은 누구인가? 17세기,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선택을 가르쳤다. 이들 추종자들이 도르트회의에서 어떻게 선택의 교리를 거절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는지 귀를 기울여보자.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의 선택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일반적이고 명확한 선택이 있는가 하면, 특별하고 불명확한 선택이 있다. 결국 후자의 경우 불완전하고 취소 가능하며 비결정적이고 조건적이거나, 완전하고 취소 불가능하며 결정이고 절대적인 선택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에 이르는 선택이 있고, 구원에 이르는 선택이 있다. 따라서 구원을 위한 결정적 선택이 없을지라도 의로워진 믿음을 얻게 되는 선택도 있는 것이다.” (도르트신조 1항 오류의 거부 2)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한 약속을 어길 수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므로 역시 변할 수 있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고서 그들이 참된 구원을 받았으나 그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선택은 그 불변성 때문에 영화로운 것이다.

 

* 영원성

어떤 이유로 선택의 교리는 영화로운가? 그 이유는 영원성 때문이다. 예정은 창조 전에” (1:4) 일어났다. 우리는 투표를 위해 투표소를 찾거나 부재자투표를 하곤 한다. 어떤 일에 참견할 권리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이 있기 전에 오직 하나님만 계셨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창조 전에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으셨다. 그분은 영원한 분이시므로 그분의 계획 역시 영원했다. 우리를 향한 그  영원한 계획은 은혜로운 계획이었고,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딤후 1:9)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영화로울 뿐만 아니라 영감어린 가르침이다. 영원하고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특별히 당신을 향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는가?  

 

* 은혜로움

어떤 이유로 선택의 교리는 영화로운가? 그 이유는 은혜로움 때문이다. 바울은 성부 하나님을 찬양하는 중심에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1:4) 영원한 사랑이다. 우리를 예정하신 원인은 그분의 사랑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1:5). 때를 맞춰 우리는 우리를 향한 그 영원한 사랑을 알았고, 그분의 예정하신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 ( 1:5)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에 앞서서 그 사랑하시는 자” ( 1:6) 성자를 향한 사랑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도르트신조는 이런 이유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 당신의 의지는 주권적이고 선하며 기뻐함으로 가득한데, 이에 따라 순전한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셨다.” (도르트신조 1.7)

하나님께서 친히 이 영원한 은혜를 시작하시고 수행하시며 목적한 바대로 이루시는 것이지, 우리는 그 주체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선택” ( 1:5) 하셨고, “예정” ( 1:5)하셨으며, “그 뜻의 목적대로” ( 1:5) 이루신 사건이다. ‘목적’ (eudokian)이라는 단어는 선하신 기쁨’ (NIV; NKJV), 혹은 온유한 의도’ (NASB)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선택의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은 임의적이거나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모세가 신명기 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밝히고 있듯이,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가 월등히 많아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선택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어떤 이는 선택하시고 다른 이들은 선택하시지 않았는가? 좀더 개인적으로 말해보자면, 왜 하나님은 당신은 선택하시고 당신 외의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당신 안에 어떤 예지적인 믿음이나 그 믿음에 대한 순종, 거룩함 또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착한 성품이나 기질” (도르트신조 1.9) 등의 전제조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에베소서 1:4이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해,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기 때문이 아니란 것이다. 에베소서 1:5-6을 다시 읽어보자.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를 예정하심은 당신의 아들들로 삼기 위함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들들이 되었기 때문에 예정하신 것이 아니란 뜻이다.

한 설교가가 하나님께서 퍼레이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방송중계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 위치에서 하나님은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당신 앞을 지나는 모든 인간들을 보실 수 있으며, 그 가운데서 선택을 행하신다. 에베소서 1장은 이것을 하나님 안에서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시간이 시작되기 전(before time)에 선택하신 것이며, 시간이 시작된 후(in time)에 그 믿음을 보시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그러므로 죄인인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은 진정 영화로운 사역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 중에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찬양이 솟아나오는 것이다. “빚에 억눌린 자에게 이 얼마나 크나큰 은혜인지, 날마다 찬양하지 않을 수 없도다!”

 

* 명확성

어떤 이유로 선택의 교리는 영화로운가? 그것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1장의 송영은 우리에게 복 주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 1:4). 불특정한 무리를 언급하지 않고 나와 당신 같은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복 주셨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특정한 어떤 사람들, 믿음과 믿음의 순종으로 믿고 보존되는 사람들’ (도르트신조 1항 오류의 거부 1)이 예정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예정의 명확성이란 개인적이라는 뜻이다. 만약 예정이 불명확하고 집단적이라면, 우리 자신들이 예정에 포함되었다는 점을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사람들을 명확하게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칼빈은 바울이 에베소서 1장을 저술한 목적을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품고 열정을 북돋으며, 그 감사와 열정을 우리 안에 가득히 채우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 그리스도 중심성

끝으로, 어떤 이유로 선택의 교리는 영화로운가?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중심성은 우리 개혁파 신자들이 그 지식에 충분히 자라나야 할 영역 중 하나이다. 선택의 교리가 그리스도 중심적임을 잊은 채로, 우리는 예정을 너무나 자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에베소서 1장의 예정, 1-3장의 선택 교리, 4-6의 우리의 삶의 방식 등을 말하기 전에 바울은 그 모든 것의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삼았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v. 3)를 찬양하게 되었다.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v. 4) “그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를 복주셨다” (v. 6)고 말한다.

도르트신조는 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유효한 부름심을 통해 말씀과 성령으로 그들과 교제하기로 결정하셨다. , 선택하신 자들에게 참 믿음을 주시고 의롭다 칭하시며 거룩한 존재로 만드시는데, 그 뿐 아니라 성자의 교제 안에서 그들을 강력히 보존해 주신다.” (도르트신조 1.7)

이것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선택의 거울과도 같다는 의미이다.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과 강력한 사랑에 대한 지식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의심에 쌓여있다면, 유일한 치료책은 마치 거울을 응시하듯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러면 그분의 형상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선택받은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선택의 교리는 얼마나 영화로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우리는 찬양과 거룩함으로 이 교리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묵상할 때, 우리는 이렇게 찬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 1:3),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v. 6). 그리고 그 영광을 묵상할 때, 우리는 거룩을 추구하게 된다.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의 무리로부터 우리는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 (v. 4)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으로 부르신 것이다!  

 

가져온 곳 : 
카페 >(안산) 회복의 교회
|
글쓴이 : 김안식| 원글보기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순종은 생명이다!

     
     
      내가 처음 집례한 장례식은 어린 꼬마의 장례식이었다.

    우리 교회 한 부부의 첫아이였고, 조부모에게는 첫 손주였다.

    어느 날 그 집에 심방을 가서 보니 그

     아이는 부모의 말을 대놓고 무시했다.

    오라고 하면 갔고, 앉으라고 하면 일어섰다.

    부모는 그런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그저 귀여워했다.


    하루는 그 집 앞마당 문이 열려 있었다.

    딸아이가 마당을 빠져나가 길 쪽으로 가는 것이

    부모 눈에 띄었다.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딸아이는 주차해 둔 두 대의 차 사이로

    빠져나가 도로 쪽으로 달려갔다.

    “안돼! 돌아와!” 부모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딸에게 외쳤다.

    아이는 잠깐 서서 부모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돌아서서는 달려오는 차 쪽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차는 아이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터져 나오는 부모의 통곡은 그야말로 단장(斷腸)의 비애였다.

    그것은 한 아이가 부모 말에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음성이 들릴 때 반드시 즉각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 「하나님 음성에 응답하는 삶」/ 헨리 & 리처드 블랙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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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드릴 것은 사랑뿐이리/ 마야 앙겔루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더라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세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내가 목동이라면 당신에게 한잔의 우유를 드리겠고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에게 한 편의 시를 드리겠지만 나는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이기에 오직 드릴 것은 사랑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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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가지고 갈까? ♡°사랑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친구가 있고.. ♡°선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외롭지 않으며.. ♡°정의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따르는 자가 있고. ♡°진리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듣는 사람이 있다. ♡°자비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화평이 있고.. ♡°진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기쁨이 있으며.. ♡°성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믿음이 있고.. ♡°부지런함을가지고가는자는 가는 곳마다 즐거움이 있으며.. ♡°겸손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화목이 있다. ♡°거짓 속임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불신이 있고.. ♡게으름 태만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곳 마다 멸시 천대가 있으며 .♡°사리사욕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원망 불평이 있고... ♡°차별 편벽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마다 불화가 있다. - 작자미상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짧은 글 긴 여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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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주는 권면

 

많은 이들이 내가 너무 엄격하고 극단적이라고 크게 불평해 왔으며, 또한 지금도 불평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 그 비판받는 인간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없었음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신다.

 

단지 그 인간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을 참으로 증오하고 혐오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사실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도 가능하다면 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를 부르시고 기꺼이 은혜를 베푸시사 신비스런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심판 자리 앞에 서게 될 때, 과연 그가 맡기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이 너무도 컸기에 전혀 인간들의 눈치를 살핌 없이 주께서 내게 명하시는 대로 너무도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감히 고백하노니, 나는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한 일이 없으며, 인간을 기쁘게 하고자 노력한 일도 없고, 나 개인의 정욕 혹은 다른 이들의 정욕을 만족시킨 일도 없으며, 단지 내게 허락하신 은사를 성실하게 사용하여 내가 감독한 교회의 덕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을 뿐이다.

<자료제공: 생명의 말씀사 '청교도 인물사'>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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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Douglas MacArthur (1880-1964) was an outstanding figure in the events during

and after the Second World War.  In early 1942, when leading outnumbered United States

forces in the Philippines, General MacArthur prayed this prayer for his son Arthur

many times during his morning devotions: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1952년 5월)

내게 이런 자녀를 주시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시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 하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 날을 잊지않는 자녀를 내게 주시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아들에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맥아더장군의 기도문 에서>

 

 

A Father Prayer by General Douglas MacArthur (May 1952)

Build me a son, O Lord, 
who will be strong enough to know when he is weak; 
and brave enough to face himself when he is afraid; 
one who will be proud and unbending in honest defeat, 
and humble and gentle in victory. 

Build me a son 
whose wishes will not take the place of deeds; 
a son who will know Thee – 
and that to know himself is the foundation stone of knowledge. 

Lead him, I pray, not in the path of ease and comfort, 
but under the stress and spur of difficulties and challenge. 
Here let him learn to stand up in the storm; 
here let him learn compassion for those who fail. 

Build me a son 
whose heart will be clear, whose goal will be high, 
a son who will master himself before he seeks to master other men, 
one who will reach into the future, 
yet never forget the past. 

And after all these things are his, add, I pray, 
enough of a sense of humor, 
so that he may always be serious, 
yet never take himself too seriously. 
Give him humility, 
so that he may always remember the simplicity of true greatness, 
the open mind of true wisdom, 
and the meekness of true strength.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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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 Funston Golden Gate National Recreatio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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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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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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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올라
걸어온 길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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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된 기억들이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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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


삶의 날개는 시간을 접으며
욕망의 산물인 파도 위를 비상한다

비워진 하늘의 무게 밑에
임 그림자 드리우기 위해
팽팽한 긴장감을 얇아진 입에 털어 넣는다.

바람의 기억 저편에
별빛 서린 고혹한 눈동자가
낮아진 세월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대의 그 눈빛
알지 못했던 그때를

인제야


-글,사진/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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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재철 목사와 통일교세계재단(UCI) 문현진 회장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모습이 한 언론사 사진보도를 통해 알려졌다.(사진은 인터넷 화면 재촬영)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지낸 홍재철 목사가 통일교세계재단(UCI) 문현진 회장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자녀가 관련된 행사에 교계 지도자가 참석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홍재철 목사가 통일교 교주인 고 문선명 씨의 3남 문현진 씨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진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홍재철 목사가 참석한 이 행사는 한국글로벌피스재단을 비롯한 4백여 시민단체가 공동주최한 ‘2014 지구촌 평화실현을 위한 지도자대회’로 지난달 29일과 30일 이틀동안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진행됐다. 

글로벌피스재단은 문선명 씨의 3남인 문현진 씨가 설립한 단체이다. 통일교세계재단 UCI 회장을 맡고 있는 문현진 씨는 문선명 교주 사망 이후 통일교 후계 구도와 관련해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홍 목사가 참석한 행사는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지구촌 평화를 모색하는 행사로 알려졌지만, 행사를 주최한 단체가 통일교 일가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기독교계에서는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날 행사에는 22개 나라 외교공관장과 여야 의원, 6대 종단 종교계 인사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홍재철 목사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7대 종단 대표들을 초청한다기에 참석했을 뿐 행사 주최측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참석했다고 밝혔다. 

홍 목사는 또, 문현진 씨가 누구인지 모르며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행사라고 밝혀 참석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보수 신앙을 수호하겠다던 교계 지도자가 한국 교회가 경계하는 대표적 이단인 통일교 일가와 관련이 깊은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최경배 기자 / <크리스챤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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