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건강하게 살수 있는 지혜들 24가지

머리를 두들기라!

손까락끝으로 약간 아플 정도로 머리 이곳 저곳을 두들기라는 겁니다.
두피가 자극되어 머리도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져 학업성적이 향상되며,
빠지든 머리 카락이 새로 생겨나고 스폰지 머리(두피가 뜨 있는 상태)가 치유되며
머리카락에 산소와 영양분이 원활히 공급되므로 윤기가 흐르며 아름답게 됩니다.

눈알을 사방으로 자주 움직여라!

눈알을 좌우로 20번,
상하로 20번 대각선으로 20번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여 20,
시계 반대방향으로 20번,
손을 부벼서 눈동자를 지그시 눌렀다가 번쩍 뜨기를 20번 등을 하면
시력이 좋아지고 실제로 안경이 필요 없어져 버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눈을 혹사하여 눈이 굉장히 피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눈을 들어 멀리 푸른 숲 등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휴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콧구멍을 벌려 심호흡하라!

특별히 맑는 공기를 심호흡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알렉산드 로렌박사가 조사해보니
정신 질환자의 대부분이 가슴호흡만 하고 심호흡을 하지 않드라는 겁니다.
폐세포는 페록시즘이란 해독기관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각종 유해물질을 잘 처리합니다.
그러므로 심호흡을 하면 각종 유해 물질을 배출하여 건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머리가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져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게 되며
노인들은 치매를 예방할 수 잇습니다.

혀를 자꾸 입안에서 굴리라!

혀를 가지고
입천장도 핥고, 입 밖으로 뺏다 넣었다, 뱅뱅 돌리고 혀 운동을 하는 겁니다.
침은 회춘 비타민입니다. 침은 옥수라 했습니다.
평소 식사 때도 충분히 꼭꼭 씹어 먹어면
충분한 침이 들어가 소화 잘되어 건강에 좋습니다.
그러나 가래같은 탁한 것은 버려야 합니다.

잇몸을 맛사지하라!

손까락 6개로 잇몸을 눌러서 비비며 맛사지 합니다.
그리고 치아를 딱딱딱
위아래를 조금씩 두드려 주는 것이 치아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치아를 단련시키는 이것을 '고치법'이라고 합니다.

즐거운 노래를 부르라!

우울하고 슬픈 일을 당했을 때도
흥겨운 노래를 여러번 되풀이 마음으로 노래하면
기쁜 마음이 회복되고 생의 활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노래는 사랑과 행복을 깨닫게 합니다

귀를 당기고 부비고 때리라!

귀를 잡고 당기고 비틀고 부비고 때리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식욕을 억제하여 비만을 예방하거나 치료해 줍니다.
그리고 깊은 수면을 취하도록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신장, 비뇨, 생식기 계통의 기능이 활성화 되도록 돕습니다.

얼굴을 자주 두드려라!

손바닥으로 좀 아플 정도로 얼굴을 자주 두드리면 혈관계통이 활성화 되어
혈압, 동맥경화 등의 치료를 돕게되며, 혈색이 좋아져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
허리가 자주 아파서 못 견디는 분들은
코 바로 밑에 인중이라고 해서 홈이 파진 곳 을
두 번째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고 또 자주 문지르시면 효과가 있습니다.

어깨와 등을 맛사지하라!

어깨와 등은 스스로 하기 어려우니 가족이나 친구끼리 서로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머리 뒤쪽과 어깨는 스스로 지그시 누르고
엄지와 다른 손까락으로 움켜 잡으며 지그시 누르는
지압을 하면 피로가 풀리며 중풍을 예방하며
우리 몸의 각 장기들을 강화시켜줍니다.

배와 팔다리를 두둘기라!

배와 팔다리를 약간 아플 정도로 자주 두들기면
건강에 아주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화가 잘 되며, 피곤이 풀리고,
새로운 활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양쪽 무릎을 두 손으로 두둘기면 관절에 아주 좋습니다.

"곡도"를 강화하라!

곡도라는 것은 항문을 말합니다.
대변을 본 후 한 손 끝에 비누칠을 해서 흐르는 물로 항문을 깨끗이 합니다.
노인들 중에는 체온기를 항문에다 집어넣으려고 하면 헐렁헐렁해서 빠집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항문에다 체온기를 넣기가 어려울 정도로 항문에 힘이 있습니다.
죽을 사람들은 항문에 힘이 빠져서 열립니다.
그러므로 항문을 오무리듯이
당겨주는 풀어주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을 꾸준히 하면
성적 능력도 강화됩니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항문의 힘으로 사는 겁니다.

손바닥을 부딧쳐 박수를 치라!

소리가 나는 것이 싫어면
한쪽 손은 주먹을 쥐고 손바닥을 교대로 치면 됩니다.
손바닥을 힘있게 치면
한 번 칠 때 마다 약 4천개의 건강한 세포들이 생겨 납니다.

발을 자극하라!

요즘 발 맛사지가 유행이지요?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발바닥을 주먹으로 치고 발가락을 전후좌우로 돌리며 비틀고,
발까락 사이를 지그시 약간 아플 정도로 눌러 맛사지를 하며
발목을 돌려 운동하는 것은 심신의 피로를 풀고 활력을 주는데 좋습니다.
발바닥을 엄지손까락으로 지그시
이곳 저곳을 눌러 지압하면 숙면을 취하게 됩니다.

스트래칭을 하라!

두팔을 들어 깍지를 끼고 온 몸을 쭉 뻗어
좌로 비틀어 4~5초, 오른 쪽으로 비틀어 4~5초,
뒤로 젓히며 4~5초, 몸을 왼쪽으로젓히며 4~5초, 몸을 오른쪽으로 젓히며 4~5초
이렇게 반복하여 스트레칭을 하면
온 몸의 건육이 강화되며 신체에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걷거나 뛰어라!

걷거나 뛰는 것은 전신운동이며 운동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몸의 장기가 다 망가진 사람도 처음에 가볍게 걷다가,
나중에 체력이 강해져서 뛰면 온 몸의 장기가 다 다시 살아납니다.

골고루 먹되 소식하라!

의학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이나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육식은 적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동물이 죽으면 즉시 부패균이 증식되는데
1g의 육류 속에는 3천만에서 1억 이상의 세균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육식동물은
육류 섭취 때 생기는 독성물질인 요산을 분해시키는 효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효소가 없기 때문에
육류를 먹고 생기는 요산의 독성을 중화 시키기 위해서
알카리 예비물인 칼슘을 끌어내어 쓰기 때문에 골다공증 치아손상을 일으키며,
그리고 중화 작용중 생기는 칼슘 요산 결정체들이 체내 곳곳에 정체되어
통풍 관절염 활액낭염
류머티스 동맥경화 부종 요통 백내장 신장석 담석증 피부노화등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야체와 과일 등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미국의 한 보고에 의하면 순수 채식주의자는 동.식물성 잡식성에 비해서
암 사망률이 39 %나 낮았습니다.

깨끗한 물을 자주 마시라!

하루에 콜라 한병이면
일년에 대략 5Kg의 체중이 불어나기 때문에
콜라 좋아하는 미국인들에게 비만이 많습니다.

정수된 생수를 마시면, 혈액순환 촉진되며,
임파액의 활동 촉진되고, 생리적 포도당의 발생하며,
세포의 신진대사와 모관 작용이 촉진되며,
신장과 간장의 세척 작용이 원활히 이루어집니다.
생수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신진대사가 잘 안되고
점점 노폐물이 축적되어 빨리 늙게됩니다.
사람의 체세포는 16∼18 시간 정도에 분열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물을 마시고 있지 않으면 대사 산물을 청소 할 수 없게 됩니다.

즐거운 부부생활을 하라!

성행위하는 남녀의 기관은 전신의 골수, 근육, 신경, 혈관 등
각 조직 기관과 정신을 비롯해 심신의 모든 점과 선과 면이 포함된 곳입니다.
그래서 애정이 깊은 부부는 암과 각종 질병의 치유능력이 뛰어납니다.
사랑받는 세포들은 암까지 이길 수 있습니다.
한번 사랑을 나누면
72시간 동안 모든 세포가 행복해져서 활발하게 병균과 싸워 이깁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할 때, 프로스타그란딘 이란 물질이 분비되어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없애고, 혈관을 넓히며, 심근경색, 뇌경색을 치료해 주며,
정신분열증이나 치매까지 치료해 줍니다.
모든 사람의 손은 300에서 900 나노미터나 되는 전기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에
서로 어루만지며, 쓰다듬고, 주물르며, 사랑하면
신체의 면력기능을 강화시켜줍니다.

잘 자고 쉬라!

보통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7시간 정도 푹 자는 것이 좋습니다.
10시나 11시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 산책하거나
독서나 기도를 하면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하루를 살아 갈 때
짬짬이 차를 마시며 휴식을 하는 것이 건간에 아주 좋습니다.
미 육군에서 8시간을 계속 행군시킨 부대와
50분 행군 10분 휴식을 하게한 부대를 비교해 보니
휴식하면서 간 부대가 훨씬 멀리 낙오병 없이 갈 수 있었습니다.


두뇌훈련을 하라!

현재 미네소타 의과대학 신경과학과 교수인 김대식 박사는
"뇌를 알면 놀면서도 1등 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두뇌훈련 방법을 봅시다.

a)연결시켜 기억하라!
- 새정보와 이미 알고 있던 정보 사이에 연결고리를 연상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b) 양손을 사용하라!
- 뇌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오른쪽 뇌와 왼쪽 뇌로 나눠져 있습니다.
양손을 사용한다면 뇌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c) 잠자기 직전에 공부하라!
- 잠자기 전, 꿈꾸기 전에 외운 것이 더 잘 기억됩니다.
d) 외우지 말고 이해하라!
- 인간의 뇌는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작용하도록 진화해왔습니다.
뭔가를 배운다면 이것을 왜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지 뇌에게 잘 '설명'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 오래 사귈수록 나쁜게 TV다!
-텔레비전은 한꺼번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주기 때문에 뇌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 다. 문제는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 뇌가 새로운 정보를 능동적으로 얻고 처리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2~3 동안만이라도 텔레비전을 켜지 말아보면 전과는 다르게 머리가 아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f) 일상적인 것에 반대하라!
- 우리의 뇌는 변화를 즐깁니다. 틀에 박힌 단조롭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뇌가 싫어합니다. g) 여행하라!
- 여행은 뇌를 재충전하고 깨어있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국적인 곳을 여행할 수록 풍부한 자극을 경험하게 돼 더욱 좋습니다. 여행은 뇌의 환경이 결정되는 12세 전후가 지나기 전에 할 수록 좋습니다. 새로운 장소나 다양한 인종, 이국적인 음식들을 접하면 뇌의 활동에 도움이 됩니다.
h) 새로운 것을 먹어라!

-늘 먹던 음식보다 한번도 먹지 못했던 다른나라 음식은 뇌에 새로운 자극을 줘 일상생활에 지쳐 있는 머릿속을 상쾌하게 만들어줍니다.
i) 도전하고 배워라!
- 뇌는 도전을 즐깁니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거나 붓글씨를 써보거나, 모형비행기를 조립하거나,
도자기를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j) 남들따라 하지 말라!
- 뇌는 도전을 좋아하는 동시에 다른 것을 잘 따라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뇌가 배우고 기억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 하는 뇌의 명령을 거부해야 합니다.

기도하라!

기도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우리 속에 역사하도록 힘을 끌어드리는 겸손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의 염려와 근심을 맡겨버리고 자유할 수 있어서 건강에 좋습니다.

소리내어 웃으라!

정말 기뻐서 소리내어 웃으면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별로 웃습지 않는데도 손바닥을 치며 소리내어 웃으면
정말 기뻐서 웃을 때의 98%까지 효과가 있다합니다.
세계 여러 곳에 웃음치료(Laugh-Theraphy)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국 덴버에 사는 관절염건강해 지는 비결 24가지으로 온몸이 심히 뒤뜰린 어떤 사람은 유머가 있는 비디오를 빌려다 보며 의도적으로 웃으며 치료를 시도했는데, 무섭게 뒤틀렸던 팔다리와 관절이 회복되었습니다.

덕담을 나누라!

특히 칭찬하는 말은 행복을 증진시키고 용기를 줍니다.
덕담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밧줄이 됩니다.
인간의 모든 세포는 언어중추에 의해 98%지배를 받습니다.
불평대신 감사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명랑한 언어, 서로 격려하는 언어를 생활화 하십시오.
당신은 여러 행복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행복해지고 건강해 질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라!

요즘 처럼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때에 무슨 일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면서 보다 성실한 직무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줍니다. 그리하면 당신이야 말로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임을 알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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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사 (Pastors)

 

목사는 교회에서 일반적이고 영구한 직분ordinary and perpetual officer인데, 복음 시대의 예언자prophesying이다.

첫째, 그의 직무에 해당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백성의 입으로서 그의 양무리flock를 위해 또 양무리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6:2-4와 20:36을 보면 설교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목사의 직무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장로(즉 목사)의 직분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인데, 심지어 사적으로 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주심이 특별히 약속되었으므로 자기 직분을 회중에서 실행할 때, 그 가운데서 이것을 더욱 실천해야 한다.

둘째, 공적으로 성경을 낭독하는 것인데, 그 증거로는,

1. 유대교의 회당the Jewish church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말씀을 공적으로 읽는 것이 맡겨졌다.

2. 율법 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복음의 사역자들에게도 다른 규례들뿐 아니라 말씀을 나누어줄 광대한ample 책임charge과 위임commission을 받았다. 이사야 66:21과 마태복음 23:34에서 우리 주님은 그가 파송할 신약의 직분자들을 구약의 선생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셨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의무가 도덕적 성격의 것이지만the duty being of a moral nature) 그 정당한 귀결로 성경을 공적으로 낭독하는 것이 목사의 직무에 해당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셋째, 말씀의 설교로 양무리를 먹이는 것feed인데, 그의 말씀에 따라서 가르치고 설득시키고 책망하며 권면하고 위로해야 한다teach, convince, reprove, exhort, and comfort.

넷째,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교훈과 초보를 쉽게 제시하는 요리문답 교육을 하는 것catechise이니, 이것은 설교의 일부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다른 비밀들other divine mysteries을 나눠주는 것이다.

여섯째, 성례를 집례하는 것이다.

일곱째, 하나님 편에 서서 백성에게 축복하는 것이다. 민수기 6:23-26과 요한계시록 1:4-5(여기에서는 동일한 복과 그 복을 주시는 분이 명백히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사야 66:21을 비교하라. 이사야가 복음 시대를 예언하면서 말한 제사장과 레위인은 복음 시대의 목사를 가리키며, 따라서 목사는 그 직분으로 말미암아 백성을 축복한다.

여덟째,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다.

아홉째, 그는 또한 목사로서 양무리를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있다. 글 / Son Jae ik



2) <목사란?>

1645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함께 승인된 "교회정치모범"에 따르면,
행18:19, 24, 26.
행20:17, 25, 28, 30, 36, 37
계2:1-6
행15:2, 6, 22, 23절을 통해

목사직분은
1. 변론하는 자이며,
... 2.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학자이며,
3. 회당에서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풀어내는 자이고,
4. 장로들을 소집하는 자이고,
5. 성도들을 왕래하며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자이고,
6. 자신과 교회를 위하여 조심하는 자이며,
7. 성도들을 속여 자신을 따르게 하지 않는 자이며,
8. 함께 더불어 기도하는 자이고,
9. 모든 성도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이며,
10. 교회를 보호하고, 이단과 싸우며, 수고하고 인내하여 악한 자를 용납치 않고, 거짓 선지자를 구별해 내며, 게으르지 말고 회개하여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이고,
11. 노회와 총회, 대회, 당회, 공동의회와 같은 회에 참여하여 주님의 뜻을 드러내고,
12. 사도, 목사, 장로의 회를 존중하여 회의 다스림을 받고,
13. 회의 결정을 따라 순종하며,
14. 최선을 다해 성도와 회중을 돌보는 자

라고 규정합니다.

 

김종욱목사의 페이스북

목사/선교사, Evangelische Deutsch-Koreanische Gemeinde München e.V. (뮌헨한독교회) 그리고 뉘른베르크한인교회

출처: 개혁주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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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EA9134C8E13CFAF4336 
      남편당신얼굴입니다
      126EA9134C8E13CFAF4336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모두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 감기라도 호되게 앓다 보면 빗 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 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익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상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남편은 당신의 얼굴입니다. 아내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살수록 더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조화되어 함께 이루는 삶처럼 풍요로운 것은 없습니다. 어느날 화를 내고 말 다툼을 하더라도 애들 때문에 살지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요. 서로에게 가슴 아픈 상처가 되니까요...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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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헨리(Matthew Henry, 1622-1714)

2008.04.12 청교도 3세대

 

 Henry.gif매튜 헨리(Matthew Henry, 1622-1714)는 1662년 10월28일 영국 플린트셔에서 당시 국교반대론자였던 필립헨리(Philip Henry) 목사의 둘째아들로 출생했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학문성 결여로 고민하던 그는 1680년 장로교 계통의 학교로 발전한 런던의 이슬링턴 대학으로 옮겨 공부를 계속했는데 이 학교는 '반항대학'이라는 별명을 가진 학교로서 케임브리지 펨부르크 대학에서 온 유명한 토마스 둘리틀이 학장이었고, 부학장은 옥스포드의 크라이스트 대학에서 온 토마스 빈센트였다. 이 학교도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탄압으로 다섯 번이나 이 곳에서 저 곳으로 학교를 이전해야 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당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장로교 학교로 인정이 되고 있었다. 1687년 비밀리에 목사안수를 받고 1712년까지 체스터에서 목회했으며, 그후 런던 부근의 하그네이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718년에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체스터에서 매튜 헨리는 자기 집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 예배를 보았다. 아침에는 구약을 읽고 설명을 했고, 저녁에는 신약을 그렇게 했다.아마도 이 가정 예배에서의 설명이 그의 가족이나 이웃의 질문으로 수정을 가해진 형태가 그의 주석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토요일 오후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요리문답을 가르쳤는데 이는 그가 세례시에 행한 언약의 실현이라고 강조하는 성만찬에 참석케 하는 예비학습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그리고 모든 교구 안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해서 그들과 교제했고, 반경 30마일에 걸친 여러 곳의 교우들에게 설교하느라 1주일에 엿새를 사용하였으나, 주일에는 반드시 체스터의 자기 교회에서 설교하였다. 그 도시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서 나중에는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새로운 집회 장소를 지어야 했다.

 

매튜 헨리와 같이 정력적이고 지속적인 목회를 하고 또 자기의 교인들의 문제에 대해 그렇게 친근한 통찰력을 가진 목사로서 또한 그의 주석과 같은 방대한 걸작을 남겨 놓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 책의 주요한 부분들은 그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동안 성경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적용이 되고 시험을 이기게 하고, 믿음으로 사는 승리의 삶을 제공해주었는데, 그 원인을 찾자면 그것은 주님과의 끊임없는 깊은 교제에서 비롯되었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향한 그의 긍휼어린 관심과 양들의 깊은 내면의 요구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관심에서 그런 좋은 말씀의 해석들이 나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속보>미국 캘리포니아 풀러신학교 동성애클럽 인정
세계적으로 유명한 풀러신학교에서 동성연애 신학생들을 위한 그리고 동성연애를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LGBT Club을 학교에서 정식으로 인정하여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허락하였다.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클럽인 OneTablefuller는 풀러신학교 내에서의 공식 활동을 시작으로, 지난 해 탈봇신학대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Biola 대학교에서 동성애 학생들의 활동을 제한한 것을 거론하면서, 풀러와 같은 동일한 입장을 학교가 취하도록 촉구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관련 NBC 원기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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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에서마다 불행한 사람들의 웰빙을 돕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들린다. 그러나 이것을 어느 정도로 실천하는 것이 가한가? 테네시 클락스빌의 샌고연합감리교회(SUMC)에 갓 부임한 윌리 라일 목사는 과거 수년래 복음의 실천을 강조했지만 이 교회에 6월 23일 새로 부임하기 전전혀‘딴짓’을 했다.

라일은 지난 4월 샌고의 담임으로 확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뒤 새벽 2시에 과거에 꾸지 못한 색다른 꿈속에서 특별한 일을 하라는“하나님의 지시”를 받았고 만약 행하면 그를 도우시고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 불편함 속에서 참된 체험을 겪는 윌리 라일 목사.     © 크리스찬투데이

라일 목사가“정말 따르고 싶지 않은”그 지시는 클락스빌 거리에서 굶주린 홈리스로 살라는 것이었다. 집 없고, 돈 없고 친구없고 먹거리가 없는 삶이 어떤지 직접 체험해 보라는 것이었다. “네가 여태 가르쳐온 메시지를 직접 살아봐라”가 주된 내용이었다. “강한 믿음을 가졌다”는 라일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에 이 안락하지 못한 삶의 도전에 응하기로 하고 실천에 들어갔다.

라일의 아내인 수제트는 6월 17일 월요일 아침 다운타운 클락스빌로 남편을 데려다 주었고 라일은 그날부터 21일 아침까지 4일반을 홈리스로 살면서 홈리스들의 실상과 굶주린 가난한 근로자들의 심정, 그들의 영적/정서적 필요 등을 배웠다.

그가 배운 또 다른“불편한 진실”은 돈 많은 사람들이 홈리스들, 배고픈 사람들, 빈민들을 얼마나 경멸하고 낮춰보는가라는 점이었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홈리스들에게 친절하지 않아요”라고 라일은 현장실천 목격담을 말한다. “스스로 선택하여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상황 속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도 걷잡을 수 없고, 아무 것도 없는 홈리스들과 빈민들에게 말을 겁니다. 더 슬픈 것은 때때로 희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식량도 쉴 곳도 원해요. 하지만 그들도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찾아요. 과연 교회들이 얼마나 그런 그들의 필요를 찾아 돕는지 모르겠어요. 교회가 진실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면 그들로부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수 있다고 믿어요.”

홈리스로 거리에서 지내면서 라일은 생존에 필요한 중요한 것들이 뭔지, 누구를 믿을 수 있고 없는지, 먹거리를 어디서 얻는지, 어디서 자야 경찰에 잡히지 않을지, 어디서“맴돌아야 할지”등을익혔다. “거리의 사람들은 같은거리의 사람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아무나 믿고 대화를 나누진않아요. 당신이 누군지 왜 홈리스가 됐는지를 알고파 해요. 무례해서가 아니라 직설적이어서 그래요.”

라일은 이번에 배운 것이 과거알던 것이었지만 홈리스에게서 직접 듣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는 홈리스가 되자마자 배식사역장소인‘빵과 물고기’가 매일 한끼니를 나눠준다는 사실을 알고 가서 먹었고 정말 맛있고 젊은 봉사자들이 훌륭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라일이 잘 몰랐던 것은‘푸드 이니셔티브’라는 클락스빌의 프로그램이었는데 틴에이저들이 그룹을 지어 타운 둘레에서 각각 다른 배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푸드이니셔티브 소속 청소년들은 라일이‘빵과 물고기’에서 먹던 바로 그날 거기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 두 고교생은 나를‘선생님(sir)’이라고 깍듯이 불러주며 자신을 소개하고 악수를 했고요 내가 뭘 하는지 더 알고파 했어요. 그들은 날 존대하며 존엄하게 대해 주었어요. 우리의 미래 지도자인 그들은 심판관이 아닌 청지기의 태도를 갖고 있었어요.”
 
비록 라일이 가보진 않았으나 홈리스들은‘만나 카페’가 도움받기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들 말했다 . 또‘올드파이어하우스’(옛소방소)라는 곳에 관해서도 듣고 어느 아침 조반을 얻어먹으러 그곳을 찾아갔으나 단지 5명의 홈리스만 있기에 영문을 알아보니 그곳은 홈리스들에게 몇 장의 서류를 주면서 작성하도록 했다. “바로 그것이 아마도 사람들을 멀리 하게 하는 것인가 봐요. 하지만 나는 샤워를 했고 그 점은 고마웠어요.”
 
그는 트렌튼크로싱에 있는 그리스도교회가 주관하는 유니언스트릿의‘더 웰(우물)’에서는 큰 경험을 했다. 매주 수요일밤 훌륭한 만찬을 접대했고,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환영을 해 주었고 심지어 이발도 해 주었다.
 
그는 홈리스들이 왜 느리게 걷는지도 알았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이나 땅바닥, 나무바닥 위에
서잠자면서 온 몸이 결리고 상했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 또 하나는 경제난으로 수많은 가족들이 먹거리가 없어 굶주린다는 사실. 미국의 전형적인 “가난한 노동자들”인 그들은 한마디로 자녀들을 규칙적으로 먹일 충분한 돈이 없었다. “ 매주 125달러를 쓰는 남자를 만났어요. 월렌트가 100달러니까 나머지 25달러로 살아야 하는 거죠. 누가 그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수있을지.”

라일은 홈리스로 매일 겪는 일을 작은 일기책에다 써나갔다. 그것이 6월 23일 부임 첫 설교의 주제였다. 교인중 아무도 진상을 눈치 채는 사람이 없었고 단 4명만 알았다. 그날 이른 아침 라일은 오버코트를 펼친채 교회의 나무 아래 잔디밭에 누웠다. 수염도깎지 않고 머리도 부수수했다.
 
과연 얼마의 교인들이 그에게 다가와 음식을 제공하거나 에어컨이 있는 방에 이끌어주는지 알아보려했더니, 20명이 와서 도움을 주려했다. 그날 설교는‘몸에서 가장 덜 쓰이는 지체’(고전 12:12-15)였다. 심장과 마음처럼 겉보기에 가장 조용한 부분들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그는 풀이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가장 작거나 가장 덜 쓰이는 부분이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매주 한 시간만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가 설교할 동안 며느리가 그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었고 딸은 수염을 깎고 있었다. 그는 구두를 바꿔신었고, 그 오버코트 아래 주일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는 설교하는 도중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드러내었다. 그는 그날 아침 200명이 모이기 전, 홈리스에서 새목회자로 변신해 갔다.

“ 이건 무슨 그랜드쇼가 아닙니다. 모두가 내가 어떠 과정을 거쳤는지 알기를 원합니다. 내가 배운 것들, 그리고 내가 겪은 신체적/정서적 불편은 내가 앞으로 다루길 바라는 것들입니다. 나는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말한다. “샌고감리교회는 이슈와 해법에 관해 말만 하는 회중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동네의 문제 해결의 일부가 될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남을 돕고 살면서 손에 흙과 먼지를 묻힐 것입니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란 더 힘듭니다. 때때로 그것은 정말 불편합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진실을 보십니다.”

출처: 파워뉴스USA
수원중앙침례교회의 이상한 부지 매입
공시지가 40억 땅 80억에 매입, 8년 동안 손도 못 대…일부 교인, 배임으로 고명진 목사 고발
   
▲ 수원중앙침례교회 고명진 담임목사가 배임으로 6월 26일 검찰에 고발됐다. 고발 교인 측은 교회가 2005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청명산 일대 1만 8000여 평을 매입한 것과 관련해 개별 공시지가보다 두 배가량 비싸게 돈을 주고 매입해 교회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수원중앙침례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침례교를 대표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인 수원중앙침례교회의 고명진 담임목사가 6월 26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고발인은 같은 교회 장로와 집사로 총 18명이다. 고발 교인 측은 고 목사와 두 명의 장로가 공모해 교회에 약 80억 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 목사와 교회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어 논란이 될 전망이다.

고발 교인 측 "교회 짓기 힘든 맹지, 두 배 비싸게 샀다"

고 목사는 2005년 1월 2일 김장환 원로목사(극동방송 회장)에 이어 담임목사가 됐다. 그는 부임 이후 교회 부지 조성 사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6월 29일 열린 임시 제직회에서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에 있는 청명산 부지 1만 8000여 평 매입을 추진한다. 교회와 학교 등을 짓는다는 명목이었다. 이날 열린 임시 제직회는 교회 부지 조성 사업을 교회 발전위원회에 위임하기로 결의했다. 발전위원회는 장로회장, 남·여선교회장 등 전·현직 주요 기관장으로 구성된 기구다. 사업 진행 속도는 빨랐다.

발전위원회는 1주일 만에 약 1800평의 부지를 9억 5000만 원에 매입하고, 나머지 부지 매입을 위해 35억 원의 대출을 요청하는 등 적극이었다. 그 결과 교회는 1년 만에 청명산 일대 1만 8000여 평의 땅을 79억 5000만 원에 매입한다. 고 목사는 매입한 부지를 '꿈의 땅'이라고 불렀다. 교인들은 2006년 6월 28일 꿈의 땅을 찾아 '땅 밟기' 기념행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부지 매입을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인도 있었다. 고발 교인 측 임홍순 집사는 "부지로 들어갈 수 있는 진입로도 없고, 경사는 60도 정도로 매우 가파르다. 사실상 맹지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임 집사는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부지 구입의 목적은 교회 건축과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부지 구입에 들어간 금액도 논란이다. 당시 매입한 청명산 네 필지의 개별 공시지가는 40억 원 정도인데, 교회는 이보다 두 배 정도 비싼 79억 5000만 원에 사들였다. 고발 교인 측은 매입할 이유가 없는 토지를 사들여 제3자에게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게 하였고, 교회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고발 교인 측은 △교회가 토지 구입 당시 계약서와 영수증을 공개하지 않는 점 △부지(산 19-6)를 구입한 교회가 채권자가 되고, 토지를 판 공동 소유자가 채무자로 된 근저당권 설정 △특정 부지(기흥구 영덕동 141)가 명의 신탁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고발 교인 측은 2년 전부터 청명산 부지 매입을 둘러싼 문제를 교회 내부에서 제기해 오고 있다. 법원에 재정 장부 열람 등사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기각돼 본안 소송에 들어간 상태다.

고발 교인 측은 배임과 함께 발전위원회의 권한도 문제 삼았다. 침례교의 최종 의결 기구인 사무처리회(공동의회)를 거치지 않고 활동했다는 것이다. 고발 교인 측 이명길 장로는 "설령 사무처리회에서 위임을 받았다고 해도 발전위원회는 의결 기구가 될 수 없다. 사업에 관해 검토·건의만 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 측의 이야기는 달랐다. 사역조정실 백경선 목사는 수원중앙침례교회 60년의 전통과 관례를 언급하며 그 동안의 사업은 각 위원회에 위임해 진행해 왔다고 했다. 제직회가 발전위원회 등으로부터 결과 보고를 받고, 다시 제직회는 연말에 한 번 열리는 사무처리회에서 사업 진행과 결과를 보고해 왔다는 것이다.

고 목사, "절차 거쳤고, 교회에 손해 입히지 않았다"

   
▲ 고명진 목사는 고발 교인 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부지 매입은 정식 절차를 밟아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수원중앙침례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고명진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고발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절차를 밟지 않고 큰 사업을 시행할 수 없고, 교인이라면 누구든지 재정 장부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청명산 일대 부지 매입은 임시 제직회가 발전위원회에 위임했으므로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배임 주장도 부인했다. 부지 매입 과정에서 교회에 손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목사는 "(부지 매입 과정에서) 우리가 잘 몰라 속았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교회에 손해를 입히지는 않았다"고 했다.

8년이 지나도록 부지에 건물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는 지역 주민의 반발을 들었다. 고 목사는 "청명산 지킴이나 지역 주민의 정서가 (건물 세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당시 수원시장이 우리 교회 집사였다. 실제로 건축 허가도 났고, 법적으로 도로가 얼마든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고 목사는 세부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아보고 접근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고발이 진행 중인 만큼 회피할 마음은 없고 지혜롭게 풀어갈 것이라고 했다. 고발 교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회 내에서 그분들은 극소수다. 나쁜 분들은 아니다. 생각이 다른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했다.

수원시, "청명산은 임야, 개발 못 해"

그러나 수원중앙침례교회의 청명산 부지 매입에 관련해 공공기관과 일부 관계자들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수원시 도시계획과는 2008년 교회가 청명산 일대에 학교 입안을 제안한 것과 관련 불가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도시계획과 자문위원회는 △시설물이 설치될 수 없는 입지로 환경상 절대 보호지역이라는 점 △진입 도로 경사가 너무 높아 교통안전상의 문제가 있다는 점 △수목 상태 및 산림 훼손, 주민 반대 등의 문제점이 예상된다며 불가 결정을 내렸다. 수원시 도시계획과 한 직원은 "자문위원회의 결과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개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 목사가 언급한 청명산 일대 주민의 반발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인근 주민센터에 문의한 결과 청명산 개발 문제로 인해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다고 했다.

청명산 부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도 고발 교인 측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여기는 (청명산 일대) 개발 허가 자체가 안 난다. 임야라서 건설 허가받기가 어렵다. 옛날이면 몰라도 요즘엔 안 된다"고 말했다.

희년함께 고영근 사무처장은 교인들이 주장하는 '배임'에 근거가 있다고 봤다. 그는 "개별 공시지가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이 두 배 정도 차이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대형 교회가 로비와 압력으로 자치단체로부터 허가를 받고 산에 수양관 같은 것을 짓기도 하는데 이러한 목적이 아닌 이상 투기 아니면 배임에 해당한다고 했다. 고 사무처장은 "(처음) 땅 주인이 누군지 확인하고, 교회와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 소년법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구속된 소녀는 방청석에 홀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조용한 법정 안에 중년의 여성부장판사가 들어와
무거운 보호처분을 예상하고 어깨가 잔뜩 움츠리고
있던 소녀를 향하여 조용히 다정한 목소리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 힘차게 외쳐 보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라고.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는 나지막하게 “나는 이 세상에서...” 라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큰소리로
나를 따라 하라고 하면서

"나는 이 세상이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큰 목소리로 따라하던 소녀는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라고 외칠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작년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 등
범죄를 저질러 소년 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었고
이번에도 동일한 수법으로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판사는 소녀를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이 소녀가 작년 초까지 어려운 가정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반에서 상위권성적을 유지하였으며
장래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는데
작년 초 귀가 길에서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당시 후유증으로 병원의 치료를 받았고
그 충격으로 홀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되기까지 하였으며 소녀는 학교를 겉돌았고
심지어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판사는 다시 법정에서 지켜보던
참관인들 앞에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의 잘못의 책임이 있다면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과 우리 자신입니다.
이 소녀가 다시 이 세상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우리가 다시 찾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진 판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소녀를 법대 앞으로 불러 세워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는 두 손을 쭉 뻗어
소녀의 손을 잡아주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막혀 있어
이정도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구나.”


PS: 이 사건은 금년 4월에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소년 법정에서 16세 소녀에게 서울 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가 판결을 내렸던 사건으로
이례적인 '불처분 결정' 으로 참여관 및 실무관
그리고 방청인들까지 눈물을 흘리게 했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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휫필드 12 - 휫필드의 설교 연구 / 송삼용 목사

 

 

 

휫필드의 설교 연구  

 

송삼용/전주 서부중앙교회 담임목사

 

35.휫필드의 설교 연구

 

1)휫필드의 설교에 대한 소명

한 세기를 말씀의 불꽃으로 활활 태웠던 휫필드의 설교사역을 통해서 입증된 바와 같이. 그는 분명 평범한 설교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존라일(J.C.Ryle)이 휫필드를 가리켜서 설교에 관한 한 18세기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했던 것처럼, 그는 세기적인 탁월한 설교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휫필드로 하여금 그렇게 탁월한 설교자로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은 휫필드의 설교의 탁월성을 말할 때 그의 뛰어난 웅변력을 포함한 천부적인 자질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휫필드가 설교자로서 최상의 재능들을 골고루 갖추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그는 일찍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좋은 음성과 효과적인 의사 전달 능력, 설교의 태도와 동작. 그리고 어휘의 구사력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개혁 신학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라고 평가되어 온 '로이드 존스'가 정의한 바에 의하면, 설교란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스런 복음을 전달하는 연설이다." 그렇다면 휫필드가 아무리 뛰어난 웅변력과 설교자로서의 자질을 잘 갖추고 있었더라도 그러한 탁월한 연설의 능력만으로 한 세기의 설교의 정상을 차지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휫필드는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음을 느끼지 못하고 설교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그의 탁월한 설교는 성령의 능력과 뛰어난 웅변력, 그리고 천부적인 설교자의 자질 등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서 필자는 휫필드의 설교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휫필드의 설교에 대한 소명과 관점들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휫필드의 초기 생애 가운데서 발견 할 수 있는 ‘설교에 대한 소명과 확신'은 휫필드가 일생동안 설교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데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죽는 한 이 있어도 설교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죽기 전날 밤늦게까지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정도로 설교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실로 설교를 위해 살다가 설교 하다가 죽은 사람이었다. 그는 수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의 집회로 부터 소규모의 권면 설교에 이르기까지 34년동안 4만여 번의 설교를 강행했으니, 그야말로 '설교 인생'을 산사람이었다. 휫필드가 그와 같이 설교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소위 '설교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초기에 가졌던 설교에 대한 불타는 소명과 확신이 가져다준 열매였다. 필자는 휫필드의 설교에 대한 소명과 확신이야말로 그의 설교를 그처럼 활활 불태울 수 있었던 장작과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확신한다. 설교에 대한 휫필드의 소명과 확신은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휫필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설교자로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종종 목사 흉내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휫필드의 결단은 그의 초기 생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생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휫필드의 설교자로서의 소명에 대한 확신은 그러한 헌신의 결단에 의해서만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휫필드 자신이 나중에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밝힌 바이지만, 자신은 설교자로서기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확신하기 위하여 땀을 비오듯 쏟으며 수천 번을 기도했다고 고백한 말 속에서 , 그의 불타는 소명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 하나님께 수천 번을 부르짖으면서 자신의 소명을 확인할까! 휫필드는 설교자로서 그의 인생을 출발하기 전에 뼈를 깍고 살을 베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수천 번을 눈물로 기도하며 ,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는지를 확인함으로서 그렇게 열정적인 설교 인생을 사는데 견고한 기초를 세웠다.

 

둘째, 휫필드는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확신했다. 그는 최초의 설교를 마치고 자신은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설교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증언한 바있다. 휫필드는 처음 설교를 준비할 때부터 하나님의 성령의 권위에 의해서 붙들린 바 되었고, 자신의 영혼에 성령의 능력이 강하게 임한 것을 체험한 후 그 확신 가운데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휫필드는 설교를 통해서 한 말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하신 말씀이라는 확신 가운데 설교함으로서 영적인 권위에 사로잡힌 설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망으로 가득 찰 은밀한 기도가 있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한 주간에 40-60여 시간씩 수천. 수만 명의 군중들에게 설교하고 난 후에도 저녁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과 권세를 공급받기 위해서 기도로 씨름하면서 보낼 정도였다.

 

휫필드는 자신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무장할 때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휫필드는 자신이 설교할 때마다 청중들 위에 복음의 권세가 가득하며 ,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설교할 수 있었다. 휫필드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해서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설교자로서의 영적인 책임감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 외에 어떠한 교훈과 연설도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더구나 그는 여러 차례 말씀의 권세 앞에 거꾸러졌던 체험이 있었다. 따라서 말씀의 권세에 사로잡힌 바 된 휫필드는 일생 동안 그 말씀의 권세를 확신하며 설교함으로서 당시에 죄에 대해서 감각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던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휫필드는 설교자의 위대성을 확신했다. 휫필드에게 있어서 설교는 하나님의 부름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거룩한 사역이었다. 그는 설교의 사역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분명한 하나님의 소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거룩한 노동(hoIy labour)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그는 설교자의 위대성을 발견했다. 휫필드에게 있어서 거룩한 노동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군 천사도 부러워할 위대한 일꾼들이었다. 휫필드는 최종적으로 설교자의 길을 결단하기까지 그렇게 많은 날들을 기도와 번민으로 보냈다.

 

그 이유는 그토록 위대하게 생각했던 설교자의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한 두려움과 번민 가운데서 휫필드는 설교자의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했다.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설교 사역을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믿으면서 자신의 영혼과 몸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렸다. 휫필드는 설교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과 피와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고 설교사역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그는 설교자의 위대성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2)휫필드의 설교 준비

18세기 중엽 영국 전역과 미국에서 설교에 있어서 휫필드 만큼 많은 영향을 끼친 설교자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휫필드를 가리켜 영어권 설교 역사 가운데 최대의 설교자라고 찬사를 아끼지 아니한 이유가 바로그것이다. 그처럼 위대한 설교자 휫필드는 설교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휫필드의 설교준비는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휫필드는 광범위한 독서를 중단하지 않았다. 휫필드의 설교관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이고 긴박한 메시지의 선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준비 없이 선포하는 즉흥 설교는 아니었다. 대체로 휫필드는 탁월한 웅변력에 의존하면서 준비 없이 행한 즉흥 설교자라고 인식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휫필드의 뛰어난 웅변술 때문에 흔히 그의 설교 준비에 관한 부분들은 쉽게 지나쳐왔다. 하지만 휫필드는 옥스포드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가운데 무려 150편의 설교를 준비하려 했던 시도나 현재 출판되어 보존된 70여 편의 설교내용을 볼 때 그가 설교준비에 소홀히 했다거나 준비 없이 행한 즉흥설교자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심지어 초기에 그는 철저히 설교를 준비해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들을 정도로 설교 준비에 철저한사람이었다.

 

휫필드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광범위한 독서를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광범위한 독서는 다양한 주제와 소제로 읽어가며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실로 휫필드의 지식의 창고에는 항상 풍성한 메시지의 재료가 가득 차 있었다. 결국 그의 불같은 메시지는 이미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축적된 다양한 지식들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휫필드가 사람들에게 독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개발할 것을 권면하면서 추천했거나 언급한 책들은 약350여 권이나 될 정도였으니 . 그가 어느 정도 독서에 충실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휫필드의 사상과 설교의 배경이 광범위한 독서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휫필드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가 광범위한 독서를 중시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집중했던 책은 역시 '성경' 이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기쁨으로 행하였다. 그는 주로 헬라어 성경을 사용하면서 본문의 깊은 뜻을 찾으려고 했고, 설교에서도 종종 그것을 언급했다.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다른 사람들이 번역해 놓은 원문번역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 구절이나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의 편지에서조차도 헬라어를 인용했던 것을 보면 그가 헬라어에 능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휫필드는 또한 라틴어도 능통했기 때문에 라틴어로 기록된 신학서적을 종종 읽었다.

 

당시 순회 설교자들이 보통 설교자들보다 성경을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휫필드는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한 시간을 기도로 보내고 나서 5시부터는 매튜 헨리 주석 (Matthew Henry's Commentary)을 보면서 성경 본문을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성경 속에서 늘 기쁨을 얻었고, 성경을 통해서 위로부터 오는 능력과 새 생명을 매일 공급받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휫필드의 능력 있는 설교의 비결은 '기도‘ 와 깊이 있는 ’말씀연구'로 지속된 경건 생활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휫필드의 위대성은 그의 웅변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건에 있다는 평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다.

 

셋째, 휫필드는 말씀 한 절, 한 절을 놓고 기도로 준비했다. 이것은 휫필드가 가졌던 독특한 설교 준비 방식인데, 그는 영어와 헬라어의 각 단어와 행까지도 기도하면서 준비했다. 그래서 그 단어나 절 혹은 행의 기본적인 의미가 확인될 때까지 연구했고, 마음에 기쁨과 확신이 올 때까지 그것들을 위해서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사역의 길에 들어서면서 결단하기를 '어느 때 보다도 절제 있는 삶으로 자신을 기도와 말씀 연구에 전력하기로' 결단한 바 있었다. 휫필드는 장차 자신의 시적이 기도에 의해서 준비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설교준비에 있어서 말씀 한 절, 한 절을 위해서 기도로 준비했던 것이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늘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의 동행하심,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능력 있는 설교의 밑거름이 되었다.

 

넷째, 휫필드는 설교 준비에 있어서 버키트(Burkitt)의 주석이나 매튜헨리 주석(Matthew Hen교's Commentary)을 주로 참고했는데. 특히 후자를 집중적으로 인용하거나 의존했다. 지금까지 휫필드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매튜헨리 주석을 가까이 하고 종종 인용했다는 사실을 언급해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인용하고 의존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휫필드의 설교를 연구한 데이빗 크럼프(David Crump)는 휫필드와 메튜 헨리의 설교 윤곽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 휫필드가 어느 정도 매튜 헨리를 의존했는지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예에서 보듯이 휫필드는 이 두 설교에 관한 한 매튜 헨리의 설교를 집중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제시한 윤곽 뿐만 아니라 설교의 전체적인 내용을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전체적인 설교 윤곽이 유사하다. 둘째, 상당수의 증거 본문(Proof-text)들이 공통적이다. 셋째, 핵심 구절을 사용하는 것이 일치한다. 넷째, 일반적인 교훈이 일치한다. 다섯째, 사상의 전개가 일치한다. 이와 같이 휫필드는 그의 설교에서 매튜 헨리를 집중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휫필드가 매튜 헨리의 주석을 보면서 성경 본문을 한 구절 한 구절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연구하여 설교를 준비했다는 사실은 그가 설교준비 없이 일방적이고도 집중적으로매튜 헨리 주석을 의존했으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인 듯하다. 오히려 휫필드가 매튜 헨리를 그렇게 집중적으로 의존한 이유는 그가 청교도 사상과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경건한 주석가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휫필드의 설교 원고

휫필드는 교회 내의 설교보다는 야외 설교에서 그 기량을 더욱 발휘하면서 수만 명이 운집된 회중들에게 날마다 설교했다. 그러면 휫필드가 매일 한 두시간, 5-9회씩이나 되는 많은 설교원고를 어떻게 기록했으며 ,어떤 식으로 전달했느냐 하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앞서 휫필드가 설교할 때 준비 없이 행한 '즉흥설교자 라는 그동안의 인식을 비판하면서 그는 설교 준비에 철저한 목회자였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위의 질문과 관련해서 달리모아(Arnold A. Dallimore)는 휫필드가 설교를 시작한 후 약일 년 반 무렵까지는 준비된 설교원고를 읽는 식으로 설교했다고 말했다. 초기 몇 달 동안 행했던 휫필드의 설교 아흡 편의 원고가 그대로 책으로 출판된 것을 보면 이러한 견해는 그 타당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휫필드가 같은 설교를 몇 군데서 다시 반복해서 했다는 것도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는 그때마다 똑같은 설교원고를 읽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가 성직 안수를 받은 후 최초로 했던 전도서 4장 9-12절의 '공동체의 본질과필요성'(The Nature and Necessity of Society)이라는 설교는 나중에 런던과 브리스톨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달리모아(Arnold A. Dallimore)는 휫필드가 조지아 항해 이후부터 즉석 기도와 강론을 실행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설교 방식을 수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휫필드는 조지아 항해 이후에 원고를 읽어나가는 지금까지의 설교 습관을 깨뜨렸다. 필자가 보기에 그 이유는 자신이 초기 일 년 이상동안 수많은 회중들 앞에서 설교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이제 그의 눈을 더 이상 설교원고에 고정시켜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그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와 말씀 연구를 했다고 할지라도 종종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하여 밤늦도록 설교하면서 한주에 5-6편의 설교원고를 모두 기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 휫필드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설교원고를 기록하는 습관이나 설교스타일을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휫필드는 그때부터 이미 준비된 설교 원고를 의존하되 깊은 사상과 자유로운 언어에 기초해서 원고에 매이지 않고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빗 크럼프(David Crump)역시 그의 설교 원고와 전달방식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휫필드는 그의 초기 설교에서 설교의 모든 원고를 완전히 써서 그것들을 강단에서 그대로 읽었다‥‥둘째, 휫필드는 초기 야외 설교를 시작할 때도 전과 같이 설교원고를 계속해서 썼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을 읽어나가는 것보다 즉흥적으로 전달할 목적으로 그 원고를 이용했을 뿐이다. 그의 설교 스타일이 즉흥적인 탁월함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기간이었다‥‥셋째, 휫필드는 종종 설교를 즉흥적으로 했지만 그때는 나중에 원고를 다시 쓰기도 했다. 그 원고의 사본은 후에 친구들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다‥‥넷째, 휫필드가 원고를 전혀 기록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것들 가운데 몇 편만 청중의 한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가장 좋은 예는 1741년 스코틀랜드의 캠버슬랑(Cambuslang)에서 했던 그의 설교들이다.""

 

크럼프(David Crump)의 견해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나 전혀 원고 없이 설교했다는 네 번째 부분에 있어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라고 보여 진다. 왜냐하면 그는 이 부분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휫필드가 전적으로 원고가 없이 설교했다는 것은 설교 사역에 임하는 그의 태도와도 일치하지 않는 듯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의 견해로는 휫필드가 모든 설교 원고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철저히 준비된 원고는 소유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초기 설교원고에 의해 출판된 설교 내용들과 원고 없이 행해졌다는 후기의 출판된 설교의 내용들의 흐름, 조직, 사상, 분량 등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 차이를 거의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철저히 시간과 자신을 관리해왔던 그의 성품으로 보건데 아무리 자신이 능수능란한 설교자였다 할지라도 그 탁월함을 자랑하듯 아무런 준비 없이 강단에 서서 설교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휫필드는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독특한 성경 연구스타일, 곧 성경의 절과 구절의 원문을 세밀하게 연구한 독특한 스타일과 광범위한 독서의 량을 기초해서 자유자재로 표현하며, 능수능란하게 설교했을지라도 그는 분명 사전에 준비된 원고에 의해서 설교했다는 것은 결코 무리한 추측이 아닐 것이다.

 

로이드 존스(D.M.Lloyd Jones)가 휫필드를 가리켜 '즉흥설교자‘라고 한 것은 휫필드가 아무런 준비도, 원고도 없이 설교했다는 것이 아니고 천부적인 설교의 능력과 기량을 소유한 그가 원고에 의존함이 없이 자유롭게 설교했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말씀 | 1997. 12

 

 

2009.02.05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세대주의 신학 Dispensationalism
http://www.crosschrist.com/theology/systematic/54.html

1.세대주의 신학의 개념

1)일종의 성경해석의 방법론이다.

세대주의 신학(世代主義 神學)은 엄격하게 말해서 신학체계라기보다는 성경해석방법론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성경을 영적이나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떠나서 문자적 내지 여자적(如字的)으로 해석한다. 특별히 세대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들이 하나님은 불변하시나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하시는 계시의 국면이 세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2)전천년설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는 완전히 별개로 영구히 병존하는 체계라고 주장하는 신학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예외없이 모두 전천년설주의자들이지만 전천년설주의자들 모두가 세대주의자는 아니다. 세대주의자들과 역사적 전천년설주의자들과는 다르다.

2.세대주의 신학의 근원

1)고대신학에서의 세대주의의 근원

Justin Martyr(110-165)는 구약에는 상이한 하나님의 섭리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할례와 율법 이전에도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이 없어도 만족하셨다.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신 이후 할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필수적이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이후 안식일과 제의식과 율법이 필수적이었다. 그런즉 율법이 없었던 때와 율법이 있었던 때로 사람들을 다루어 오셨다는 것이다.

Irenaeus(130-200)는 하나님이 4개의 중대한 언약으로 인간을 대해오셨는데 구약의 3언약과 신약의 복음언약이라고 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 신약시대에는 은혜로 섭리하셨다는 것이다.

Augustine(354-430)은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던 세대와 그것이 적절하지 못한 오늘의 세대를 구분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다루어오셨다고 했다.

세대주의 학자 Ryrie는 앞에서 언급한 학자들이 현대판 세대주의자들의 양상은 지니지 못했지만 오늘날 세대주의 신학의 발전을 위한 원초적인 개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2)현대에서의 세대주의 신학의 근원

John Nelson Darby:
17,8세기의 근원으로서는 프랑스 신비가이며 철학자인 Piere Poiret, John Edwards, Isaac Watts 등이 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성경 전체의 역사를 5,6,7 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하나님이 각 세대마다 인간과 관계했던 주변들을 소개한다. 그렇지만 가장 현대판 세대주의의 모습을 확실하게 드러낸 인물은 John Nelson Darby(1800-1882)와 C. I. Scofield(1843-1921)이다.

John Nelson Darby는 인간적으로 천재였다. 18세기에 더블린 트리니의 대학을 졸업하고, 22세에 변호사가 되었으나 예수를 믿고 거듭나자 그 직을 사임하고 영국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는 결국 교회가 아닌 Plymouth Brethren을 형성했다. 일본의 무교회주의처럼 형식에 매이지 않는 예배참여와 특별성직제도 불인정과 규례 없는 교회생활을 강조했다. 그는 성경 전체의 세대를 7개로 구분하였다.

1.홍수 이전까지의 족장세대
2.노아세대
3.아브라함 세대
4.이스라엘 세대
5.이방인 세대
6.성령세대
7.천년왕국세대

C. I. Scofield:
역시 변호사이면서 성경학자인 C. I. Scofield는 1909년 The King James Version 연구의 스코필드 관주 성경을 인쇄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세대주의 신학을 시작했다. 그는 세대 구분을 7개로 하였다.

1.무죄시대
2.양심시대
3.인간통치시대
4.약속시대
5.율법시대
6.은혜시대(교회시대)
7.왕국시대

이를 교리학적으로 제시한 신학자는 D. S. Chafer인데 그는 세대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조직신학을 내놓았다. 그 후 강력하게 세대주의 신학을 전개시킨 낯익은 학자들로서는 무디성경학교의 교장이었던 James M. Gray, J. Dwight Pentcost, John F. Walvoord이다.

세대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신학교들로서는 다음과 같은 학교들이 있다. 달라스 신학교, 그레이스 신학교, 탈봇신학교, 웨스턴보수침례신학교, 무디성경학교, 필라델피아성경대학 등이다.

온건파 세대주의 신학자들로서는 독일 비댄이스트 Erich Sauer와 탈봇신학의 L. Talbot의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들 수 있다.

3.세대주의 신학의 주요교리

1)하나님은 세대에 따라 특별한 방식으로 말씀하여 오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함에 있어서 세대별로 구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해 오셨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요1:17은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것이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났다고 하였다. 모세 시대와 그리스도 시대, 곧 율법시대와 은혜 시대가 있다는 것이다. 롬6:14은 이젠 사람들이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다고 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 구약은 율법의 시대이다.

2)하나님의 가정으로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그런데 세대주의 신학은 하나의 세계를 하나님에 의하여 관리되는 가정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의 가정에서 하나님이 책임자로서 식구들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하면 식구는 그것에 순종해야 되고, 그 때에는 축복을 약속하는 것이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내리신다. 결국 시험(testing), 실패 (failure), 심판(judgement)의 체제였다. 여러 세대의 공통적인 체제가 그러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사람들은 믿음에 의하여 문제의 해결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구원은 언제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를 인함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우리는 안심이 된다.

3)성경해석을 문자적으로 한다.

문제는 성경의 해석방법에 놓여 있다.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누구인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반대할 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할 영역까지도 (예언서)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문자적인 해석 때문에 세대주의에 특별한 교리가 출현하게 된다. 그것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가 도저히 합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영원히 이스라엘로 남고 교회는 막간에 끼어든 것으로 영원히 교회로 남는다. 양자는 결합관계가 아니라 병존(竝存)관계이다. 양자는 연속관계가 아니라 분리관계이다.

구약에는 교회에 관한 예언이 전무하다고 주장한다. 신약교회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아니한 하나의 신비요, 비밀이요, 삽입이요, 추가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전했던 하늘나라는 신령한 교회적 의미의 나라가 아니라 구약 다윗의 왕국적 지상 나라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이 이러한 꿈을 지닌 그리스도를 배척하니 이스라엘의 지상나라는 부득불 연기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지상나라는 틀림없이 올 것인데 이와 같은 연기와 미래의 시작 사이에 끼어든 막간적 존재로서의 교회가 생긴 것이다. 사실 교회와 이스라엘의 지상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야곱의 육체적 후손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 비세대주의자들이 흔히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영적 해석하는 것을 만부당한 일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4)교회와 이스라엘을 본질상 판이한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교회관은 롬10-11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교회와 이스라엘을 본질상 판이하게 다른 것이라 주장한다.

a. 교회는 구약시대에는 알려지지 아니한 하나의 비밀이었다(엡3:1-9,골1:26). 이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방인은 유대후손이 아니지만 유대인과 함께 후사가 되는 것이니 이것은 이스라엘이 우선적인 입장이고 이방인은 종속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교회란 순수한 이방인도 아니고 순수한 유대인만도 아닌 양자의 합작이다.

b. 교회는 행2장이 있기까지는 시작되지 아니하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사람들을 연합하고 성령의 세례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환난 이전에 휴거함으로써 지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나 유대인은 아직 잔존한다(살전4:16).

c. 교회는 신약에서도 이스라엘과는 구별되는 것이라고 시종 언급되고 있다(고전10:32). 반면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관계는 신약시대에 가지 유효하다는 것이다. 잠시 이스라엘 나라가 연기되자 무료해서 임기응변식으로 교회라는 것을 두셨지만,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부여한 무조건적인 언약을 끝내 성취시킬 것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성취시켜 주실 일들은 무엇인가?

아브라함 언약(창12:1-3)에 의거하여 토지와 후손과 축복이 내려질 것이고, 팔레스틴 언약 (신30:1-10)에 의거하여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이고, 다윗 언약(삼하7:12-16)에 의거하여 메시아가 유대에서 나와서 왕국을 얻고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새 언약(렘31:31-34)에 의거하여, 모든 열방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축복과 사죄를 믿게 될 것이라는 것 등이다. 환난의 목적은 교회와 관련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과 관련된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이 환난 전 휴거설을 주장하는 이유가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4.평가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의 구원론에 대한 오해를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세대별로 인간과 접촉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구원은 결국 은혜에 근거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Harvie M. Conn은 오해를 한 듯하다. 콘은 율법시대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계시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사실 세대주의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세대주의란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 안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해석의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것은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 세대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도 양의 피로 구원을 얻었고, 신약에서는 예수의 피로 구원을 얻는다. 단지 상징과 실제 사이만 있을 뿐이다. 세대주의자들의 엄청난 과오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철저히 분리, 불연속, 병존관계로 보는 고집이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팔레스틴에 귀환해서 그때에 제사는 어떻게 드릴 것인가? 제사를 회복해야 할 것인데, 그때도 양의 피로 들릴 것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흘린 피는 어쩌자는 것인가? 이들은 상징과 실제의 관계를 무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교회를 위한 전제적 존재요, 수단적 존재요, 상징적 존재이다. 그에 비해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수단이 목적과 병존하거나 수단이 목적보다 더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 신랑으로서 그리스도가 만나는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교회이다. 이스라엘은 교회를 위해 역사로 존재했던 것이다. 하기는 신랑과 신부가 만날 때 이스라엘은 축하객이라고 세대주의자들은 주장하고 있으나, 혼인잔치의 주역이 중요한가, 축하객이 중요한가? 이들에 제시하는 성경은 엡1:10이다. 펌/정형수 교수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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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O, 음모? 아니면 풀어야 할 숙제?


▼ 러시아 총리 메드베데프 외계인 UFO를 인정하다

 

▼ 달에서 실제 UFO를 봤다는 올드린의 목격담을 방송한 KBS2

 

▼ 러시아 외계인 UFO 다큐 - 나치의 비밀 남극 기지

 

▼ UFO 기지로 추정되는 미스테리 위성사진!

 

▼ 나치가 UFO를 만들었다-1

 

▼ 나치가 UFO를 만들었다-2

 

▼ 나치가 UFO를 만들었다-3

 

▼ 시청자 베스트 UFO [1부-4부]

 

▼ UFO Sightings Area 51 Disclosure Shocking Insight on J-Rod Whistle

 

▼ Best UFO Sightings Of April 2013, AFO

 

▼ 허블 우주 망원경 (Hubble Space Telescope) 2010


  "의문 투성이인 지구촌 언젠가는 하나하나 베일이 벗겨지리라..."


 

모든 사람들의 장소(전도서 6:6) / 조지 휫필드

 

 

 

저는 재능있는 한 작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대단히 많은 책을 발표 하였으나 그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유익한 책들은 그가 50세가 지난 뒤에 쓴 것들입니다. 즉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판단력은 무르익어가며, 재능 역시 성숙하게 진보되어 갑니다. 젊었을 때 모아진 경험들은 인생이 쇠퇴하여 가면서 흰 머리가 이곳저곳에서 나기 시작할 때 보다 더 유용하 게 사용되게 됩니다. 사실 노인은 어린이의 두 배 몫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능이 너무 낮아 어린이의 두 배 몫을 하기는커녕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속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들을 반성하며 마음의 고통들을 성화(聖化)시켜 앞으로의 행동의 지표로 삼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경우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셨을 정도로 커다란 은총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크게 타락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본래의 신실함을 다시 가지게 되지 않았다면 “성도의 궁극적 견인”(final perseverance of the saints)에 대한 교리는 근거 없는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회개하여 다시 신실하여졌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전도서에 기록함으로써 그가 회개하였음을 입증하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를 읽어보십시오. 전도서는 어느 시대에서건 교회의 각별한 존중을 받아 왔습니다. 전도서란 전도자가 쓴 글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한 명의 전도자로서 이 글을 썼습니다.

 

본문이 인용된 전도서 제 6장은 우리의 현재의 상태가 성화되지 않으면 헛되고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한 괴물입니다. 이 괴물은 걷기도 하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 괴물은 하나님께서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주심으로써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으나 먹을 수 있는 힘을 받지 못함으로써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인간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사람을 “헛되이 악한 병”에 걸린 사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누리도록 내버려두는 늙은 욕심 많은 구두쇠에 대해 이 보다 더 인상적인 묘사가 있 었습니까 ? 솔로몬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그는 덧붙여 이야기하기를, 그러한 사람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하여도 그 자신을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참된 선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낙도 없이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낙태된 자나 오랜 생을 산자나, 젊은이건 늙은이건, 지위가 높건 낮건, 부자이건 가난하건, 자녀가 많건 적건, 자녀들을 위해 빵을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이건 자녀들에게 자주빛 좋은 옷을 업히고 훌륭한 음식을 먹이는 부자이건 간에 마침내는 다 한 곳으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는 질문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 역시 오늘밤 똑같은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져야 할 듯싶습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이 어째서 그러한 질문을 던졌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솔로몬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죽음이었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언급된 곳은 무덤입니다.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네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인류의 첫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하늘 아래 거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죽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즉 자범죄(自犯罪)를 범하지 않을 자들에게도 사망은 있어왔습니다. 아담의 죄된 상태가, 즉 원죄가 우리에게 전하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가장 큰 증거는, 방금 태어난 사랑스려운 아기가 또는 태어난 지 수개월 된 아기가 참으로 안타깝게도 어머니 앞에서 죽어버리는 것일 것입니다. 더우기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기가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면서 오랜 동안 안타까운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어버리도록 하였다면, 당신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이미 보았던 셈입니다.

        

런던에 있는 올해 약 32 세 가량의 제 친구 하나는 자녀들을 애지중지하며, 끔찍하게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조지아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 “자네의 우상은 아직도 죽지 않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가 애지중지하는 우상은 곧 죽어버릴 그러한 우상이라네.” 그 뒤 제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저를 보자마자, 제 편지가 도착되기 하루 전에 그의 자녀 한 명이 배설물을 입으로 토해낼 정도로 너무나 큰 고통으로 신음하던 끝에 죽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그는 자식이 그런 식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자신이 천 번이라도 죽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에게로 가 제발 그 아이를 빨리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고 싶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그처럼 고통을 겪다가 죽어버리고 마는 경우들은, 어린아이들도 세상에 나올 때에는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를 받기 쉬운 타락을 지니고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서운 증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값진 보혈이 그 아이들을 더러운 죄된 상태로부터 깨끗하게 하여줄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자녀를 일찍 잃어버린 분들은 제가 본문을 가지고 이야기하여 나갈 것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아이들이 간 곳으로 자신도 가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곳에서 그러한 분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있는 자녀들을 만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 리 모두는 똑같은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년기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중년기에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말년에 그곳으로 갑니다. 만일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빨리 그곳에 갈수록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여보면 심지어 솔로몬의 말도 반박할 수 있습니다. 즉 본문의 말씀을 다른 견지에서 생각하여 보 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한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흙 속이나 물 속에 묻히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게 됩니다. 이 심판은 우리들을 영원히 결정적으로 갈라놓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을 확대시켜 생각할 경우 우리는 그 본문의 말씀을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 국한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죽음과 함께 한곳으로 모두 가게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란,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란 어떠한 사 람들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제 그 물음에 대해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그 세례를 성년이 되어 받았건 어린시절에 받았건, 물뿌림으로 받았건 침례로 받었건 간에 하늘로 가게 된다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례가 중생을 필연적으로 가져다준다고 하는 생각을 저의 첫 번째 설교에서 공박하였을 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설교는 제가 약 25 세경에 또는 그보다 약간 뒤에 인쇄되어 발표되었읍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저의 견해를 반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오 히려 화체설(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을 믿고 싶습니다. 세례를 받았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이 성도라는 증거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 사람을, 세상과 육과 마귀와 전혀 싸우지 않으며, 대부(代父)나 대모(代母)가 그를 위해 약속한 말들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을, 그러한 사람을 어떻게 제가 참된 기독교인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결코 믿을 수 없읍니다. 차라리 저는 사제의 손에 있는 약간의 물이 바로 예루살렘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뼈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세례가 그리스도의 규례임을 명백히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년기나 유년기에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거듭나지 않음으로써 모두 다 한 곳으로 가게 될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저의 주장에 화를 낼 신실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그들을 영원히 목마르게 하면서 그을릴 무서운 불이 있는 곳이며, 그 불은 어떠한 물로도 끌 수 없는 그러한 불입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생생한 신탁들이 실려있는 전도서를 가지고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엄숙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후에 하나님과 영원히 행복하게 있게 되기를 바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듯이 저도 여러분들께 그렇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이라는 말을 이신론자(理神論者)들만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이라는 말을 하나님을 비웃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하지 않으며, 방탕한 간통 간음자들이나 인권 유린자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치 이마 위에 태양 빛으로 쓰여진 듯한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멸시를 받으실 분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채 죽게 되면, 거듭난 상태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게 되면, 모두 다 한곳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그곳으로 가고 있는 중인 분이 계신다면 오늘밤 하나님께서 그를 멈추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이제 저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이라는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교회 밖의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울타리 밖보다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 더 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합니다. 교회 밖보다는 교회의 안에 더 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성수(聖水)를 뿌릴 때 저의 이 말을 생각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고백자들 모두가 신앙의 소유자들은 아닙니다. 모든 신앙고백자들이 약속된 것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약속된 구세주를 가지고 있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 약속을 실제로 부여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약속된 것이나 또는 거룩한 약속을 마음속에 부여받고 있지도 않으면서도 구세주를 가지고 있다고 혀와 입으로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약속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서 외형적인 율법만을 지키며, 자기 자신을 의롭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너무도 고집불통이어서 자기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자기 자신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머지 않아 모두 믿건 안 믿건 간에 한곳에 가게 됩니다. 그들은 한 법정에 소집될 것이며, “일어나라 너희 죽은 자들아 심판을 받으라”고 하는 대천사의 목소리가 그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일어날 것이며, 모든 인류의 심판관이신 하나님의 아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신실하지 못하였던 자들은 모두 변명을 늘어놓으며 기꺼이 용서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을 면제받고자 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정죄받는 것을 면제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한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삶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따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만일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게 깨어있다면 등골을 오싹 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없는 곳에, 즉 저주받은 영혼들이 영원히 하나님과 서로를 저주하는 곳에,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잠시 생각하여 보십시요. 그러한 생각이 오늘밤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다가 지금 다시 나가고자 하는 경솔한 사람들을 일깨워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재에서 여러분들이 몰려들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여러분들이 서로 밀치고 들어오면서 일부는 장막 안이나 제의실(祭衣室) 안에, 다른 일부는 앞마당을 채우면서, 또 다른 일부는 입구에 서있는 것을 불 때, 내가 오늘밤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나는 이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흐느껴 울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수많은 귀중한 영혼 들에게 실질적인 방법으로 진지하게 설교함으로써, 그들을 나 자신에게가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분노를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그 분노를 피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도와주고자 합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귀처럼 산다면 우리는 우리가 죽었을 때 영원히 마귀들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목사는 저에게 어느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였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뉴잉글랜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종교적인 문제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 여자가 임종 직전에 있을 해 한 신부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죽었을 때 어디로 가기를 바라십니까? 그녀는, 나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신부는 다시, 당신은 당신이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가든 상관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네, 저는 제가 어디로 가게 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신부가 물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에게 당신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할 선택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지옥으로 가겠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답에 신부는 놀라, 당신 마쳤어요? 당신 지옥으로 가고자 한단 말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예, 저는 지옥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읍니다. 그래서 신부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 나의 모든 친족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신부는 그녀가 죽은 뒤 한 설교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친족들이 지옥에 있기 때문에 자신도 그 곳으로 가겠다고 한 그녀의 말이 놀랄지 않느냐고 물었읍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친족들이 모두 그곳에 있고, 그들의 아버지인 마귀도 그곳에 있으며, 모 든 저주받은 천사들과 악령들 역시 그곳에 있으며, 그들의 형제 자매도 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모두 한 길을 걷고 있듯이 이 후의 세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두 한 곳으로 추방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이 슬픈 사실을 더 이상 논하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은 생각만 하여도 우울해집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오. 그들이 가는 곳과는 다른 장소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모두 가게 됩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 일부는 이곳에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들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눈을 감기고, 실질적인 이별이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소리 대신,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부자와 나사로의 경우를 보여 주셨습니다. 부자는 결국 무덤 속에 묻히게 될 자신의 몸을 살찌우고 향락시키면서, 일년에 하루도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문 앞에서 굶주리다가 아마도 도랑에 묻혔을 것입니다. 파렴치한 부자 역시 죽었으며, 화려한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장례식이 치러질 때 그는 두명의 상여꾼이 들고 가는 관속에 누워 있었을 것이며, 저주받은 마귀들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 때문에 눈을 떳습니다. 여러분 그의 고통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잠시 제가 말을 멈추고 있을터이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요. 사악한 자들이여, 여러분 형제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요?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도하고자 하지 않았으나 지옥에서 하나님에게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간구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저주받은 자들은 천국에 있는 자들을 지옥에서 바라보면서, 그들이 잃어벼린 천국이 어떠한 것이며, 그들이 버린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시며, 그들이 상실한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이 여러분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걸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 사람들 속에 들어간다면,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고통을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말의 의미는 새로운 삶의 원리를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받아들여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말과 새로운 행동과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되어 옛것들은 모두 버리고 우리의 영혼 속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뚜렷하게 밝혀져 있음을 대단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커다란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저는 여러분께 빈번히 말씀드려왔읍니다. 그러나 저는 예언자냐 예언자의 아들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영광을 위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과 권능은 이 땅에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무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무시하는 자는 화있을진저!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하면서 파멸해 갑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을 중시하는 일부 복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영국과 스코틀랜도와 아일랜드와 웨일즈와 아메리카의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권능을 존중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사람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 사이를 흐르고 우리들에 의해 찬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을 고의적으로 경멸하면서 성령의 권능에 대한 교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양심의 자유의 보루인 신앙의 자유 밑에서 제각기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탄생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세상이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건 기울이지 않건간에 우리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조작된 거짓된 우화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이 보아온 것, 우리의 손이, 만져온 것, 우리의 마음이 생명의 말씀에 의해 느끼게 된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가 16 살이었을 때 저는 일주일에 두 번 총 36시간 동안 금식하기 시작하였으며, 매일 많이 기도하였으며, 매주마다 성찬을 받았으며, 사순절의 40일 동안에는 거의 죽을 정도로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 사순절의 금식 기간 동안에 저는 하루에 7번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 이외에 하루에 적어도 3번 이상 공적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저의 의무로 삼기로 결심하였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과연 태어난 것인지 아닌지도 몰랐었던 만큼, 제가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안 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였었습니다.

 

저는 배우가 되고 짚윤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과 함께 저는 양심의 가책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제가 배우가 될 수 있으면서도 성찬을 받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라고 부탁하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배우 같은 사람들도 성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땅의 법에 의하면 어떠한 배우도 자신이 회개하고 있음을 입증하지 않는 한 성찬을 받을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대주교 틸롯슨(Tilotson)의 교리이었읍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의 역할은 물론 마귀의 역할도 하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저의 방황을 멈춰주셨습니다.

 

여기서 저는 저의 옛 친구 찰스 웨슬리에게 고마움을 표하여야 할 듯 싶습니다. 그는 나에게 《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이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다시 태어나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다시 태어난 곳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신적인 행동일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옥스퍼드에 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그 자신을 제게 보여주셨으며, 제게 새로운 탄생을 주셨던 곳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그곳은 제가 그 책을 읽으며, 교회에 가 기도를 드리고‘성찬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들이여, 기독교인이 아닐 수 있다고 하는 글을 발견한 곳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파산한 것을 알고는 회계장부를 보기 두려위하는 불쌍한 사람처럼 저의 마음도 웨슬리가 준 책을 보고는 걷잡을 수 없이 떨렸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그 책을 불태워 벼릴 수 있겠으며, 집어던지거나 숨겨버릴 수 있겠읍니까? 저는 그 책을 손에 쥔 채 하늘과 이 땅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만일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만일 제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오 하나님 제게 참된 기독교인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주소서 : 그래서 제가 최후에 저주받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저는 그 책을 좀더 읽어 나갔읍니다. : 그리고 저는 참된 신앙은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얻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불쌍한 영혼에 거룩한 생명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모든 하찮은 대화를 멈추고, 모든 사소한 책들을 밀어놓고 하나님의 참된 성도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저의 영혼에 축복을 내려주셔서 왔습니다. 저는 지금 55 세이며, 곧 60세가 되어 얼마 후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더 저는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없다면 여러분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없읍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그가 젊건, 늙었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에난지 6시간이 되었건 9시간이 되었건 11시간이 되었건간에 그들이 아무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들이 가게 되는 그 곳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곳은 바로 천국입니다. 이 천국에서 그들은 누구를 만나게 될까요? 그들은 그 곳에서 의로운, 사람들의 완전한 영혼들 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들 중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천국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 하게 된다면 아무런 즐거움도 없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천국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기쁨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느니 차라리 제 자신이 한번이라도 죽고 싶습니다. 수년 전 데포드에서 저는 저의 모든 친구들과 헤어진 뒤 눈물을 터뜨리면서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제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겪는 이러한 고통을 주님과 헤어지면서 느끼고 싶지는 않습니다.”그 뒤 저는 저의 천구들에게 되돌아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자 이제 죽음의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제 곧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요. 죽음 뒤에는 아무런 이별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목회자들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오. 모두 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한 곳을 다니느냐 그렇지 않느나는 하등의 의미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비국교도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나는 국교도라고 이야기하여도, 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불신자로 비난하여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참된 구주로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이상 그들은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수년 전 한 여인이 제가 설교를 마치자마자 저를 찾아와 이렇게 물었읍니다. “당신은 코튼 매더(Cotton Mather)와 그리고 마른 신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사람은 제가 거룩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찬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으며,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사들이 그 두 신부 모두를 천국에 기꺼이 데려간 것으로 믿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말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천국에서 이제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논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문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와 한 성령을 모시고 있으며 신앙의 한 교제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머지않아 곧 천사들이 내려와 동서남북 사방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있을  자들을 뽑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만일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는 것을 두려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는 공적인 위치에 있어왔던 관계로 감히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저처럼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토록 빈번히 헤어진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현재 열 세 번째로 바다를 건너 영

국으로 가려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에 대하여 말씀된 것이 참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가는 데마다 불화를 낳은 것이 아니라, 이별의 눈물을 낳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울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결코 불화로 인하여 사람들이 그를 때리고 그의 등을 상하게 하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그의 교인들은 이처럼 이별을 슬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이러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역을 통하여 나를 그의 아들로 삼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북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이여 영광 받으소서!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성령 다음에 당신의 종을 통해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이겠습니까! 또한 인간에 대한 : 사역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보라 그리고 네가 내게 가져다준 자녀들을 보라”고 말씀하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그 거룩한 승리감으로 그들의 면류관을 어린양의 발아래 바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살아 공표될 때 그들은 어떠한 기쁨으로 은총, 은총이라고 외치겠읍니까! 그 다음 그들은 구속의 사랑과 부요한 자유로운 은총을 최고의 정성으로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있는 차이는 마치 우리가 합창을 하면서 어떤 이는 소프라노, 어떤 이는 테너 어떤 이는 베이스로 부르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각부는 다른 부를 도와 화성을 이룹니다. 모든 사람에 동일한 음으로 노래한다면 화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의 차이들이 아무리 충격적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차이는 우리로 하여금 장래의 세계에서 더 잘 노래하게 하고 더 훌륭하게 하나가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이제 나는 여러분이 자신이 가려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묻기 시작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 추론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밤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지옥에 가서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 거한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난 모든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 람들은 그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하나님, 천사들 그리고 완전하게 된 의로운 사람들의 영혼들과 더불어 거하리라는 것을 들었다. 나는 목사님의 설교가 가끔 장황한 것 같기는 하나 그의 설교를 통하여 우려 모두 한 곳으로, 즉 무덤으로 간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지금 그리로 서둘러 가고 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곧 나뭇잎이 떨어

질 것이다. 그러면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한 폭풍 또는 하나님의 관대하심의 결실들을 지나치게 즐김으로 인한 과식, 어떤 질병이 나를 나의 오래도록 거할 집으로 데려갈지 모른다.” 나는 중풍에 걸려서 죽어가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튼튼하고 건강했다. 나는 나의 힘을 자랑했다. 그러니 열로 인하여 이 지경이 될 줄을 누가 알

았으랴. 나보다 더 연약한 사람이 더 잘 견딘다.”

 

전에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만일 내가 오늘밤에 데려감을 당한다면 나는 지옥으로 가겠는가? 하늘나라로 가겠는가? 두려위 하는, 이제 떠나게 될 사랑하는 나의 영혼이여.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 이것은 그가 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한 황제가 생명의 은(銀) 줄(전12:6)이 풀어지려는 임종의 자리에서 행한 설교를 들으려 하지 않 으십니까? 여호와의 촛불인 양심이 여러분을 돕게 되어 가련한 죄인인 여러분이 자신에 대한 지식에 이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세주의 이름으로 - 나는 지금 그의 이름으로 그의 권세에 의하여 설교합니다 - 여러분의 양심에 권고합니다. “오, 그대 신실한 충고자인 양심이여, 각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양심의 소리를 듣게 하라.” 여러분이여, 만일 양심이 말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 하겠습니까? 즉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영원히 잃어지게 되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호의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그네들을 환대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결과 이곳에서는 나그네들이 여관에 투숙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환대를 받아 나그네로서 투숙하게 될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한번은 시워드(Setward)씨와 다른 몇 사람의 훌륭한 친구들이 나와 더불어 있었읍니다.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집 주인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옳다고 나는 믿어요. 나는 내 성경을 들출 때마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요.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럴겁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 말을 경멸하오. 내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요? 하나님께서 그렇치 않다고 당신께 말하든가요? 천만의 말씀이요. 당신은 도덕적 인간이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소. 또 골치가 아프니까 술을 마시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요. 하기는 당신은 음행과 간음을 저지르지는 않을테니까요. 이런 일은 위대한 자들 가운데 흔한 일인데 이런 일이 흔하므로 그들은 그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처형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요. 아마 당신은 신문에 나는 것이 두려워 간통을 저지르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오. 물론 우리 가운데 이러한 규율은 없소. 당신은 망나니가 될까 두려위하여, 또는 연행될까 두려위 하여 이런 일들을 행하지 않는 것이오. 그러나 이러한 당신의 복종은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란 말이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참한 상태를 알려주시기를 바라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에는 내가 한곳에서 영생토록 함께 살기를 바라는 사랑스러운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나의 동료 기독교인들을 나는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형제와 친구들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한 부모의 자녀들로, 한 성령께로부터 태어나 생활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 우리는 헤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내가 죽든지 여러분이 죽든지 우리는 헤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한곳에 모여 살게 될 것입니다. 복된 저 세상에서 우리는 만나서 거저 베풀어지는 은총을 찬양할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들어 서로를 위로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만일 우리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자비로, 우리를 도중에서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나는 주물공장에 속했노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성막 예배당에 속했노라고도 말하지 마십시오(전자는 웨슬리의 예배처를 말하고 후자는 휫필드의 예배처를 가리킴 -역주). 종 웨슬라와 조오지 횟필드에 대해 험담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너는 비국교파 예배당으로 가라. 나는 국교회 기도처로 가겠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나는 바울에게 속했느니, 게바에게 속했느니 하고 말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도와서, 우리가 여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여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우리의 높은 부르심의 상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십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평화와, 기쁨으로 우리를 채우시어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모든 폭풍, 모든 시련이 파기되고 우리를 위해 선한 일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우리의 모든 상해와 우리의 모든 시험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더 간절하게 사모하고 이 지상을 더욱 싫어할 수 있게 만들기를 !

 

만일 여려분들 가운데 이와 같지 않은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오늘밤 여러분을 회개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성막 예배당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신문을 통하여 이 설교를 대하게 될 런던의 청중들이여, 간절히 바라노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십시요. 여러분은 스스로 지옥을 향하여 나아갔었습니다.        

 

이제 거기서 돌이킨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인하여 아직도 그리로 가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회개하지 않은 친우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요. 경솔하게도 지옥으 나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하나님께서 오늘밤 여러분들을 멈추게 하려고 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말하면 여러분은 한 젊은 신사가 내게 했던 말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내가 그 신사에게 맹세하지 말기를 희망하였을 때 그는 내게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사님(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박사가 아니었고, 또한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을 지옥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이러한 특성을 지녔다면 하나님께서 자비를 내리셔서 이러한 특성이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의 길을 따라 지옥길로 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악마에게 속한 자녀는 이 세상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밤 여러분의 발길을 평화의 길로 돌이키시기를! 어느날 밤 한 젊은이에게 있었던 일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내 기억으로는 약 200회 정도 한 듯 싶은 얘기인데 한 젊은이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아침 6시에 애인을 만나려고 무어필즈에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나의 애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젊은이들이여, 오늘밤 하나님께 대하여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기를! 여러분이 놀이를 찾아 나섰을 때 크레인씨에게 일어났던 일이 여러분에게도 있어지기를 ! 크레인씨는 고아원의 직원입니다. 한번은 그가 연극을 보려고 드러리 레인에 갔었습니다. 그러나 만원이었으므로 그는 커벤트 가든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만원이어서 발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진실로 그는 이스라옐 자손이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내게 말해 준 바대로 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서 휫펄드 박사의 설교나 듣도록 하자.” 거기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임하셨읍니다. 이제 그는 빛을 발합니다. 저는 어제와 그제 조지아 주로부터 편지들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들을 받고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고동쳤습니다. 성실하고 불굴의 사람인‘라이트씨와 크레인씨는 아주 잘 지내고 있고, 또한 고아원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지로부터 오는 모든 편지들이 제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저는 라이트씨와 크레인씨 같은 사람들을 1만명이라도 내보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저는 우리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전할 백 명의 설교자들도 보낼 수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호기심이 오늘밤 여러분 몇 분 가운데 선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기를! 이제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잠시라도 여러분을 더 잡아둔다면 여러분에게 폐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나도 여행하기 전에 피곤하게 되어 항해하는데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염려됩니다. 내일 저는 숙박할 곳을 확인해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저는 내 얼 성만찬을 가지고 다음 안식일 아침에 다른 곳에서 성만찬을 집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주일날 저녁에 여러분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신의 사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또한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곳으로 갈 준바를 하기 위하여 하루 이틀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가급적이면 말씀드리고 싶지 않은 사실을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하겠읍니다. 그것은 이 교회당 수리에 대한 것으로 보시다시피 이곳은 말끔히 단장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기 전에 문제를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이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헌금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제가 매우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제가 대단한 부자라고 생각하고는 이러 이러한 장소에 30파운드를 가져다놓지 않으면 틀림없이 나를 죽이겠노라고 협박 편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나는 칼이나 피스톨에 의하여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하여 치부를 한 것으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제가 떠나려는 입장에서 묻겠는데 여러분은 정말 예배당에서 설교하는 데 대하여 주어지는 나의 고정 급여가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연봉은 1백 파운드에 불과합니다. 나는 지난 밤에 재정상황이 어떠한 가를 물었읍니다. 그랬더니 단 6펜스짜리 주화 하나 남기는 커녕 50 파운드의 체불이 있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하여 달가운 일은 아니나 오늘밤 헌금을 하여 모든 것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만일 한푼이라도 남는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분들 가운데서 제가 1월부터 8월까지 1기니의 돈이라도 받아낸 분이 있다면 말씀해 보십시요. 또한 저는 나의 항해 비용을 위해서도 1기니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늘나라 나의 형체들에게 가게 되면, 여러분은 제가 어떠한 정신으로 여러분을 섬겼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여러분은 제가 행한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처소를 세우기 위해서였음을 알 것입니다. 제가 죽어서 그곳에 가듯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을 그렇게 거기서 영접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금후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실 때 우리는 한 장소에서 만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소생시키시고 여러분을 강건하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념께서는 오래지 않아 우리가 슬픔이 없는 곳에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아멘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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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기의 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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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여자를 보셨나요? -몸무게가
무려 340kg이나 나가는 여자의 삶-

Casa Grande, Arizona, USA



결혼해서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가 비만현상이 오면서 체중이 무려 340kg이나
오르고,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삶에 고통을 당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여자와 함께 불평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이다. 여자이름 Susanne Eman, 나이 33세, 몸무게 340kg, 남편 Parker Clark 35세, 자녀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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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비만대회에서 우승 Worlds Wobbliest Fatty
Susanne Eman wants to reach 115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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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Ms Eman aged 19 with her two sons, Brendin,
centre, and Gabriel, right, in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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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애완견

Gabriel, left, 16, and Brendin, right, 12,
and their dog Sisc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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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Ms Eman poses back to back
with her sister Cassie(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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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ne 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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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네스북에 등재 Pauline Potter(47세) has entered
the Guinness Book of Records as the worlds heaviest living woman, California,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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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워셔 - 나는 너를 전혀 모르노라|≫ 폴워셔 목사님 ≪
백합향 | 조회 701 |추천 1 |2012.06.22. 02:03 http://cafe.daum.net/waitingforjesus/LeTc/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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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패션이 아니었다면, 저는 죽지도 않은 제 딸을 땅에 묻을 뻔했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꿈을 꿉니다. 다시 살아난 제 딸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는 그 날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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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우상과 미신으로 둘러싸인, 가난한 소작농의 마을

‘주변에 있는 온갖 사물에 영혼과 신이 깃들어 있다고 굳게 믿는 가난한 소작농들의 마을’. 가나 바소피 닝고(Basofi Ningo) 지역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곳에 지난 2011년 10월, 가나컴패션 어린이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녀들이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등록되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혹시 자신들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가르치지는 않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어린이센터장 세드(Seth)에게 선생님들이 찾아와 등록어린이 중 한 명인 산드라(Sandra)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산드라의 집에 급히 달려가자, 온 몸에 검은 천을 칭칭 감고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슬피 울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산드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세드가 소리쳤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전통 의식

세드를 발견한 산드라의 엄마는 더욱 심하게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있던 돌을 들어 자신의 다리를 내리치려 했고, 이웃들은 가까스로 그녀를 붙잡아 말렸습니다. “조용히 앉아 아이를 추모하시오.” 마을 사람들이 세드에게 말했습니다. 온 집안을 휘감은 검은 천과 괴성,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며 울부짖는 모습들… 마을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죽음을 애도하는 전통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세드에게 산드라의 아빠 이사야(Isaiah)가 다가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았는데, 병원에 데려갈 형편은 도저히 되질 않고… 그냥 나을 줄 알았습니다. 차도가 없길래 어젯밤부터는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죠.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가면 병원에 데려다 줄 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아침 일찌감치 어린이센터에 가자며 산드라를 깨우는데, 꼼짝도 하지 않는 겁니다. 숨이 벌써 끊어졌더군요.”

아이를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산드라를 병원으로 옮겨야겠습니다.” 세드가 말했습니다. 컴패션에서는 어린이가 사망했을 경우 사망 원인이 포함된 의사의 사망 진단서를 반드시 발급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이렇게 죽은 아이들을 수 십, 수 백 번도 넘게 봤소. 의사가 아니어도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단 말이오!” 이 마을의 문화와 관습에 따르면, 죽은 어린아이는 숨이 멎자마자 즉시 땅에 묻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이미 죽은 아이를 병원으로 옮겨 사람들 앞에 내보인다는 건, 시간 낭비일 뿐만 아니라 죽은 아이와 가족들을 욕되게 하는, 문화적으로 엄격히 금지된 일이었습니다.

그 때, 소식을 들은 인근의 다른 어린이센터 직원들이 산드라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직원들은 아무리 반대를 해도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다며 마을 사람들을 막아 섰고, 한 사람은 밖으로 나가 경찰을 불러왔습니다. 가나에서 사망진단서와 매장 확인서가 없이 시신을 묻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컴패션 직원들은 산드라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의사는 산드라를 잠시 살펴본 후, 모두 밖에 나가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산드라는 죽지 않았습니다.”

5시간쯤 지난 뒤, 의사가 다시 병실 문을 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미 죽었다며 땅에 묻으려고 했던 바로 그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심각한 말라리아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게 아니라 열이 심하게 올라 몇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드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예비하시고, 산드라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사야 또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컴패션이 아니었다면, 컴패션이 바소피 닝고 지역에 조금만 더 늦게 들어왔다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죽지도 않은 딸을 땅에 묻을 뻔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빠 마음에 피어난 새로운 꿈과 희망

이제 4살이 된 산드라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 가운데 건강을 잘 회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컴패션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장 먼저 나서서 도우며, 자신의 경험담을 간증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제 딸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저와 제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저에겐 이제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산드라가 학업을 잘 마치고 훌륭하게 자라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멋진 여성이 되는 것, 특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될 수만 있다면 정말 기쁠 겁니다. 몸과 마음, 영혼을 살리는 귀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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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투스 님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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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는 죽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
에 있게 된다 - 아더 핑크

신자는 죽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

강도 :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눅 23:42)
예수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
원에 있으리라(눅 23:43)

두 문장을 이처럼 대응시켜 놓고 볼 때, 우리는 정확한 강
조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강조된 말입니다. 강
도의 요청에 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스러운 응
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기대보다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보여주는 두드러진 예를 대하게 됩니다.


강도는 주께서 그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자기를 생각하여
주실 것을 구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바로 그 날
당장 구주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되리라는 보증을 하여 주셨
던 것입니다. 강도는 세상의 나라에서 생각하여 주실 것을
구하였으나 구주께서는 그에게 낙원에 함께 있게 하여 주
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강도는 단순히 “생각하여” 주실
것을 구하였으나 구주께서는 “그와 함께 있을 것”을 선언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고 기대
하는 것 이상으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응답은 육신이 죽은 이후에도 영혼이 존속한다
는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또한 우리에
게 죽음과 부활 사이에 끼어 있는 중간기 동안에 신자의 영
혼이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
의 약속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엄숙하나 확신을 주는 말씀,
곧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어서 그리스도 곁으로 간다는 기대에 스데반은 그의 순
교의 자리에서도 그처럼 기뻐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부
르짖어 구하기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
였습니다(행 7:59). 이 기쁨에 찬 기대는 사도 바울의 마음
을 움직이게 하여 그로 하여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
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빌 1:23)고 말할 수 있
게 하였습니다.

 

죽음 저편에서 모든 신자들을 기다리고 이
Ts s 것은 무덤 속에서의 수면이나 무의식 상태가 아니라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바 축복의 생활인 것
입니다. 나는 분명히 모든 “신자”의 경우가 그러하다고 말
하였습니다. 불신자들의 영혼은 낙원에 들어가는 대신에
누가복음 16장의 주의 가르침에서 분명하여 지는 바와 같
이 고통의 처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독자여, 당신이 지금
죽음의 문턱에 놓여 있다면 당신의 영혼을 어느 곳으로 들
어가게 하시겠습니까?

사단은 하나님의 성도들의 시야를 어둡게 하여 이 마지막
순간의 소망을 바라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발악
을 해 왔던가요! 한편으로 사단은 신자들이 그들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끼어 있는 중간기 동안에 무의식 상태로 지낸
다고 가르치는 바 소위 영혼 수면설이라고 하는 어두운 교
리를 날조해 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천구과 지옥 사이
에 연옥이라고 하는 끔찍한 처소를 고안해서 신자들이 죽
으면 불을 통과해서 하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깨
끗케 해야 된다고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고 있습니다. 회개한 강도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이러한 교리들이 얼마나 터
무니 없는 망상인가를 철저히 드러내어 주고 있습니다.

 

저 회개한 강도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곧장 낙원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죄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
는 그 순간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
당한”(골 1:12)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2-14절에 말씀하시기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
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
셨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시고 자
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주신
것은 오직 그의 흘리신 피에 근거한 것입니다.

가상칠언강해( 아더 W. 핑크 )
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제7권 5장 '복음'이란 말의 의미 pp77-86
(각 장에 붙은 제목은 한글판 편집자에 의해 붙여진 듯 합니다. 영문판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1955년 1장을 서두로 1968년 14장 17절까지 13년간 로마서를 강해하였습니다. 출판은 3:20-4:25 부분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로마서 1장은 한글판 제7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5장에서는 1장 1절의 <하나님의 복음>이란 말에 대하여 강해합니다.
pp77-80 까지는 요약하여 번역하였고, pp80-86까지는 전체를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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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듯이 '복음 gospel'은 언어학적으로 '기쁜 소식(喜消息) good news'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정말 우리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옵니까? 우리가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알고 있다면, 그 말의 문자적 의미 뿐만 아니라 복음 그 자체를(1) 실제로 이해하는 겁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이란 말을 1절에 곧바로 도입한 것은 율법과 대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듯합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율법 교사였지만 지금은 복음을 선포하는 사자(使者)(2)입니다. 율법에는 기쁜 소식이 없습니다. 율법은 범죄 때문에 '끼여 들어 왔습니다'(3). 율법은 죄를 집어내려고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율법은 구원의 도구나 방법으로 주어진 적이 결코 없습니다. 율법에 은혜의 요소가 있는건 사실이지만, 율법이 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점을 이해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스스로 구원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고 합니다. 사도는 율법에 관한 이런 몰이해(沒理解)가 비극적임을 보여주려고 애씁니다. 율법이 실패하고 나서야 복음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4)으로 왔다는 발상은 율법과 복음을 둘 다 오해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한다는 단순한 발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건 율법시대(5)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구양성서에는 매우 위대하고 훌륭한 죄사함의 교리가 있습니다.

또한, 복음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행하도록 호소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선하게 살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되라고 호소하는 메시지로 복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건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앞으로 복음이 무엇인가 자세히 밝히겠지만, 여기 서두에서 복음이 하나님의 아들과 관련된 어떤 일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 당신과 하나님께서 이루어놓은 일에 관한 어떤 것입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호소문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을 선포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의 공표(公表)입니다. 사도는 1장 16절 17절에서 이를 장엄하게 기록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왜 그렇습니까? <이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더러 스스로 구원하라는 권고가 아니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방도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이것이 구약성서에서 발견하지 못하는새로움입니다! 죄사함이 여기도 있지만, 하나님의 의 완전한 현시(顯示)는 새롭고 유일무이하며 특별하여서 복음을 복음되게 만듭니다.

친구들이여! 복음이 참으로 우리에게 이런 의미로 다가옵니까? 복음이 가장 위대한 최고의 기쁜 소식이라고 지금-여기에서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리스도人인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 도달한, 또는 인간이 받은 최대의 기쁜 소식이란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면, 이는 당신이 죄에 대해 부적절한 감각을 가졌거나 자기의 죄인됨을 충분하게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자기의 현재상태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선한 사람이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그들은 도움을 필요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 스릴을 느끼지 못하며 복음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데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을 들자면 우리의 죄인됨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일 것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기쁨이 부족하다면 성서를 펼치고 율법을 읽으며 당신의 죄인됨을 보십시오. 기쁨을 향한 순전한[궁극적인] 길은 항상 죄의 심연(深淵)을 경유합니다 (The positive road to joy is always via the depth of sin).(6)

기뻐함이 결여되는 또다른 이유는 우리가 죄의 결과[대가]를 깨닫는 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옥과 영원한 형벌을 믿지 않는 현대 철학이나 사고 방식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으로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다 괜찮을 것이라고 한다거나, 사는 동안의 제한적인 고통이 마침내 은혜롭게 종결되는 죽음 후에는, 우리 영혼이 소멸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어서 모든 일이 상대적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죄를 응징하는 믿음에서 떨어져 복음의 기쁜 소식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의 위대함 자체를 깨닫는 데 실패하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원을 단순한 용서만으로 보는 경향을 말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지옥 형벌을 벗어나기 위해 용서를 구하지만, 용서를 받았다고 느낀 다음에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그 기쁜 소식의 높이와 깊이, 그리고 광대하고 심오한 구원의 모든 위대함을 놓쳐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의 위대함과 영광스러움을 강조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도는 그들이 복음의 위대함을 알기 원합니다. 사도는 그들이 이미 신도임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복음을 움켜잡아 터득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팬을 들어 사도의 권위로서 영감을 받아 복음의 충만함과 웅대함을 들어내어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복음!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사용하는 말입니까! 경박하게 청산유수로 얼마나 자주 입에 담는지!

복음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복음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 행하신 일입니다. 구원에 관한 하나임의 일입니다. 사도는 "내가 인간의 철학에 대해 논하려는 게 아니다.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의 의견을 피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걸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이미 행하셨는가 선포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신약성서에는 복음에 대한 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7)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8) ‘구원의 복음’(9) ‘영원한 복음’(10)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 만큼이나 사도 바울에 의해 지속적으로 쓰여진 복음의 정의(定義)는 없습니다. 사도는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특별히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근본적이며 절대적 핵심인 복음의 정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길 간구합니다. 사도는 성삼위(the blessed Holy Trinity)의 위대한 핵심 교리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들어 보십시오. <바울은... 택정함을 입었으니 Paul... separated (KJV)> 그는 계속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괄호로 묶을 수 있는 2절을 넘어 3절로 가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성령님]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11) 이것이 사도가 <택정함을 입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복음은 일(the work)입니다. 특별한 일입니다. 세 위격(the three Persons)이 행하신 영광스런 일입니다. 복음에는 세 위격의 한분 한분이 참여하여 함께 일하셨습니다.

사도는 성령님의 감화와 인도와 영감 아래에서 로마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렇게 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도는 뭔가 빠뜨리지 않으려고 의례적으로 성삼위의 교리를 쓴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성삼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관점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므로 강조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성부 하나님만이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대화해 보면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복음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복음이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빠졌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죄의 용서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자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언급 없이 대화를 끝맺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깁니다. 그들은 성자 하나님을 떠난 어떤 부류의 기독교를 가진 듯합니다.

타고난 신비주의자들(12)에게는 특이한 위험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 전부를 가질 수 있음을 믿는다고 하며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고 합니다. 거기까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런게 가능하다며 신비주의자들이 갖는 그 '생각'의 문제점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 그걸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신비주의 안내서를 가지고 관상(觀想)(13)의 최종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영혼의 암울한 밤'을 통과하는 수행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신비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당면하는 위험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안으로 기울여서(turn in) 스스로를 고찰하여(examine) 자아를 관조(look)함으로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 즉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걸 가르치는 책들이 많습니다. 어떤 책은 아주 유명합니다. 40여년 전에 In Tune with the Infinite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그 책은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 당신에게 하나님을 직접 체험시켜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만 있는 복음은 위험합니다.

한편, 성부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성자 하나님에게만 전적인 강조점을 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일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인상을 주려는 정도에 까지 나아갑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께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성자께서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 "제가 인간들을 위해 죽었고 그들을 값주고 샀습니다"라고 말하며 인간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아들로 묘사합니다. 그들에게는 기독교가 성자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성부께서는 간여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의 탄원을 마지못해 들어주시는 듯한 하나님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이 두번째 위험입니다.

셋째 위험은 전체의 강조점을 성령님께만 두려는 경향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길을 잃고 정도에서 벗어나 오류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14)이고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15)신다니얼마나 위안이 되는지요! 만일 그가 우리 안에서 일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미혹되어 길을 잃어서, 어떤 사람은 성부만, 어떤 사람은 성자만, 어떤 사람은 성령만에 빠져버릴 것입니다. 성령 제일주의 무리들은 체험과 능력(power)을 구합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성령님에 관한 교리에 몰두합니다. 여기에는 아주 미묘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예전에 제가 그곳에 한동안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속죄(贖罪 the atonement)의 절대적 필요를 숙지하는 일이 없이도 중생(重生 regeneration)의 교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영국에는 그런 사례들이 여럿 있습니다. 거듭남(re-birth), 거듭난 존재(being born again), 중생,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에 대하여 상당히 바르고 건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속죄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새 생명과 새 능력의 필요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공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를 우회하여 체험과 능력에 직접 달려갑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갈보리 십자가를 그냥 지나쳐 갑니다. 대속(代贖)(16)의 필요를 보지 않습니다. 여기엔 아주 미묘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매우 조심하지 않는 한 우리가 길을 잃고 빠지기 쉬운 세가지 오류와 위험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 하나 하나가 잘못 되었지만, 아시다시피, 각각이 약간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거기 있습니다. 부분적 진리를 부풀려서 진리의 전부인 마냥 떠들어대는 일 보다 더 위험스런 일이 없습니다. 그들 세 부류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그들이 말하는 데까지는 꽤 타당합니다. 그러나 동등하게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구원은 성삼위(the blessed Holy Trinity) 안의 세 격(the three Persons)이 행하신 일입니다.

구원은 성부께서 주도적으로 행하신 일로서 그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 입니다. 성부가 첫째입니다. 복음은 성부께서 계획하셨고 성부께서 작정하셨으며 성부께서 시작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복음에 관하여 처음 언약하신 분도 성부이십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성부께서 주도하신 일에 대하여 명확하게 하기 전까지는 성자께서 행하신 일과 성령께서 행하신 일과 그가 지금도 여전히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고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걸 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성경구절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성부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씀의 순서에 유의하십시오. 구원은 하나님이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걸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장본인으로서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1) thing itself; Ding an sich 物자체 - 칸트
(2) 使者 herald; ‘선포하는 자’ 단3:4
(3) 롬5:20 came in by the side <새번역>; 로이드존스가 원문 παρεισηλθεν을 풀이해 사용했다. ‘들어온’ <개정>
(4) afterthought
(5) the old dispensation 
(6) [철학] positive 실증적인; opp. negative - Positive and Negative Liberty: Negative liberty is the absence of obstacles, barriers or constraints. - 칸트
(7) the gospel of peace 엡6:15; 롬10:15 ‘좋은 소식’ <개정> ‘기쁜 소식’ <새번역>
(8)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막1:14; the gospel of the kingdom ‘천국 복음’ 마4:23; 9:35; 24:14
(9) the gospel of the salvation 엡1:13
(10) the everlasting gospel 계14:6
(11) KJV을 보면 God - Son of God - the spirit of holiness [the Holy Spirit] 순서가 분명하다. 그리고 [the Holy Spirit]은 로이드존스가 써 넣은 것이다.
(12) natural mystics
(13) contemplation
(14) his workmanship 엡2:10 <새번역>
(15) 빌1:6
(16) substitutionary atonement
출처: 바른 번역/하윌라 님

 
 






김치_

김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소금에
절인 배추 때문. 배추를 절일 때 많은 소금을 사용하므로 가능하면 김치의 섭취량을 줄이거나 김치를 먹을 때 물에 씻어서 염분기를 없앤 뒤 먹도록
한다. 또는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담근 김치보다 즉석에서 양념에 버무린 겉절이로 대체해 먹는 방법도 있다.


고추장_
고추장은 유독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특히 집에서 담근
고추장은 시판 제품보다도 염분 함량이 더 높다. 문제는 고추장의 짠맛을 줄이기 위해 설탕이나 물엿 등의 단맛을 첨가, 양념하는 데 있으므로
고추장의 섭취량을 줄이도록 한다.

젓갈류_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맛 없을 때 가장 즐겨 먹는 식품 중 한
가지가 바로 젓갈류이다. 그러나 젓갈류는 숙성시키고 삭히는 과정에서 다량의 소금과 고춧가루를 넣기 때문에 염분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젓갈류는 아예 입에 대지 않는 게 상책.

장아찌류_
장아찌는 보통 수개월, 길게는 1~2년간 먹는 저장식품으로
변질을 막기 위해 짠맛이 진한 소금, 간장, 고추장 등으로 담근다. 염분 함량이 높은 대표적인 식품들로 장아찌 역시 염분 함량에 있어서는 이들
식품 못지않다.

맵고 자극적인
양념류_
소금이나 간장은
물론 고춧가루 같은 맵고 자극적인 양념류에 입맛을 길들이지 않는다. 자극적인 맛을 계속해서 찾다 보면 담백하게 먹어야 하는 원칙을 따르기
힘들다. 고춧가루나 후춧가루 같은 매운 양념류는 가끔 소량씩 먹는 건 크게 상관없지만 지속적으로 먹다 보면 더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된다.













단무지_ 단무지는 장아찌만큼이나 염분 함량이 높고 인공색소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화학첨가물이 들어 있다. 평소에 자주 먹지는 않지만 김밥에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단무지. 단무지 대신 오이나 무를 살짝 절여
넣는 방법을 이용한다. 또한 소금물에 절인 짠무도 염분 함량이 높으므로 피한다.


동물성 기름_ 동물성 기름은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의 함량이 높다. 이는
고혈압이나 뇌졸중, 심근경색 환자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성분. 특히 돼지갈비나 삼겹살, 쇠갈비 등의 기름은 독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을 때는 기름기를 떼어낸 뒤 살코기만 먹도록 한다.


어묵_ 어묵은 염분의 함량이 매우 높은 편이다. 간장이나
고추장 등을 넣어 조리면 염분 함량은 더욱 증가한다. 또한 어묵을 국물요리에 넣어 국물까지 먹어치우는 것도 고혈압 환자에게는 해가 된다. 어묵을
먹을 때는 끓는 물에 어묵을 데쳐서 염분기를 뺀 뒤 식물성 기름에 볶아 먹는다. 이때 소금이나 간장간은 하지
않는다.


햄&소시지_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은 염분 함량이 매우 높다.
또한 발색제나 방부제, 착색제 등의 화학첨가물도 들어가 건강에 해롭다. 통조림류의 가공식품도 마찬가지.


라면_ 라면은 칼로리와 염분 함량이
높은 대표 식품이다. 특히 라면 국물 속에 염분이 많이 들어 있으므로 국물은 절대 먹지 않도록 한다. 라면과 함께 김치나 단무지를 곁들여 먹는
습관은 혈압에 독을 뿌리는 격이므로 삼간다
                       지인에게서 받은 글^^/작성자: 둥글 님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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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역치 않으시는 하나님/ 스펄젼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말라기 3:6) 우리 인생들은 얼마나 변화 무쌍합니까? 그런데 전혀 변치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입니까. 그는 바로 여호와십니다. 여호와는 그 마음이 절대 변치 않는 분이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마에 주름 하나 생기지 않는 분입니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변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변하고 있습니다. 태양도 흐르는 세월과 함께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으며 이 세상도 그 연수가 다해 가고 있습니다. 모두 낡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온 하늘과 땅도 곧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곧 멸망할 것이요 옷처럼 낡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불멸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연수가 다함이 없으며 그 성품이 절대 변치 않으시는 분. 오랫동안 파도에 시달리던 뱃사공이 마침내 상륙하여 땅에 그 첫발을 디딜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이 환난 많고 변화 무쌍한 인생 가운데서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라는 진리 위에 그 믿음의 발을 올려 놓고 쉴 때 말할 수 없이 기쁠 것입니다.

닻을 꼭 잡아매야 배의 안정이 유지되듯 성도도 그 소망을 이 영광스러운 진리에 고정시킬 때 비로소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약 1:17). 하나님이 전에 어떤 속성을 갖고 계셨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의 속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능력, 그의 지혜, 그의 공의, 그의 진리 이 모든 것이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항상 그 백성의 피난처요 환난 때의 요새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 백성을 확실하게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전에 “영원한 사랑”으로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마지막 날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불 속에서 다 녹아 없어진다 해도 그의 사랑은 초록 이슬처럼 생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다는 이 확신은 얼마나 소중한 확신인지 모릅니다! 섭리의 바퀴는 돌아가지만 그 바퀴의 중심축은 언제나 영원한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항상 변하며 스러져 가듯 인간도 소멸하고 세월도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절대 시들지 않나니 하나님은 지혜요 사랑이시라.”

 

교단별구원의 계획(The Plan of Saluation) 비교 

 

  

 

전택설(제한속죄)

후택설(제한속죄)

알미니안주의

(무제한속죄)

루터

웨슬리

카톨릭

일부사람을 영생 얻도록 선택

인간의 타락을 허용해

부패,범죄,전적 무능에 처함

인간의 타락을 허용해 부패,범죄,

전적 무능에 처함

인간의 타락을 허용해 부패,범죄,

전적 무능에 처함

인간의 타락을 허용해 부패,범죄,

전적 무능에 처함

인간의 타락을 허용해 초자연적 의로움을 상실함

인간의 타락을 허용해

부패,범죄,전적 무능에 처함

일부 사람을 영생 얻도록 선택

모든 사람이 구원 얻도록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어짐

세상 죄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어짐

세상 죄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어짐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어짐

선택된 자의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모든 자에 대한 기본적 제의

선택된 자의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모든 자에 대한 기본적 제의

도덕적 능력 부여를 위한 일부 사람의 선택

구원의 은혜를 전달하기 위한 은총의 수단 부여

모든 자에게 원죄 사면 및 충분한

은혜 부여

그리스도의 보상을 적용하기 위한 교회 및 성례적 제정

구속된 자를 구원키 위한 성령의 은사

구속된 자를 구원키 위한 성령의 은사

선택된 자의 도덕적 능력 발휘를 위한 성령의 은사

은총의 수단을 거부치 않는 자들의 구원 예정

충분한 은혜를 발전시킨자들의

구원 예정

제2작인 활동 아래 성례전 통한 그리스도의 보상 적용

모든 구속된 자들과 거듭난 자들의 만족

모든 구속된 자들과 거듭난 자들의 만족

성령에 의한 성화

은총의 수단을 통한 성화

충분한 은혜와 협동하는 모든 자들의 성화

성례전을 계속하는 모든 자들의 거룩한 삶

 

B.B. Warfield, The Plan of Saluation(Reprint. Grand Rapids: Eerdmans,1977). p.31에서 발췌

 

 

[출처] 교단별『구원의 계획』(The Plan of Saluation) 비교 (비공개 카페)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1138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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