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공립학교 동성애 의무 교육법(SB48)을 저지하기 위한 주민발의안 추진이 유효 서명 50만5000개를 확보하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는 SB48 법안에 따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교과서에 동성 결혼을 하나의 결혼 형태로 가르치게 된다.

또한 주내 모든 공립학교는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 등에 대해서도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 운동을 주도한 '스톱 SB48' 측은 13일 "발의안 상정안 제출 시한인 10일에 주의회 사무실에 접수시킨 서명은 50만5000개 미만"이라고 밝히고 "법안 저지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스톱 SB48' 측은 "그동안 이 운동을 위해 노력해 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며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삶의 방식(동성애를 지칭)에 우리 어린이들이 노출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이 법안을 반대했으나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회고했다.

이 단체는 "동성애 지지단체들은 더욱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미국 전체에 동성애를 확산시키려 할 것이며 우리는 그때마다 반대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발의안 추진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운동에 적극 나섰던 남가주교회협의회도 안타까운 반응이다.

변영익 수석부회장은 "시간이 촉박했지만 우리 한인 기독교인들이 마음이 하나되어 최선을 다했고 큰 성과를 거뒀다"며 "협력해준 한인 교회들과 교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변 수석부회장은 이어 "이번 일을 통해 배운 점은 한인교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인교회의 99%는 동성애에 반대했지만 미국교회는 50% 정도라 필요한 유효서명 확보가 힘들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법안이 나오면 다시 한번 힘을 모으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장연화 기자

LA중앙일보

 

오늘은 이런 날씨에 멋스러움을 더하는

피카소의 드로잉 작품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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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말 맛있는 말

살맛 나고 멋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
언어는 인간 생활을 도와주는 음성표현문자로서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활동적 매개체이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듣기와 말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긍정적으로 듣고 낙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윤택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이 든다.

낙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즐거워지고 기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편안 감과 안정감을 주는 말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멋진 사람이다.

말은 요리와도 같다.
맛있고 멋있는 요리를 또다시 찾듯이
맛과 멋을 느끼게 하는 말은 더 듣고 싶어지는 것이다.
요리의 맛과 멋을 내기 위해서는 신선하고 다양한
재료를 선택하여 정성을 다해 조리해야 한다.




  

말의 맛과 멋도 시대적 상황에 맞는 밝고 올바른 용어를 선택하여 자신있게 표현해야 한다. 멋있는 말은 당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사랑의 말이다.
맛있는 말은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라고 신뢰를 표현하는 믿음의 말이다. 사랑의 재료는 이해와 관용과 화합과 배려와 포용이다. 믿음의 재료는 용기와 격려와 위로와 존경과 감사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재료를 선택하여 희망의 요리를 만들어 주고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믿음의 재료를 선택하여 용기의 요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살맛 나는 세상은 서로를 사랑함에 있고 멋있는 세상은 믿음에 있다. ㅡ좋은 글 중에서 ㅡ
ㅡ좋은 글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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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다른교회로 옮기기로한  집사님부부가  앞으로 출석할 교회의
홈페이지에서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설교가 너무 평범하고 잔잔해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않아
그 교회에 나갈지 고민이 된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 집사님 부부는 20여년동안
마약이 첨가된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잔잔하게 전해지는 진리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것이다

나는 그들이 듣고 살았던 설교에 대하여
무엇이 문제점인가를 설명해주었다
그 설교가 일순간의 감동은 주지만 인격의 변화와
영적인 성장을 주지 못하는 순간적 감흥만을 주고
인간의 육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설교라고 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사람들의 설교는
마치 다단계 회사의 세미나를 연상케 한다
그 거짓영의 설교를 듣고는 은혜받았다
또는 소망이 생긴다
곧 큰 변화가 올것같고
삶에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또다시 변함없는 삶이 시작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삶의 고난이 오면은
더욱 마약이 들어간 설교를 갈망하게 되고
그 의타성이 더욱 가중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것이다
이제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그 순간만이라도 벗어나고자
마약설교에 더욱 중독이 되는것이다
칼마르크스는 종교를 아편이다라고 하였던가
거짓설교자들이 그 시대에도 창궐했나보다

부인되는 집사님은 남편 집사님이 인격의 변화가
되지않는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수 있는것은
달변가의 설교도
지적인 설교도
심금을 울리는 설교도
결코 사람의 인격의 변화를 가져올수 없다
우리를 변화시킬수 있는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이시간도 우리속에서
지극히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를 터치해 주시고 진리로
이끌어 주시는것이다

집사님 부부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였다
"집사님 부부는 20여년동안 마약설교에 중독되어서
살아왔기에 하루아침에 올바른 진리의 말씀이
감동을 주지 못할것이며 앞으로도 빠르면 6개월
길면은 1년은 정상적인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것이다" 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조용하면서도 잔잔히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킨다
또한 일상에서의 어려움속에서도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들어있는 것이다

나의 모든 설명을 들은 집사님 부부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라고 했으며
오늘 주일예배를 내가 추천해준 교회에서 예배를 들였다니
참으로 귀하고 반가웠다
앞으로도 이 집사님가족의 소식을 아멘넷에 올릴까 한다


출처: USA 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도봉옥 님

기독교 성직자의 자격 및

 

이근안 씨의 ‘목사직’ 면직에 대하여

 

 

           

 

               

   최근, 한국에서, 과거 ‘고문 기술자’라는 별명을 듣고 있던,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한 어떤 교단의 목사직 임직과 또한 면직 사건이 발생하면서, ‘목사직’에 대한 자격 및 임, 면직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에 많이 뜨고 있다.

 

   과연 이근안 전 경감은 기독교 성직자로서 합당한 사람이며,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개혁측’ 이라는 교단이 행한 그의 목사직 임직과 면직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1)  기독교(개신교) 목사직의 자질 및 자격

 

   어떤 사람들은,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신학교 졸업했는가? 무식한 어부출신이라도 ‘사도’가 되지 않았는가누구든지 목사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분명히 얘기하고자 한다‘사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제자로서 3년간 산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초대교회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회 및 목회’ 형태가 없었다기원 1세기, 초기에는 교회 건물도 없었고, 문서로 쓰인 오늘과 같은 성경(신약)도 없었고, ‘현대 교회’와 같이 ‘많은 수가 모이는’ 회중도 없었다다만 개별적으로, 가정에 몇 명이 모이는 정도였고, 그것은 ‘목회적’ (pastoral)이기보다 ‘전도적’(evangelical)인 성격이었다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전문적 교육 받은, 자격 있는 목회자(pastor)’가 필요치 않았다.  

 

   현대 교회는, 그 조직 및 행정, 회중이나 교회 성격, 목회 상으로 볼 때, 아무나 목회자가 될 수는 없다목회자가 되기 위한 소정의 전문 교육(대졸후 대체로 3-4)을 받고, 또한 자질 및 자격을 갖춘 자를 선발하며, ‘시험’의 과정을 거치게 하고 또 ‘훈련’의 과정을 거치고, 그래서 종합적으로 목사직에 ‘합당한’ 자격자에게, 임직한다.

 

   물론 각 교단마다 그 ‘과정’이 좀 다를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아무나 자격 없는 자에게 목사직을 주지는 않는다만일 그렇게 하면, 신학적, 신앙적 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회중을 잘못된 길로 인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근안 전 경감의 경우는 어떨까그는 평생을 경찰에 몸담은 사람이다. 그는 ‘고문’조사를 했다는 죄 등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60이 넘어서, 통신강좌로 신학을 공부 하고, 어떤 교단에서 ‘전도 활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목사’직에 임직되었다고 한다

 

   우선 엄격한 잣대로 보면 그는 ‘목사’직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자질 및 자격’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아무리 ‘죄를 회개’하고, 신앙이 있다고 해도, 평생 경찰생활을 하고 또 고문까지 자행한 사람이 어떻게 ‘양떼를 선한 길로 인도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는가?

 

   또한 그는 정규 신학교에 들어가 제대로 된 신학 공부도 하지 않고, 무슨 ‘통신 강좌’로 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목사가 되기 위한 ‘신학 교육’은 그저 학점만 따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신학생으로 성직자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훈련과 교육을 겸하여 받는 것이다.

 

   ‘사관학교’ 에 들어가 ‘사관’이 되기 위한 교육 훈련을 받지 않고, ‘통신 강좌’로 사관학교 졸업할 수 없는 것이나 같은 논리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에게 ‘목사 직’을 준 그 교단은 자격 없는 사람을 목사직에 세운 것이다

 

 

   (2) ‘목사’ 직의 성격

 

   이근안 경감은 7년간의 교도소 생활 중에 기독교에 입문하게 되었고, 2006 11월 만기 출소를 한 후, 2008 10월에 무슨 ‘개혁파’라는 한 장로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출소한 후 만 2년 만에 목사 안수를 받은 셈이니, 어떻게 2년 동안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고시 및 자격 과정’을 다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그의 나이가 현재 70세가 넘었다고 한다. 대체로 각 교단의 규정은 목사의 정년 은퇴 나이를 70 세로 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은퇴 나이가 다 된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자기는 앞으로 목회자가 되지 않고 ‘전도자’가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전도자’가 되려고 나이 70 에 구태여 ‘안수목사’가 될 필요가 있을까

 

   ‘안수목사 직 (ordained ministry)’에 대하여, 어떤 신학적 해석에 관계없이, 한마디로 말하면‘목사’직은‘섬기는 자(minister)’ 그리고‘목회자(pastor)’의 직이다. 물론 ‘안수목사’가, 개교회를 담임하는‘목회자’의 직이 아닌, 학교 교목, 군대 채플린, 기독교 관계의 사회적 직책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섬기는 자’ 그리고 ‘목회자’이다한스 큉은 그의 교회론에서, 심지여 ‘교황’도 ‘섬기는 자’요 ‘목회자’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므로 이근안 씨가 ‘목회자’가 되지 않고 ‘전도자’가 되겠다고 한 것은 스스로‘안수 목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마치 ‘목사 안수’를 무슨 ’학위’나 명예적‘타이틀’을 받는 것처럼 생각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은, 결코‘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나 혹은 어떤 명예직의‘타이틀’ 을 받는 것이 아니다바로 ‘섬기는 자’, ‘목회자’가 되라고 ‘사명(mission)’을 받는 것이다. 이점에서 “학위”받는 것과 ‘목사 안수’ 받는 것이 다른 것이다. ‘학위’는 사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하나의 ‘타이틀’이다.  

 

   그러나 ‘목사 안수’는 ‘사명’을 받는 것이다따라서 한스 큉은 ‘ 성직 안수’를 받았다고 해도 ‘안수 목사’의 사명을 하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안수 목사’가 아니라고 하였다그러므로 한 번도 목회를 하지 않고 민권 운동, 정치 활동만 한 재시 잭슨 같은 사람은 ‘목사’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나이 70, 그것도‘목회자’가 되지 않겠다고 말한, 한 전직 ‘고문 기술자’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준 그 교단은 어떤 교단인지 이해할 수 없다.

 

 

   (3) 이근안 씨, 목사직의 면직에 대하여

 

   어떤 단체나 조직에도 ‘징계’제도’가 있듯이 교회 ‘교단’에도 ‘징벌’제도가 있다. 성직자로서 신령상, 혹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언행을 하거나 교단 법을 어기게 되면, 징계 위원회나 ‘재판 위원회’에 회부되어 규정에 의하여,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목사에게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는 ‘면직’ 혹은 ‘파면’이다.

 

   이근안 씨가 속해 있는 교단 측에서 이근안 씨의 목사직, 면직을 결정하면서 발표한 그 사유라는 것을 보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김근태 민주당 고문이 사망했을 때 찾아가 사죄하지 않았다는’이유도 있다이근안 씨가 목사로서의 어떤 비도덕한 행위나 교단 법을 어겼다고 말하지도 않았다그렇다면 그 교단이 처음부터 이근안 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것이 잘못된 것이란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오히려 교단이 잘못한 처사에 대하여 대 국민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그리고 이근안 씨를 ‘파면’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목사 안수’행정을 잘못 처리했던 교단 책임자들, ‘안수위원’들을 징계해야 하는 것이 옳은 처사가 아닐까?

 

   어느 교단이나 교회 전통과 역사에 어긋나지 않는, 올바른, 그리고 적법한 ‘목사직’ 임명 행정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소위 ‘자격 없는 목사’ 더 나아가‘엉터리’ 목사가 배출되지 않게 될 것 아닌가?    

     

       

 

 

 

<필자소개> 김택규: 미주감신대 초빙교수, 국제언론인포럼 편집위원

한국감리교신학대 졸업, SMU(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신학석사(M.Th.), Princeton T.S. 수학(summer session), Drew University 목회학박사(D.Min.)/ 해병대 정훈.공보장교,해군 군종차감/ UMC 정회원및 이민목회,북가주TV방송이사장, (서울) 감신대 객원교수, 필그림 이민목연 대표(),자유통일포럼 논설위원(),IPF(국제언론인 포럼) 편집위원(),미주감신대 초빙교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역사 속에 나타나는 공통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神을 찾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어느 민족이건 그들의 문화 속에, 물론, 그 정도나 형태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신을 섬긴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신에게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잠재해 있다는 것이고 그 출발점은 저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좇겨난 때부터가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쫓겨난 그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신에게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귀소본능(歸巢本能)을 유전으로 물려받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은 가는 곳마다 신을 찾으려하고 신을 숭배하는 제사를 드림으로써 위로 받으려하는 모습을 연출해 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이 귀소본능(歸巢本能) 부분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영적 무지(無知) 상태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오히려 여러 가지 형태의 신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신을 섬기기도 한다는 것이 필자가 본 견해입니다. 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
 
1.이방인들의 하나님:
바울이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행 17장 22절 하)”라고 지적한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종교성이 많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그 어느 국민보다 더 종교성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겼다고(행 17: 23절)바울 사도가 지적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모든 만물이 다 신입니다. 산에는 산신령, 돌, 나무, 폭포수, 물에는 용왕님, 하늘에는 일월성신님, 부엌에는 삼신님, 심지어 우리가 먹는 된장 간장독마저 모두 신이 관장한다고 믿을 정도였으니 우리나라 국민의 종교성이란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2.기독교인들의 하나님:
세상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다닌다고는 하나 막상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라고 물어보면 정작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습니다.”라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그저 맹목적 신앙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을 기독교 안에서 잠시 분류해
보면:
 
a.하나님을 추상적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사람들의 개념은 막연합니다. 하나님이란 하늘 공중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후에나 만나볼 수 있는 염라대왕쯤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 천당이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그뿐이니 이 땅 위에 있는 동안에 '천국보험'을 들어 두는 심경이라고나 할까요?
 
b.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늙은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복신앙가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라 보면 틀림 없습니다. 이들의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기분이 좋아진 하나님이 복을 한 아름 안겨다 줍니다. 그러나 내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좀 시원치 않으면 화가 난 하나님은 당장에 매를 때리기도 하고 병을 주기도 하며 또 물질에 큰 손해를 끼치게도 한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죄하기를 잘합니다. 다른 이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몸에 큰 질병이라도 들면, 그것을 저주받은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성도가 물질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십일조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잘못된 하나님을 믿는 것에 길든 성도들은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하나님께 매를 맞는 것이란 불안과 함께 이중고를 겪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부족했음을 아는 상태에서 병이라도 들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런 틈을 타 자칫 신령하다는 자들의 안수기도를 받으면 뭔가 해결될 것같다는 심리를 이용하는 사이비 치유사역자들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전지전능 하시고, 편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도덕적 속성으로서: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자비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으시며, 신실과 공의가 완전하신 분,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짧은 지면에 다 말씀을 드릴 수 없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고 하나님을 믿어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성경이 계시해 주고 있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계시해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많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 하나님을 개인의 주(The Lord)로 믿어야 합니다.
'주(主)'님이란, 원어로 '아도나이'(ynda)입니다. 그 뜻은'주권자', 인간의 또는 신적인 '통제자', '주인', '소유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은 죽어서나 만나보는 그런 염라대왕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현재 내 삶에 주인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개념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삶에서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하며, 이런 자세를 '청지기 자세'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잠시 말씀드린 대로, 청지기란 자기의 것이 없습니다. 내가 누리는 것 중에 내 것이란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게 있는 것은 모두 주인의 것입니다. 내 건강, 내 생명, 내 자녀, 내 물질, 모두 주인의 것이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잠시 받아 누린다는 개념입니다.(시 24: 1절) 따라서 이런 사람이 십일조를 내는 것은 복 받으려고 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그동안 받아 누렸으니 그 은혜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 분의 일을 드립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의 것인데, 십일조뿐 아니라 내 재산 모두 드려야 마땅하지만 십 분의 일이라도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이런 자세가 선한 청지기의 올바른 물질관입니다.
 
둘: 하나님을 예수님(Jesus)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은 구원자란 뜻입니다(마1: 21절 참조).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요, 그분만이 우리의 구속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 12절 말씀)” 그렇습니다. 석가도, 공자도, 여호와 증인 창시자 럿셀도, 모하멧도, 문선명도.. 그들 중 그 누구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은 그들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준 사람이 아니며, 또 죽어줄 수도 없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죄인, 자기의 죄로 인하여 저주(요 3: 36절 참조) 아래 놓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와 꼭 같은 신세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어 주노라”라고 말씀하셨고 실행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만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구원관입니다.
 
셋: 하나님을 그리스도(Christ)로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은, 1. 선지자 2. 제사장 3. 왕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의미 “당신은 나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니이다.”하는 뜻이 함축돼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란, 하나님 편에서 하늘의 소식을 인간에게 전해 주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이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는 사람입니다. 왕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통치자 입니다. 육신 적으로는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 영적으로는 그의 백성된 나 개인을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이런 사실 하나만 정확하게 알고 바로 믿으면, 결코 이단에게 속아 넘어갈 일도 없고 미혹의 영에 이끌려 탈선할 일도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도 아니며, 우리가 죽어서나 만나 보는 염라대왕도 아닙니다. 변덕 많고 괴팍한 하나님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된 개념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각종 이단 사설, 하나님은 다 같은 하늘의 신, 하늘님이라고 믿는 다신교나 여러 혼합종교의 유혹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재 정립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신과 내가 믿고 섬겨야 할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창세 때부터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그 구원의 계획을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으로 성취하신 성자 하나님,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찾아와 내주하고 계시며 도우시는 그 나라에 가기까지 견인해 이끌어주시는 성령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이 신앙이 올바른 신관입니다.
 
고로, “당신의 하나님은?” 하고 묻는다면,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이시다."라고 답하고 그대로 믿는다면, 그 속에 성도가 지녀야할 올바른 물질관, 구원관, 신관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가장 올바른 정답이 됩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화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 29: 11- 12절 말씀)”


USA 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신앙 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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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세 자녀 기도로 살린다며 ‘방치’

독감에 걸려 사망한 자녀 셋을 ‘기도로 살려내겠다’며 방 안에 방치해온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부는 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으면서도 “7일간 단식 기도를 하면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 보성경찰서는 11일 자신이 운영하는 한 교회의 사택에 숨진 자녀 3명을 방치한 혐의(유기치사)로 박모(43)씨 부부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박씨 부부의 진술에 따르면 세 아이는 지난달부터 독감 증상을 보여왔다. 둘째 아이(남·8)를 병원에 데려가고, 큰 딸(10)과 막내 아들(5)에겐 약국에서 사온 종합감기약을 먹였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사망하기 며칠 전에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면서 피를 토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큰딸이 1일 오후 숨지자 방문을 걸어잠근 채 시신 곁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다음 날인 2일 오전, 오후엔 둘째 아들과 막내 아들마저 잇달아 숨졌지만, 박씨 부부는 “7일 동안 단식 기도를 하면 아이들이 살아날 것”이라며 번갈아가며 방에서 기도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009년 전남 보성읍에 1층짜리 단독 주택을 얻어 교회를 운영해왔다. 신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박씨가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하고 교회를 차려 주민들은 그런 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씨는 자신이 ‘기독교 형제파’에 속해있다고 말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 교회를 다닌 15~16명의 신도들은 대부분 고령의 마을 주민들로, 평소 박씨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숨진 아이들은 친척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숨진 지 열흘만에 발견됐다. 친척은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가 며칠째 유치원에 나오지 않자 교회 사택을 찾아갔다가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도 방문을 잠근 채 아이들 시신 곁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씨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도 여전히 “영적인 기도를 통해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다. 단식 기도를 충분히 하지 못해 아직 아이들이 살아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성경찰서 관계자는 전했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조사됐으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12일 세 아이의 시신을 부검할 예정이다.
 
 출처: 조선


 

쉴로가 쓴『윌리엄 텔』이라고 하는 시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윌리엄 텔이 그 당시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의해서

스위스가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살았습니다.

거기에 합스부르크가의 악한 총독으로 왔던 게슬러가

높은 장대에 자기 모자를 걸어 놓고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절을 하라고 했을 때,

윌리엄 텔이 거기에 절을 하지 않고 지나 갔습니다.

그래서 게슬러가 붙잡고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감옥에 가든지 네가 활을 잘 쏜다고 하니까 50m 밖의 벽에다가 너의 아들을 세워놓고

그 머리에 사과를 놓고 그 사과를 꿰뚫으면 너를 살려 주겠다고 합니다.

 

윌리엄 텔이 두 번째 것을 선택 합니다.

멀리 50m 밖에 아들을 세우고 머리에 사과를 얹어놓고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화살을 하나만 꺼내지 않고 두 개를 꺼내서 하나는 품에 감추고

하나를 가지고 활시위에 화살을 먹여서 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근데 그 쏜 화살이 아들의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관통했습니다.

그때 그 악한 게슬러가 윌리엄 텔을 다시 불러서

"왜 너는 화살을 두 개 꺼내서 하나를 품에 감췄느냐?" 고 얘기합니다.

그때 윌리엄 텔이 게슬러에게 말하기를

"만약 내가 실수를 해서 우리 아들이 죽게 되었다면,

나머지 화살 하나로 당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얘기합니다.

그때 게슬러가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

내가 너의 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고 했습니다.

그때 윌리엄 텔이 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누구도 무서워 한 적이 없다."
- 임영수 목사님의 글 중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그 어떤 것도 겁낼 것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앞부분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조목 조목 지적하고는

결론적으로 죄의 대표적인 모습을 한 귀절로 요약 했습니다.

로마서 3장 18절 입니다.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익투스 님의 방에서





생각해 봅시다……. 희생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이솝이야기에는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하루는 늑대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리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늑대는 긴 주둥이를 가진 학에게 자신의 목에 걸린 가시를 뽑아주면 후하게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은 학은 벌린 늑대의 입 안으로 긴 주둥이를 넣어서 늑대의 목에 걸렸던 가시를 성공적으로 뽑아 주었습니다. 곧 이어 학이 늑대가 약속한 보상을 요구하자 늑대는 너무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늑대의 입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놈을 본 적이 있어? 너는 내 입 속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온 것만으로도 큰 보상인줄 알고 내게 감사해야 해! 목숨을 건진 은혜를 생각해야지…….”

늑대와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술 안마시고, 담배 안 피우고, 텔레비전 연속극 안보고, 비디오 안보고,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마땅히 자기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들을 제거하게 되었으면 제거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도리어 자기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베푼 것 마냥 생각해서 그 때부터는 자신들이 하나님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못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는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희한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비디오나 연속 방송극을 안 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이 “늑대” 수준임을 깨닫고 당장에 회개하셔야 합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뻔뻔스러운 늑대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희생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너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묵고 싶다고 했을 때, 삭개오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봉사 자체도 은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특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수다 떨 시간이 없는 것은 자식 때문에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 인하여 가질 수 있는 축복이요 은혜요, 특권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은혜이고, 아내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은혜 아니겠습니까? 혹시 아내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잘못된 사고방식을 반드시 올바로 고쳐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고, 남편을 위해서 도울 수 있으면, 도울 남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내와 대화시간을 갖는 남편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30분의 시간을 내는 것을 “굉장한 희생”으로 생각하는 남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를 위한 시간이 곧 남편을 위한 시간이고, 아내가 살아야 남편도 살 수 있고, 아내가 기쁨을 만끽할 때 남편도 집에 들어오는 것이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봉사를 희생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봉사는 희생이 아니라 은혜요 축복임을 명심합시다!

은사대로 일하는 것도 희생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은사를 사용해야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부르고 싶어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면서 큰 희생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착각하고 있는 분입니다. 내가 찬양 부를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지만, 더 좋아하는 사람은 부르는 사람 자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희생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찬양대원으로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 일을 하면서 억울해 하면 안 됩니다. 때때로 처음에는 열심히 봉사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혼자서 수고하는 것 같아 억울해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분들에게 그러면 쉬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면 속으로는 대단히 섭섭해 하십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사용할 때, 삶에 기쁨이 오기 때문이지요.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요 축복이라는 사실을 인정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을 잘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분이지, 우리들을 이용하고 이득을 얻으려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것도 우리를 위하여 명하시는 것이고, 성경을 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인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해서 하시는 말씀이고, 예배에 참석하라고 하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고, 봉사를 하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일감을 주시는 것도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녀들로서 희생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당장에 멀리 쫓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지혜롭게 사는 것이지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4-27). 술 마시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고, 손수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고, 양보하고, 남편 뒷바라지를 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고, 집안의 질서를 세우고, 비디오 보지 말고, 연속극 보지 말라는 것은 지혜롭게 살라고 권하는 것이지 희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지혜롭게 살라고 하시는 권고입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미련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담배 피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무엇보다도 나와 내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하루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야 말로 희생이 아니라 은혜인 동시에 지혜인 것입니다. 아무리 옆집 여자가 돈을 물 쓰듯 하면서 놀고 자고 먹고 멋만 부리며 산다고 해도 조금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 교육 안 시키고 그 시간에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똑 같은 것이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시키기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사는 최고 최선의 삶입니다.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야말로 은혜를 깨닫고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로 사는 차원 높은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로써의 삶 속에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기독교인들이라고 특별히 더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덜 고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고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자의 고생은 가치 있는 고생이고, 불신자의 고생은 무의미한 고생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창세 이후, 지금까지 온 우주에서 희생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 이외에는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베푸신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나 때문에 희생당하신 예수님에게 나의 생애를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께 받은 은혜의 일부분을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은 희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소위 말하는 “희생”은 실질적으로는 큰 은혜를 값없이 받은 자로써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값없이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 가운데 일부를 값없이 받았던 대로 값없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일 뿐입니다. 즉 나의 희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여 받은 은혜를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 양치기의 고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스스로 자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맹수들로부터 나발이라는 부자의 양 떼를 지켜 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즉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양 떼의 소유주였던 나발은 이런 다윗의 선행을 알아주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언제 너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삼상 25:21). 이 사건의 전말을 듣고 보신 하나님께서는 열흘 정도 후에 나발을 치셔서 그의 생명을 취하여 가셨습니다.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설사 비록 내가 부탁한 것이 아니더라도, 은혜를 받았으면, 적어도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갚을 수 있으면 갚을 줄 알아야 당연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해서 아깝게 생각하거나 희생한다고 생각하거나 억울해 하면 나발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즈음은 값없이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신앙생활을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자녀들을 교육시켜 달라는 부탁에도 부모님이 “그러면 제 인생은 뭐예요?”라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택함 받은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부터는 희생이라는 말을 없애고, 은혜와 감사라는 말만 하면서 살아간다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더욱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0/2006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담임목사 최영호
www.sewoondol.org   www.deliverusensemble.com

출처: USA 아멘넷/ 공부합시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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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시무 설교중)

지난 4월, 인터넷에 예언을 한다는 한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종교 카페가 개설되었습니다. 그 젊은 청년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젊은 청년은 8월 중순경에 이 땅에 전쟁이 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 젊은 청년의 예언을 추종하던 사람들 중에는 가족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피난을 간 사람도 있었고, 시골에다 몇 달치 식량을 비축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8월 중순이 지나고, 지금 8월이 다 지나가고 있지만, 그 청년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이 기사를 접한 저는 마음이 참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그 청년의 예언을 철썩 같이 믿고 가족들과 중국으로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분명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하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찾아가서 말씀을 듣기 원하고, 기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내 자녀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지 예언을 받으려고 합니다. 예언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사실 예언이라는 말 자체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언이라는 말은 말씀 언(言)자에, 미리 예(豫)자를 쓰지 않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미리 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언은 말씀 언(言)자에 맡길 예(預)자를 사용한 말입니다. 인간의 미래를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을 맡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선지자에게 주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선지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가진 성경으로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선지자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자신을 향해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매우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향해, 결코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구약시대처럼 오늘날 특정한 사람에게 계시를 결코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어떤 목회자에게도 개인적으로 계시를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런 말은 전부 다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그럴 듯하게 들릴지라도 우리는 그런 말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제는 더 이상 어느 누구에게도 계시를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해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목회자는 계시의 결정체인 성경 말씀을 오늘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기록된 이 성경 말씀과 설교를 통해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간혹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일이 있어도, 우리가 가진 성경 말씀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계시를 주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과, 내 손에 들려 있는 성경 말씀이 서로 상반되거나, 서로 충돌하는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그 때 우리는 내가 들은 음성이 아니라, 기록된 이 성경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음성을 들을 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체험 속에서 음성을 들었다 하더라도, 내가 들은 음성이 성경말씀과 서로 상반된다면 우리는 무조건 기록된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는 체험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들이 집중해야 하는 대상은, 음성이 아니라,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최고의 권위를 가집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굳이 선지자 노릇을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거짓 예언에 속지 않습니다.

성경을 깊이 알아야 직접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거짓 영의 음성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잘 모르는데, 음성을 아무리 자주 들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늘날도 교묘하게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말씀을 전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럴듯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내가 본 천국’이라는 사이비 천국론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고,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에 크게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또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관한 책이 나왔을 때는, 가계 저주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매번 거짓된 가르침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렸습니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정작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1998년에 한국갤럽 보고서는, 한국 개신교인의 51.9%가 예배 시간 외에는 성경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2004년 조사에서는 개신교인 53%가 예배 시간 외에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메시지도 안 듣는, 중립 상태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언제나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목소리를 더 듣기 때문에, 소위 예언한다는 사람을 쫓아다니거나, 신앙적인 유행을 쫓다가 낭패를 보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오늘날 선지자 노릇을 하는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시기를 진심으로 권면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내 자신이 성경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28장 9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다고 말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시무 설교중)


현실관이 잘못되어 있으면 삶에 대처하는 방식도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혹하고 독재적이고 성난 분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두렵게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색한 구두쇠로 생각하면

우리는 착취당하는 기분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면

우리는 목적 없이 시큰둥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공급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분께는 축복과 구원이 넘칩니다.

이런 현실관이 있을 때 우리는 막힐 것 없이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자신감에 차서 기쁘게 살아갑니다.

마음껏 믿고 마음껏 바라고 마음껏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 인생의 빈병★※

 

어떤 여인이 자신의 병 목록을

적어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검진을 끝낸 의사는 그녀에게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걸 확신했다.

단지 그녀의 병은 삶에 대한 그녀의

부정적인 자세, 이를테면 슬픔과

원통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쌓인 감정을 풀어주는 것이

해결책이 될 거라고 결론내렸다.

잠시 뒤 의사는 자신의 진료실에 딸려 있는,

온갖 종류의 약들이 즐비한 조그만 방으로

 

여인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빈 병으로 가득 찬

선반을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속이 텅 비어 있는 병들이 보입니까?

 

저것들은 제각기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흡사하지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 병들이 그 안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제 제가 그 중 하나를 집어서 안에다

사람 한 명쯤은 너끈히 죽이고도 남을 만한

양의 독을 집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열을 내리게 하고,

욱신욱신 쑤시는 두통을 사라지게 하고,

몸에 잠복해 있는 박테리아를

퇴치하기에 충분한 만큼의 약으로

병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무엇을 선택하든 나는 그것으로

병을 채울 수 있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은

이런 빈 병들 중의 하나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

혹은 사랑으로 그것을 채울 수도 있고,

반대로 지극히 해롭고 파괴적인 생각들로

그 병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답니다.”

 

-좋은글 중에서 -

 

※★ 오늘의 만나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sth.

(Romans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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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동동 / 시바타 도요
 
 
그 옛날
장난감 가게앞
길바닥에 드러누워
장난감칼을 사달라
발을 동동 굴러서
나를 곤란하게 했던
아들
 
이제는 
백발이 되어
이모저모 나를 
타이르게 됐네
 
젊어지는
약을 사다 줘
이번에는 내가 
발을 동동 
굴러볼까
다다미에 드러누워서.
 
 
 


 
 

시바타 도요 / 1911년 6월 26일생으로 올해 100세.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셨고

일본 전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아직 할일들이 많은 나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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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구원받기 위하여

무슨 과에 다니세요?

저는 광야대학 천로역정과에 
다니고 있어요. ^^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의 삯인 무거운 죄 짐을 등에 지고

순례자는 천상의 도시를 찾아가기 위해

파멸의 도시를 떠났어요

 

천상의 구원자는 
하나님이신데 
대충 넘어가시는 
일이 절대로 없으신 분이시랍니다

 

구원은

돈이 많은 자로도 불가능하고 
공로가 많은 자로도 불가능하며

자격을 갖추며 구원받을 자가 없지요

 

구원은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선물로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에는 성부께서 좌정하고 계시되

부활승천,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성자는

이 땅에 더 이상 계시지 아니하시며

승천하신 이 후로

마지막 때의 인류 구원 사역은

보혜사 성령께서 책임 맡아 운행하고 계시지요

 

잡신 하느님을 믿으면

유일하신 성부하나님을 믿음이 아니요

독생예수 유일하신 구원자를 믿음이 아니요

보혜사 성령님을 놓치면 교과목이라는 것을

이수하더라도 구원을 놓칠 수가 있지요

 

학비가 비싸냐구요?

, 아주 비쌉니다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할 정도 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생명 모두를 내어 주셨기에

아주 비쌉니다

 

천하보다 귀한 나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하여

존귀하신 독생자 아들 예수의 생명을 주셨기에

아주 비쌉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 비싼 대가를

거저 받기만 하면 됩니다

학비는 예수님이 내주셨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를 놓치면

낙제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영접하는 자에게

영생의 약속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합격하리라 
결심을 하고 도전해 보고 십으십니까?

그러나

내 힘과 능력으로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15:12)

 

주를 영접하는 자에게 은총으로 성령이

내주하시는데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주의 성령에 순복하며, 욕심, 탐심,

내 고집내 생각도
인간적인 모든 수단 방법도 
버려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주의 은혜를 끝까지 사모하는 자에게

2의 은총으로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복할 수 있으며 온전히

주의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에게 선물을 주시고마

약속을 하셨는데 바로 보혜사 성령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던 12 제자와 120 문도에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보혜사 성령이 임하셨음을

상기하세요

 

보혜사가 오시면 권세와 능력을 받게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가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성령의 권능으로 비로소

복음을 전하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과 향기와 편지를 전하게 되며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끝날까지 살 수가 있지요

 

그런데 보혜사 성령님을 거부하며, 불순종하는 자

여전히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매일 낙제를 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답니다.

 

성령의 열매가 없이는 아버지를 볼 자가 없습니다

행위로 구원받음이 아니라

행위가 구원의 열매이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에 믿음을 보겠느냐?

오직 성령의 권능에 의지하여

마지막 날에 심판에서 합격하는 자에게만
진정한 졸업 선물이 주어지게 되고

천국입성을 하게 됩니다.

 

주님 예수 한 분이면 충분한
삶으로 인도하소서!^^



 
    가난한 마음의 행복 마음이든, 물건이든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면 그 비운 만큼 반드시 채워집니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준 만큼 더 좋은 것이 나에게 채워집니다. 좋은 말을 하면 할 수록 더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을 쓰면 쓸 수록 그만큼 더 좋은 글이 나옵니다. 그러나 눈앞의 아쉬움 때문에 그냥 쌓아 두었다가는 상하거나 쓸 시기를 놓쳐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좋은 말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그 말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할 말이 없어질까 두려워 말을 아끼고 참으면 점점 벙어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낸 만큼 고이게 마련입니다. 나쁜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나쁜 것이 쌓이고, 좋은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좋은 것이 쌓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냥 쌓이는 게 아니라 샘솟듯 솟아 나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니 말입니다. 가난이 두렵다고 과도한 재물을 탐하지 말 것이며, 부자의 있음을 비방하여 자신의 무능을 비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고 넘치고 비우면 가득하다는 진실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가난한 마음의 행복 中에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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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느 책에서

윌리암 피들 (William Feather) 이라는 사람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 어린 아이가 길을 가다가 미화 $5달러

(한화 약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줍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 아이는

길을 다닐때면 으례히 오늘은 또 무엇을 주우려나? 하는

생각에 항상 목을 구부리고

땅만 내려다 보면서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그가 땅만 내려다보고 산 70여 평생에 그가 주운 것들은

단추 29,516개, 바늘54,172개, 그리고 동전12개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가 허리를 굽혀서 그 무가치한 것들을 줍고 다니는 동안

그의 목과 허리는 꾸부정하게 구부러졌고 

성질은 아주 인색해졌으며

또 괴팍스러워져 버렸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땅만 내려다 보고 사는 사람들은

무가치한 것에 자기의 소중한 목숨을 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얻는 소득이란 이 세상의 몇푼어치 되지 않는

썩고 없어질 것들 뿐입니다.

그것을 탐하는 결과로 그들에게는 영원한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을 뿐,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헛된 삶, 무가치한 인생을

남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로새서 3:1절)


많이 힘드시지요...

우리들의 주께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모든 역경을 이기고 승리하는
멋진 인생이 되라고
권면하십니다!
오늘도 위를 바라보며 힘차게 걸어요,우리.

 

By: 별똥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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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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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사람들은..

한 가지 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지만 진실한 성도는 모든 죄를 혐오합니다.

 

여러분이 술 취함이라는 죄악에서는 벗어났으나,

이기심과 인색이라는 '죄악'이 여러분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했습니까? 여러분의 우상을 바꾼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폭군을 몰아내고 또 다른 폭군을 앉힌 것에 불과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때는 신성 모독적이었으나 지금은 위선적이라면,

여러분은 죄악을 바꾼 것뿐입니다.

 

한 가지 죄악이

또 다른 '죄'악을 어떻게 먹이로 삼는지를 안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방탕은 죽어서 탐욕으로 살아납니다.

교만이 날아가고 나면 수치를 모르는 어리석음이 찾아옵니다.

 

음란하고 흥청망청거리는 사람이 그러한 죄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것의 무덤 위에 교만이라 불리는 유독한 잡초를 한웅큼 뿌렸는데, 그것이 엄청나게 번식했습니다.

 

불신앙이 미신을 몰아낼 수 있겠지만, 불신앙의 쉽게 믿어 버리는 습성으로 인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스다롯을 섬기기 위해 바알을 버리는 것이라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해 무슨 진보를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전에서 어떤 거짓 신을 섬겨도 전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짓 신들을 몹시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하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바른 기도중 하나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3-6).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시119:132-133).

 

 

거룩에 대한 열정 中에서.. '죄'의 속성 - 찰스 스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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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스펙이 지배하는 사회에 교훈을 주는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기원전 399)는 철학사 전체를 '소크라테스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정도로 일종의 분기점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두고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사상가"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서구 철학의 기초를 형성한 사람으로서 플라톤과 그 이후 그리스철학자들뿐 아니라 서양 사상사 전체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소크라테스가 35~40세 정도 였을 때 그의 친구 하나가 "아테네에서 제일가는 현자는 소크라테스이다"라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소크라테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당시 아테네에 사는 유명 인사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도 역시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는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테네의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차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자기의 무지를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테네에서 제일가는 현자로 칭해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라는 식으로 자기의 무지를 아는 것을 중세철학자 쿠자누스는 '박학한 무지'(docta igrantia)라 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을 그의 철학적 삶을 이끄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 자신의 말이 아니라 델포이 신전의 신탁으로 그 신전의 비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처럼 아테네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소크라테스가 취한 방법 중 하나는 '대화'였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지만 특히 소크라테스는 대화야말로 진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화할 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론이나 논리를 전개해서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상대방의 대답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보여주어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의 무지를 깨닫고 앎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입니다. 산파는 아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기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처럼, 서로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진리의 씨앗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아테네 사람들을 괴롭히는 '쇠파리'라 했습니다. 안이한 생각과 지적 자만에 빠진 아테네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여 아테네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들의 참나를 발견하도록 애썼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소크라테스이지만 귀찮은 '쇠파리'를 쫓거나 죽이지 않았던 아테네 사람들 역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소크라테스이지만 그는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책 한 권 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에 의해 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참된 삶이었고, 그러한 삶은 결코 책을 통해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그런 자기의 스승을 가리켜 "당대의 모든 사람 중 가장 사려 깊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살았다면 과연 그런 칭송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스펙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배부른 돼지'로 살면서 '가난한 소크라테스'의 칭송도 함께 받으려는 모순된 길을 걷고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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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못과 약점을 시인한다.

         

        2. 종교적이기보다는 영적이다.

         

        3. 다른 사람의 권면에 방어적이기보다 수용적이다.

         

        4. 의로운 체하기보다 겸손하다.

         

        5. 용서를 구할 뿐만 아니라 변한다.

         

        6.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고 한다.

         

        7. 신뢰하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신뢰를 쌓는다.

         

        8.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책임을 진다.

         

        9. 거짓말하기보다는 진실을 말한다.

         

        10. 정체하기보다는 성장한다.

         

        11. 가까이 있기보다는 친밀감을 추구한다.

         

        12. '나' 보다는 '우리' 를 추구한다.

         

        13. 다른 사람에게 험담하기보다는 직접 본인에게 말한다.

         

        14. 정죄하기보다는 용서한다.

         

        15.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대등한 관계를 선호한다.

         

        16. 변덕스럽기보다는 일관성이 있다.

         

        17.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8. 소문을 내기보다는 비밀을 지킨다.

         

        19. 상대방의 자유로운 선택을 좋아한다.

         

        20. 친밀하게 마음을 나누고 행동으로 옮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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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겉과 속이 따로 놀기 일쑤다.

모순투성이다.

우리는 사건과 실망의 위력 아래

방향감각을 잃고 어지러이 휘청거린다.

모순만 의식하고 산다면,

우리는 미쳐서 정신병원에 누울 것이다.

 

그러나 의식주, 신뢰, 사랑, 용서, 일, 여가 등

삶을 존속시켜 주는 것들에 부응하여 살면

제정신을 잃지 않는다.

삶의 내부와 외부가 서로 맞아든다.

내면의 시끄러운 요구와 외면의 부득이한 필요가

섭리의 위계안에 제자리를 찾는다.

 

기도하면 모든 필요가 하나로 통합된다.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의 초점이 잡힌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마소서(시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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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 “착한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빠가 되는 거고, 좋은 아빠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들이 되어야겠지. 남편이나 아내, 상사나 부하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을 바꾸는 거야" - A.G. 로엠메르스의《어린왕자-두번째 이야기》중에서 - *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꿈을 말하고, 꿈을 적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 내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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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살이 무척이나 그리운 때입니다.

비치는 햇살을 보고 있으면

그것은 한쪽으로만 쪼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빛은 어느 방향이든 찾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덧,

나 역시 그 햇살 아래에 있는 한사람이 됩니다.


 

그 빛이 내게 들어와 마음을 더 밝게 하고

삶을 따뜻하게 합니다.

구름이나 연무가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햇살은 더 밝고 깊게 찾아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순리입니다.


 

내 앞에 닥친 불행에 좌절한다 해도,

그것은 곧 소나기처럼 지나갑니다.

어둠이 깊은 곳에 빛이 스며들 듯

삶을 따뜻이 비추는 햇살도

그대 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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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아름다운 세상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둬 놓고 살고 있습니다.
서로를 못 믿으니까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스스로 감옥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마음의 문을 열면
세상은 더욱 넓어 보입니다.
세상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세상은 나를 가두고
세상을 닫아버립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향하면
세상은 내게로 다가와
나를 열고 넓게 펼쳐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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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으면 세상이 있고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으므로
분명 세상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만일 지구가 폭발해서 완전히 뒤집어 진다면
이 모든 땅들과 저 화려한 건물의 주인은 없습니다.
그 때는 주인이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자기 땅도 아닌데
마치 땅 뺏기 놀이처럼 금을 그으며
자기 땅이라고 우기며 자기 위안을 삼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건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의 몸 속에
영혼이 숨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나요?

나보다 더 강한 사람에게
나보다 더 나은 泳殆“毒?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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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약한 나보다 보잘것 없는
나보다 가진 게 없는
나보다 더 배운 게 없는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진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표면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사귀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미운 사람 다 용서하고
그 미움을 마음에서 다 지우고
알량한 자존심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그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더 마음의 상처를 입었어도
먼저 용서하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아름다운 화해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여는 작은 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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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 마음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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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담아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가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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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덩어리를 담아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 하나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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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원망으로 하여
끓어 오르는 불씨를 가두어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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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고 또 보고싶은
님의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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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도 또 듣고 싶은
님의 목소리도
담아 둘 수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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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마음 주머니 조용히 꺼내어
헤쳐 풀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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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가슴 봄 눈 녹듯
스르르 녹아 내릴 때
그때는 말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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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랑이였다고...
참으로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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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사랑을 담아둘 수 있는
마음 주머니가 있었음 좋겠다.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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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말이 참 듣기 싫다

오늘 아는 사람 몇 분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 중에 자연 교회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 큰 실수를 한 목사님의 이야기도 같이 곁들여 나왔다. 그리고 그 중의 한사람이 ‘목사도 사람인데….’라고 하며 장황하게 그 목사님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대번에 얼굴을 붉히며 한마디했다. “목사는 사람이지만 변함없이 목사는 목사랍니다.”

‘목사도 사람인데…’라고 하는 말은 주로 목사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했다거나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을 때 동정하며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목사도 틀림없이 사람이 맞다. 그러나 아무리 그리 말해도 목사는 목사다. 그렇다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목사는 목사다. 분수에 있어서 분모가 같은 수의 분모는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4분의 1이나 4분의 3에 있어서 4라는 분모는 똑같은 4이기에 그 값은 1이나 3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목사도 사람이고 집사, 장로, 성도도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의 공통분모가 되는 사람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라는 만인 공통의 공통분모를 빼고 남은 분자 즉 그가 누구냐고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니 동정하며 면죄부를 주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목사이기 때문에 달라야 한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즉 목사는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로서의 인격이 있어야 하고, 장로 집사 권사는 장로 집사 권사로서의 품위가 있어야 하며, 신자든 불신자든 그 인격으로서의 교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권사든 성도든 누구를 막론하고 그 신분에 걸맞는 신앙과 인격과 품위와 교양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도 사람인데라든지 장로도 사람인데라고 얼버무릴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목사가 잘못하면 목사로서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질책을 받아 마땅한 것이지 목사도 사람인데라고 어영부영 넘어 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성도는 성도로서의 본분이 중요하고, 목사는 목사로서의 본분이 막중하다. 이것만 망각하지 않으면 교회는 지금보다도 한층 더 성숙한 능력을 가질 테고, 세상은 한결 더 정직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내가 열이 나서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바람에 ‘목사도 사람인데…’라고 말한 사람이 잠시 머쓱해지고 분위기가 썰렁해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난 ‘목사도 사람인데…’라고 하는 말이 제일 듣기 싫다. 꼭 ‘목사는 목사이어야 한다’라는 말만 듣고 싶다. 아울러 장로는 반드시 장로여야 하고 집사는 반드시 집사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 타작마당 - 



 

대보름의 시절 음식과 나물, 오곡(찹쌀,찰수수,팥,차조,콩)을 섞어 밥을 지어서 먹었죠. 아홉가지 나물에다 아홉번 다른 사람 집의 밥을 얻어 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밥을 먹는 것이 풍습이라는데
우리네야 그렇게는 하지 않더라도 오곡밥은 맛있게 먹어야겠지요.ㅎㅎ



          바닥까지 추락해본 사람은
            눈물을 사랑한다.
            바닥엔 가시가 깔려 있어도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방처럼 아늑할 때가 있다.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희망이다.
  
            삶에서 담아온 글

       



     

    찬양과 경배 찬송 33장 -온 천하 만물 우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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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이 대남공작임을 증명하는 영상들    

                                  남한보다 엄청 성대하게 거행하는 5.18기념행사
    북한이 발행한 두 개의 대남공작 역사책에는 5.18은 물론 남한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사태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이며, 남북한 역사는 북한이 주체적으로 주도한다는 판이 깔려 있다. 이러하기에 북한은 이제까지 종주국 행세를 해온 것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남북한이 모두 5.18기념행사를 한다. 남한에서는 보훈처가 주최하여 광주에서 소규모의 행사를 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통일부 ‘북한정세분석’ 자료들이 증명했듯이 북한 전역에서, 

    당정 최고위 간부들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거행한다. 아래 사진은 평양시에서 5.18보고대회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모두 '5.18' 호칭 붙여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이라는 글자를 최고의 영예훈장으로 하사한다.

    ‘5.18영화연구소’(2001년 09월 28일 연합뉴스 보도), ‘5.18전진호’, ‘5.18누에고치반’, 영예의 5.18청년직장‘

    ’5.18땅크호‘. ’5.18청년제철소‘, ’5.18청년호‘,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 등이다.  

    아래 사진은 1만톤짜리 프레스, 한국에는 없는 장비이며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 제작에 사용된다. 

    5.18청년호 제1호 및 제2호의 사진이 있다.



                  아래 사진은 기차역 플랫홈에 쓰인 천리마 운동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김일성이 직접 제작한 대남 모략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1989~91년 김일성은 황석영과 윤이상을 평양으로 불러 대남 모략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했다. 

    작품에 만족한 김일성은 황석영을 재간둥이라고 칭찬하고 25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었고, 

    윤이상에게는 15층짜리 ‘윤이상음악당’을 선사했다.

    그런데 그 영화의 주인공은 광주 폭동 기간 내내 도망가 있던 박관현, 전남대총확생회장이었다. 

    박관현은 이로 인해 좌파들에게 비겁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감옥에서 단식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다. 

    5.18을 일으킨 주도세력이, 황장엽과 김덕홍이 증언한 바와 같이 북한의 대남공작부였기에, 

    광주인들 중에는 폭동을 지휘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환각제를 빼갈에 타서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아래 사진은

    1980 5월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김대중이 야합공모하여 전라도 광주에 북한특수군을 침투시켜

    대한민국 국가전복을 위한 인민봉기를 유도하는 유언비어와 44개 무기고에서 총기를 탈취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교도소를 6차례나 공격하는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공 게릴라

    군사작전을 전개한 북한특수군600명 중 살아 돌아간 일명/광수들을 현재(2016-02-04)314명 찾아내었다.

    씨스템클럽에서는 광수들을 1번부터 시리즈로 엮어 국제사회와 대한민국 국민께 밝힌 바 있다.

    제1광수 부터 제11광수 까지 아멘넷 성도 여러분께

    공개하며 북괴의 침략만행을 세계만방에 500만야전군의 이름으로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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