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부르는 여덟가지 방법 하나 -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 이미지 전체보기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해지기 위해 즉각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물론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잘못을 직면해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책임을 떠넘기는 건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미지 전체보기 둘 - 진심만을 말하라 이미지 전체보기 상대의 환심을 사면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는 늘 기분 좋게 느끼고 당신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갖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은 아부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또한 상대를 마음대로 하려는 얄팍한 술책이거나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아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칭찬과 아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칭찬은 진심이 뒷받침된 것이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 칭찬 그 자체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면 상대를 기분좋게 만들 것이다 이미지 전체보기 셋 : 똑똑한 척하지 말라 이미지 전체보기 똑똑한 척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도, 운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우선 똑똑한 척 행동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그리고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똑똑하면 이로울게 없는 것이다. 이미지 전체보기 넷 : 당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감사하라 이미지 전체보기 당신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당신이 이룬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 전체보기 다섯 : 단정하게 차려 입어라 이미지 전체보기 단정하고 화려하게 차려입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유행을 잘 따르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보는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드는 것이다. 색상이나 잘 어울리는 옷차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당신이 단정하게 매력적으로 차려입으면, 보는 사람들의 감각이 적극적으로 자극을 받아 당신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이미지 전체보기 여섯 : 인내심을 가져라 이미지 전체보기 운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감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어느 순간에 페달을 밟지 앓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할 지도 잘 알고 있다. 이미지 전체보기 일곱 : 질투심을 반드시 버려라 이미지 전체보기 가장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질투심이다. 질투를 하면 스스로 고통스러울뿐 아니라, 적극적인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운과 기회를 망치게 된다. 질투심이 많아 보이면 당신은 결코 운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운 나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행운에 배아파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이다. 이미지 전체보기 여덟 : 마음을 편히 가져라 이미지 전체보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삶이 뜻한 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는, 어쩌다 힘든 날일 뿐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너무 너무 힘들다면 내일은 더 밝은 날이 기다릴 것이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한다. "행운은 스스로 운이 좋다고 믿을 때 찾아온다" - 테네시 윌리엄스의 글에서 -



릴백, 목장대회 특강서 동성 결혼·여성 목사 안수·WCC 반대


한국과 미국에서 주요 이슈로 부각한 동성애와 동성 결혼 문제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전국목사장로대회에서도 강연 주제로 올라왔다. 대회 이틀째 5월 15일 전체 특강에 나선 릴백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은 동성 결혼과 여성 목사 안수, WCC 부산총회 등 예장합동 목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들에 대해 반대 뜻을 밝혀 호응을 얻었다.

릴백 총장은 미국 대통령이 성경을 근거로 동성 결혼을 인정한 것을 개탄하면서, 한국교회도 곧 이런 도전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러한 도전에 맞서 선교 사명을 감당하려면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우리 시대에 주목해야 할 성경 말씀은 목회는 남성이 하는 일이라는 것. 여성에게 주는 은사도 있고 가족 같은 교회에 엄마와 아빠 역할도 필요하지만, 남성 목회자가 사역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충고했다. 서구 교회에서 교회의 여성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에서 실패한 전철을 따르려 하지 말고 말씀의 권위에 근거해서 사역하라고 했다.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회 총회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반대 의사를 밝혀 참석자들을 시원하게 긁어 줬다. 릴백 총장은 다원화 사회에서 누구든지 WCC 총회 같은 모임을 우리 주변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웃으로서 진리를 말해 줘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했다. 사랑과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왜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할 수 없는지 알려 주라고 했다.

예장합동은 이번 대회 기간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 인본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며 WCC 부산총회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예장합동은 "소수 교단이 맹목적으로 WCC 부산총회를 추진하고 있다"며, "교회 성도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우려한다"고 경고했다.

성명에는 WCC가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성 부인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임을 부인 △무속 종교와 혼합하여 변질된 성령론 주장 △개인 영혼 구원을 간과하고 그리스도의 교회 머리 되심을 부인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계시 종교라는 사실을 부인하며 종교 다원주의 주장 등에 빠져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이 기사는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렸습니다.

주재일 / 한국 <뉴스앤조이> 편집국장

그(Jesus the Nazarene)와 그의 제자들은 마법과 흑마술을 사용하여 유대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미혹했으며 유대민족의 종교를 전복시키려는 이방민족 열국의 사주를 받은 자였다. (Sanhedrin. 43a)
 
그는 기적을 행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운 마법을 사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토라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자신의 살갗을 자르는 행위를 저질렀다. (Shabbos. 104b)
 
그는 성적(性的)으로 문란했으며 돌로 만든 우상을 숭배했다. 그는 그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쫒겨났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Sanhedrin. 107b; Sotah. 47a)
 
유월절 전날밤, 예수는 교수형에 처해졌으니... 당신은 그가 변호를 할 가치가 있는 자였다고 생각하오? 그는 민중을 미혹하는 자가 아니었나이까? (Sanhedrin. 43a)
 
예수는 그가 지은 죄로 인하여 지금 지옥의 똥물에서 펄펄 끓고 있다. (Gittin. 57a footnote #4)
 
귀족과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었던 그 여자(성모 마리아)는 목수들과 음탕한 짓을 저질렀다. (Sanhedrin. 106a)
 
머리를 만져주는게 직업이었던 여자 미리엄 (성모 마리아)은 많은 남자들과 간음했다. (Shabbath. 104b, footnote#2)
 
탈무드를 거부하는 기독교도들(“minim")이나 그 외 모든 자들과 그들의 자손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Rosh Hashanah. 17a)
 
신약성경 (“uncanonical books")을 읽는 자들은 앞으로 올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Sanhedrin. 90a)
 
유대인들은 기독교도들의 책들(신약성서)을 파괴해야 한다. (Shabbath. 116a)
 
기독교도들의 말살은 필수적인 제물이다. (Zohar, Shemoth)
 
경전에 쓰여진대로 토라를 공부하는 비유대인은 죽어야 마땅하다. 모세는 이 율법을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남겼지 저들을 위해 남긴 것이 아니다. (Sanhedrin. 59a,  Exhibit 60) 
 
누구든 랍비의 명을 거부하는 자는 죽어야 마땅하며 지옥의 끓는 똥물에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Erubin. 21b) *오늘날 유대교에서 바리새 율법학자들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바로 랍비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이다.
 
랍비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 (Hagigah. 27a)
 
한 랍비가 신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가 이겼다. 신은 그 랍비가 이긴 것을 인정했다. (Baba Mezia. 59b)
 
탈무드의 판결은 살아있는 신의 말씀이다. 여호와는 천국에 문제가 있을때 이 땅의 랍비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Rabbi Menachen, Comments for the Fifth Book)
 
오직 유대인만이 인간이다. (Baba Mezia 114b)
 
고이(비유대인)가 고이나 유대인을 죽였을 때는 유죄이지만 유대인이 고이를 죽였을 때는 무죄이다. (Tosefta, Aboda Zara, VIII, 5)
 
유대인을 치는 비유대인은 죽어야 마땅하다. 유대인을 치는 것은 신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Sanhedrin. 58b)
 
모든 비유대인의 아이들은 짐승이다. (Yebamoth. 98a)
 
비유대인 소녀들은 출생한 후부터 항상 불결한 상태에 있다. (Abodah Zarah. 36b)
 
비유대인은 짐승과의 성관계를 더 좋아한다. (Abodah Zarah. 22a-22b)
 
유대인은 비유대인을 요리함에 있어 거짓말(“subterfuges")을 사용해도 된다. (Baba Kamma. 113a)
 
한 유대인에게 빛을 진 비유대인에게 또 다른 유대인이 접근하여 돈을 빌려주고 속임수를 써서 비유대인을 망하게해도 된다. 우리의 율법에 의하면 비유대인의 재산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그것을 처음 발견한 유대인이 그 재산을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 (Schulchan Aruch, Choszen Hamiszpat 156)
 
유대인은 비유대인에게 노동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Sanhedrin. 57a)
 
비유대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유대인이 습득했을 경우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Baba Mezia. 24a; Baba Kamma. 113b)
 
고이들의 토지는 주인 없는 땅과 같으므로 소유권은 그 땅을 먼저 차지하는 유대인에게 귀속된다. (Baba Bathra, 14b)
 
비유대인은 신의 법이 보호하는 영역의 바깥에 있으므로 신은 “그들의 금전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노출시켰다.“ (Baba Kamma. 37b) *탈무드에는 비유대인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구절들이 자주 등장한다.
 
랍비 시메온 벤 요하이(Rabbi Simeon ben Yohai)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Tob shebe goyyim harog, "비유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들을 멸해야 할 것이라.“ (Soferim. 15, Rule 10)
 
가나안은 그의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했다: "서로를 사랑하고 강탈하는 것을 사랑하며 음탕한 것을 사랑하고 너희의 주인을 증오하며 절대로 진실을 말하지 말라." (Peshachim. 113b)
 
만약 악행을 저지르고 싶은 유대인이 있다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고장에 가서 악행을 저지르면 된다. (Moed Kattan. 17a)
 
품베디타에서 훔친 와인을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랍비에게 제기되었다. 와인을 훔친 도둑이 비유대인이라면 그 와인은 유대인이 사용하면 안되는 더럽혀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유대인이 손을 댄 와인은 불결하다). 랍비가 말하길, "걱정말라, 그 와인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품베디타 도둑들의 대다수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라." (Abodah Zarah. 70a)
 
농삿일은 여러 생업들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직업이다.  (Yebamoth. 63a)
 
늑막염("catarrh")에 걸린 유대인은 흰색 개의 똥을 발삼(balsam)과 반죽하여 먹는게 좋다. 하지만 흰개의 똥은 관절을 느슨하게 하므로 피할 수 있다면 먹지 않는게 좋다. (Gittin. 69b)
 
살갗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유대인은 실외 변소의 그림자에 덮힌 흙을 꿀과 섞어 먹으면 된다. (Gittin. 69a)
 
성스러운 방식으로 소변을 보는 규칙을 조정하는 율법이 있느니라. (Shabbath. 41a)
 
아담은 에덴동산에 있었던 모든 짐승과 성교를 했다. (Yebamoth. 63a)
 
랍비들이 가르치길, “방금 전 실외 변소를 사용했던 남자는 성교를 하기 전까지 10리의 반을 걸어가는 시간만큼 기다리지 아니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실외변소의 마귀가 그 시간동안 그 남자에게 붙어있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를 어길시에는 태어나는 아이가 간질병을 앓게 되느니.” (Gittin. 70a)
 
유대인은 거룩하기 때문에 방안을 어둡게 하지 않는 이상 밝은 대낮에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 학자는 대낮이라도 그의 의복을 텐트처럼 사용하여 어둡게 만들 수 있다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Shabbath. 86a-86b)
 
이 세상에서 랍비 엘리자르와 성교를 하지 않은 창녀는 없나니. (Abodah Zarah. 17a)
 
유대인은 세살짜리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3년’하고 ‘하루’가 지난) 소녀와 결혼해도 된다. (Sanhedrin. 55b)
 
유대인은 아홉 살 이하의 유아라면 성관계를 가져도 된다. (Sanhedrin. 54b)
 
다 큰 성인이 어린 소년이나 소녀와 성교하는 것은 아무런 티끌도 되지 않는다. (Kethuboth. 11b)
 
짐승과 관계한 적이 있는 여자는 유대교 사제와 혼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마귀와 성관계를 갖는 여자 또한 유대교 사제와 혼인할 자격이 있다. (Yebamoth. 59b)
 
우리의 종교에 대해 고이와 얘기하는 것은 모든 유대인을 죽이는 것과 다를바 없다. 만약 우리의 종교가 그들에 대해 뭘 가르치는가를 고이들이 알게되면 그들은 망설임없이 유대인을 몰살시킬 것이다. (Libbre David 37)
 
우리의 책에 그들에 대해 좋지 않은 내용이 들어있지 않은가라고 묻는 고이들에게 유대인은 반드시 거짓말을 해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야 한다. (Szaaloth-Utszabot, The Book of Jore Dia 17)
 
초막절(草幕節, the Feast of Tabernacles)은 이스라엘이 이 세상의 다른 민족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는 기간이다. 이 땅의 모든 민족은 “하층계급”으로 정복당할 것이며 우리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Zohar, Toldoth Noah 63b)

출처: 양무리마을/ holyjoy님

 

 



하나님을 위한 공간 만들기

(Creating Space For God)

 

"훈련(discipline)은 제자도(disciplieship)의

다른 면이기도 합니다

훈련을 수반하지 않는 제자도는

연습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마라톤에서

뛰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도가 수반되지 않는 훈련은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하여

항상 연습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마라톤에 참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 생활에 있어서의 훈련은

스포츠의 훈련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스포츠의 훈련은 육체를 잘 다스리기 위하여

집중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마음이 지시하는 명령을

 더 잘 듣게 됩니다

 

영적 생활에서의 훈련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기 위하여 집중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훈련은 하나님을 위하여

계속 열려 있는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고독은 훈련을 필요로 하고,

예배도 훈련을 필요로 하며,

남을 돌보는 것도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응답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준비해 놓을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합니다

 

옮긴 글: 목양연가 중에

 
 



  

나의 구원은 범주는 어디까지?.

1.구원과 영생에 관한 성구를 봅시다.
.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10:22.내 이름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막1029.나와 복음위하여 금세에 있어 형제자매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 핍박을 겸하여 받는 자는 “영생”을 받지 못할 자 없으리라.
요3:3.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요5:24.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1.
행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엡2:8.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상의 조건들이 다 구원 얻는 조건들입니다.

1)이상의 말씀을 간추려 다시 보면
(1)내 아버지 뜻대로 하여야 천국 간다.
(2)예수 이름으로 미움을 받으나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3)다 버리고 핍박을 겸하여 받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4)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5)누구든지 믿으면 영생 얻는다.
(6)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7)주의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8)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믿으면 구원 얻는다.
(9)은혜로 구원 얻었다.

이상에 말씀과 같이 구원에 여러 조건과 양태가 있다. 이상의 모든 구비조건에 충족되어야 구원 얻는 것이 아니다.

2)구원의 범주는 넓고 큽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데 믿음은 자율적 공로가 아니라 거저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선물은 다양 합니다. 同一 同等하지 않습니다. 내 믿음이 어느 성구에 해당하던지 한 구절에 해당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여도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범주는 넓고 큽니다. 인간들의 생각같이 편협 되거나 좁지 않습니다.

2.믿음은 구원에 基本이고 本質입니다.

믿는 것이 무엇이냐? 삼위하나님을 믿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재를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구원에 관하여 자신이 없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신앙을 가진 성도님들은 염려하지 마세요. 염려할 것 없습니다. 믿으면 구원 얻는 것이 구원의 기본이고 本質입니다. 구원에 확신이 없어도 구원은 얻습니다. 구원에 확신과 구원은 절대 관계가 아닙니다. 확신이란 더 분명한 것일 뿐입니다.
성경에 지식이 부족하여 확신이 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성경을 확실히 믿는데 누가 구원 얻었나? 물으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로마서 8장30-35을 읽다가 구원에 확신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즐거워 일어나 춤을 추었습니다.
성경을 다 알고 다 깨닫고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운명 시에 예수님 영접하여도 구원 얻습니다. 실 예로 예수님 십자가 옆에 한편 강도를 보세요. 강도는 위에 말한 성구 하나만 해당합니다. “주의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4:42.43)
다시 말하면 당신의 나라에 같이가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뿐입니다. 그런데 낙원에 같이 간다고 확답을 하셨습니다. 구원에 자신 없는 성도님들 강도 믿음만큼도 없습니까? 아니잖아요.
강도는 나를 생각하여 달라는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고로 주를 의지하고 평범하게 믿는 자도 구원을 얻습니다. 운명직전에 믿어도 구원 얻습니다. 그에게는 조건 구비 시간이 없습니다.

3.영적 체험이 구원에 조건은 아닙니다.

영적 체험은 믿음에 확신을 주고 신앙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에는 영적 체험이 필수적 조건은 아닙니다. 신앙의 감정과 각자의, 영적 체험은 각양각색 일 수 있습니다.
히1:1.에서에는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고전12:에 28절에 8가지의 은사를 말했다. 병 고치는 은사가 있는가 하면 방언의 은사 주교교사. 불우한 양로원, 고아원, 독거노인, 어려운 아웃을 돕는 또는 교회 사찰 은사가, 있는데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은사입니다. 달란트에 차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 고치는 은사는 대단하고 내가 교회를 평범하게 섬기며 구역장하는 것은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착각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착각입니다.

예: 체험자의 잘못된 모형
강원도 강릉 부근에 정-무슨 기도원이 있는데 이 여자 원장은 예언해주고 돈을 무조건 달라는데 3백 만 원에서 잘 사는 사람에게는 1000만원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 경험자의 말을 직접 들었다.
이 여자는 처음은 은사 체험을 한 모양인데 나중에 돈 마귀가 들려 예수무당, 사기 군으로 변질되었다. 많은 사람이 영 하다고 하기에 유혹을 받아 갔는데 예언이 안 맡기 때문에 돈 날리고 요즘은 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하나 아직도 속아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여러분 유명하게 소문난데 찾아가지 마세요. 거기 가서 무엇 받고 무슨 환상을 보고 무슨 예언 받고 그런 것 사모하지마세요. 내가 분명히 삼위 하나님만 믿으면 구원 얻습니다. 그 믿음 가슴속에 있지 않습니까?. 돈 요구하는 기도 안수 자는 사기꾼임을 아세요.

평상시에 모든 삶 속에서 예수님만 사모하고 바라보세요. 그러하면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면 모든 것을 주시는 날이 반드시 있는데 왜 그렇게 조급하게 굽니까? 조급하게 굴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신자가되세요.

어떤 사람들의 기도는 당장 들어주시고 어떤 사람들의 기도는 그 뒤를 쫓는다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 어머님 기도는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기 군 체험자보다 체험 없이 믿는 자가 더 복 있는 자입니다.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이후에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하였습니다. 체험 없이 믿는 자가 체험하고 믿는 자 보다 더 복 있는 자란 말씀이 됩니다.  

4.필자는 믿어진 예수께 감사하며 최선 다해 살았습니다.  

환상보고 싶은, 방언하고 싶은, 예언하고 싶은, 그런 마음도 없었고, 그런 은사 받은 자 부러워 한 적도 없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엡2:8.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믿어진 예수님 열심히 믿고 최선 다해 한평생 즐거운 목회를 하였습니다. 나 같이 부족한자 불러 평생목회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너무 감사하여 30년 목회하고 교회서 주는 퇴직금도 반납하고 5억짜리집도 사는 날까지 살고 죽으면 반납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 천국도 보고 예수십자가의 아픈 고통을 자기가 직접체험하기도 하여 예수님 십자가만 생각하면 예수님의 아픔을 실감한다며 울기도 합니다.
아실 것은 모두가 다 그런 감정 갖고 아픔을 느끼며 울어야만 참 신앙인이 되는 것처럼, 천국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된 것 같이 보는 것은 착각입니다.
은사 받고 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 지옥 갈 자 많습니다. 평범한 은혜 받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사는 성도가 더 복 있는 성도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지옥으로 가라는 말씀입니다)마7:22-23. 성도 중에 은사 받았다 날치는 자 지옥 갈자 많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노라”

5.구원에 확신 없는 믿음도 구원을 얻습니다.

성도여러분 믿으시면 구원에 대하여 천국을 실감하지 못해도 갑니다. 실감은 천국 가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실감하지 못해도 천국 갑니다. 천국 가는 것은 실감하지 못해도 믿음 안에서 성취됩니다. 사과 안에 비타민 A, B, C,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이 내가 믿는 믿음 안에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사과 성분 분석하고 먹는 자 있습니까? 그냥 먹어 놓으면 A.B.C가 다 효력을 발생 합니다,

필자는 나이야가라를 TV로보고, 듣기도 하였으나 존재로만 인정하고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수년전 나야가라를 갔습니다. 현장을 보고 배를 타고 폭포 밑으로 들어가 보고 진짜실감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은 나이야가라 사진을 보던 TV에나오던 그날 현장의 실감을 그대로 느낍니다. 가보기 전에는 TV를 아무리보아도 실존은 인정하는데 실감을 못 느꼈습니다.
구원과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있는 것으로 믿는 것이지 실감하는 것 아닙니다. 천국에 가는 날 실감합니다. 지옥 가는 날 누가복음에 부자처럼 거기서 실감합니다. 세상에서 성령 충만 받으면 천국에 기쁨과 평화를 약간 맛 볼 수는 있습니다.(나이야가라 못 보았어도 있다고 인정하는것 것처럼 그렇게 믿고가면 실제 천국에 갑니다)

6.세상에서는 믿음이 희미한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나 라고 하였습니다. 희미한 것이 정상 믿음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바울보다 더 환한 사람 많습니다. 착각이며 어떤 의미에서 신앙교만이며 기만입니다. 바울은 3층천까지 갖다왔는데도 거울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고 했습니다. 3층천도 못 가본 성도들의 신앙은 희미한 것이 정상입니다. 실감하지는 못하고 희미하나 철저히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가 표본적인 성도입니다.
희미하게 믿는 것이 정상입니다. 염려마세요. 희미하게 믿어도 구원을 얻습니다.

7.지은 죄 때문에 천국못가는 것 아닙니다.

죄를 지었다고 낙심하지마세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때 안 묻은 사람 한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때가 많습니다. 신자의 범죄는 분석하면 실수에 속합니다. 참된 신자는 고의로 범죄 하지 못합니다. 본회퍼같이 상황윤리의 죄도 범 할 수 있습니다. 본회퍼는 목사이면서 히틀러 암살단을 조직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지옥 같겠습니까? 본회퍼가 지옥 갔다면 구원 얻을 자 하나도 없습니다.

1)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히8:12.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과거형)
2)이미 죄 사함 얻어 놓았습니다.
요1.2:12.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얻음이요.
엡1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되고 죄 사함을 받았으니
골1:13-14.실감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의 나라로 옮겨졌고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이상의 말씀은 “實感”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인정하고 믿고 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희미하게 남아 성경대로 믿고 인정하고 實感나는 그 現場천국까지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確信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희미하게 믿어도 구원은 얻습니다.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실제 보지 못한 것은 희미한 것이 정상입니다. 보지못하였는데 어떻게 확실합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롬10:13.누구든지 주의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에 관해 염려 말고 주여, 주여 부르기만 하세요. 죽을 때까지 부르기만 하세요, 그리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너무 공짜이기 때문에 수용이 잘 안됩니다.

결어:
행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십자가의 강도는 부르기만 하고 구원 얻었습니다.

출처: USA 아멘넷/ 장달윤 목사님

 

 

우리 모두는 완전한 삶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과 슬픔, 투쟁과 전쟁이 없는

삶이 그것입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도전은

많은 투쟁의 와중에서도

이 완전한 삶을 엿보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그 속에 심겨져 있는 영생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힘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괴로움을 당해도

 꺽이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당하지 않으며

맞아서 쓰러져도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항상 예수님이 죽으심을

몸소 체험하는 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그의 생명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후4:8~12)

 

우리는 오직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직면함으로써

죽음을 초월하는 삶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하신

완전한 삶의 비전에 대하여 눈뜨게 됩니다

                                                     -옮긴 글

 

 


    <;  

    




단무지 먹지 말자

  • parkjy90302012-05-17 01:23:25
  • 댓글 18개추천 630반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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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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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슬피 울어도 내일은 기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오늘은 분노로 가득 차나 내일은 소리내어 크게 웃을지도 모른다. 아무 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허무 해도 내일은 희망이 푸른 날개를 퍼덕이며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오늘은 내 주머니가 비록 초라하지만 내일은 가득 찰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내일은 날 찾아주는 사람들로 차고 넘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방을 해도 자신의 일이 옳다면 결코 주눅 들거나 멈추지 마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당신에게 주어진 영광에 대해 시샘하거나 따돌릴지라도 당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더욱 더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내 마음 같이 믿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떠나갈지도 모른다. 진실로 당신이 그를 이해한다면 그를 용서하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야멸차게 물러서지 마라 내일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를 믿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어제는 오늘을 몰랐던 것처럼 내일도 잘 알 수 없지만 삶은 늘 그렇게 지내왔고 그래서 미래는 언제나 신비롭고 영롱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지 전체보기

오늘 하늘은 맑고 푸르지만 내일은 그 하늘을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묵묵히 정성을 다하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 좋은 글 중에서 - 이미지 전체보기


관용의 잘못

관용에 관하여

토저(A. W. Tozer)는 '관용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오늘날 유행은 우리가 도량이 좁다는 평판을 얻지 않으려고 무엇이든지 관용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령하셨던 아말렉의 왕] 아각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참아 볼 수 없으며(삼상 15장),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오류와 악을 용납함으로써 오는 시대를 위해 교회의 건강을 희생하는 길을 택하며, 이것을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이름으로 행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악의 자리들을 소란시킬 의무가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한 신실한 사랑에서 행해지는 곳에 큰 유익이 따를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일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하는 심사(審査) 때문에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을 가장한 소심함 때문에, 많은 교회에서 쓸데 없는 형식들과 비성경적 행위들이 계속되도록 허용되었고, 그것들은 마침내 점점 교회의 생명을 질식시켰고 교회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교회 문제들을] 심사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결점을 찾는 자가 되지 않고서는 결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일이 순수하게 보존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A. W. Tozer, Berean Call, July 1998; Calvary Contender, 1 August 1998.)

여러 가지 문제들로 혼란한 오늘날 교계의 현실에 사랑과 관용만을 부르짖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원수들을 이롭게 하는 것뿐이다! 교회 내의 오류들은 지적되고 제거되어야 한다.

잘못된 관용

G. 캠벨 몰간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배신 행위인 관용이 있습니다. 마비 상태를 낳는 화평이 있습니다. 교회가 일을 할 때 타협에 근거한 교제를 요청하는 자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떨어져 서 있는 것은 추방과 핍박을 낳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능력과 영향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타협에 의하여 그 자신의 영향력을 파괴시켰습니다"(Calvary Contender, 15 August 1998).

오늘날처럼 교회들이 신학적, 윤리적으로 혼란하고, '잘못된 관용과 타협'이 많은 시대가 있었을까? 참으로 성도들에게 분별력과 신실함이 요구된다.

오류와의 연합--희미한 빛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중적 의무가 있다. 즉 '땅의 소금'이 되는 것과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많은 신복음주의자들은 낙태, 동성애, 음란물, 그리고 다른 악들과의 싸움에서 우리로 하여금 천주교인들과 힘을 합치기를 원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연합할 수 있지만,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종교적 방식으로 함께 행진하고 사역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불신자들과 멍에를 같이함으로써 우리의 '빛'의 역할을 절충하고 혼란케 하는 댓가를 치루면서 '소금'의 역할을 강화시키려는 위험을 본다. 하나님의 일은, 그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의 일이 아니다.

스펄젼은 말하기를, "오류에 연루되는 것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그 오류에 대한 어떤 성공적 저항을 할 능력을 취하여 갈 것이다"라고 했다. '신학적 차이점들을 제쳐놓고' 거짓 복음을 조장하는 천주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고 예배할 때,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구원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행위는 '빛을 말 아래 감추는' 격이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분리를 명령하신다(고후 6:14-17).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고, 소금을 강화시키기 위해 빛을 약화시켜서는 안된다. (Calvary Contender, 15 September 1998.)

순결을 희생한 평화

참된 기독교적 일치는 공통적으로 믿는 고정된 성경 진리들을 믿고 주의하는 것을 포함한다. 오늘날 에큐메니컬[교회연합] 운동의 거짓된 일치는 '다양성 속의 일치', 다원주의, 그리고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섞는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다'(약 3:17). "외적 일치와 복음 진리 사이에 양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진리를 위해 일치를 양보해야 한다. 오류 안에서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나뉘는 것이 더 낫다." 그러한 분열의 책임은 진리를 떠난 자들에게 있다. A. W. 토저는 말하기를, "타협은 압박을 제거할 것이다. 사탄은 싸우기를 중지한 사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지의 댓가는 평화로운 침체의 삶일 것이다"라고 했다. (Calvary Contender, 1 April 1999.)

관용이 타협이 될 때

테리 아놀드(Terry Arnold)는 다음과 같이 쓴다: "오늘날 '관용'이라는 말은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 찬미를 받고 있다. 기독교 세계에서와 기독교 교리에서 관용에 대한 점점 더 많은 요구가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의미한 바와 성취된 바는 흔히 관용이라기보다 타협이다. . . .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말씀을 타협하는 것은 죄이다! 중요한 교리들과 타협하는 것도 또한 죄이다! 거짓 교사들과, 사람들을 건전한 교리로부터 떠나게 하는 자들과 타협하는 것은 죄이다. 성경은 때때로 일치보다 분리에 관해 말한다.

예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관용하셨지만 결코 타협하지는 않으셨다. 사실 그는 흔히 논쟁에 휘말리셨다! 나는, 그들이 뒤에 더 큰 것들에 대해 타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 작은 것들에 대해 타협하는 소위 '화평케 하는 자들'을 주의한다. 많은 목사들은 사람들이나 그들 자신의 지위나 인기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서 어떤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희생하는 관용은 타협에 이른다. 타협은 항상 본래의 표준을 낮춘다. 진리는 경계선을 가지고 있지만, 오류는 그것이 없다. 불행하게도 타협은 이제 덕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는 감정 상하는 일이 되었다"(Diakrisis, via Cheryl Dee e-mail, March 1999; Calvary Contender, 15 April 1999.)

불관용(不寬容)은 관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불관용의 사람은 관용될 수 없는 유일한 종류이다. 즉 만일 그가 '우익'(右翼)이라면. 그러한 사람들은 너무 정신적으로 병적이어서) 발언이나 종교의 자유와 같은 권리들이 주어질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미국의 공중 위생국 장관인 데이빗 샛처(David Satcher)는 미국인 전체 중 22퍼센트가 어떤 특정한 때에 '진단할 수 있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들의 생애 중 어느 때에 정신적 질병을 앓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야구 선수는 그의 정치적으로 부정확한 견해들 때문에 상담을 받아야 하지만, 브레이브즈(the Braves)의 소유주(좌익파 테드 터너)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증오의 발언'을 사용하며, '관용' 경찰의 감수성 훈련 상담을 피할 수 있다. (New American, 14 February 2000; Calvary Contender, 15 March 2000.) 기이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관용은 이제 중립성을 의미한다

다원주의는 강요된 중립성이 되었다. 거기에서는 아무도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생각도 표현해서는 안된다. 어떤 목사는 예배하는 이들에게 구도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성경들을 교회에 가져오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이것은 전도를 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는 많은 죄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 청년'을 포함하여) 많은 선교단체들은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험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회심자들이 그들의 문화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옛날의 종교적 신념들과 행위들을 지니도록 허용된다. 와이 더블유 에이 엠(YWAM)은 이런 관념을 '메시아를 믿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실험하고 있다(Baptist Banner, May 2000; Foundation, June 2000; Calvary Contender, 15 June 2000).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경찰이 범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의사들이 질병을 관용해야 하는가, 법관들이 거짓 증언을 관용해야 하는가? 그러나 기타 다른 맥락에서는 미치광이짓일 관용이 영적 문제들에서는 명령된다"(Dave Hunt, The Berean Call, May 2000; Calvary Contender, 1 January 2002.)

극단적 중립

우리는 극단적 오른편과 극단적 왼편에 관해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극단적으로 거짓되고 극단적으로 불순종적이며 극단적으로 위험하다고 폭로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극단적 중립이다. 예전에 W. B. 라일리 박사는 말하기를, "중도적 사람은 20세기의 신학적 위협이다"고 하였다. 진리와 오류[선과 악]간의 싸움에서 중립성은 덕이 아니다"고 했다(Calvary Contender, May 2002.)

오류는 지적되어야

묵의 죄

스스로 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정통적 기독교의 역사적 성경적 교리들로부터 심각하게 떠날 때, 우리는 게으르게 침묵함으로 서 있어서는 안된다(딤 1:9-11). 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며 그 오류의 전파자들과 그것을 듣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침묵하는 파수꾼은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파수군이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의 목자들을 '눈 먼 파수꾼들'이라고 부르셨고 그들을 '벙어리 개요 능히 짖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사 56:10). 그는 그들의 그릇된 교리를 비난하지 않으셨고, 오직 그들이 경고했어야 할 때 잠자고 있었음을 비난하셨다. (Vantage Point, July 1998; Calvary Contender, 1 September 1995.)

현대 교회 문제들은 지적되어야 함

미국의 한 보수적 교단(GARBC)이 인준한 침례교 성경 대학 및 신학교의 교장인 밀로 톰슨 박사가 그 교단의 최근 연례 대회에서 캘버리 컨텐더 같은 현대 교회 문제들을 지적하는 소식지들을 '(남들을 중상이나 하는) 문제의 종이들'(scandal sheets)이라고 표현하고 그것들을 목욕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거기에 대하여, 캘버리 컨텐더 편집자 제리 허프만(Jerry Huffman) 씨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우리는 보도되고 있는 '타협'이 그것을 보도하는 것보다 '목욕'시킬 필요가 더 있다고 느껴야 한다. 보기를 원치 않는 자들처럼 눈 먼 자들은 없다! 그렇다. 캘버리 컨텐더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속임을 피하기 위하여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보도하거나 폭로한다는 의미에서 '문제의 종이'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수치스런 문제들 중의 하나는 '근본주의자들'[보수주의자들]이 신복음주의의 궤도 안으로 집단적으로 변절하는 것이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에큐메니칼 자유주의자들이나 포용주의자들과 교제하고 강단 교류를 한다. 이런 류의 타협이야말로 20세기 말의 가장 큰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우리는 심지어 개인적 조롱을 직면할지라도 계속 진리를 위해 서서 이러한 '문제들'의 나타남들을 보도할 것이다." (Calvary Contender, 1 August 1998.)

출처: USA 아멘넷/ 침묵의죄 님

댓글:

지나친 허용(extreme tolerance)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시대사조(in the spirit of the age)에 붙잡혀서 크리스찬은 어떤 강경한 입장을 취하여서는 안되고, 아무 것도 논쟁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논쟁도 하지(engage in polemics)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왜 진리의 긍정적인 면만 말하고 당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은 버리지 않느냐? "고 따지며, " 부정적인 것은 잊어버리고 모든것을 긍적적으로 생각하라, 왜 맑은 물에 돌을 던져 흙탕물로 만드느냐?(why not steer clear of controversy)"고 말합니다.

이런 풍조로 인하여 더 이상 성경적인 이슈들을 직접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방법으로 다루지 않게 되었습니다. 명확한 방법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자는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로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잘못되었다고 하면 불평분자로 낙인이 찍힙니다. 타협(compromise)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고 진리에 대한 전념(devotion to truth)은 남을 공격하는 것이다(offensive)고 말합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운동의 많은 이슈들이 타협되어가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은 명백하게 동성연애(homosexuality)를 거절합니다. 간음(adultery)에 대한 크리스찬의 입장은 전혀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할 것인가란 질문은 명백히 설명되었습니다. 성경은 어느 크리스찬이 다른 크리스찬을 세상의 법정에 서게하는 것을 아주 명료하게 금하였습니다. 이기심(selfishness)과 자만(pride)은 명백히 죄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것은 회색의 영역이 아닙니다. 타협할 틈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슈들까지도 크리스찬 방송, 크리스찬 텔레비젼, 그리고 크리스찬 서적에서 회색 영역으로 다루는 것을 계속적으로 듣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협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많은 크리스찬 지도자들이 기꺼이 호의를 보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명확한 일들도 권위있게 말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진리와 오류, 지혜와 우둔,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는 선이 이런 방법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말살되었습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크리스찬은 오히려 세상과 대조적인 견해(antithetical worldview)를 받들고, 진리와 윤리에 대하여 흑백의 명확함으로 대답할 수 있는 성경적인 올바른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이고 부동적인 진리가 없으면 구원(salvation)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협하고, 변하고, 허용하는 여론(tolerant opinion)은 Carrasco가 날마다 겪게되는 " 미치고 혼동이 되고 괴로운" 이슈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구원(save)하고 죄를 씻어주고(sanctifies) 희망(hope)을 줍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성경적인 진리를 옹호하는 이 세대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두려워 하고,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그리고 지나친 허용의 세대에 주님의 진리를 높이 들 수 있도록 주님께로 부터 오는 능력과 용기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By: JuNick 님의 댓글 중

[앵커멘트]

 

    숨겨진 위대함(Hidden Greatness) 우리 사회는 명성과 평판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당신이 작가든, 배우든, 음악가든 또는 정치가든, 잘 알려져야하며,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신문과 텔레비젼은 매일 매일 우리들에게 전합니다 그래도 진정한 위대함은 흔히 숨겨져 있으며 겸허하고 단순하며, 그리고 주제 넘게 참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공개적인 확인이 없으면 우리 자신과 우리의 행동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깊은 겸손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과 가장 중요한 평화 활동들은 명성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일들이 자기들의 소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들을 커다란 인내와 끈기와 사랑으로 이루어 냈습니다
                      - 옮긴 글


                    [서울신문]1974년 2월 어느 날 프랑스의 샤를드골 공항. 하얀 강보에 싸인 동양인 아기가 프랑스 여성의 가슴에 안겼다. 생후 6개월이었던 그 아기는 38년 뒤 프랑스인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여성 엘리트 정치인이 됐다. 문화·방송·디지털 경제 전문가로 새로 출범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정부에서 입각이 유력시되는 플뢰르 펠르랭(39). 최고 수준의 엘리트 교육과정을 거쳐 성공한 여성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남들보다 2년 빠른 16세때 바칼로레아 합격

                    그녀는 1973년 8월 2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거리에서 발견돼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6개월 뒤 프랑스에 입양됐다. 입양된 가정의 분위기는 지적이고 자유로웠다.

                    아버지 조엘은 핵물리학 박사로 국립과학연구소(CNRS )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핵안전청에서 일하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엄마 아니는 인자하고 자상한 주부. 이들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지만 유전 질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을 잃은 직후 한국에서 여자 아이를 입양했는데 어찌나 예쁘고 똘똘한지 이름을 플뢰르(프랑스어로 꽃)라고 지었다.

                    ●파리정치대학 졸업 등 여성 엘리트 종결자

                    펠르랭은 2년 월반을 해서 16세에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했고 명문 상경계그랑제콜 ESSEC(고등경영대학원·1994년 졸업)를 나왔다. 2000년 고위공무원 양성 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졸업 성적이 상위 15% 이내에 들어 원하는 부처를 선택할 자격도 주어졌다. 재정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펠르랭은 감사원을 지망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후보의 연설문안 작성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7년 당적을 초월해 소수 인종 출신의 사회 진출을 지원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엘리트그룹 '21세기 클럽'에 들어가 2010년 회장에 선출됐다. 그해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도 졸업해 프랑스 최고 엘리트 코스의 종결자가 됐다.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언론은 그녀를 일찌감치 눈여겨보았다. 피가로 매거진은 펠르랭을 '내일의 정치인 7인'의 한 명으로 꼽았을 정도다.

                    함혜리 영상에디터 lotus@seoul.co.kr

                    너무 답답한 마음과 이 아멘넷에 조용히 들어와서 정보를 얻어가는 말없는 방문자들 중 필요한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이런 곳에 올리기 너무나도 모자란 글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기도하고 올립니다. 문법이 엉터리라고 야단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가 미국에 국졸하고 와서 겨우겨우 한글도 사용하는 형편이라 자격은 안 되지만 이해하시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후편은 오늘 밤에나 완성해서 올릴까 합니다.

                    이글은 Narth.org Homosexuality 101 이란 문서를 부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http://narth.com/docs/hom101.html 에 있습니다.

                    이 글을 번역하며 남자 아이에게는 아빠가 여자 아이에게는 엄마가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구나 세삼 깨달았습니다.

                    동성애는 오랫동안 동성애 재활인(재활을 맡은 담당자)들의 부족한 지식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동성애자들을 재활해 왔다. 많은 재활인들이 동성애는 의학실험에서 유전적이라는 확실한 결과가 없었어도 기정사실로 믿었고 선척적인 요인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동성애 옹호 과학자들이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이 원하는 결과, 곧 같은 성 끼리 끌리는 유전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도리어 많은 연구자들은 동성애 지향을 생물학적 더하기 환경조건이라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가 오직 생물학적으로만 생성되는 것인가란 질문애 동성애 연구가 딘 해머(Dean Hamer)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 아니다. 우리가 시도한 쌍둥이들 실험에 의하면 절반 이상의 성적취향 변이성 은 유전이 아니다. 우리 연구는 정확한 동성애의 유전요인을 찾아내는데 있지 환경요인을 부인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다" (Anastasia, 1995, p.43). 더해서 뇌 연구가 사이먼 러베이 (Simon LeVay)는 동성애취향은 여러가지의 요소가 있다라고 말했다 (LeVay, 1996).

                    그러면, 무엇이 같은 성에 이끌리게 하는 것일까? 이러한 행동은 대체적으로 아이의 타고난 성격에다 환경이 더해져서 이루어진다. 의학박사이자 "My genes made me do it"이라는 저자 Whitehead (1999)에 의하면 "사람의 행동은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이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타고난 유전자 없이는 처한 환경에서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처한 환경이 없이는 유전자가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p.10). 이말을 수학적 공식으로 나타내자면:

                    유전자+뇌신경+태아기간의 호르몬 환경 = 타고난 성격
                    부모+동료+경험 = 환경
                    성격+환경 = 성적취향



                    환경적인 경험은 성폭행 아니면 다른 큰 정신적인 충격들을 들수 있다. 같은 성의 이끌림은 흔히 성주체성 개발 과정에있다. 성주체성이란 자기의 성을 여성적으로 남성적으로 보는관점을 말한다. 성주체성은 아이와 같은성의 부모쪽과 친구(소아기/유년기)들로 인해서 형성된다.

                    성 주체성 개발 과정은 대부분 만 두 살 반에서 네 살 사이에 이루어진다. 남아는 이제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면서 심리적으로 아빠쪽으로 붙어서 더 깊은 남자로서의 성 주체성을 이루어간다. 남자는 남아와 아빠와의 관계가 확실한 성 주체성 개발의 시초로 시작된다. 그 관계에서 남아는 남자로서 대화 방법, 행동 하는법, 걷는 법 등을 배우게 된다. 아빠가 아이와 있는 동안에 아이에게 흥미를 보이고 인정을 하며 사랑을 보이면 그러한 행동들이 아이에게 남성적인 것들이 전이 된다. 남아는 아빠를 통해 자기의 성을 알아가는 것이다.

                    남아가 다섯 살이 되면 또다른 국면을 접하게 된다. 바로 친구들이다. 이 나이에 학교 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하는데 다른 남아들에게서 자기 아빠에게 배운 것들을 확인하려 한다. 다른 남아들이 걷는 방법, 대화 방법, 행동하는 법등을 확인하며 그 그룹안에 속하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남아는 계속 자기의 성 주체성을 이루어 간다.

                    초등학교 초기에는 이성과 노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동성끼리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행동은 개발 과정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유는 자신의 성 주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이성을 알 수가없다.
                    시간이 지나서 남아는 사춘기에 접어든다. 바로 이 시기에 비로서 남아는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자기와 다른 이성에 호기심을 갖기시작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성에 관심을 갖기시작하고 로맨틱한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반대로 동성애 취향 아이는 이러한 과정이 없다. 그러면 동성애 취향 남아는 무슨 과정을 겪는가? 대체적으로 아빠에게 심리적인 애착감이 없다. 아빠가 없거나 아빠역활 남자가 없거나 반겨주는 아빠가 아닌 아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심리적인 애착감이 없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이 아빠 없이 자랐지만 동성애자들이 되지는 않았다 반대로 애정어린 아빠가 있었어도 동성애 자가 된 사례도 많다. 이것은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환경만이 유일한 이유가 아니며 또 인간의 성장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각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각은 실지로 일어나는 상황보다 더 중요하다. 지각은 그 사람의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지각은 타고난 성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상대편이 어떠한 행동을 보였을 때 보통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을  특별히 예민한 아이의 지각은 상대방이 자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지각이 중요하다. 하지만 성격 자체로는 동성애로 발전하기 부족합니다. 남아의 성격이 맞는 환경에 처할 때 비로서 동성애 취향이 형성됩니다. 보통 늦게 동성애를 개발하게 된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예민하며, 관찰력이 예리하며, 명석하고, 운동적이기 보단 예술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만약에 남아가 아버지와의 정상적인 부자관계를 맺기를 원하는데 아빠가 거부하면 몇번은 노력하겠지만 그후에 자기자신을 보호하기위해 그 노력을 포기한다. 그것을 방어적 분리라고 심리학에서는 말한다. 그 남아는 아빠로부터 거부감을 느꼈을 때 반대로 이젠 아빠를 거부한다. 그때 남아는 아빠뿐만 아니라 아빠가 가지고 있는 남성적인 요소들을 다 거부한다 (Nicolosy & Nicolosi, 2001). 이때 남아는 엄마에게 계속 심리적인 애착감을 느끼며 여성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대부분 집안에 누이들, 이모들등 여성들이 많이 있다. 이 시기에 남아는 아빠로 부터 남성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아가야할  시기에 여성적인 요소들로 그 시기를 채우게 된다 그러면서 성 주체성이 여성지향으로 넘어간다.

                    이때가 되면 학교에 가서도 남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남아는 여자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더 편하거나 남자 아이들에게 위압감을 느낀다. 이렇게 된 남아는 자신은 다른 남자 아이들과 다르다고 자각하기에 다른 남자아이들과 어울리지를 못한다. 그리고 이 남아가 여성적인 매너까지 보인다면 다른 남자 아이들에게서 무시를 당한다. 하지만 이 남아는 계속 자기가 받아들여지기를 갈구하는데 그 갈급함을 채우지 못한다. 다른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멀리서만 바라보며 갈구하는 마음은 있으되 몸은 여자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며 더욱 여성적인 요소들이 각인 된다.

                    나머지는 다음에 계속 번역하겠습니다.

                    번역: 김철호(공부합시다)님
                    출처: USA 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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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여행에서 만난 사랑의 진실 *


                                                                                              우심 안국훈

                          마음 허전해질 때는 여행을 떠난다
                          한적한 산골이나 조용한 바닷가를 찾기에
                          종종 기차를 이용한다


                          지난 봄날 그날따라 피곤하여 의자에

                          기대어 잠 좀 자려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던 중년부부가 쉼 없이 수다를 떤다
                          은행나무 연초록빛이 너무 아름답다느니
                          흘러가는 강물 물빛이 오늘은 더욱 푸르다느니
                          저 연인들은 사귄지 오래 된 것 같다느니
                          어느 상점 간판이 재미있다느니
                          지나가는 아이들 옷차림까지 시시콜콜 이야기 한다


                          졸려 뒤척이다가 깔깔 웃는 소리에

                          그만 잠을 깨니 부아가 났다
                          기어이 참지 못하고 뒤를 바라본 순간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눈 먼 남편을 위해
                          그 남편의 눈이 되어 아내가
                          그리도 살갑게 이야기해주고 있던 것이었다
                          맞대응 하는 남편의 평온한 얼굴에서 행복이 넘치고 있었다



                          사랑은 꽃물처럼 번지고
                          행복은 햇살처럼 가까이 있는 거로구나



                           




                          돌발영상] 동성애의 충격 실태
                          동성애의 충격적인 최후입니다. 이것은 100%사실입니다.

                          http://youtu.be/4RWdui9M4cI

                          5. 항문 성관계의 위험성
                          1) 한번 파열된 괄약근은 운동해도 복원되지 않는 이유
                          2) 게이들이 걸리는 변실금이란?
                          3) 동성애자들도 싫어하는 이것은?
                          4) 동성애자들의 최후

                          6. 군대 동성애
                          1) 군대에서 동성애로 고통 받은 군인들 뉴스
                          2) 변호사 인터뷰
                          3)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가 된다면?

                          7. 청소년 동성애
                          1) 게이 카페와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해 성매매
                          2) 한 청소년 수련회 간부 (인간쓰레기)가 어린애들을 성추행(항문성관계) 후 인터뷰
                          3) 청소년 동성애 자살 수치

                          8. 레이디가가 월드 투어 목적
                          9. 동성애 차별 금지법 통과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
                          (미디어, 청소년, 퇴폐업소, 군대(북한과 남한 비교치),
                          '게이유권자파티'가 공개한 동성애 차별 금지법 제정 찬성명단 국회의원31명은?


                          출처: USA 아멘넷 게시판/ 김미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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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동성애에 대한 비밀’

                          <동성애자 양심고백 전문>

                           

                          1. 식성

                           

                          동성애자 A는 처음 동성애자 세계에 나왔을 때 모임을 통해 B를 알게 되었다. A는 B가 무척 마음에 들었으나 B는 “나는 뚱뚱한 체형이 식성이라 너같이 평범한 체형은 좋아할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A는 처음엔 그것이 의아했으나 곧 자신 또한 특정 체형과 스타일만 선호하는 것을 통해 이해하였다. 자신도 통통하거나 뚱뚱한 남자에겐 전혀 성적인 끌림이 없었다.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남자도 모두 비슷한 체형의,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그 후로 만나는 모든 동성애자들이 다 그러하였다. 지금까지 일반 사회에서는 그렇게까지 스타일이나 체형에 몰두하는 친구는 없었는데 좀 이상하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1) 이것이 동성애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소위 ‘식성’이라는 것이다. 식성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말하는데 동성애자들은 식성을 통해 자신들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식성은 크게 근육질, 스탠다드(이하 스탠, 평범), 통통, 뚱뚱(이하 뚱)으로 나뉜다. 근육질과 스탠다드를 하나의 식성으로 갖는 경우도 많다. 동성애자들은 상대방과 교제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서로 식성이 맞아야만 한다. 뚱을 추구하는 동성애자가 평범한 동성애자를 좋아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2) 실제로 종로에는 뚱만 출입하는 게이바가 따로 있다. 거긴 스탠이나 근육을 추구하는 동성애자는 절대 갈 일이 없다. 가더라도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친구를 사귀어도 자신과 식성이 비슷한 친구를 사귀어야 같은 게이바를 다닐 수 있으므로 식성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건, 친한 사람이건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3) 그러므로 동성애자는 항상 초면의 동성애자를 만나면 먼저 “식성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것도 연인이나 친구의 가능성이 있을 때의 얘기지 전혀 식성이 되지 않는 사람에겐 물어보지도 않는다. 어차피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항상 식성을 말한다.

                           

                          4) 따라서 게이바에서 식성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 또한 그의 식성이다. 대쉬하는 질문의 순서는 똑같다. “같이 오신 분은 애인인가요? 식성이 어떻게 되세요?” 이때 대답하는 식성이 자신의 체형이나 스타일과 많이 어긋나면 바로 포기한다. 자기 자신도 식성 안 되는 사람이 대쉬하면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5) 뚱도 베어, 완전 비만형, 뱃살 등등으로 나뉜다. 베어는 체형은 뚱뚱하지만 근육질 몸에 털이 많은 스타일로 일본에는 많으나 한국엔 드물다. 말 그대로 비만한 체형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도 있고, 배가 가급적 많이 나와야 하거나, 뱃살이 출렁거려 잡을 살이 많아야 한다는 동성애자도 있다. 뚱뚱하면 어지간해서는 모든 체형을 식성으로 둔 사람도 있지만 저런 세부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동성애자도 많다. 일례로 자신이 ‘베어’라고 밝힌 남자와 채팅을 통해 만났는데 그는 평범한 비만남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베어랑 뚱이랑 구분도 못하냐”며 그 자리를 나와 버린 동성애자의 경우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뚱은 뚱을 식성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뚱을 식성으로 둔 스탠은 식성 경쟁에서 아주 불리하며 그는 스탠을 식성으로 둔 뚱을 만나야 한다.

                           

                          6) 크게 나누면 스탠, 근육, 뚱, 통통이지만 그 외에도 중년을 식성으로 하거나, 아기 같이 키가 작고 여린 스타일만을 식성으로 둔 경우, 서양 남성만을 식성으로 하거나 동성애자는 절대 남자로 안보며 오직 이성애자 남자만을 식성으로 둔 경우 등 아주 다양하다. 중년으로 식성이 꽂히면 그는 언제나 꼰대바-중년의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술집-만 찾아다닌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젊은 동성애자가 아무리 대쉬를 해도 그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7) 동성애자 인터넷 카페도 체형별로 분류되어 식성을 만날 확률을 더욱 높여준다.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채팅 시스템에도 미리 자신의 체형과 나이, 원하는 식성을 입력시켜 확률을 높인다. 실제로 무작위로 동성애자 둘을 선정하여 서로가 식성으로 통할 확률은 아주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성을 만날 확률은 높으나 식성이 통할 확률은 적다. 따라서 식성으로 인해 아주 힘들어 하지만 식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식성은 자신의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8) 동성애자들의 식성은 이성애자들이 이성을 보는 몇 가지 기준 중에서 외모나 예쁜 여성을 밝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 식성은 절대적이다. 그럼 생각해보자. 위에 줄곧 언급한 식성은 바로 무엇을 말하는가. 상대방의 마음? 정서? 취향? 아니다. 식성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통한 ‘성욕’이 바로 식성의 모티브가 된다. 그들은 우선 식성이 되어야 성관계가 가능하다. 그들은 식성을 보면 그의 신체를 탐하고자 하는 욕구가 급상승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식성이 통하면 거의 대부분 만난 첫날 성관계를 가진다. 그들에게 있어서 식성을 확인하고 사랑을 이루는 과정은 먼저 성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연애나 사랑은 그 후의 과정이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9) 동성애자들은 사무실, 길, 모임에서 식성을 찾는다. 그리고 ‘식성의 만족성’을 표현하는 말로 그 남자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식성의 정도가-성적 모티브가- 최고 수준이라면 ‘올(all)식’이라고 표현한다. 올식을 만나면 성적 욕구가 최강으로 증대되므로 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연애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그런 감정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들은 이성애적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이런 감정이 정말 짝사랑인 줄 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짝사랑은 온 몸으로 그에게 성욕을 통하여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것이 짝사랑 감정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 명을 짝사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10) ‘잡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드물게 여러 가지의 식성을 소유한 동성애자도 있다. 언뜻 보면 이들은 식성에 구애를 안 받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여러 개의 식성을 가지고 있을 뿐 식성을 통하여 상대방을 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신의 잡식에 중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경우는 절대로 중년은 사귈 수 없다.

                           

                          11) 식성이 고급-객관적으로 매력 있는 스타일을 식성으로 둔 경우-일 경우는 모르지만 식성이 저급-보통 기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스타일-일 경우에는 동성애자 사이에서도 놀림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식성은 본인의 선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반 사회에서는 뚱뚱하거나 외모가 떨어지면 불리하지만 식성 논리의 동성애자 세계에서는 알 수 없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외모를 가진 남성이 가장 인기 없는 축에 속하는 스타일의 식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12) 처음에 언급됐던 동성애자 B는 매우 평범한 체형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좋아하는 뚱은 모두 뚱뚱한 체형을 식성으로 두었다. A가 몇 년 후 종로에서 우연히 B를 만났을 때 그는 살을 있는 대로 찌웠고 뱃살은 비정상적으로 나와 있었다. 그렇게 되는 것만이 뚱을 둘러싼 식성 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제법 괜찮은 외모의 B가 그렇게 변한 것에서 괴상함까지 느꼈으나 식성 논리의 동성애자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1-1. 때짜와 마짜

                           

                          1) ‘때짜’는 성관계에서 남성역할을 즐기는 동성애자를 말하지만 ‘마짜’(여성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들은 거의 일반과 다름없는 남성성을 보여야 때짜라고 인정하지 여성성이 다분한 때짜는 아무리 자기 자신을 때짜라고 말하여도 콧방귀 낀다.

                           

                          2) 마짜들은 자존심으로 인해 본인을 마짜라고 말하지 않고 대부분 ‘올(all)’로 표현한다. ‘올’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동성애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사귀는 동성애자의 남성성이나 평소 행동을 통해 전형적인 마짜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다.

                           

                          3) ‘올마’는 ‘완전한 마짜’를 말하며 이들은 때짜 역할을 하기가 불가능하다. 어지간해서는 때짜 역할이 싫어도 상대방이 때짜 역할을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하지만 정서적으로 남성 역할이 불가능한 동성애자들도 상당수다. 그들 또한 자신을 소개할 때는 ‘올’이라고 말하지만 주변 사람은 그가 ‘올마’인 것을 다 알고 있다.

                           

                          4) ‘평때박마’라는 용어는 평소엔 때짜인 척 하다가 박을 타는(성관계의 속어) 순간에는 마짜로 돌변하는 사람을 줄임말로 만든 것이다. 이럴 때 자신이 마짜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동성애자는 당황하게 된다. 마짜들끼리는 연인 관계를 거의 맺지 않을뿐더러 지속하기는 더 힘들다. 몇 번은 때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그들에겐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5) 그들은 종종 종로에서 번개 모임을 갖는데 공지를 본 동성애자들이 참여 신청을 한다. 그리고 많은 인원이 모여 인근 호프집에 자리를 잡으면(종로 피맛골 근처에는 대규모의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호프집이 많다) 시작하는 첫 순서는 항상 자신의 식성과 성역할을 밝히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그 순간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간다. 각자의 입에서 나온 데이터를 자신의 식성이나 성역할과 매칭하여 자신과 가장 적합한 상대를 구하여야 한다. 여러 게임과 순서를 치루며 그의 행동에서의 여성성, 남성성 정도를 판별하고 마지막으로 ‘찜’ 하는 순서에 그를 지목한다. 한때 번개 개최자의 이름을 특화시킨 번개가 종종 열리기도 하였다.

                           

                          6) 식성과 더불어 때짜와 마짜는 동성애자를 묶는 강한 굴레이다. 서로 식성이 통해야 성관계를 나누고 애정을 형성할 수 있겠지만 성역할도 맞아야 한다. 그들은 이것으로 인해 힘들어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동성애에 눈을 뜨는 순간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식성은 말초 신경에 각인되고, 성역할은 그들 세계 속에서 학습되고 강요된다.

                           

                           

                          2. 식성(동성을 통한 식성 추구)의 결론

                           

                          1) 이성애자 특정 남성이 저런 현상을 보일지라도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을 터인데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속박된 것이라면 반드시 치료를 통해 그 굴레에서 나와야 한다. 그것은 겉보기에만 애정 행각 일뿐 말초신경에 성적으로 심한 자극을 받아 중독과 얽매임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2) 하물며 불특정한 다수들이 모인 그룹에 전반적으로 그러한 현상을 보이는 것은 도저히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불특정 다수가 모였는데 우연히 같은 학교 동창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동성애자 모임이기 이전에 ‘식성을 통해 상대방을 만나는 모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상대는 신기하게도 모두 동성이다. 우연은 없다. 그들의 모임은 비정상이다.

                           

                          3) 결론적으로 동성애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르기는 동일하나 그 과정이 우선 ‘동성을 상대로 성관계가 가능한 특정한 식성’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동성애자는 이 과정만 통과하면 사랑에 이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4) 동성애자들의 반론

                          이성애자 남성들도 여성에 대해 스타일을 고집한다.

                          - 물론 그렇다. 하지만 동성애자처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상대를 볼 때 최소한 이성으로 보여야 하며 어느 정도의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식성 집착은 거의 페티쉬 환자 수준이다. 성적 욕구가 감정의 90%는 넘을 것이다. 이성애자 남성이 아무리 성적인 것을 밝혀도 사귀는 여성마다 그러한 기준이라면 다른 남성들에게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것이며 그에게 절대 자기 주변의 여성을 소개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원만한 애정 관계나 결혼 생활 유지를 위해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식성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원한다면, 혹시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어렵겠지만 그들 세계에 직접 나가보고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동성애자 생활을 하다가 이성애자로 전향한 사람들과 같이 게이바를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들은 절대 식성을 숨길 수 없다. 식성이 매개되지 않고 그들 세계는 돌아가지 않는다.

                           

                           

                          3. 동성애, 식성의 원인

                           

                          사례 1- 동성애자 C는 어릴 때 누나들과 자랐으며 여장놀이를 했다. 아주 어린 아이는 백지 상태다. 물리적인 구분만 해놓았을 뿐 아직 온전한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그런 아이에게 여장을 하고 여자로서 놀이를 하도록 하고, 진심으로 그 아이가 여성 역할을 할 때, 그 아이의 심리에는 여성성이 심어지고 남성성은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다. 그 놀이를 꽤 오랜 시간 동안 하면서 C는 제대로 된 남성성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항상 자신은 선천적인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치료과정에서 원인을 발견하였다.

                           

                          사례 2- 동성애자 D는 동네 사우나 수면실에서 자는데 옆에 누운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음욕을 풀자는 생각으로 그냥 두었다. 그런데 그 후로 그 생각이 자꾸 나서 다시 그 사우나를 찾았고 수면실에서 다시 만난 그에게 은밀히 몸을 허락하였다. 상대방 남자는 중년 아저씨였는데 D는 식성이 중년으로 고착화되었다. 그는 동성애자 세계에서 평생 중년의 남자만 찾아다니며 사랑해야 한다.

                           

                          사례 3- E는 여성과 결혼도 하고 애정관계도 무척 좋았다. 단지 가끔 야동을 보곤 했는데 한번은 자극적인 것을 찾다가 게이포르노를 보게 되었다. 색다른 것을 찾던 그는 그것을 보며 점점 동성애적 섹스에 몰입하게 되었고 결국 동성애자 세계에 나오게 되었고 귀여운 남동생을 사귀게 되었다. 부인과 이혼까지 한 그는 여성적이지 않았고 연상보다는 귀여운 동생을 식성으로 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원래부터 동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례 4- 대학생 동성애자 F는 고등학생 때 부모님이 PC에 음란사이트를 막아놓아 볼 수 있는 것이 게이 사이트 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그 이전에 그는 한 번도 동성애에 대해 생각하지 않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래도 자위행위를 위해 자극이 될 만한 것을 찾던 학생은 게이 포르노를 보다가 아주 짧은 시간에 동성애의 자극에 크게 휘둘려 버렸다. 그는 동성애자 세계에서 있으면서도 이성애자였던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였다. 그는 어린 나이지만 동성애에 빠지기 전과 빠진 후의 감정을 정확히 구분지었다. 그 학생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원래부터 동성애자였다고 포장하지 않았다.

                           

                          사례 5- 동성애자 G는 유년기부터 아버지의 폭압적인 분위기에 늘 위축되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다정한 아버지 상에 대한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의 식성은 스탠다드한 체형에 모범생 같은 자신이 온전히 안길 수 있는 나이의 형이다.

                           

                          사례 6- F는 어릴 때 동네 형이 자신을 끌고 가서 성기를 만지게 하였다. 그는 그 행위가 어린 나이임에도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발기하였을 때 우람한 그 형의 성기를 만지며 매우 동경스럽고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아기 같은 성기와는 다른 것이었으며 처음 보는 것이었고 사정은 충격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성장하며 항상 그 느낌을 생각하였고 여성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연상의 형을 좋아한다.

                           

                          사례 7- H는 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던 시설 친한 형 집에 놀러 갔는데 형이 자기 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드러낸 알몸을 보고 어떤 자극-성기가 자신과 다르고(포경수술을 하고 털이 나 있고) 또 매우 크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후로 그 형을 볼 때마다 전과는 다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같이 다니던 대중탕에서 일상적으로 보던 어른들의 느낌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사춘기가 되자 형의 성기를 상상하며 자위를 하였고 동성애자 세계에서도 그런 형 같은 스타일만 찾아다녔다.

                           

                          사례8- 동성애자 I는 군대에서 동성애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 고참이 자는 도중 자신의 성기를 만졌으나 그는 부하인 자신의 처지에서 거부할 수 없었다. 그와 같은 과정은 수차례 반복되었고 자신도 고참의 성기를 만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등병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고참의 편애도 좋았고 여성과 차단된 환경 속에서 적절히 욕구를 풀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거듭된 과정에서 성접촉은 점차 대담해졌고 동성의 성기를 통한 자극이 완전히 각인되었다. 그는 제대하고 자신을 기다렸던 여성과 헤어지고 동성애자 세계에 나왔다. 그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연하나 형, 동갑의 스탠다드한 체형이 좋다고 하였다.

                           

                          1) 사례 1, 5, 6, 7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선천적이라고 믿는 동성애자들이 알고 보면 그만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상담과정 중에서 어릴 때 여장놀이를 경험하였거나 여성 역할의 무엇인가를 해보았다는 동성애자들이 꽤 있었다. 물론 여장 놀이를 했다고 다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성적인 성격일수록, 남성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환경일수록, 놀이 과정에서 진심으로 여성성을 추구하였을수록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남성성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여성성이 추가되어 자라났음은 동일하다. 그들은 대부분 근육질의 형을 좋아한다.

                           

                          2) 그 심리적 현상에 따라 행동 양식도 다르게 성장한다. 실제로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와 동성애를 왼손과 오른손의 차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왜 유독 동성애자들만 여성스러운가. 주말에 종로와 이태원에 가보라. 전국에 여성스러운 남자들은 다 모여 있다. 그들은 남자를 좋아하기에 우스개로 여성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여성적이다. 동성애자만 여성스러운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이성애자 중에도 여성스러운 남자들이 있지만 그것은 말투나 행동에서 누나들의 영향을 받았거나 성격이 지나치게 깔끔한 정도일 뿐 동성애자들의 여성스러움과는 다르다. 남성성이 훼손되고 여성성을 채워버리면 그 남자 아이는 자라는 동안 내내 여성스러운 행동 양식을 갖는다.

                           

                          3) 동성애자들도 이러한 점을 아주 부끄러워한다. 오래 전 커밍아웃을 했던 연예인을 두고 그들 게시판에는 ‘저런 여자 같은 게 커밍을 해서 이미지 다 버려 놨다. 이왕이면 남자다운 사람이 했어야 했다.’고 떠들썩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은 자연스럽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 여성스럽다고 하면 매우 불쾌해한다. ‘올마’도 어지간해선 자신을 마짜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 세계 남성 동성애자들이 모두 그러하며 한국이 특별히 유교 문화가 강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다고 하면서도 부끄러워하고 분노하는 것은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반증하는 내적 증거이다.

                           

                          4) 또한 어린 시절의 성적 자극이 자라는 동안 계속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알 수 있다. 성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동성을 통해 성적 자극을 시켜놓으면 각인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 아이는 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으며 자라는 줄곧 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그 행위를 반복하는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특별한 체험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의 성적 각인이나 남성성 훼손은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시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 원인에 따라 여성적인 정도도 달라진다. 물론 이런 경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동성애자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5) 어린 남자 아이들이 멋진 군인이나 경찰을 보며 동경하는 것은 남성성을 채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남성성이 온전히 자라지 못하고 여성성이 채워졌다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여성화되고 그는 무의식 속에 채워지지 못한 남성성을 채워질 때까지 자라면서 계속 갈구하게 된다. 그것은 ‘건장하게 잘 자랐다고 여겨지는 다른 남성’의 육체를 통해 얻어진다. 그래서 많은 식성 중에서 동성애자 티가 전혀 나지 않는 남자나 근육질이거나, 뚱뚱할수록 인기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남성성의 성장은 멈추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남성성의 훼손을 다른 남자의 육체를 통하여 갈구한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혹은 갈구하는 스타일이 바로 ‘식성’으로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동성애자를 넘어선 성전환자들이 왜 나오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6) 사례 2, 3, 4, 8은 성인이 된 후에도 얼마든지 동성애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동성애자 세계로 합류해도 기존의 선천적이라고 주장하는 동성애자들과 식성면에서 동일하다. 신기하게도 동성애에 빠지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식성이라는 굴레에 빠지고 만다. 이것은 동성애가 억압적인 말초신경의 자극으로 인한 것이라는 증거이다. 선천적이라고 주장하는 동성애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이나 이들이나 동성애자 세계는 식성으로 통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7) 이들은 이미 성인으로 자라난 상태이므로 남성성이 훼손되지도 여성적이지도 않으며 주로 남성 성역할을 하려고 한다. 동성애자 세계에서 이들은 순전히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들이 여성 성역할을 체험하고 그것에 고착화되는 것은 선택으로 가능하다. 이들은 식성과 성적 자극에서만 풀려나면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8) 동성애자들의 애정 관계가 짧게 끝나는 것은 성적 모티브가 애정 관계를 형성하는데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를 탐하는 짧은 기간이 끝나고 그 사이 다른 공유하는 정서를 만들어놓지 못하면 그들은 쉽게 헤어진다. 간간이 오랜 시간을 지속하는 동성애자 커플도 있지만 그것은 대표될 수 없는 극소수일 뿐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많은 동성애자 커플들이 ‘이번만큼은 오래 만나자’고 다짐을 해도 그때뿐이다. 그들은 원인이 무엇인지 그들 스스로도 모른다.

                           

                          9) 따라서 자신이 온전한 이성애자 남자라고 생각하더라도 절대 동성애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남성이 강한 말초 자극을 받으면 누구라도 동성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성애와 상반되는 ‘동성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에는 빠지면서 동성애자가 이성 간의 애정 영화나 포르노를 봐도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 이유는 동성애는 말초 자극을 통해, 남성성의 훼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심리에 식성으로 고립된다. 동성애자는 누구나 이러한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인 이성애는 그렇지 않다.

                           

                           

                          4. 성병실태

                           

                          1) 동성애자는 ‘찜방’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성욕을 해소한다. 찜방은 서울에만 몇 군데나 있는데 간판도 없이 영업을 하며 주로 새벽에 영업이 되므로 인근 상가 상인들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알지 못한다.

                           

                          2) 찜방은 어두침침하며 큰 방과 여러 개의 작은 방이 있는데 입장하면 수건과 수면 가운, 사물함을 준다. 큰 방에는 여러 명의 동성애자들이 누워있는데 라이타를 들고 다니는 동성애자들이 얼굴에 비추며 식성이 되면 작은 방으로 옮겨 성관계를 나눈다. 큰 방에서 공개적으로 성관계를 갖거나 집단성관계를 벌이는 경우도 흔하다.

                           

                          3) 이 과정에서 에이즈를 비롯한 각가지 성병이 무차별적으로 옮겨진다. 콘돔을 사용하긴 하지만 여성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는 상대방이 관계 도중 콘돔을 빼버릴까 봐 무척 두려워한다. 실제로 체위를 바꾸는 도중 몰래 콘돔을 빼는 일이 종종 있다.

                           

                          4) 문제는 에이즈를 고의적으로 옮기기 위하여 그런 짓을 하는 동성애자들이다. 또한 콘돔이 에이즈를 온전히 막을 수도 없다. 매독이나 곤지름 같은 성병은 콘돔을 사용해도 얼마든지 전염 가능하다.

                           

                          5) 곤지름은 동성애자들이 가장 치를 떠는 성병으로 항문이나 성기에 사마귀가 생기는 것인데 치료해도 재발이 쉽고 항문성교를 하는 동성애자들에게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전파되는 성병으로 그들은 곤지름이란 말만 들어도 치를 떤다. 병원에서는 남성의 곤지름은 보통 동성애자로 보기 때문에 이들은 눈치 안주고 치료해 주는 병원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동성애자들은 곤지름을 거의 끼고 살다시피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6) 관계 후 동성애자들은 입장 시 받은 수건에 정액, 대변, 피, 림프액 등을 닦는데 이 수건들은 바닥에 버려지고, 수건을 사용한 동성애자들은 새로 받거나 바닥에 있는 것을 주워 쓰기도 한다. 아침이 되면 바닥에는 콘돔과 수건이 가득하다. 이 수건들을 세탁기에 그냥 돌려 다음에 재사용한다.

                           

                          7) 작은 방의 침대에서 관계를 나눈 동성애자들은 몸과 손에 묻은 이런 분비물들을 베게나 이불, 침대보에 닦는다. 이런 곳에서 성관계는 계속 이루어지고 새벽이 깊어지면 그 곳에서 잠든다. 이불과 침대보는 언제 세탁하는지 알 수도 없다.

                           

                          8) 찜방의 주 이용층은 대부분 젊은 동성애자들이다. 식성 경쟁에서 밀려난 나이든 동성애자들도 이곳을 찾지만 상대를 구하기 힘들며, 그래서 누워있는 마음에 드는 동성애자에게 정성스럽게 스포츠 마사지를 해주는데 관계에 접어들려 하면 대부분 거절당한다.

                           

                          9) 이곳에서 에이즈는 무차별적으로 감염된다. 찜방이 있는 상가의 주인은 자신의 상가에 에이즈 제조공장이 있는 줄도 모른다. 실제 찜방을 자주 이용하는 동성애자는 에이즈환자라고 봐도 무방한데 이들은 누가 에이즈에 걸렸는지 대충 알기 때문에 새로 동성애자 세계에 들어온 초보를 많이 노린다.

                           

                          10) 이곳의 능숙하고 능글능글한 동성애자들은 새로 발은 들인 어린 나이의, 아무 것도 모르는 동성애자의 몸을 여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린 나이의 동성애자는 처음 발을 들인 그 날 에이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성병을 다 옮겨 받는다.

                           

                          11) 주말이 되면 찜방을 이용하는 동성애자는 수백 명에 이른다. 찜방은 거의 주말 영업임에도 불구하고 꽤 짭짤하다는 소문에 서울에 급격히 수가 늘어났다. 가끔 동네 사우나에 수면실이 어둡거나 음침한 경우 동성애자들이 모이기도 한다. 신촌의 모 사우나는 동네 대중탕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이 많이 모인 곳이었다. 신촌이라 아무 것도 모르고 이곳에서 자려고 온 군인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인은 이 사실을 다 알면서 매상이 되므로 모르는 척하며 꽤 오랫동안 영업하다가 문을 닫았다.

                           

                          12) 동성애자들은 이 찜방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다. 동성애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찜방에서의 무용담(?)이 종종 올라오며 댓글은 ‘부럽다’거나 ‘못 봐서 안타깝다’ 일색이다. 가끔 질타를 하는 동성애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오히려 비판받는다. 따라서 찜방 다니는 것을 대놓고 말은 안 해도 그다지 눈치 보지 않으며 게이바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도 그가 찜방 이용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찜방 매니아일 수도 있다.

                           

                          13) 찜방에 대한 대안으로 채팅을 이용한 만남을 가지는데 이 역시도 상대방이 전날 찜방에서 질펀하게 놀다나온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찜방은 물을 좋게 하기 위해 대물을 소유하거나 외모가 뛰어난 동성애자는 무료입장을 시켜주기도 하고 수건 한 장과 작은 가면만 주고 아예 벗고 다니도록 하는 찜방도 있다.

                           

                          14) 처음 이 곳에 나온 동성애자가 절대 찜방을 가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어도 쉽게 식성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탓에 긴 솔로 생활을 하고, 그런 생활을 오랫동안 한 동성애자들은 허탈감에 욕구라도 풀자는 셈으로 찜방을 찾게 된다. 결국 시간문제다.

                           

                          15) 동성애자들의 반론

                          a. 찜방을 이용하는 동성애자는 음욕에 미친 극소수의 동성애자들이다.

                          - 아니다. 이미 몇 군데 있는 찜방 영업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서울에만 단기간에 몇 군데가 더 생겼다. 평일엔 거의 손님이 없는 찜방 특성상 주말 장사임에도 그 수가 많은 것은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이용한다는 증거이다. 서울에만 몇 군데인지 데리고 다니며 보여줄 수 있다.

                           

                          b. 이성애자들도 윤락업소에 다닌다.

                          - 윤락업소에서의 에이즈 전파력이 찜방처럼 강하다면 인류는 이미 멸종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잘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찜방의 성병 전파력은 이성애자들이 다니는 윤락업소와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력을 가진다. 다음의 표를 보면 동성애자들의 에이즈 확산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전체의 2% 남짓한 동성애자들이 에이즈에 있어서는 이성애자 버금가는 환자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에이즈 역추적에 신변노출을 우려하여 동성애자임을 부인하거나, 동성애자이면서 여성과 결혼하여 밝히지 않은 경우까지 추산한다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HIV감염 내국인 감염경로 현황(1985~2010.6, 단위 : 명) <출처: 질병관리본부>

                           

                          구   분

                           

                           

                           

                          남자

                           

                           

                          여자

                           

                          감염인수

                          백분율(%)

                          감염인수

                          백분율(%)

                          감염인수

                          백분율(%)

                          5,899

                          100.0

                          5,403

                          100.0

                          496

                          100.0

                           이성간 성접촉

                          동성간 성접촉

                          수혈/혈액제제

                               - 혈액제제

                               - 국내수혈*

                               - 국외수혈

                               - 수직감염

                               - 마약사용자

                          3,528

                          2,317

                          46

                          17

                          16

                          13

                          6

                          2

                          59.8

                          39.3

                          0.8

                          0.3

                          0.3

                          0.2

                          0.1

                          0.0

                          3,042

                          2,317

                          40

                          17

                          11

                          12

                          2

                          2

                          56.3

                          42.9

                          0.7

                          0.3

                          0.2

                          0.2

                          0.0

                          0.0

                          486

                          0

                          6

                          0

                          5

                          1

                          4

                          0

                          98.0

                          0

                          1.2

                          0

                          1.0

                          0.2

                          0.8

                          0.0

                            ※ 감염경로가 밝혀진 5,899명에 대한 통계임(기타, 무응답 등은 제외)

                            * 국내수혈 : 헌혈액 모두 HIV선별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온 경우임.

                           

                          c. 대다수의 동성애자들은 찜방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긴다.

                          - 이성애자들이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만 윤락업소 이용을 밝히는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친한 사람과 찜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찜방은 ‘나쁜 곳’,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아니라 그저 ‘대놓고 다닌다고 밝히기 힘든 곳’일 뿐이다.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그 곳을 이용하고 익명이 가능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주말이 지나면 찜방 경험담, 구경담 등이 올라온다.

                           

                           

                          5. 항문성관계

                           

                          1) 동성애자들은 항문 성관계에 대해 알려지는 것을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항문 성관계는 동성애자들 사이에 널리 이용되는 성관계 방식이다.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동성애자라면 최소 80%는 항문을 통한 성관계를 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에게 영화에서 나오는 항문 성관계는 아주 극소수의 욕정이 강한 동성애자만 할 뿐이라고 말한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나는 항문 성관계에 대해 이성애자들은 ‘설마 그렇겠지?’ 하고 속는다.

                           

                          2) 처음 동성애자 세계에 나온 동성애자는 식성이 되는 형을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되면 형이 간절히 원하는 경우 아파도 참고 항문 성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처음의 몇 번이 아플 뿐이다. 그 후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쾌락이 있으니까. 그것은 바로 전립선 자극으로 인한 것인데, 이것에 빠지면 그는 외모만 남자일 뿐 정서적으로 여성이나 다름없어지며 동성애 세계에서 빠져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3) 요즘에는 남성 역할의 동성애자도 이 쾌감이 궁금하여 여성 역할을 해본다고 한다. 그러면 그도 역시 그 쾌감에 눈을 뜨고 여성 역할로 지향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동성애자 세계에서는 “때짜(남성역할 동성애자의 속어)가 씨가 말랐다.”는 말을 종종 한다.

                           

                          4) 항문 성관계의 무서운 점은 여성 역할 동성애자의 항문이 제 기능을 잃는다는 것이다. 현재 동성애를 즐기는 연령이 중고등학생까지 내려감에 따라 항문 성관계의 연령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데 지속적인 성기의 항문 삽입으로 인하여 항문이 점차 늘어난다.

                           

                          5) 한국의 음식 문화 특성상 또한 나이가 들수록 변이 묽어지는 사람이 많은데 항문이 늘어나면 이러한 변을 참지 못한다. 변의를 느끼면 항문이 조이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항문이 늘어나버린 동성애자는 화장실을 바로 찾지 못하면 바지에 그냥 싸버린다. 동성애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변실금’이라고 부르며 서로 키득거린다. 그리고 항문 성관계 도중 그만 변이 묻어 나오거나 변을 싸버리는 일이 게시판에 종종 올라온다. 항문에 조금만 힘을 주는 일이 생겨도 묽은 변이 새어나와 그들은 만성 항문소양증에 시달린다. 노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면서 항문 기능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시기까지 겹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

                           

                          6) 이 정도가 되면 그는 이미 수차례의 성병 감염과 여성의 정서로서의 성적 욕구의 증대, 남성성과의 부조화, 정신적 공허감, 갖가지 육체적 부작용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에이즈는 오히려 작은 문제일 뿐이다. 늘어난 항문은 다시 줄어들지 않는다.

                           

                          7) 동성애자들의 반론

                          a. 동성애자 모두 항문 성관계를 하는 것은 아니다.

                          - 물론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한다. 동성애자들이 초면의 동성애자에게 식성 확인과 더불어 묻는 것이 바로 때짜와 마짜 여부다. 번개 모임을 해도 돌아가며 자신의 식성과 자신의 성역할을 밝혀야 한다. 이따금씩 항문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동성애자도 있는데 동성애자 세계에서는 거의 장애인 취급을 받는다.

                           

                          b. 항문 성관계는 요즘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행해지는 방식이다.

                          - 그렇다고 그게 정상인가? 그것이야말로 남성이 자신의 성적 쾌감을 증대시키기 위해 여성을 성도구로 취급하는 행위이다. 그것으로 인해 여성이 어떤 부작용을 겪게 될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을 때 행해진다. 또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성애자라면 항문 성관계는 하지 않을 것이며 성담론 게시판 같은 곳에 올라오는 무용담식 체험담을 가지고 전반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다. 다시 말하지만 늘어난 항문은 줄어들지 않는다.

                           

                           

                          6. 군대 내 동성애의 위험성

                           

                          1) 위에서 계속 언급했듯이 동성애는 정상적인 애정 관계가 아니라 식성에 대한 성적 집착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여러 명에게 식성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 번에 여러 명을 짝사랑하는 것이다. 군대와 같이 남성성이 강조되고 샤워장이나 훈련을 통해 알몸, 육체적인 접촉이 용이한 상황에서는 더욱 집착이 고조될 수 있다.

                           

                          2) 특히 고참이 부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경우 그는 부하를 객관적인 감정으로 다루기 힘들어지며 고참의 그러한 시선은 아무리 숨겨도 한 내무반에서 같이 지내는 군인들은 금방 눈치 챈다.

                           

                          3) 계급 관계를 이용해 부하에게 성적 역할을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성애자 부하는 고참의 시선과 작업에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데 간혹 언론에 이러한 이유로 괴로워하는 병사의 사례를 보면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 비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4) 특히 높은 계급의 군인이 그러할 경우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의 방에서, 그와 합의하여 동성애를 나누는 관계라도 할지라도 그것은 방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 밖의 모든 군인들의 귀를 통해 소문이 퍼지고 시선은 그들을 향하게 되어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 사병들과 높은 계급의 군인이 그런 상황일 경우 마치 사극에서 임금에게 ‘총애 받는 후궁’격이 되어 버리고 다른 군인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5) ‘방에서의 사생활’이란 그럴듯한 말일 뿐 군대의 목적을 망각하고 고귀한 ‘인권’을 빙자해 합법적으로 식성이 되는 사병을 자신의 방 안으로 불러들여 성욕구 해소하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철저한 계급 조직에서 ‘합의’라는 단어는 규명하기도 굉장히 애매모호하다. 이런 군대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가 과연 있을까?

                           

                          6) 인권위나 헌법재판소에 군대 내 동성애에 문제를 제기한 자들은 대체 생각이 있는가? 정답은 어디 있는가? 자신들이 생각하지 말고 일반 시민에게, 군인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라. 군대는 모든 성인 남자라면 가는 곳인데도 정작 그들은 단 한 번도 이 안건에 대해 국민에게 의견수렴조차 하지 않는다. 인권의 개념은 인권위에게만 있는가? 강남 한복판에서 표본 조사를 해보라. 반대가 몰표로 나올까봐 두려운가? ‘방 안에서의 사생활’? 일반 사병들이 방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줄 아는가? 방안에서의 인권만 인권이고, 그것을 귀로 들어야 하는 다른 군인들의 인권과 ‘A 장교와 이등병 B가 애인관계더라’ 라는 등의 소문으로 무너지는 군기강은 알 바 아니란 것인가? 성욕 해소를 위한 유치한 장난은 이제 그만 두길 바란다. 군대내 동성애는 미친 짓이다.

                           

                           

                          7. 이성애자 남성과의 인격적 관계 장애

                           

                          1)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 남성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거나 스킨쉽을 하면 굉장한 혼란을 느낀다. 그들의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러한 상담이나 상황으로 고민하는 동성애자들의 글이 종종 올라온다. 댓글은 항상 똑같다. ‘나도 그런 적이 있는데 일반들은 그게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더라’, ‘나도 어떤 형이 나한테 그러는데 너무 혼란스럽다. 고백할지 고민 된다’, ‘나도 많이 겪어봤다. 하지만 아니더라. 정말 동성애자들은 본인이 찔려서 그렇게 못한다. 짓궂은 표현일 뿐이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 남성의 이러한 행동을 ‘자신을 좋아해서’라고 생각한다.

                           

                          2) 실제로 동성애자 A는 이성애자 일반 동호회 모임에서 만난 이성애자 남자 B가 자신에게 굉장히 살갑게 굴자 혼란스러워졌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지는 동안에도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다시피 하는 B씨를 향해 다른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하자 B는 ‘A씨에게 작업 거는 중’이라고 대답했고 그 말에 고민하던 A는 며칠 후 B에게 애정 고백을 했다. 그 순간 그는 B에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다시 그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물론 B는 좀 짓궂은 면이 있는 사람이긴 하다. 사람에 따라 동성에게도 자연스럽게 손을 잡던가, 얼굴을 꼬집는 스킨쉽을 잘 하는 남성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성애자들이 생각하는 성적인 관심을 동반한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이런 상황을 계속 겪으면 ‘저 사람이 일반이면서도 나에게 끌리는가 보다’, ‘저 사람도 혹시 동성애자?’ 이런 오해에 빠진다. 그래서 A와 같은 상황에 빠지거나, 차마 고백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동성애자도 많다. 하지만 어떤 이성애자 남성도 다른 남성의 그런 행동을 그런 식으로 오해를 하지는 않는다.

                           

                          3) 동성애자들은 이것을 생활 속의 학습을 통해 배운다. 심지어 회사 후배가 자신과 사우나에 자주 가자고 하거나, 여행 가는데 따라가겠다고 하며, 늘상 자신과 붙어 다니다시피 한다고 이 후배 때문에 즐거우면서도 고민된다는 글도 있었다. 후배는 안마시술소를 출입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오해 속에 빠져있다. 동성애자는 다른 이성애자 남성들 사이에 깊은 우정이나 인간애로서 좋아하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와 저런 감정을 공유하거나 분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서에 자신의 아버지와 대적 관계인 다윗을 위해 목숨까지 걸어가며 다윗을 지켰던 요나단의 관계를 동성애적 관계라고 하는 것은 동성애자의 심리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

                           

                            

                          8. 더 큰 문제

                           

                          1) 동성애자 문제는 오히려 과정의 문제일 수 있다. 정작 큰 문제는 무엇인가. 성전환이다. 동성애가 법적으로 인정되면 성전환자도 같은 수순을 밟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대도시의 상업 지구엔 트랜스젠더 클럽이 버젓이 간판을 크게 내걸고 영업 중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진다. 게이 드라마가 공중파에서 방영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듯이 성전환자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다.

                           

                          2) 어린 아이가 남성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남자가 여장을 한 장면을 본다. 평소에 보던 것과 매우 다르다. 바로 각인된다. 그리고 어느 날 방에서 그 아이는 여장을 하고 나와서 길에서 본 여장남자를 따라했다며 좋아한다. 만약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면 부모는 어떠하겠는가?

                           

                          3) 태국은 성전환자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유독 태국엔 여장을 하고 여성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는 남자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일컫는 용어까지 따로 있을 정도다. 그것이 태국 국민의 유전자 문제인가. 태국인들의 선천적 기질인가. 아니면 아이들이 후천적으로 본 것을 답습하는 것인가. 답은 뻔하다. 당신의 자식을, 당신의 손자를 그렇게 만들고 싶은가?

                           

                           

                          9. 치료

                           

                          1) 동성애는 위에 썼듯이 나름의 원인이 있다. 동성애가 생기는 원인이 성중독은 아니지만 동성애의 진행 방향은 결국 성적 집착이 수반되고 성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성애자들의 심리 특성상 내성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성적 집착에 더 고착화될 수 있다.

                           

                          2) 동성애 치료는 동성애가 일어난 본질 치료와 성중독 치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동성애 치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랫동안 쌓인 이 성적 집착과 성중독을 비워내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애자들의 성중독 치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흔히 동성애를 치료한다며 군대 같은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경우가 있는데 식성을 비워내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 효과가 없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과정에서 좌절해놓고 이것은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3) 치료될 수 있음을 굳게 믿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치료에 임해야 한다. 동성애자 생활에 얼마만큼 발을 담궜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4년 정도 지나면 성중독을 비롯한 식성이 상당부분 떨어져 나간다. 동성애자는 동성에게 꽂히는 것이 아니라 동성의 식성에게 꽂히는 것이므로 식성에서 해방되면 게임은 거의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과정에서 게이바에 나가거나 성관계를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성애자들이여 식성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본 적 있는가? 그 자유를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4) 담배도 끊으려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기 마련이다. 치료에 들어서면 남자의 육체가 더욱 생각나기 마련이고 오랜 시간동안 그 상태로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동성애의 내부 균열이 미세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빙산도 한꺼번에 붕괴되지 않는다. 내부의 미세한 분열이 천천히 진행되고 때가 되면 큰 덩어리로 떨어져 나간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그렇다고 바라보고, 입으로 날마다 외치며 믿어야 한다.

                           

                          5) 식성에서 풀려나기 전까진 몰라도 그 후에는 동성애 지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본인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실제 식성에서 해방된 후로는 동성애는 급격히 줄어든다. 그리고 남자에 대한 관심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즉, 동성애 지수가 100이라 하면 아주 천천히 99, 98, 97... 줄어들지만 때가 되면 70이 되어있고 60, 50이 된다. 50 정도 되면 그동안 동성애적 성향이 내부적으로 붕괴되고 있었음을 본인 스스로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남성성이 얼마나 훼손되어 있었는가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6) 군대나 사회에서 동성애를 배워 빠져든 사람은 이 과정만 극복해도 다시 이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남성성이 훼손되었거나 여성성이 채워진 동성애자는 이 단계를 거친 후 본질적인 동성애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남성성의 회복이다. 이 단계에서는 더 이상 다른 남성에게서 남성성을 갈구하지 않으므로 자신 스스로 남성성을 채우고자 하게 된다.

                           

                          7) 따라서 그동안 관심이 없던 격렬한 스포츠나 축구, 족구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하고자 하게 된다. 이른바 남성성 회복 과정이다. 만약 이 단계에서 군대와 같은 환경에 들어간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매일 자신 스스로 외쳐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혀에는 온 몸을 지배하는 힘이 있음은 일반심리에서도 밝혀진 바가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입술의 시인은 자신의 심리를 움직인다.

                           

                          8) 남성성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그동안 해소하지 못했던 성적 욕구는 조금씩 여성을 향하게 된다. 남성성이 채워지면 성관계에서 남성으로서의 성역할에 즐거움을 갖게 되고, 쾌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절대 여성과의 관계를 성급히 성적으로 회복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 동성애에서 온전히 치료된 것도 아니고 여성에 대한 성적 욕구는 예전의 식성을 향하던 것만 못하는 상태에서 여성을 상대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려고 하면 당연히 충만한 성적 욕구를 느끼기엔 뭔가 불만족하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다시 예전의 남성과의 충만했던 성적 쾌감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면 치료에 의심을 갖게 되고 자칫 여성과의 관계 회복에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행착오를 반드시 몇 번은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으므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남자로서의 성역할, 여성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9) 남성성이 채워질수록 점점 남성으로서의 성역할에 자신감과 즐거움, 쾌감을 갖게 된다. 이미 이 단계 이전에 여성의 부드럽고 흰 살결 같은 부위에 눈이 떠져 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성적 관심과 지향이 음란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남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연스러운 것이다. 초등학생이 사춘기가 됐을 때 성에 눈을 뜨는 것과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남성성을 채우는 것은 남성성이 훼손 된 시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10) 동성애자 생활을 할 때는 식성을 통하여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성간의 애정은 그와 다르다. 마음으로 교감이 이루어져야 하고 - 여성은 특히 이런 부분을 중요시 여긴다. - 하나하나 교제의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식성을 통해 상대를 구하여 왔으므로 익숙하지 않겠지만 그러한 사랑을 이루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적인 문란함으로 인한 그런 단계도 없이 성관계를 즐기는 일부 저급한 사람들의 경우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

                           

                          11)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이성애자도 얼마든지 멋있다고 생각되는 남성과 사우나에 갔을 때 그의 몸을 다른 사람보다 더 훑어볼 수 있다. 이성애자도 이왕이면 멋지고 잘생긴 친구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동성애자가 자신의 이러한 점을 ‘동성애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동성애자는 치료 후에도 보통의 남성보다 남성을 보는 시각이 더 탐미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기질 정도로 생각하고 넘기면 된다. 어린 시절부터 묶여 있던 시야가 금방 없어지지는 않는다.

                           

                          12) 동성애 생활에 깊이 발을 들여놓을수록 여성 역할을 많이 한 동성애자일수록 치료는 더 어려워지고 기간도 많이 걸린다. 동성애는 어느 누구나 자신의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자임을 느낀다고 죄의식이나 좌절을 느낄 필요는 없다. 동성애를 치료한 사람은 의외로 많고 미국에는 동성애에서 치료받은 사람들의 단체도 몇 개씩이나 있다. 동성애자들의 거짓에 속을 필요 없다. 동성애를 느끼고 치료에 빨리 임할수록 치료도 더 빠르고 쉽다.

                           

                          13) 동성애자들의 반론

                          a. 동성애는 정신과에서도 정상으로 판명되었다.

                          -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것은 ‘못 고친다’의 의미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살면 정상이다’라는 의미이다.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누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동성애를 치료한 사람은 프라이버시 상 증언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치료를 한 사람은 아주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쇼일 뿐이다.

                           

                          b. 성장 과정 중에 충격을 받은 경우는 진정한 동성애자가 아니다.

                          - 남성이 여성화되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유독 동성애자만 대부분 여성스러운 것은 우연인가? 하지만 어느 누구도 본인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스러워진 것은 태아의 상태에서도, 어린 시절에도, 유년기 때도 얼마든지 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본인이 기억 못하므로 선천적이라고 하는 것일 뿐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많은 성장기나 성인 이후에 동성애에 빠져든 사람들이 어린 시절이라고 생기지 말란 법 또한 없다.

                           

                            

                          10. 미국의 동성애 치료

                           

                          동성애자들은 동성애는 치료될 수 없으며 정신장애 목록에서 삭제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처음 목록에서 삭제하게 된 배경은 1970년대 게이 행동주의자들이 의사들을 상대로 온갖 협박과 압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협회는 거의 함몰 지경에 이르렀고 많은 논란 끝에 1973년 정신질환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했고, 그 후 미국 심리학협회가 이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1,021건의 동성애 치료 보고 있었고, 그 자료들은 모두 폐기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에는 이성애자로 변화된 많은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수기도 밝히고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11. 글을 마치며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하는 모든 부작용들은 동성애자 인권법이 생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그들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 반드시 겪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의하고 올바른 것을 선택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수 없는 현실이며 동성애자 세계 속에서 그런 다짐은 무너질 확률이 훨씬 큽니다.

                           

                          현재 동성애인권운동은 이와 같은 동성애자의 현실은 전혀 말하지 않고 좋아 보이는 것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실태가 어떤지, 식성이 무엇인지도, 치료가 가능한지도 사람들은 모릅니다. 현재 드라마에도 그런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도 동성애자 생활을 했을 때 주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은 할지라도 식성이나 불리할 수 있는 것은 말하지 않았고 말하더라도 아주 줄이거나 이성애자와 비슷한 점을 들어 안심시켰습니다. 아마 동성애자들은 100% 그러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동성애자들은 식성을 입에 달고 살지만 여러분은 한번이라도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언젠가 동성애 인권을 지지한다는 세 아이의 아버지 블로그에서 그와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근거 자료로 동성애자 인권단체에서 배포하는 팜플렛을 말하였고 나는 위와 같은 모든 사실을 말하였으나 그는 그러한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버무리며 “그래서 더 잘 해줘야 하는 것이다.”라고 빠져나가려 하였고 저는 “저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 중에서 단 하나라도 인권법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목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에 답하지 못하였고 오직 ‘인권’을 주장하면서 반대 입장은 마치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하지 않고 비난하는 사람들인 양 나쁘다고 질타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인권 의식이 없어서, 단지 동성애가 감정적으로 싫어서, 이기주의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동성애자의 인권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동성애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쉴 새 없이 인권을 남발하던 그도 “그렇다면 블로그에 있는 세 아이가 어느 날 여장을 하고, 여성으로 행동을 하고, 커서 종로에 다니며 다른 남자와 관계해도 괜찮은가?”라는 저의 질문에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대다수 동성애 지지자들의 인권 개념입니다. 동성애가 남의 이야기일 때는 지지하지만, 자기 자식이나 손자의 문제가 된다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댓글을 계속 지켜 본 어떤 사람이 그러더군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린 문제다. 현실 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런 싸구려 감상주의식으로 인권 운운하지 말라.”

                           

                          동성애 드라마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애자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 앞에선 어땠을지 몰라도 그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런 식으로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동성애 지지는 그럴싸하게 포장만 해놓은 이런 영화들로 많은 향상을 보였습니다. 이성애자들은 모르니까요.

                           

                          선진국이 될수록 남자 아이가 제대로 남성성을 채울 시간이나 공간이 부족해지고 온라인 게임이나 공부에 몰두하면서 신경질적이 되고 개인주의적이 됩니다. 또한 이 사회는 남성에게 크로스 섹슈얼을 강조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일수록 동성애자가 늘어나는 것은 이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환경적으로 예전보다 남성성을 채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늘어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당신의, 당신 자녀의, 그리고 당신의 손자 손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인권법은 동성애자들의 끔찍한 현실을 절대 해소시켜주지 못합니다. 부분적으로 약간의 개선을 보이는 부분은 있겠지요. 그러나 동성애자들이 인권을 외치는 동안 찜방은 급격히 늘어났으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권법이 통과되면 마짜 때짜가 없어지고, 갑자기 식성에서 해방되며, 찜방이 줄어들고 성병이 없어집니까?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사회의 테두리 안으로 이 모든 것들을 합법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인권법의 초점은 위와 같은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곡일 뿐입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동성애법이 통과되자 성전환, 근친상간, 수간 등이 법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들은 양지로 나온 ‘동성애자 인권’이라는 명분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얻지만 위와 같은 부작용들은 음지에 그대로 놔두고 결코 내보이지 않으며 명분을 등에 업고 그 ‘음지’는 더욱 성장할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천국인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는 중심가의 큰 건물 한 채가 다 찜방입니다. 그곳은 한국 동성애자들의 성지 순례 코스입니다.

                           

                          인권법이 통과되면 더 이상 동성애를 비정상이라 말할 수 없고, 치료할 수도 없으며 동성애자가 된 자식을 그냥 그렇게 놔둬야 합니다. 치료 받기를 갈망하는 동성애자, 동성애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 부모의 눈물 위에, 대한민국 모든 국민 위에 동성애를 강압적으로 올려놓는 오히려 반인권적인 법입니다.

                           

                          동성애는 고칠 수 있습니다. 금연을 하는 사람도 한동안은 금단현상에 지독히 시달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료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버티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성애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뭔가를 시도할수록 더 남자 생각이 나니 중도에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동성애 치료는 참 쉽습니다. 특별히 무슨 노력을 하라고 하지도 않고 금단현상과 같은 증상도 없습니다. 특별히 노력하지 마십시오. 남자 생각이 더 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꽤 오랫동안 지속될 지라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동성애를 치료한 사람은 그 오랜 시간을 다 견뎌냈습니다. 동성애 커뮤니티를 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보면 효과는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원인별로 몇 가지 치료만 덧붙여주면 됩니다.

                           

                          동성애자가 식성을 비롯하여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여러 가지에 속박된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말초신경 자극이라는 증거입니다. 반면 이성애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기에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중독증, 강박증은 특정한 것에 얽매이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 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라고 특별합니까? 동성애가 뇌손상이라도 됩니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모든 것은 다 원인이 있으며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권이란 이름으로 무조건 정상으로 인정하고 치료의 길을 막아서야 되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저는 10년간의 동성애 커뮤니티 생활을 하였으며 그간 늘 식성을 찾아다녀야 하는 특성 상 많은 모임과 많은 자리에서 수많은 동성애자들을 만났습니다. 이 글은 저와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단 하나도 거짓으로 쓴 것이 아니며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해서 쓴 것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나이든 동성애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다 알고 있고 대략 누가 에이즈에 걸렸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젊은 동성애자나 일반인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나마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에 그들 세계가 온통 성병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음을 증언한 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동성애자들 자체가 음란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굴레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로서 멋지게 산다고 하는 이들조차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주말마다 찜방을 헤매고 항문이 다 늘어나 변이 새고, 성병의 고통과 계속되는 공포에 시달리며 결국 에이즈로 마감하게 되는 수순을 밟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동성애자는 처음부터 그렇게 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한 시간과 환경이 결국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은 절대 인권이 아니며 인권법으로 해소할 수도 없습니다.

                           

                          실상은 저러한데 동성애자 결혼제도, 입양제도, 차별금지만 해놓으면 인권법입니까? 동성애를 치료하고 그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인권 아닐까요? 적어도 국민들이 동성애가 무엇인지, 동성애자들의 실태가 어떠한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동성애자 세계의 모든 것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합법화가 된다면 그것은 전국민적인 재앙입니다. 군대에서는 이런 비정상적 식성에 속박된 사람이 많은 사병을 거느릴 때 그는 무엇부터 찾을까요? 대한민국 군대가 온전하겠습니까? 과연 방안에서의 일로 끝날까요? 그런 나라가 과연 좋은 나라입니까? 우리나라가 동성애로 진통을 앓고 있는 서구사회를 모델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은 건강하고 밝은 나라가 되어 전세계를 선도하는 선진한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자에서 전향한 김 정 현 올림

                           

                          .*출처: 우리들교회 자유나눔 home.woori.cc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동성 결혼 지지 선언이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 담론에 불을 지폈다. 이 선언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을 지지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밝힌 오바마의 동성 결혼 인정 발언이 몰몬교 신자인 공화당 롬니 후보를 맘편히 지지할 수 없었던 보수 기독교계의 결집을 불러 일으키게 될지 관심을 모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동성 결혼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미 대선 정국에 핵폭풍을 일으키고 있다.(사진출처:백악관)

                          진보 지지 끌어내려는 정치적 승부수, 기독교계에 영향은?

                          오바마는 지난 2008년 대선 후보 당시 동성 결혼에 반대하지만 동성 커플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동성 결혼 지지 발언은 동성 결혼에 반대했던 그의 입장이 전격적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 혹은 역풍의 위험을 무릅쓴 소신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진보적 지지층의 눈길을 다시 끌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오바마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무성하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결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오바마가 동성 결혼 지지를 선언하기 불과 한 시간 전,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대규모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이 시위에는 빌리 그래함 목사가 적극 참여했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동성 결혼 반대로 결집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동성애와 낙태 반대’를 지지해 온 공화당은 선거철마다 보수 기독교인들의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몰몬교 후보인 롬니가 후보로 선출됨에 따라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예상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몰몬교는 기독교 보수주의 진영으로부터 이단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지지를 얻어온 공화당 후보로서 롬니가 대선 득표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컸다. CNN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의 17%가 “몰몬교 후보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의 동성 결혼 지지 발언이 보수 기독교인이 롬니를 지지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하지 않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보수 기독교계 영향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동성 결혼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 보수 기독교인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4월 종교 전문 설문조사 기관인 <퓨포럼(the Pew Forum on Religion & Public Life)>에 따르면 동성 결혼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4년에는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는 의견(60%)이 찬성한다는 의견(31%)을 두 배 가까이 앞섰다. 하지만 올해 2012년에는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비율(47%)이 반대한다는 의견을(43%) 앞섰다. 8년 반에 상황이 뒤집히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상징인 빌리 그래함 목사가 동성 결혼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이런 미국 전반의 사회적 인식은 오바마의 이번 선언이 대선 행보에 장애로 작용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을 뒷받침 하고 있다. 보수 기독교가 가진 막강한 네트워크와 미디어의 영향력도 이런 변화를 거스르기 힘들 만큼 변화의 폭이 빠르고 거세다는 분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이자, 진보적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소저너스> 대표 짐 월리스 목사는 과거 보수 기독교의 표를 이끌어 낸 공화당의 동성애나 낙태 등의 이슈에 대해 “자극적인 이슈로 표를 쓸어가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 결혼 지지 발언이 향후 미국 대선 정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특히 보수 기독교인의 딜레마인 몰몬교 후보 롬니 지지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동희 ⓒ뉴스미션
                          출처: USA 아멘넷




                          사라진 뒤에야 빛이 나는 행복


                              물고기는 물 속에 있을 때는
                              그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는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땅 위에 올라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때가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가지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꼭 잃어버린 후에야
                              뒤늦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못난 습성

                              행복은 공기 같은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는.

                              영국 속담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행복은 사라진 후에야 빛을 낸다...."

                              사람들이 행복의 실체를 보고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이 떠나가기 전에 소중히 다루련만
                              행복은 언제나 떠나가면서
                              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말이겠지요.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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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의 기도

                          오! 하나님, 오늘 하루 동안
                          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나를 믿는 자들을 실망시키며,
                          나를 고용한 고용주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 주는 행동을
                          행하지 않게 도우소서.

                          다른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하거나
                          또한 잘못된 길로 쉽게 인도할 소지가 있는 것을
                          행하지 않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들을 실망시킬 수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의 열심을 식게 하거나
                          남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과 행동을
                          행하지 않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슬픈 자에게 위로가 되고
                          외로운 자에게 친구가 되며,
                          낙심 가운데 있는 자에게 용기를 주고
                          궁핍한 자에게 도움을 베푸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람들이 내게서 나의 주인이시며
                          내가 항상 섬기기 원하는
                          당신의 거룩하심을 발견하게 하소서.

                          - 윌리엄 바클레이 -





                          http://www.gty.org/Resources/Sermons/80-322 ... Well, tonight I want to talk to you on the subject of what God thinks of homosexuals. It is not a particular enjoyable subject to discuss, nor would any sin be enjoyable to discuss, for that matter. But it has become pertinent and essential and necessary for us to get a biblical view of this rapidly increasing and normalizing effort to accept homosexuality in our culture. We need to understand what the Word of God has to say.

                          There is so much confusion on this outside the church that's explicable. But there seems to be about equal confusion inside the church. In fact, there is a new kind of evangelicalism that labels itself, "tolerant, loving, non-judgmental," that is affirming those who carry about and legitimize these kind of lusts and behaviors and they do so while maintaining the name of Jesus Christ in an affirmation that they themselves are Christians.

                          I want you to look at 1 Corinthians chapter 6, and all I want to do is just give you a biblical picture so that you'll know how God views this kind of behavior. And let me say at the very beginning, and I will show you this, but I want to say it because I want you to understand it. Homosexual sin is nothing more or nothing less than a perverse sexual act, or acts...it is no more than that, it is no less than that. It is a perverse abnormal sexual behavior. I'm reluctant even to call someone a homosexual because that seems to identify them with some kind of staple character that draws them into that behavior. It is no more or no less than a perverse act or acts....

                          http://youtu.be/pl7HfLMOkZ0

                          출처: USA 아멘넷 게시판/ JuNick 님

                           

                          잭 캘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중의 한 사진기자가 과일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

                          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

                          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

                          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

                          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中

                          -(현재 우리들이 얼마나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 사실.. 잊지 맙시다)

                          출처 : 네이버 붐업



                          사이비 종교 신천지의 피해자들이 중심이 되어 종교 사기꾼 교주 이만희를
                          대한민국 법정에 세우는 사람들의 모임

                           

                          www.cch.tv

                          http://www.cch.tv/news/news_cch_view.asp?seq=0000004871

                           

                          [뉴스포커스 ] SNS '현대종교' 모금 활발히 진행 2012. 3. 24.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는 흥미로운 모금운동이 진행됐습니다.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가 제안한 이단 전문지 ‘현대종교’ 돕기 모금운동이었습니다. 이단문제에 대한 교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긍정적으로 평가됐었는데요. 실제로 단 이틀만에 목표했던 2천만원이 모이는 획기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대종교’에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었길래 모금운동까지 진행돼야 했는지 화면을 보시며 설명드리겠습니다.

                          서울 상봉동의 한 오래된 오피스텔 1층, 월간 ‘현대종교’가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발행 30년이 된 현대종교는 그동안 한국교회에 많은 이단 관련 정보를 제공해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종교가 최근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안상홍증인회‘로 알려진, ’하나님의 교회’ 신도들과 수년째 이어온 소송에서, 법원이 8천만원 배상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에 상고한 상황이지만, 얼마 전 사무실과 통장 등에 대한 가압류 절차가 진행되며 업무가 마비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1인 1만원 모금을 제안했고, 2천 8백여만원이 모였습니다. 이에 더해 연합선교회가 부활절예배를 위한 예산 4천만원을 후원하면서, 법원에 약 1억원의 공탁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한정국 목사 / 현대종교

                          소송의 발단은 2006년 한 교계방송과 일반강연에서 ‘하나님의 교회’측 영상에 나오는 아동들 얼굴이 노출되면서 불거졌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대법원은 고소취지였던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죄로 벌금 50만원을 선고했고, 이어진 민사재판에서 이같은 배상판결이 내려진 것입니다.

                          현재 ‘현대종교’는 대법원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송을 함께 진행해온 방송사가 2심 판결을 수용하면서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고신, 합신 등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이단으로 결의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현대종교 기자들은 이단 사이비 단체들에 대한 취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취재 중 미행과 협박은 다반사고, 폭력의 위협에까지 노출돼 있습니다. 매일 수십 통의 이단 상담전화를 하는 것도 주요업무입니다.

                          이창수 기자 (가명) / 현대종교

                          ‘현대종교’는 설립자 탁명환 소장이 1994년 괴한에 의해 피살된 후, 지금까지 아들인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와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지원 소장에 의해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이단관련 사역과 자료가 한국교회 소중한 자산이 되는 만큼, 성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2천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에서 단 한순간도 이단 사이비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칭 ‘하나님’, ‘예수’라고 하는 사람만 4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듯 이단 사이비단체는 끊임없이 기성교회와 정통교리에 도전해왔습니다. 이제는 정치 제도권 진입까지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물리적인 방법으로 이를 막으려 해서는 안되겠지만, 이단 사이비단체들이 사회적 논란을 적지 않게 일으켜왔던 만큼, 기독교인들은 보다 분별력있는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한 영혼이라도 구하겠다는 심정으로 사역하고 있는 이단전문가와 단체들에 더 이상 무관심하지 않는 한국교회 모습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뉴스 C+, 지금까지 이인창이었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삶을 살아가자♡

                           

                           

                           
                           
                          인생이란
                          나그네가 걷는 마음의 여행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길에서 잠시 머무는 것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향하며 굳건히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여행은어둠이아닌 밝은 여행이 되어야 합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반발할 뿐입니다.
                          남모르게 그분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통하게 되어 상대방의
                          마음이 부드럽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판에 동요하는 사람은
                          완성의 길에서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 맞지 않은 사람과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먼저 마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사람들과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다섯 손가락의 역할이서로 다른 것과 같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성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장점을 살려주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곧 상대방을응달에서 햇볕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은 사람들을
                          강인하게 하고 자신감을 줍니다.

                          누군가를 인정해 주는 것은 그를 살려주는 것이며
                          삶의 윤활유가 됩니다.

                          반대로 자만하고 자랑하는 것은
                          마찰의 요인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 사람은 점점 왜소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웃의 도움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이웃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고
                          불안과 초조함을 더해줄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온전히 피어나도록 하십시오.
                          주변 환경을 나에게맞추려 하지 말고 나를
                          주변 환경에 맞추도록 하십시오.

                           

                           

                           

                           

                          남을 꾸짖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일 뿐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전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당신의 인생을 실패로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거센 태풍은 하룻밤에 모든 것을 휩쓸어 가지만
                          잔잔한 미풍은 마음을 평화롭고 기쁘게 합니다.
                           


                           태풍과 같은 삶이 아니라
                          산들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 좋은글 중에서 - 

                          


                           

                          참된 친숙함(True Intimacy)
                           

                          인간 관계는 소유적인 것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사랑과 애정, 우정과 돌봄
                          그리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게 매달리려고 합니다

                          작은 사랑의 불빛을 보거나 또는 느끼기만 해도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자주 말다툼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불화는 각자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이상의 사랑이나
                          또는 주려고 마음먹은 이상의 사랑을
                          서로가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완전한 사랑을 원하는데
                          누구도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없으므로,
                          사랑이 무소유적으로 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의 기술에는 서로의 공간을 비워 주는
                          기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침해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신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때, 인간 관계에 커다란 고통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고 우리의 재능을 함께 나눌 때,
                          참된 친숙함이 가능하게 됩니다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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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하지 않는 생활 (The nonpossessive Life)

                          세상이 제공하는 많은 것들을

                          참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초연해야 합니다


                          초연한다는 것은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소유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생명은 감사해야 할 선물이지

                          매달려야 할 재산은 아닙니다
                          소유하지 않는 생활은 자유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우리가 깊은 소속감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에게 소속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에게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에 의하여 창조되었음을
                          그의 이름으로 선포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초연한' 삶에 관한 전부입니다
                          그것은 자유롭게 찬양하고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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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5.12. In the quarter Klong Luang, Pathum Thani, the road along the canal (west coast) fell down to 1.5 -2 meters and 100 meters in length in different parts . The collapse occurred close to the road, which passes through the area.

                          http://www.matichon.co.th/news_detail.php?newsid=1336347416&grp...

                          http://www.oknation.net/blog/print.php?id=801206

                          ^^^^^^^^^^^^^

                          07.05.12. In Wang Noi, Ayutthaya, the road collapsed by more than 100 meters in length.

                          http://www.matichon.co.th/news_detail.php?newsid=1336395989&grp...
                          http://hilight.kapook.com/view/70943
                          http://www.1variety.com/HighLightDetails.aspx?PostHighLightTypeId=1...

                          ^^^^^^^^^^^^^^^^

                          In mid of april subsided the road with the dam in Pho Thong, Ang Thong.
                          http://www.dailynews.co.th/thailand/22664

                          ^^^^^^^^^^^^^^^^
                          On april a section of a footpath on Rama III Road near Khlong Bang Khlo collapsed after land beneath it subsided along the banks of the canal. The subsidence, which took place late on Monday night, created a hole 3m deep, 5m wide and 22m long.

                          http://www.bangkokpost.com/learning/easier-stuff/287414/bangkok-con...

                          ^^^^^^^^^^^^^^^^

                          Also reported, that part of Tok Road in Bang Kholaem district is closed after a large crack opened on the surface, and the road started to subside.
                          http://www.bangkokpost.com/news/local/287676/road-cave-in-woes-spre...

                          ^^^^^^^^^^^^^^^^^^

                          08.05.12. A 300-metre section of the Den Chai-Lampang road between the 36th and 37th kilometre markers collapsed in Phrae’s Long district.

                          http://www.bangkokpost.com/lite/news/292263/flash-flood-warning-iss...

                           

                          http://poleshift.ning.com/profiles/blogs/thailand-bangkok-continues-to-fall-a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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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임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의 만남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임을 나는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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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가슴 속에 넘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나타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정한 우정은 끊임없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이와 같다는 것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때때로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내가 내 자신을 때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그리고 우리들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앞과 뒤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앞선다는 것을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 의하여
                                내 인생의 진로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을 도울 힘이 내게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사람들이 내게 울면서 매달릴 때에는
                                여전히 그를 도울 힘이 나에게 남아 있음을 나는 배웠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습니다.

                                나는 배웠습니다.
                                내가 너무나 아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빨리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그리고 정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의 믿는 바를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을.....


                                               - 샤를르 드 푸코 신부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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