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을 읽어나가면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고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약성경 속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곧 예표(豫表), 그리고 하나님의 한결같은 구속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고 이를 위하여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아무 공로도 없고 게다가 늙어서 쓸 만한 구석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부르심, 그리고 도우심과 쓰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또 아브람이 복을 받은, 또 반드시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불러내실 때에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의미하신 복은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부귀영화나, 장수나, 후손이 아닙니다. 참 된 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람은 복의 근원, 곧 예수 그리스도의 통로, 곧 구세주의 계보로 쓰임 받으려고 불러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복을 받을 자격,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기는커녕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도 못 했고 예수님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코앞의 후사 걱정, 아들 없이 죽는 걱정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이시면서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손은 ‘후손들’이 아닌 ‘후손’, 단수명사였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후손을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의미하신 '후손'은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이를 정확히 지적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손’이라고 말씀하신 그 ‘후손’은 복수명사 ‘후손들’이 아닌 단수명사 ‘한 후손’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브람은 “아니, 하나님, 왜 ‘후손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후손’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기초문법도 모르십니까?”라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기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셈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브람의 의”로 여기실(인정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만일 아브람이 굳이 따져서 ‘후손’이 아닌 ‘후손들’의 약속을 받아내고 믿었더라면 의로 여기심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브람이 ‘후손’, 곧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자 그제야 하나님께서는 “나는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로라.” 하심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신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었다면 더 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고 증거를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거셨는데 또 증표를 요구하다니 참으로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약속도 믿지 못 하는 악하고 약한 존재인가 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증거, 예언, 계시 같은 것을 요구하는가 봅니다. ‘나는 여호와로라.’ 하시면서 자신의 이름을 거신 하나님으로서는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믿음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화도 안 내시고 아브람에서 삼년 된 암소, 삼년 된 암염소, 삼년 된 수양, 그리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아브람은 이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히브리어로 ‘브릿트’하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습니다. 과연 아브람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까요? 아무튼 솔개가 내려앉을 때 쫓았습니다. 그러다가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났습니다. 히브리어 “브릿트”는 같은 발음이지만 ‘쪼개다’라는 단어도 되고 ‘약속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도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요한 약속을 할 때 짐승을 쪼개어놓고 그 사이를 함께 지나면서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그 짐승처럼 쪼개어져 죽임당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목숨을 거는 약속인 셈입니다. 거기를 하나님이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로 지나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리로 함께 지나지 않았습니다. 정작 그 복을 받을 당사자인 아브람은 자빠져(?) 잠자고 하나님 혼자서 ‘하나님의 목숨을 건’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왜 삼년 된 희생물들일까요? 그것들은 삼년 공생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새는 왜 쪼개지 아니하였을까요? 비둘기는 성령을 뜻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솔개는 왜 덤벼들었을까요? 솔개는 훼방하고 의심케 하는 사단의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것을 쫓는 것은 아브람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타는 횃불, 한없이 뜨거운 사랑과 ‘열심’으로 하나님은 그 사이를 지나셨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을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주실 약속이었습니다. 아들을 쪼개어 지성소의 장막을 가르고 부르신 자들이 그리로 지나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실 것을, 죄인들이 피 흘려 죽으신 그 아들의 몸을 지나면서 그 피로 모든 죄를 씻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복되게 하실 것을 아브람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과연 그걸 이해했을까요? 못 했겠지요. 그러나 그 광경은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뇌리에 깊이 박혀 일평생 한시도 잊지 못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광경은 피가 흐르는 참혹한 십자가의 광경의 예표였기 때문입니다. 구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일평생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그 참혹한 십자가의 광경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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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질 때 더욱 아름다운 것 지난 며칠은 평소보다 운동을 좀 더 많이 하였던 것 같다. 올해는 마침 해변 가까운 시내로 이사를 나왔기에... 새벽이면 남편과 함께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는 것을 일상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아침 약속이 있을 때는 저녁 예배가 없는 날을 택하여 밤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 또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에 좋다. 청색 하늘 아래 쪽빛 초승달을 품고 사르르 사르르 일렁이는 바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가슴 속에 애잔한 그리움을 싣고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함이 느껴짐을 그대는 아는가? 때마침, 지난 금요일은 아침부터 낮 동안 교회 일이 밀려서 새벽 산책을 하지 못한 터라 저녁 식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바닷가를 향해 나섰다. 자동차로 공원 가까이 가서 그곳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바닷길을 산책하는 것이 코스인데 그날 따라 길이며 파킹장이며 발들여놓을 틈새를 찾지 못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아니, 오늘은 웬일로 사람들이 이렇게 복작거리나, 이건 완전히 서울 명동거리보다 더 심한 거잖아?" 궁시렁대면서 남편이 차를 세울 곳을 찾아보지만 빈 공간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 30분을 헤매며 돌다 차를 세울 마땅한 곳을 도저히 찾을 자신이 없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되돌아가 차고에 차를 세워두고 다시 도보를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가노라면 아무래도 거리가 있으니까 늘 두 바퀴씩 돌던 바닷가 산책길인데, 오늘은 두 바퀴 대신 한 바퀴만 돌고 돌아 나오면 될 것 같다는 계산이었다. 다시금 운동화를 졸라매고 밖으로 걸어나가니까, 점점 더 불어나는 사람의 물결.... 은근히 궁금증이 발동한 우리들의 별님, 지나가는 청년을 붙들고 오늘 이곳에 무슨 행사가 있는가? 그럼요, 모르셨어요? 조금 있으면 독립기념일 폭죽을 이곳에서 터트리는데요. 오잉?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만 매달려 허둥지둥 살아오느라고.... 그렇구나, 오늘이 미국독립기념일이구나... 암튼, 이렇게 하여, 그 유명한 독립기념 폭죽놀이에 직접 참여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저녁 산책을 할 겸 우연히 나갔다가... 그럼 우리도 불꽃놀이를 구경할 수 있겠구나 소녀처럼 설레는 마음이 되어 여름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잔디 위, 삼삼오오 짝지어 앉은 잔디 위를 비집고 들어가 내 집처럼 펑퍼짐 눌러앉았노라니까... 갑자기 여기저기서 "와~" 하는 큰 함성과 함께 뻥뻥! 하늘을 향해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아!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한 하늘 쇼가 눈앞에서 벌어지든지 하늘에서 수없이 많은 은하수가 반짝이며 낙하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똥이 춤추며 하늘하늘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넋을 잃고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사물은 모두 떨어질 때 더욱 장엄하고 아름답다. 인생도 언젠가 한 번은 떨어질 텐데... 저토록 아름답게 반짝이며....떨어질 순 없는걸까? 무엇을 하건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한다고 하지를 않던가? 특별히, 성도의 생활은 처음보다 끝이 더 좋은 결과를 거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나의 최선으로 경주해야겠다.
      그분이 부르시는 그날, 아름다운 삶의 美를 거둘 수 있도록...
          제가 본 광경과 꼭 같이 이쁜 폭죽놀이 영상을 찾긴 했는데...에공~ 작년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로 눈요기 하세요.^^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3달러의 호의 

         

        어느 날 아침,

        한 젊은이가 계산대로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무척 급한 모양이었습니다.


        몇 가지 물건을 계산대에 내려 놓고는

        100달러 지폐를 내 밀었습니다.
        물건 값은 다 합해 봐야 3달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잔 돈 없으세요?”
        “죄송해요. 100달러짜리 밖에…”
        아직 이른 시간이라 계산대에 있는 돈이라고는

         40달러가 채 안 되었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었습니다.
        주디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그 젊은이에게 되돌려 주고는

        자기 지갑에서 3달러의 지폐를 꺼내어
        금전 출납기에 넣고 영수증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영수증을 젊은이에게 건네며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홈 디포우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이는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급한 마음에

        고맙다는 인사만 몇 차례 한 후,
        서둘러 매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며칠 후,

        그 젊은이가 다시 그녀의 계산대로 왔습니다.
        이번에는 젊은이의 아버지와 함께 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건축 회사인

        존슨 컨스트럭션 컴퍼니의 소유주 밥 존슨 경이었습니다.


        “며칠 전 제 아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으로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앞으로 필요한 자재를

        홈 디포우에서 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디는 고액지폐를 거절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침착하고 현명하게 처신함으로써

        모든 고객들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젊은이와 아버지를 감동시킨 것입니다.
        그 뒤 젊은이는 그 가개에 계속 드나들면서

        그 점원과 가깝게 되었고

        결국 점원 됨됨이에 감동을 받기에 충분한 

         주디는 밥 존슨 경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구광광 제공-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역대상19:2)

         

        29.jpg


        중생한 신자가 귀신들릴 수 있는가?

        동양종교와 미국내의 사교의 보급으로 전에 외국에서 선교사 들이 보고한 것과
        유사한 귀신들린 역사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일은 너무나 자주 발생하는 반면
        이러한 영역에 있어서의 가르침은 너무나 미미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신약성경
        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라는 명령 이상의 것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원
        수에 대하여 확고하게 경고하고 있으며, 귀신은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손길”, 성령의 권능, 그리고 예수의 이름
        을 통하여 구원이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다.

        극단주의의 위험

        어느 무시된 교리를 강조할 때 성경의 의도를 넘어서 극단주의로 나갈 위험이
        있다. 또한 무시된 교리를 전체의 사역으로 삼음으로써 목회의 궤도를 벗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귀신론의 주제에 매혹된 어떤 사람들의 경우와 같다. 그들
        은 자기들의 모든 관심을 귀신론에 집중함으로써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들이 귀
        신을 많이 쫓아내면 낼수록 쫓아내야 할 귀신의 수도 많아지기 때문에 귀신 쫓는
        이외의 사역은 실제적으로 무시된다.

        그리스도를 높이기보다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 빠지게 되는 이러한 경향은 성
        경의 균형에 모순된다. 또한 귀신을 좇아낼 때 여러 가지 토해내는 등 외적인 현
        상에 대한 부수적인 선입관은 성경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귀신이 영적인
        존재임을 잊었다.) 거품을 일으켰던 경우에 있어서도 성경은 귀신이 쫓겨가기 전
        에도 지속적으로 있었던 일이었으며 귀신이 쫓겨날 때만 있었던 현상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귀신론에 대하여 비성경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한 경우 유감스러운 부작용이 있는데 그것은 때때로 성경적인 가르침까지도 악평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16세기와 17세기의 영국 그리고 17세기 미국의 소위 마법의 결과였다. 영국에서
        사례들이 보고된 것이 있는데 그 중에는 아이들이 그들의 몸속에 들어갔다고 추정되는 악령을 토해냈다는 것이다.

        1962년 커튼 마더(Cotton Mather)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바드를 우수한 성
        적으로 졸업한 유능한 설교가였다. 이 사람이 마녀들에 대하여 메사추세츠주의
        살렘에 사는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귀신들린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의 증언 때
        문에(이 아이들은 다른 설명이 더욱 필요하겠지만 거짓말하는 귀신에 의하여 움직였던 것 같다.) 19명이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150명이 감옥에 들어갔다.

        고발당한 사람들 앞에서 이 아이들은 발작을 일으키다가 혼수상태처럼 보이는 상태
        에 들어갔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당한 고통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
        의 이름을 대었다. 고발당한 사람 중 상당수는 기독교 순교자에 해당하는 믿음과
        정신을 보였지만 인격적으로 고상한 판사는 이 사람들을 유죄로 판결하였다. 이
        재판이 공개된 결과로 이때 당시의 미국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하여 외면
        하게 되었으며 사탄과 악령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
        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탄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귀신이나 악령들에 대하여 잘못된 관
        심을 갖게 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명확한 가르침의 도에서 떠나도록 하는데, 우리
        는 이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귀신이나 악
        령에 대하여 잘못된 태도를 갖게 될 때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것을 외면하게 되고
        하나님의 일은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조심한다고 해서 귀신론을 가볍게 취급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귀신의 활동과 그들의 수가 많은 것을 명확히
        가르쳐 주고 있다. 영어 성경에서 마귀(devils)라는 단어는 실상 귀신(demons)
        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더욱 자명한 일이다.

        실지로 마귀라는 단어는 (헬라어, Diabolos는 “참소자”이다) 사탄에게만 적용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가 귀신들을 통해서 역사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사탄은 피조물이며 제한 받는 영이며, 편재하지도 않는다. 사탄은 세계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귀신들을 통해서 대부분 그의 일을 수행한다. 귀신들을 쫓아내던 예수의 사역은 적어도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치유하는 사역의 일부였다. (행10:38)-여기서 사용된 “눌린”의 뜻은 오늘날 사용되는 의미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제기되는 질문은 오늘날도 귀신이 활동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한 신자도 귀신에게 사로잡힐 수 있는가 혹은 누군가가 중생한 신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령과 귀신이 한 집에 같이 거할 수 있는가?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 아닌가?

        저자들이 말한 것

        대부분의 옛날 저자들은 참된 기독교인들 안에 귀신이 거할 수 없으며 귀신이
        참된 신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예로서 존 네비어스(John L.
        Nevius)라는 장로교 선교사는 거의 40년간 중국에서 살았는데 귀신들린 사례를
        많이 보았지만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볼수 없었다고 한다. 빅톨 플리마이어
        (Victor Plymire)라는 오순절 계통의 개척 선교사는 티베트에서 유사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더욱이 최근 여러 교단의 저자들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넬슨(M.
        H. Nelson)이라는 의사는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고통 당하는 듯이 보이는 기독교
        인들에 관한 많은 보고서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들 중 몇몇은 하나님
        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불순종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외견상 이 의사는
        영원한 보장을 믿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을 기독교인이
        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귀신이 신자의 몸과 마음에 영향
        을 줄 수는 있어도 신자의 몸이 귀신에 의하여 사로잡히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
        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귀신이 기독교인의 속 사람을 사로잡지 않은 채 기독교인의 몸속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하는 성경의 관점에 배치되는 것 같다. 또한 책임이 관계되는 한에 있어서 한 사람을 여러 모양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이방인의 사고방식이다. 만일에 귀신이 몸이나 마음(혹은 자세)중 어느 영역에 들어갔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들어간 것이 된다.

        성경이 말하는 것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문제들로부터 구원하고 계시며, 귀신들리는 것
        으로 부터도 구원 하신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일어난 사건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일치하는지 우리는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어
        떤 사람들은 성경이 비겁하게 두려워하는 영(spirit of cowardly fear)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으로부터 구원받으려면 두렵게 하는 귀신과 근신
        혹은 절제의 영(한글판에는 spirit이 마음으로 번역되었음:역자주)으로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두려움을 쫓아낼 필요가 있는 악한 영이라고 해
        석한다면 동일한 논리로 선한 영들이 들어오기를 간청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
        리의 잘못은 명확한 것이다. 사랑이나 절제는 우리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들이다. 사랑이나 절제의 영은(a spirit of love and of self-control) 우리
        가 성령을 따를 때 결과로서 나타나는 자세를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있어서 영(spirit)이라는 단어는 자세 혹은 기질을 나타낸다
        다윗은 상한 영(broken spirit:상한 심령, 시51:17)이라고 말했으며 솔로몬은
        겸손한 영(humble spirit: 마음을 낮추는 것, 잠16:19)이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에 갈 때에 매대신 사랑과 온유한 영(love and meek or gentle spirit:사
        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하였다.(고전4:21) 베드로는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meek and quiet spirit: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
        로 단장하라고 말하였는데 (벧전3:4) 실제로는 조용한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이라는 단어는 자기 자신의 심령이나 그것의 표현으로 자주 사용한 것
        을 알 수 있다.(학개1:14), 행17:16, 고전2:11 등. 그러나 학1:14, 행17:16에
        서 spirit 을 한글 성경에서는 마음으로 번역했다 : 역자주)

        이와같이 문맥상 독립된 영적 존재라는 뜻이 나타나 있지 않다면 거만한 영, 성
        급한 영, 졸리운 영, 시기의 영 등과 같은 말은 귀신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갈6장)
        이나 죄의 기질로 취급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죄의 기질을 귀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개 개인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지 않게 되며, 회개할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은 이러한 죄들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세를 버
        리라고 한다. 우리 안에서 싸우는 싸움은 성령과 귀신 사이에 싸움이 아니라 내
        주하는 성령과 육신과의 싸움인 것이다.(육신은 죄의 경향을 띤 모든 감각기관을
        의미한다.)

        “영”이라는 단어가 귀신에 대하여 사용될 때는 성경은 악령 혹은 더러운 영이
        라고 말한다. 때로는 이 단어는 같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더러운 마귀
        의 영(a spirit of an unclean devil, 한글 성경에는 더러운 귀신으로 번역되었음:
        역자주. 눅4:33)같은 것이 있다. 많은 경우 이 귀신들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모든 질병을 귀신이나 악령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실재
        로 많은 구절들이 귀신에 의한 질병과 그렇지 않은 질병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보여준다.(마4:24, 8:16, 9:32,33, 10:1, 막1:32, 3:15, 눅6:17,18, 9:1 등) 이
        들 중 어느 구절에도 귀신에 의한 질병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있었다는 단서를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모든 예가 오순절 이전에
        사건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이모니조마이”라는 헬라어에
        는 귀신에게 사로잡히다, 혹은 귀신들리다라는
        뜻인데 많이 나타나지 않는 단어이다. 이것은 오직 한번 동사로 사용되었는데 심
        하게 귀신들린 가나안 여인의 딸의 경우이다. 그 외에는 “귀신들린”이라고 번역
        되는 분사로써 사용되고 있다. (마8:28,32, 9;32, 12:22, 막5:15-18, 눅8:35)
        다시 말하거니와 이 귀신들린 사람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
        고 할 수 있는 단서는 없다. 이들 중 대부분은 심한 괴로움을 겪거나 급격한 인격
        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신자도 귀신들릴 수 있다는 사상은 또 다른 큰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그것은 믿
        음을 잠식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이 제공하는 구원에 대한 개념을 약화시킨다. 하
        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골1:13) 지난 시대에는 우리가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
        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
        (엡2:2)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였으며 우리를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으로 삼으셨다(엡2:19)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었는데 우리의 몸 안에 귀신이 거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우리가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롬6:17)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도록 자유인이 되었다. 지금도 신자는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신자가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자기의 의지 때문이지 귀신에 의해서 침입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로마서는 귀신을 좇아낼 것을 요구하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람이 믿음으로 자기의 신분이 결정된다.

        만일 신자에게 귀신이 있다면 예수님도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분쟁사태를 초래
        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
        낸다고 말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사탄의 왕국이 서로 대적하며 분쟁하고 있다고
        가정하였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거부하였다. 눅11:21,22은 사탄이 신자를 사로 잡으려고 할 때에 예수께서 사탄을 이기시고 무장해제 시킨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귀신이 돌아와서 그 집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만 귀신이 다시 들어갈 수 있다.(눅11:24-26, 마12:43-45) 진실한 신자에게 귀신이 있다는 사상은 또한 구원과 평강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을 잠식한다. 이것은 신자가 다음 어떤 귀신이 자신을 침입할지 전전긍긍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엄청난 두려움을 자아내게 한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가 소유했다고 확신시켜주는 자유와 배치되는 것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이나 2세기 교회의 신자들은 이런 종류의 두려움을 갖지 아니했다. 주후 139년경에 목자(The Shepherd)라는 매우 영향력 있는 기독교 책을 쓴 헤마스(Hermas)는 부패를 책망하며 기독교의 덕목을 격려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 안에서 악령이 거하면서 주관할 수 있다고 말하였지만 이러한 악령을 지니고 있는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였다. 성경은 신자를 위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신자는 귀신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외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지적한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사탄이 그 안에 가득하여 성령께 거짓말하기 전에 이미 타락하였던지, 아니면 스스로 교회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행5:13,14참조) 적어도 그 당시에 자칭 그리스도인 이상은 아니었다.

        악령을 대적할 것

        귀신들린다는 말을 진실할 신자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게 보인
        다.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사탄과 그의 무리들은 외부적인 원수라는 것이다. 우
        리는 사탄의 세력에 대하여 전쟁 중에 있으며 그들은 우리를 공격할 기회를 엿보
        고 있다.(엡6:12 참조) 성경적인 강조점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에서 무엇을 대면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 요구는 우리가 누군가를 시켜서 우리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들은 밖에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며 시험하고 있지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요구는 깨어 있어 전신갑주를 입고 굳게 서라는 것이다. (고후10:3-6, 엡6:10-18, 벧전5:8,9)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사탄을 물리쳤다.(마 4장)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사탄과 그의 귀신들을 믿음으로 대적해야 한다.(약4:7,벧전 5:8,9) 그리고 믿음의 방패는 원수의 불화살을 꺼버릴 것이다.(엡6:1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대대로 천사를 통해서 오듯이 사탄의 공격도 대대로 귀신이나 귀신들린 사람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사탄의 공격이 외부적이라는 사실은 욥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의 육체에 있는 가시의 경우인데 바울은 이것을 자기를 치기 위하여 사탄이 보낸 사자라고 불렀다.(고후12:7 참조) 바울은 이것을 떠나게 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간구하였으나 하나님은 거절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고 하셨다. 그 결과 바울은 그의 연약함과 수치와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여기서 사탄의 사자가 귀신인지, 질병인지, 혹은 사람인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치고 공격하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내쫓아 달라고(cast out) 간구하지 않고, 떠나게 해달라고(to be kept away) 간구하였다. 또한 우리는 바울이 그 자신과 우리 안에서 유일한 소망으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골1:2,29) 우리는 또한 영들 분별의 은사가 성령의 내주함이 없는 사람들을 주관하는 영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지 신자들 안에 있다고 여겨지는 귀신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만일 진리가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다.(요일2:24) 오직 우리가 포도나무에서 잘려져 죽은 가지로 버려졌을 때만이 사탄이나 혹은 그의 귀신들이 우리를 주장할 수 있다.

        우리의 구속은 전인적인 구속이다. 모든 대가는 이미 지불되었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그리스도가 귀신들렸다고 공격하였다. 그것은 마귀의 교묘한 수작으로서 오늘날 성실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이 귀신들렸다고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확실히 여러 가지 구원들이 있다. 그러나 귀신들림으로부터의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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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뉴스미션 2013년 4월 5일에 올린 김동수 교수(평택대)의 칼럼입니다. 글의 요지는 정이철 목사의 <신사도운동에 빠진 교회: 한국교회 속의 뒤틀린 성령운동>에 나타난 기본적인 전제를 비판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김 교수는 정 목사의 전제가 은사종료·중지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그가 거의 모든 성령운동을 신사도운동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김 교수는 정 목사가 은사 중지론의 카테고리 안에서 방언을 주장하는 김우현, 치유를 주장하는 손기철, 예언을 주장하는 김하중을 비판하는데 사실상 그 비판의 전제는 오순절적 신앙형태를 부정하는 것에서 온 것이라며 “치유는 인정하지만 (정이철 목사는)방언과 예언이 현재에 지속된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지적합니다. 김 교수는 정 목사를 향해 “그에게 있어서 정통은 오직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는 자들로 보인다”며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약속한 성령의 역사들이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그대로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은 비정통인 셈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사도운동을 주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건전한 성령운동까지 도매금으로 넘겨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인정하고 그것이 실제로 교회 사역에서 활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한국교회 건전한 신앙인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신천지 이후 가장 큰 이단 문제는 ‘신사도운동’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때입니다. 신사도운동에 대한 비판은 제기됐지만 그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반박하는 글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사이트에 뉴스미션에 기고한 김 교수의 글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독자들이 조금더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김동수 교수의 글 전문입니다.
        ----------------------------------
        한국 복음주의권 목회자의 대표자격인 이동원 목사는 최근 국내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2013년 3월호 사설에서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들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한 마디 던진다. 자신의 신앙과 신학도 내용을 따지고 보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개혁주의적 복음주의가 다른 신앙전통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보다 열린 복음주의로, 다른 교파의 신학에 대해서 보다 포용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유독 한국의 개혁주의적 복음주의는 타 교파의 신학을 포용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의 대표적 신학교인 트리니트 신학교를 다니면서 열린 복음주의를 경험하고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최근에 한국 교회의 성령 운동을 신사도 운동이라는 카테고리로 몰아넣고 비판한 정이철의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한국교회 속의 뒤틀린 성령운동』(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을 읽고 나도 이동원 목사와 같은 말을 저자에게 하고 싶다. 본서의 저자는 기독교 교파 신학의 다양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매우 편협한 자신의 입장에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성령운동을 비판하고 있다. 또 성서학자가 볼 때 그의 성서해석은 아마추어 수준을 약간 벗어난 정도로, 성서 본문 본래의 정황과 저자의 신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한 교파 혹은 자신의 도그마적 해석에 빠져 있다. 본서는 성령 운동이 성경이 말하는 정도를 벗어난 사례들에 대해 정당한 비판도 포함하고 있으나, 그가 전제하고 있는 도그마는 매우 편협하며, 그의 판단은 극단적으로 단정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본서가 주장하는 구체적인 것보다도 본서의 저자가 당연시 하고 있는 그의 전제를 비판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도그마에 빠져 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1) 성경의 성격은 하나님의 계시다. (2) 사도들의 역할은 계시를 기록하는데 있었고, 계시는 사도들로 인해 종결되었다. (3) 대부분의 기적적인 은사들(치유는 예외?)은 사도들의 계시의 방편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사도들의 사라짐과 함께 그쳤다. (4) 그래서 이러한 은사들(사도, 예언자, 방언, 예언 등)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하는 것은 사도들이 지금도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신사도 운동이다. (5) 한국에서 많은 성령운동이 위와 같은 은사들을 인정하기에 그것들은 신사도운동일 수밖에 없다.

        나는 다른 책들(『신약이 말하는 방언』;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에서 이미 바울이 말하는 방언과 예언과 방언 통역이 계시적 은사가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른 문제에 집중해서 위 견해를 비판하려고 한다. 우선,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신사도 운동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신사도운동은 피터 와그너가 그의 책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서울: 쉐키나, 2006)에서 제기한 대로 이천 년 이후를 ‘제2의 사도시대’로 규정한 것에 근거한다. 아마도 정이철이 신사도 운동이라고 몰아붙인 대부분의 인물이나 단체는 지금이 ‘제2의 사도시대’라고 본 와그너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사도운동이라는 말을 너무 확대해서 해석하고 있다.

        나는 성서에서 옛 언약 시대(구약 시대)와 새 언약 신대(신약시대)를 명확히 구분했다고 본다(렘 31:33). 그리고 신약 시대는 예수 시대와 교회 시대로 구분된다. 요한은 그 기점을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때라고 본다(요 7:39). 사실 이것들 외에 신약성경은 어떤 의미 있는 시대 구분도 하지 않는다. 사도 시대와 그 이후 시대의 구분도 인위적일 뿐 성서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시대를 교회 시대에서 따로 떼어 놓은 정이철이나 이 시대를 ‘제2의 사도시대’라고 보는 와그너의 구분은 모두 인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회사적으로 이런 구분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이 이것을 구분하여 그에 따른 성령의 역사가 다르게 일어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이철의 문제는 그의 비판이 초자연적 은사중지론의 입장에서 은사가 지금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가 여러 사람들을 신사도 운동의 카테고리 안에 넣어 비판한 것은 결국 은사가 지금 지속된다고 믿고 그러한 신앙을 전개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그는 방언은 주장하는 김우현, 치유를 주장하는 손기철, 예언을 주장하는 김하중을 비판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사실 이들 각각이 이러한 은사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고 그러한 신앙 행동을 한다는데 있다. 내가 볼 때 그가 비판한 많은 내용은 그가 오순절적 신앙 행습에 익숙하지 않고, 그러한 신앙 형태를 부정하는 것에서 온 것이다. 그는 치유는 인정하지만, 방언과 예언이 현재에 지속된다고 믿지 않는다. 이러한 은사들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서 저자의 문제는 그는 하나의 정통 신앙이 있고, 그것으로 다른 신앙 형태를 다 재단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웨슬레는 인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외에 알미니안적 신앙 전통에 대해서는 그는 매우 교조적으로 비판한다. 그에게 있어서 정통은 오직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을 따르는 자들로 보이며, 오순절 운동과 그것을 잇는 20세기 이후의 성령운동은 모두 비 정통인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정통은 지금은 성경이 완성된 시대이기 때문에 성령으로부터 조명을 받아 성경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것만이다. 신약성경이 우리의 삶의 모델이며, 신약 성경에 예수님이 약속한 성령의 역사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대로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은 비 정통인 셈이다. 사도행전을 우리 신앙생활의 모델로 보고 사도행전을 읽는 오순절주의는 그에게 당연히 비정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일대학교 신학부 조직신학 교수인 미로슬라브 볼프(M. Volf)는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저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2)라는 책에서 성경의 목소리의 다양성과 통일성은 물론, 본문의 다의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성이 있고, 그 말씀의 해석 자체에도 어느 정도 다의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본문에 대해서 어떤 해석도 가능한 것은 아니다. 본문은 기호화된 의미이기 때문에 개연성 있는 해석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기독교인 간에 이런 정도의 합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개신교 정통 안에는 개혁주의적 입장(장로교, 침례교 등)과 알미니안적 입장(감리교, 성결교, 오순절파) 등이 있고, 각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그 역사적 기원이나 내용으로 볼 때 모두 의미 있는 해석 전통이다.”

        본지 제휴 뉴스미션(http://newsmission.com) 4월 5일자 칼럼입니다. 

         


        주님의 음성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욥기 37:5)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무언가를 지시 하실 때나
        어떤 사실을 알려 주실 때,
        특정한 사람을 불러 이야기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어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세상의 누구와도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실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큰일을 행하시며
        주님의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새벽미명에 다가와 속삭이시며,
        은밀한 중에 말씀하시며, 찬양을
        올려 드릴 때 음성 들려주시며,
        말씀을 묵상할 때 다가오시며,
        꿈속에서 나타내시며, 시공간을
        초월하시며, 우리가 헤아릴수
        없는 큰일을 행하시는 분!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Peace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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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아그라와 같은 효능도 있어

        여름철에 수박만큼 각광을 받는 식품도 드물다. 신선하고 달콤한 맛과 진한 색깔은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수박에는 이러한 풍미 외에 뭔가가 더 있다. 바로 건강 효과다.

        수박 한 컵은 46칼로리에 불과하지만 비타민C와 A 하루 필요량의 20%와 17%가 들어있다. 전문가들은 "수박은 소화 건강에 좋은 식이섬유와 혈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칼륨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건강ㆍ의료 정보 사이트 '헬스닷컴(Health.com)'이 수박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사실 5가지를 소개했다.

        토마토보다 라이코펜이 더 많다=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수박 한 컵에는 토마토보다 1.5배나 많은 6㎎의 라이코펜이 들어있다. 라이코펜은 항산화제로서 우리 몸속의 세포를 손상시키고 면역체계를 혼란시키는 유해산소를 막는 효능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라이코펜은 심장질환과 몇 가지 종류의 암을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즙이 근육통을 완화한다=스페인에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수박주스를 마시면 격렬한 운동을 한 뒤 발생하는 근육통을 누그러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하기 한 시간 전에 수박주스 16온스(약 473㎖)를 마신 선수들은 근육통이 덜 발생했고 심장 박동수도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수박에 들어있는 시트룰린이라는 성분 때문으로 아미노산의 일종인 시트룰린은 동맥 기능을 향상시키고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다. 텍사스 AM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수박이 혈관을 이완시키기 때문에 비아그라와 같은 효과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시트룰린은 껍질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껍질 채 먹어야 한다. 껍질 채 먹기 힘들다면 피클로 절여서 먹는 방법이 있다.

        과일이며 채소다=수박은 다른 과일처럼 씨를 가지고 있으며 단 맛을 내는 과일이다. 하지만 호박, 오이 등의 채소와 같은 박과에 속하기도 한다. 껍질까지 먹을 수 있는 수박은 박과로 분류가 되기도 한다.

        이름대로 수분이 가득 차 있다=수박의 91.5%는 수분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건강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영양학 저널(Nutrition Journal)'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약간 수분이 부족한 여성들에게서 두통과 집중력 저하, 피로감 그리고 기분이 우울해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수박을 먹어 수분이 부족해지는 것을 막자.

        노란 수박도 있다=수박 안의 색깔이 빨간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옐로 크림슨(Yellow Crimson)'으로 부르는 노란 수박도 있다. 겉은 똑같지만 안쪽 과육의 색깔이 다르다. 노란 수박은 꿀처럼 달콤하다. 혹시 노란 수박을 파는 상점이 있다면 노란 수박은 '옐로 크림슨'이라고 말하고, 빨간 수박은 '크림슨 스위트(Crimson Sweet)'라고 주문하면 된다.

        고난을 당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로하면서 사도는 그러한 고난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살후1:5-7)라고 가르친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한다:“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아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6:10).

         

        첫째 구절(살후1:5-7))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공로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가 자녀로 택하신 우리들이 그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본받기를 바라시기 때문에(8:29),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 당하시고 후에 그에게 정해진 영광에 들어가신 것처럼(24:26)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14:22)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환난을 당하는 동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의 양들에게 찍으셔서 구별하시는 특정한 흔적이 우리에게 찍혀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요(6:17), 그 흔적이 하나님의 자녀된 증표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진술도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3:10-11).

         

        바울이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행위가 어느 정도라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강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의 말은 말하자면 이런 뜻이다:“너희들에게 환난을 가져다주는 원수들에 대해서 보응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부합되듯이, 너희에게는 그 고난에서 벗어나 안식과 평안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그의 심판에 부합하는 것이다.”

         

        둘째 구절(6:10)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섬김과 봉사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되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게으름을 없애시기 위하여,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지는 고난이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는 값없는 언약이 먼저 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 전체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데- 이 약속이, 다른 약속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우리를 위하여 아무런 열매도 내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 사실을 확고하게 의지하고서 우리는 든든한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섬김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비롯되는 상급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이러한 기대가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분이 아니시며 한 번 하신 맹세는 반드시 지키는 분이시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 의로우심은 정당한 것을 갚아주는 공평성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어거스틴, “주께서는 신실하셔서 스스로 우리의 채무자가 되셨다.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받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중권(크리스챤다이제스트), pp 387-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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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무엇입니까? (Q&A) / 박신 목사

         

         

        [질문]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위 말씀을 말로 성령을 거역(성령을 훼방)한 자는 회개(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로나, 한번 회개(영접)하여 구원에 이른 자는 성령을 거역(성령을 훼방)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지요? 위 말씀에 대한 해석 부탁드립니다.

        [답변]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첫째가는 원칙은 앞뒤 문맥에서 말하는 의미를 가장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과 그 목적을 따지지 않고는 올바른 해석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포함되어 있는 문단은 마12장의 22절부터 37절까지입니다. 참고로 성경에는 한 사건이나 문맥이 시작되는 구절에는 반드시 작은 동그라미가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해석은 최소한 동그라미 하나에서 시작해 다음 동그라미 바로 앞 절까지는 함께 읽고 그 전체 대의(大意)를 파악한 후에 각 구절의 구체적인 의미를 추적해 들어가야 합니다. 또 그 대의를 파악하기 위해선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과 결말까지 다 함께 따져 보아야 합니다.

        본 문단의 대의는 어떻게 됩니까? 먼저 바리새인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린 된 자를 고쳐주는 예수님을 보고 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 쫓아내었다고 비방했습니다. 그러자 일단 예수님은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망하는 일인데 그렇게 할 리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이거나 사단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았다고 반박한 셈입니다.

        그리고서 말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 말로 인자를 훼방하는 죄로 나누어서 전자는 용서 받을 수 없고 후자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로 성령을 훼방한 죄라고 말했을 때에는 무엇을 지적한 것입니까? 바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더러 사단의 힘을 빌렸다, 즉 사단과 같은 편이라고 매도한 죄입니다.

        반면에 인자를 말로 거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인자라고 말할 때는 평범한 인간과 구약에 예언된 인자 즉 메시야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다른 구절과는 달리 본문에선 정확하게 둘 중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 불명합니다만,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하더라도 그 뜻에 무리는 전혀 없습니다.

        먼저 인간의 뜻이라면 사람이 사람을 말로 상처 주거나 욕을 한 것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은 이런 윤리적인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자는 언제든 사함을 받을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두 번째로 메시야의 뜻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됩니까? 말로 예수님을 비방한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죽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고 마지막 세 번째는 저주하면서까지 배반(막14:71)했지만 위대한 사도가 되었지 않습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당신을 인자로 지칭하여 말씀하셨다 할지라도 구태여 성령 훼방 죄와 메시야 훼방 죄로 구분한 것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사실은 구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성자와 성령은 동일한 삼위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는 완전히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서 사역하셨습니다. 내면적으로는 성령님이 바로 예수님이자 예수님이 성령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의 외형과 인성을 띄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바리새인을 포함한 일반적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볼 때에는, 특별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평범한 인간으로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23절)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뜻은 너희가 나를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견지에서 하는 비방과 방해는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구태여 성령을 훼방한 죄라고 따로 지적한 것은 지금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들을 고쳐 주는 것을 보고도 나를 사단이나 그 종이라고 비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나아가 하나님 당신을 부인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세상과 다가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받지 못할 죄입니다.

        그 말씀을 한 후 부연해서 설명한 내용(33-37절)을 보면 그 뜻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실과로 그 나무를 알고,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말하고, 사람은 자기 속에 쌓은 것에서 겉으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결국 말로 한두 마디 비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 마음에 진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온전히 믿는지 아닌지의 여부로 구원이 결정된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37절에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는다”고 해서 단순히 말을 잘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속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말이니까 한두 번 잘못 말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신관, 가치관, 인생관, 역사관 등에서 일관되게 말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구원 여부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의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아예 부인하겠다는 근본 마음이 있었으므로 그런 성령의 역사를 보고도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사단을 들먹인 것은 나사렛의 랍비 예수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즉 하나님 자체를 거역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5절 처음에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요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로 예수님을 헤치는 자”(30절)였던 것입니다.

        이제 질문자님께서 의문을 가졌던 두 가지 부문에 대한 해답도 나왔습니다. 먼저 “말로 성령을 거역(성령을 훼방)한 자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로” 봐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이 질문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조금 애매하기는 합니다만, 순수하게 말로 실수하거나 잘못하여 성령을 비방했던 자가 회개해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이 어떤 극악한 죄를 지어도 하나님 당신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는 한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신을 부인하지 않는 한 십자가로 용서 받지 못할 죄라고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한번 회개(영접) 하여 구원에 이른 자는 성령을 거역(성령을 훼방)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성령은 악령과 달리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신자의 자유의지에 자신의 사역을 일차로 맡기십니다. 사단과는 달리 사람을 노예로 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 자신의 죄, 욕심, 나태, 혹은 때로는 사단에 넘어가거나 본성으로 하나님을 잠시 외면하는 이유로 인해서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활발하게 역사하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고 인내하시지만 도저히 신자를 방임할 수 없을 때는 강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궁극적으로는 구원 받은 신자가 성령을 거역할 수는 없지만 실제적으로는 신자 자신의 믿음과 헌신에 따라 성령의 역사가 충만해지거나 약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적극적으로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사역을 거부 훼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완악하게 고집을 부려서 끝까지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또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일을 말합니다. 단순히 말로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심지어 저주하는 말을 했더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당연히 사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주 유감스럽게도 목회자들이 교회의 행사나 심지어 목사 개인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일을 두고 감히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했다고 매도하는 일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죄를 목회자 자신이 범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인간이 인간을 절대로 지옥 가는 형벌을 받는다고 또는 사함을 못 받는 죄라고 정죄 내지 저주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 일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3/15/2007

         

         

        출처: 박신 목사님 홈페이지/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다른 복음을 몰아내라-② 율법주의
        ▲정성욱 교수.
         

        한국교회의 안방을 차지해 들어와서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부패하게 하고 있는 다른 복음 중 두 번째는 율법주의다. 율법주의의 기본 정의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런 주장에 근거한 신앙생활이다. 좀더 풀어 해설하면 죄인이 율법을 지켜 행하는 도덕적 공로를 세울 경우, 그 도덕적 공로에 대해 하나님께서 칭의나 구원으로 보상하신다는 도덕주의·공로주의적 신념과 그런 신념에 기초한 잘못된 신앙생활이다. 좀더 넓게 말한다면 죄인이 칭의와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모든 종류의 조건주의 역시 율법주의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 내에 팽배한 율법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 첫째 경우가 바로 오직 믿음과 은혜로 말미암은 칭의와 구원을 거부하고, 죄인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원조 율법주의이다. 이런 원조 율법주의를 신봉하고, 또 그렇게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교단이나 교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세계 교회사에서 어거스틴과 구원론 논쟁을 벌였던 펠라기우스의 구원론은 율법주의·도덕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펠라기우스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과 무능력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성이 근원적으로 선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펠라기우스는 본성적으로 선하고 능력 있는 인간이 도덕법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급진적 펠라기안주의자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 경우가 로마 가톨릭적 율법주의다. 로마 천주교의 공식 교리에 의하면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영세를 받을 때, 죄인의 원죄를 포함한 과거의 죄가 사함을 받고 처리된다. 그러나 이때 칭의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영세를 받은 천주교인은 남은 인생 동안 지속적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뤄가야 한다. 천주교의 공식 교리에 의하면 영세 이후 신앙생활 속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뤄가는 과정이 칭의다. 신앙생활 과정에서 영세받은 천주교인이 율법의 요구를 이뤄가야 한다는 조건을 성취할 때만 최종적으로 칭의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천주교인이 율법의 요구를 이뤄가는 칭의의 과정 속에서 계속 죄를 범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죄에 대한 보속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천주교인들 중 최종적으로 자신이 칭의되어 천국으로 간다고 믿고 또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로마 천주교의 구원론은 펠라기우스주의 같은 원조 율법주의는 아니지만, 오직 하나님 은혜로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고 의지함으로 영 단번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성경적 구원론에서 크게 이탈한 이단적 주장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인의 모든 죄를 일거에 용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를 믿음으로 붙드는 모든 죄인이 영 단번에 의롭다 함을 받아, 영원한 의인의 신분을 얻게 된다는 성경적 구원론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 천주교회의 구원론은 예수 믿음에 인간의 율법적·도덕적 공로를 더해야 칭의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의미에서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비판받아 왔다. 로마 가톨릭이 가르치는 반펠라기우스주의적 구원관은, 바로 신약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경고한 ‘다른 복음’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율법주의자 또는 유대주의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거부하고, ‘오직 믿음’의 효력을 거부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의지한다 해서 칭의와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음에 율법 준수를 더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한 율법 준수란 할례 받음, 안식일과 다른 절기 준수, 구약 정결음식법 준수 등을 포함한다. 우리의 칭의와 구원은 오직 은혜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완성된다는, 순수한 복음, 순도 100%의 복음, 진짜 복음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복음을 전하고, 다른 복음을 믿고,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이기에 영원히 저주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오늘날 이러한 로마 가톨릭적 율법주의가 한국 기독교회 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예수 믿음에 율법 준수를 더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공공연히 가르치는 교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들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회심한 후 주일성수, 십일조 헌금, 새벽기도, 주초 금지 등을 준수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처럼 가르친다.

         

        이들의 의도가 어떻든, 이런 설교는 철저히 율법적이며,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에 정면 배치된다. 이런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며, 다시금 믿는 자들을 율법과 정죄 의식의 굴레와 속박에 빠져들게 하는 심각한 오류이다.

         

        상술한 관점이 좀 더 노골적인 율법주의라면, 좀 더 미묘한 차원에서 율법주의적 다른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교회들은 칭의·구원과 선행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오해로 말미암아 이런 미묘한 율법주의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들의 주장은 소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입술로는 신앙고백을 하더라도, 삶 속에 선행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함정은, 여전히 믿음에 선행을 더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주의적 패러다임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믿음에 선행을 조건으로 더해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믿음+선행=구원’이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이유와 배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과 윤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 중에서도 윤리적 실패의 모습을 보여준 사례가 최근 많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의 계속되는 윤리적 실패를 바라보면서 좌절을 경험한 일부 지도자들은, 선행과 윤리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이들의 의도는 십분 이해하더라도, 그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준 오직 은혜와 믿음과 보혈의 복음과는 배치되는 다른 복음이다. 왜냐하면 선행은 결코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구원의 조건으로 높여도 안 되기 때문이다.

         

        선행은 참된 믿음의 결과와 열매이며 동시에 선행은 구원의 목적이요, 증거라는 것이 100% 순수한 복음이다. 이것을 수학적인 등식으로 표현하자면 ‘믿음=구원’이며, “구원이 뿌리라면 선행은 열매”, “구원이 원인이라면 선행은 결과”, “구원이 실재하다면 선행은 그 증거”, “구원을 받은 사람의 삶의 목적은 선행”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돼야 한다. 참된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삶 속에는 선행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선행은 구원의 조건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와 결과와 목적과 증거로서 따라온다.

         

        최근 교회 갱신 전략으로 제시되었지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제안들 중 다른 하나는, 바로 성경과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칭의론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몇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런 제안을 하고 있고, 이 제안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국교회는 외부에서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 같은 이단들의 공격을 받고 있으며, 동시에 내부에서 교리적 수정주의자들로 인한 혼란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형국이다.

         

        수정주의자들은 전통적인 교회에서 가르친 칭의론, 즉 종교개혁의 법정적 칭의론이 신학적으로 심각한 오류라고 주장한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영원히 칭의된다는 법정적 칭의론은 구원파적 오용과 남용의 대상이 되었다고 수정주의들은 주장한다.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더라도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전통적인 칭의론 때문에, 교인들의 방종적이고 비윤리적인 삶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칭의를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며,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선취적으로 칭의를 받았더라도 남은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종말에 최종적으로 완성적 칭의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따라서 처음 예수님을 믿은 다음 삶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종말론적인 완성적 칭의를 받을 수 없으며, 결국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번 칭의는 영원한 칭의이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전통적 교리가 도리어 한국교회의 윤리적 타락의 주범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일견 일리가 있는 분석인 것 같으나,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이런 수정주의는 매우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경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깊이 분석해 보면 죄인을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인이라고 선포하는 칭의는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영 단번의 사건이며 영원한 효력을 가진다. 그리고 칭의는 율법의 행위와 관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와 공로 덕분에, 그리고 오직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그리고 예수님의 인격과 공로에 대한 믿음만으로 완성되는 사건이다. 한 번 칭의된 자는 영원히 칭의된 것이며, 한 번 칭의된 자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은 오직 믿음과 은혜로 말미암는 칭의가 복음의 중심이요, 복음의 정체성 자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참된 믿음으로 칭의된 신자는 성화의 과정을 시작하며, 점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가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으로 자라가게 된다. 즉 칭의가 뿌리라면, 성화는 열매이다. 칭의가 원인이라면 성화는 결과이다. 성화의 칭의의 증거이며, 목적이다. 칭의와 성화는 서로 구별되지만, 필연적인 연합관계에 있기 때문에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입술로는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그 사람의 삶 속에서 거룩함과 선행의 열매가 나오지 않을 경우는 두 가지 중 하나이다. 하나는 그의 신앙고백이 거짓인 경우 즉 참되게 거듭나지 못한 경우이고, 둘째는 신앙고백은 참되나 아직 믿음이 연약하고 유치한 단계에 있는 경우이다.

         

        한국교회 내에는 성경적 칭의론에 대한 오해와 남용이 팽배해 있다. 이것은 율법주의적 유혹을 부추긴다. 그렇다 해서 성경적 칭의론을 수정하여 율법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복음에 대한 배신이요, 진리의 왜곡이기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성경적 칭의론에 대한 바른 이해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 나아가 칭의론에 대한 바른 이해에 기초하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신앙인들의 윤리적인 삶을 고취시키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점진적으로 열매를 맺게 될 때 한국교회는 새롭게 갱신되고 개혁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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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8개의 수족 여자 아이.  4살 때 수십명의 의사들이 동원되어 정상아 수술에 성공한 내용의 장면입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5-6학년 나이가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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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13살 소녀의 트럼펫 연주



        
        아플 땐 아프다 /최송연
        
        아플 땐 아프다 말하렴
        그분께서 내 영혼 토닥이시네
        
        주께서 받으신 능욕 생각하면
        내게 닥친 이 황망한 일쯤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는데...
        나의 미성숙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나는 너의 창조주 하나님,
        너의 미성숙함마저도 사랑하느니
        
        그 나라 임하기까지
        아직은 자라나는 여리디여린 순(筍)
        미성숙하면 미성숙한 대로 
        모두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
        
        사랑하는 딸아,
        네가 지고 있는 짐의 무게
        이제 모두 내게 맡기고 
        너는 너무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마렴
        그분께서 내 영혼 토닥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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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의 대체물이 아니라 설교의 회복이 필요하다/ 조엘 비키

             

            종교개혁자들은 다른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말씀 전파만을 최고의 임무로 삼았다.

            그들은 말씀 전파에 심혈을 기울였고,

            말씀을 올바로 전파하면 풍성한 결과를 거둘 것이라고 믿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 설교자는

            현대인들이 말씀 듣기를 특히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말씀 전파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지 않는다.

            그래서 사역의 결과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안타깝게도 일부 복음주의 설교자는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설교관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내세우는 ‘복음주의’가

            종교개혁의 풍요로운 성경적 신앙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한다.

             

            그 결과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한동안 설교를 대체할 것들(화려한 예배 의식, 연극, 영상물, 재즈 밴드, 경배의 춤 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는 항상 실패로 끝났다.

             

            대체물을 찾는 이런 노력이 언제쯤 끝이 날까?

            종교개혁의 역사를 돌아보라.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부딪치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오직 말씀 전파 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설교를 대체할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공중 예배 의식 가운데 설교의 비중을 낮추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또한 설교할 때도 부적절한 유머나 그럴듯하지만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

            통속심리학, 스포츠, 정치, 텔레비전, 사회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각종 사회운동과 관련된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해로운 요소들을 모두 제거할 때 비로소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말씀을 온전하고

            풍요롭고 능력 있게 전해야 하는 소명에 진정으로 충실할 수 있다.

             

            성경적 복음만이 불신앙을 정복하고

            죄인들을 회개로 이끄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개혁하고 새롭게 부흥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말씀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루터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정복하는 수단도 말씀이고, 교회를 섬기고 재건하는 수단도 말씀이다.”

             

            설교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그분의 인정을 받을 만한 것은 없다.

            성령께서는 설교를 가장 존중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교회를 유지하고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확실한 수단도 바로 설교이다.

             

            오늘날의 신자는 설교와 기도와 예배와 일상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말씀 중심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헨리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우리 앞에 두어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

            말씀이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말고,

            말씀이 권고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며,

            말씀이 금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미워하지 말고,

            말씀이 명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이 시대는 삶에서 말씀이 변화시키는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속히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 조엘 비키 외6, 『오직 성경으로

             

            마르투스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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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김치와 인생의 공통점!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배추가 다섯 번이나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배추통이 갈라지면서 또 죽고
            소금에 절여질 때 다시 죽고
            매운고추와 짠 젓갈에 범벅돼서 또 다시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히면서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삶속에서
            김치처럼 풍부하고 맛있는, 뭔가 숙성된
            삶을 살아 가기 위해서는

            욱~! 하고 솟구치는 성질을 죽여야 하고,
            자기만의 외고집을 죽여야 하고,
            남에 대한 삐딱한 편견과 고정관념도
            죽여야 합니다.

            또한 자기만의 욕심을
            챙기기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성질도 죽여야 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가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여
            서로 win-win 하며 살아가야
            서로 밝은 유대관계가 지속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이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맛있는 김치가 서서히 숙성되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고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듯

            우리의 삶도 이렇게 숙성시켜 풍부한
            삶의 맛으로 우러나도록 하여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 소통하는
            즐거운 삶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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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공중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 사이에는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또한 신자의 개인 기도 생활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신약 성경에 의하면 알지 못하는 방언에는 네 가지 사용 혹은 목적이 있습니다.(1) 성령 세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사도행전 2:4; 10:46; 18:6); (2) 방언이 통역될 때에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로서 (고린도전서 12:10); (3)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게 하는 표적으로서 (고린도전서 14:33); 그리고(4) 효과적인 기도와 찬양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도구로서 (고린도전서14:2, 4; 14:18). 이모든 경우에 방언은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목적은 다릅니다. 이러한 독특한 사용과 목적에 관한 오해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 왔습니다.

            초기의 신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성령님께서 나누어 주신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오늘날도 신자들이성령 세례를 받을 때 나타나는 똑같은 증거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그들이성령 세례를 받을 때, 예배를 위해 교회에서 모였을 때 방언으로 말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증거를 가질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방언 통역의 은사가 함께 역사하는것을 필요로 하는 공중에서의 방언의 은사를 행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12, 13).

            처음에, 공중 예배에서 어떤 사람이 감동을 받아 방언으로 말을 합니다;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성령에 감동을 받아 그 방언의 해석을 말합니다. 이 영역에서 역사하시면서, 성령님은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을마련해 줍니다.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의 목적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고린도전서 14:2-12).

            개인의 경건의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의 또하나의 사역입니다.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영적 생활을 매우 부유하게 만든다고 증거합니다. 성령님이 예배와 사랑의 영광에 넘치는 표현 가운데 인간의 영혼을 북돋우면서 지성의 한계는 극복됩니다. 제한된 어휘와 영혼의 감정과 관심을 표현할 수 없는 무능함의 곤혹함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언어가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올 때 사라져 버립니다.그것은 마치 하늘과 땅이, 시간과 영원이, 하나님과 인간이 예배의 영광에 넘치는 행동을 통하여 모두 함께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어디엔가 잠시 앉고 싶을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앉을 수 없이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하기에...
            위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필명: pastor
            http://www.youtube.com/watch?v=GYSdSUZR6Tc&feature=player_detail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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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가 누구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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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직접 빛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등대였는지 알수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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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등대 아래에 머물기만 했었기에

            그때는 미처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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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있을 때 비로소 그가 보인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후 알게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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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가까이 있었기에 나는 알지 못하였지요.

            그가 어둠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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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언제나 나를 밝혀주었음에도

            나는 그때 그 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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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앞을 늘 지나쳐 배회만 하였을뿐

            나는 그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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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있어 내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그 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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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낌없이 주던 그가 내게 바라던 것은 오직 하나 -

            내가 창공을 훨훨 날아 오르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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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창공을 마음껏 누비며

            하얀 구름처럼 꿈을 펼지기를 원했던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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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답니다.

            그가 거친 암반 위에 힘들게 서 있었던 것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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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그 자리에 말없이 있어주었기에

            그가 있던 자리의 힘겨웠음을 몰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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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나는 그가 밝힌 빛을 외면한 채

            세상의 관심만 쫒는 탕아(蕩兒)였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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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그 고마운 등대를

            오히려 빛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 생각하기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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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멀리 시선을 두라고 하던 그 -

            그가 자신을 태워 나를 밝히려 했음을 이제야 깨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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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나를 밝히기 위해 고난을 딛고 서 있었음이 분명한데도

            나는 왜 그것을 깨닿지 못하였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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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이제야 깨닿습니다. 

            그가 서있던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자리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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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피고 지고, 감미로운 미풍이 세상을 어루만져도

            그는 그 것을 차마 음미하지 못하였음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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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서있던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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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거센 파도가 밀려오고 폭풍이 이는 자리 -

            그래도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준 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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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힘들 때 

            은은한 빛으로 위안과 용기를 주던 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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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세월이 지나

            이제야 느껴봅니다.

             

            그가 낮에도 그렇게 빛나고 있었음을....

            그가 멀리서 나를 인도해 지금에 이르게 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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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있어 세상이 아름다웠고...

            그가 있어 행복을 떠올릴 수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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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웠던 그대 -

             긴 세월을 돌아 이제야 느껴봅니다.

             

            흠 흠

            그대를... 그대를 사랑해요...

             

            ****

             

            등대가 그리워 집니다.

            인생의 등대가 되어준 사람들...

             

            아직 그 자리에 있어주면 좋을텐데...

            세월이 조금은 두렵습니다.

             

            기나긴 인생 길...

            그리고 수 많은 삶의 질곡들...

            그 속에 빛이 되어준 등대 -

             

            과연 여러분의 등대는 무엇이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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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전기 퓨리탄

            1) 존 낙스(John Knox, 1514-72) : 청교도의 창시자

             

            (1) 정치적 배경

             

            영국의 바로 위쪽에 자리 잡은 스코틀랜드는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영국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 입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대결의 양상으로 많이 분출되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를 합병하여 국위를 선양하려 했고, 스코틀랜드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국을 보호하려 했다.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스코틀랜드는 실질적으로 프랑스와 동맹관계를 맺음으로 영국의 침략을 차단하였다.

             

            영국 튜더 왕조의 창시자 헨리 7세는 국경 문제로 긴장 상태에 있는 스코틀랜드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딸 마가렛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에게 출가시켰다. 잠시 동안 양국간에 평화가 깃들었으나, 헨리 7세가 죽고 그의 아들 헨리 8세가 영국 왕이 되어 교황이 주도하는 신성 동맹에 가담함으로써 두 나라는 또 다시 대적이 되었다.

             

            신성 동맹은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것인데 프랑스는 스코틀랜드의 우방이었기에 처남인 헨리 8세가 매형인 제임스 4세와 적대 입장에 선 꼴이 되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는 격분하여 영국군과 싸우다가 플로든의 전투(the battle of Flod- den, 1513)에서 전사하였다.

             

            임종시 제임스 4세는 아내인 마가렛을 섭정으로 지명했으나 스코틀랜드 의회는 마가렛이 영국 왕 헨리 8세의 누나라는 이유로 이 지명을 거부하였다. 대신 알바니 공작(Duke of Albany)이 프랑스에서 불려와 섭정에 취임되고, 왕위는 생후 17개월 밖에 안 되는 제임스 5세에게 돌아갔다.

             

            스코틀랜드 왕가는 지속적으로 프랑스와 깊은 결속을 맺는데 제임스 5세가 프랑스 왕의 딸 마들린(Madeline)을 왕비로 취하고, 그녀의 사후 프랑스의 실력자 로렌 공작의 동생인 기즈의 메리 (Mary of Guise)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함으로써 이 결속을 더욱 분명히 한다.

             

            한편 야망에 찬 헨리 8세는 스코틀랜드를 장악하기 위해 4만의 군사로 전쟁을 일으키나 스코틀랜드의 견고한 방어망을 뚫지 못했다. 일단 방어에 성공하자 의기양양해진 제임스 5세는 영국군을 기습했지만, 솔웨이 모스 전투(the battle of Solway Moss)에서 패한 후 불과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왕위는 태어난 지 7일밖에 안 된 메리에게 돌아갔다. 헨리 8세는 아들인 에드워드와 스코틀랜드 여왕이 된 갓난이 메리 스튜어트(Mary Queen of Scots)를 정략 결혼시켜 스코틀랜드의 영토를 장악하려 했다. 개신교에 동정적인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이 결혼을 환영하였다. 154371일 양국간에 결혼 조약이 맺어졌다. 그러자 가톨릭 진영의 성직자들이 맹렬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그들은 영국 왕 헨리 8세의 통치를 두려워했다. 헨리 8세 역시 스코틀랜드에 무리한 요구를 강행했다. 그는 즉각 프랑스스코틀랜드간의 동맹을 파기하고 어린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영국에 인도하라고 명령했다. 이러한 헨리 8세의 고집은 스코틀랜드인의 저항과 반감만 부채질한 꼴이 되어 버렸다.

             

            이후 메리 스튜어트는 프랑스에 보내져 가톨릭 신앙으로 교육받고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황태자 프란시스와 결혼했다(15584). 프란시스는 아버지의 보위를 이어 겨우 17개월 동안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가 156012월에 죽었다. 이로 인해 메리 스튜어트는 15618월에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스코틀랜드 왕가가 친 카톨릭, 친 프랑스 정책을 취할 때 영국은 그 반대 입장을 취했다. 힘의 역학 구도 상 그 방법이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반 카톨릭의 힘으로 나타난 것은 대륙의 종교 개혁이었고 영국도 이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영국이 반 카톨릭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헨리 8세는 루터의 종교 개혁에 반대하였다. 교황청은 이러한 헨리 8세를 믿음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aith)로 추켜세웠다. 1534년 헨리 8세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반포하여 유럽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 교회의 수장이 로마 교황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이다.

             

            헨리 8세의 돌연한 변화는 그의 이혼 소송에 교황이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 헨리 8세는 왕정의 굳건한 토대를 세우려면 왕위 계승에 문제가 없어야 된다고 믿어 온 전제 군주였다. 자신의 아내인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은 이러한 헨리 8세를 지속적으로 실망시키고 있었다. 캐서린으로부터 3명의 딸이 연이어 탄생되지만 모두 죽고 메리 튜더(Mary Tudor)만 생존해 있었다.

             

            헨리 8세는 후계자 문제로 태산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형수(원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인 아서와 결혼했으나 아서가 결혼 6개월 만에 죽자 다시 헨리 8세와 결혼했다)를 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고 결론 내리고, 마침 궁녀인 앤 볼린(Anne Boleyn, 150736)이 마음에 들자 이혼을 결정하고 교황청에 이혼 승인을 청원했던 것이다.

             

            교황 클레멘트 7세는 이 이혼을 허락하고 싶었으나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칼 5(영문명, 찰스 5)의 고모인 캐서린을 이혼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혼을 허락하면 당장 교황청은 황제의 군대에게 유린당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헨리 8세는 교황의 허락을 못 받자 대노하여 수장령을 발표하고, 영국교회를 가톨릭에서 독립시켜 버렸다.

             

            이 사건으로 900년 이상 영국에 가해 온 교황청의 힘은 제거되고 영국 종교 개혁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재위 154753) 때에는 개신교가 영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1549년에는 공동 기도문(Book of Common Prayer), 1553년에는 42개 조항이 반포되었다. 이 기도문과 42개조항의 많은 부분에 칼빈주의 개혁파 사상이 삽입되었다.

             

            에드워드 6세가 일찍 죽자 뒤이어 메리 튜더(메리 1)가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녀는 어머니 캐서린이 이혼당한 것에 한을 품고 있었다. 이혼을 허락한 영국 개신교 지도자들, 특히 켄터베리 주교 토머스 크랜머를 미워하였다.

             

            메리 튜더의 등극은 피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가톨릭을 다시 국교로 삼고,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긴밀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런 차원에서 스페인 왕 필립 2(스페인 명, 펠리페 2)와 결혼도 하였다. 그녀의 통치 기간에 300여 명의 개신교도들이 화형을 당했다.

             

            메리 튜더가 죽자 왕위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볼린의 딸 엘리자베스(엘리자베스 1)에게 돌아갔다.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종교를 다시 개신교로 바꾸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메리 튜더가 사망할 때 영국의 왕위 계승권은 엘리자베스 외에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에게도 있었다는 점이다.

             

            메리 스튜어트는 헨리 7세의 딸인 마가렛의 손녀가 아닌가! 그런데 메리 스튜어트의 종교가 가톨릭이었으므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왕권 신장을 위해서라도 스코틀랜드 왕정의 종교와 반대되는 개신교를 택함이 유리했던 것이다.

             

            아울러 아버지인 헨리 8세도 그의 통치 말기에 개신교에 기울어졌고, 에드워드 6세도 개신교도였으며, 그녀의 어머니인 앤 볼린도 개신교도였으므로 엘리자베스가 개신교에 접근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영국내의 종교 전쟁을 원치 않았으므로 개신교도나 가톨릭교도들 모두에게 반감을 사지 않도록 처신하는 방법, 곧 헨리 8세가 실시했던 교회 형식은 가톨릭, 교리는 개신교를 채택했다. 이 방법은 개혁주의 청교도들이나 독실한 가톨릭교도들 모두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다.

             

            (2) 스코틀랜드 종교 상황

             

            스코틀랜드 교회는 아일랜드의 켈트 선교(Celtic Missions)에 힘입어 수립된 것으로 보이며, 7세기에는 수도원들이 스코틀랜드의 영적, 지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2세기에 들어서면서 스코틀랜드의 가톨릭 교구가 영국 요크(York)로부터 독립되었고(1176), 15세기에는 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 교구가 메트로폴리탄 교구로 인정받았다(1472).

             

            수도사와 수녀들이 기거하는 종교 건물이 스코틀랜드 전역에 산재하였고, 선교 초기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켈트 수도원들은 대륙의 양식에 의해 밀려 나고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스코틀랜드 교회는 소수의 인물들을 빼고는 영적으로 뛰어난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당시의 종교 상황을 리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대부분의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은 그들이 국왕이나 귀족들의 자손들이었거나 혹은 국왕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임명된 자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성직자들의 높은 도덕적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성직자들의 최고위층에서도 고상한 미덕이란 찾아보기 힘들었다.

             

            [비튼 추기경]에게는 수도원장 시절에 이미 12녀가 있었으며, 추기경에 임명되기 이전에 아들 셋을 더 낳았고, 임명된 후에 네 아들을 더 가졌다. 다른 스코틀랜드의 고위 성직자들도 이에 못지않은 왕성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종교 개혁 당시 12명의 주교들이 사생아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왕이나 귀족들이 낳은 사생아로 보이는 많은 수도원장들에게 또한 자기들의 사생아들이 많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해 볼 때, 하위 성직자들이 청교도적 금욕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평 교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성직자들의 이러한 세속성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민중들, 특히 교육받은 이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활기에 찬 시민 계급들이나 뭔가 불안을 느끼고 있던 지주 계급들에게 지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제대로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무식했고, 교회 공동체의 운영은 개탄스러울 정도였다. 바로 이 시점에서 스코틀랜드에도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클리프의 개혁 사상에 동감을 표시한 영국 사제 레스비(James Resby)는 성경적 신앙을 주장하다가 1407년 스코틀랜드 퍼스(Perth)에서 화형 당했다. 선교사로 파송된 후스파 크라바르(Paul Crawar)1433년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고난을 당했다.

             

            카톨릭 교회는 종교 개혁 사상을 주장하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종교 재판관을 채용했고, 상당수의 롤라드파 사람(Lollard)들이 이 무서운 종교 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 1525년 루터파 교리를 전파하는 것을 법률로 금했다.

             

            이러한 종교 탄압에도 불구하고 개혁 사상의 불길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1520년 스코틀랜드의 롤라드 파인 니스벳(Murdock Nisbet)은 위클리프 신약성경을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고쳐 썼고(이 성경은 1901년에 가서야 출판되었다), 틴데일 영어 신약성경이 1526년 스코틀랜드에 들어왔다. 이후부터는 스코틀랜드에 개신교가 하나의 운동으로 부각되었다.

             

            이 운동에 좀 더 분명한 금을 그어준 사람은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의 계명성이라고 호칭되는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 1504?28)이었다.

             

            스코틀랜드 왕가의 후손이요 상위 귀족의 아들인 해밀턴은 프랑스의 파리와 루뱅에 유학하여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사상에 접한 후 귀국하여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해밀턴은 대주교 제임스 비튼(James Beaton)으로부터 이단 혐의로 출두 명령을 받았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을 예측한 해밀턴은 마르부르크(Marburg)로 탈주하여 프랑수아 랑베르(Francois Lambert) 등과 교제하면서 루터 파 신앙에 몰입하였다. 그는 루터파의 신앙에 관한 짤막한 논문”(Loci Communes)도 작성했는데, 이것은 후일 틴데일의 친구인 존 프리스(John Frith)에 의해 패트릭의 처소들(Patrick’s Places)로 번역되었다. 그는 루터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패트릭 해밀턴은 종교 개혁의 열정에 충일하여 순교를 각오하고 스코틀랜드로 다시 귀국하여 설교하기 시작했다. 킨카벨(Kincavel)에서 세인트앤드루스로 오라는 비튼의 출두 명령을 받고 그곳에 가자마자 체포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 네 살이었다.

             

            해밀턴의 순교는 스코틀랜드인들에게 가톨릭을 더욱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지식층은 물론이고 상인들과 광부들까지도 종교 개혁자들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가톨릭의 지도층은 계속 탄압과 박해를 하였다.

             

            1539년 제임스 비튼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 교회의 수장이 된 자는 그의 조카인 데이비드 비튼(David Beaton)이었다. 그는 교황청과 프랑스와 더욱 깊이 결속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악한 행적은 선하고 경건한 민요들”(Good and Godly Ballads) 속에서도 풍자적으로 나타난다.

             

            추기경이 되자 비튼은 한층 더 이단 박멸에 열심을 내었다. 1540년 비튼과 그의 추종자들은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을 제어할 법률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사적 종교 비밀 집회를 금하였다. 그러나 비밀 집회를 가진 개신교 모임(소위 사적 교회, Privy Kirks)은 지하 운동으로 존속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차에 비튼의 표적이 된 자는 조지 위샤트(George Wi- shart)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몬트로즈 아카데미(the Academy of Montrose)에서 헬라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위샤트는 1532년 루벵(Louvain)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으며, 영국과 스위스에 가서 대륙의 종교 개혁의 흐름을 맛보았다.

             

            그가 스위스에 있을 때 스위스 최초의 신앙 고백을 영어로 번역한 일도 있었다. 그는 신학적으로는 츠빙글리파에 속했다. 그가 영국의 케임브리지에 있는 코푸스 크리스티 대학(Corpus Christi College)에서 강의할 때 그의 학생 중 하나가 “[위샤트]는 키가 크고, 검은 구레나룻을 길렀으며, 단정하고 예의 바르며, 금욕적이고 독실하며, 박식하고 자애로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샤트는 스코틀랜드에 돌아와 몬트로즈, 던디, 아이셔 지역에서 병자 간호 및 설교 사역을 하면서 종교 개혁의 당위성을 외치고 있었다. 그가 하딩턴 지역에 가까운 이스트 로티안(East Lothian)을 지날 때 그곳의 지배자 보스웰(Bothwell) 백작은 위샤트를 체포하여 비튼 추기경에게 넘겨주었다. 154631일 위샤트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해밀턴의 길을 따랐다. 순교의 역사에 동참한 것이다.

             

            위샤트가 체포당하기 직전 양날이 선 검을 들고 위샤트를 호위하던 건장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그는 본장의 주인공인 존 낙스이다.

             

            위샤트는 종교 개혁의 일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다른 날을 기다리라, 희생은 나 하나로 족하다며 낙스를 떠나보냈다.

             

            위샤트가 죽자 시민들 가운데서 추기경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특히 귀족들 중 상당수가 개신교에 동정적이었다. 귀족들은, 가톨릭 성직자들이 국왕과 결탁하여 귀족들의 국정 참여 권한을 축소시키고 재산(토지 등)을 몰수하려 한다는 계획을 알았을 때 분노하였다.

             

            1546529일 무장한 귀족 몇 명이 잠들어 있는 추기경을 깨워 칼을 들이댔다. 그 중 개신교도로 알려진 한 사람이 추기경에게 위샤트 살해를 추궁하면서 우리는 복수하라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추기경을 두 번 찔렀다. 다음날 그들은 추기경의 시체를 창문 밖에 걸었다.

             

            이 사건은 사실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공포, 분노, 증오가 뒤섞인 복합적 이해관계에 기인한 것이다. 곧 귀족들과 시민들은 수비대를 만들어 세인트앤드루스 성을 함락시키고 가톨릭과 왕실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낙스는 이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수비대의 설교를 담당하게 되었다.

             

            (3) 존 낙스의 등장과 활동

             

            존 낙스는 1513년경 에딘버러(Edinburgh)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딩톤(Haddington)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 앤드류(St. Andrews) 대학에서 교육받고, 이어 신부로 서품되었다. 30세쯤에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에 설복당했고, 그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죠지 위샤트(George Wishart)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위샤트는 복음 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였고, 1546년 성 앤드류의 화형장에서 순교했던 인물이다.

             

            향후 13년 동안 낙스는 여러 곳을 여행했다. 그는 실패로 끝나 버린 앤드류 성 반란에 참여하였다가, 노예가 되어 프랑스의 노예선에서 노를 젓는 일에 19개월이나 보내야 했다. 그는 에드워드(Edward) 6세 치하 말기에 영국으로 오게 되었고, 크랜머의 1552년판 '공중기도서'(Book of Commom prayer)를 준비하는 최종 단계에 참여하여 일익을 담당했다.

             

            1553년 메리 여왕이 즉위하자 그는 독일로 건너갔다. 한동안 그는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있는 영국의 망명자 교회의 목사로 있었는데, 거기서 그는 논쟁에 휘말려들게 되었다. 낙스와 여타의 사람들이 보다 철저한 개혁파 예배 의식을 소개함으로써 '공중 기도서'를 이탈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의 여러 다른 도시에서 망명온 보다 보수적인 자들은 이를 좋게 여기지 않았고, 낙스를 즉시 몰아내려고 리차드 콕스(Richard Cox)와 그 이외 사람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은 낙스에게 항의하며 "그대들은 영국 교회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낙스는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을 지니라고 말씀하실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이런 충돌은 엘리자베드 1세 치세시 '공중 기도서'를 견지하기를 원하는 자들과 대륙의 개혁파 교회들이 지니는 노선에 서서 보다 충실한 종교개혁을 요구한 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청교도(Puritan) 논쟁의 전조가 되었다. 콕스는 사람들에게 (낙스의 급진적인 교회 정치관을 환기시킴으로써) 프랑크푸르트로부터 낙스를 추방시켜야 한다고 조종하자, 그는 제네바로 건너갔다.

             

            그는 칼빈의 제네바를 열렬히 찬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 곳에 머물면서 그의 유명한 '괴물같은 여인들의 통치에 대한 제1차 나팔소리'(First Blast of the Trumpet against the Monstrous Regiment of women, 1558)를 저술했다. 이러한 여성 통치자에 대한 비난은 영국의 여왕 메리 튜더(Mary Tudor)에게 향해진 것이었다. 1558년에 엘리자베드가 즉위했고 그녀는 낙스의 그런 저서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1559,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다시 돌아왔고 그 곳에서 교회 개혁을 도왔다.

             

            (4) 낙스와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

             

            메리 스튜어트가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로 돌아올 때까지 국사는 잠시 12명으로 구성된 추밀원에서 이루어지다가 156083일 의회가 소집됨으로 정치 주도권은 의회로 넘어갔다.

             

            낙스는 즉시 종교 개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의회는 낙스와 그의 동료 목사들에게 신앙 고백서의 작성을 요구했다. 낙스는 4일 만에 5명의 동료 존들(John Spottiswood, John Row, John Douglas, John Winram, John Willock)과 같이 신앙 고백서를 작성, 의회의 상임위원회에 제출했다. 상임위원회는 이 고백서를 인준하여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그리고 본회의는 동년 817일에 이를 승인하였다.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는 개혁주의자들의 교리, 즉 칼빈의 요리 문답과 1559년의 프랑스 신앙 고백, 폴란드인으로서 칼빈주의자인 존 라스코(John Lasco, 14991560)와 스위스 종교 개혁자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75)의 글들을 참조한 것이 역력하다. 이 신앙 고백은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 나오기까지 스코틀랜드 교회의 교리적 표준이 되었다.

             

            서문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가 고백해 오면서 수치와 위협을 받던 교리의 모든 것들을 만천하에 공포하기를 오랫동안 갈망해 왔습니다.”로 시작되어, “우리는 끝날까지 이 신앙 고백에 머물러 있기를 단호하게 천명합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샤프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고백서는 진리에 대한 진술들이 무오한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 안에서 수정과 개선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20항은 교회 회의들의 무오성에 반대하면서 어떤 회의들은 분명히 과오를 범하였으며, 그것도 매우 중대한 내용에서의 과오였다고 지적하였다.

             

            낙스는 1546년 트렌트 종교 회의(The Council of Trent)가 취한 가톨릭의 구원관에 기겁하였다. 트렌트 종교 회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교회가 베푸는 성례전에 참여하여 신과 인간이 협동함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미사의 참석은 가톨릭의 구원관에서는 필수적이다. 가톨릭 신학에서 미사는 구원 신비의 중심이며,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이며, 아울러 사실적이고 현재적 희생이었다.”

             

            낙스는 인간의 방법이 배제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으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었기에 미사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 제8항은 다음과 같이 담대히 선언한다.

             

            [동일하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직 은총으로 이 세계의 기초가 세워지기 전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요, 형제요, 목자요, 우리 영혼의 위대한 감독으로 지명하셨다.]

             

            교회 관에 대해서는 제18장에서 교회의 3대 요소, 곧 말씀의 참된 선포, 올바른 성례전의 집행 그리고 정당한 교회 훈련(권징)을 언급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는 정직하고 곧으며 남자다운 문체로 기록되었으되, 불평이나 아첨이 없고, 논리적 정확성과 학문적 수준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온종일 진리를 전파한 후 피곤에 지친 사람이 밤에 조용히 앉아 자기가 가르친 내용을 생각해 보며 마음에서 새 힘을 되찾는 것과 같다.”

             

            (5) 낙스와 장로교회

             

            낙스가 주축이 되어 작성한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 안에는 칼빈주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지만 교회 정치에 있어서 장로교회로 한다는 명문 규정이 없다.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낙스의 생존시 감독(Superintendent)이라는 직책이 엄연히 존재한 점이다. 그렇다면 낙스는 영국 성공회와 같은 감독교회(Episcopal Church)를 스코틀랜드에 창설했는가 하는 것이 규명되어야 한다.

             

            에든버러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였던 도널드슨(G. Donaldson)은 낙스가 개혁한 스코틀랜드 교회는 처음부터 감독제였으나, 그의 후계자 앤드루 멜빌(Andrew Melville, 15451622)이 제네바에서 돌아와 제2의 개혁을 일으킴으로써 장로회 체제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도널드슨이 무엇에 근거하여 이렇게 말하는가?

             

            첫째, 낙스는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 영국의 궁정 목사로 시무할 때 이미 감독교회 정치의 영향을 받았다.

             

            둘째, 스코틀랜드는 종교 개혁 이전부터 개혁파 교회보다는 루터파 교회의 영향 하에 있었다.

             

            셋째, 1560년 낙스가 작성한 제1치리서(The First Book of Discipline)에 의하면 목사의 임명이 회중에 의한 선거와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에 의해 시행된 시험과 공적 임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이란 상당한 권한이 부여된 감독을 의미한다.

             

            넷째, 감독은 1년에 2회 이상 담당 관할 구역을 시찰하고, 목사의 불경건한 삶이 발견될 경우 대회를 소집하여 해당 목사를 해임시킬 뿐 아니라, 감독구에 있는 주요 도시에 감독 재판소를 설치하여, 감독의 임명 또는 교인들의 이혼 문제를 다루는 사법 재판관 기능을 했다.

             

            다섯째, 연금 수령에 있어서 감독은 500내지 700파운드를 받았는데 반해 일반 목사들은 100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차등 지불은 감독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도널드슨의 학설은 내픈과 리드에 의해 반박되었다. 특히 리드는 낙스의 저술을 세세히 분석하여 낙스가 성직자의 주 임무를 말씀의 선포로 보았던 점 그리고 성직자는 성공회와 같이 교회 기구나 세속 권력의 관여가 아닌 오직 회중의 동의에 의해서 임명된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1치리서 제5항 제1조에서 제3조에 기록된 감독이라는 용어는 낙스의 진의가 아니었다. 낙스가 처음 작성한 원본에는 감독이란 용어가 빠졌으나 후에 그의 동료 윌록과 스포티스우드가 수정 작업에 참여하면서 감독이라는 말을 삽입했다.

             

            이 감독이라는 명칭은 개혁을 추진하던 당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마련된 행정 조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스코틀랜드의 감독직은 영구 직이 아닌 한정 직이었고(처음에는 3, 1570년도부터는 1년으로 단축되었음), 자기 관할 구역으로부터 비판과 치리를 받는 입장이며, 무엇보다도 영국 성공회가 인정하지 않는 장로 제도를 스코틀랜드 개혁교회는 처음부터 인정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감독직은 도널드슨이 생각한 것처럼, 영국 교회의 치리자의 입장이 아닌 지 교회를 돌보는 방문자 또는 순회 전도자로 해석되어야 한다.

             

            1566년 스코틀랜드 총회는 제2헬베틱 신앙 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을 채택하여 목사 직위상의 우월성을 부정하였다.

             

            여기에서 낙스는 영국 망명 생활에서 로체스터 감독직을 제안 받았으나 감독 정치는 성경이 금한다고 믿었기에 정중히 사양한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따라서 낙스는 처음부터 스코틀랜드에 장로교회를 조직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못해 장로교회의 씨앗만 뿌린 것이다.

             

            1560년 당시 비록 개신교 세력이 절대 우위를 차지했지만, 카톨릭교회의 직분 자들(대주교, 주교, 수도원장 등)이 계속 교회에 출석했고, 그들은 직분에 따른 재산도 그대로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알아야 한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가톨릭 성직자 및 그들의 재산 관리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그들과 타협해야 했던 것이다.

             

            1572년 추밀원과 개혁교회 지도자들이 합동하여 리스 협약(Concordat of Leith)을 작성했다. 이 협약에서 가톨릭 측 인사들도 개혁교회에서 임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개혁교회의 일원이 되면 개혁교회의 총회에 복종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낙스가 뿌린 장로교회의 씨앗은 그의 후계자 앤드루 멜빌 시대에 와서 꽃을 피웠다.

             

            괴물 같은 여인들의 통치에 대한 제2차 낙스의 항거는 1568년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가 영국으로 쫓겨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그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을 관철시켰다. 그의 주저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Religion within the Realm of Scotland)로서, 1644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책이었다. 낙스는 1572년에 세상을 떠났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을 위하여 헌신했던 최초의 청교도 죤 낙스(John Knox)는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 갖는 영적 권세에 대한 생생한 일화를 남겼다.

            당시 이런 사람들이 설교한 내용은 대부분의 헌신적인 필사자들에 의하여 기록되고 잘 보존되었는데, 그는 망명과 추격 속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기에 설교문도 단 두 편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서 설교할 때의 일이었다. 종교개혁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며 카톨릭과 개혁 신앙 사이를 오고 가던 메리 여왕 앞에서 그는 설교하였다. 여왕은 자주 얼굴이 하얗게 될 정도로 깊은 두려움에 질려서 부축을 받으며 예배가 끝난 교회당을 걸어 나오곤 했다고 한다. 여왕은 그를 반역죄로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지만, 막상 그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며 자신도 설교자인 존 낙스에게 얼마나 잘 보이고 싶어 했는지를 하소연하기도 하였다.

             

            1571, 그러니까 죤 낙스가 죽기 1년 전의 일이다. 그는 이미 중풍에 걸려 있었다. 세인트 안드류(St. Andrew) 지방에 있는 낙스의 한 생도로서 그의 설교를 빼놓지 않고 들었던 제임즈 멜빌(James Melville)은 후일 자신의 일기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건을 술회하였다.

             

            바로 그해에 존 낙스가 다니엘서를 강해할 때의 일이었다. 멜빌은 그의 설교를 받아 적기 위하여 펜과 노트를 준비하였다. 그는 반 시간 가량 온화하게 본문을 해설해 나갔다. 그러나 해설이 끝나고 그 내용을 적용하는 부분에 들어가면서 설교는 거룩한 열정에 불탔고 설교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 멜빌은 더 이상 그 설교를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설교를 들으며 필사자의 온 몸이 두려움과 신적인 능력의 영향으로 그를 받아 적을 수 없으리 만치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6) 낙스 이후의 스코틀랜드

             

            낙스는 15721124일 사망하였다.

             

            낙스가 죽자 어린 왕 제임스 6세의 섭정이었던 모튼(Morton) 백작은 성공회식 감독주의를 소개하려 하였다. 모튼은 존 더글러스를 세인트앤드루스 대주교로 임명하고, 대주교로부터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국가가 강력히 통제하는 성공회식 주교들이 임직되기 시작하였다. 이들 고위 성직자들은 툴칸(tulchan)의 감독들로 불렸는데, 툴칸이란 게일어(Gaelic)암소가 우유를 내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속을 채운 송아지 가죽(a stuffed calfskin)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도의 시기에 칼빈의 제자이며 낙스의 후계자로 앤드루 멜빌이 등장한다. 멜빌은 프랑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제네바에서 칼빈의 도움을 받아 제네바 아카데미의 헬라어 강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시민법을 가르쳤다. 1574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글래스고 대학교의 총장에, 1580년에는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총장에 부임하였다.

             

            그는 제네바 식 교육 행정, 교과 과정, 교수법을 스코틀랜드에 소개하여 대학 교육 제도를 크게 개선하였을 뿐 아니라, 낙스의 제1치리서를 1578년 개정하여 제2치리서(The Second Book of Discipline)를 만들었다.

             

            2치리서는 감독 정치를 정면으로 부정하여 칼빈처럼 교회 직분을 장로와 집사로만 나누었다. 2치리서는 1578년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장로교 교육을 받은 제임스 6세가 영국에서 제임스 1세로 즉위하자마자 영국의 청교도는 물론 스코틀랜드 장로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제임스도 그의 어머니가 지지해 온 왕권 신수설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대의 정치는 왕권 신수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연히 마찰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멜빌은 제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전에 여러 번 말씀드린 것과 같이 지금도 말씀드립니다. 스코틀랜드에는 두 개의 왕국이 있고, 두 명의 왕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머리인 제임스 왕과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임스 왕은 그리스도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왕도, 주도, 머리도 아니고, 하나의 지체일 뿐입니다.

             

            우리는 귀하를 왕으로 섬기며, 귀하에게 합당한 예의로 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교회의 머리가 아닙니다.”

             

            제임스는 멜빌을 런던탑에 4년 동안 가두었다가 영국에서 추방한다. 멜빌은 프랑스 세단(Sedan)에서 신학생들을 양육하다가 1622년 사망했다.

             

            제임스의 사망(1625) 후 찰스 1(재위 162549)가 통치하면서 스코틀랜드 교회는 더 힘든 수난을 맞는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 교회에 성공회주의를 강요하고 1637723일 장로교회를 폐지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이 처분에 봉기하여 장로교회 정치를 사수할 것을 결의했다.

             

            이때에 알렉산더 헨더슨(Alexander Henderson)과 사무엘 러더퍼드(Samuel Rutherford)가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두 사람은 1643년 영국 런던에서 모인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 감독관으로 참석하여 영향을 끼쳤다.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신학교수인 러더퍼드는 낙스 식 계약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통치자는 하나님과 백성과의 이중 계약 아래 있다. 백성이 계약을 깰 때 법에 의하여 제재를 받는 것과 같이, 통치자도 백성과의 계약을 깰 때 법적 제재를받아야 한다. 결국 찰스 1세는 영국 청교도와 스코틀랜드인들의 연합 저항에 부딪혀 설 자리를 잃고, 16491월 영국 의회 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한다.

             

            올리버 크롬웰의 무단 정치가 끝나자 스코틀랜드인들은 네덜란드에 피신해 있는 찰스 2(재위 166085)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영국 장로교도들도 찰스 2세가 장로교인들을 우대할 것으로 믿고 영국왕으로 세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찰스 2세는 이러한 기대를 모두 배반하고 장로교회의 신앙을 고백하는 수많은 계약파 성도들을 무참히 고문하고 살해하였다.

             

            찰스 2세의 사후, 그의 동생인 제임스 2세가 왕이 되었다. 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가톨릭 화하려 했다. 그의 정책에 따라 나타난 저항은 신속했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가 남편 윌리엄(William of Orange)과 같이 영국에 입성하였다.

             

            네덜란드인 윌리엄은 이미 개혁주의자였다. 메리는 종교 관용령을 선포했다. 1690년 스코틀랜드 의회는 감독주의를 폐지하고 장로 정치를 유일한 그리스도 교회의 정부 형태로 승인했다.

             

            B. 초기 퓨리탄

            2. 에드워드 데링 (Edward Dering, 1540 - 1576)

             

            에드워드 데링은 켄트(Kent)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572년에 앤 로크(Anne Locke)와 결혼했다. 신부는 존 녹스(John Knox)의 설교를 흠모하였고 제네바에서 살기도 했던 부유한 과부였다. 청교도 학자인 패트릭 콜린슨(Patrick Collinson)은 데링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청교도의 원형이다. 그의 생애와 사역은 그의 뒤를 따를 17세기 후배들에게 삶의 모델이 된다. 그는 청교도 정신의 긍정적인 자질들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훌륭하게 예시한다.

             

            데링은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트 대학(Christ's College)에서 공부하였다. 이때는 메리 여왕의 통치 초반기였는데 케임브리지가 청교도의 모판이었다. 데링이 동역 자들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그는 복음주의 신앙에 불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주된 신학적 관심은 죄로부터의 구원이었다. 즉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신앙을 통해서 대 심판 날에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신자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보장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데링은 당시의 가장 우수한 헬라어 학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1564년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했을 때 헬라어 연설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대주교와 친분이 있어 중요한 행사에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1570년은 그의 경력에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는 국교회의 사역 수준이 너무도 저질인 것에 크게 분개하였다. 그의 친구들에 의하면 데링은 이러한 감정을 그의 설교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1570225일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채플에서 설교했는데 여왕을 대놓고 면박하였다. 그는 여왕이 무가치한 교회 사역자들을 제거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 한다고 꾸짖었다. 그는 그런 자들을 '놀고 먹는 자, 사기꾼, 기회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런 목사들은 '눈 먼 길잡이며 짖지 않는 개들'이라고 혹평하였다. 데링의 질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왕의 면전에서 책임 추궁을 하였다. "이러한 우상 숭배가 자행되고 있는데도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방관만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휫기프트(Whitgift, 나중에 대주교로 승격됨)라는 사람은 여왕 앞에서 설교할 때가 되면 이를 여왕에게 잘보이려는 기회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데링은 휫기프트와는 달리 여왕의 큰 권력에는 그에 비례하는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키길 주저하지 않았고 그런 지적으로 받게 될 결과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마 그는 자신이 결핵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야심이나 자신의 유익을 따르는 유혹에서 자유로웠을지 모른다. 사실상 그는 결핵으로 일찍 죽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설교치고 데링이 여왕의 책임에 대해서 견책한 담대한 설교보다 더 많이 인쇄된 메시지가 없다.

             

            목회자들의 한심한 영적 상태를 노출시킨 이러한 용기 있는 설교들은 캔터베리의 대주교인 파커(Parker)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신이었던 세실(Cecil)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데링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데링은 런던의 감독인 샌디즈(Sandys)의 신임을 받아 런던의 세인트 폴(St. Paul) 대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이곳에서 데링은 심도 깊은 감동적인 히브리서 강해 시리즈로 당대의 최대 설교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570-2년까지는 카트라이트, 필드, 윌콕스 등의 글로 인해 야기된 교회 정치에 관한 논쟁이 극심하였다. 데링은 소환되어 이들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를 받았다. 데링은 퍼킨스와는 달리 조직적인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교회 정치에 대해서 그다지 투명한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대적자들은 데링이 누리는 특권과 직분을 박탈하려고 결단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관들과 친분이 두텁고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어 제거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입을 막으려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데링을 침묵시킬 뿐만 아니라 강의도 못하게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것마저 성공하지 못하였다. 여왕의 대리자들 사이에서 데링을 고발할 죄목을 작성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의 합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데링의 사역에서 편지 쓰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는 높은 신분과 영향력이 큰 귀부인들의 영적 상담을 위한 편지들도 썼다. 청교도 사역을 가장 열심히 지원한 사람들은 흔히 여성들이었는데 이것은 청교도 운동의 한 특징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종교개혁에 깊이 헌신된 자들이었으나 그들의 남편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였다. 데링의 서신 수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허니우드(Honywood)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구원의 확신 문제로 몹시 시달렸다.

             

            그녀는 한때 존 폭스에게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유리잔처럼 확실히 정죄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잔을 마룻바닥에 내던졌다. 놀랍게도 그 유리잔은 깨어지지 않고 그대로 되튕겨졌다고 한다!

             

            데링은 36세로 죽을 때 동료 사역자들이 둘러서서 그의 임종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데링의 마지막 말들을 기록하였다. 그는 청교도 운동에 귀중한 공헌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3. 존 도드 (John Dod, 1550 - 1645)

             

            존 도드는 체샤이어(Cheshire)에서 태어났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지저스 대학(Jesus College)에서 공부하였다. 도드는 본성에 따른 죄의 상태에 빠져 살던 어느 날 대학 관리인에게 낼 돈을 바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화를 벌컥 내다가 고열로 인해 거의 쓰러졌다. 이때 '그의 죄들이 무장 군인처럼 도드를 덥치면서 그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의 회심은 참된 것이었으며 새 생명이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대학 관리인은 존 도드에게서 돈을 지불받았음을 기억했다고 한다.

             

            도드는 인기 있는 설교가여서 부르는 곳이 많았다. 그는 옥스퍼드셔(Oxfordshire)에서 20년 동안 목회하였다. 그의 설교는 수백 명의 영혼들을 회심케 하는 도구로 쓰여졌다. 그는 4명의 다른 설교자들과 함께 밴 버리(Banbury)에서 공개 강해 실을 세우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는 힐더샘처럼 1604년부터 계속 심한 박해를 받았다.

             

            윌리엄 할러(William Haller)'청교도의 상승'(The Rise of Puritanism)이라는 저서에서 도드를 영적 동지애의 대표적인 경건한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잉글랜드인의 유머를 가졌고 재치 있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은사가 있었다." 카트라이트(Cartwright)는 도드에 대해서 "목회 적 기능 면에서 그는 어떤 사람의 수준에서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하였다.

             

            다음은 그의 한 제자의 말이다. "그의 말은 모두 하나의 설교였다. 그의 말은 마치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맛들인 음식과 같았다. 그는 재치와 흥미로 내용 있는 메시지를 골고루 섞어 전하였다. 만약 그의 말들을 모두 수집했다면 헬라어로 된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혹은 라틴어로 된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또한 이런 이야기도 있다.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오면 대화의 주제가 항상 도드의 메시지가 되었다. 도드는 일반 서민들이 복음의 신비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어휘와 언어 스타일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큰 효과가 있었다."

             

            도드의 말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소개한다. "나는 준비하지 않은 새 설교를 하기보다는 준비된 옛 설교를 열 번이라도 반복하겠다."

             

            존 도드는 주일에는 두 번, 주중에는 한 번 설교하였다. 설교가 끝날 때마다 그의 아내는 목사관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환영하였다. 그는 여러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였다. 그중에는 집사들처럼 그를 도운 6명의 과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아내가 음식이 부족할 것을 걱정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하였다. "좋은 벗들이 없는 것보다 고기가 없는 것이 더 낫소. 이 집은 추워도 무엇인가 줄 것이 있소." 도드 자신은 조금만 먹고 손님들에게는 많이 권하였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할말이 많았다. 그가 피곤해지면 맥주를 섞은 작은 포도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밤이 늦도록 말씀을 나누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받으려고 도드를 찾았다. 잘 알려진 청교도들이었던 좁 스록모톤(Job Throckmorton)과 존 프레스톤(John Preston)은 자신들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는 도드의 지역으로 이사하였다. 가까이에서 도드의 영적 자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좁 스록모톤은 청교도 목사로서 의외로 자신의 구원의 확신에 관한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도드에게 물었다. "이 세상을 떠나가면서 아무런 위로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도드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가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 말은 스록모톤 목사의 시달린 영혼에게 위로를 주었다. 그는 곧 죽었지만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도드는 95세까지 장수하였다. 그래서 그가 목회 사역뿐만 아니라 잉글랜드를 떠나 새 생활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거쳐 온 긴 인생살이의 여러 경험들과 성경 말씀을 토대로 지혜로운 상담을 해 줄 수 있었다.

             

            4. 윌리엄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 - 1602)

             

            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4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커다란 공헌을 하였던 원조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왓톤(warton)에서 태어났으며, 케임브리지 그리스도 대학(Christ's College, Cambridge)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어렸을 때 학자적인 기질이 엿보였으나 그의 성격은 거칠고 험하였다. 그러나 그가 개종한 후에는 전형적인 칼빈주의자가 되었으며 영적 생활의 욕구가 강하였다. 퍼킨스는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첫 목회는 케임브리지 감옥의 죄수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그가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에 대해서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죄수와 만나게 되었다. 퍼킨스는 그 청년의 곁에서 무릎을 꿇고, "형제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 주고 싶소. 그리스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당신도 죄를 용서함 받는 체험을 갖고 구원을 받으십시요!"라고 눈물로서 간곡히 호소하였다. 이 청년 죄수는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그의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렸다. 그 청년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이 임하기를 바랬다.

             

            퍼킨스는 학창시절에 예정론에 대해서, 냉담하고 인정이 없는 신학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옥전도를 통해서 예정론을 확고히 믿게 되었다. 모든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믿고 영접할 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쳤다.

             

            퍼킨스의 예정과 파멸을 다룬 금사슬 이론(Golden Chain)은 청교도 신학과 설교에 대한 근본적인 교리였고 그것이 오늘의 개혁주의 교리로 나타났다. 퍼킨스의 종말론에 대한 분석과 조직은 놀랄만하며 특별히 택함 받은 성도들의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역 관계를 명백히 하였다. 그는 믿음이란 죄인들의 자유의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에 대한 결과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는 성화(聖化)의 결과이며 완전한 순종에 이르게 한다고 가르쳤다.

             

            금 사슬 이론의 흥미 있는 관점은 종교적인 열광자들의 참회는 단지 일시적이며 영원성이 없다고 하였다. 퍼킨스는 구원은 세례나, 신앙고백, 교회의식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설교하였다. 그리고 성도들의 진정한 인내와 순종과 선행은 구원의 결과라고 하였다. 퍼킨스는 청중들에게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매우 조심하였다.

             

            퍼킨스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행한 구원론에 대한 설교는 청교도 운동이 17세기에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위대한 신학자로서 퍼킨스는 케임브리지의 그리스도 대학의 연구원이자 성 앤드류 대학의 교수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의 설교는 명확하고 실제적이며, 강한 영적 힘이 있었다. 율법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포함된 설교였지만, 그의 설교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가 불안한 인간의 양심을 다루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사자성 같은 웅변을 토하였던 퍼킨스는 영국에서도 특이한 청교도주의 자였다.

             

            윌리암 에임즈(William Ames)같은 청교도 저술가는 불안한 인간 영혼에 대한 의구심과 공포를 다루는데 뛰어 났던 후대 청교도 저술가였다. 그는 처음에 그러한 주제에 대한 퍼킨스의 설교를 듣고서 목사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 받았다.

             

            이들은 퍼킨스의 설명적인 설교와 경건한 삶을 영위했던 철저하고도 전형적인 청교도 기준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 이런 영향에 의해 청교도의 젊은 세대는 기적같이 쓰임 받은 퍼킨스에 의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향을 받았다.

             

            퍼킨스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에 관한 논문을 주로 썼고, 그의 갈라디아서, 마태복음서, 히브리서의 강해설교도 부분적으로 출판되었다. 양심의 사례(Cases of Conscience)는 그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작들은 라틴어, 불어, 화란어, 스페인어로 거의 번역 출판되었으며 퍼킨스의 사역이라는 3권의 책에 그의 논문들이 모두 담겨져 있다.

             

            윌리엄 퍼킨스는 케임브리지에서 사역했는데 놀라운 성과가 있었다. 그는 청교도 동지들의 특징인 영적 자질과 행정적 재질이 겸비된 사람이었다. 그는 강단에서도 특출하였고 펜으로도 많은 글을 써서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를 바쁘게 하였다. 그는 자기 시대의 다른 어떤 목회자들보다 더 많은 저술을 했는데 후속 세대의 책꽂이에도 그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처음으로 그는 설교를 주제로 프라퍼싸잉의 기법(The Art of Prophesying)이라는 설교학 저술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퍼킨스의 설교는 적용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이것은 청교도들의 특징이었다. 그는 설교를 준비할 때 청중의 필요를 세세히 고려하였다. 그의 글들은 질과 양에 있어 당시의 다른 모든 청교도들을 능가한다.

             

            윌리엄 퍼킨스는 상아탑의 학자가 아니었다. 예로써 그는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돕기 위해서 옥중 사역 허가를 받고 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물론 그는 세인트 앤드루스(St. Andrew's)와 같은 곳에서도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온 대규모의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가 모두 율법이고 동시에 모두 복음이라고 평하였다. 말하자면 죄의 수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모두 율법이었고,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전적인 용서가 거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모두 복음이었다. 그의 사역은 죄인들로 하여금 영벌의 실체를 보게 해서 영혼이 깨어나게 하는 각성 사역이었다. 퍼킨스는 커뮤니케이션에 남다른 은사가 있어 '저주'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것으로도 죄인들이 떨었다고 한다.

             

            퍼킨스는 노동을 강조하면서도 레크리에이션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레크리에이션 사상은 노동 중심적이어서, 모든 유희를 소명을 위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곧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논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모든 레크리에이션은 일상적인 것들을 사용하지만, 어떤 면에서 제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레크리에이션은, 첫째, 거룩한 일들 곧 하나님의 말씀, 성례, 기도 또는 다른 신앙의 행위 등이 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둘째, 인간의 죄나 허물을 구성하는 것이 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셋째, 하나님의 심판이나 인간의 죄에 대한 벌을 그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레크리에이션과 관련된 경기에는 재치나 힘을 겨루는 것, 모험적인 것, 그리고 이 양자가 혼합된 것이 있다. 재치나 힘을 겨루는 경기에는 활쏘기, 사격, 달리기, 레슬링, 펜싱, 음악 그리고 체스와 장기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게임들은 심신의 단련이 주요 목적이며, 권장할 만하고 흥미도 있다고 하였다. 모험적인 경기는 오직 모험만이 지배하는 것으로,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합당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첫째, 모험을 위한 게임은 단순히 운에 의지하며, 이렇게 운에 의지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행위로서 하나님을 주사위같이 결정권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경기는 레크리에이션이 아니고 공포나 슬픔과 같은 역겨운 감정을 유발하는 경기들이기 때문이다...셋째, 탐욕이 경기의 원인이어서 보통 돈을 걸고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세 번째 경기는 부분적으로 모험이, 부분적으로 재치가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모험으로 시작해서 재치로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이다. 이 경기는 모험에 의존함으로써 보완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기는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권장되지 않지만, 크게 규제되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경기를 할 때는 아주 절제하면서 즐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최소한도의 사행성과 최대한도의 평판을 지닌 레크리에이션을 선택해야" 하며,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야" 하고, "그 목적은 우리의 심신을 건전하게 하는 데 있어야 "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까지도 적당히 하고 절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퍼킨스는 우선 가정을 세우고, 그곳에서 올바로 훈련된 성도들이 사회에 나아가 자신의 소명을 따라 이웃과 하나님을 섬김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5. 존 로저스 (John Rogers, 1566 - 1636)

             

            에섹스 데드햄(Dedham, Essex)의 존 로저스는 청교도인 에섹스 웨더스필드의 리처드 로저스와 가까운 인척이었다. 리처드는 존 로저스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할 때 후원을 해 주었다. 그는 존 로저스가 세속적인 쾌락을 위해서 자기 책들을 팔아도 참아 주었다. 그런데 결국 존은 리처드 로저스를 너무도 실망시켜 리처드가 그를 포기하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리처드의 아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을 사정하였는데 이것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연상시킨다.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13:7-9). 리처드 로저스의 아내가 존 로저스에 대해 인내한 것은 보상 있는 일이었다. 존이 회심하게 되었고 나중에 청교도 설교자들 중에서 가장 능력 있는 설교자의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존 로저스에게 내린 설교의 은사는 너무도 커서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떨지 않고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많은 영혼들이 그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 그는 자기 시대에서 영혼을 일깨워주는 가장 훌륭한 설교자의 한 사람이었다. 브라운리그(Brownrigg) 감독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존 로저스는 몇 자 적지 않은 급히 쓴 노트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 감독들이 잘 준비된 음악 순서의 지원을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설교보다 훨씬 나은 말씀을 전할 수 있다!"

             

            멀리서도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교회에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해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잘 알려진 청교도 목사인 자일스 퍼민(Giles Firmin)은 자신이 존 로저스의 첫 마디를 듣고 회심케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어느 날 젊은이들이 존 로저스의 설교를 들으려고 막 문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 로저스가 그들을 보고 말하였다. "여기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들어왔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당신들에게 유익할 것이 없소.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자일스 퍼민은 이 첫 말에 당장 마음이 붙잡혀서 즉석에서 회심하였다.

             

            존 로저스의 설교 능력은 유명한 청교도인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의 체험에서 잘 예시되었다. 토마스 굿윈은 당시에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존 로저스의 설교를 듣고 속절없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이 책 청교도 설교자들의 설교 특징의 대중을 사로잡는 설교 항에서 예를 들은 대로였다.

             

            6. 리차드 십스 (Richard Sibbes, 1577 - 1635)

             

            리처드 십스는 케임브리지의 세인트 존스 대학(St. John's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에서 강의를 맡았는데 그의 설교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이중에는 나중에 미국의 뉴잉글랜드(New England)로 건너가서 유명한 지도자가 된 존 코튼(John Cotton)도 있었다.

             

            설교자와 교사로서 십스의 평판은 자자해서 런던의 그레이즈 인(Gray's Inn)에 정규적인 사역을 인도하게 되었다. 당시의 그레이즈 인은 지금도 그렇지만 법률 공부와 법무에 관해서 법조계의 중심부였다. 벤자민 브룩(Benjamin Brook)은 이렇게 말하였다. "해박한 법률가들 외에도 많은 귀족과 상류층이 일반 시민과 함께 십스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몰려들었다. 십스의 사역에서 받는 영적 유익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스는 청중의 머리와 가슴에 단단한 기초를 놓으려고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사생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고 목회자로서는 매우 훌륭한 목회를 하였다.

             

            1626년에 십스는 케임브리지의 세인트 캐서린 대학(St. Catherine's College)의 학장이 되었다. 그의 런던 교회사역 조건에 의하면 다른 성직을 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레이즈 인 교회의 부목이었고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중에 대학이 있는 케임브리지로 여행하는 일이 무리가 되지 않았다.

             

            캐서린 대학은 십스가 학장이 되었을 때 장기간의 침체를 겪고 있었다. 재정은 거의 바닥이었고 학생들도 몇 명밖에 없었다. 십스는 이러한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 캐서린 대학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로 일신시켰다.

             

            케임브리지에서 십스가 목회자를 훈련시킨 일의 영향은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ins)를 제외하고는 따를 자가 없었다. 십스는 퍼킨스가 사역했던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도 설교하였는데 그 영향은 런던의 그레이즈 인 교회에서의 사역 효과와 같은 것이었다.

             

            리처드 십스는 심령을 치유하는 의사였다. 그는 영혼의 갈등을 말씀으로 풀어 주면서 심령을 치유하는데 1세기 이후에 신앙 정서(The Religious Affections)라는 가장 유명한 저술을 한 조나단 에드워즈(Johathan Edwards, 1703-1758)의 사역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었다. 십스는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The Bruised Reed and The Smoking Flax), 돌아오는 탕자(The Returning Backslider), 영혼의 갈등(The Soul's Conflict)과 같은 대표작들을 남겼다. 십스는 가장 유명한 청교도의 한 사람이다. 그의 영향은 청교도 운동의 구석구석에 퍼졌다.

             

            C. 절정기 퓨리탄

            7. 존 밀턴(John Milton, 1608-74) : 합리적 청교도

             

            밀턴은 1608129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공증인과 사채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가진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밀턴은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국교도였고 상당한 수준의 작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 재질이 있었다. 성 바울 학교에서 밀턴은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부했고, 근대어 같은 부분은 가정 교사로부터 보충 수업을 받았다.

             

            그는 학문에 심취했고, 12세부터는 자정 전까지 책을 놓는 일이 없었다. 과도한 독서는 후일 실명의 원인이 되었다. 1626년 담임 교수와 충돌하여 1년 정학을 받은 일 외에는 큰 탈 없이 학문에 매진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크라이스 칼리지 문학사(1629), 문학 석사(1632) 학위를 취득하였다.

             

            밀턴은 학창 생활 7년 동안(162532) 라틴어로 운문을 쓰는 법과, 작품 속에서 자아를 표출하는 기술을 배웠다. 그의 첫 영시, “어떤 아기의 죽음에 대해”(On the Death of a fair Infant)는 엘리자베스 시대 풍으로 1628년 쓰여졌다.

             

            그가 21세의 생일 직후에 쓴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에”(On the Morning of Christ’s Nativity)는 혈기 왕성한 젊은 밀턴을 가둬 두고 신앙적 시를 통해 영성의 승화를 시도한 것같이 보인다(1629). 이 작품과 1628년에 쓴 방학에”(At a Vacation Exercise)에서 고전 문학과 르네상스 인문주의 그리고 기독교 사상에 두루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밀턴은 부모의 권유에 따라 성직자의 길을 택할까 생각해 보았으나 1630년경 마음을 바꾸었다. 영국 국교회의 제도에 들어가는 것을 노예 생활로 생각했으며, 한편으로는 시에 대한 헌신 때문에 성직을 포기한 성 싶다.

             

            6(163238) 동안 밀턴은 호튼(Horton)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철학, 고전 문학, 역사, 수학 및 음악 등 폭 넓은 교양 과목을 공부하였다. 자유사상을 통해 점잖고 관대한 예술 세계를 접하려는 젊은 밀턴의 야심이 엿보인다.

             

            1632년경 밀턴은 궁정 취향 가면극 아케이드(Arcades)1634년 또 다른 가면극 코머스(Comus)를 썼다. 코머스는 밀턴의 선악 사상을 최초로 극화시킨 작품이다. 1637년 모친 사망 후 밀턴은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이탈리아 예술가들과 지식층 인사들로부터 정중한 환대를 받았다(163839).

             

            나폴리에서 밀턴을 환영한 후작 만소(Giambattista Manso, Marquis of Villa)와 천문학자 갈릴레오와의 교분은 밀턴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밀턴이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영국 정세는 불안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는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재위 162549)가 국왕이었는데, 그는 왕권신수설 이론으로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통치했다. 찰스 1세는, 반 칼빈주의 자로 열열한 국교도인 윌리엄 로드(William Laud, 15731645)를 켄터베리 대감독으로 임명하여 비국교도들을 탄압하였다.

             

            당시 의회는 비국교도인 청교도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왕과 의회는 자주 충돌했고, 왕은 청교도들의 간섭을 싫어하여 11년 동안(162940) 의회를 소집하지 않았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에도 국교회 의식을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존 낙스 이래 장로교회 정치가 뿌리내려진 이곳 사람들은 찰스 1세의 강제 명령에 대항하여 영국을 공격하였다. 국왕은 군비 조달을 위해 할 수 없이 의회를 소집했고, 이 의회는 1640년에 시작하여 1660년에 막을 내렸다.

             

            이 질질 끈 영국 의회를 장기 의회라 부른다. 장기 의회 기간 중에 청교도들은 눈에 가시 같은 국교회 대감독 로드의 목을 요구했고(16451월 참수됨), 나중에는 왕정에 대항하여 청교도 혁명 전쟁으로 비화했으며(164249), 마지막으로는 올리버 크롬웰 장군에 의해 찰스 1세를 사형에 처하였다(16491).

             

            밀턴은 국교회의 사치스러운 의식, 대감독 로드의 전횡 그리고 국교회와 영국 왕실과의 정치적 타협에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제 청교도 세력의 사회 참여로 그의 불만을 해소할 기회가 왔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16397) 후 밀턴은 뜨거운 정열을 쏟으며 정치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1641년에 쓴 소논문 영국에 있어서의 개혁”(Of Reformation in England)에서 영국의 감독 제도와 주교들을 공격하였고, 1642년에 정리한 감독제에 반대하는 이유”(The Reason of Church Government Urged against Prelaty)에서는 이상적 교회 정치는 감독제가 아니라 사도 시대같이 민주적 단순성과 순수성을 보유한 장로 제도라고 조리 있게 설명하였다.

             

            16435월 밀턴은 연하인 메리 포웰(Mary Powell)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왕당파 지주의 딸이었으나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무사 태평한 여자라고 밀턴은 후에 토로하였다. 33세의 대학자와 무학의 소녀와의 결혼이 평탄할 리 없었다. 결혼 직후 그녀는 친정으로 돌아가 3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밀턴은 3(164345)에 걸쳐 그의 이혼론”(Doctrine and Discipline of Divorce)을 발표하였다. 부부간에 애정이 없는 경우에는 이혼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결혼은 애정과 우정으로 맺어진 능동적 관계이기 때문에 당시 유일한 이혼 사유인 간통보다 애정 없는 것이 더 큰 이혼 사유라고 정의했다.

             

            불행한 결혼은 1652년 포웰이 죽음으로 끝났다. 밀턴은 1656년에 캐더린 우드코크와 두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그녀도 1658년에 출산 직후 사망하였다. 1663년 밀턴은 젊고 상냥한 민셜(Elizabeth Minshull)과 결혼하였다.

             

            밀턴은 크롬웰의 공화정에 참여하여 정부 활동에 개입했으나 1660년 왕정이 복고되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렇다고 그가 정치적 사상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의 대 작품들인 실락원, 복락원, 투사 삼손은 모두 정치적 메시지로 가득 찬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밀턴은 1652년 완전히 실명하여 육체적 고통을 받았고, 왕정 복고 후에는 정신적 고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환난과 역경은 그를 대 서사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7. 존 번연(John Bunuan, 1628-88) : 청교도 순례자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혀지는 책 중의 하나가 존 번연(John Bunyan, 162888)의 천로 역정이다. 번연은 이 책에서 가장 평범하고 소박하면서도 적나라하게 우리 인간의 영성 체험을 제시한다.

            그가 사용한 언어는 엄청난 사유를 요구하는 철학 용어나 과학 용어가 아니다. 번연은 주위에서 흔히 보고, 느낄 수 있는 일상생활 언어를 꾸밈없이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이 언어 속에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역동적 힘이 있다. 참된 신자의 영혼 속에 부각되는 상승된 영적 희열이 있고, 왜곡된 믿음을 가진 위선자들에 대한 풍자적 책망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진리를 위해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가 있다.

             

            영국의 청교도 작가이자 설교자였던 존 번연은 기독교 문학의 고전이 된 기독교인의 일생을 그린 우화집 세계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천로역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은 종교개혁이 강조하는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된다)와 성경의 만인 이용을 설명한 기독교인의 생활에 관한 우화집이었다.

             

            베드퍼드의 벽촌에서 땜장이의 아들로 1628년 태어나,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었다. 겨우 읽기·쓰기만을 배운 그는 16세 때에 크롬웰의 의회군(議會軍) 수비대에 들어갔다. 1647년 의회군이 해산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두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활을 새롭게 하고 나쁜 습관을 버렸지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마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강조하는 내용을 읽고서 회심하였다. 그리고 베드포드에서 평신도 설교자로서 사역을 시작했다. 낮에는 냄비와 팬을 수선하고, 밤과 주말에는 영혼을 구령했다. 그의 능력 있는 설교로 인해 수많은 회심 자들이 생겼고, 또 강한 대적 자들도 나타났다. 그러던 중 찰스 2세가 복위하여 크롬웰이 통치하던 시기에 인정했던 종교의 자유를 취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1660년 존 번연은 허가(license) 없이 설교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설교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풀려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1672년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가 투옥되었던 기간에는 그의 아내가 만든 구두끈을 팔아 번 돈과 그의 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만 가족들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1665년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다시 투옥되었다.

             

            존 번연은 폐렴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1688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설교를 그치지 않았다.

             

            번연이 지은 60여권의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은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인데, 감옥에 면회 오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기 위해 쓰기 시작한 책으로 크리스쳔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오래 동안 사랑 받아 왔다.

             

            번연이 옥중에 수감되었던 일은 아마도 <천로역정>의 탄생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였는지도 모른다. 장차 망하게 될 죄악의 도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여 떠나는 한 순례자의 여로를 장엄한 서사시처럼 그려내고 있는 이 <천로역정>은 고뇌와 회심, 전도와 박해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로 이어지는 번연 자신의 고달픈 생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1678년 출판된 이 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영어권의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으며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신앙서적이 되었다. 천로역정은 1678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출판 첫 해만 10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오늘날까지 베스트셀러로 남아 있다.

             

            <천로역정>의 원제목은순례자(Pilgrim)의 여로(Progress)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 제임스 게일 선교사가 천로역정이라고 이름 하여 이 후 모든 번역본들이 이 제목을 취해왔다.

             

            9. 존 오웬 (John Owen, 1616-1683)

             

            죤 오웬은 '청교도의 왕자'라고 불린다. 맞는 말이다. 그의 전집(Works)은 건전한 가르침을 추구하는 자들이라면 제일 먼저 택해야 할 책들이다. 현재 그의 글들은25권으로 나와 있다. 그의 전집은 영어로 된 신학서의 최대 보고이다.

             

            오웬은 '청교도들의 다윗 왕'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우리가 그의 가르침을 전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당시의 도전과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책을 썼다. 그러나 그의 모든 글에는 힘과 일관된 사상이 있고 항상 성경의 권위에 충실하다. 오웬의 가르침의 균형과 예리한 통찰에 있어 맞설 자가 없다는 것은 여러 실례로 증명될 수 있다.

             

            예로써 성령의 인격과 사역(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Works, vol. 3), 그리스도의 영광(The Glory of Christ), 죄의 억제(The Mortification of sin, vol.6) 등이다. 그의 양심의 자유(Liberty of Conscience, vol13)는 당시처럼 오늘날에도 적실성이 있는 저서이다.

             

            오웬은 웨일즈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너무도 머리가 좋아서 12세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10년 간 공부하였다. 그는 투창 경기를 즐겼으며 롱 점프 선수였다. 또는 플투트도 불었다. 그는 학자의 기질이 있어 밤에 4시간의 수면만 취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일과는 올림픽 챔피언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웬은 친구들과 함께 런던을 방문하는 동안 유명한 에드먼드 캘러미(Edmund Calamy)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갔다. 그런데 캘러미 목사가 오지 않고 한 시골 목사가 대신하여 실망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 방문 목사를 사용하여 오웬이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역사하셨다.

             

            오웬의 첫 목회 지는 에섹스의 포드햄(Fordham)이라는 마을이었다. 그때 그는 메리 루크(Mary Rooke)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의 가정생활의 슬픔은 현대 의학의 혜택을 입고 사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이었다. 그들은 11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딸아이 하나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고 나머지는 모두 일찍 죽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딸의 결혼도 깨어져서 친정에 돌아와서 산 지 얼마 안 되어 결핵으로 사망했다.

             

            오웬은 1646년 주일에 출석 교인이 2천 명인 런던의 한 교회에 초빙되었다. 16486월에 페어팩스(Fairfax) 장군은 콜체스터(Colchester)를 포위하였다. 그때 오웬은 군인들을 위한 설교 초청을 받았다. 그는 많은 장교들과 친분을 맺었는데 그중에는 올리버 크롬웰의 사위인 헨리 아이어턴(Henry Ireton)도 있었다. 오웬의 은사는 곧 소문이 퍼져 의회에 초청을 받았고 의회에서 가장 선호하는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올리버 크롬웰의 군종으로도 임명되었다.

             

            1652년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부총장이 되었다. 이 직책은 각종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였다. 그는 6년간의 재직 기간에 신학, 설교, 교리문답, 기도를 중심으로 살았다. 옥스퍼드의 질서는 약한 편이었다. 오웬은 관대하면서도 확고했기 때문에 효과적인 행정을 할 수 있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토론 때 한 학생이 상스런 말을 하였다. 그는 경고를 받았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오웬 자신이 그 학생을 힘으로 강의실에서 밖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1658년 오웬은 회중교회의 목회자 모임에 나갔다. 이 모임은 런던의 사보이 팰리스(Savoy Palace)에서 열렸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기초한 고백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토마스 굿윈, 필립 나이, 윌리엄 브리지,윌리엄 그린힐, 조셉 카릴과 함께 대표로 임명되엇다. 이것이 나중에 알려진 사보이 선언(The Savoy Declaration)이다.

             

            오웬은 1676년 훌륭한 그의 아내를 잃었다. 18개월 뒤에 그는 부유한 여자와 재혼하였다. 그런데 이때쯤 해서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러나 그는 좋은 마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편의를 돈많은 아내 덕분에 제공 받았다.

             

            오웬의 글은 그가 분석적이고 조형적이며 통이 큰 두뇌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그의 글은 모두 그가 심오하게 이해한 은혜의 교리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오웬의 문장 스타일은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다행히도 로(R.K.K. Law)의 수고에 의해서 오웬의 대표작들에 속하는 성령론(The Holy Spirit), 하나님과의 교제(Commuinon with God), 복음으로부터의 배도와 그리스도의 영광(Apostasy from the Gospel and the Glory of Christ)이 요약되거나 현대어로 고쳐져서 나왔다.

             

            D. 후기 퓨리탄

             

            10.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1703 - 1791)

             

            요한 웨슬리(John Wesley)1703617일 사무엘 웨슬리 목사 부부의 열다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요한 웨슬리는 신앙심이 많았던 어머니 수잔나 부인에게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7351014일 요한 웨슬리는 동생인 찰스 웨슬리와 함께 식민지 주민들과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국을 향해 떠났다. 그들은 2년 동안 조지아에서 사역했으나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173821일 그는 잉글랜드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웨슬리는 모라비안(Moravian) 교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들이 갖고 있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에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라비아교도 친구인 피터 뵐러(Peeter Bohler)의 간증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구원은 즉각적인 것이며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진리를 완전히 믿게 된다. 그 후 그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17391791에 있었던 '대 각성 부흥 운동'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웨슬리는 놀랍게도 자기가 설교할 때면 성령께서 강력히 역사 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는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또한 '나의 교구는 전 세계요, 세계는 나의 일터다.' 외치며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였고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단 한 사람만 남아 있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땅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라며, 1753년 직접 발 벗고 세계선교에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왜소하였지만 그처럼 작은 몸 안에 세계를 흔드는 힘이 들어있었다. 요한 웨슬리는 전도하기 위하여 50년 동안 말을 타고서 지구10바퀴 이상 되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틈에 2백 권이 훨씬 넘는 책을 펴냈으며, 50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평균 32km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60년 동안 한번도 걸러본 적이 없이 새벽 4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설교하였고 동생과 만든 수많은 찬송가중에 1778년에는 좋은 것만 뽑아 525곡의 커다란 찬송가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가 89세의 나이로 죽을 때 두 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차 주전자, 그리고 다 낡아빠진 코트 한 벌밖에 없을 정도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었다. 그의 장례식이 있기 전날 그의 시신은 시티 로드 예배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시신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왔고,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위대한 빛은(하나님의 보기 드문 섭리로 말미암아) 이 나라들을 비추기 위해 떠올랐다. 이 묘비를 읽는 이들이여, 하나님의 도구인 웨슬리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라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11. 조지 휘트필드(George Whitefield, 1714-70) :

             

            복음주의적 연합운동

             

            휫필드는 1714년 영국 남서부의 도시인 글로스터(Gloucester)에서 태어났다. 여관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청소년 시절은 결코 신앙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1733년 옥스퍼드의 펨브로크(Pembroke) 칼리지에 입학한 후부터 그의 삶은 급변하고 있었다.

             

            1735년 회심한 그는 홀리 클럽의 회원이 되었고 훗일 함께 복음적인 신앙운동을 전개했던 요한 웨슬리(1703-1791)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1707-1788) 그리고 테론과 아스파시오(Theron and Aspasio)를 쓴 제임스 허비(James Hervey, 1714-1758), 윌리엄 모건(William Morgan)등을 포함한 친구들과 교제하였는데 이들은 1729년 봄에 시작된 홀리 클럽(Holy Club)을 시작한 창립회원들이었다. 이 모임은 후일 영국과 미국의 부흥운동과 영적 각성운동을 이끌어간 동력원(Power station)이 되었다. 이들의 엄격하고도 철저한 시간관리, 규모 있는 생활방식(method) 때문에 메소디스트(Methodists)라고 불린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휫필드에게 큰 변화를 준 책 중의 하나는 헨리 스쿠걸(Henry Scougal)이 쓴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그에게 중생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복음적 견해를 확립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36620일 성직(副祭)임명을 받으므로 영국 국교회 성직자가 된 그는 자기의 고향인 글로스터의 성 메리 드 크립트교회에서 첫 설교를 했는데 이것은 설교자로서 그의 삶을 이끌어간 중요한 힘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때의 설교에 대한 그 자신의 기록이 보여주듯이 그는 이 첫 설교에서 외적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목마른 영혼들에게 끊임없는 영적 해갈을 주었고 이 땅에서의 지친 삶에 새로운 힘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설교에는 수많은 청중이 모여 들었다. 휫필드에게 있어서 특별한 일은 그가 1739년부터 옥외설교 혹은 야외설교를 시작한 일이었다. 곧 그해 2월 그는 브리스톨 근처 킹스우드(Kingswood)지방 광부들에게 첫 야외설교를 시작하였는데 약 2만 명이 운집할 정도로 상당한 효과를 주었다. 이곳은 광산 도시로서, 산업혁명 초기 당시 이들은 영국 국교회의 관심밖에 있었다. 휫필드는 영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눈길을 돌려 전도의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런던에서도 야외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공터나 들판에서 설교하였는데 때로는 수만 명이 운집하기도 했다. 1739429일자 일기에는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운집했다"고 했다. 이와 같은 옥외설교는 당시 저조한 예배참석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영국 교교회의 벽을 넘는 방안이기도 했다. "길과 산, 물가"로 나가서 전도하며 옥외에서 설교하였던 예수님의 설교는 그의 모범이 되었다. 휫필드의 옥외집회, 야외 설교 그리고 극장 전도, 가정 선교, 도시 선교 등은 당시 교회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토마스 찰머(Thomas Chalmers, 1780-1847)는 휫필드의 방법을 '공격적 방법'(aggressive system)이라고 불렀다.

             

            휫필드는 1736626일 주일 그의 고향인 글로스터에서 첫 설교를 한 후부터 1770929일 미국 뉴베리 포트(Newbury Port)에서 56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34년간 그는 오직 한가지 일,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몰두하였다.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웨일즈에는 복음전도자로서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가 인도했던 공중집회는 18천회에 달했고 스코틀란드를 14회나 방문하였다.

             

            지금부터 250년이 넘는 그 당시의 도로, 교통, 통신 시설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당시 3-4개월이 소요되는 대서양을 건너 북미대륙을 무려 7번이나 방문한 일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까지 기독교 역사상 그 누구도 그처럼 많은 대중에게 그만큼 많은 설교를 한 일이 없었다. 저명한 전기 작가인 루크 타이어만(Luke Tyerman)은 휫필드의 마지막 설교는 익세티 마을에서 죽기 불과 수 시간 전에 행한 고린도전서 135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로이드존스의 평가는 거짓됨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생애는 하나의 기이한 현상이었다. 영국이나 미국 내에서의 그의 헤라클레스적인 엄청난 노고는 성령의 능력을 언급하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12.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92) :

             

            마지막 청교도

             

            찰스 해돈 스펄전(1834-1892)은 영국 에섹스 켈비던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온하고 독실한 목회자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스펄전은 사춘기를 구원을 향한 회의의 시기로 보내게 되었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어온 일상이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날 설교를 하기로 되어 있던 목사님이 눈보라 때문에 나타나지 않아서, 회중에 있던 한 성도가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성도의 설교는 간단했다. 구원을 위해서는 다만 그리스도만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죄의식으로 지치고 낙담한 스펄전을 가리키며 "단지 주만 바라보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 그 순간 스펄전은극적인 회심을 하게 됐다. 구원이 오로지 주님만 주실 수 있는 은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스펄전의 삶은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의 삶이었다.

             

            1851년 그는 17세의 나이로 정식 목사 직분을 얻었다. 그후 일생 동안 그가 설교하는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의 힘차고, 신학적이며, 감미로운 설교는 그로 하여금 "설교의 황제"라고 불리게 만들었다.

             

            861331일 스펄전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에서 최초의 주일 예배가 드려졌다. 스펄전의 설교를 들으려 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이 교회 건물은 6천석을 가지고 있었지만 몰려오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 그의 설교는 매번 서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까지 1만 명을 넘었다. 그러고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항상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매 번의 설교를 위해 수 시간을 기도했다. 그는 결코 제목 설교를 한 적이 없었으며 항상 성경 본문으로 강해 설교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용이 다른 설교 3,500여 편을 중복해서 설교한 적이 없었다.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은 그가 그토록 많은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개인 전도하는데 보낸 것을 보고 알 수가 있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매주 화요일은 구원의 확신을 위한 개별적인 면담을 위해, 토요일은 복음을 위한 개별 방문을 정기적으로 행하기 의해 남겨 두었다.

             

            그는 "내가 소유한 것 중에서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자기가 꼭 명심하도록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런 겸손은 처음에는 비우호적이었던 사람들까지도 "그의 고조되어 가는 명성에 따라 자만심이 커져가기는 커녕,그가 우리의 눈을 깜짝 놀라게 했던 처음보다도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더욱 자기를 부정하게 된 것 같다." 고 말하게 만들었다.

             

            18911월 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는 불타는 진실성과 굽힐줄 모르는 신학적 신념과 열정을 가진'목음의 전파자'였다

             

            찰스 스펄전의 사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신학사상

             

            찰스 스펄전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원 리를 위배하지 않는 지식과 지혜를 결코 멸시하지 않았으나 성경의 고등비평이나 진화론에 기초한 자유주의 사상이 복음을 타락시킬 때 그는 참을 수 없이 분노하였다. 또한 비록 복음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복음과 자유주의를 동시에 수용하려는 당시 교계의 타협정신을 거부하였음. 복음에 여러 가지 견해, 추리, 상상, 환상을 섞는다면 복음의 변질이 필연적인데, 스펄전은 자신이 속한 침례교단이 진정으로 고수할 근본 진리와 정반대의 가르침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인 188710월 그의 나이 53세에 교단을 탈퇴함.

             

            설교 원리

             

            1)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영접하지 않고 외치는 설교는 말씀 선포가 아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는 자나깨나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3) 설교는 가르치는 내용이 있어야 하며, 그 내용은 건전하고 본질적이어야 할 뿐 아 니라 풍성한 교리가 있어야 한다.

             

            4) 설교의 본문 선택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5) 설교자는 하나님만 의지하여 담대히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6) 설교자는 음성을 잘 관리해야 한다.

             

            7) 설교전달의 자세와 태도, 몸짓에 신경을 써야 한다.

             

            8) 설교에 예화를 사용하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9) 설교는 본문을 떠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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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목목사의 목회성공 비법

            장달윤 목사 ㆍ 2014-07-05 (토) 20:20

            나의 목회 철학

              에디슨은 “나의 철학은 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간단하면서도 에디슨의 위대한 업적을 압축시킨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초등학교 3년 수학밖에 못하였지만 1300개의 특허를 내었고 3400권의 노트를 남겼다.

            나의 목회철학을 말한다면 종으로서 섬기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목회철학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도 가서 이같이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목회철학인 동시에 나의 목회철학이다.

            1.본질은 수호하고 비 본질은 양보한다.
            나의 섬기는 목회철학을 더 구체적으로 논한다면, 본질(교리=사도신경)은 수호하고 비 본질(교리외 전부)은 설득해서 안 되면 양보한다.
            1)본질과 나의자세.
            본질은 생명대고 수호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왜 모든 비 본질은 설득해서 안 되면  상대의 차선을 전부 수용한다.
            2)장로들과 싸움99.9%
            목사들이 장로들과 갈등하고 싸움을 버리는데 정확히 따지어보면 99.9%가 非 본질을 가지고 시비하고 갈등한다. 나의 최선을 설득해서 아니 되면 상대의 차선을 순리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다. 그러면 갈등할일도 싸울 일도 없다.
            3)목회자의 생활자세
            일반적인 생활 자세는 나를 낮추는 것, 내가 먼저 대접하고 우대하여 주는 것,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인내하는 것, 욕심을 버리는 것,  정직과 진실로 강단에서 말 한대로 사는 삶을 보이는 것, 나를 괴롭히는 자를 내색 않고 끝까지 끌고 가는 것,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것, 모든 성도들에게 평등한 인정과 관심을 갖는 것, U메세지가 아니고 언제나 I메세지를 주는 것 등이다.
            4)나의 목회철학에 나를 복속 시킨다.
            안병욱 교수는 인간은 좋은 인생관을 가지면 행복한 좋은 인생을 살고 나쁜 인생관을 가지면 불행한 나쁜 인생을 산다고 하였다. 나의 인생관은 나의 인생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것이다. 목회자도 어떤 목회철학을 갖는가가 중요하다. 목회철학은 그의 목회 그릇이요, 목회양식이요, 목회 건축의 설계도 이다. 건축은 설계도에 의하여 설계도대로 지어진다. 마찬가지로 목회도 그 목회자의 목회 철학대로 목회 하고 그의 목회철학만큼 목회한다. 나는 나의 목회 철학과 설계도에 나를 복속시킨다. 나의 목회철학은 낮아지고 섬기라는 예수님의 목회철학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머슴이”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16세 시 대전 중앙 성결교에서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 집회에 참석하게 되어 “말로나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영적인 환희와, 가슴속에서 “간헐천” 분수처럼 솟아 넘치는 시원한 신령한 생수와,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온 몸에 진동을 체험하고  성령의 타율적인 힘에 붙들려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게 되었고 그때부터 복음을 자랑하고 전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머슴으로 복속시켜 종노릇하는 것이 나의 목회철학이다.

            2. 나의 목회 타이틀 방어 철학
            목회란 부르심과 사명감에 의해 출발했지만 그 일은  힘들고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은 고통과 분노와 모욕과 인내와 눈물로 점철된 길이며, 교회 평화와 단합과 성장이란 그것의 결정체이다. 이 길을 걷지 않고는 목회는 성립될 수 없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목회에 관한 복잡하고 광범위한 두툼한 책들이 많이 있지만 필자는 다음 10가지로 목회 관을 정리, 압축한 방어 목회철학을 나의 목회에 나침판을 삼았다.
            1) 목회는 끓어오르는 격정적(passionate) 분노와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는 분노도 억제하고 겟세마네 예수님의 눈물에 동참하는 고통의 직업이다.
            2) 목회는 원리와 원칙, 정직과 진실의 삶에 미세한 틈도 보이면 안 되는 직업이다.
            3) 목회는 사고 미연에 멀리, 넓게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고, 유비무환, 육하원칙에 의해 완벽하게 일을 진행하여야 하는 직업이다.
            4) 목회는 고지식하고 독단적인 사고를 초월하여 언제나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즉흥적으로 두 마음을 불변의 한 얼굴로 분장하여 거룩한 모습으로 연기할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5) 목회는 신본주의의 신의 얼굴을 하고 사람중심의 인본주의 사람의 얼굴을 하고 목회를 하는 섬기는 종의 직업이다.
            6) 목회는 자신을 녹여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되어야 하고, 자신을 불태워 빛을 발하는 촛불이여야 하는 직업이다.
            7) 목회는 겸손히 썩는 송장이 되어야 장수하고 혈기표출하고 고고한 목회자는 단명 하는 직업이다.
            8) 목회는 10년 동안 들은 고언(苦言)을 한마디로 정리, 분해하여 10분 만에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계산을 가진 자의 직업이다.
            9) 목회는 많은 펀치를 맞고도 통증이나 비틀거림이나 충혈을 보이지 않고, 한방의 KO 펀치 파워를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10) 목회는 피를 말리는 고통으로 100번을 생각하며 분노를 감내해야 하고 100번을 생각하여 농축한 핵을 고체(solid) 연료로 저장해 두어야 하는 직업이다.

            목회는 이상과 같은 직업임을 알고 이상과 같이 대처하는 것이 나의 목회 타이틀 방어 철학이다.

                      3. 나의 3인칭 목회철학
            정치는 강자를 붙잡아야 승산이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줄서기를 좋아한다. 유구한 역사를 보라, 강자 편에 서고 강자와 동맹하고 강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자가 승리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정치판을 보면 자기의 정치 신조를 접어두고 강자 편에 줄서기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역사의 증거이다. 김영삼은  민정 당에 들어가 대권을 쟁취하다.
            1000년 역사의 신라는 굴욕과 수모를 무릅쓰고 신라보다 짧은 역사를 가진 고려 왕건에게 그냥 나라를 바쳤다. 그것이 죽지 않고 사는 길이고 결국 승자의 길이기에 경순왕은 현명한 단안을 내린 것이다. 지금에 와서 고려가 승자인가? 신라가 승자인가? 패자 없는 공동 승자가 아닌가? 김정일도 죽지 않고 현명하게 역사 속에 길이 살아남는 지도자가 되려면 신라의 경순왕처럼 하루빨리 그냥 한국에 바치는 길이 백성을 덜 고생시키고 죽지 않고 공동 승리하는 길인데 저렇게 버티고 승산 없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결과는 이미 드러나 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거울삼아 더 훌륭한 역사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 정치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부도덕한 나라이다. 그러나 21세기 전반기에 누구도 그의 눈 밖에 나면 덕 될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하는 살기위하여 굴욕 외교를 하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1) 교회 행정도 강자를 중심하여 진행한다.
            위로하고 돕는 것은 약자 편에 서서 약자를 위로하여야 하고 행정은 강자를 중심하여 펼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는 당회가 있다. 당회 안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다. 초단 수 목회자는 손에 잘 잡히고 내 품안에 들어오는 약자를 잡고 일하려 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고단수 목회자는 잘 잡히지 않는 그를 잡고 일을 시작한다. 그를 인정과 사랑의 불에 달구어 녹여 내 손아귀에 맞게 만들어 잡고 교회 행정을 펼쳐야 교회 공동체가  평탄하게 갈 수 있다. 아마추어들은 쉽게 잡히는 그를 잡고 일을 하다가 실패하게 되는데 실패의 원인이 거기에 있음을 실패 후 은퇴 할 때 쯤 되면 알게 되어 후회 한다. 보이지 않게 강자를 중심하여 행정을 집행한다.
            2)교회 공동체의 강자는 누구인가?
            교회는 자율적으로 회집된 공동체이다. 그런고로 강자들이 여럿이 있을 수 있는데 전부잡고 가야한다. 어떤 교회는 한 사람만 있고 어떤 교회는 둘도 있고  어떤 교회는 셋도 있으나 대체로 한 사람 아니면  두 사람이다. 그들이 강자이고 그 외에는 줄서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강자가 한명이면 그 한명만 잡으면 되고 둘이면  둘만 잡으면 그 외에 인은 전부 따라온다. 나무도 두세 가지로 벌어져 큰 둥치를 이룬 것도 있지 않은가? 그런 나무들에 많은  가지들은 큰 중심가지에 소리 없이 붙어있으며 그 가지들은 모두가 들러리에 불과하다. 동물들도 소리 없이 왕초를 따라 뭉친다. 그렇다면 교회공동체 안에 강자는 누구인가?
            (1) 선임 목회자 배척에 전과자 선수 그가 강자이다.
            (2)맥이 없는 것같이 보여도 제일 먼저 기득권(장로 된 자)을 획득하고 수석이란 자의식을 가진 그가 강자이다.
            (3) 나의 초빙에 주격 역할을 하였고 맨 먼저 식사 대접하는 그가 강자      이다.
            (4) 돈을 많이 갖고 많이 내는 그도 강자이다.
            (5)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도 강자이다.
            (6) 교만한 건덕 지를 가진 그도 강자이다.
            (7) 권모술수를 잘하는 그도 강자이다.
            (8) 할 말 다하는 그도 강자이다.
            (9) 자기의 안일만을 위한 기회주의자 이완용도 강자이다.
            (10) 그 W 중에 그 W도 강자이고, 그 M의 그 W도 강자이다.

            3) 강자 그를 어떻게 다를 것인가?
            (1) 강자 중 王 中 王 그을 골라 타고 달린다.
            (2) 강자 그를 여왕벌을 만든다.
            (3) 강자 그를 회장으로 모시고 나는 월급 사장으로 처신한다.
            (4)강자 그를 중앙 기둥으로 세우고 밉더라도 건축위원장을 시킨다.
            (5)강자 그를 경호 실장으로 임명하고 잘한다고 공로패를 증여한다.
            (6)강자 그를 수석 비서로 옆에 두고 중요한 일은 극비 그와 상의한다.
            (7) 강자 그의 意思를 설득하다 안 되면 나의생각보다 우선한다.
            (8) 강자 그를 근위 대장을 삼고 훈장을 수여한다.
            (9)강자 그를 총참모장으로 앉히고 별을 많이 달아주고 치켜세워준다.
            (10)강자 그를 소외시키면 역모 자가 되고 반란, 즉 쿠테타를 일으킨다. 고로 항상 보이지 않게 우대하고 주시하여야한다.
            강자 그는 끝나는 날까지 경계의 대상이며 그가 돌변하는 날 목회자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비굴하게 느껴질 런지 몰라도 그것이 목회의 진리인 것을 어찌하랴.

            4.나의 목회유형
            나는 목회유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치스런 뽀드 목회, 힘들게 하는 돗 단배목회, 싸움 잘하는 전투함 목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타고 강물의 힘을 이용하여 힘 드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뗏목 목회가 있다. 나는 뗏목목회자로서 한평생을 순탄하게 목회하였다. 다른 말로하면 나는 물 목회를 하였다(1.물은 자기의 모양이 없다. 2.물은 누구를 만나든 자기는 부서진다. 3.물은 낮은 자리로만 내려간다. 4.그러나 물의 힘을 당할 상대는 세상에 없다 )

            결어
            이상이 나의 목회 철학이며 이상과 같은 목회철학으로 무궁교회에서 30년 장기목회를 하고 지난 07.10.28.에 섬기던 무궁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은퇴하였다. 누구나 위와 같이 목회 하였을 때에 반드시 승산 있는 목회를 하게 될 것이며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될 것이며 판정승 벨트는 그의 허리에 차여질 것을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기도응답의 다섯가지 방법

             
            이 책에서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다섯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다,
            안된다,
            기다려라,
            네가 할 일이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마......
             
            이 책을 읽고 나면 결론은 한가지로 요약됩니다. 물론 다섯가지 응답으로 나타나지만,
            그 각각의 의도엔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크나큰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기도에 대한 첫 번째 응답은 “좋다”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의 간구하는 기도가 주님의 행하시고자 하는 뜻에
            합당할 때 나타난다. 그렇지만 기도할 때마다 이처럼 “좋다”고 하시기를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기도에 “좋다”고 하신 경우가 다음과 같이 몇 가지가 있다.
            1) 한나가 아들을 얻기 소망하여 여호와께 통곡하고 서원하였더니 주님은 그에게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
            2)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그를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하였더니 주의 사자가 그를 깨우고 쇠사슬이 풀리고 파수를 물리치고 감옥 문이 열렸다.
            3) 솔로몬이 주께 지혜를 구했다. 그의 그 기도가 주의 마음에 맞아 하나님은 그에게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주셨고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
            4)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려고 보낸 편지를 보고 기도한다. 그는 산헤립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 오직 주만 바라보고 확신하는 믿음을 보였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를 치셨고 산헤립은 죽임을 당하였다.
            5)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바울이 기도했다. 그리고 안수하여 그를 낫게했다.
            6)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지만 베드로는 기도하여 그를 소생시켰다.
            7) 엘리야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비웃는 백성들에게 그 분의 존재를 보이도록 기도했다. 정성으로 번제물을 준비하고 도랑에 물을 흐르게 하였더니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핥았다.
             
            두 번째로 기도에 대한 응답은 “안된다”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이 담겨 있을지라도, 우리가 주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해달라고 하는 요구가 담겨 있을지라도 첫 번째 기도에 대한 응답처럼 “좋다”고 하시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신다.
            성경속에 나오는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있는 가시를 제거해 주시길 세 번이나 기도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中)
            이 말씀을 들은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中)라고 전한다.
            우리가 기도하였을 때 주님께서 “안된다”고 하시면 우리는 얼마 못가서 기도를 포기하고 주님을 원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된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거나 주님의 뜻에 합당치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고치도록 길을 안내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를 계획하셨는데,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도록 무조건 “좋다”고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로 기도에 대한 응답은 “기다려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 오랜 기다림 후에 주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빨리 눈앞에 보여지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이 주 뜻에 합당할 때만 “좋다”고 하신다. 만일 우리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신다면 우리가 시험에 빠질 수도 있고 우리가 자만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전,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갖추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한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곤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시한다.
            첫째, 헛되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점에 이르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야 한다.
            둘째, 그 기도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예를 들어 여러분의 건강)이라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기도보다 구하는 것을 멈출 자세가 더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물질적인 복을 위한 기도라면(욥처럼), 도대체 그 기도를 드렸어야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만일 영적인 복(하나님의 인도, 특정한 유혹을 극복하기 위한 능력, 성경을 이해하는 것등)을 위한 기도라면, 필요가 채워질 때까지, 또는 하나님이 기도를 멈추도록 인도하고 계신다고 확신하는 시점에 이르지 않는 한, 계속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
            그리고 네 번째 기도에 대한 응답은 “네가 할 일이다”이다.
            부모님이 될 수 있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도록 배려하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은 우리가 할 수 있길 바라신다.
            우리는 가끔씩 아픈 사람들이나 선교지를 위해 기도 부탁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실천으로 행하길 원하고 계신다.
            아픈 사람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그를 찾아가 위로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병원에 있기에 사람을 만나기 힘든 상황에서 우리의 만남은 그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이 행동을 통해서 그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그의 병도 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물론 나도,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뿐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선교지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직접 선교사로 가서 실천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헌금을 통해 선교사를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헌금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기도에 대한 응답은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마”이다.
            우리는 가끔씩 자신의 일만 생각하고 기도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결혼식이 있는 날에 날씨가 맑기를 기도하지만, 그 때 농부들은 시들어 가는 작물을 위해 기도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생각으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쪽의 기도를 들어 주실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주님께선 적절하게 놀라운 방법으로 이루어 내신다. 그로 인해 우리는 주님의 능력에 감탄하고 놀란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방법을 가지고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시는 주님이시다. 우리가 이런 방법으로 이루어지길 원한다고 기도를 할찌라도 우리에게 더욱 적절한 방법으로 응답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셔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네게 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이유조차 밝힐 수도 없는 어떤 것이다. 나를 신뢰 하거라.”
            <기도응답의 다섯가지 방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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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를 위한 기독목사에 대한 사견

            김정한

            미국교회 목사님들 가운데 그런 분들은 없지만 한국교회 목사님들 가운데 극 보수 혹은 종북에 물든 목사님들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교단 게시판에 좌우 이념에 대한 논쟁이 있어 써 본 글인데 이곳에다도 올려봅니다.

            兩非論은 아니나 輕重을 따라 분별했으면

            이곳 게시판(통합측을 말함)을 달구는 좌우 이념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 그간에 오고간 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사견을 말해보고 싶다. (나와 다른 시각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에 논쟁은 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역사에 어느 때 유토피아가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보다 낫은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해 온 것이 인류사가 아니겠는가?

            작금의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될 것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근 현대사의 한국역사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 나갈 것에 대한 각자의 시각에서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특히 기독교신앙인들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을 알리는 길이 종의 직무의 일부라고 믿고 있기에 이곳 게시판이 이리 뜨거운 줄로 안다.

            내가 보기엔
            좌우가 양보와 타협과 화합대신 사사건건 극렬히 부닺치는 것에는 자신의 약점과 허물과 실수를 인정하기만 하면 그것을 기회로 상대방측이 무차별 공격해 들어올 것이 두려워 자신들의 이념에 헛점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모로쇠로 일관하고 오직 상대방의 약점과 실수를 확대시켜 상대를 압도하고 쓸려뜨리려고 하는 대서 온다고 보고 있다.

            먼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라.
            먼저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세력은 이승만대통령과 박정희, 군부시절을 겪어오면서 행해진 숱한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꿇으려는 의지가 없이(말로만 외치고 있다고 본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을 현재에까지 지속하여 기만하는 집권세력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를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공적과 과오를 알고 인정하라는 말이다)

            그에 반해서 이승만대통령의 정부수립고 625이후에 공산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은 주류사회에서 밀려나 불만이 팽배하고 있었던 차 박정희 독재와 군부의 무지한 행동들이 저들에게 약자 편에 있는 노동자 편에 서서 활동하기 시작하고 교육분야에 뛰어들어 사회 평등주의를 말하면서 가진 자들의 횡포에 대해 이념교육을 시작하여 오늘날 각 분야, 심지어 기독교안에 들어와 그 사상이념을 가진 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한국사회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따라가자는 것을 속이지 말고 들어내라는 말이다)

            거기에 대한 나의 시각
            현재의 기득세력자들이 지금의 종북세력이 바로 자신들의 모순과 잘못으로 만들어진 그림자 인 것을 인정하고 투명한 쪽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자들은 아무리 한국사회가 잘못되었어도 적어도 북한보다는 몇십 배 가 낫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를 위한 길이 어떤 지를 자신부터 냉정하게 살핀 연후에 나섰으면 한다.

            기독목사들의 사명
            우리 목사들은 어떤 환경에서 던지 복음을 전하며 복음진리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세상나라에서의 직무는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념에는 모순이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서로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올바른 지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와 같이 북한을 지척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기독목사들이 복음진리에 서서 살 뿐 아니라 세상에서 살라고 한 빛과 소금의 삶을 살면서 극도로 첨예한 좌우 이념 자들에게까지라도 영향을 미쳐서 기독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를 보전하게 해야 하리라고 본다. 목사들이 본이 되고 교회가 권위를 회복할 때 극한 좌우이념의 대립을 중재할 힘이 있다고 본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복되게 하셔서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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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ハ _ バ
            ミ^o^ミ?
            ( \. ./ )/
            (") (") !~~~!(^o^*)!
            ?♥?♥?♥

            흐린 날은 유머와...^^^.......^^^

            하~하...호~~호...헤~~~헤

            주말은 가족과 함께

            더위 식히며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린다.


            ♡♧♧♧
            ∏____________♥
            {▣▣▣][▣▣▣}~유머 실은 기차~♡
            @@@@@@@@@@@@@@

            예수님과 스님이 같은 버스를 탔다.



            서너 정거장 지나자 예수님이 내리며
            가라사대...... '신내림'




            얼마후 스님도 내리며 외쳤다.






            ↔↔↔↔↔↔'중도하차'

             ┏┯?▒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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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듭난 사람(born again Christian)은 ‘성령의 사람’이며, 생물학(生物學)적 용어를 빌리면, ‘바이오제네시스(biogenesis)'이다. ‘바이오제네시스’, 생물은 생물에서만 난다는 설, 생명은 생명에 의해서 생명을 받는 것, 生에서 生이 난다는 것, 죽음에서는 결코 生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 생물학(生物學)적 원리다. 이런 원리로, 산 생명이신 성령 하나님이 마음속에 내주한 사람은 생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생명이 없으며 이름과 형체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란 것이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거듭남의 고백 (입술만으로가 아닌, 진정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 (롬 10: 9-10)함 없이 직분을 받은 자들,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교인들이 저지르는 온갖 비리가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비일비재 일어나는 탓에, 주님의 교회는 지금 큰 수난을 겪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 다니기는 하나,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교회 안팎에서 저지르는 온갖 추악한 죄악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모두 전 세계의 성도들과 주님의 교회가 함께 뒤집어쓰게 된 오물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말씀에 의지하여 바로 살아보려고 최선의 삶을 경주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마저 무더기로 “개독교인”이란 소릴 듣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 ㅠㅠ)

            죽은 송장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이고, 산 생명에서는 생명의 향기가 나는 것이 마땅하다.(고후 2:14-16절 참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산 생명이 아니다. (1요 5: 12)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주님의 영광을 실추시키는 자리에서 떠나고 나중에 주님의 얼굴을 마나 뵙기 원하면 먼저 내가 믿음에 서 있는가 자기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다시 재점검을 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고후 13: 5) 성령과 성령의 사람을 알지 못하는 무지(ignorant)가 빚어내는 촌극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서운 현상으로 미혹하는 영이 활개를 치는 세상, 정신을 차리고 분별하지 않으면 내가 잠식당하게 된다. 짧은 지면에 모두 다 논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히나마 성령과 성령의 사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고, 새해에는 우리 다 함께,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어보자는 슬로건이라도 내어걸고 싶은 심경으로 정리를 해 본다.

            성령은 삼위일체의 神이심을 믿는 신앙을 확고히 해야 한다

            “성령”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는 “성신” (루-아흐 코드쇼) 2회 사용되었다. (사 63: 10, 11) 신약에는 “성령”이란 말이 93회가 인용되었다. 구약에는 “루-아흐”가 단독으로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선한 신”(Spirit, 대문자로 표현)으로 번역되었다. (느 9:20, 30, 시 139:7, 슥 7:12) 신약에도 (프뉴마)가 단독으로 “성령, Spirit”으로 표현되지만, (마 4:1, 22: 43, 등 13회가 사용되며, 또는 ‘하나님의 성령’ (το Πνεύμα του Θεού)가 사용되고(마 12: 28, 고전 6: 11, 7: 40), ‘주의 성령’ (the Spirit of the Lord, το Πνεύμα του Κυρίου) (눅 4: 18 ), 또는 ‘예수의 성령’ (the Spirit of Jesus, το Πνεύμα του Ιησού)( 행 16: 7 )으로도 인용된다. 또 (바람)이라든가 ‘호흡’이라든가 공기의 진동을 뜻하는 것이 본래의 의의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해당 되어지는 (생명), (영혼)의 뜻이 된다. (창 2:7, 출 35: 31, 욥 7: 11)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 주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삼위일체의 신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성서 원어 대사전 참조

            성령의 사역 (성령과 우리와의 관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성령의 하시는 사역을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성령님을 어떤 마술의 영으로 착각할 수 있고, 신성을 버리고 무당 푸닥거리 같은 짓을 성령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이비 집단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성령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해주신다.(요 16: 8절), 성령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Lord)라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고전 12: 3절), 성령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성령의 세례(침례)를 주신다. (고전 12:13절) 성령은 영적인 생명을 주신다. (요 6: 63절), 성령은 신자들 안에 거하신다. (고전 6: 19절), 성령은 구원의 확신을 주신다. ( 롬 8: 16절) 성도의 일상 삶을 도우시는 사역을 하신다. 성령은 지 정 의(知情意)를 온전히 갖추신 인격적인 신(神)이시다. 불신자들이 깨달을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고전 2: 12-14절) 섬기는 일을 도우시는 사역을 하신다. (고전 12: 7-11절),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도 성령께서 친히 결정하신다.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개인 교회,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벧전 4: 10, 고전 12: 7절)

            성령의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

            1.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해야 한다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곧 ‘외식(hypocrisy)’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조심하라” (눅 12: 1下)고 경고하신 것이다. ‘외식’, 그렇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외식’인 것이다. 외식이란 글자 그대로 안과 겉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사람임을 알 수 있는 외적인 현상은 오직 그 열매뿐이다. 그가 성령의 사람인지, 아닌지, 타인은 누구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성령님과 자기 자신은 알 것이다.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든지, 바리새인의 누룩(외식)으로 포장하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누룩이란, 확산되어 본질을 부패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지금 기독교계 안에서 불거져 나오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목사들의 간음, 성폭행 문제나 재정비리 의혹, 세습 문제 등, 전 세계의 기독교계를 절망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은 그들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즐기다 그 덫에 치어 헤어나오지 못한 탓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고로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바리새인의 누룩을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자신 믿음의 상태를 비추어 살펴보아 바르게 분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깨달아졌으면 회개하고 즉시 그 자리를 떠나 돌이켜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것이다.

            2.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거짓 은사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주 간단(simple)할 것 같은 issue건만 각처에서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르고 있는 은사론, 신사도 운동, 은사중지론 등은 세기를 두고 신학자들 간의 논쟁이 치열했으나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결말이 나지 않고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많은 목사님들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지 않고, 아전인수(我田引水), 천착지학(穿鑿之學),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자기의 사상이나 지식의 틀에 끼어 맞추려고 말씀을 끌어다 붙이기 때문이며, 성도들 역시 자신의 입맛에 맞은 목사님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은사중단론 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극단적 신비주의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은 모두 아멘으로 받고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세가 ‘축자영감설’을 그대로 믿는 성도의 올바른 태도인 것이다. 방언도 다른 은사들처럼 교회와 개인의 건덕을 위해서 주시는 성령님의 선물로 믿어야 하고, 모든 것을 적당히 하고 질서대로 해야하되 영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 모든 방언이 다 성령의 주시는 선물로서 온 것이 아닌, 사단의 장난질 방언도 있다는 것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믿을진대, 외국어로 들려지고 알아지는 방언이 있음을 믿어야 하고, 인간의 소리가 아닌, 영으로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알아듣지 못할 방언도 있다는 것도 인정하자. 모든 방언이 각 지방 언어들로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면 영들을 다 믿지말고 분별하라는 말씀을 무엇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두었겠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면 관계로 간증을 넣을 수는 없지만, 나는 외국어로 방언하는 것과 같은 현상, 어릴 적 고아로 자라,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여 일자무식한 사람이 주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아, 영어 성경을 줄줄 읽을 수 있고 영어로 기도를 할 수 있는 한 부인을 만난 적 있다. 또 방언을 한다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원망하며 밤새도록 저주하는 것도 들어본 적 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간곡하게 권면하신 말씀을 들어보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 11:7 ), 놀라운 것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을 알아보는 방법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는 자를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참 선지자도 아니고 진실된 그리스도의 사도가 아니며 오직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아 미혹의 길로 끌고 가려는 사단의 졸개들이다. 계속해서 다시 보자. “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고후 11: 14-15)

            필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어떤 독자님이 댓글로 남긴 말이 가슴에 와닿기에 여기 옮겨본다. “예수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성경말씀을 인간적인 사고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과 함께 눈에 보이는 이적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참.. 성경 말씀은 상당히 함축적, 암시적인 표현이 많은데...그것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추론한다는 것이 참 어불성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기존의 정통 교회들도 그 방향으로 해석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하구...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 안스럽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습 중에서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고쳐나가며 눈에 보이는 이적을 구하기보다 말씀에 드러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삶들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무튼... 말씀 안에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가슴이 다 시원해지는 옳은 말씀이 아닌가, 성령의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깨달음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죄에게 굴복하지 아니한다.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죄 성이 남아 있어 죄의 유혹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죄의 유혹을 받는다고 하여도, 죄가 그 사람을 주장할 수 없도록 주님의 영이 지키신다. 때문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가슴과 머리, 말과 행위가 모두 함께 나간다. 거듭난 사람은 작은 죄를 지어도 성령의 탄식하시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져 그 양심이 심히 괴롭다. 그러면 기도하게 되고, 성령의 도우심과 회개의 영으로 죄사함을 받고 돌이켜 구원함에 이르는 것이다. 안과 밖이 다른, 외식으로 포장된 생활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Holy Spirit)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요 5: 18절 말씀) 죄의 소원은 성령의 사람에게도 있으나 죄가 그를 주장하거나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는 죄를 이기고 승리한다. 이것이 성령의 법, 곧 생명의 법이다!

            성령 충만을 내 삶 속에서 지속할 수 있는 방법:

            a)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요1: 1절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 사람 속에 그만큼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시다. 하나님의 말씀 또한 능력이시다. 이 능력의 말씀을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이 더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더 많은 능력이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는 사람은 더 큰 일을 해 낼 수 있다….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비결이라고 하면 믿어지겠는가?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다.

            b) 그리스도의 말씀에 전적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 바로 바리새파적인 사람이다. 바리새파처럼 머리만 굵어진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싫어 버린 바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알기 때문에?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싫어 버린 바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는 많이 알았지만, 그 알고 있는 만큼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면 무조건 바리새파로 몰아가는 것은 틀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은 사람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큰 믿음을 소유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새해에 우리는 극단적 신비주의나 샤머니즘적 신앙으로 물든데서 돌이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읽고 그 말씀의 잣대(Canon)로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고집과 아집, 정욕, 이런 육신에 속한 죄성을 측정하고 자를 것은 자르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내 속에 좌정하고 계신 성령님께 굴종하며 복종하는 순종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비례해 성령의 열매가 내 삶 속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자신을 쳐서 더 많이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자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치 않으면 그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아집, 고집 이런 죄의 속성들이 더 크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인격적이시기에, 내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굴종할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구원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내가 변화되는 능력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내가 새로워지는 길이 있다. 내 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다. 울어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된다. 부흥회 백날 쫓아다녀 봐야 성령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시는 그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런고로 성령 충만한 성도는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요즘처럼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위상이 바닥을 친 시대는 역사적으로 다시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엄격히 말해서 교회 등록하고 매주 교회 출석하는 사람을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보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으로서. 반드시 물(하나님의 말씀)과 성령(Holy Spirit, 삼위 일체의 영)으로 중생한(born again)사람, 성령의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어야 옳다. (요 3: 3-9절 참조) 이런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이런 사람은 바이오제네시스(Biogenesis), 생명의 신이 그 속에 내주해 계신, 거듭난 사람( born again Christian)이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성령의 사람은 생명의 열매가 그 생활 속에서 맺히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 8- 9절 말씀).”



            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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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인디언의 특별한 성인식!

            북미에 사는 어느 인디언들은 자녀들의 성인식을 옥수수 밭에서 거행한다고 한다. 어떤 성대한 의식으로 치루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넓은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가서 바구니를 하나씩 주면서 옥수수 밭에서 가장 좋은 옥수수 한 개만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 오게 한다. 그것이 성년식의 전부이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나고 즐거운 일도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좋은 옥수수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 개만 골라 따면 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붙는다. 옥수수를 따기 위해밭고랑을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고, 또한 한번 고른 옥수수보다 더 좋은 옥수수가 나타나도 그것으로 바꿀 수가 없다.

            아이들은 좋은 옥수수를 고르기 위해 밭고랑의 시작부터 매우 신중하게 옥수수를 살피며 걸어가게 된다. 그리고 밭고랑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아이들은 옥수수 한 개씩을 바구니에 담아 오는 데 그들이 선택한 옥수수는 모두 별로 좋은 옥수수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좋은 옥수수를 발견하고서도 앞으로 가면 더 좋은 옥수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냥 스쳐 가버렸기 때문이다? 북미인디언들은 옥수수 따기 체험을 통해 더 좋은 것을 찾으려고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이런 체험을 성년식에 통과의례로 만들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인디언들의 옥수수 따기 체험은 지나간 세월 아쉬워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사랑이란 이런 것- 어느 병원장의 일기 중에서
              아침 8시 30분쯤 되었을까? 유난히 바쁜 어느날 아침, 80대의 노인이 엄지 손가락 꿰맨곳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그는 9시에 약속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노신사의 바이털 사인을 체크하고 의자에 앉으시라고 권했다. 아직 다른 의사들이 출근하기 전이어서 그를 돌보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시계를 연신 들여다 보며 초조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직접 돌봐 드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다행히 노신사의 상처는 잘 아물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신사의 상처를 치료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서두르시는 걸 보니, 혹시 다른 병원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으신가 보죠?"라고 물으니, 노신사는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는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인의 건강상태를 물으니, 노신사는 "아내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르신이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시면 부인께서 언짢아하시나 보죠?"라고 물었다. 그러나 노신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뇨,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지 5년이나 됐는걸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부인이 선생님을 알아보시지 못하는데도 매일 아침마다 요양원에 가신단 말입니까?" 노신사는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아내는 나를 몰라보지만, 나는 아내를 알아본다오." 노신사가 치료를 받고 병원을 떠난 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야 했다. 사랑의 참된 모습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내 팔뚝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적인 것도 로맨틱한 것도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 글은 참으로 제게 힘을 주기도 하네요. 저도 아내가 너싱홈(요양원)에 있거든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듬뿍 나누어 보세요. 행복하실 것입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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