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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만 해도 마음이 착잡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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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폴란드의 오슈비엥침(Oświęcim) 이라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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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Konzentrationslager Auschwitz)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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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입구 철문에는 '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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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입장객 중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민족은 작은 원형모자(키파)를 쓴 유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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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참담했던 역사를 잊지 않으려 아우슈비츠를 찿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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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는 선생님을 따라 단체로 견학 온 어린 고등학생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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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 앞에서 사진촬영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온 이스라엘 경찰들.



 
나치 친위대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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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믈러1940 4, 'Rudolf Höss'를 아우슈비츠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수용소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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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폴란드 포병막사였던 아우슈비츠 주변에는 광대한 땅들이 널려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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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도 유럽의 중심이었기에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손쉽게 이동시킬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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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히믈러가 총책임자 회스에게 수용소 캠프의 건설을 명령한 것은 1940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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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끌려온 포로들은 유대인 아닌 폴란드 정치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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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쯤 세월이 지나자 수용소 인구는 3만명을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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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3, 히믈러는 아우슈비츠를 다시 방문하고 수용소의 대대적인 확대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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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워진 수용소가 아우슈비츠 제2호로 불리는 비르케나우(Birkenau) 집단수용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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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르케나우 정문 건물은 원래 1903년에 세워진 학교 건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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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그 곳에 큰 문을 만들고 철로를 건설하여 유대인들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

 

 

치클론 B
유대인 가스실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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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처음으로 대거 아우슈비츠로 수용된 날은 1942년 2월 1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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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치밀하게 계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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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수감자에게는 이틀치의 식량과 반합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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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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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머리카락(7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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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6,525점의 여성 의류와 구두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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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820
점의 남성 의류와 면도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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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로 제조된 칫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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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만 개의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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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0개의 인공 수족,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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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통으로 400명 정도를 질식사 시킬 수 있었던클론 B(Zyklon B)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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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샤워실로 위장된 가스실은 가짜 샤워기가 달려있어 희생자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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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실에서 희생자들이 숨을 거두기까지의 시간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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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실에서 나온 시체는 금니와 반지 등을 뺀 후 소각로로 보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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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는 갈아서 비료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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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11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장 중요한 빌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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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포로들이 잔인한 심문을 받은 후 총살형 또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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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에 의한 처형장은 옆 건물 빌딩인 10과 빌딩 11 사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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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10은 유전학을 연구한다는 핑계로 잔혹한 인체실험을 감행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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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대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가 유대인을 전멸시킬 목적으로 자행했던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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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 중에는 유대인 외에도 동성애자, 집시, 보이스카우트, 정신박약아, 쌍둥이도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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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치료병동(19, 20, 21, 28)이 있었지만 이것은 포로들을 치료하려고 만든 병동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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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보기에 병약해 보이는 포로는 독극물 주사를 놓든가 가스실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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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로 보내지지 않은 포로들은 좁고 더러운 막사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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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은 하루에 딱 한 번, 시간은 10초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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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포로들은 아우슈비츠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몸부림치며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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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을 살해한 것은 1943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동안의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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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동안에 살해된 유대인은 105,0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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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된 총희생자는 유대인 사이트에는 2백만에서 4백만이라고 적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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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는 1940 ~ 1945년동안 1,100,000명(유대인 90%)이 희생됐다고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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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랍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출한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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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명이 탈출을 시도 144명이 성공했으며, 아직까지도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은 331명에 이른다.
 
 

3명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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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아우슈비츠 수감번호(918번), 카지미에쉬 피초프스키

 

그 중, 가장 드라마틱하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출한 포로는..

폴란드 정치범이었던 카지미에쉬 피초프스키(Kazimierz Piechowski)와 3명의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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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카우트 출신이었던 피초프스키는 당시 23살의 나이로 힘이 좋고 체격도 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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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친구들 또한 독일말을 구사할 수 있어 수용소에서는 모두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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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한 명의 친구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에우게니우스 벤데라(Eugeniusz Bendera)라는 친구.

벤데라는 자동차 기술자로 독일군 차량을 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독일군 파일을 통해 자신이 곧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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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함께 맹세한 4명의 친구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탈출을 계획하게 된다.

독일군의 복장과 승용차로 정문을 통한 탈출을 계획한 그들은 거사의 날을 정하고 행동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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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탈출에 사용하려 점찍어 놓은 차는 수용소 총책임자 루돌프 회스의 승용차 ‘Steyr 220’였다.

Steyr 220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는 차 중에는 가장 빨리 달리는 승용차였다.

혹시라도 있을 독일군의 추격을 따 돌리려면 그들에게는 빠른 속도의 승용차가 필요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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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 20일 토요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거사의 날이 밝았다.

2층에 있는 창고에 몰래 들어간 그들은 독일 친위대 장교복 등 군복으로 갈아 입고 무장한다.

한편, 벤데라는 복사된 키를 가지고 차고에서 승용차를 가져왔다.

정문을 통과할 때는 조마조마 했으나 승용차를 본 보초병이 손을 쳐들며 먼저 하일 히틀러’를 외친다.

4명의 친구들은 내색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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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수용소 정문을 지나 달리고는 있지만 아직 마지막 바리게이트가 남아있다.

이곳은 친위대 보초병이 패스를 보여 달라고 할 수 있기에 4명의 친구들은 긴장한다.

80미터 앞까지 왔지만 바리게이트 차단봉은 그대로 내려져 있다.

60미터에도 바리게이트 차단봉은 올라 갈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40미터에도 그대로..

25미터에도 그대로..

이때, 뒤에 있던 친구(Jozef Lempart)가 친위대 장교복 차림의 피초프스키의 등을 치며 말했다.

뭐라고 말좀 해 봐!’

정신이 번쩍난 피초프스키는 그때서야 차 문을 열고 보초병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이놈아 빨리 차단봉 올리지 못해!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차단봉은 즉시 열렸으며, 4명의 친구는 수용소를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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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 수감된 포로들은 모두 죄수 번호 문신을 팔뚝에 새겨야 했다.

 

6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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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탈출기는 다큐멘타리 영화로도 제작됐고..

 

 

70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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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의 피초프스키는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서 수용소의 참상을 증거하고 있다.

 

 

 

 

 

나치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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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히믈러는 패전후 영국군에 체포되자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으며..

(1945년 4월 29일)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에 새로 만든 교수대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1947년 4월 16일)

   

글 사진: 서정

Gabriel.S Oboe




출처: http://mission.bz/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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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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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와 작정의 관계 / 아더 핑크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은, 앞서 인용한 처음 두 말씀이 하나님의 예지는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사도행전 2장23절을 다시 보자.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첫째,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둘째, ‘미리 아신대로’ 내어주신 바 되었다. 예지의 토대는 하나님의 작정이다.

로마서 8장29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바로 앞 구절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면 바로 앞 구절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예지는 그분의 작정, 또는 목적에 근거한다(시2:7).

하나님이 미래의 일을 아시는 이유는 스스로 그 일을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미리 아신 것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주장은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자 성경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미리 아신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선택의 근거나 이유는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서 비롯한다.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그들 안에 선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기쁘신 뜻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왜 선택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10:21)라고 고백할 따름이다.

로마서 8장29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일부 죄인을 골라내어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고 가르친다(살후2:13 참조).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는 문구를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신 이들을 “미리 아셨다(즉, 사랑하고 선택하셨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것은 예지, 예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하나님은 죄인이 믿을 것을 아시고 그를 선택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 전에는 그 어떤 죄인도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기 전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시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보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한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2:8,9). 믿는 것은 그 선물을 사용한 결과이다.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이 믿을 것을 아시고 구원을 베풀기로 작정하셨다면 믿는 것이 선물이 아니라 공로가 되며, 그런 경우에 구원받은 죄인은 ‘자랑할’ 빌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을 자신의 공로로 자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한다(엡2:9).

성경에 따르면 믿음은 공로가 아니다. 성경은 신자들을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행18:27)이라고 정의한다.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믿음은 공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또 믿음이 공로가 아니라면 선택의 이유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나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다.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달려 있다. 로마서 11장 5절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이처럼 선택은 은혜이고, 은혜는 공로와 무관한 선물, 곧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고 주장할 수 없는 순수한 선물이다.

지금까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예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예지를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생각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흔히 통용되고 있는 예지의 개념은 전적으로 부당하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결말을 꿰뚫고 계실 뿐 아니라 영원 전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결정하시고, 예정하셨다. 원인이 결과에 선행하듯이 하나님의 작정이 예지에 선행한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엡1:4).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가 믿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선택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신앙의 본성을 타고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찬양과 영광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공로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행18:27)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은혜로”(롬11:5) 선택을 받았다.


아더 핑크의 [네 하나님을 알라] 책의 4장.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에서 일부 발췌
출처: 생명나무 쉼터 http://blog.daum.net/7gnak/1572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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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관계
    벌은 꽃에게서 꿀을 따지만 꽃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매를 맺을수 있도록 꽃을 도와 줍니다. 사람들도 남으로부터 자기가 필요한 것을 취하면서 상처를 남기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것만 취하기 급급하여 남에게 상처를 내면 그 상처가 썩어 결국 내가 취할 근원조차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꽃과 벌 같은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엔 아름다운 삶의 향기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대의 몸 안에, 가슴 속에 사랑의 우물을 깊이 파 놓으십시오. 그리고 아낌 없이 나누어 주십시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옮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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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성도 1명 포교 위해 개인정보 등 100여 항목 체크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 한국교회 성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전에 작성하는 포교 계획서의 실체가 드러났다.

국민일보가 19일 단독 입수한 '플랜지'에 다르면 신천지는 포교 대상자 1명을 정밀 분석하기 위해 개인 신상은 물론 가정, 교회정보, 경제상황, 건강상태, 관심분야 들 100개 이상의 항목을 샅샅이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싵천지가 포교 대상자의 정보를 수집한 뒤 모략(거짓말 유도)을 위해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짠다는 소문은 있엇지만 실제 자료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0000&sCode=0000&arcid=0007193743&code=23111111

쇠라 Georges Seurat(1859~1891)
나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글미을 그렸들 뿐이다.

인상주의적인 요소를 강하게 지니면서도 쇠라는 방법적인 면에서 동료 화가들과 다른 면을 추구했다. 쇠라는 신인상파 화가로 그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의 순간을 화폭에 고정시키고자 했다. 색채를 분할하여 작은 색점으로 그림을 만드는 새로운 화법을 창조해내고 대상의 순간을 영원히 자신의 화폭에 고정시키려는 의도했다. 그는 인상파가 그리고자 했던 순간의 이미지를 정반대의 입장에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쇠라가 인상파전에 몇몇 작품을 전시했을 때 그는 동료 화가들의 심한 반발을 받아야 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빛을 표현해 내기 위해 즉흥적이고 직관에 의한 표현에 주력했다면, 쇠라는 과학적 접근 방법을 해결책으로 보아 순수하고 정확한 색채 분할을 화면에 창조하고 기하학적 체계를 적용시키려 했다. 쇠라는 처음부터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도서관을 출입했다. 이 당시는 색채가 과학적으로 규명되어서 이론적으로 보색관계나 광선에서 보색을 섞으면 흰색, 물감에서는 검은색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쇠라가 인상파에서 얻은 것은 광선에 대한 관심이었고 인상파의 자유롭고 불규칙한 터치를 질서있게 적용했다. 인상파에서 사라진 형태를 명확한 윤곽선으로 추구하게 되었고 인상주의와의공통점으로 광선과 색채에 대한 관심을 꼽는다면 그 차이점은 인상주의자들이 직관적이고 본능에 따라 분해한데 비해 신인상주의자들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의식적인 분할인 것이다. 또 인상주의자들이 형태를 파괴할 만큼 빛의 동요를 쫓았다고 한다면 신인상주의자들은 뚜렷한 윤곽선으로 고전적인 구도를 고수한다고 하겠다.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인상주의의 미학을 이루는 점묘주가 등장하고 있다. 그 주제도 다양한 계층의 휴일을 즐기는 모습으로 인상주의의 향락적인 여흥보다 의식있는 주제로서 그 뒤에 많이 응용되기도 한다. 그는 아카데믹한 수업을 통해 형태의 윤곽은 포기하지 않고 반 아카데미로서 면밀한 색채에서의 관찰을 통해 당시의 발달한 색채학을 수용하여 시각적 혼합을 일으키는 치밀한 분할주의를 택한 것이다. 그래서 형태의 윤곽은 독특한 광선에 의한 명암의 차이를 이용하여 반짝이는 대상의 색조의 대비를 이용하는 것이다. '퍼레이드'등에 이르면 완전한 점묘가 이루어지면서 착각적인 깊이를 배제하고 그늘이 없는 배경을 평면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평면적인 2차원 공간이 된다. 인상주의가 근대성이라는 과제와 함께 비전의 근대화라는 역사적 흐름의 필연적 단계로서 성립되었다고 한다면 신인상주의는 그것을 더욱 구체화하여 자칫 손끝의 기교나 매너리즘이 될 소지의 것을 구축한 것이다. '퍼레이드' '광대'등 일련의 작품의 공통점은 구성의 평면화와 형태의 기하학적 도식화이다. 그리고 그 결과러서 점묘주의적 색채효과와 형태적 견고성의 통합이라는 과제와 함께 화면의 장식성 추구하였다. 쇠라는 야외에서의 소재를 외면하고 실내에서 포즈를 취했던 모델들의 누드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 인상주의적인 즉흥적인 빛의 향연에서 벗어나 인공 조명의 세계에 탐닉했다. 그러면서 쇠라는 형태의 균형과 조화된 구성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게 되었다. 이후 쇠라는 고전적인 황금비율을 연구하며 매우 과학적이고 건축적인 구도를 형성해 나갔다. 고전주의적인 안정감 위에 또다시 일정한 색점을 찍어 나감으로써 정교하고 세밀한 작품 을 창조했다. 쇠라 회화의 또 다른 특징은 형태를 단순화하고 무표정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안정된 구도와 명확한 인물의 윤곽. 하지만 그의 화폭에 담긴 모든 존재들은 운동감을 상실한 채 정지되어 있다. 이는 인상주의 기법에 반대되는 경향의 일면으로 오히려 고전주의적인 성향에 가깝다. 마치 자로 잰 듯한 직선과 타원형, 곡선 등 다양한 기하학적인 형태들의 조합이 그러하다. 미세한 점으로 가득 찬 쇠라의 분할주의(미세한 필촉에 의해 색을 분할 표현하나 사람의 눈에는 혼합되어져 보이도록 하는 기법)는 흑백 데생을 통한 경험의 결과에서 온 것이었다. 그는 콘테에 의한 흑백 데생을 유난히 많이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쇠라의 데생은 선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점묘에 의한 명암의 효과, 형태와 불륨의 정확한 표현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분할주의를 옹호하고 시도하면서도 쇠라의 작품 세계에 골격을 이루는 바탕은 엄격한 고전주의와 정교한 서정의 세계에 있었다. 1890년 여름, 쇠라는 자신의 인생이 종말을 맞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고요함과 명랑함, 그리고 슬픈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랑함은 색조의 밝음과 선의 상승성을 통해서, 고요함은 온색과 난색의 조화로운 균등과 수평선을 통해서, 그리고 슬픔은 어두움을 주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결국 쇠라는 1891년 3월 29일 전염성 후두염으로 31세의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가 추구했던 과학적인 체계는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상징주의의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신인상파의 창시자 : 과학적 지식이 풍부햇던 그는 색점들의 집합으로 표현. 점묘주의. 분할주의.

수평선의 효과 도입 : 학구파였던 그는 선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 동원. 수평선의 활용으로 정숙함과 온화함을 추구.
 
마니에르수욕 1883∼84년, 캔버스에 유채201×301.5cm 런던 내셔녈 갤러리
세잔느가 인상파 화가들의 수법과 질서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모색했던 반면, 쇠라는 인상주의 회화의 수법을 기반으로 해서 색채가 시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 이론을 연구하며, 순수한 색채를 규칙적인 작은 점들로 찍으면서 작품을 모자이크처럼 구축해 왔다.
쇠라는 세잔느가 시도했던 것보다 더욱 형태를 단순화시켜 수직과 수평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그의 화법은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서 점차 벗어나 흥미롭고 풍부한 구성을 화폭에 담아 내게 된다.  이 작품은 1884년 살롱에 출품했으나 낙선하고 후에 '앙데팡당' 전시회에 출품한 최초의 대작이며, 작품 전반에 걸쳐 여름날의 열기에 취해서 몽롱해진 느낌을 전해준다. 쇠라는 이 그림을 구상하면서 현장에 직접 나가서 예비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해 안정감 있는 구도를 창조했다. 많은 인물들이 놀고 있 화면이 주는 인상은 매우 질서정연하다. 점묘법을 통해 빛나는 것 같은 밝은 교외의 풍경을 쇠라는 고요하게 붙잡아 놓고 있다. 쇠라는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해 안정감 있는 구도를 창조했다. 많은 인물들이 놀고 있는 풍경이지만 이 화면이 주는 인상은 매우 질서정연하다. 점묘화법을 통해 빛나는 것 같은 밝은 교외의 풍경을 쇠라는 고요하게 붙잡아 놓고 있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86년, 205.7×305.8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쇠라는 미학에 큰 관심을 가졌던 수학자 샤를 앙리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앙리는 음악에 관철되는 성격을 색과 선에 접목시켜 동일한 법칙을 규정하려고 시도했다. 쇠라의 주제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생활을 즐겨 다뤘지만, 한편으로 상징주의자들이 애호하던 신비감과 분위기를 그 안에 부여했다
<아스니에르의 미역감기>으로 당시 젊은 화가들에게 중심적 인물로 부상한 쇠라는 바로 두 번째 대작인 이 작품에 착수했다.  모티브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밝은 야외에서의 인물들의 모습이지만, 등장 인물의 수가 많아지고 땅의 부분에서는 빛이 닿는 부분과 그늘진 부분의 대비로 구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이 제작될 동안 쇠라는 매일같이 아침부터 그랑자트 섬에 나가 여러 포즈를 현장에서 스케치하고, 오후에는 그 모습들을 새롭게 조형적으로 만들어 화면에 배치하곤 했다. 쇠라는 1884년 5월부터 작업에 착수해서 1985년 3월까지 대강의 윤곽을 잡은 뒤, 1985년 10월에 다시 작업에 들어가 1986년 5월에 이르러서야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순색의 작은 반점의 병치로 더욱 완벽한 분할 묘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정감적인 인상파를 극복하고, 그 고유의 과학적 인상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1886년 제 8회 인상파전에 큰 반항을 일으켰다. 3년 동안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쇠라는 아침 일찍부터 라 그랑드 자트 섬에 나가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아틀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창조해 화면에 배치시켰다.


포즈를 취하는 여인들 1886~88
실내에 포즈를 취한 3명의 누드 모델이 보이고 그 옆으로 쇠라의 '그랑쟈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커다랗게 벽면을 차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거대한 크기는 물론 허구적이지만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다시 한 번 그림에 인용함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앞에 포즈를 취한 모델들은 점묘로 인체의 묘사를 시도한다.

포즈를 취하는 여인들을 위한 습작1886~87  유채
누드화를 그리면서 쇠라는 아틀리에 내부의 빛을 통해 흐르는 인공 조명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필촉의 크기가 부분 부분 다르게 사용되었으며,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점들은 자유자재로 날아 다니고 있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실험 이후 쇠라의 그 다음 거대한 작품인 <포즈를 취하는 여인들>은 그가 과학적 색채 이론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쇠라의 분할 묘법은 3세기 로마의 고전미술에서처럼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가 멀리서 보면 색이 합쳐져 형태가 드러나는 작품들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쇠라는 색채의 순도와 명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순수한 색채들이 시각 작용으로 인해 눈에서 혼합되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할 묘법이라 불리는 이 기법은 사물의 윤곽을 허물어뜨리고, 모든 형태의 다양한 색깔의 점들이 한데 찍혀, 그의 그림을 알아보기 힘들게 하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관계에 대한 복잡하면서도 시적인 비유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왼편에 등을 돌리고 있는 앉아 있는 여인은 옷을 조심스럽게 벗고 있고, 가운데 여인은 정면을 향해 포즈를 잡고 있다. 오른편에는 스타킹을 신고 있는 여인이 있는데, 이 세 여인은 쇠라 특유의 설정으로 각각 독립된 자신으로 돋보이고 있다

서커스의 호객1888년, 99.7×150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랑자트 섬>의 자연광선과 <서있는 모델>의 작업실 조명에 이어 여기서는 인공조명이 등장된다. 가스등과 아세틸렌등은 유랑곡예단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라드(La parade)는 손님을 끌기 위한 간단한 코메디를 말한다. 쇠라가 보여주는 엄격하고 질서정연한 구도에 의해서 완성되는 조형적 구성은 견고한 현대 회화의 미래를 예고한다.  이 작품은 아마도 인체주의까지 예고하는 유일한 19세기 회화일 것이다. 파라드는 손님을 끌기 위한 간단한 코메디를 말한다. 쇠라가 보여주는 엄격하고 질서정연한 구도에 의해서 완성되는 조형적 구성은 견고한 현대 회화의 미래를 예고한다.


 

샤위춤1889~90 캔버스 유채169.1×139cm 뮐러 미술관

쇠라의 점묘가 장식적인 경향이 강해짐에 따라 작품에는 윤곽의 선이 살아나게 되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화면의 패턴은 미끄러지듯 리드미컬한 구도를 이루며, 움직이는 인물들의 이미지를 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쇠회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화장하는 여인
쇠라의 애인 마드레느 노브로크를 그린 작품인데 후기의 양식성이 농후하게 나타나 있다. 인물의 객관적인 묘사와 인물과 배경 전체를 에워싸는 분위기에 깃들어 있는 문양적(紋樣的) 패턴이 기묘하게 어우러져 일종의 음악적인 톤을 형성해 주고 있다. 이 점은 <샤이 춤>이나, <서커스>에서도 발견되는 공통성이다. 여인의 모습과 화장대의 모양, 그리고 배경의 곡선적 패턴이 상승하는 무드를 타고 있는데, 쇠라는 이 상승적 무드를 즐거움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그 즐거움은 다른 실내 작품에서와 같이 유머를 곁들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화면 왼쪽 위에 그려진 꽃이 있는 곳에는 원래 쇠라 자신의 얼굴이 그려졌다가 지워 버렸다

봄의 그랑드 1888 캔버스 유채 65×82cm벨기에 왕립미술관

야외에서 스케치를 하고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완성했던 것으로, 쇠라는 야외에서 보았던 그 느낌을 그대로 살려 화면에 질서를 부여하고 끈기 있게 필촉을 두들겼다. 그 필촉의 힘으로 색조에 힘을 불어넣으며 완성을 이룬다.
 
서커스 바생항구  옹플레르등대  옹플레르부둣가 포즈를취한옆모습 파라솔여인 
 


 
1. 승전계(勝戰計): 제1계~제6계.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 :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너다.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하면 나태해지고, 자주 보면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음(陰)은 양(陽) 속에 있는 것이지. 양의 대립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양(太陽)은 태음(太陰)이다.

제2계. 위위구조(圍魏救趙) :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 
적을 공격하는 것은 분산시키느니만 못하고,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비밀리에 공격하느니만 못하다.

제3계. 차도살인(借刀殺人) :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해치다. 
적은 분명하고 친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는 것은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각출'로써 일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제4계. 이일대로(以逸待勞)
 : 쉬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피로에 지친 적을 맞아 싸우다. 
적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꼭 싸움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효과적인 방어는 강한 자를 약하게 만들고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든다.

제5계. 진회타겁(진火打劫)
 : 남의 집에 불난 틈을 타 도둑질하다. 
적이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적을 패배시킨다.

제6계.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을 공격하다. 
적의 지휘가 혼란에 빠지면 앞 못보는 장님과 같다. 이는 홍수가 범람하는 상이나, 적이 자아 통제를 할 수 없는 틈을 타서 그를 멸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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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적전계(敵戰計): 제7계~제12계.

제7계. 무중생유(無中生有) :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기만하면서 기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전선에 무언가를 배치하여 적을 이중의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즉 기만적인 외형은 종종 다가올 위험을 감추고 있는 법이다.

제8계. 암도진창(暗渡陳倉)
 : 한고조가 은밀히 진창으로 진군하여 항우의 기선을 제압하고 한나라를 세우다. 
적을 제어하기 위해 행동을 고의로 노출시키고 기습공격을 통해 주도권을 장악하다.

제9계. 격안관화(隔岸)관화(觀火)
 : 강 건너 불보듯 하다. 
적의 연합군 내부에 심각한 내분이 발생했을 때, 조용히 그 혼란이 극에 달하기를 기다린다. 적의 내부의 투쟁이 격화되면 적의 연합군은 붕괴를 자초하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서 비롯되는 유리한 형세를 면밀히 관찰하여 행동으로 옮길 준비를 한다.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속에 칼날을 품다. 
적으로 하여금 우릴 믿게 안심시킨 후 비밀리에 일을 도모한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후 행동하며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부드러운 외형에 강한 내면을 숨기는 것이다.

제11계. 이대도강(李代桃강)
 : 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대신 말라죽다. 
운세는 반드시 기울기 마련이니, 작은 것을 희생시켜 전체의 이로움을 구해야 한다.

제12계. 순수견양(順手牽羊)
 : 기회를 틈타 양을 슬쩍 끌고 가다. 
적의 미세한 틈이라도 받드시 장악해야 하며, 조그만 이익이라도 반드시 얻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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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전계(攻戰計)
 : 제13계~제18계.

제13계. 타초경사(打草驚蛇) : 풀을 베어 뱀을 놀라게 하다. 
적에게 어떤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가서 살펴보아야 한다. 자세한 정찰 후에 비로소 행동해야 한다. 자세한 정찰 후에 비로소 행동해야 한다. 반복하여 정찰해야만이 적의 숨겨진 음모를 발견할 수 있다.

제14계. 차시환혼(借屍還魂)
 : 죽은 사람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시체를 빌려 부활하다. 
강한 자는 이용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한 자는 도움이 필요하니, 이용할 수 없는 것을 빌어서 이용한다. 내가 약한 자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가 나에게 구한다.

제15계. 조호리산(調虎離山)
 : 범을 산 속에서 유인해내다. 
자연조건이 적에게 불리해지기를 기다리고 기만으로 그를 유혹한다. 적이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을 공격하도록 유혹한다.

제16계. 욕금고종(欲擒姑縱)
 :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적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면 적이 도리어 맹렬하게 반격한다. 적을 달아나게 놓아두면 그 기세가 꺾일 것이다. 적을 쫓되 다급하게 쫓지 않고, 적의 힘을 고갈시키고 전투의지를 쇠약하게 만들어 적을 분산시킨 후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면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적을 진압할 수 있다. 즉 공격을 주도면밀하게 지연시킴으로써 적을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17계. 포전인옥(抛전引玉)
 : 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지극히 유사한 것으로 적을 미혹시킨다음 공격한다.

제18계. 금적금왕(擒賊擒王)
 :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는다. 
적의 주력을 궤멸시키고, 그 괴수를 사로잡아 적을 와해시킨다. 용도 물을 떠나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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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혼전계(混戰計)
 : 제19계~제24계.
 

제19계. 주저추신(釜底抽薪) : 솥 밑에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 끓어오르는 것을 막다. 
강한 적을 만났을 때는 정면으로 공격하지 말고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내 공략하라. 이것이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제20계. 혼수모어(混水摸魚)
 : 흐린 물에서 고기를 잡다. 
적의 내부가 혼란한 틈을 타서, 그 약자를 당신의 편에 끌어들여라. 그러면 적은 자멸하게 될 것이다.

제21계. 금선탈각(金蟬脫殼)
 : 매미가 허물을 벗듯 감쪽같이 몸을 빼 도망하다. 
적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진지의 원형을 보존하고 군대가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하라. 그러면 적이 감히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제22계. 관문착적(關文捉賊)
 : 문을 닫아 걸고 도적을 잡다. 
세력이 약한 소규모의 적에 대해서는 포위하여 멸망시켜야 한다. 퇴각하게 놓아두면 섬멸하는 데 불리하다.

제23계. 원교근공(遠交近攻)
 :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다. 
멀리 있는 적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편이 유리하다. 멀리 있는 적과는 정치적 주장이 다를지라도 잠시 연합하라.

제24계. 가도벌괵(假道伐괵)
 : 기회를 빌미로 세력을 확장시키다. 
두 개의 강대국 틈에 끼인 소국이 적의 위협을 받게 되면 즉시 군대를 보내 구해줌으로써 영향력을 확장시켜야 한다.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단지 말만 앞세우면 신뢰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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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병전계(竝戰計)
 : 제25계~제30계.
 

제25계. 투량환주(偸樑換柱) : 대들보를 훔쳐내고 기둥으로 바꾸어 넣다. 
연합군으로 하여금 진영을 자주 바꾸게 하여 그 주력 부대를 빼내게 한다. 그들이 스스로 붕괴하기를 기다려 그 틈을 타 적을 공격한다. 이는 마치 수레의 바퀴를 빼는 것과 같다.

제26계. 지상매괴(指桑罵槐)
 :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려면 경고를 해야 할 것이다. 강한 기세로 나아가면 충성을 바칠 것이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 순종하게 될 것이다.

제27계. 가치부전(假痴不癲)
 :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척하지 말라. 
무지한 척 가장하되 무슨 행동을 하지 말라. 총명한 척하며 경거망동하지 말라. 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조용히 계획하라. 천둥번개가 순식간에 치는 것처럼.

제28계. 상옥추제(上屋抽梯)
 : 지붕으로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우다. 
고의로 약점을 노출시켜 적을 그대의 진영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 적의 응원부대를 차단하여 적을 사지로 몰아 넣어라. 판단착오 때문에 적은 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제29계. 수상개화(樹上開花)
 : 나무에 꽃을 피우다. 
허위로 진영을 배치함으로써 실제보다 세력이 강대하게 보이게 만든다. 기러기가 높이 날아오를 때 날갯짓으로 위용을 더하는 것과 같이.

제30계. 반객위주(反客爲主)
 : 주객이 전도되다. 
기회를 엿보아 발을 들여놓고, 관건을 파악한 다음, 차츰차츰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면 마침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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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패전계(敗戰計)
 : 제31계~제36계.
 

제31계. 미인계(美人計) : 미녀를 바쳐 음욕으로 유혹하다. 
세력이 강한 군대는 그 장수를 공격하고 지략이 뛰어난 자는 색정을 이용한다. 장수가 약해지고 병사가 퇴폐에 흐르게 되면 전투의지가 꺾이는 법이다. 이렇게 적의 약점을 이용하여 아군을 보전한다.

제32계. 공성계(空城計)
 : 빈 성으로 유인해 미궁에 빠뜨리다. 
아군의 군대가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적을 혼란에 빠뜨린다. 적이 강하고 아군이 약한 상황에서, 이 계책은 교묘하고 또 교묘한 것이다.

제33계. 반간계(反間計)
 : 적의 첩자를 이용하다. 
반간계야말로 적에 대한 기만전술 중 으뜸가는 것이다. 적의 첩자를 역이용함으로써 아무런 손실없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법이다.

제34계. 고육계(苦肉計)
 : 자신을 희생해 적을 안심시키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법이므로, 상처를 입었다면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이 점을 이용하여 적으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믿게 만든다. 진실을 거짓으로 가장하고 거짓을 진실로 꾸며 행동한다.

제35계. 연환계(連環計)
 : 여러 가지 계책을 연결시키다. 
적의 병력이 강할 때는 무모하게 공격해서는 안된다. 적의 내부를 교란시켜 그 세력을 약화시켜야 한다. 휼륭한 지도자는 하늘의 은총을 얻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제36계. 주위상(走爲上)
 : 도망치는 것도 뛰어난 전략이다. 
강한 적과 싸울 때는 퇴각하여 다시 공격할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도주는 자주 사용되는 군사전략의 하나이다.

세계의 아찔한 전망대 10곳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질색인 곳이겠지만 모험과 쓰릴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 줄수 있는 관광지들이 있다
번지점프를 할 수도 있고 높은 고도에서 장엄한 자연의 경관을 스릴 있게 감상 할 수 있는 세계의 다양한 관광 포인트 들이 있다.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게 안달나게 만드는 무서운 관광지 10곳을 모아 보았다

"알프스의 발코니"로 불리우는 다흐슈타인 스카이 워크다.

해발 2,700미터에 있는 이 전망대는 나이아가라 폭포나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보다 더 높은 높이에 있다.




노르웨이 ; Aurland 전망대

노르웨이에 있는 이 전망대는 2,000피트(699미터)의 상공에 자리해 있다.
노르웨이 관광지 경연에서 1등을 차지한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가 곡선으로 아래쪽으로 꺽여 있어 조금만 더 걸어가면 떨어질거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끝에 유리로된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염려는 없다.


아리조나 ; 그랜드캐년 전망대

유명한 아리조나의 그랜드캐년 전망대의 모습이다.
4,000피트(약 1200미터) 상공에 65피트의 길이로 말굽형의 형태로 곡선으로 상공에 연결되어 있다. 난간에는 4인치 두께의 강화유리가 설치되어 있어 그랜드 캐년의 장관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 구조물은 70톤의 무게를 지지하고 있는데 시간당 100마일의 바람을 견뎌낼 수 있다.


브라질 ; 이구아수 폭포 전망대

이 전망대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장면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폭포위에 걸쳐져 설치되어 있다.
폭포수에서 나오는 물방울들이 온몸을 적시기 때문에 비옷은 필수인데 80미터 절벽에서 떨어지는 이구아수 폭포의 장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뉴질랜드: 스카이 타워

이 스카이 타워는 328피트(99미터)의 높이에 있는데 남반구에서 가장높은 건축물이다.
이 전망대를 만들기 위해서 2천톤의 강화철근이 사용되었고 660톤의 철제기둥이 설치되었다.
시속 200킬로미터의 풍속과 리히터 8규모의 지진에도 안전하도록 설계되어 안전상에는 문제가 없다. 시야가 좋은 날에는 무려 82킬로미터의 범위까지 전망이 가능하다.
강화유리를 바닥에 설치해 멋진 광경을 놓치지 않도록 306도의 시야를 제공한다.


오스트레일리아 ; Illawarra fly Tree Top Walk

뉴사우스웨일즈 남부고원지대의 로버트슨지역에 있는 이 전망대는 6개월간의 공사끝에 2008년 2월에 완공된 곳이다.


스위스 ; Landscape Promontory

이전망대는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건설중이고 캐나다 산맥의 관광을 부흥시키려는 계획의 강철과 티타늄으로 제작 맛지오레호의 숨막히는 경관을 선사해줄것이다.


위스콘신 ; Infinity Room at House on the Rock

1959년에 지어진 이전망대는 미국 위스콘신주의 스프링 그린 지방에 있다.
이 전망대의 특징은 수백피트의 높이에서 계곡 아래쪽을 바라볼수 있는 마치 집에 있는 방같은 곳에서 전망을 즐기는 느낌을 준다.


이태리 ; Il Binocolo

일 비노콜로라는 단어는 쌍안경이라는 뜻이다.
이 전망대는 Trauttmansdorff성의 식물원안에 설치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 티롤전망대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스튜바이 빙하에 있는 이전망대는 해발 3천피트 상공에 설치되어 있는데, 벼랑끝에서 9미터 정도가 튀어나와있다.
이 전망대를 걸어가는 기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것처럼 흥분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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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옥의 개념
가톨릭교회에서는 연옥설을 주장한다. “연옥”이란 라틴어로 "Purgatorium"이며, “깨끗하게 하다”, “정화하다”는 뜻이다. 즉 연옥이란 “정화의 장소”를 말한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정화 받는 장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2. 초대교회 교부들이 진술한 비슷한 개념들
가톨릭교회가 공적으로 연옥을 교리로 확정하기 이전 초대교회 교부들의 진술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부들의 진술들은 연옥을 말하기보다는 죽음 후에 인간의 영혼이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마태복음 5: 26을 해석하면서 영혼이 부활하기 위하여 그의 죄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남김없이 치러야 할 교도소에 대하여 말한다. 키프리아누스(Cyprianus)에 의하면, 믿음 속에서 세상을 떠난 성도들, 특히 순교자들은 죽음 즉시 궁극적 구원을 얻지만, 박해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기를 원하였던 사람들은 죽음 후에 정화를 받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에 의하면, 살아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었던 정화의 과정은, 죽음 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오리게네스(Origenes)는 클레멘스의 뒤를 이어, 야웨신이 죄 된 인간을 위하여 설치한 "채무 구류소"(Schuldgefangnis)와 "지혜로운 불"에 대하여 말한다. 이 불을 통하여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정화의 과정이 일어난다. 이 과정은 인간의 죄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죄에서 인간을 깨끗이 씻고 부활의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야웨신의 자비로운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에 의하면, 인간 안에 있는 야웨신의 형상이 회복되기 위하여 정화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그레고리는 정화하는 불로써 묘사한다. 이 정화의 과정이 죽음 이전까지 실현되지 않을 때, 그것은 부활 후에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끝난 후, 인간은 야웨신의 삶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3. 중세 가톨릭교회의 연옥의 교리화
중세기에 이르러 연옥설은 가톨릭교회 내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땅 위에서 지은 죄와 벌에서 정화의 불을 통하여 깨끗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Albert, Thomas v. Aquinas, Bonaventura, Skotus, Durandus) 본래 정화의 불이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것인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정화의 불을 물질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리하여 정화의 불은 하나의 장소로 생각되었다.
1274년 리용(Lyon) 공의회는 연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참으로 참회할 뜻이 있는 자들이 참회의 열매들을 통하여 그들의 행위와 게으름에 대한 보상을 하기 이전에.. 사망하였을 경우, 그들의 영혼은 죽음 후에 정화의 벌을 통하여 (poenis purgatoriis seucatharteriis)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벌을 면케 하기 위하여, 살아 있는 신자들의 중재의 기도, 미사 성제(聖祭)와 기도와 헌금, 그리고 교회의 질서에 따라 신자들이 행하는 경건의 여러 사역들은, 그들의 벌을 면케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연옥설은 1336년 교황 베네딕트 12세(Venedikt XII)의 교서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공적 교리가 되었다. 이 교서에서 교황은 마지막 부활이 있을 때까지 죽은 자들이 잠자는 상태에 있다는 교회의 전통적 이론을 거부하고, 죽은 자들은 죽음과 동시에 야웨신의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각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야웨신의 심판을 받는다. 이 상태에서 영원한 삶에서의 자신이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한 모든 것은 인간 영혼 자신의 결단으로는 되돌이킬 수는 없는 상태가 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야웨 신을 거부하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반면, 믿음 가운데서 죽는 자는 죄의 용서를 받는다.
믿음 가진 신자는 그러나 야웨 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할 수 없다. 그는 자기의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았고, 자기의 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의 영혼은 그들의 죄를 완전히 벗기까지 연옥의 불 속에서 정화되어야 한다. 지옥은 모든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는 장소이지만 연옥은 죽음 후의 미래와 희망으로 가득한 장소이다.
이 세상에 사는 신자들의 삶이 끊임없는 참회와 정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처럼, 죽은 자들의 영혼도 연옥의 불 속에서 참회하며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정화되어야 한다. 정화의 불 곧 벌과 정화의 상태가 있다.
무거운 죄들과 시간적인 죄의 벌에 묶여 있는 영혼들은, 이 상태 속에서 정화된다.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규정한 법에 상응할 수 있는 데까지 인격이 완성되어진다. 연옥에서 인간의 영혼은 두 가지 벌을 받는다. 첫째는 저주의 벌이다. 하나님을 동경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보는 기간이 연기되어 고통을 받게 하는 벌이다. 둘째는 감각의 벌이다.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죄를 참회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정화하는 벌이다.
살아 있는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트렌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신자들의 중보의 기도를 통하여, 무엇보다 먼저 야웨신의 마음에 드는 제단의 제물을 통하여 도움을 받는다" 즉 신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중재의 기도와 교회에 바치는 제물을 통하여 정화의 과정이 빨리 끝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살아 있는 신자들이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길을 ‘성도의 교통’이라는 개념에서 찾아낸다. 살아 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의 교통이 가능하며 성자의 중재가 가능하며 대신 보상을 제시 할 수 있다고 본다. 죽은 성도를 위하여 성만찬 즉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를 하거나 살아 있는 성도가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보상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연옥이 어디 있는지, 연옥의 고통과 정화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 연옥의 장소와 시간적 길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신적 신비에 속한다.

4. 연옥설의 문제점
첫째는 성경에 명백한 증거가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구절은 마태복음 12장 32절과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15절이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서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하리라”는 말에서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하는 과정이 죽은 후에 분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용서 받지 못 하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본문으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 개념인 연옥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성령을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조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15절에서는 한 개인의 특수한 심판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한다. 한 개인의 선한 일과 악한 일에 대하여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언급이라고 보는 데, 그러나 이 본문은 거짓된 이론을 불에 타버리지만 복음의 참된 이론은 영속성을 가진다는 것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둘째는 기존 교회에서 행하는 일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교리를 만들었다.

박해 시에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 한 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들을 위한 설명을 시작했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죽은 자신의 친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걱정들로 인하여 중재 기도와 헌금 등을 드리는 것을 합리화하고, 또한 그것으로 교회의 재정이 마련되어지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이 교리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교회의 편리를 위하여 교리가 만들어져 합리화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셋째는 죽음 이후 신자에 대한 정화가 신자의 대리적 보상을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이 죄의 사함을 받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인간이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자신을 정화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용서되는 것이다.
넷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다섯째는 인간의 죽음은 육체가 죽는 것이다. 육체의 죽음과 함께 의식이나 인지, 의지도 함께 죽는다. 따라서 육체가 결여되지만 의식과 의지와 인지를 가진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주장은 현실적인 죽음의 현상을 거부하는 것이다.

 

출처: 김종수 목사

http://www.shinchon.org/bbs/view.php?id=new_jesus2&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

 

* 보충 자료

지옥과 연옥에 관하여 : http://www.siloam-church.org/lecture/sesin/sesin%20243.htm

연옥에관하여 : http://cafe.daum.net/shinjesuslove/WmmZ/343?docid=1LWyh|WmmZ|343|20110301140609&q=%BF%AC%BF%C1%BF%A1%20%B0%FC%C7%CF%BF%A9

로마가톨릭주의의 정체 http://blog.daum.net/mulkogi153/13760267

쉽게 풀어쓴 카톨릭 비판 http://blog.naver.com/mokpojsk?Redirect=Log&logNo=130003852964


아주 노련하고 존경받는 수도사 한 사람이 젊은 수도사의 교육을 맡게 되었습니다.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했던 젊은 수도사는 교만하고 건방졌지요. 늙은 수도사는 고심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 수도사가 상처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늙은 수도사는 딱딱하게 굳은 흙을 만지면서 젊은 수도사에게 “여보게, 여기에 물을 좀 붓게.”라고 말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젊은 수도사는 스승의 말에 물을 가져와 부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흙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옆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노련한 수도사는 말없이 망치를 집어 들더니 딱딱한 흙덩이를 잘게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흙은 너무 딱딱해서 물을 흡수하지 못한다네. 그래서 이렇게 깨 줘야 하지.”

그런 뒤 젊은 수도사에게 다시 물을 부어 보라고 했습니다. 젊은 수도사가 물을 붓자 부드러워진 흙 속으로 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늙은 수도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기다가 말이야 씨를 뿌리면 틀림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걸세. 딱딱한 흙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네. 씨를 뿌려도 곧 죽고 말지. 사람도 이와 같다네. 교만한 마음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어. 내가 깨어지고 부서지지 않으면 그곳에 아무것도 담을 수 없지. 수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깨어짐의 법칙이라고 말하지.”

그제야 젊은 수도사는 늙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쳤습니다.

글ㆍ월간 《좋은생각》 편집팀 / 2008년 11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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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영원한 심판

영원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입장을 하나님의 성회의 “근본진리 선언”에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제 15항, 마지막 심판 :

악한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그들의 행한 대로 심판받는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마귀와 그 사자들 그리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함께 영원한 심판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못 에 던져질 것인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마25:46, 막9:43-48, 계19:20, 20:11-15, 21:8) 여기서 우리는 심판이 마귀와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며, 둘째 사망이라 불 리는 불못에 있는 것임을 주목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정의하고 설명을 하고자 한다.

악한 자는 사단과 운명을 같이 나눈다.

성경은 불못이 사람을 위해 예배된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되었다고 말씀한다.(마25:41)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항상 선하셨다. 
첫 번째 하늘과 땅은 좋게 창조되었다.(창1:31). 율법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하 여 주어졌다.(신6:24)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벧후 3:9) 사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선을 위하여 모든 일에서 역사하신다.(롬8:28)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단이 앞으로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불못에 그를 가두러 놓으실 것이다. 사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단의 운명을 같이 나눌 것이다.(요16:8,11)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사단을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요8:44)
사단이 받는 벌을 함께 받는 사람들은 “악인”이라고 한다.(마13:49,50) 이것은 그 행동이 악하고 가치 없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자이며(믿음이 부족하여 비겁하게 행한다), 믿지 아니하는 자 들이며, 흉악한 자들이며(혐오스럽고 진저리나는 사람), 살인자들이며, 행음자들이며, 술객들이며(마술을 사용하는 사람과 마약을 쓰는 사람), 우상 숭배자들이 며,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다.(계21:8, 마8:12, 13:41,42, 22:13, 23:15, 25:30,33, 눅13:27, 계21:27, 22:15 참조) 바울은 이것을 구원에 관한 개인적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 와 복음을 계속적으로 순종치 아니하는 모든 자라고 요약하고 있다.(살후1:8)

악한 자의 심판은 끝이 없다.

“근본진리의 선언”에서 주어진 첫 번째 성경 인용문인 마25:46에서 “영(헬라 어, anonion)벌”이라는 구절을 사용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절대적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러나 같은 구절에서 예수께서 똑같은 말을 “영(헬라어, aionion)생” 이라는 말에서 사용하는데 여기서 이것은 직접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전자와 병행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생명 이 영원한 것처럼 그 벌도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악인을 회복시켜 주 겠다는 어떤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마25:41에서 그 벌은 “영원한(헬라어, anionion)불”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께서 악인이 죽은 후에 가는 중간상태를 하나의 불로서 특정짓고 있다. (Hades, hell, 눅16:23,24) 그러나 이것은 영원히 있을 불과 구분해야 한다. 눅 16장에서 예수의 말씀은 악인이 의식이 있는 상태이며,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 으며,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영원한 불 은 예수께서 게헨나 혹은 “불의 게헨나”라고 부르셨던 것과 같은 것이다.(마 5:22,29,30, 10:28, 18:8,9, 23:15, 막9:43,45,47, 눅12:5) 이 불은 영원할 뿐만 아니라 또한 꺼지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 이것은 그 불이나 벌이 끝날 수 있는 가 능성이 전혀 없음을 가르친다. 그 형벌은 불과 마찬가지로 영원하다. 만일에 불 이 악인을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라면 불이 영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는 같은 불을 “풀무불”이라고 말씀하셨는데(마13:42,50),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가는 비참한 후회는 “멸망의 자식”으로서 영원한 파멸에서 자신을 구하지 못하였다.(요17:12, 행1:16-20) 예수께서는 이렇게 울며 이를 가는 것을 “바깥 어두 운데서” 일어나는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다.(마8:12, 22:13, 25:30) 이 어두움은 최종적인 하나님과의 분리이며, 새 예루살렘의 빛이신 어린 양과의 분리를 가리 키는 것이다.(계21:23)
또 다른 신약성경 구절은 영원한 벌은 영원한 심판으로 언급한다. 즉 영원토록 유효한 심판이라는 뜻이다.(히6:2) 여전히 다른 구절은 “침륜”(문자적으로 파괴, 사망, 분리를 의미함) 그리고 “멸망”(영원한 사망) 이라고 말한다.(딤전6:9) 이러 한 “영원한 멸망”(혹은 분리)은 “주님의 존전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능력의 영 광으로부터”의 분리이다.(살후1:9) 이러한 구절들에서 “사망”이라는 단어는 영 적 사망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죄인은 현재도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이며, 그리스도와 분리되었거나 그리스도가 없는 자이다. (엡2:1,12) 영원한 심판은 최종적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를 가져오는 것이다.

둘째사망 

성경은 이렇게 최종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둘째사망”이라고 부른다. 요한계시 록에서 불못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계20:14) 예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게헨나 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눅12:4,5)고 경고하셨을 때 예수께서 는 게헨나를 둘째 사망과 동일시하였다. 이것은 확실히 육체적인 죽음 후에 또 다른 죽음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 죽음은 상태나 종류에 있어서 판이 하게 다르다. 육체적임 죽음 후에 또 다른 죽음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육체적 인 죽음이 몸에서와 우리의 생활환경에서의 분리라고 한다면, 둘째 사망은 하나 님으로부터와 새 창조에서 맛보게 될 생명으로부터 최종적이고 영원한 분리이다. 이 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사람 중에는 짐승의 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있다. (계14:9-11) 이 사람들은 천사들과 그리스도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다. 즉 봇물에 갇혀서 새로운 창조물과 격리되어 있지만 나사로가 음부 (Hades)와 아브라함 몸 사이에 있는 깊은 구렁을 건너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거부한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눅16:23) 그들은 결코 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그 고난의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 다....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로다.”(계14:11)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 문이다. 이들은 영원히 성도들에게 약속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절 중 어느 것도 최종적인 심판이 선언된 뒤에 복구시키거 나 회복시키는 것을 약속하는 암시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볼못이나 게헨나와 관련하여 신성한 기관은 나타나 있지 않다. 불은 막9:44,48의 구더기와 병행하고 있다. 그것은 깨끗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형벌로서의 붙인 것이다. 거기에는 또 다른 기회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를 흔들어 깨워“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며 외치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고후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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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당신께 드리는 글.


늘 그랬듯이 오늘 밤도 사랑하는 당신, 행복하기를...
당신, 그립기는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외롭지는 않을 거예요.

Little Cabin On The Hill - Daniel O' Donnell

 
 
 
출처: 한국중앙교회 전도부 까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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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집에서 드린 심방예배 /최복규목사
    
    새로 이사 온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갔다.
    이상하게도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뜰 안쪽에는 울긋불긋한 천과
    부적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나붙어 있었다.
    알고보니 그 집 주인이 무당이라고 한다.
    
    무당은 우리의 예배 인도를 방해했다.
    우리 심방대원들은 무당 귀신을 공격하는 찬송과 기도를 했다.
    심방예배를 끝내고 집을 나서면서 대문에 손을 대고 반복 기도는 물론
     "이 집 주인무당도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믿고 구원받게 하여 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무당집 심방예배를 드린지 몇 시간 안되어서 새 성도가 
    숨가쁘게 달려 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지금 무당집에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목사님과 심방대원들이 돌아가신 뒤 그 집 주인 무당이 열이 펄펄 나면서
     "나 죽는다"고 소리 소리 치면서  제발 좀 살려 달라고 호소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인무당은 "빨리 목사님 좀 모셔다가 예배드리게 해 주고
    자기를 죽이려는 귀신을 쫓아 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급히 전도사님과 집사님 몇분을 데리고 무당집으로 달려갔다.
    무당은 거의 실신한채 열대자로 마당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무당을 살려 주실 것을 간구하는 예배를 드린 후에 
    무당집 안팎에 있는 각종 부적들을 다 떼어 내고 즐비하게 쌓인 
    놋그릇들은 모두 싸가자고 팔아 버렸다.
    우리의 기도대로 무당은 기적같이 살아났음은 물론 그 무당은 후에 
    아주 휼륭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할렐루야~! 아멘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사도행전19:19-20)  



 


{살아있는 영험 죽어있는 영험중}



츨처: 한국중앙교회  전도부 까페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자리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예배의 첫자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자리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둘째 자리는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때때로 다른 어떤 것이 둘째 자리에 들어서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오직 하나님만이 계실 따름입니다.
            내가 달라스에 가서 집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여보, 나 지금 여기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다 잘 되고 있고.

            그런데 말야, 지금 다른 여자하고 같이 다니며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거든.

            하지만 걱정 말아. 당신은 여전히 첫째야."

            그러고 나서 뉴올리안즈에 가서 집에 전화를 걸어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뉴욕에 가서도 그렇게 합니다. 아내 버지니아는 첫째 여자가 되길 원치 않습니다.

            그녀는 '유일한 여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녀는 실로 나에게 유일합니다.

            하나님과 비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 명예? 권력? 쾌락?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둘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으며,

            그에 비길 만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삶에

            유일한 자리를 차지하셔야 합니다.

            리오이 아임스의 '영적 전쟁의 성서적 원리' 중에서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은혜의 단비' 중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는 이상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인 아니다. 신앙을 고백한 많은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실재하시고 행하시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 자세는 언제나 말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 드러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을 뿐 다른 방도는 없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명령할 수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단지 거짓된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우리의 신앙에 직면해 갑자기 실제 생활의 불 속에서 믿음을 시험한다면 대부분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진리가 의미하는 것을 당황하지 않고 인정하기 위해 자신의 생활을 조절하는데 매우 능숙해져 있다. 표면상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만 그의 도우심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능숙히 조절한다. 주를 자랑하되 그를 신뢰하지 않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야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거짓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실패하시면 빠져나갈 길을 마련하다. 참 믿음은 한 길밖에 모르며, 제 2의 길이나 임시변통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빼앗긴다 해도 신경쓰지 않는다. 참 믿음은 하나님 아니면 전적인 실패 둘 가운데 하나이다. 아담이 이 땅위에 창조된 이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지하는 단 한 사람의 기대도 저버리신 일이 없다.

            거짓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자기의 형식적인 신조를 위해 싸울 것이다. 그러나 진실한 신조에 자기 장래를 맡겨야 한다는 데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언제나 제2의 도피구를 마련해 두고 지붕이 꺼질 경우 도망하려 한다.

            말세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지금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신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참으로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때가 기필코 달쳐올 것이다. 건강과 재물과 친구와 피난처는 다 쓸어버림을 당하고 우리는 하나님만 소유하게 될 것이다. 거짓 신앙인은 이 말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참 신앙인은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하는 경지에 이르고서도, 세상 살 동안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지 못한 것이 발견된다면 그야말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과연 실제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 넓을 곳으로 들어가려면, 지금 바로 하나님을 모셔 드리라. 이것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치료법이다

            출처: 개혁주의마을/Gace


             

            고운 별 노래 최송연 별이 될래요 그대 위한 별이 되어 밤이면 당신 창가에서 고운 노래 불러 드리겠어요 짓누르는 생의 무게, 갈꽃 흐느끼는 소리에도 잠 못 이루는 당신 당신의 그리움도 당신의 아픔도, 슬픔도 모두 다 내가 가져갈게요 사랑스런 그대 사르륵사르륵 흐르는 별 노래 들으며 행복한 꿈만 꾸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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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처럼 사는것이 현명한 삶


              노자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
              그 물의 진리를 배우라는 것이다

              첫째: 물은 유연하다
              물은 네모진 곳에 담으면 네모진 모양이 되고
              세모진 그릇에 담으면 세모진 모양이 된다

              이처럼 물은 어느 상황에서나
              본질을 변치 않으면서 순응한다

              둘째: 물은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물은 평상시에는 골이진 곳을 따라 흐르며
              벼 이삭을 키우고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러나 한번 용트림하면
              바위를 부수고 또한 산을 무너뜨린다

              셋째: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물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드넓은 바다이다

              사람도 이 물과 같이 모나지 않고
              유연하게 다양한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정의 앞에
              주저하지 말고 용기 있게 대처하며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겸손하게 자기자신을 낮추는
              현명한 삶을 살아야 한다

              - 좋은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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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1-2)"


            가는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가족을 가르치는 데 신경을 썼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누가는 고넬료가 모든사람에게 자비로웠고 늘 하나님께 기도했으므로 그의 사랑의 선행을 칭찬합니다. 율법은 두 돌판에 담겨 있으므로 누가는 앞부분에서 고넬료의 경건을 칭찬한 다음 두 번째 부분에서 그가 사람들에게 사랑의 선행을 실천했다고 칭찬합니다. 이 점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데 그 까닭은 고넬료의 사람됨 속에 옳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이 잘 제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삶을 잘 정돈하는 가운데 믿음과 신앙을 기초로 삼으십시요. 이 기초가 사라지면 다른 모든 미덕은 한낱 연기처럼 사라질 것에 불과합니다. 누가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기도를, 경건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열매의 열매이자 증거로 간주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와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아버지요 주로 인정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경건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 고넬료의 본을 따라 꾸준히 기도하도록 자신을 채찍질합시다.

            고넬료처럼 우리의 경건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히 드러나서 관대함과 공의를 발휘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밣혀야 합니다. 바로 이 근원에서 참되고 균형잡힌 관대함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들의 고통과 슬픔이 우리에게 긍휼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우리 사이에 있는 연합을 고려하여 우리가 그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우리 자신의 몸의 지체를 돕듯이 도우려 애쓴다면, 그리고 고넬료가 믿음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밖에 없을 때도 진실로 그토록 탁월한 경건과 거룩의 귀감이 되었다면 믿음에 대해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경건을 실천하는 데는 이토록 냉담한 우리는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믿음의 불꽃도 고넬료에게 그토록 큰 효력을 발휘했다면 지식의 충만한 광채는 우리안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켜야 하겠습니까?

            포도나무선교회 /개혁주의마을/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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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고, 노랗고... 손톱의 7가지 건강신호  
             




            노랗거나 물결무늬가 있거나…


            손톱은 우리 신체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말해준다. 손톱이 하얗거나 빨간색을 띄거나, 손톱 표면이 울퉁불퉁하거나 잔물결 같은 형상이 있다면 몸 안에 질병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국의 건강ㆍ의료 정보 사이트인 웹 엠디(Web MD)가 손톱이 알려주는 건강신호 7가지를 소개했다.

            1.창백한 손톱=핏기가 없고 푸른 기가 돌 만큼 해쓱한 손톱은 여러 가지 병이 있다는 적신호다. 빈혈, 울혈성 심부전, 간질환, 영양실조증이 있을 수 있으니 진단을 받는 게 좋다.

            2.하얀 손톱=전반적으로 손톱이 하얀색을 띠면서 끝에 검은색 테두리가 있으면 간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간염에 걸렸을 수 있다.

            3.노란 손톱=노리끼리한 색을 띠면 곰팡이에 감염된 것이다. 심해지면 손톱 밑바닥이 안쪽으로 파고들거나, 손톱이 두꺼워지거나 깨져버린다. 갑상샘이나 폐 질환, 당뇨병, 골다공증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

            4.푸르스름한 손톱=몸이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폐렴처럼 폐에 감염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몇몇 심장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5.물결무늬가 있는 손톱=골다공증이나 염증성 관절염의 징후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손톱 색깔이 변색되고, 손톱 안 피부가 불그스름한 갈색을 띤다.

            6.갈라진 손톱=건조하고 잘 부서지는 손톱은 갑상샘 질환과 관련 있다. 노란색을 띠면서 잘 부서진다면 곰팡이 감염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7.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손톱=이는 손톱 바닥에 생긴 양성의 검은 점이다. 그러나 새롭게 변화된 줄무늬가 생기면 피부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악성 흑색종인지 여부를
            진단받아야 한다.

            왕이 따로 있냐?


            <열왕기 16장>

            지난 주 유다왕국 아비얌 이야기, 하나님께서 등불을 주시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튼튼히 하셨다는 이야기에 이어 이번 주는 다시 북이스라엘 왕조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번,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죽은 슬픈 이야기 기억하시겠지요? 그 일이 있고서도, 또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의 말씀에도 아랑곳없이 여로보암은 우상숭배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22년 동안 재위하고 죽은 다음 그 아들 나답이 왕이 되는데 이때부터 북이스라엘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 왕위찬탈, 쿠데타와 살육의 비극이 이어집니다. '너만 왕이냐, 나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질서와 위계, 권위가 무너지는, 광야에서 고라가 모세를 대적하였던 것처럼, 좀 나간다는 자들이 너도 나도 지팡이를 들고 일어나 서로 물고 뜯는 것 같은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겨우 2년을 재위한 다음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모반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나답왕을 죽입니다.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진멸해 버립니다. 아비야가 병들었을 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24년을 재위하고 죽고 그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엘라 역시 나답처럼 2년 만에 신하인 시므리에게 살해당합니다. 시므리 역시 바아사 집안의 모든 남자를 그 친구까지 죽여서 깡그리 씨를 말려버립니다.

            그런데 그 시므리는 불과 7일 만에 끝납니다.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무리가 오므리를 왕으로 삼아 디르사를 에워싸고 공격하자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거기에서 타죽고 맙니다. 그렇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백성들이 반반으로 나누어져 절반은 디브니, 절반은 오므리를 옹위하고 싸움을 벌립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이긴 오므리가 대권을 잡아 12년을 군림하게 됩니다. 오므리는 그 12년 동안 사마리아를 건축하게 되고 죽으면서 아들 아합에게 왕의를 물려줍니다. 이세벨이라는 악한 왕비를 맞아들인 악한 왕 아합 말입니다.
            (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
            왕권이 죽이고 빼앗는 자들의 손에 이리저리 옮겨다닌 셈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 모든 비극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인간이 왕이 되고 자신이 주인이 됨으로써 죽이고 죽고 빼앗고 빼앗기는 피비린 내나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진정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참 된 왕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만물과 인간은 주를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골 1:16). 그 인간이 피조물의 위치를 벗어나 주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그리하여 스스로 주인 되고 임금 되려는 순간 사단 마귀의 쟁탈전은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은 권력의 싸움터요 나라들간의 전장(戰場)입니다. 피조물들이 서로 주인 되려고, 서로 왕권을 차지하고 재물을 가지려고 다투는 싸움터입니다. 세상은 돈과 생명을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터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이를 생존경쟁이라는 말로 합리화하고 글로벌 경쟁을 정당화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동물이란 말입니까? 오늘날 세계 인구는 70억을 넘어 폭발하고 있고 선진국과 후진국은 부와 가난의 양극화, 나눔과 사랑의 상실 속에 바야흐로 지옥도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습니다. 나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무엇 때문입니까? 나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 속에서 생명과 멸망의 다툼들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주님을 주로 모시지 못 하고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할 때가 아니던가요? 내가, 내 마음이 주님을 떠난다면 즉시 사단마귀의 쟁탈목표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모셨을 때 비로소 안연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암(癌)의 천적은 무엇인가?

            한번 생기면 무덤까지 따라오는 인간의 천적 암

            그러나 그런 암에게도 천적이있으니 그게 바로 백혈구이다.
            암은 백혈구에게 걸렸다하면 100전 100패다.


            (암세포를 무차별 공격하는 백혈구--영양이 부족한 세포가 변이하여 암세포가 된다)

            지금도 건강한 사람의 몸속에는
            암 세포가 천 개에서 오 천개가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모든 게 백혈구가 암세포를 제압하기 때문이다

            즉 암은 백혈구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건강한 세포들은 서로 교신하며 암세포를 찾아 내서 제압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암에 걸리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수술을 하거나
            항암 치료로 다른 세포까지 죽이면서 까지
            힘겨운 싸움을 하다가 패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자연으로 돌아 갔다가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찮케 듣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서 먹는 음식으로 인해
            백혈구와 같은 세포들이 살아 나서 암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세포는 무성한 털로 쌓여있다 영양이 부족하면 털이 사라지고 암이된다)

            의외로 답은 쉬운데 있었던 것이다
            세포에 영양을 공급만 해주면
            그 이상은 모두 세포가 알아서 처리를 하는 것이다

            세포는 8가지 영양소를 필요로하며
            그중 2가지는 식탁에서 공급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6가지는 자연적인 공급이 쉽지 않다


            (무성한 털은 병균의 침투를 사전에 차단하지만 털이없는 세포는 쉽게 감염되고 변이한다)

            과거에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세포에 영양을 풍부하게 공급받았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않고 건강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통해서 먹는 음식으로는 세포를 살리기에는 영양가가 너무 모자란다


            야채속의 항암성분만 먹는 지혜

            야채 속의 비타민 성분이 열로 파괴되는 것을 우려해
            요즘 무조건 녹즙을 짜서 먹는 경향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날즙을 짜서 마시면 비타민C는 파괴되지 않으나,
            진짜로 중요한 항암성분이 야채세포 섬유질 속에 갇힌 채로 우러 나오지 못한채
            그대로 배출되고 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채소 속에 갇혀있는
            포리페놀, 카테킨(탄닌), 프라보노이드, 프로토카테킨산, 푸친, 루친같은 화합물이
            활성산소를 소멸시키는 물질인데,
            데치고 국을 끓여야
            유효성분이 채소세포 속에 갇혀 있다 열에 녹아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즉, 열수로 삶아낸 국이 냉수로 우려낸 생야채보다
            10배~100배나 더 항암작용이 강하여, 그 효력의 80~90%가
            야채덩어리(건더기)가 아닌
            삶은 국물에 있다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근잎새, 무잎새, 우엉, 부추 등은
            삶아낸 것에서 약성 국물이 우러나와
            체내 과산화지질을 줄이고 발암억제 효과를 높인다는
            실험 결과도 발표되었다.

            백혈구에는 암세포와 싸워 암세포를 죽이는 힘이 있는데,

            야채 끓인 국물은 이 백혈구의 작용을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
            담황색 야채에도 그런 성분이 풍부하다.

            출처; 이원섭- 조선왕조 500년의 자연요법 왕실


            이단 발생의 원인

            나성균 ㆍ 2013/05/14 ㆍ추천: 0  ㆍ조회: 2      

            지금 횡행하고 있는 무서운 이단의 발생 원인은 무엇인가? 세가지 원인 즉 성경적, 교회적, 사상적 원인이다.

            1. 성경적 원인

            쉽게 말하면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단이 나타나게 됐다는 말이다. 옛날부터 심지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늘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백성을 유혹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며, 다른 신을 섬기게 함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어지럽혀왔다. 모세시대 출애굽 할 때와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이 살 때에도, 즉 하나님께서 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계심을 보여주실 때도 늘 백성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하였다.

            그 후 왕정시대와 포로시대를 거쳐 예수님 오시기 전,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때는 이단인 거짓선지자들이 더욱 판을 쳤다. 그 뒤로도 기독교 2천년의 역사 속에서 이단은 항상 존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2. 교회적 원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작되었고 성령 강림으로 성령 충만했던 교회도 세속사회와 더불어 살다 보니 자칫 유혹을 받아 진리의 말씀에서 약간씩 멀어지는 경향을 보여오곤 했다. 철저한 복음중심의 신앙과 생활에서 이탈하여 극단적 교조주의와 율법주의로 가기 쉬운 때도 있었고, 설교자들의 치우친 도덕설교를 통하여 복음보다는 윤리를 가르쳐 목마른 영혼들에게 참 생수인 복음을 주지 못할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가장 빠져들기 쉬운 약점이기도 하다. 이것을 제도로 해결하려 하면 마침내는 제도적 부패와 타락 그리고 무기력으로 떨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세교회의 문제였고 오늘날도 얼마든지 똑같은 과오를 범할수 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이단에게 성도를 내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난해한 성경구절 취급에 있어서도 좀더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했음을 보여주고 성경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을 풀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고 이미 주신 복음의 핵심이 구원과 그리스도인 생활에 부족함이 없음도 잘 가르쳐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여야 하겠다.

            3 사상적 원인

            극단적 자유주의 신학과 신비주의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할 교회가 괜시리 인류 평화라는 핑계로 그것을 양보해버리고 지금도 예수님 유일 구원사상을 강조하는 교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하는 교회라고 공공연히 비난하며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절대자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찾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이단에 떨어지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단의 소리이나 확신으로 확실한 메시지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건전한 신비야 당연히 가르쳐야 하나 지나치고 비성경적인 신비경험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들에게 와야만 그 신비체험이 가능하다기에 유혹을 받는 것이다.

            이단들은 또한 말세사상, 위기의식, 그리고 절망감으로 사상적유혹을 앞세워 자기들에게만 와야 구원받고 기성종교(기독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쳐 사상적 원인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나성균 목사(샬롯한인장로교회)
            ⓒ 크리스찬투데이/USA 아멘넷


            모세율법을 보완하여 그리스도의 율법,
            성령의 법, 복음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

            새 계명을 십계명에 더하여 준 것이 아니라,
            십계명을 보완하여 새 계명으로 대체하여 주신 것입니다.

            히 7:12. “제사 직분이 바뀌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지리니,”

            십계명을 새 계명으로 바뀌어 주신 것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새 계명을 행하면, 십계명은 다 지켜지는 것입니다.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십계명, 모세율법, 첫 언약을 주장하면 아니,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히 7:12. “제사 직분이 바뀌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지리니,”

            십계명이 새 계명(요 13:34)으로
            모세율법이 그리스도의 율법(고전 9:21), 복음으로
            첫 언약이 새 언약(고후 3:6)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으로 형성된 구 언약을 새 계명으로 보완된
            새 언약을 주신 이유에 대하여 성경 말씀입니다.

            렘 31: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 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말씀은 첫 언약의 파하여진 이유는 이스라엘이 파하였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새 언약을 세우심을
            설명하셨습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것을 이해하면 됩니다.
            국민학교는 효력이 없고, 초등학교가 효력이 있는 것은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제사장, 서기관등의 직분들이 바뀌어 사도바울이
            새 언약의 일꾼이 된 것처럼 지금의 목회자들은 순수히
            새 언약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새 계명, 새 언약, 복음이 발효하였으므로,
            구 계명, 모세율법, 구 언약은 동시 효력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법의 변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새 계명은 말씀에 성령의 은사,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모세율법, 첫 언약은
            폐기처분 되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교훈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율법이 복음으로 대체하셨음을
            의미하십니다.
            이것을 언약의 중보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새 계명이 주어짐으로 구 계명,
            모세율법의 틀은 효력이 없습니다.

            새 계명에 포함되어있지 않은 엣 계명이나,
            율법은 효력이 없습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율법의 효력 정지를 암시합니다.
            말씀은 분명히 문자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히 7:18-19.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폐하였다는 의미는 문자가 아닌, 문자의 효력을 말씀하십니다.
            엡 2:15-16. 원어를 연구하시면 바로 압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그림자요. 예표였습니다.
            천국이 가나안이 될 것이라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습니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 표면적(혈통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
            주장하는 이들이 유대주의입니다.

            롬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성경은 표면적(혈통적) (육적)유대인은 (영적)유대인이
            아니라는데, 말씀에 대적하여 혈통적 유대인이 영적
            유대인(하나님의 자녀)라고 우기는 사람들입니다.

            *. 모세율법의 기능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율법주의입니다.

            히 7:12. “제사 직분이 바뀌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지리니,”

            율법에서 벗어나고(롬 7:1-6),
            율법을 향하여 죽은 이(갈 2:19)와
            죄와 사망의 법(율법)에서
            해방(롬 8:2) 된 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갈 2:19-21.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 그리스도는 율법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복음을 세우셨습니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이 셋이나 둘을 인정하는 것이 혼합주의입니다.

            순전히 복음만 주장하는 이들이 복음주의입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율법+복음입니다.
            혼합주의에 대하여 말씀은 강력히 경고합니다.

            빌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이것이 현재 기독교의 실상입니다.

            혼합주의에 속한 이들이 나는 복음주의라고 외치는
            세상입니다.
            율법에서 벗어나고(롬 7:1-6),
            율법을 향하여 죽은 이(갈 2:19)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롬 8:2) 된 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정한 복음주의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율법에 관하여 주신 말씀들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롬 7:1-6. 롬 8:2. 롬 10:4. 고전 9:21. 고후 3:6.
            갈 1:7-10. 갈 3:13. 갈 3:19. 갈 3:21. 갈 3:23-25.
            갈 5:14. 골 2:14, 골 2:20-22. 엡 2:15-16. 히 7:18-19.
            히 7:22. 히 8:6-13. 히 9:15. 히 10:1. 히 10:9. 히 10:29.]

            ※. 모세율법은 도덕법, 인간의 사랑에 법이고,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 그리스도의 율법은 성령의 법이고,
            성령의 은사 사랑의 계명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나, 도덕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고,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샬롬!



            아멘넷게시판/전규성 님



            
            



            사랑/ 채수암


            잿빛 뭍 이던 황량한 들판은
            어느새 계절을 낭군으로 맞아

            푸르른 옷 으로 갈아 입더니
            품속 에는 생명을 담고 있네

            자상한 신랑 내 각시 목마를까
            물 주고 더울까 바람 갖다주네

            아! 사랑의 우리각시 울긋불긋
            아름다움 으로 대답 하고
            품속에 씨앗 점점 더 배부르네


            2013,05,15 영암 가면서


            아멘넷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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